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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말 많은 사람은 딱 질색인데 예외인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아무리 말을 빨리 해도 생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만큼 머릿속에 아이디어와 생각이 팝콘처럼 항상 팝팝 튀겨지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약간의 조증 환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항상 에너지가 넘치고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 저 머릿속엔 과연 뭐가 들었을까 궁금해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옆에 있으면 늘 즐겁다. 자극을 주니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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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 작가는 몇 년 전부터 불어온 일본 장르소설 바람의 시초처럼 생각된다. 저자는 재작년인가 서울국제도서전에 강연을 하러 왔었는데, 구름처럼 밀려든 사람들 때문에 결국 선착순에 밀려 강연회에 참석을 못했던 기억이 난다. 자그마한 몸피와 얌전한 외모 안에 다양한 이야기가 폭발적으로 들어 있음이 흥미롭다. 지금까지 소설로 만나온 저자를 에세이로 만나는 첫 번째 이야기가 바로 <「공포의 보수」일기> (2011, 온다 리쿠 지음, 북폴리오 펴냄)이다. 부제는 '영국 · 아일랜드 · 일본 만취 기행'인데, 책을 읽어 보면 이 아리송한 제목의 뜻을 이내 알 수 있다.
저자는 비행기 여행에 대한 공포증이 있단다. 발 밑이 허방일 때의 두려움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람은 비행기라는 공간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지만, 누구보다도 상상력과 감정 이입이 뛰어난 예술가들, 특히 '평소 망상인 다름 없는 황당무계한 플롯을 생각하는 족속'(12쪽)에 속하는 소설가들은 비행을 두려워하는 감정이 더 크고 절실할 수 있겠다. 그런 공포를 완화하기 위해 저자가 택한 것이 '글쓰기'였고, 그래서 책 제목이 '공포의 보수 일기'가 된 것이며, 또 하나 저자가 택한 수단은 알코올이다. 나리타 공항에서 마신 화이트와인과 기내에서 마신 네덜란드 맥주와 화이트와인 하프보틀 두 병이 런던 히스로 공항까지의 12시간 비행을 이겨내게 했으니 말이다. 비행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써 다른 곳으로 돌리는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참 재미있다. 문학에서의 진지한 의식의 흐름이 아니라,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유머러스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작가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들었다면, 이번에는 아주 친근하게 바로 옆에서 이야기를 들었더니 좀 더 가까이 다가오는 듯하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취재가 본문이라면, 뒷부분의 일본 맥주 공장 견학기 세 편은 부록 같은 느낌이다. 기린, 삿포로, 오리온 맥주에서 각기 다른 일본의 문화를 읽어낼 수 있다. 나도 대학 다닐 때 과에서 모 맥주 회사에 현장 견학을 간 적이 있다. 맥주 제조 공정을 따라 설명을 듣고 나면 30분인가 동안 생맥주를 무제한 마시는 시간이 주어지는데, 마실 때는 좋았지만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볼일이 급해지는 바람에 다들 안절부절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적당한 빈도와 적당한 양이라면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빨리 뛰는 유형이라 술이 약하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분위기가 좋은 것이다. 그래서 <공포의 보수 일기>를 읽으면서 나도 함께 마시는 것처럼 흥미로웠다. 