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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복잡다난한 사건과 사고가 많아서..마음의 평정을 얻고자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제목도 그렇고 고승들이 나오는 책 제목도 그렇구..저자도 필시 고승이시구나라는 예측을 했었는데, 웬걸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고려왕족실록의 저술활동을 하신 전문작가셨다. 그렇서 이 많은 (듣보지도 못한)고승들의 일례가 담겨있었구나 싶기도 하고 저자 또한 힘겨운 시간들을 보냈다고 하니 믿음이 간다. 내용의 구성은 이러하다. 고승들의 일례를 들고 그 의미를 해석해주는데 혹시나 그럼에도 지루해하는 독자를 위해 주제별로 쪼개놨다. 솔직히 고승들의 행동에 해석을 잘 넣어주지 않았다면 "이게 뭐지?"라는 행동들이 많았는데..이들은 말이 없고 그들의 이름도 낯선데 그들의 철학은 당연히 낯설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행동 하나가 저자의 해석과 어울어져 울림을 주니, 찬찬히 생각해보면 뒤늦은 감동을 주기도..깨달음을 준다.? 첫장의 달마의 스토리에서 깨달음이라는 게 얼마나 냉혹한 고통과 인내를 요구하는지..그 깨달음이 그 냉혹한 고통과 인내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어 그 '찰라'라는 게 어느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몫이 될 수 없을 수도 있겠다 싶으나 뭐 나는 고승이 아니니까!!하다가 쉽게 읽히는 파트에서는 깨달음이 별거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깨달음을 다룬 책은 엄청나게 많지만 종교적인 이유(?)로 고승의 사례는? 처음 읽었다. 읽다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쭉쭉 읽히고 때로는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도 경험할 수 있었다. 물론 때가 되면 한번 더 읽으면 더 도움이 될꺼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종교적인 이유든 아니든 심란한 마음을 갖고계신다면, 영원한 찰라를 경험하길 원한다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물론 어려운 포인트도 있지만 읽다보면 차분해지기도 하고 또 순간 띵~하게 하는 '영원한 찰라'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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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불교의 법맥을 이은 44명의 고승들이 깨우쳤던 바로 그 순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불교의 좋은 교훈들을 새겨듣는 편이다. 이 책의 저자인 박영규씨는 베스트셀러인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을 펴낸 분이다. 깨침의 순간은 찰나, 즉 75분의 1초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렇게 순 십간에 사람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지만, 그 찰나의 깨침이 사람을 바꿔놓고 우주를 다르게 보게 만드는 것이다. 붓다는 번개처럼 찾아오는데, 단 한 순간도 내 속에 머물지 않은 적이 없었고, 단 한 순간도 내 바깥에 머물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깨침의 찰나가 없다면 붓다는 영원히 내게 없는 것이다. 깨침은 깨지는 것으로 시작되며, 나를 깨뜨리지 않으면 참다운 나를 볼 수 없다. 책에는 '달마, 혜가, 승찬, 도신, 홍인, 혜능, 신회, 운암, 만공, 성철....'등 44명의 고승들이 등장한다. 달마 대사로부터 우리나라의 성철 스님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중국의 불교 역사 속 고승들의 깨침의 순간과 의미를 담고 있다. 달마와 혜가의 이야기를 보면서 진리를 향한 고승들의 수행과 기행은 참으로 힘들고, 때론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 달마와 위 황제의 이야기, 달마와 그의 제자가 된 혜가의 이야기, 혜가와 중풍병자의 이야기 등을 통해 깨침의 순간들을 알 수 있었다. 중풍병자는 전생에 죄가 많아서 자신이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혜가에게 자신의 죄를 없애주기를 간청한다. 이에 해가는 죄를 보여주면 죄를 없애주겠다고 말한다. 중풍병자는 찾을 수가 없어 보여드릴 수가 없다고 하자, 혜가는 "그러면 없어졌나보군. 이젠 됐나?"라는 말을 남긴다. 이 말에 중풍병자는 깨우침을 얻었다. 이렇게 책에는 스승이 제자에게 겉보기에는 의미가 없을 것 같은 화두를 던진다. 화두를 던지는 이유는 제자 스스로 답을 찾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오랜 수행 끝에 비로소 화두의 의미를 읽어내는 순간, 깨달음이 찾아온다고 한다. 사실 책의 내용이 이해하기 쉬운 편은 아니었다. 그만큼 깨달음이란 쉽지만은 않은 길이리라. 이 책은 1500여 년 동안 진리를 향해 이어진 44명의 고승들이 깨우쳤던 깨달음의 길을 배울 수 있었던 의미깊은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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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불교도는 아니지만, 절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좋아하고 깊이 생각하게 하는 부처님의 화두를 좋아한다. '진리란 이것이다', '도란 이것이다.'