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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에 돌아가신 김근태 민주당 고문에 대해 어떤 기자가 이런 분이 어떻게 정치를 하나 싶게 전형적인 선비라고 언급한 칼럼을 봤다. 그 칼럼을 보면서 속으로 그럼, 김근태님 올곧고 치열하게 살아간 지사 (志士) 맞지. 하고 크게 답을 했다. 인품을 수행하고 난 뒤에 치세에 나서고, 앎과 행동을 분리시키지 않는 것이 선비라면 으뜸으로 지켜야 할 덕목이었으니 말이다.
얼마 전에 읽었던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에서 어찌나 강하게 선비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해놨는지,되려 우리가 알고 있는 선비의 모습을 보고 싶다고 리뷰에 적었는데, 드디어 그런 책을 만났다. '한국의 리더십 선비를 말한다'에서 필자는 평생 조선 선비에 대해 연구한 학자인데, 조선 선비야 말로 지식기반 사회인 현대 한국의 리더십으로 손색이 없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역사에 관련한 다양한 소재의 글을 통해 사학자 정옥자의 사관이나, 견해, 인간미까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 오랜만에 역사 에세이를 읽는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필자는 식민사관에서 벗어난 1세대쯤 되는 학자적 위치에,80년대 군부 독재 시절,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학생들을 어떻게든 보호하려고 애쓴 교수였다. 책에서도 조선시대 당쟁이나 선비들이 지켜야할 덕목들을 어찌나 깔끔하고 알기쉽게 정리를 했는지, 조선시대에 관심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한눈에 쏙 들어왔고, 평생 학자였던 필자의 관록이 느껴졌다. 역시 제대로 아는 사람일수록 글이 어렵게 않고 간결하면서도 알기 쉽게 전달하는 능력이 있는 법이다.
사학자로서 정옥자는 정권적 차원에서 시도됐던 역사 평가 작업에 대해 긍정보다는 우려섞인 평가를 하고 있다. 그녀는 사실 확인이 제대로 안되고, 역사 해석으로 인한 갈등이 빚어지는 것을 염려하면서 역사평가는 사회 통합과 미래의 비젼과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수적이거나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식민사관이나 민중사관에 대해, 모두 쓴소리를 하고 있다. 선비나 당쟁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조선의 통치를 합리화하려는 식민사관의 영향이라는 것이고, 민중사관은 지배층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런 입장이다보니 선비를 바람직한 리더십으로 인정하고 계승하자는 주장이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조선 역시 지식기반의 평화를 추구하는 사회였다는 점에서 선비의 리더십이 현대에도 통용될 수 있다고 평가하는 모양이었다. 정옥자는 선비의 기개를 뜻한 사기(士氣)가 군대용어로 자리잡고 있는 것에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이성과 감성이 조화된 인간형을 추구하고, 학행일치를 지향하는 선비는 오늘날에도 지식인으로서의 역할과 고급문화를 창조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옥자가 평가하는 조선사회나, 선비의 모습이 너무나 훌륭해서, 도무지 현실적이지도 않고 공감이 안간다는 점이다. 조선사회는 패도 대신 왕도를, 법치 대신 덕치를 추구했다. 선비들은 서릿발같은 기개에 꼿꼿한 지조, 선공후사, 공평무사를 생활신조로 삼았고, 그리고 예를 통해 이기적인 욕망을 이겨내고 타인과의 바림직한 관계를 확장하는 덕목을 지켰다는 것이다. 당쟁도 선비들이 정치세력화 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역사적 산물일 뿐이고 오히려 붕당정치는 상호 비판과 견제를 주는 장치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역사는 동네북이 아니고 뼈를깎는 자기 성찰이 없는 역사 정리 작업이나 역사 논쟁은 공허하다고했으면서도 선비와 조선사회에 대해서는 너무 칭찬 일색이라,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친 감이 있었다.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었다'는 비판적이지만 설득력이 있었다면 정옥자가 제시하는 선비의 모습은 너무 훌륭하지만 실제로 와닿는 실체와의 괴리감은 너무나 컸다. 선비가 추구하는 덕목을 액면 그대로 잘 지키는 존재 였으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니까. 