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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비아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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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도덕적으로 퇴행해버린 여성주의자와 진보주의자들에 대한 비판1. 정치적 올바름은 정말 올바를까 정치적 올바름과 여성주의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저자도 먼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비판을 하는 것으로 이 책을 시작한다: 소수자와 약자들에 대한 존중과 관용을 요구하는 것은 정치적 올바름의 대표적인 골자이다. 그러나 정치적 올바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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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도덕적으로 퇴행해버린 여성주의자와 진보주의자들에 대한 비판



1. 정치적 올바름은 정말 올바를까


 정치적 올바름과 여성주의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저자도 먼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비판을 하는 것으로 이 책을 시작한다: 소수자와 약자들에 대한 존중과 관용을 요구하는 것은 정치적 올바름의 대표적인 골자이다. 그러나 정치적 올바름 지지자들은 지난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에 투표한 백인 중하층 노동자들의 삶과 견해에 대해서는 존중하지 못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 이들을 바보라고 조롱하거나 계도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훈계하려 했던 것은 절대 희소한 풍경이 아니었다. "이처럼 정치적 올바름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정작 타인에게 관용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P. 02) 이러한 모순은 통쾌한 지적이었다.


 또한, 정치적 올바름의 모순 속에서 저자는 한국 진보주의자들의 문제를 본다. 이들은 지극히 관념적이며, 대중에 대한 인정 투쟁 욕구가 심하고, 생계와 물질 분배 문제의 해결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생활감정으로 체화한 대중" (P. 41) 에게 도덕적 우월성을 인정받으려는 뒤틀린 욕구는 더 이상 공감을 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생계와 물질 분배 문제에 대한 논의를 회피하는 즉시 정치는 현실과 유리되어 관념화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것을 "진보의 오타쿠화"라고 일축한다. 오늘날 진보 진영의 사건을 바라보고 대처하는 방식에서 온도차를 느끼는 일반 시민들이 많아지고 있다. 심지어는 온도차를 넘어 견고한 벽이라는 생각이 들기까지도 한다.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밖에, '인권은 합의의 대상이 아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정작 인권의 역사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지적에는 큰 공감이 갔다.  


 전체적으로 <왜 도덕인가?>에서 마이클 샌델이 했던 주장이 생각나는 장이었다. 그는 지나친 자유주의적 관용의 태도를 논리적으로 비판하며, 사회적 합의와 여론화의 과정이 결여된 급진적 변화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2. 포비아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


 공포 마케팅을 통해 여성주의에 대한 관념적 포섭과 물질적 소비를 부추기는 것을 저자는 '포비아 페미니즘'이라고 명명한다. 예를 들어 최근 남성혐오 발언을 상습적로 한 여성 유튜버 갓건배에게 (그녀가 남성 유튜버에게 살해 협박을 당했다는 사실도 물론 중요하지만) 수억 원의 후원금이 들어와 관심이 모아진 적이 있다. 미디어에서 성 대결 논쟁을 통해 시청자들의 화제를 끌어모으려 하는 것은 오늘날 아주 익숙한 풍경이다. 심지어 공영방송이자 교육방송인 EBS는 <까칠남녀>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는데, 당초 제작 목적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에게 그저 성 대결의 프레임 속에서 소비될 뿐 긍정적인 역할을 하진 못하고 있어 보인다. 또한, 여성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이들이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고 조롱하듯 여성주의는 하나의 상업 활동으로서 자리매김하기도 하였다. 인터넷 서점들이 '여성주의 도서 기획전'을 여는 것은 이젠 익숙한 풍경이 되어버렸다.


 또한, 포비아 페미니즘이 공포심을 통해 논란거리를 먼저 '사유화'해버리는 것의 문제를 저자는 지적한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여성주의적 입장에서 논하는 것의 가치를 나는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사태를 공적이고 일반 사회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고 분석하여 원인을 규명하고 범죄 예방의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주의자들이 이러한 담론을 먼저 점거하고 사유화해버렸기 때문에, 그들의 프레임 안에서만 담론이 소비·소진되어버렸다. 그 결과 또 하나의 문제 (개인적으로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 즉 정신질환자들의 약물복용 관리·감독 문제는 일각에서만 논의되는 정도에서 그쳐버렸다. 이외에도 유리 천장 문제, 3040대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 등 이른바 세대 문제, 계급 문제, 사회 구조적 문제로 보아야 하는 것들이 단지 양성 갈등의 프레임 속에서 소진되어 버리는 것을 저자는 우려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미소지니-여성혐오 번역 문제에 대한 신선한 관점이다. "사전적인 의미로 번역한다면 미소지니 (여성에 대한 미움hate과 경멸contempt)는 여성혐오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다. 오히려 되물어야 할 것은 사전적인 의미를 넘어서 미소지니 개념을 사용해왔던 관행이 정당화될 수 있느냐이다. 이 문제는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서도 완전한 합의가 이루어져 있지 않다. () 미소지니와 성차별주의를 엄밀히 구분해야 한다 (후략)" (P. 91) 이것은 종래의 통념과는 궤를 달리하는 의견이었다. 외국에서도 미소지니의 용례가 한국과 지극히 유사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저자의 주장이 훨씬 타당성 있어 보인다.