고 정답을 던지는 게 아니라, 내 스스로 느끼고 깨닫게 하는 깨침 말이다. 이 책, <깨침의 순간>도 44명의 고승이 깨우침을 발견한 그 순간, 찰나를 이야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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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매너리즘 혹은 삶에 대한 회의감이나 염증을 느낍니다. 그래도 우리는 전진하며 살아갑니다. 저마다의 이유가 존재하며 삶을 살아가게 하는 동기와 자극, 책임감 등 다양한 감정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같은 자기합리화나 관리에도 흔들릴 수 있고, 꾸준히 해나간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기댈 곳을 찾고, 하나의 습관이나 법칙과도 같은 것에 주목하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이는 종교, 종교를 절대적인 가치로 믿으며 신앙심이 높은 분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무교론자의 입장에서 이 책은 불교를 비롯한 종교에 대한 기존의 편견을 깰 수 있었고, 상대에 대한 이해, 종교와 종교론자에 대한 존중하는 마음을 새길 수 있었습니다. 사실 지금은 기독교를 비롯한 서양에서 유래된 종교가 모든 주류 종교로 인정받으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우리의 역사를 볼 때, 불교는 엄청난 공헌을 한 종교입니다. 국민통합과 국교로 인정받으며 우리나라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종교가 되었습니다. 고승도 많았고, 단순한 부처논리나 스님의 절대적인 위치에서 모든 것을 행한 것이 아닌, 대중과 호흡하며 가교역할을 충실히 해냈습니다. 책에서 언급되는 스님들도 그렇습니다. 늘 자신을 낮추는 자세와 사람에 대한 존중과 중요성을 주장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줬습니다. 즉 자기관리와 수양, 심신을 어떻게 단련하며 삶을 살아갈 것인지, 다소 철학적인 분야에서부터 우리에게 절대적인 생계와 살아가는 현실문제, 또한 위정자나 기득권의 부패를 막으며 국가의 국민들이 모두가 화합하며 살 수 있도록 이바지한 부분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또한 불교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역사적인 배경과 우리의 정서, 동양권 문화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거부감이 덜하며 누구나 용서받을 수 있고, 실패와 실수를 인정하는 관용의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개인의 해탈과 깨달음에서부터 공동체의 번영과 문화,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 파급효과를 미쳤기 때문에 쉽게 소통하고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이런 점에 대한 언급이 주를 이루면서도, 절묘하게 개인이 해야 하는 마땅한 부분과 도덕적, 윤리적 관념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강하게 다가오며, 우리가 왜 뒤를 돌아봐야 하는지, 타인에 대한 존중과 조화가 필요한 이유, 삶을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물질적인 것이 다가 아닌, 정신적 성숙과 마음을 다스리는 힘이 왜 중요한지 등을 새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무조건 높은 수양과 깨달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대중적 흐름과 호흡을 인정하는 자세에서 매력적인 부분도 여럿 발견했습니다. 깨침의 순간, 결국에는 자기관리와 발전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접해 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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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나는 누구인가?' 이런 화두를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한다고, 늘 깨어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일상의 피곤함 속에 잊혀지기 일쑤입니다. 평온함, 고요함으로 마음을 늘 비워두자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상은 다사다난하고 그에 따라 감정도 함께 출렁입니다. 마음의 평정을 찾고자 <깨침의 순간>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깨침의 순간>은, 불교의 법맥을 이은 44명의 고승들이 깨우쳤던 순간을 기록한 책입니다. 달마에서 성철까지, 고승들을 깨치게 한 스승의 화두는 지금도 유효한 듯합니다. 순간적이며 때로는 쌩뚱맞아 보이지만 모두가 본질적인 질문으로 허를 찌릅니다. "제 마음에는 불안으로 가득합니다. 이 불안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하는 질문에 그 마음을 가져와봐라고 합니다. 마음을 찾을 수가 없다는 대답에, 이제는 마음이 편하냐고 답합니다. 