갑자기 맥주가 땡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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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와 공유할 수 있는 비행기 체험에 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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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라는 작가를 처음 만나게 한 작품은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라는 다소 추상적인 제목의 책이었다. 이후 그녀의 매니아가 되면서 출판되는 작품은 족족 다 사보게 되었는데, 그 중 몇몇 권을 제외하곤 열광하게 만들었으며 여전히 나는 그녀의 이름이 붙은 책이 출간되기 무섭게 소장본으로 사들인다. 그녀의 작품을 보면 쉬운듯 하면서도 이야기를 재미있게 끌고가는 매력이 충만하며 미스터리 작가로서의 명성에 걸맞는 자꾸만 보고싶어지게 만드는 요소를 소설 가득 배치해 도저히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그런 그녀가 소설이 아닌 에세이북을 출판했다는 말에 의아해졌는데,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의 여행 에세이는 영국, 아일랜드 그리고 일본에 걸쳐져 있었다. "여행은 내 소설의 모티브를 얻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고 밝힌 스토리텔링의 마법사 온다 리쿠는 아이러니하게도 비행기를 싫어하는 소설가 중 한 명이었다. 스티븐 킹. 아서 c. 클라크, 레이 브래드버리, 스탠리 큐브릭 처럼. 사고로 인한 두려움이 아니라 순전히 상상력에 기인된 공포가 비행기를 무섭게 만들었는데, 그런 그녀가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여행을 가게 되다니...그 사실이 매우 이례적이면서도 아이러니하게 느껴져 공포를 억누르고도 떠나게 만든 여행의 내용이 무척이나 궁금해져 버렸다. 또 재미있게도 그녀의 여행 전반은 음주여행기라 칭해도 좋을만큼 술이 빠지지 않았는데, 갈 수 없는 나라를 찾아간 대작가의 취중진담은 그래서 안주처럼 고소하고 알콜맛이 나는 톡 쏨이 포함되어 있는 듯 했다. 기행문이자 에세이인 [공포의 보수일기]는 비록 원했던 장르인 소설은 아니었지만 오로지 맥주를 마시고 싶다는 일념에 영국, 아일랜드, 체코를 여행한 작가의 여행담이 가득해 만족스러웠고 칼라도 아닌 작은 흑백사진들도 독특한 느낌을 전하고 있다. 보통 여행기라 하면 컬러풀한 사진들 일색에 약간의 글들이 기록되기 마련인데 그녀의 책은 그 반대였다. 비행기를 인간 화물 수송기로 표현할만큼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일본 내의 기린맥주공장, 삿포로 맥주공장, 오리온 맥주 나고공장을 견학할때도 비행기를 이용한 것들 보면 공포도 그 편리함을 앞서진 못했던 것일까. 맛있는 맥주 거품에서 태어나는 모양의 "에코지로"라는 기린 맥주의 캐릭터도 기역산업 육성 및 청년취업을 위해 쇼와32년에 창업되었다는 오리온 맥주 공장도 인상적이었으며 일본 여행길에 맛보았던 시원하면서도 부드러웠던 맥주맛을 기억하게 만들었다. 다음 일본 여행에서도 그 맥주맛을 다시 맛볼 수 있을까. 일본 원전에 대한 뉴스들이 하루가 다르게 무섭게 쏟아져 나오고 있는 지금, 그녀의 여행기는 또 다른 판타지처럼 읽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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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듣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다. <p.187> 온다 리쿠의 이야기를 좋아해 출간되지마자 구입하긴 했는데 결혼식 후유증인지 5월 한달동안 글자가 눈에 안들어와 책을 읽지 못해 고생했다. 한 두권 읽긴 했지만 책을 읽을수가 없어~ 라는 좌절된 기분은 쉬 사라지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자마자 거짓말처럼 그런 기분이 싹 사라진 듯 다시 재미나게 책을 읽고 있는 요즘 ^^ 소설이 아닌 에세이인지라(그것도 영국,아일랜드,일본 만취 기행이라니 크크크) 별로라는 얘기도 있어 큰 기대를 안해서 그런가, 온다 리쿠의 이야기라면 다 좋다는 인식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생각외로 난 너무 재밌게 읽은 듯 ~ 이 작가에게 이런 면이 ? 싶을정도로 꽤나 엉뚱한 얘기가 많아 혼자 키득키득 웃느라 정신 못차린듯 !! 만인이 공유하는 공포도 있지만 사적인 공포도 있는데 온다리쿠는 '비행기'가 무서워 해외여행을 가본적이 없을 정도란다. 워낙 유명 작가라 비행기를 타고서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이야기의 소재를 찾고 그것에 멋지게 살을 붙여 책을 출간한 줄 알았는데 웬일!!! 