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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신비주의(=자기최면. 끌어당김의 법칙) + 자본주의에서의 물질, 성공, 돈, 실적, 승진, 명예 좇기, 자기비하와 각종 정신승리로 자기기만의 끝을 보여주는 미국사회의 맹목적, 광신적 긍정주의를 역사적인 배경과 함께 그 뿌리부터 설명한 부분이 굉장히 맘에 들었다. 극단적 자본주의 종주국이자 신자유주의 제국 미국의 이야기지만 그들의 축소판이자 싸구려 아류라 할만한 헬조선 이야기라고 해도 무방할듯한 일부 기독교들과 긍정주의자들의 사례를 들어 무비판적인 긍정주의 맹신이 사회 경제를 얼마만큼 좀먹을수 있는가 설명한다. 저자에 의하면 긍정주의가 기업의 실적강요와 해고를 합리화 시키고(오히려 발전을 위한 선물로 여기라 하며),각종 기업과 교회, 금융업체등은 자기계발서와 긍정주의 코치들을 고용해 그들의 불안과 결점을 사이비적 긍정 이데올로기로 합리화시켜 사람들의 판단력을 흐리고 자아를 파괴시키며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긍정주의가 또한 지배세력의 기득권 유지에도 지대하게 한 몫 하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도 평소에 무한긍정을 들먹이며 어떤 결과에대해 개인의 책임, 노력만 탓하는것(그가 처한 환경은 생각안하고), 사회 곳곳에 만연한 그런 사람들에 매우 혐오감을 갖고있어 꼭 맞는 책이었다. 환경과 제도 등으로 유발되는 문제들은 그 환경과 구조를 바꾸고 개선하려 노력해야지, 정신승리 해봐야 달라지는거 아무것도 없다. (부조리한 관행 또는 불의에 대한)분노와 같은 감정을 표현할땐 해야되고, 아닌건 아니라고 말할수 있어야 사람이 존재하는것이지, 억지로 그걸 숨기고 환상에 젖어 비판하고 회의할줄 모르면 그런 사람일수록 부패한 조직과 단체에 무조건적인 순응만 하는 로봇이랑 다를바없는것 같다. 잘못되고 답답한 지금의 사회구조(노동권,실업,정신병적 경쟁 등)를 지나친 긍정주의 복음으로 정당화하며 개인을 쥐어짜내는것은 소중한 한사람 한사람의 가치와 개성을 갉아먹고 많은 정상인이 환자취급되는 병적인 사회 메커니즘만 지속시킬 뿐이다. 노예에서 벗어나 비판적이고 깨어있는 개인이 사회에 많아지길 바란다. 타자의 의견을 잘 수렴하고, 현실을 파악하는 경험과 지혜의 눈을 기르는게 또한 가장 중요하다는 작가의 말에 동의하는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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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IMF 구제금융을 신청해서 온 나라가 불황의 늪으로 한없이 빠져들어가던 시절. 그당시 텔레비전과 신문에서는 "긍정의 힘"을 강조하는 기업의 광고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긍정의 힘을 믿습니다." 주로 이런 광고들을 실어낸 주체가 우리나라의 굴지의 대기업들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당시 경제가 어려워지게 된 계기가 사실 그들의 탓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과실은 쏙 빼버린채 긍정적 사고를 가질 것을 국민들에게 강요한 셈이다. 그로 인해서 경제위기를 생각보다 빨리 극복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렇다고도 하겠지만, 주체와 객체,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뀐 상태에서 현 상황을 긍정할 것을 강요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긍정의 힘을 바탕으로 한 카드회사는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라는 광고까지 히트시키며 긍정을 바닥에 깔고 소비를 긍정하라는 메세지마저 띄웠더랬다.