우리는 찾을 수도 없는 마음이 불안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혜충 스님과 황제가 대면하고 있을 때, 황제는 부처의 10가지 몸에 대해 알려달라고 했으나, 혜충 스님은 황제에게 물병이나 가져달라고 했습니다. 왜 물병이나 가져다 달라고 했는지, 궁금해하고 있는데, 마침 넷째 아이가 "물이나 주세요."라고 해서 책을 두고 일어섰습니다. 그제서야 혜충 스님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기도 했습니다. 책을 읽으며 관념이나 지식에 얽매이지 말고 자기가 할 일을 하며 자신의 본질을 보라는 말이 아니었을까요? 아이가 제게 물이나 달라고 한 그 시간이 마침 혜충 스님의 이야기를 읽고 있던 때라 기분이 묘해졌습니다. 왜 넷째 아이는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물이나'란 단어를 사용했을까요? 책을 읽다가 밤이 되어 넷째 아이를 재우면서 아이에게 고승처럼 물었습니다. "넌 누구야?" "나는 신우야."라며 단박에 대답하는 아이... 아이는 이미 부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깨쳐야 한다는 의무감도 가지지 않고 자신이 누구인지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루 하루가 즐겁고 하루 하루가 이미 충만한 아이가 크면서 그 마음을 잃어가겠지요. 그 전에 저는 아이의 마음을 닮아가고 아이가 그 마음을 완전히 잃지 않도록 도와줘야겠다고 각오하게 됩니다. <깨침의 순간>의 저자는, 박영규 작가로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의 저자로 유명한 분입니다. 역사를 읽을 때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데, 박영규 작가의 역사책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책장 한 장을 넘기면 줄어든 한 장이 아쉬워지는 책입니다. 책을 읽으며 깨달음을 지식으로 얻어가지 말라고 주의를 주지만 책 속에서는 지식이 아닌 고승의 애정어린 충고와 가르침이 가득합니다. 하루를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는 사람 중에 누구는 불을 보고 뛰어드는 사람이 있으며 누구는 나무처럼 자연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갖고자 하는 사람, 깨우치고자 하는 사람, 잠깐 깨쳤는데 다시 마음이 불안해진 사람, 누구라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기를 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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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침의 순간> 박영규 지음. 열림원
영원한찰나, 75분의 1초
불교의 법맥을 44명의 고승들이 깨우쳤던 바로 그 순간!
깨져야 깨칠 수 있다는 화두!
깨달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미 마음 안에, 몸 안에 씨앗이 자라고 있는 것인가?
인도에서 동쪽으로 온 달마가 전한 부처님 법의 향기!
스승과 제자를 통해 이어져온 중국불교의 법맥 이야기.
한국불교의 스승들 이야기가 펼쳐져 있다.
때로는 장대하게, 때로는 소소하게 탁! 다가오는,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 달마. 혜가
부처의 깨달음은 오로지 부처의 것 - 승찬. 도신. 홍인
깨닫겠다는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 혜능. 신회. 혜충. 행사. 회양
그는 나를 닮지 않고 나는 그를 닮지 않았네 - 희천 . 약산. 천연. 도오
내 안에서 찾으라 - 마조. 백장. 남전. 대주. 혜장
마음에 같히지 말라 - 조주
지금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 황벽. 임제. 위산. 양산
겨울은 겨울처럼 살고 여름은 여름처럼 살라 - 운암. 동산. 도응. 조산
좁쌀이 어찌 우주보다 작으랴 - 용담. 덕산. 암두. 설봉. 운문. 법안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 - 혜공. 범일. 지눌. 나옹. 무학
우리의 삶 자체가 참선이다 - 경허. 만공. 혜월. 경봉. 성철 등장하는 스님들은 중국 선불교의 법맥을 잇는 스님들이다. 책의 후반부에는 우리나라릐 불교를 중흥 시키고 이어온 스님들의 이야기가 있다. 경허선사와 만공, 혜월, 경봉선사 그리고 그 맥을 이은 성철스님의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요즘시대와 가장 가까운 스님인 성철선사가 입적 하셨을 때 TV에서 중계방송하는 다비식을 시청했었다. 사과를 아는 것과 사과 맛을 아는 것은 다르다. 사과를 백 번 알면 뭐하나, 사과 맛을 먹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을... 이 책에서는 떡이야기도 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제일 제일 큰 떡은 무슨 떡인가. 제 입 안에 있는 떡이다. 남의 손에 들려 있는 떡은 아무리 커도 내가 맛볼 수 없다면 알 수 없는 것이다.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떡을 예를 들며 이야기 한다. 내 입에 들어있는 떡을 맛보고나서 무슨 맛인지 알듯이 내가 직접 먹어 봐야만 안다는 것이다. 내가 직접 깨달아 봐야만 안다는 것이다. 깨달은 자만이 깨달은 자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법!. 이심전심 (以心傳心)
이것 역시 깨달은 자끼리는 마음으로, 눈빛만으로도, 말을 하면 알아 듣는다는 이야기다.