현실에서 보여준 선비들의 모습을 인정하고 그 점에 대한 보완점을 언급했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또 현대적 가치와 유교적 가치가 충돌되는 지점도 있을텐데 하는 의구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과연 선비는 현대 한국의 리더십으로 유용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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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륜의 힘으로 본 역사와 현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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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한국은 문화강국인가? 사람 좋은 예스맨이라고 해도 '네'라고 대답하기가 어렵다. 그럼 18세기 조선은 문화강국이었나? 이에 대해선 꽤 수월하게 '예'라고 답할 수 있다. 조선은 지식 기반의 문화국가였다. 다시 한번 비교해보자. 21세기 한국의 시대사상은 무엇인가? 우와, 대답하기가 극히 어렵다. 신자유주의인가. 그런데 신자유주의가 한국만의 시대사상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럼 조선의 시대사상은 무엇인가? 답이 바로 나온다. 성리학이다. 조선은 칼을 든 무사의 나라가 아니라 붓을 든 선비의 나라였다. 당시 선비는 고품격 인성과 지성을 겸비한 지식인을 말했다. 선비들은 한결같이 ‘맑음의 미학’을 지향했는데 오늘날 우리가 조선시대의 인문정신을 가리켜 선비정신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암 조광조,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남명 조식, 화담 서경덕, 우암 송시열 등이 바로 이러한 청유(清儒)의 대명사이다.
전 규장각 관장이자 역사학자 정옥자는 [한국의 리더십, 선비를 말하다](문이당, 2011)에서 한국적 리더십의 원형으로 '선비정신'을 높이 평가한다. 저자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선비 정신에 대한 외면은 제국주의적 식민 사관과 민중 사관의 흐름을 아직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학계의 현실이 그 걸림돌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국주의와 정반대라 할 수 있는 문치주의 시대인 조선의 선비는 한국적 리더십의 전형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한국적 역할 모델로 재조명이 필요한 바람직한 역사 전통이다.”(152쪽)
“선비란 신분적으로는 양인이고 경제적으로는 중소 지주층이다. 성리학을 주 전공으로 하여 그 이념을 실천하는 학인으로서, 사(士)의 단계에서 수기(修己)하여 대부(大夫)의 단계에서 치인(治人)하는 수기치인을 근본으로 하여 학자 관료인 사대부가 되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사대부의 이상적인 역할 모델이 청백리(清白吏)가 되는 것이었다. ”(253-4쪽)
“인간 삶의 바른길과 가치를 탐구하는 경학(經學:철학)과 시간에 따라서 인간 삶의 변화과정을 살피는 역사를 날줄과 씨줄로 하는 경경위사(經經緯史)의 방법론으로 세상의 진리를 탐구했다.”(307쪽)
여러 글 가운데 개인적으로 저자가 제기한 ‘우리 학문의 주변성 문제’에 크게 공감했다. 연구논문과 대학수업에서의 영어중심주의는 한국이 학술세계의 변방국가이고 한국어가 학술세계의 소수어라는 자괴감과 커다란 관련이 있다. 대중과 학자들을 대상으로는 각각 이중적인 문자 지침이 횡행하고 있다. 대중들을 상대로는 지독한 순한글 옹호로 인해 일반인들이 한자로 된 전통문화 텍스트에 무지몽매하게 만드는 한편, 상아탑의 교수들로 하여금 국사와 국어까지 영어로 가르치게 만드는 시골훈장의 '식민교육관'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큰 비용을 들어 세계의 석학을 초청해서 난해하고 현학적인 강의를 듣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물론 개중에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 주는 이도 있고, 많은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일회용 행사로 끝나고 얻어듣고 배우는 단순한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학문의 종속화를 스스로 불러들이고 학문의 식민지로 전락하려는 몸부림으로 보인다.”(39쪽)
매년 세계 100대 대학 안에 우리 대학이 몇 순위인지 안달하고 조급해하는 모습은 자신감 없는 시골훈장의 옹색한 꼴이다. 이런 문화적 자괴감은 18세기 조선의 '중화사상'과 매우 대조적이다. 저자는 조선의 소중화주의를 독자적인 문화적 자긍심의 구현이라는 측면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가령 18세기 조선은 대보단을 만들어 임진왜란 때 도와준 명나라 신종 황제와 마지막 황제 의종의 제사를 지냈는데, 이는 문화적으로는 조선이 세계 최고이고 유교문화의 적통을 계승한 동북아의 문화중심국이라는 조선 중화주의를 천명한 것이다. 그 결과는 진경문화의 성취로 나타났고, 18세기 정조대의 규장각도 중화주의 문화정책을 표방했던 상징적 기구였다.