에런라이크는 이런 긍정이란 이름하에 행해지는 여러가지 부정적인 현상들을 날카롭게 파고 들었다. 미국과 같이 대대로 청교도적인 사고 - 작가는 칼뱅주의를 예로 들었다. -, 특히 구원에 대한 강박적인 사고방식이 미국인들을 강하게 옥죄고 있었고, 이런 데 대한 반동으로 개인들의 가치를 더 존중하는 방향으로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다가 거기서 더 나아가 - 오버를 한 셈인데 - 무서운 구원에 얽메이지 말고 무조건 긍정하면 된다는 방향으로 변해서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긍정의 힘"을 강요하는 계층은 대기업들로 대표되는 가진자들과 기존 종교가 가져야할 신성에 대한 경배는 무참히 무시하고 신도들 늘리기에 긍정을 이용하는 대형교회 목사들로 대표되고 있고, 이른바 긍정코치들은 이들의 비즈니스가 번창하는 것을 보조하고 책을 써서 팔고 강연등을 벌여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자신들의 긍정이론의 과학적 근거를 확보하고자 근거도 없는 과학이론을 끌어다가 대고, 심리학회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강화해 하나의 학문 문파로 만들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들은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지만 너 자신이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그모양 그꼴로 사는 것"이라고 하면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부자가 된다고 - 모든 긍정 이론의 끝은 부자되는 법에 있다. - 강요한다. 미국사회 전반에 긍정이 미친 부정적인 영향 - 세태를 너무 긍정적으로 낙관한 월가가 금융위기를 자초한 것 등 - 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세상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보더라도 일단 정신적 스트레스를 안 받으니 살기에는 좋을 것 같다. 그러나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사상과 사회와 기존의 권력에 대한 저항과 비판정신에 있었다. 개개인이 스스로 깨달아서 긍정의 사고를 가진다면 모를까, 결국 가진자들에 의해 의도된 긍정이라고 한다면 사람의 사상의 자유, 생각할 자유, 비판할 자유를 억누르는 좋은 수단에 불과할 것이다. 의도된 긍정, 계획된 긍정, 누군가의 부의 축적 수단으로서의 긍정. 이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세뇌에 다름 아니다. 작가는 이런 것을 경계하여야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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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 3부작이었나,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저서가. 노동의 배신, 긍정의 배신까지는 읽었고 희망의 배신도 읽어봐야겠다. 작가가 유방암에 걸려 겪게 되는 경험과 함께 사회에 낙관주의가 얼마나 팽배해 있는지 보여주는 책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게 참 많았다. 왜냐하면 나의 좌우명이랄까, 신조랄까. 그것이 일체유심조이다. 모든 것은, 모든 상황은 내 마음에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뜻으로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산다. 약간 다를수도 있지만 또 비슷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가끔 이만하면 다행이지, 라고 생각하는게 어쩌면 위험한 생각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유방암 환자들의 모임에서는 이렇게 암을 걸려서 내가 이만큼 삶의 소중함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런 경험이 감사하다는 식의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과연 이게 맞느냐는 것이다. 이정도로 생각하는건 자기기만에 가깝지 않나, 싶은 것이다. 이런식의 사고방식은 사회구조적 문제를 살피거나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을 찾는 것보다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다. 너의 태도가 문제야, 간절히 바라지 않잖아 라고 개인의 정신머리가 문제라고 해버리면 다른 모든 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노동의 배신은 읽은지 오래 되어서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작가가 작가로서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일을 거의 노동자처럼 몇년간 하고 쓴 체험에 관한 책이었는데, 그 책도 참 인상깊었던 듯 하다. 일을 하면 할수록 상황이 나아지는게 없었던 듯 한 기억이 있다. 희망의 배신도 기회가 닿으면 읽어보고 싶다. |