깨달은 자가 하는 말을 깨닫지 못한 자가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은 깨달은 자가 하는 상징의 언어를 깨닫지 못한자는 알아듣지를 못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시라는 말이 나왔다고도한다.
시 詩, 말씀 언言변에 절사寺,
절에서 나누는 화두이야기, 이것이 바로 시라는 것이다.
단어가, 문장이 뜻하는 겉으로 보이는 말 안에 들어 있는 이미지, 상징 그것을 알아야만 깨쳤음이고,
진짜 많이 깨진 자만이 깨친 자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깨친 스승이 깨친 제자에게 불법을 전하고 전하고 전해서 고승들의 깨달음의 맥이 이어져왔다는 것이다.
깨달은 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깨침의 순간에도 첫새벽은 다가온다.
밥 먹고, 물 마시고, 똥 누고, 잠자는 일은 일상이다. 깨친, 덕 높으신 스님들도 생활을 걷어찰 수는 없는 일.
깨달은 사람이든 깨닫지 못한 사람이든 하루하루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배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물을 마시고 졸리면 자는 것이 깨침의 지름길 깨침을 찾다가 깨질지라도
깨지면서 깨침의 길로 간다 해도 깨닫는다는 것은 맛을 봐야 아는 일. 흔한 사과라도 한 개 먹어봐야 맛을 알 수 있는 것이니, 귀한 깨침이라면 (화두를) 깨쳐봐야 알 수 있는 것인가.
지금 이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 이 순간을 숨쉬는 것 자체가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니
오늘, 이 순간에 충실하기가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아닌가. 오늘도 나는 깨침의 순간순간을 살고 있다.
(빨갛게 잘 익은 사과 하나 먹어야 하나...?ㅎ)
저자 역시 깨지면서 깨침의 길을 걷는사람. 얼마나 깨지면서 이런 책을 세상에 내놓으셨는지... 고맙습니다. 저는 네이버 카페 <북뉴스>를 통해 <열림원>이 제공해주신 도서를 읽고 이 글을 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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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 마음에 번뇌를 끊고 무아의 경지로 들어가는 것. 그래서 붓다. 곧 깨침을 얻는 자가 되는 것. 그렇게 영원한 자유인으로 되는 것. 그 자유인들의 깨침에 관한 이야기가 곧 선담禪談이다. <깨침의 순간>에는 불교의 법맥을 이은 44명의 고승들이 깨우쳤던 바로 그 순간에 대한 글이다. 화두는 일종의 문제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문답을 말하며 이를 참선하는 수행자가 항상 염두에 두고 속속들이 파고들어 깊게 연구하는 것을 '화두에 든다'라고 말한단다. 어떤 이는 시詩를 '절에서 쓰는 말'이라고 한단다. 말씀 언言 + 절 사寺 = 시詩 시를 절에서 쓰는 말이라고 해석한 이유는 화두와 시가 모두 상징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란다. 네 성이 무엇이냐, 벼는 익었느냐, 바람이냐 깃발이냐, 옛 부처는 갔다, 좌선만 한다고 부처가 되느냐, 허공은 이렇게 잡는 거야, 밥은 먹었느냐, 차나 마시게, 개한테 물어봐,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네 화로에 불이 있느냐, 물병은 물병인가, 늦으면 깊지요, 내가 곧 그다, 그물을 뚫고 나간 고기, 부처는 똥 막대기다, 부처는 바로 자네, 너도 없고, 나도 없으면, 누가 보느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깨침의 순간>에 담긴 여러 고승들의 화두는 알듯 모를 듯 그 찰나의 순간을 이해하기가 난해하지만 문제지의 해설집을 보듯 잘 요약해 놓은 저자의 친절한 설명으로 고승들이 전하고자 했던 가르침을 곰곰이 생각하고 음미하며 반추하게 된다. 하.... 여전히 어렵다. 스승과 제사 사이에 오가는 선문답의 의미들이 어렵고, 깨달음도 난해하다. 조금이라도 가르침을 깨달으며 나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지혜를 얻고자 책을 펼쳤는데 깨달음은 가르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란다. 남에게 배은 것은 참된 지혜가 아니란다. 깨달음은 자기 속에 있는 것이다. 자기 몸과 마음으로 직접 체험한 지혜가 진정한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대개 깨달음을 단순한 지식이나 지혜로만 알고 있지만 남의 깨달음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결코 깨달음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남의 깨달음을 이해한 것일 뿐이란다. 