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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소개서를 여러 권 읽었다. 박상진 교수님의 『궁궐의 우리 나무』(눌와, 2010년 개정판), 고규홍 선생의 『절집나무』(들녘, 2004년), 강판권 교수의 『나무열전』(글항아리, 2007년), 남효창 선생의 『나무와 숲』(한길사, 2013년 개정판)이 그 목록이다. 특히 박상진 교수님과는 철 따라 4대 궁궐 나무 답사를 하기도 했다. 교수님한테 많은 것을 배웠다. 이렇듯 지금까지 내가 공부한 나무는 학자들의 나무에 대한 열정과 애정의 소산을 통해서였다. 그런데 이 책은 나무에 대한 접근이 이전 책들과 다르다. 고주환 선생에게 나무는 학문 대상이 아니라 일상이고 생활이며 삶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우리의 농경문화 속에서 민초의 삶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풀과 나무를 그 민초의 생활 속 눈높이로 바라본 이야기에 비중을 두었음을 강조하고 싶다. 풀과 나무의 기본적인 프로필을 창으로 그 종種의 두드러지는 시대상을 그렸고, 거기에 보태어 내 유년 시절의 요람기를 펼쳐보기도 했고, 궁색한 시대를 살았던 부모님의 삶의 일부를 언뜻 들여다보기도 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풀과 나무와 더불어 생활 속에서 교감하는 장면을 그리기도 했다. (「책머리에」, 6쪽) 나무에 대한 선생의 이러한 접근은 이력을 살펴보면 자연스럽다. 선생은 치악산 끝자락의 성황림마을에서 대를 이어 농사를 지으며 목수 일을 겸하던 부모님의 늦둥이로 태어났다. 성황림은 1963년에 천연기념물 제93호로 지정되었다. 평지에는 자생하기 힘든 고산종의 활엽고목들로 이루어진 숲이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숲에 신이 산다고 믿으며 마을 이름도 신림(神林)이라 짓고 숲을 보호했다.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가꾸었다. 숲이 잘 보존되어 있는 성황림에서 태어나 목수 아버지 밑에서 자란 것이다. 게다가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쉬는 날이면 가족을 데리고 성황림마을로 달려간 게 전부라고 하니 선생에게 나무는 일상이고 생활이며 삶 자체라고 아니 얘기할 수 있다. 선생은 아버지가 대나무 대신 구릿대로 만들었던 퉁소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선생의 아버지는 퉁소로 구곡간장을 녹일 듯 애끓는 가락을 연주하고는 했다. 아버지가 연주하는 곡은 늘 예닐곱 소절 되는 것이었는데, 과부가 수절하다가 죽어서 낭군을 만난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곡이라고 했다. 그 곡을 듣고 있노라면 어린 나이에도 애잔한 슬픔이 느껴지고는 했다. 그러한 아버지가 선생이 고등학교에 들어가던 해의 여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농사꾼에서 대장장이로, 목수로 살면서도 구릿대 퉁소를 멋지게 불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책의 첫머리에 담은 것이다. 이와 같이 선생은 나무와 풀을 소개하면서 아버지 삶이나 어머니 삶, 그리고 이웃의 삶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어린 시절 동무들과 현재의 자신을 이야기한다. 아버지 어머니 같은 민초들과 함께한 성황림의 나무와 풀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선생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나무에 대한 살아있는 지식과 어머니나 이웃 어른, 그리고 자신의 경험으로 얻은 나무와 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때로는 옛날 서적이나 그림을 뒤적여 참고하기도 하고, 대중가요나 동요까지 동원하여 이야기한다. 민초의 삶과 함께한 나무와 풀의 생활사적 기록인 것이다. 선생이 악동처럼 살았던 당대의 놀이와 풍습을 들려주거나 자신이 꾸린 가족들과 있었던 소소한 일상을 들려주는 것은 읽는 재미를 보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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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가이상. 땅에 오징어 모양의 긋고 편을 나누어 하는 놀이. 가이상은 가이센의 일본어 파생어로 會戰을 뜻한다. 우리말로는 오징어 달구지 오얏은 복숭아 크기로 개량된 자주색 과실인 자두(紫桃)보다는 크기도 작고 맛도 차이가 난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우표나 창덕궁 인정전의 용마루에도 그려져 이씨 황실의 문양으로 쓰였다. 흔히 배꽃으로 알고 있는 이화장(이승만의 대통령 사저)이나 고종이 하사했다는 이화학당의 이름 역시 애초에는 오얏(李)에서 발음이 같은 배나무(梨)로 바뀐 것이라 하니, 허울 뿐이던 황제국의 상징조차 얿ㅅ애려 했던 일제의 행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질경이는 한자 이름으로 차전초(車前草)로도 불린다. 어원은 단단하고 질긴 풀의 특성에서 기인한다는 견해도 있으나, 지방을 불문하고 대부분의 옛 어른들이 부르는 이름 ‘질개이’에서 찾아야 할 듯 싶다. ‘질’은 ‘길’과 어원을 같이하는 말로 ‘질이 나다’와 ‘길이 들다’ 칡은 콩과 식물의 여느 꽃처럼 주머니 모양의 꽃이 지고 나면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부실한 콩꼬투리 모양의 열매를 맺는다. 박달나무가 역사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계기는 조선시대에 본격적으로 실시된 호패법 때문이다. 호패의 재질로서 가장 적합해 박물관 등에 유물로 많이 남아 있다. 어떤 학자의 한마디 말에 수천 년 이어져온 이 땅에 자생하는 헛개나무 군락은 초토화되었고 뒤이어 벌나무와 꾸지뽕나무 또한 같은 처지가 되고 말았다. 시청률을 의식해 방송 소재에 목말라 하던 매스컴까지 가세한 호들갑은 전란의 포화 속에도 목숨을 부지한 이 땅의 고로쇠나무 노거수에까지 일제히 옆구리에 구멍이 뚫린 채 비닐호수가 끼워지게 되었다. 쌀은 입맛에 감기는 그 포슬포슬함만큼이나 손이 많이 가야 얻을 수 있는 곡식이기도 하다. 한자어 米의 파자 역시 여덟을 두 개 합친 八十八을 의미해 손이 그만큼 많이 감을 뜻한다. 당시로서는 인간의 목숨이 도달하기 어려운 88세를 미수(米壽)라 한 것만 보아도 쌀을 얼마나 존귀하게 생각했던가를 알 수 있다. 수수쌀을 씻는 줄은 번연히나 알면서 무슨 쌀을 씻느냐고 왜 또 묻나 – 정선 아라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