| 자기 계발서와 힐링 서적이 시중 서점을 점령한 시대다. 베스트셀러 순위 목록은 항상 이런 서적들로 빼곡하다. 무한한 긍정의 불어 넣기와 불어진 긍정이 제 기능을 못해 상처를 입혀 힐링하려는 시대다. 저자는 이런 시대를 다양한 사례를 들어 매스를 댄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긍정이 상품가치가 높다는 것. 긍정 시장이 돈이 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차치하더라도 믿는 대로 될지어다, 이런 생각은 대단히 무모하고 위험하다. 오히려 비관주의자가 인생에선 유리하다. 나치 만행속에서도 비관주의자의 생존력이 높았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난 후 찾아오는 위안과 안식이 있다. 반면 모든 것을 긍정하다 추락의 낙차를 고스란히 실감하는 경우도 많다. 현실적 비관주의가 필요한 시대에 어울리는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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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 대한 의문 해소,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전영미옮김, 출판사는 부.키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했다는 기사에 붙은 사진은 회사에서 해고된 직장인이 사물을 담은 박스를 들고 회사문을 나서는 쓸쓸함이 가득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1997년 IMF 외환위기사태를 겪을 때의 고통이 생각났습니다. 급여에 맞춰 생활하던 동료들은 너도나도 가진 예금과 보험을 해약하여 생활비에 보탰습니다. 갑자기 아이들의 학원을 끊을 수도 없고, 생활 규모를 하루아침에 줄일 수도 없었습니다. 예상되었던 수입이 주는 것은 그래도 다행이었습니다. 곧이어 해고의 칼이 춤을 추었습니다. 본사 인사부가 휘두르던 칼은 각 부서의 임원에게 주어졌습니다. 각 부서가 정해서 감원 대상자를 인사부로 통보하라는 방식으로 변경한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권한에 힘겨워하는 임원이 있는가 하면, 쥔 칼로 위협하며 권한을 자랑하던 꼴사나운 임원도 있었습니다.
꼴 사나운 임원을 만나는 것은 운입니다. 그런 사람과 같이 일하는 것은 불운입니다. 하루하루 힘겨운 회사 생활 중 만난 책이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였습니다. 회사에서 밀려나는 것은 바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버틸까를 생각하던 것이 일상이었는데, 갑자기 책의 내용이 내 머리를 때렸습니다. 한 번 읽고는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내가 회사를 먼저 그만두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하루하루 쌓이는 스트레스와 불만족스러운 건강상태, 쥐꼬리 만한 월급, 전망 없는 미래 등등 내가 그만 둘 이유는 차고 넘쳤습니다. 저는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따로 사업을 하려던 생각은 아내의 만류로 재취업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새로운 직장에서 또 15년의 세월을 보내고 이번에는 마음 편하게 회사의 정리 해고를 받아들였습니다. 내가 사표를 쓰는 것보다는 회사가 정리를 해주는 게 협상을 통하여 퇴직금의 추가와 고용보험자격 취득에 유리한 것도 있었지만, 이제는 어딜 가든 살아갈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는 나의 직장생활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한 책입니다.
그런데 한명숙 전 총리가 이 책을 비판한 글을 읽었습니다. 왜? 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한 전 총리는 다른 생각을 하는가 보다 생각하고는 잊었는데,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을 읽으면서 왜 한 전 총리가 비판을 했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해고되어도 불평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베스트셀러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같은 자기계발서” “급격히 성장하는 분야인 경제 자기계발서들도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다운사이징에 적응하도록 일조한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는 1000만 부가 팔렸는데 기업에서 뭉텅이로 사서 직원들에게 나눠 준 것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지나치게 분석하고 불평하는 인간의 위험천만한 속성을 극복하고 쥐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 직장에서 쫓겨나면 조용히 입 다물고 나와서 다른 일자리를 찾아 재빨리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이 정리 해고 희생자들에게 주는 교훈이다.”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책에 대한 주장입니다. 책이 나온 배경이나, 책이 주장하는 내용을 사전 지식도 없이 읽고는 제가 취한 행동들이 그나마 종전보다 나은 결론을 얻으므로 해서 생긴 무지였습니다. 해고되어도 재빨리 돌아다녀라는 충고를 내가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하겠다는 충고로 이해한 택이지요.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은 낙관주의가 기업과 교회, 심리학에 깊이 뿌리내려 산업화된 과정과 그 결과들이 미국 사회에 끼친 악영향을 설명하는 책입니다. 마음속 깊이 낙관하는 전망을 뚜렷이 새기면 마음대로 이루어진다는 망상을 이용하여 사회의 책임, 기업의 책임, 이웃의 책임은 면피되고, 각 개인의 흥망성쇠는 오직 자기의 태도에 따라 결정되므로 누구도 원망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고착시켰다고 비판합니다. 그녀는(유방암에 걸린 전력이 있으므로 여성이 분명합니다. 전 사실 어떤 경우에는 작가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구별 않고 책을 읽기도 합니다.) 결론을 이렇게 맺습니다. 인용하면서 글을 끝냅니다.