선사들이 굳이 직접적인 설명을 통해 가르침을 주지 않고 화두를 사용하는 것도 자기 스스로 깨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란다. 그것만이 진정한 깨침이기 때문이다. 스승은 깨달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해주는 존재일 뿐이다. 깨달음에는 본질적으로 스승이 없다. 대부분의 깨우친 선승들은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 깨달음에 이르렀다. 그들에게는 각자의 길이 있었고, 자신만의 수행 방법이 있었으면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갔다. 그것이야말로 깨달음을 얻는 참된 길이란다. "부처의 깨달음은 오로지 부처의 것! 네 안의 부처를 먼저 발견하라." 저자는 깨침은 깨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나를 깨뜨리지 않으면 참다운 나를 볼 수 없다고 했다. 지식, 형식, 습관, 욕심을 깨뜨리지 않으면 참다운 나를 볼 수 없으니 깨친 자는 먼저 깨진 자여야 한다고... 붓다, 곧 깨침을 얻은 자다. 붓다의 길, 그 첫걸음은 바로 나를 깨는 것부터 시작하자. 물론 깨지기만 한다고 깨치는 것을 절대 아니다. 깨짐은 깨침의 시작일 뿐이다. 마음을 부숴버리지 않으면 자신을 보지 못한다는 달마의 가르침. 자신의 팔 한쪽을 잘라내고 달마의 가르침을 얻은 혜가는 불안함 마음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지만 정작 불안한 마음을 가져오라는 달마의 말에 보여줄 수 마음을 찾을 수가 없었다. 찾을 수 없는 마음이 불안하다는 것은 단지 마음이 불안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 뿐. 원래의 마음은 그저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으나 우리의 생각이 불안을 만들어 그 속을 불안으로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란다. 탁! 있는 그대로를 보라! 도색하거나 포장하지 말라. 자기 지식을 동원해 생각에 잠기면 점점 깨달음에서 멀어질 뿐이다. 일상생활 속의 일상적인 마음, '평상심이 곧 도다.' 물이 아래로 흐르고, 뜨거운 것은 위로 솟고, 늙으면 죽고, 죽으면 썩고, 그래서 더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상사다. 이 평범한 이치를 영위하면서 흔들리지 않고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진리다. 순리에 역행하지 말라. 탁! 붓다, 곧 깨침을 얻는 자. 깨달은 자, 그는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인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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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침의 순간 재미있다. 깨달음을 불교 고승들의 비사를 통해 흥미롭게 알려주고 있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말과 문자로 통하는가? 깨달음은 어디에 있는가? 비로소 깨우친 고승들의 이야기는 많은 걸 시사하고, 또 내포하고 있다. 깨달음의 교감이 가능한 혜가! 깨달음을 위해 팔을 잘랐다. 문자를 몰랐던 혜능! 깨달음은 문자를 몰라도 전해진다. 단순히 글자와 말로 전해지는 게 깨달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깨침의 순간은 찰나이기도 하고 또 가르침을 통해 전수되기도 한다.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움을 지녀야 깨달음도 순간에 온다. 그런데 살아가도 보면 인연의 쇠사슬로 스스로를 칭칭 동여매고 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질지 몰라도 정신이 각박해진다. 인연의 쇠사슬은 즐거움과 행복을 주지만 동시에 번뇌와 고통, 스트레스 등을 동반하고 있다. 책은 이런 고통과 번뇌에서 어떻게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지, 그리고 깨달음을 가질 수 있는지 넌지시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깨달음은 마음으로 얻는 법이다. 둥~! 이 글귀가 마음에 파고 들어왔다. 아쉽게도 그것으로 끝이다. 여운은 남지만 깨달음으로 이어지지는 못 한다. 껍데기만 보고 알맹이는 보지 못 했기 때문이겠다. 살아가면서 알맹이를 보게 되는 순간이 올까? 그래도 가르침으로 삼기에는 더 없이 좋은 글귀다. 