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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타에 반해 선택한 영화. 쇼는 음악을 하고자 고향을 떠나 도쿄로 왔으나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하루하루 별볼일 없이 살아간다. 다시 시작라고 싶지만 용기도 열정도 없다. 지루한 하루하루를 그냥 살아간다. 30년전에 증발한 고모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올라왔다고 한다. 그리고 쇼에게 고모의 집 정리를 부탁한다. 고모 즉 마키코의 집을 정리하면서 쇼는 처음으로 알게 된 존재인 고모의 삶을 알게 된다. 쓰레기로 채워진 고모의 집. 발견한 한 장의 사진. 정말 웃긴 모습으로 찍은 사진. 쇼는 마츠코가 계속 궁금해진다. 조금씩 알게 되는 마츠코의 일생. 몸이 허약해 항상 침대에만 있는 동생. 아픈 동생을 안쓰럽게 여겨 동생만을 사랑하는 아빠. 항상 혼자라고 느끼는 마츠코는 동생이 부럽고 아버지의 사랑을 바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데려간 백화점. 그곳에서 웃지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 아버지가 안쓰러워 웃게 해드리고 싶어 어린 마츠코는 아버지를 위해 항상 웃긴 표정을 짓는다. 마츠코는 항상 사랑을 갈구하고 외롭다. 그리고 선택에 있어서도 극단적이다. 마츠코는 항상 사랑받고자 했을 뿐이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사랑을 주었다. 자신을 때린 남자에게도 자신을 이용한 남자에게도. 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오는 건 항상 상처일 뿐이다. 언제나 그렇듯 상처후 마츠코의 선택은 극단적이다. 그래서 매춘도 살인도 자살시도도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타인에게 사랑을 갈구한 만큼 자신을 사랑했다면 마츠코의 일생을 행복했을 것이다. 그것을 항상 깨닫지만 상처 속에 잊어버리고 만다. 어릴 땐 누구나 자신의 미래가 밝을 줄 알아 하지만 어른이 되면 자기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고 괴롭고, 한심하고, 열 받고... 쇼는 마츠코의 삶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삶을 다시 보게 된다. 꿈을 향해 달려왔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을 것 같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지금. 마츠코를 통해 쇼는 무엇을 보고자 한다. 지금이 끝이 아니라,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는 자신을 보길 원한다. 그러면서 자연히 쇼는 마츠코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천국에 있는 마츠코의 가족이 되어준다. 고모를 보고 류는 신이라고 했다. 마지막까지 무엇 하나 똑똑하지 못했고 철저하게 불행했던 사람에게 신이라니.... 난 신에 대해 알지 못한다. 생각한 적도 없다. 하지만 만약에.. 이 세상에 신이 있어서 고모처럼 사람들을 웃게 하고 힘을 북돋워 주고 사람을 사랑하고 하지만 자신은 너덜너덜하게 상처입고 고독하고 패션 감각은 꽝이고 그렇게 철저하게 촌스러운 사람이라면 나는 그 신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츠코는 쇼에게도 류에게도 메구미에게도 사랑을 주었다. “인간의 가치란 누군가에게 뭘 받았냐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뭘 해줬냐는 거겠지.” 쇼의 여자친구가 우즈메키스탄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말처럼. 마츠코는 정말 가치있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리고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본인은 너무 늦게 깨달았지만 말이다. 영화의 제목이 왜 혐오스런 마츠코인지 난 끝까지 이해하지 못하였다. 사랑을 받고자 했고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마츠코의 삶은 아름다웠다. 정말 다음 생에는 자신을 더 사랑할줄 아는 마츠코로 태어났으면 좋겠다. 마츠코가 혼자라고 생각이 들 때마다 나왔던 노래가.. 한동안 머릿속에 계속 남을 것 같다. 마츠코가 마지막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나 역시 행복했다. 구부렸다. 몸을 쫙 펴서 별님을 잡아보자. 구부렸다. 몸을 쫙 펴서 하늘에 닿아보자. 조그맣게 웅크려 바람과 얘길 하자 몸을 크게 펴서 햇빛을 느껴보자 모두들 안녕 내일 또 보자 구부렸다. 몸을 쫙 펴서 배가 고프면 돌아가자 노래를 부르면서 집으로 돌아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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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이지만 많이 울었네요. 정말 눈물이 주륵주륵 떨어지더군요. 원래 울음을 잘안흘리는 편인데 마츠코의 상황이 너무 불쌍 하더군요.