프랑스인을 만나보면 자기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문화에 대한 우월감이 하늘을 찌른다. 그런데 '고매한 문화인’들의 조상이 1866년 조선이란 자그마한 변방에서 저지른 파렴치한 강도행적과 약탈행위는 프랑스 현지 교과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는 것 같다. 진정한 문화인은 타자의 문화도 존중할 줄 아는 법. 그런데 프랑스는 강화도 외규장각 도서 6천여 책을 불태우고 의궤 등 3백여 책을 약탈해갔다. 조선의 역사를 공부하면 영미불러의 도둑심보를 명확하게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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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삶이란 시행 착오의 연속선상에서 전개되고 있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나간 일을 제대로 알아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p261
사회가 어지럽다. 무엇이든 제대로 되어있는 것이 없어 보이는 요즈음 각종 언론매체에서는 급기야 모든 분야에서의 '일등주의' 즉 서열을 메기기로 작정한 것 같다. 노래를 통해 재능을 가진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좋은 취지의 프로그램 [슈퍼스타 K]에서 시작 [위대한 탄생] 그리고 기존 가수들의 마음을 서늘하게 하는 [나는 가수다]부터 아나운서, 탈랜트, 모델 등등..많은 분야에서 서로 경쟁하고 기회를 만들고자 온나라가 덜썩인다. 함께 보면서 웃고 울고 탄식하고..어쩜..이렇게 한마음이 되어 응원할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자신이 가진 것을 뽐내고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철호의 기회이지만 혹여 일확천금을 누릴수 있는 것으로 오해될가 염려하는 목소리들도 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조차 학문를 위한 공부가 되어야지 서열을 위한 공부가 되니 정작 대학에 가서는 질펀하게 놀아야지 하는 생각에 밤의 환락이 무섭지 않다라는 생각들이다. 아이들 키우는 입장에서 늘 공부해야지 하면서 독려하지만 늦은 시간에 축늘어진 모습으로 대문을 들어서는 아이를 보면 무엇을 위한 고생을 하는지 안타깝기가 그지 없다. 옛날 선비들의 기개를 이어받아 인생의 목표가 자신의 이기심과 욕망을 이겨 내 예禮 로 돌아가는, 즉 극기복례하여 모든 사람이 공존하고 공생하는 그런 사회를 위하는 삶을 살아가는 그런 자연인이 되는 아이들로 커가는 것을 보고싶은 것은 나만의 굼이 아닐게다.
70이라는 나이에 우리나라 역사의 많은 부분을 함께하신 서울 대학교 국사학과 명예교수이신 정옥자님 서울대학교를 메퀘한 췌루탄 연기속에서 다니셨고 10여년의 주부생활끝에 다시 대학원에 들어가 1970년 혹독한 정치의 시절을 실감하지 못할 정도로 개인의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자신의 졸업논문이 우리의 60년대 근대화와 관련지어져 있음을 깨닫고 시대를 거슬러 규장각 고서들의 영향을 받아 식민사관으로 얼룩진 조선왕조의 역사를 바로세워야 겠다는 일념을 가졋다. 인문대학 강사로 부임 한창 꽃피워야 할 학생들의 청춘이, 민주화의 대의에 짓밟히고 그것을 그냥 바라만 봐야하는 무력감에 시달리기도 하면서 자신의 학문과 아울러 후생을 키우는 일이 국가 밴년대계가 아닌가 싶어 '국가와 민족을 위한 마지막 봉사'로 우리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 여러 책을 묶어내신 진정한 선비정신을 이으신 분이다.