 그리고 오늘날 인터넷 공간에서 나타나는 젠더 혐오 양상에 대한 분석은 아주 예리하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교육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오늘날 청소년들 사이에서 공적 담론의 권위는 전혀 먹히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은 자신이 내집단이라고 인식하는 공간에서 (예컨대 또래집단, 인터넷 커뮤니티) 얻는 정보를 더 신뢰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이러한 사태는 기존의 이념적 틀로는 해석되지 못하는 여러 증후들을 낳는다. 남성에서 여성이 된 트렌스 젠더들을 희화화하고 비하하는 일부 젊은 여초 커뮤니티의 문화가 그 예시다.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이념에만 의지하는 기성 언론, 교육계, 정치계에 반성과 변화가 필요함을 저자는 지적한다.


3. 포비아 페미니즘의 결과


 유아기적으로 퇴행해버린 진보 진영에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는 장이다. "겉으로는 다양한 소수의 의견도 경청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일방향의 개념규정과 소통 그리고 일방향의 요구만이 존재하는" (P. 195) 오늘날의 여성주의자·진보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은 일전 내가 <나쁜 페미니스트> 서평에서 썼던 "그들이 이야기하는 '토론'이나 '논의'는 결국 본인들이 생각하는 정답 (=선)을 관철하기 위한 장소"라는 문장과 아주 유사했다. 


 또한 저자는 다시 한 번 정체성 담론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냉정한 비판을 가한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환상과 다양한 비합리적 규범들을 예증하는 것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인터넷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여성들의 혐오 발언이었다. "여성의 혐오발언은 남성에게 저항하기 위한 수단도 아니었고,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무기도 아니다. 그것은 어느 인터넷 혐오발언과 마찬가지로 평소 뒷담화의 대상이 되었거나 싫어하는 타자에 대해 단지 재미있다는 이유로 이뤄진 것이었다." (P. 208) 메갈리아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디시인사이드 남연갤 등지에서 이미 일베 말투와 지역 비하, 고인 능욕 등이 이뤄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적인 사태는 여성주의자·진보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고루한 이념적 틀로는 해석될 수 없다. 당사자들은 이제 사유의 한계를 인정하고 '탈 오타쿠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체성 담론과 관련해서 저자의 입장은 <마르크스주의와 여성해방>과 아주 흡사하다. <마르크스주의와 여성해방>의 저자 주디스 오어는 "특권 이론의 논리적 결론을 따라가 보면, 개인적 정체성을 결정적 요인으로 여기는 모든 이론과 마찬가지로 결국 노동계급의 분열과 파편화를 강화하는 것이 되고 만다. 동시에 특권 이론은 예컨대 모든 백인 남성이 이해관계가 일치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므로, 모든 여성이 남성과 분리해 조직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지만 이렇게 보면 자연스레 여성도 온갖 상이한 환경에 처해 있으므로 예를 들어 흑인 여성, 레즈비언, 노동계급 여성 등도 서로 분리해 따로 조직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고 지적한 바가 있다.