특이한 거는 영화가 울다가 바로 웃게 되고 웃다가 바로 을게되는거 같아요. 영상도 너무 아름답고 저에게는 일본영화중 손꼽히는 작품이 될거같아요. 아무튼 그냥 지나갔으면 정말 후회할뻔한 영화네요. 만약 못보신 분들은 꼭 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네요. 입술은 웃음짓고 있고 눈에는 눈물이 나오는 경험을 하실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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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嫌われ松子の一生 : Memories Of Matsuko, 2006 어느 날 곁님이 문득 말한다. “〈마츠코〉 봤어요?” 나는 한 마디로 말한다. “아니.” “그럼 봐요. 당신이 무척 좋아할 영화예요.” 곁님 이야기를 듣고 이레쯤 지나서 비로소 이 영화를 본다. 곧바로 볼 수도 있으나, 집일을 도맡으며 지내다 보니, 이래저래 바쁘고 힘들어서 이레가 지나고서야 비로소 숨을 돌리며 보았다. 아무리 바빠도 틈을 내려면 틈을 낼 수 있지만, 곁님이 이래저래 보라고 알려준 영화라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 수 있을 때에 보고 싶었다. 두 시간이 넘는 영화를 본다. 영화를 한 시간 반쯤 볼 무렵, 큰아이가 잉잉댄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영화를 조용히 보는데 일곱 살 큰아이가 쉬가 마려운가 보다. 어쩌나. 영화를 끊고 쉬를 잘 누여서 재워야지. 이틀 뒤 비로소 나머지를 마저 본다. 이틀이 지나기까지 이래저래 집일을 하느라 참 바빴다. 이틀 동안 이불도 여러 채 빨았고, 영화를 다 본 오늘은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 제법 먼 나들이를 다녀오기까지 했다. 영화 〈마츠코〉는 무엇을 말할까.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삶을 누렸을까. 시시하다고 보는 삶은 어떤 모습인가. 아름답다고 보는 삶은 어떤 모습인가. 내 삶과 네 삶은 얼마나 다른가. 내가 오늘 누리는 삶과 네가 오늘 누리는 삶은 서로 어떻게 잇닿는가. 아픈 사람들 마음을 어떻게 읽는가. 기쁜 사람들 웃음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웃고 노래할 적에 즐겁다. 웃음은 남이 만들어 주지 않는다. 노래는 남이 불러 주지 않는다. 웃음도 노래도 언제나 스스로 빚고 가꾸며 누린다. 마츠코는 살고 싶었고, 고운 마음이고 싶었으며, 여린 동생과 사이좋게 꿈꾸고 싶었다. 이리하여 이 길대로 새 빛이 된다. 4347.5.2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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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 없이 무료한 하루에 우연히 케이블 영화 채널에서 보게 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제목이 너무나 독특해서 아무생각 없이 봤던 영화가 제 삶에 큰 힘을 주었습니다. 쓰러지고 쓰러지고, 또 쓰러져도 끝까지 일어나는 그녀의 인생이 너무나 눈부시고 멋졌습니다.
그녀의 삶을 보면서 내 삶이 얼마나 아이같은 투정이었는지 부끄러웠습니다. 그녀의 삶을 보면서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포기없는 그녀의 삶은 제 인생의 도표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짜증나고 힘들때에는 그녀의 삶을 기억하며 힘을 냅니다. 언젠가 나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꼭 보여주고 싶은 영화중의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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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도 만점 짜리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