깨우침을 위해서 아니라 내면을 보면서 스스로를 관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요즘 들어 더 정신이 삭막해지고 있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불교 고승들의 이야기를 읽으니 마음이 경건해지고 깨끗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부와 권력, 명예와 지식도 살아가면서 필요하다. 그렇지만 마음의 평화가 더 우선이겠다. 살아가면서 신외지물보다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절실하게 느꼈다. 보이는가? 뭐가 보이나? 안 보인다. 물질적으로 볼 수도 없고, 뭐라고 칭하기에도 부족함을 느낀다. 내면의 물음은 길을 가르쳐 달라는 주문이기도 하겠다. 그런데 보이는가의 질문에서 길을 찾지 못 하면 방황하기 마련이다. 맹인이나 마찬가지다. 맹인에게 가장 필요한 건 횃불이나 도구가 아닌 스스로에 대한 인지다. 사람은 스스로에게 묻지만 인지에 대해서는 부족함이 많다. 멀리서 답을 찾으려 할 뿐, 정작 스스로의 부족함은 모른다. 그 부족함을 인지하고 내면 깊숙한 곳까지 침잠해 들어가서 본질을 알아야겠다. 고승들의 가르침! 깨달음과 해탈을 갈구하는 승려들! 그들의 대담에는 마음을 울리는 힘이 있다. 깨달음을 담고 있는 가르침이기 때문이겠다. 그리고 깨달음을 떠나 인생의 횃불로 삼기에도 부족함이 전혀 없다. 추워져가는 계절 마음을 따뜻하고 풍요롭게 만들기에 참으로 좋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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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삶 자체가 참선이다 " 살다보니, 살아보니 삶은 긴긴 여정의 수행이다. 또한, 경전을 읽어도 듣고 또 들어도 부족함이 많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 살아 있는 지혜 "를 얻고자, 마음의 느긋함을 배우고자 이 책을 선택했다. 『 깨침의 순간 』은 말그대로 순간적으로 깨우치는 것이다. 앗, 하는 순간, 뇌에 번개가 치듯 번득 깨우치는 것이다. 무엇에 대해서냐면, 부족함과 때론 반성, 때론 좋은 아이디어가 그렇다. 깨달음은 어린아이처럼 안달을 하면 더 멀리 도망간다. 멀리 있지도 않고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집중하여 있는 그대로 생각하다가 한가지 행동에서 다른 행동으로 옮길 때『 깨침의 순간 』이 찾아온다. 우리집에는 커다란 액자가 있는데 달마도사의 그림과 직심시불(直心是佛 )이라는 한자가 있다. 어머니가 시골에서 기차타고 오시면서 손수 들고 오신 선물이라 이사 다니면서도 잘 챙겨 다녔다. 지금에서야 알아보니, 행운이 오는 액자란다. 어머니야 아주 오래전부터 법문을 읽고 쓰고 시간만 나시면 절에 가셨던 분이니, 부처님 말씀은 아주 잘 전해 들으셨으리라 짐작한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 달려 있고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늘 말씀하셨었다. 『 깨침의 순간 』처음 부분이 달마도사로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놀라움과 기쁨이 함께 했다. 어머님이 그리워졌고 하셨던 말씀들이 책으로 새록새록 새겨져있다. " 깨달음, 그것은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깨달은 자, 그는 영원한 자유인이다. " 깨달음에는 지위가 없고 문자의 배움이 없어도 되고 나이가 따로 없으며 높고 낮음 또한 따로 없이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평범하고 기본적인 것 같지만,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것은 욕심을 내리지 못하고 깨달음의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 달마, 혜가, 승찬, 도신, 홍인, 혜능, ...... , 경허, 만공, 혜월, 경봉, 성철` 스님에 이르기까지 스승(스님)은 제자를 찾고 제자는 스승을 찾아 긴 세월을 흘러 내려왔다. 스승이 제자에게 배울 때도 있고 제자는 스승의 큰 뜻을 헤아리며 자신의 깨우침을 얻기도 했다. 『 깨침의 순간 』을 읽다보면 스승과 제자 사이 깨침에 공통점을 찾게 되었는데 " 도란 곧 생활이다. "" 평상심이 곧 도"이다. 진리 또한 일상적인 것이다. 어떤 지혜도 꽤를 부려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순리대로 살아가려는데서 생기는 것 같다. 산을 산으로 보고, 물을 물로 보는 것은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겉만 보지 말라, 형식에 얽매이지 말라는 것은 본질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올해의 10월은 부처와도 같은 책으로 차 한잔 한 느낌이다. 몸은 가벼워지고 곧 좋은소식이 올 것만 같은 행복한 기분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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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침의 순간이다, 다른것은 아무갓도 존재하지 않음이다, 마음에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물음로부터 부처의 깨달음은 오로지 부처의 것이라는, 깨닫겠다는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그는
