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절된 삶에서의 무료한 일상을 보내는 뫼르소가 엄마의 부고 소식을 전하는 한통의 편지를 양로원으로부터 받으며 <이방인>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 뫼르소는 감정선의 일부가 침몰된 것처럼 암마의 부고 소식에도 여느때와 다름 없이 담담하기만 했다. 언젠가는 떠날 것을 알았기에 그것이 슬프지만은 않았다는 뫼르소는 그러나 후일 판사의 물음에 슬픔대신 그리움으로 답한다. . 양로원에서 치뤄진 장례식에서 뫼르소는 당장 엄마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보다도 부족했던 잠이 그리웠고 따뜻한 밀크 커피 한 잔이 생각 났으며 담배 한 개피가 절실 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엄마의 곁에서 양로원 사람과 함께 밀크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한 개피 물었으며 슬며시 잠들었지만 결코 눈물이 흐르진 않았다. . 다음날 뫼르소는 ‘그날의 태양’을 떠올리며 바다를 거닐다 오래전 함께 일하며 마음에 두었던 그녀, 마리와 우연히 재회하게 되고 젊은 날의 뜨거운 만남은 이야기 속에서의 우연을 가장한, 어쩌면 필연으로 다가온 인연으로 발전하게 된다. 마리는 늘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확인하려 하지만 뫼르소에게 사랑 같은건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 ‘아마 사랑하지는 않는것 같다.’ 라는 말로 답한다. 반대로 결혼에 대한 물음에는 ‘좋아.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 이라는 말로 화답한다. . <이방인>은 청년 뫼르소가 무심함 속에 엄마를 보내고, 무심함 속에 사랑을 이루며, 그런 무심함으로 일관된 삶 속에서 친구 레몽으로부터 휘말린 작은 사건으로 인해 살인범이 되는 과정을 1부에서 그리고 있다. 뫼르소가 살인범이 되어가는 과정 같은 것은 중요치 않다. 어쩌면 그 이유나 원인도 중요치 않다. 그것은 분노도, 슬픔도, 위협도, 두려움도 아니었다. 어쩌면 뫼르소의 말처럼 ‘이 모든 것이 그날의 태양 때문’일지도 모른다. . <이방인>의 2부에서는 사건 이후, 재판 과정과 형무소에 갇힌 뫼르소의 이야기를 다룬다. 여전히 담담한 뫼르소는 재판 과정 내내 일반인이라면 도저히 불가능했을 수심의 평화를 누린지도 모른다. 그는 일상에서 느끼던 무료함이나 형무소에서 느끼는 무료함의 차이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니 어쩌면 그에겐 자유를 빼앗긴다는 의미보다 그저 정욕을 불러일으키는 여성의 몸을 마주할 수 없었고 담배를 입에 물 수 없었다는 것이 더 문제 였을지도 모른다. . 엔딩에 다다를 때까지 타인에게도 또한 자신에게도 덤덤했으며 무관심했던 뫼르소가 마지막 순간에 폭주하는 장면을 수없이 읽으며, 읽을 때마다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 것만 보아도 알베르 까뮈가 문학의 정점에 올랐다는 평에 수긍이 간다. . 사람들은 때론 ‘불편한 관심’ 보다 ‘편안한 단절’을 원하기도 한다. 어쩌면 뫼르소는 우리보다 조금 더 많이 ‘ 편안한 단절’을 원해 왔던 것은 아닐까. 내가 지속적으로 <이방인>을 읽는 이유는 바로 뫼르소의 감정선에 공감하는 바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나의 감정 말이다. 십년 전 아버지의 장례식이 그랬다. <이방인>에서의 그 날처럼, 나는 여전히 피곤했고, 허기가 졌으며, 그리움은 있으나 슬픔은 없었다.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 흘릴 수 없었던 -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이 매우 불편했던 기억이 여전히 가시질 않는다. . ‘편안한 단절’을 원했을지 모를 뫼르소는 보통의 사람들에 비해 말수가 많이 적은 편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흔히 내성적이라 표현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들은 입을 다물었을 뿐,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때론 나 역시 입을 다뭄으로서 가장 많은 말을 할 때가 있기에 어쩌면 내게 <이방인>이란 작품, 그리고 뫼르소는 온전히 나를 나일 수 있게 하는 문학이다. .