4. 페미니즘의 통념에 도전하기


 저자는 그동안 여성주의자들이 주장해왔던, 또한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에서 고착화되었던 여러 인식들에 대해 비판을 가한다. 한 마디로 여성주의자들의 통념이 일종의 음모론에 가까우며 반대되는 예시를 얼마든지 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여성의 폭력성에 대한 대목이었다. 여성이 학살이나 린치 등 극단적인 폭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했었던 역사적 사실들은 아주 흥미로웠다. 이러한 폭력성은 또한 오늘날 가상 공간의 커뮤니티에서도 여실히 관찰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고 싶어 한다면 왜 남성은 여성들에게 인권이나 투표권과 같은 권리를 허용했는가?'에 대해서 저자도 같은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종래의 인식을 뛰어넘어 남녀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길 권장한다: 남성과 여성은 과거에도 현재도 상호보완적인 트레이드 오프Trade-off의 관계라는 것이다. 이 관점을 통해 저자는 남성-특권자·억압자, 여성-피억압자라는 지나치게 단순한 도식을 주장해왔던 기존의 가부장제 이론을 재점검하고, 역사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남성 억압적 징후들을 기술한다. 최종적으로는 여성의 사회 진출과 권리 신장의 역사를 설명하는데 가부장제 이론은 불충분하며, 트레이드 오프의 관점이 더 타당하다는 것을 밝힌다.


 그밖에 '고위직에 여성 할당제를 시행한다고 해도 그들이 여성을 위해 일할 거라는 것은 낭만주의적 시각'이라는 비판과 '학습 부진아나 정신지체아의 성비 역시 남초'라는 통계 또한 아주 흥미로웠다.


***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특히 전체적으로 분석적인 접근 방법을 시도했다는 점, 국가·시장·법에 대한 여성의 영향력을 분석하는 지점에서 목격되는 유물론적 사고관도 매력적이었다. 오늘날 때로 진보 진영에서 관찰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정체성 담론과 정치적 올바름에 천착한 결과라고 설명한 점도 아주 설득력 있었다. 전반적인 감상은, 상식적이고 당연한 견지에서 상식적이고 당연한 내용을 주장한다는 느낌이다 (그런 것조차도 하지 못했던 이들에게는 유감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저자가 남녀 갈등의 뿌리에 내재하는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를 밝히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선 어떤 문제 인식을 가져야 하는지 명확하게 제안했다는데 있다. 예컨대 소위 독박 가사 문제나 임금 차별 문제를 남녀 갈등의 프레임 안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양성 간의 노동 시간 차이를 제시한 뒤, 그러한 차이가 생기게 된 원인이 일차적으로는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에 있으나 더 근본적으로는 한국의 고된 장시간 노동 문화에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남성이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에 관심을 가질 것을, 그리고 양성 모두가 계급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힘을 모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언젠가 저자가 많이 인용했던 <소모되는 남자>라는 책도 읽어보고 싶다. 


 다만 아쉬운 점을 몇 가지 이야기해보겠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이 이 책의 가치를 크게 훼손한다고는 생각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 


 먼저, 주석에 대해 아쉬운 점이 몇 가지 있다. 저자는 간단한 용어 정의나 인물 설명 같은 것들을 위키 백과에서 인용했는데, 이 점이 좀 아쉬울 수 있는 부분이다. 더 공신력 있는 백과사전에서 인용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아쉬운 점이 있다. 대다수의 출처가 <소모되는 남자>라는 책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 논문, 특히 잘 디자인된 최신식 논문들을 위주로 출처를 적어놓았으면 더 설득력 있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과학의 범주를 이야기하며 그 안에 진화 심리학을 적어놓기도 했는데 ("과거 60~70년대처럼 생물학이냐 문화냐 하는 이분법적 대립에 기반한 논쟁은 요사이에는 심리학·뇌과학·진화심리학·유전학 등의 발달에 의해 상당부분 무력해졌다." P. 260) 진화 심리학에 대해서는 일전에 비판 의견을 들은 적이 있었다.  SNS 활동이 활발한 한 페미니스트 과학도가 오늘날 진화 심리학에서 발간되는 많은 논문이, 새로운 과학 논문은 거의 인용하지 못하고 옛날의 논문들만을 인용하고 있다고 꼬집은 것이다. 그의 말이 사실인지는 별개로 하더라도 진화 심리학에 대한 언급이 논쟁적인 사안이 될 수 있는 만큼 주의해서 서술했으면 더 매끄러웠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평소 저자의 블로그를 구독했던 사람이나 여성주의에 비판적인 글들을 읽어온 사람이라면 이 책의 골자들이 크게 신선하진 않을 것이라는 점도 조금 아쉬울 수 있는 대목이긴 하다.


 그래도 이러한 책들이 많이 출간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나 또한 저자의 입장에 동의한다. 여성주의자들이 사유화해버린 여러 언어들을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원래 위치로 되돌려놓고 그 안에서 건전하게 논의하는 것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이 옳은 내용을 담고 있든 아니든 간에 비난이 아니라 비판이라면, 다양한 의견이 순환된다는 것은 언제나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3.5점 

y*****2 2017.10.02.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