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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이세요? 그럼 읽으셔야 합니다.^^
"현대인이세요? 그럼 읽으셔야 합니다.^^" 내용보기
1. 내용   1) 학자가 썼으니 딱딱하겠지?   아닙니다. 학자가 썼는데 놀랍도록 부드럽습니다. 지금까지 접해 본 어떤 신학책보다 더 쉽고 친절해서 책을 잡으면 단숨에 끝까지 읽어 내려가게 됩니다. 논리적이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정갈해서, 막힘없이 술술 잘 읽히는 책입니다.   2) 신학생만 보면 되겠지?   그것도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신학책은 신학생이 보기에도 머리
"현대인이세요? 그럼 읽으셔야 합니다.^^" 내용보기


1. 내용

  1) 학자가 썼으니 딱딱하겠지?

  아닙니다.
학자가 썼는데 놀랍도록 부드럽습니다.
지금까지 접해 본 어떤 신학책보다 더 쉽고 친절해서
책을 잡으면 단숨에 끝까지 읽어 내려가게 됩니다.
논리적이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정갈해서,
막힘없이 술술 잘 읽히는 책입니다.


  2) 신학생만 보면 되겠지?

  그것도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신학책은 신학생이 보기에도 머리 아파서
일반인들에게 권하기가 주저되지만,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에 대해,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충분히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쓰였습니다.


  3) 난 기독교인 아닌데?

  그러므로 그대에겐
기독교에 대한 바른 이해가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 책은 기독교의 기본진리 열두 가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삶과 죽음의 문제에 관심 있으시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그 고민, 해결됩니다.


  4) 쉬운 책은 내용이 별 것 없더라?

  이 책은 다릅니다.
독자를 배려해서 친절하게, 쉽게 쓰였지만,
내용은 그와 달리 차원이 깊고 풍부합니다.
열두 가지 주제 하나하나가 모두
이 땅에서 <현대>라는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누구나 고민하고 있는 주제들입니다.
그리고 그 주제들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독자를 향한 배려 차원에서 쉽게 기술된 것입니다.

 

2. 편집과 구성

  1) 표지 눈길 끄는데?

  신학서적다운 고전적인 느낌과
현대적인 감각이 탁월하게 조화된 표지 디자인입니다.
일반적으로 신학서적 표지들이 너무 어둡거나 딱딱한 데 비해,
이 책의 표지는 가라앉은 분위기가 아니어서 무겁지 않고,
현대인에게 전혀 거부감이 없으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아서
표지에서부터 이 책이 지닌 내용의 중후함과 품격이 잘 드러납니다.
색감도 뛰어나서 어느 곳 하나 흠잡을 데가 없네요.


  2) 디자인만 좋은 거야?

  표지의 질은 놀랍습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물 한 방울만 묻어도 금방 얼룩지고 찢어지는 저급한 벽지와
방수코팅 된 고급벽지의 차이랄까요?
실수로 물이나 차를 쏟아도 쓱 닦으면 바로 보송보송, 완벽방수 됩니다.
일부러 찢으려 해도 찢기 어려운 재질입니다.
이 책에 기울인 출판사의 정성이 느껴집니다.


  3) 양장본은 다 똑같다?

  오, 노~!
양장본이라면 그저 딱딱한 표지일 뿐이라고 믿는 그대의 생각은
이 책을 만나면 바뀌고야 말 겁니다.
그냥 양장본 아닙니다.
패브릭 입혔습니다.
약간 톤다운 된 고급스런 와인색 패브릭에 은박으로 제목 찍었습니다.
장인이 자기 작품에 낙인을 찍듯,
도장처럼 찍힌 제목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어린 자녀에게 대를 이어 물려주기에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4) 속지는 다 그게 그거겠지?

  A4 복사용지 70g짜리와 80g짜리의 차이를 느껴보셨나요?
눈으로 보아도 다르지만
손으로 만져보면 그 차이가 더 실감납니다.
이 책의 속지가 바로 그렇습니다.
두께가 있어서 쉽게 상하거나 찢어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독자의 눈이 피곤하지 않도록 중성지로 만들어졌습니다.
대한기독교서회의 배려가 놀라울 따름입니다.


  5) 그래봤자 별 차이 있겠어?