그럴리 없겠지만, 만약 글을 모른다면 글을 배워서라도 반드시 만나야할 문학이다. 완독이 아니라 재독에 삼독에 사독을 해도 그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문학이며, 거듭할수록 더욱 더 재미있고 깊이 있게 다가오는 문학이 아닌가 생각한다. |
|
왜 늘 명작은 비슷할까? 쓸데없는 주절거림 이런저런 생각들... 담배, 술... 명작들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들 비슷하다. 이방인이나 호밀밭 파수꾼... 폴 오스터, 하루키 등등... 예전이나 지금이나 무심한듯 담배하나 물고 세상을 조롱하는듯 또는 관심없다는 듯... 글쎄 자세히 보면 틀리겠지만 이방인의 주인공이 하루키 소설이나 폴 오스터 소설 속에 등장한다고 해도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못할것이다. 분명 다르다고 하겠지만... 내 감수성 문제일지도... |
|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라는 충격적인 첫 문장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 뫼르소는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보겠냐는 원장의 제안도 거절하고, 눈물을 흘리는 등의 슬픈 기색도 없이 장례를 치르고 나온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에서는 이제 드러누워 열두 시간 동안 실컷 잠잘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뻐하며, 바로 다음날엔 바다로 해수욕을 하러 가고 영화를 보고 전 직장 동료 마리와 함께 밤을 보내기도 한다. 무심하달까 기이하달까 그의 행동은 쉽게 이해할 수가 없다.
엄마의 죽음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그의 무던함은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파리 출장소에서 일할 의향을 묻는 사장에게 '어떤 생활이든지 다 그게 그거고, 또 이곳에서의 내 생활에 조금도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라고 말하기도 하며, 자신과 결혼할 마음이 있느냐고 묻는 마리에게는 '나는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마리가 원한다면, 그래도 좋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상당히 비상식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그는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는 거짓말을 거부한다. 있지 않은 것을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실제로 있는 것 이상,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도 거부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그가 무던해 보이는지 모르겠다. 그는 자신만의 기준에 따라 살아가며 관례대로의 공식을 따르기를 거부하는 인물이라 볼 수 있다.
어느 날 뫼르소는 한 아파트 살며 친해진 레몽과 함께 해변으로 놀러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그는 뜨거운 햇볕과 아랍인의 칼에 반사된 강렬한 빛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겨 살인을 하게 된다. 그는 체포되고 여러 번의 심문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그는 감정의 은폐 없이 자기가 느낀 그대로를 너무나도 솔직하게 말했기 때문에 판결은 결국 자신에게 불리한 쪽으로 흘러가고 만다. 법정은 공식적 사회의 연극 무대이며 사람들은 그에게 관례대로 공식에 따라 스스로 죄를 뉘우쳤다고 말하기를 요구하지만 그는 그 연극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판장, 검사, 변호사 그 누구도 피해자인 아랍인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가 아랍인을 죽였다'라는 사실보다도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그의 행실'이 죄의 무게를 늘려 그는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
죽음으로 끌려갈 순간만을 기다리는 뫼르소의 감방에 신부가 찾아온다. 그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신부의 말에 뫼르소의 내부에서는 무언가가 터져버린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시종일관 무덤덤한 태도로 일관하던 뫼르소는 마지막 대목에 와서 긴 문장으로 그가 가진 죽음에 대한 확신을 토해낸다.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 사람들이 선택하는 운명, 그런 것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직 죽음이라는 하나의 숙명만이 존재할 뿐이다. 커다란 분노는 그의 고뇌를 씻고 희망을 가시게 한다. 그는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마침내 행복을 느끼며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외로움을 덜 느낄 수 있도록 자신이 처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이 증오의 함성으로 자신을 맞아 주길 바랄 뿐이다.
