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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웨어맨』은 2005년 『현대문학』 6월호에 단편 「뱀꼬리왕쥐」를 발표하며 등단한 소설가 염승숙이 첫 책 『채플린, 채플린』(문학동네, 2008) 이후 3년 만에 발표한 두번째 단편집이다. 아직 『채플린, 채플린』을 비롯한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단정할 수는 없지만 뭐랄까… 김애란의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같은 기분이다. 80년대생 작가 중 남녀를 통틀어—‘여성작가’라는 수식어로 결코 한정할 수 없다—가장 마음에 드는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처럼 신중한 사람이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한다는 것 자체가 이 작가의 작품에 대한 깊은 인상과 신뢰를 보여준다. 서둘러 끝맺는 듯한 결말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한결같은 집중력으로 작품에 임한다면 연령을 초월해 단연 최고의 작가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작가의 장래가 기대된다. 충성도 높은 독자가 될 것 같은 예감. “나이 서른이 돼서야 손톱 물어뜯는 버릇을 고쳤는데, 인생이 이렇게 부질없고 허망한 것인 줄 누가 알았겠어요?”라며 무릎에 얼굴을 묻는 여자와, “처음엔 그저 감기 몸살이겠거니 했죠. 3일치 약을 죄다 챙겨 먹곤 약봉지를 버리려고 쓰레기통으로 갔어요. 그런데 약봉지와 함께 내 손도 툭, 쓰레기통 속으로 홀랑 버려졌지 뭡니까. 내 참 우스워서”라며 손목으로 머리통을 감싸는 남자를 뒤로하고, 나는 진료실로 들어섰다(당신과 악수하는 오늘). 끝도 없이 구불구불 이어지는 골목과 층계를 요렁 없이 누비며 그래서 장공수는 매일 얼마쯤 마취되어 있는 기분이었다. 거대한 도시, 거인 같은 사람들, 색색의 원단이며 온갖 종류의 실, 지퍼, 큐빅과 깃털, 단추 들. 하르르한 원단들과 새끼손톱만 한 단추들이 무거워 그는 오줌을 지릴 정도로 쩔쩔맸다. 세상은 반작이는 것 투성이었지만 동시에 아주 무거운 것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다는 걸 그는 밥을 입에 우겨 넣을 때마다 깨우쳐야 했다. 밥알의 뜨거운 온기만이 홀로 가벼워 보였다(노웨어맨). 처음으로 장만한 아파트를 팔아 전세로 옮기고, 다시 전세금을 빼서 다세대 빌라로, 옥탑으로, 반지하 방으로, 원룸으로, 고시원으로 이동하면서 이진성은 작아지는 방의 크기만큼 온전했던 생의 규모도 잘게 쪼개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최전선에서 발이 묶인 수류탄 잃은 병사처럼, 가진 거라고는 그저 손발이 묶여 어서 빨리 적의 포로가 되기를 바라는 심정뿐이었는데 그랬던 마음을 이내 다그치고 후회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한 칸 한 칸 천장의 높이가 내려앉고 벽의 두께가 얇아져왔던 것이다(무대적인 것: 노웨어맨 2). 어째서 기울어지고야 마는지에 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저런 가정과 추측만이 난무하다. 공통적이랄 게 있다면, 사람들은 기울어지는 것을 질병의 일종으로 받아들인다는 것, 그리고 모두가 끝내 레인스틱이 되어 기울어지게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일까. 기울어져버렸다는 것은 더이상 웃지도, 울지도, 떠들지도, 침묵하지도, 잠들지도 않는 상태. 그것만으로도 온 사회와, 세계 전부가 동요했다. 이미 기울어진 자들이 내는 빗소리와, 아직 기울어지지 않은 자들의 소란으로 내부는 끊임없이 요동쳤던 것이다. 그러나 기울어진 사람과 기울어지지 않은 사람 사이에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인지, 아직은 그 누구도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레인스틱). “88만 원 세대라더라.” “우리가?” “그래, 우리가.” “88만원, 버냐?” “8,220원씩 번다, 하루에.” “88만원이라니. 큭.” “죽자, 죽어.” (레인스틱) 도시에서 가장 빨리 전달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쁜 소식이다(라이게이션을 장착하라).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내 삶이, 누군가에 의해 안내된 경로만으로 움직인다면 그 이상 재미없는 게 또 있을까. 가이드를 좇아 두 다리를 움직이는 관광객처럼, 그것은 다만 피로하기만 할 뿐 아닌가(라이게이션을 장착하라). “엄마에 대해 기억나는 건 그것뿐이야. 얼음장처럼 차디찼던, 엄마의 몸. 엄마가 숨을 쉬지 않는다는 사실보단 그 살갗의 차가움이 무서워서 울었던 것 같아. 새하얀 병원 침대에 실려 나가는 걸 본 게 마지막이었는데, 가끔씩 명치끝이 아플 때마다 생각나. 차갑던, 그 온도가 그대로 얼어서, 내 몸 어딘가에 고드름 조각처럼 콱 박혀 있는 것 같아. 아주 뾰족하게.” (바디펌 기기의 생활화) 나는 조용히 귀 기울여 아버지의 말을 들었다. “그런데 여름밤은 늘 너무나 짧기만 해. 그래 시간에 쫓겨 작업을 하다 보면 언제나 매끈하지 못하단 말씀이댜. 제아무리 아스팔트를 평평히 펴 바르려고 애를 써도, 울퉁불퉁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어. 아스팔트가 부어질 때의 그 뜨거운 온도란 상상조차 하기 힘드니까 말이다. 어쨌든 그럴 때마다 나는 담담히 생각하곤 했지. 아, 이 몸이 또 지구에 굵은 주름을 만들어주고 말았군,” “주름이라…… 꽤 미안했겠는데요.” 아버지에게 이런 소년 같은 엉뚱함도 있었나 싶어서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러니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아버지는 웃지 않았다. “나는 지금 지구의 주름을 보고 있는 거라고……, 세상이 울퉁불퉁해 보일 때마다 말이다.” (곡선을 걷는 시간) 인생은 전화기 같은 거란 걸. 아무리 숫자 버튼을 꾹꾹 눌러대도, 막상 상대가 수화기를 들지 않으면 통화는 연결되지 않아. 소통되지 않는 거지. 서로의 음성을 교환한다 해도 온기는 나눌 수 없고, 시각은 철저히 배제돼(프로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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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장편보다는 단편을 선호한다. 소설말이다. 10편 이내의 소설들로 묶인 소설집은 작가의 역량, 취향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바로미터일 터. 하나의 책 속에서도 작가의 여러 면모를 살펴볼 수 있고, 더욱이 '향후 장편소설은 이렇게 써내려가겠군' 다소 위험한 판단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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