백성을 위한 정치가 근간이 되는 그런 마음을 버린지가 오래이니 우리 국회어르신들 선비정신, 즉 리더십의 부재에 대한 갈증을 [한국의 리더십 선비를 말하다] 한권의 책으로 펼쳐냈다. 청백리는 선비가 학문과 인격을 도야하여 남을 다스리는 大夫, 즉 관리가 되는 수기치인이 기본정신이 되는 조선시대 선비정신의 산물이다.
-청백리는 탐관오리의 반대말이다. 오늘날과 같이 총체적 부패가 만연한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탐관오리는 그야말로 친숙한 존재지만, 청백리는 아득한 옛날에 존재했으나 이제는 그 의미마저 형해화 (形解化) 되었거나 골동품쯤으로 퇴색했다 .- P254
책은 여러가지 근간의 자신을 밝히고 왜 책을 펼치게 되었는지 -1장 화이부동을 꿈꾸며 우리가 역사를 얼마나 얄팍하게 알고 있는지 -2장 참을 수 없는 역사의 가벼움 그리고 왜 우리가 선비정신을 알아야 하는지 - 3장 왜 지금 정조학인가? 로 나누어 자세하고도 진지하게 설명한다.
책을 펼치기전에 조선시대 선비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시각이 책을 읽으면서 왜 사대부의 나쁜점에만 집착했는지 나 자신의 얕은 생각을 후회했다. 인류의 삶이란 시행착오의 연속선상에서 전재되고 있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나간 일을 제대로 알아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우리가 왜 일본밑에서 30년을 식민지로 살아야 했는지 당연히 우리땅 인 독도를 왜 일본은 자기네것이라고 우기는것인지 분명하게 알아야 하는 시점에 국사가 다시 재 조명되고 필요성이 정당화 되고있는점은 그나마 감사한 일이다. 많은 외세의 칩임을 이겨내고, 우리가 이어받아야 할 선비정신을 너무나 잘 표현해 주시고 알기쉽게 풀이해주신 지필가 정옥자 교수님게 자라나능 우리 아이들을 대신해 감사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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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삶이란 시행 착오의 연속선상에서 전개되고 있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나간 일을 제대로 알아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p261
사회가 어지럽다. 무엇이든 제대로 되어있는 것이 없어 보이는 요즈음 각종 언론매체에서는 급기야 모든 분야에서의 '일등주의' 즉 서열을 메기기로 작정한 것 같다. 노래를 통해 재능을 가진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좋은 취지의 프로그램 [슈퍼스타 K]에서 시작 [위대한 탄생] 그리고 기존 가수들의 마음을 서늘하게 하는 [나는 가수다]부터 아나운서, 탈랜트, 모델 등등..많은 분야에서 서로 경쟁하고 기회를 만들고자 온나라가 덜썩인다. 함께 보면서 웃고 울고 탄식하고..어쩜..이렇게 한마음이 되어 응원할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자신이 가진 것을 뽐내고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철호의 기회이지만 혹여 일확천금을 누릴수 있는 것으로 오해될가 염려하는 목소리들도 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조차 학문를 위한 공부가 되어야지 서열을 위한 공부가 되니 정작 대학에 가서는 질펀하게 놀아야지 하는 생각에 밤의 환락이 무섭지 않다라는 생각들이다. 아이들 키우는 입장에서 늘 공부해야지 하면서 독려하지만 늦은 시간에 축늘어진 모습으로 대문을 들어서는 아이를 보면 무엇을 위한 고생을 하는지 안타깝기가 그지 없다. 옛날 선비들의 기개를 이어받아 인생의 목표가 자신의 이기심과 욕망을 이겨 내 예禮 로 돌아가는, 즉 극기복례하여 모든 사람이 공존하고 공생하는 그런 사회를 위하는 삶을 살아가는 그런 자연인이 되는 아이들로 커가는 것을 보고싶은 것은 나만의 굼이 아닐게다.