홍차와 안개, 탐정과 살인마잭의 나라 '영국'에 도착해 스톤헨지, 에이브베리, 솔즈베리 대성당, 테이트 갤러리 전을 본 이야기보다 비행기를 타고 내리기까지의 과정샷이 그 어떤 소설보다 큰 재미를 안겨줄 줄이야 ~ <공포의 보수>는 충격을 주면 폭발하는 니트로글리세린을 운반하는 과정을 그린 서스펜스 영화의 명작인데 내 안의 공포가 폭발하지 않도록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며 달래는 상태랄까 ~ 비행기에 타야 한다는 사실에 공포에 질려 이 기행문을 시작하게 됐다며 <공포의 보수 일기>로 책 제목을 정한 이것 역시 참으로 작가다운 발상이 아닌가 싶다. 영국에서 아일랜드로 이동해 뉴그레인지와 타라의 언덕, 작가박물관, 크라이스트처치, 성패드릭 대성당, 트리니티칼리지를 둘러보고 펍에서 맥주를 마신 이야기 등등 책을 읽는 내내 온다리쿠와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 좋았던 것 같다. 정말 좋았던 것은 그녀의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 좀 더 알게 됐다는 것이랄까 ~ 초등학교 6학년때 SF를 썼다는 것, 유적을 좋아하고, 흐린 하늘의 풍경을 좋아하고, 단것을 싫어한다는 것은 물론 그녀가 좋아하는 책 이야기도 실컷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무서웠던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이해 불능이라는 점에서는 고등학교 때 수학Ⅱ와 물리 교과서가 무섭고, 생리적으로는 곤충 도감이라던지 가정의학의 질병 해설이 무섭고, 환경 호르몬이라든지 에볼라 베이러스, 국가 재정 파탄을 해설한 책이 또다른 의미에서 무섭다는데 소설 중에서 진정 오싹한 순간을 선사한 것은 애거사 크리스티 뿐이었다면서 그녀의 작품중 베스트 3을 소개한다. [끝없는 밤], [잠자는 살인], [메소포타미아의 살인]이 무섭다는데 올여름 이 책들을 읽으며 무더위를 나야겠다는 ㅎㅎ 교고쿠 나쓰히코와 모리 히로시를 발굴해 고단샤뿐 아니라 출판계 전체의 매상에 공헌한 덕에 대번에 부장으로 승진한 K부장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어떤 계기로 어떤 소설을 쓰게 됐다는 식의 뒷이야기(소설을 쓸 때 마음에 드는 제목 먼저 생각해놓는데 테이트 갤러리에서 본 '에어하트 양의 도착'을 보고, 영국을 무대로 남녀가 엇갈리는 멜로드라마 '라이온 하트'라는 연작소설을 쓰게 됐다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끄덕)를 읽는 것도 쏠쏠. 그녀가 쓴 미스터리에는 '과거' 이야기가 많은데 눈앞에 있는 사건, 현재 진행형의 원색적인 사건보다 이미 과거가 된 것, 한 발짝 떨어져 있는 것일 때 더 안심하고 다룰 수 있고 무엇보다 경찰의 수사방법도 잘 모르겠고 조사하기도 귀찮아 그렇다는 이야기에 미스터리 작가가 이래도 되나 ? 의아할 법도 한데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고 묘하게 설득당하고 말았다 크크크 어른스럽고 국제적인 도시 '런던', 시골의 도회지같은 '아일랜드'는 물론 기회가 된다면 기린 요코하마 비어 빌리지, 삿포로 맥주 주식회사, 오키나와 오리온 맥주 나고 공장도 방문해보고싶다 ㅋ 술을 즐겨 마시는 사람이 아닌데도 이 책을 읽을땐 시원한 맥주 한잔 생각이 어찌나 간절하던지(그것도 세 번 따르기 방법으로-책을 읽으신분만 무슨소린지 이해할 듯~) 안주도 필요없을 것 같았다. 그녀가 풀어놓는 이야기만으로 충분하니까 ㅋ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그녀와 함께 여행하는 기분, 맥주 한잔이 간절해지는 기분, 다음 작품의 시작이 될지도 모를 구상집을 읽는 기분에 푹 빠질 것이니 기대하셔도 좋을 듯~~
마음에 드는 장소, 분위기 있는 장소를 만났을 때 그곳을 무대로 무슨일이 일어날지를 생각해본다는 그녀. 장소에 힘이 있으면 이상스럽게도 시각적 이미지가 머릿속에 잇따라 떠오른다는데 ~ 작가니 그렇겠지 하고 치부하지 말고 나 역시 내 자리에서 내가 보고 들은 것들로 멋진 이야기,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낼 줄 아는 현명한 여자가 되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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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의 <공포의 보수 일기>의 제목은 '공포의 보수'라는 영화에서 따왔다고 한다. '앙리 조르주 클루조' 감독의 대표작으로 공포의 보수란 공포를 느낀 것에 대한 대가정도일까, 뭔가를 지불한다는 의미니까.(Le Salaire De La Peur, The Wages Of Fear, 1953).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는데, 어떤 말로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온다 리쿠는 본 책에서 '공포의 보수'라는 영화에 대해 충격을 주면 폭발하는 니트로글리세린을 운반하는 과정을 그린 서스펜스 영화의 명작이라고 말한다. 