전 생애 동안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죽음의 바람이 불어온다면, 모든 가능성들은 서로 아무런 차이가 없어지고 모든 게 죽음으로 이어진다면, 그렇기에 우리는 죽음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형수가 되어서야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사람들처럼, 사실은 모두 사형수인 우리들도 죽음으로써 사라져버릴 한 번뿐인 짧은 생애에 더욱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
|
감정이란 지극히 주관적이다. '슬픔'도 내 감정이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당연한데 당연하지 않은게 현실이다. 문화권 마다 다르겠지만 어렸을 적 혹은 부모가 되어서 "눈물 뚝!"이란 말을 들어봤거나 해봤을 것이다. 슬픔은 때로는 제지 당하고 때로는 강요당한다. 슬픔 뿐 아니라 모든 감정들은 사회적이다. 공동체 안에서 감정을 사회화하지 않는다면 필연적으로 '이방인'이 된다. 그래서 첫 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가 파격적인 문장이 되어 뇌리에 박히게 된거다. 알제에서 평범하고 서민적인 회사원으로 무채색의 삶을 사는 1부와 어느 바닷가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는 2부는 흡사 딴 얘기 같다. 읽기 전 너무나도 많이 들어서 살인을 하게 된다는 것은 알았다. 그런데 읽으면서 어느 시점에 왜 누구를 살해 하는 것일까? 계속 물음표를 달면서 읽었다. 그런데 이야기의 흐름상 왜?누구를?은 그다지 중요한 서사가 아니었다. 2부의 재판과 감옥 이야기가 작가가 하고자 하던 포인트였다. 흡사 비스킷처럼 바삭바삭 건조한 삶을 살았던 뫼르소였다. 사장이 파리에 사무실을 열어 그곳으로 보내주겠다고 하는데도, 거절한다. "나는 , 삶이란 결코 달라지는 게 아니며, 어쨌건 모든 삶이 다 그게 그거고, 또 나로서는 이곳에서의 삶에 전혀 불만이 없다고 대답했다."p.57 그런데 2부에서 재판을 받고 판결 후에는 오히려 생기가 나고 살아있는 것 같았다. 아이러니한 대조라 할 수 있다. "나는 내가 대낮의 균형과 ,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었던 어느 바닷가의 그 특별한 침묵을 깨뜨려 버렸다는 것을 꺠달았다. "p.77 그렇게 특별한 침묵이 깨지고 시끄러운 클럽에 입장하게 된다. 뫼르소가 재판장을 묘사하는 장면은 코미디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마치 같은 세계의 사람들끼리 서로 만나서 즐거워하는 어떤 클럽에라도 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남아도는 존재라는, 좀 불청객 같다는 기묘한 느낌 또한 납득이 되었다. "p.104 재판장에서 뫼르소는 소외감을 느끼고 자신의 의지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고 느낀다. 자신이 하는 말은 그들의 언어로 각색되어지고 자신이 처했던 상황들은 그들의 가치관과 제도, 의식으로 새롭게 설정된다. 그리고 그의 삶의 끝을 정해 버린다. "나는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게 된 어떤 삶, 그러나 나로 하여금 가장 초라하지만 가장 끈질긴 기쁨을 맛보게 했던 어떤 삶에의 추억에 휩싸였다. 여름의 냄새들, 내가 좋아하던 거리, 어느 저녁 하늘, 마리의 웃음과 옷, 그러자 내가 지금 여기서 하고 있는 그 모든 무용한 집이 목구멍까지 치밀고 올라와 숨이 막혔다. "p.128 울어야 할 때, 웃어야 할 때를 누군가 정할 수 있을까? |
|
[이방인 / 알베르 카뮈] 알베르 카뮈 <이방인>. 이 책을 읽은 아주 소박한 리뷰를 말하자면. 이 책을 읽는 내내 등장인물들의 대비되는 색감을 느꼈습니다. 먼저 양로원 원장, 장례식을 주관한 사제, 감옥에서 만난 사제, 그리고 판결 검사의 어두운 색감. (마치 이들의 이미지는 ‘모모’에 나오는 회색 신사 같았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회적, 인습적, 종교적 관습 속에 살아가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자신이 믿는 신념 속에 사는 자들이며, 자신의 실존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확률이 높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신념으로 타인을 정죄하며, 재단할 수 있는 폭력성을 갖고있는 자들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관습에 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솔직한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리고 뫼르소 곁에는 소설 처음부터 끝까지 강렬한 태양의 색감이 늘 따라 답니다. 그 태양은 바로 매 순간 나의 실존을 의식하며 살아가길 바라는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요? 다시 한번 이 책을 꼼꼼히 읽고 싶어지네요.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사형을 앞둔 뫼르소가 별을 바라보며 했던 말, 그리고 엄마를 회상하며 했던 말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나는 기진맥진해서 침상에 몸을 던졌다. 그러고는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눈을 뜨자 얼굴 위로 별들이 쏟아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들판의 소리들이 나에게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밤 냄새, 흙냄새, 소금 냄새가 내 관자놀이를 시원하게 식혀 주었다. 잠든 그 여름의 그 신기로운 평화가 밀물처럼 내 속으로 흘러들었다. 그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것은 이제 나와는 영원히 관계가 없게 된 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P.147)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가 왜 한 생애가 다 끝나 갈 때 ‘약혼자’를 만들어 가졌는지, 왜 다시 시작해 보는 놀음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 뭇 생명들이 꺼져 가는 그 양로원 근처 거기에서도, 저녁은 우수가 깃든 휴식 시간 같았다.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에 그곳에서 엄마는 마침내 해방되어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아무도,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다시 씻어 주고 희망을 비워 버리기라도 했다는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이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그토록 나와 닮아서 마침내 그토록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닫자,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외로움을 덜 느낄 수 있도록, 내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처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p.147-148) |