70이라는 나이에 우리나라 역사의 많은 부분을 함께하신 정옥자 서울 대학교 국사학과 명예교수이신 정옥자님 서울대학교를 메퀘한 췌루탄 연기속에서 다니셨고 10여년의 주부생활끝에 다시 대학원에 들어가 1970년 혹독한 정치의 시절을 실감하지 못할 정도로 개인의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자신의 졸업논문이 우리의 60년대 근대화와 관련지어져 있음을 깨닫고 시대를 거슬러 규장각 고서들의 영향을 받아 식민사관으로 얼룩진 조선왕조의 역사를 바로세워야 겠다는 일념을 가졋다. 인문대학 강사로 부임 한창 꽃피워야 할 학생들의 청춘이, 민주화의 대의에 짓밟히고 그것을 그냥 바라만 봐야하는 무력감에 시달리기도 하면서 자신의 학문과 아울러 후생을 키우는 일이 국가 밴년대계가 아닌가 싶어 '국가와 민족을 위한 마지막 봉사'로 우리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 여러 책을 묶어내신 진정한 선비정신을 이으신 분이다.
백성을 위한 정치가 근간이 되는 그런 마음을 버린지가 오래이니 우리 국회어르신들 선비정신, 즉 리더십의 부재에 대한 갈증을 [한국의 리더십 선비를 말하다] 한권의 책으로 펼쳐냈다. 청백리는 선비가 학문과 인격을 도야하여 남을 다스리는 大夫, 즉 관리가 되는 수기치인이 기본정신이 되는 조선시대 선비정신의 산물이다.
-청백리는 탐관오리의 반대말이다. 오늘날과 같이 총체적 부패가 만연한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탐관오리는 그야말로 친숙한 존재지만, 청백리는 아득한 옛날에 존재했으나 이제는 그 의미마저 형해화 (形解化) 되었거나 골동품쯤으로 퇴색했다 .- P254
책은 여러가지 근간의 자신을 밝히고 왜 책을 펼치게 되었는지 -1장 화이부동을 꿈꾸며 우리가 역사를 얼마나 얄팍하게 알고 있는지 -2장 참을 수 없는 역사의 가벼움 그리고 왜 우리가 선비정신을 알아야 하는지 - 3장 왜 지금 정조학인가? 로 나누어 자세하고도 진지하게 설명한다.
책을 펼치기전에 조선시대 선비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시각이 책을 읽으면서 왜 사대부의 나쁜점에만 집착했는지 나 자신의 얕은 생각을 후회했다. 인류의 삶이란 시행착오의 연속선상에서 전재되고 있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나간 일을 제대로 알아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우리가 왜 일본밑에서 30년을 식민지로 살아야 했는지 당연히 우리땅 인 독도를 왜 일본은 자기네것이라고 우기는것인지 분명하게 알아야 하는 시점에 국사가 다시 재 조명되고 필요성이 정당화 되고있는점은 그나마 감사한 일이다. 많은 외세의 칩임을 이겨내고, 우리가 이어받아야 할 선비정신을 너무나 잘 표현해 주시고 알기쉽게 풀이해주신 지필가 정옥자 교수님게 자라나능 우리 아이들을 대신해 감사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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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통해 본 사대부는 나에게 그렇게 좋은 인상을 주지는 않았다. 단 몇명의 사람들로 인해서 그렇게 비춰졌는지도 모른 다. 하지만 양지와 음지가 있듯이 모든 선비들이 그런 행동을 보인것은 아니다. "조선시대 지식인인 선비는 수기치인을 기본으로 사대부가 되었다."(p.57) 수기는 학문과 인격을 닦는 행위로 치인은 수기한 선비가 관료인 대부가 되어 남을 다스리는 행위다라고 한다. 청렴결백이라는 단어가 있에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조선초기와 후기를 보면 극과극인 양상을 보이는데 이는 지금의 정치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것 같다. 바로 당쟁을 말하는 것 이다. 국민과 백성들의 이익보다는 자신들의 자리가 더 중요하고 권력을 중시하는 모습에서 그런 모습이 비슷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이순신을 보면 서로 시기와 질투로 역적을 만들고 임진왜란 즉 싸움이 진행중인데도 나라를 구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안위를 중요시한 모습이 보인다. 분명 못받을 만한 것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음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저자는 말한다. 선비를 통해 현재의 우리가 변화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갈길은 멀기만하다. 과거에는 초기에는 왕권을 강화와 백성을 향한 정치개혁이 있었다면 조선의 멸망과 더불어 일제침략기, 6.25, 쿠데타등 민주를 향한 젊은이들의 외침이 이어져왔다. 난 생각해본다. 만약에 영조를 걸쳐 정조가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뜨지 않았다면 조선의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하고 말이다. 사람이 살아가는게 그리 특별하지는 않지만 요즘 한심한 정치판을 보면 한숨만 나오기 때문이다.