놀랍게도 이 한 문장만으로도 어떤 영화일지 대충 윤곽이 잡혀 보고 싶어진다. 폭발과 서스펜스! 뗄레야 땔 수 없는 관계인데, 무려 50년대에 나온 영화다. 놀랍다고 생각하는데, 영화도 많이 보지 않았고 무엇보다 50년대 영화는 본 기억도 없어서, 스스로도 뭘 놀라워 하는지 모르겠다. 그럼 이 '공포의 보수'와 온다 리쿠의 <공포의 보수 일기>와는 무슨 관련이 있는가? 온다 리쿠는 비행기를 무척이나 무서워한다. 무서워하는 걸 넘어서서 공포를 느낀다. 그런 그녀의 공포는 영화 '공포의 보수'와 닮아있다. 비행기도 돈을 지불하고 공포를 경험하는 것이 아닌가. <공포의 보수 일기>에서는 비행기에 대한 그녀의 공포와 함께 공포를 이겨내는 과정(이겨낸다기보단 견뎌낸다는 것에 가깝다)과 여행지에서 느낀 감상이 잘 드러나있다. 이야기는 크게 영국과 아일랜드 여행기와 일본 만취 기행인 두 파트로 나눠져있다. 영국에 가기 위해 생에 첫 비행에 나선 온다 리쿠의 공포와 설렘이 잘 드러나있다. 온다 리쿠 여사가 영국이나 아일랜드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나는 그 설렘이 이해가 갔다. 하지만 관심으로 일축해버리기엔 그녀가 영국와 아일랜드를 너무 좋아한다. 본 책에서도 드러나지만, 그녀의 작품 속에서도 드러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의 작품의 모티브가 된 것들을 한번씩 이야기하곤 하는데, 국내에 출간되어 읽은 작품도 미출간된 작품도 잔뜩 있어서 독자로썬 그 점도 무척이나 즐겁다. 읽어본 작품은 아아, 이런 걸 보고 이런 이야기나 나온 거구나라고 놀라면서도 작품 바탕에 깔린 분위기나 느낌의 근원을 알게 되고, 읽지 않은 작품은 이런 분위기구나, 어떤 이야기일지 기대된다는 등 앞으로 나올 출간작에 대한 흥미까지 돋군다. 또한 그녀는 자신이 글을 쓸 때의 습관과 같은 것들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하는데, 그것 역시 굉장히 흥미롭다. 뒤이어 나오는 일본 만취 기행 파트는 그야말로 맥주, 맥주, 맥주, 정말로 술에 관한 이야기만 잔뜩 하는데, 영국과 아일랜드 기행에서도 술은 빠지지 않는다. 작가에 대해선 책 표지에 적혀 있는 것 정도만 아는데 그치는 나로써는 온다 리쿠가 이렇게나 맥주를 좋아하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나는 술을 마시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나로썬 도대체 어디가 맛있는지 모르겠지만 읽다보니 우리나라 술과는 다르게 다른 나라 맥주는 맛있을지도 모른다는 환상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 나라 맥주는 맛이 없다라는 걸 어디서 본 기억이 있기도 하고. 책을 덮은 지금까지 '라거'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멤도는데(정말이지 엄청나게 많이 나온 단어다), 그건 어떤 맛일까. 궁금하다, 궁금해.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이렇게나 책 한권 내내 이야길 하면 한번쯤 먹어줘야 할 것 같은 기분까지 든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에 여행을 가게 되면, 난 이 책을 떠올리며 지역별 맥주를 맛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오키나와의 두 번이나 걸러낸 맑은 맥주를 먹어보고 싶다. 아, 정말이지 난 맥주 싫어하는 쪽에 가까운데 어느덧 난 좋아하고 있다고 세뇌된 느낌이다. 이런 상태로 가다간 앞으로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여행과 맥주가 어우러진 기행을 보고 싶으신 분이나 영국이나 아일랜드, 일본의 몇 지방에 대해서 관심 있으신 분 그리고 무엇보다 온다 리쿠의 작품을 좋아하고 즐겨 읽으시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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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은 붉은 구렁을>시리즈를 모두 읽고 나서 나는 온다 여사만큼이나 무서운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사람을 죽이고, 시체가 난무하고, 피비린내가 나는 그런 이야기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뭔가 오싹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 그것이 온다 여사가 쓰는 책의 특징이다. 별 말 아닌 것 같은데도 으스스하고, 자꾸만 책을 읽으며 뒤를 돌아보게 만들고, 그러다 결국은 방의 가장 모서리에 등을 기대고 앉아 내 시선 안에 방의 사각지대가 없도록 노력해보지만, 결국은 내 등뒤 벽에서 무언가 내 머리를 잡아 당기는 듯한 오싹함. 그런 것을 느끼게 한 소설이 바로 온다 여사의 소설이었다.