“ 부유하고, 성공을 거두고, 충분히 사랑받은 사람이라고 행복이 당연히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행복한 환경이 필연적으로 행복이라는 결과를 낳지 않는다고 해서 생각과 감정을 교정하는 내면으로의 여정을 통해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직면한 위협은 현실적이며, 자기 몰입에서 벗어나 세상 속에서 행동을 취해야만 없앨 수 있다. 제방을 쌓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고, 치료제를 찾아내고, 긴급 구조 요원들을 강화하자! 이 모든 것을 다 잘 해낼 수는 없으며 어쩌면 한 가지도 제대로 해내기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행복해지는 내 나름의 ‘비법’을 공개하며 이 책을 맺으려 한다. 우리는 그것들을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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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되는 느낌을 주는 두 단어가 제목에 함께 쓰였다. '긍정'과 '배신'. 무한한 에너지를 줄 것 같은 단어 긍정이 어떻게 배신하고 같이 사용됐을까 궁금해서 이 책을 읽게 됐다. 책의 내용은 긍정에 대한 우리의 광범위한 믿음이 종교, 자기계발서, 동기 유발 카운슬러 등과 같은 산업 그리고 자본주의와 어떻게 결합해서 확장됐는지 그 실태와 부작용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저자가 주장하고 있는 긍정은 단순히 마음가짐이 아니라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변질된 긍정이다. 긍정의 힘! 간단명료한 이 명제에 여러 산업이 쇠사슬처럼 얽혀 있다고? 그리고 긍정에 부작용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일단 내 상식을 벗어난 얘기라 흥미로웠다. 먼저 저자가 이 책<긍정의 배신>을 쓰게 된 계기는 유방암이라는 판정을 받고 긴 투병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부터다. 저자는 유방암 투병을 하면서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압력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암과 그것을 대하는 태도를 둘러싸고 이해할 수 없는 문화가 눈에 보여서 긍정을 주제로 책을 쓰게 됐다는 것이다. 암은 축복이다, 치료가 끝나서 아쉽다, 암은 나를 강하게 한다, 살아 있다는 기쁨에 눈뜨기 위해 내게는 유방암이 필요했다 등의 긍정적인 사고는 암을 일종의 통과의례로 만들었고 분노와 공포라는 실체적 감정을 애써 무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사실 여기까지만 읽고 나는 이게 그렇게 나쁜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힘든데 애써 무거운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 건지 저자에 생각에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실제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잘 모르는 법, 저자가 설명하는 유방암 환자들의 마음 상태에 대해 읽어보니 이런 분위기가 오히려 환자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저자의 생각이 이해가 됐다. 긍정적인 사고가 나쁘다는 게 책의 요지는 아니다. 긍정적인 사고를 신격화한 나머지 이 긍정이부주의한 낙관주의로 번지는 것을 경계하자는 것이 책의 요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미국의 9.11 테러, 2008년 미 금융위기 등 크나큰 위기를 경고하는 부정적인 시그널들이 있었지만 부주의한 낙관주의로 인해 이들 메시지들이 크게 주목받지 못했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사실 이 모든 것을 부주의한 낙관주의로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한 것 같다. 밝은 미래에 대한 무작정적인 믿음, 무비판적인 사고는 화를 부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