선비정신을 통해 받아들일 부분은 받아들이고 아니 부분은 지금이라고 변화가 시급하다고 말하고 싶다. 조선을 기점으로 현대 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통해 우리의 현주소인 정치문화를 폭넓게 보여준것 같아서 심심하지 않게 읽을수 있었다. 다소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국사를 다시 배운 느낌이다. 아가 다르고 어가 다르다지만 다시한번 흰옷을 좋아하던 우리들의 선비의 모습을 과거와 현재를 통해 비교할수 있었던 시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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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학식이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을 이르는 말. 사전에서 찾아본 말이다. 선비라고하면 가장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고결하고 바른 인품을 지닌 사람이라는 느낌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요즘세상에는 선비라고 칭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다. 더구나 선비 리더십을 가진사람은 더...
화이부동(和而不同)을 꿈꾸며 / 참을 수 없는 역사의 가벼움 / 왜 지금 '정조학'인가? 로 구성된 이 책은 1장에서는 저자가 학생 시절 4·19와 5·16을 겪고 나서 교수가 되어 민주화 운동을 하는 학생들을 보며 느낀 점, 역사학자로서 바라보는 개혁·권력과 기업 문화 등에 대한 생각과 문제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2장에서는 역사를 단순히 지나간 과거라 생각하지 말고, 그 토대 위에 현재의 우리가 있음을 기억해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3장에서는 선비가 학문과 인격을 닦아야 남을 다스리는 관리가 될 수 있음을, 선비 정신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청백리에대해 얘기하고 있다.
현재 우리사회는 리더십의 부제로 혼란을 겪고 있음을 전제로 지식인은 선비정신을 실천하는 선비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지식인이었던 선비와 그들의 선비정신이야말로 우리가 계승해야 할 정신적 자산이며 꼭 필요한 한국적 리더십임을 강조한다.
선비들 중 일부 탐관오리들도 있었지만 치열한 정치투쟁을 벌이면서도 학자정신, 선비정신은 잃지 않았던 그들은 서로를 신뢰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데 그들이 당쟁만 일삼은 것이 아니라 지식을 기반으로 한 선비정신이 모든것의 근간이었음을 느낄 수 있다. 사실 정치나 사회는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지만 역사는 지나온 과거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역사에 남아있는 선비정신을 본받아 그들의 지혜를 바탕으로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 생각된다.