처음에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는 이제 대놓고 공포~라고 말씀하시는군! 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만 보니 에세이다. 온다 여사가 몇 년에 걸쳐서 쓴 여행일기로 비행기 타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작가가 그 공포감을 이기고 취재여행을 떠나서 얻게 되는 보수에 관한 이야기, 즉 공포의 보수, 일기이다. 사실은 나도 비행기를 타는 것이 무섭다. 극도로 싫어한다, 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탈 때마다 무섭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매번 비행기가 만약 추락한다고 기장이 말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 마지막 순간에 어떻게 하면 혹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끝에, 얼마전에는 급기야 낙하산이 얼마나 하는지 검색을 해 본 적도 있다. 비행기를 탈 때 낙하산을 하나 짊어지고 타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말이다. 비행기를 타고 어느 정도 궤도가 안정될 때까지는 두근두근한 마음을 진정시키기가 어려운데, 아마도 온다 여사는 이런 게 나보다 10배쯤 더 심했던가 보다.
그럴 만도 하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 망상이나 다름없는 황당무계한 플롯을 생각하는 족속이다. 상상하려 들면 얼마든지 최악의 상황을 그려낼 수 있다. 사고, 공중 납치, UFO의 습격, 사이코 승객, 미치광이 파일럿, 좀비, 가메라. 어쨌든 비행기는 하늘을 나는 밀실이고 운명 공동체. 푸른 하늘에 달랑 혼자 떠 있는 상태를 상상하면 등에 소름이 좍 돋는다. -중략- 더욱 무서운 것은 주위 사람들이 모두 태연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이렇게 무서운데 주위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이 그렇게 무서울 수 없었다. - p12~13
비행기는 실제로 사고가 날 확률이 자동차 사고보다도 적다는 둥, 비행기의 원리를 이해하면 무서울 것도 없다는 둥, 달나라도 가고 우주여행도 하는 시대에 비행기가 무섭다니 이 무슨 전근대적인 시츄에이션이냐며 웃을 사람도 있겠지만 무섭다는 것은 그야말로 개인적이고도 주관적인 감정이므로 누군가 그런 감정에 대해 이상하다, 그러지 마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그녀가 영국으로 떠난다. 비행기를 12시간이나 타고. 일주일 전부터 잠이 다 오지 않는다. 하루가 끝나는 마무리는 항상 맥주. 참으로 술을 많이도 맛있게도 드시는구나, 싶었는데 책 제목을 다시 한 번 보니 부제목이 영국, 아일랜드, 일본 만취기행이다. 하하하. 여사님이 참으로 유머러스하시다. 심지어 책의 마지막 부분은 기린 요코하마 비어 빌리지, 삿포로 맥주 주식회사, 오리온 맥주 나고 공장등의 견학과 시음으로 마무리 되어 있다. 그냥 글만으로도 온다 여사가 마시는 맥주가 내 목을 타고 넘어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몇 번씩이나 맥주를 마시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것도 여러나라의 여러나라 맥주를 말이다.