나를 닮지않고 나는 그를 닮지않았다고 내안에서 찾으라, 마음에 갇히지말라, 지금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겨울은 겨울처럼 살고 여름은 여름처럼 살라고, 좁쌀이 어찌 우주보다 작으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가 보인다, 우리의 삶자체가 참선이다라고 물음을 던진다.
깨달음을 향한 44명의 고승들과 선지식인들이 1500여년동안 걸쳐 만들아온 역사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의 깨달음과 선문답으로 그들의 생각과 삶을 이해하고자하지만 역시나 어렵다
이렇게 물어온다면 무슨의미인지 어떤 의미로 물어보는건지 본성을 위한 물음이 과연 무엇인지
참의미를 알기란 요원하기만 하다
하지만 선승들의 깨달음은 본성을 깨우치는것, 허상이 아닌 진실된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실존하는 자신의 모습이라는 말이다.
면벽수행과 참선으로 온갖 육체적 고통을 이기면서 까지 선승들이 알고자 한 마지막 깨우침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말이다
단언컨대 자아를 발견하는 것이다, 허상이 아닌 진실된 자신의 모습말이다
그러니 부처는 따로 있는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자신 스스로 부처가 되어야한다. 그것이 깨달음이다
추위에 떨면서도 살아있는 부처가 아닌 허상의 부처를 안고 있는 어리석음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중요한지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지 깨우치게 위해서 선승들은 자신의 육체적인 고통을 받아
들이면서까지 그들이 찾고자 한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깨달음을 얻은 그들 또한 또다른 큰그릇이
되기위해 부족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지식은 지식일뿐 그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남이 깨우친바를 그냥 얻고자 하는것을 경계하고 있다. 스스로 께우치고 수행을 해야한다
그저 떠먹여주는 가르침만으로는 진정한 본성을 찾기가 어렵듯이 말이다.
허상에게 진실을 구하지말라고 일깨워주고 있다. 먼 옛날 선승들이 지금도 날카롭게 때로는 무섭게
때로는 부드럽게 말이다,
참으로 번뜩이는 위트와 화두는 가히 놀라지 않을수 없게 만든다. 그렇기에 아직 멀기만 해 보인다
세속에서의 삶을 살아가지만 선승들의 가르침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지만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진정한 가르침과 깨우침은 그저 얻을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음을 기억해야한다
그대들이나 지금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까지도 말이다, 노력없는 보상은 있을수 없다는
그래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유일한 진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참본성을 보고 허상에 얽매이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다. 너무나 근본은 무시한채 겉만 보고 판단함을
두려워 해야한다고 일갈허고 계신다
선승들은 한분 두분 사라졌지만 그들의 지혜는 아직 가슴에 남아 돕니다. 선승들과의 만남은 아니어도
그들을 이렇게라도 만날수 있어 얼마나 행복한 시간인지 모를일이기 때문에 말이다
모든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것 일채유심조를 떠올리게 한다. 선승들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선승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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