저자는 국사학자답게 세계화를 외치며 우리의 역사를 소홀히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에서 소중히 보존되고 존중되어야 할 선비정신을 본받아야 함을, 역대 왕이나 선비들의 지혜에서 오늘날의 정치적 파행과 경제적 위기, 사회적인 어려움 등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함을 강조하는데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야기인것 같다. 책표지에 등장하는 수묵화같은 올곧은 선비정신을 지닌 사회지도층들이 많이 있는 건강한 나라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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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중국의 품격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중국의 전통과 당당한 모습에 부럽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이 책을 만났다. 중국에만 품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그에 맞는 전통과 품격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중심에는 선비라는 인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리더십, 그 처음과 중심에 선비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역사에세이로서 저자가 70세의 나이에 출판된 책이라고 한다. 그동안 저자는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발간한 것 같다. 역사에서 희망읽기, 오늘이 역사다 등 역사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갔고 이 책도 그 맥락과 같이 이어보면 될 것 같다.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있다. 1장은 화이부동을 꿈꾸며, 2장은 참을 수 없는 역사의 가벼움, 3장은 왜 지금 정조학인가? 로 나누어져있다. 나는 2장, 참을 수 없는 역사의 가벼움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그 중에서도 전통적 가치의 추락현상을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다. 누구에게나 뿌리가 있고 전통이 있기 마련인데 점점 요즘들어서 나를 포함한 우리나라가 모두 서양의 것만 중시하고 우리나라를 저급하게 평가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을 통해서 한국적 리더십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고 선비라는 과거 우리 민족의 상징적 인물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시길 권한다. 우리의 뿌리와 전통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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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문을 보면 참, 한숨부터 나옵니다. 명석한 두뇌를 지닌 데다 엘리트 교육까지 받으신 높은 양반(?)들이 하는 짓거리는 어찌 그리도 상스러운지. 한 나라의 현재를 책임지고 이끌어갈, 보다 밝은 미래를 향해 불철주야 고심해야할 그들이 어찌 그리도 막 나가는 행동을 일심는지. 일개 범인(凡人)에 불과한 내가 봐도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이에 서울대 규장각 관장과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던 저자 정옥자 교수는 현재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거,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고 그 속에서 교훈을 찾아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리더십이 존재하는지 돌아보라며 의문을 던지는데요. 그런 그가 <한국의 리더십 선비를 말하다>라는 책을 통해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것은 바로 ‘조선시대의 선비’, 그들의 삶과 일상에서 진정한 리더십을 일깨우라는 것입니다. <한국의 리더십 선비를 말하다>는 저자가 그동안 발표했던 글들을 한데 모아서 엮은 책인데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1장 ‘화이부동(和而不同)을 꿈꾸며’에서 저자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학창시절 4.19와 5.16을 겪으면서 학생의 신분으로 바라본 민주화 운동, 그로인한 갈등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그때의 일이 이후 자신에게 있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돌아보면서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개혁과 권력병, 기업 문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펼치는데요. 2부 ‘참을 수 없는 역사의 가벼움’에서는 좀 더 강한 어조로 우리가 어떤 문제를 지니고 있고 어떤 난관에 봉착해있는지 하나하나 짚어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나간 과거라고 일축해버렸던 것, 역사와 전통에 담긴 의미와 그 속에서 지금 우리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보라고 제시하는데요. 그것이 바로 ‘선비’입니다. ‘학식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선비정신이야말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핵심이라는 거지요. 그리고 3장 ‘왜 지금 ‘정조학’인가’에서 저자는 먼저 우리의 근현대사를 돌아보면서 그 백 년의 역사를 통해 무엇을 일궈낼 수 있었는지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정치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당파싸움, 조선이 멸망한 원인은 이 바로 당쟁이었다는 것이 바로 식민사관에 의해 철저히 왜곡된 것이라면서 ‘당쟁’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일깨워줍니다. 또 탐관오리의 반대어인 ‘청백리’가 오늘날에는 사라졌다면서 조선 선비 정신의 산물이자 핵심인 ‘청백리’를 일깨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올해 우리 나이로 70이 되었다는 저자의 글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숨 돌릴 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의 삶 속에서 우리가 잊고 있는 것,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일깨우고 되찾아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역사는 흘러가는 강물처럼 지나버리면 그만인, 그저 그런 것이 아니란 걸 다시 한 번 느낍니다. 언젠가 다가올 머지않은 미래에 나 역시 저자처럼 역사라는 거울 앞에 서게 되겠지요. 그때 거울 속에서 어떤 모습을 맞닥뜨리게 될지...그 모습을 만들어가는 것은 바로 ‘오늘의 나’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기대했던 ‘정조학’에 대해 많은 만나지 못해 아쉬웠지만 역사에 대한 생각을 바로세우는 계기가 된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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