그중에서도 고딕 로맨스 작가 엘리자베스 보언이 아일랜드 사람이었다는데는 개인적으로 놀랐다. 나도 그 시대의 더블린에 살았다면 분명히 고딕 미스터리 작가가 됐을 것이다. 내 전생은 더블린 아니면 런던 중류 가정의 딸이고, 저 집에 이상한 딸이 있는데 기분 나쁜 소설 나부랭이를 쓴다고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렸으리라는 자신이 있다. - p 175
오늘 일정은 이로써 종료. 길가에서 우체통을 찾아 슈에이샤에 보내는 엽서를 무쳤다. 낙서투성이 우체통이 어째 서글퍼 보여 정말 일본까지 배달해줄지 불안해졌다. 결국 집배원이 수거하러 올 때까지 근처에서 망을 보고 있다가 수거하는 장면의 증거 사진까지 찍고서야 마음이 개운해졌다. -p 200
시종일관 여행지의 느낌과 함께 펍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느끼는 건물, 일본과 비교하여 비슷한 느낌을 주는 여행지등을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불안감이나 공포등과 어우러지게 그러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생각나는 책과 음악, 영화등을 다양하게 선물해주고 있어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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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의 '공포의 보수'란 단어를 보고서는 H.P. 러브크래프트의 책제목을 떠올렸다. 혹시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바탕으로 씌어진 작품인가 싶었지만, 땡! 알고 보니 하등 상관없었다. 여기에서의 공포의 보수는 1953년 제작된 이브 몽땅 주연의 이탈리아 영화에서 따온 것으로 폭발물을 운반하는 동안 겪게 되는 공포스러운 상황을 그린 영화다. 트럭이 폭발하고, 운반자는 차에 치어 사망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는 영화다 보니 나중에 왜 이 책 제목이 공포의 보수가 되었는지를 알고 나서는 피식 웃음이 났다. 뭐, 폭발물을 싣고 가는 차를 탄 것처럼 그만큼 비행기를 타는 것이 무서웠다는 뜻일테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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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되어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끈 바 있는 일본만화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남자 주인공 치아키 신이치는 뛰어난 실력 때문에 해외로부터 러브콜이 끊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비행기에 타는 것이 무섭다는 이유로 포기했다. 그런데 이거 아는가? <삼월은 붉은 구렁을>, <흑과 다의 환상>, <밤의 피크닉> 등 미스터리, SF, 판타지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소설로 국내에서도 많은 수의 팬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 작가 온다 리쿠 역시 치아키 못지 않은 비행기 공포증 환자(?)라는 것을 말이다. <공포의 보수 일기>는 온다 리쿠가 비행기 공포증에도 불구하고 영국과 아일랜드, 일본 본섬에서 떨어져 있는 오키나와까지 비행기로 여행한 이야기를 담은 (저자는) 공포스럽지만 (독자는) 유쾌하고 즐거운 여행기다. 비행기 타는 게 무서워서 마흔이 되도록 해외여행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저자답게, 이 책에는 여느 여행기에서나 볼 수 있는 여행에 대한 환상이나 로망보다는 비행기 타는 게 무섭다, 무사히 도착해서 안심이다, 도착해서도 비행기로 다시 이동하는 게 걱정이다 등등 여행 기분을 팍 죽이는 이야기 투성이다. 그런데 뭐, 누구나 나처럼 여행을 좋아하고 비행기 타는 걸 겁내지 않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이런 사람도 있구나, 이런 사람에게는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여행이라는 게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일이겠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간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점이 바로 이 책만의 매력이자 묘미가 아닐까. 저자의 비행기 공포증 말고 이 책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소재가 바로 '술'이다. 생애 첫 해외여행지로 굳이 영국과 아일랜드를 택한 이유가 작가로서 여러 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문학의 나라'에 가보고 싶기 때문인 줄 알았는데, 책을 읽다보니 그저 술을 좋아하고 술 마시는 분위기를 좋아하는 '술꾼'으로서 '펍의 나라', '맥주의 나라'에 가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저자는 엄청난 양의 술을 마셨다. 심지어는 해외에서 마신 것으로도 모자라 일본 요코하마에 있는 기린 맥주 공장, 삿포로에 있는 아사히 맥주 공장, 오키나와에 있는 오리온 맥주 공장까지 방문해서 음주를 즐겼다. (^^) 영국, 아일랜드 여행을 마치고 저자는 "이것이 '공포의 보수'일까" 라며 제법 근사한 말을 했지만, 내 생각에 저자에게 있어 '진정한 공포의 보수'는 술기운으로 공포를 이겨보겠는 핑계로 들이부었던(!) 맥주의 맛이 아니었을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