|
알베르카뮈 이방인 읽은지는 꽤 됐는데 이제서야 리뷰를 쓰네요 ㅜㅜ 재미있습니다! 여운도 오래 남구요. 페스트 읽기 전에 먼저 읽었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괜히 유명한게 아닌 것 같아요. 내용이 그리 긴편은 아니라 금방 읽을 수 있습니다. 책의 절반 정도는 작품 해설이라 내용 자체는 정말 얼마 안돼요 하루에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입니다. 첫 문장이 가장 기억에 오래 남네요.. 내년쯤 다시 한번 읽어볼 생각입니다 추천드립니다! |
|
주인공 뫼르소는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말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어떻게 보면 매우 정직하고 솔직한 사람이다. 그렇다 보니 뫼르소는 이 사회에서 남들과는 다른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설사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그런 척'을 할 수도 있지만, 뫼르소는 결코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를 비정상으로 여기는 사법기관의 사람들은 자기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진실된 뫼르소의 모습을 외면하고, 자신만의 논리를 피력한다. 뫼르소는 내리쬐는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는데도 그 누구도 그의 말을 듣지 않고, 그가 했던 행동을 일종의 악마의 편집을 통해 평소에 무신론자이며 소시오패스적인 면모가 있어서 살인을 저지른 것이라고 단정지어 버린다. 언제나 진실을 추구해야 할 사법기관은 진실을 외면하고, 범죄자이자 악인인 주인공이 진실만을 말한다는 아이러니를 통해 우리 사회의 부조리함을 엿볼 수 있었다.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이 가진 의미에 대해 처음에는 남의 일처럼 무감각했으나, 자신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진 후 어머니의 마지막 삶과 죽음을 되돌아보니, 180도 다른 감정으로 느끼게 된다. 그리고 삶에 대해서도 모든 일에 변화도 싫고 야망도 없이 시큰둥하기만 했던 뫼르소는 죽음을 앞둔 어머니가 열렬하게 사랑을 했던 것처럼 삶의 빛나는 순간을 이제서야 깨닫고, 죽음의 두려움도 떨쳐낼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죽음을 피부로 느껴보기 전까지는 진정한 삶의 기쁨과 가치를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젊었을 때일수록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의 빛나는 면모보다 허망함과 어두운 면에만 집중하다 보니, 사는 것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고 죽음이나 자살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그게 내일이 될 수도 있고 수십 년 후일 수도 있다. 어차피 죽을 건데 이렇게 열심히 살 필요가 있나 체념하기보다는, 역으로 삶의 끝이 죽음뿐이라면 한 번 사는 인생 치열하게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
|
짧고 강렬한 소설이다. 뫼르소 라는 청년은 우연한 계기로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이전에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배심원들에 의해 선처를 받지 못하고 사형에 이르게 된다. 뫼르소는 자신을 이방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거짓으로 저항하지 않고 순응한다. 사실, 이 책이 너무 유명해서 호기심에 읽은 것인데 나에게는 조금 어렵긴 했다. 이 소설을 읽고나서 남는 생각은.. 남들이 뭐라하던 거짓으로 포장하지 말고 나대로 밀고 나가는 인생의 태도, 그리고 지중해의 강렬한 햇살. 미세먼지 가득한 한국에서 살다보니 깨끗하고 강렬한 그 태양 빛은 어떤 색깔일까,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다. 그런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언젠가 한번쯤은 이방인이 될 수도 있겠다.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때 자신을 옥죄어오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다면 어떨까? 그럴때 뫼르소를 생각하자. 거짓 저항 보다 자신의 진실을 택하는 뫼르소를.. |
|
첫문장은 진짜... 대박인 것 같다 길이길이 남을듯. 알베르 카뮈가 너무너무 궁금했는데 이방인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다. 뭔가 별내용 없는 것 같은데 흥미진진함... 재밌음... 범죄자는 맞는데 읽다보면 내가 주인공을 응원하고 있다. 이거 읽고 나서 다른 알베르 카뮈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아주아주 커졌다. 아 그리고 표지 너무 멋있음ㅋㅋㅋㅋㅋㅋ 작가님 인생 사진이신듯^^ |
| 본편보다 해석이 더 재밌었던 책이에요. 고전명작이라는 이유로 참고봤는데 졸았던 게 세번정도네요. 뫼르소가 너무 담담하게 모든 걸 묘사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해요. 내용으로 봤을 땐 결코 잔잔물은 아닌것같지만요. 제가 한국문학들을 좋아해서 잘 안맞았나 싶기도하고 빌려보고 살지말지 결정할 걸 좀 후회됩니다...실존주의와 연관해서 해석해보는 건 재미있었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