  음식의 맛을 알려면 눈으로만 봐선 안 된다는 건 상식이죠?
먹어봐야 맛을 안다!^^
책도 그렇습니다.
이 책을 집어 들고 펼쳐보세요.
장평과 자간이 가장 적당해서 글씨가 한 눈에 들어오는 편집의 기술,
오, 놀라워라!
어떤 책은 내용은 좋지만 읽기가 참 피곤한데,
이 책은 독자들의 눈과 머릿속까지도 배려했네요.


  6) 인쇄 상태가 그렇게 좋아?

  그럼요.
서비스로 본문이 2도로 인쇄되어 있습니다.
눈이 시원하도록 산뜻한 푸른색으로 소제목을 달았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기본개념을 설명하는 부분 역시 푸른색이어서
글씨가 작아도 무리 없이 읽히도록 잘 만들어졌습니다.

대한기독교서회, 정말 감사합니다.^^


3. 가격

  슬프도록 싼 가격입니다. 12,800원.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가격.
최상의 재료로, 최고의 과정을 거쳐 편집되고 제본된 책이
어떻게 이 가격에 공급될 수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네요.
대한기독교서회의 헌신인가요?
저자의 헌신인가요?
아님 다른 누구?
묻고 싶습니다. 누가 좀 알려주세요.


4. 선물 고민 끝!

  다가오는 어버이날, 스승의 날,
무얼 선물할까 고민 중이십니까?
지인들의 생일선물이 고민이십니까?
축하할 일이나 감사할 일이 있을 때 이 책을 선물해 보세요.
한 권의 책 선물이 얼마나 큰 감사로 되돌아오는지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아느냐고요? 제가 경험했거든요.^^;

m****4 2011.04.1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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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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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동건교수에 대해 많이 들었지만..... 친구가 빌려줘서 그냥 별 기대없이 이 책을 읽었다. 결과는 완전히 대박이다!!! 내 인생이 달라질 것 같다. 기독교의 주요 주제들에 대해서 너무나 쉽고 간결하고 분명하게 설명해준다. 신학 책이 이렇게 명료할 수도 있구나~~  무신론자에게 권해도 될 책이다!!방황하는 친구에게도 한 권 선물하고 싶고.......... 청년부 학생들에게도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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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동건교수에 대해 많이 들었지만..... 친구가 빌려줘서 그냥 별 기대없이 이 책을 읽었다.
결과는 완전히 대박이다!!! 내 인생이 달라질 것 같다.
기독교의 주요 주제들에 대해서 너무나 쉽고 간결하고 분명하게 설명해준다. 신학 책이 이렇게 명료할 수도 있구나~~  무신론자에게 권해도 될 책이다!!
방황하는 친구에게도 한 권 선물하고 싶고.......... 청년부 학생들에게도 선물주려고 몇 권 구입하려 한다.

a*****1 2011.04.1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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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쓰려고 지난 17일에 50권 주문했는데 아직 안오네요.
"교회에서 쓰려고 지난 17일에 50권 주문했는데 아직 안오네요." 내용보기
이 책이 벌써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네요.정용섭 박사님의 서평이 인상이 깊네요김동건 박사의 <현대인을 위한 신학강의>영남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동건 박사께서 <현대인을 위한 신학강의>라는 책을 최근에 출간했다. 부제는 “12개의 주제”다. 부제대로 이 책은 현대 지성적 그리스도인들이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는, 아니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땅
"교회에서 쓰려고 지난 17일에 50권 주문했는데 아직 안오네요." 내용보기

이 책이 벌써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네요.
정용섭 박사님의 서평이 인상이 깊네요
김동건 박사의 <현대인을 위한 신학강의>

영남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동건 박사께서 <현대인을 위한 신학강의>라는 책을 최근에 출간했다. 부제는 “12개의 주제”다. 부제대로 이 책은 현대 지성적 그리스도인들이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는, 아니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신앙의 내용을 12개 항목으로 다루고 있다. 핵심 키워드만 추리면 다음과 같다. 성경, 죄, 고난, 운명, 기도, 거듭남, 은사, 타종교, 은혜, 죽음, 부활, 하나님 나라. 성경으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 나라로 끝나는 구도다. 여기에 망라된 주제는 그리스도교의 요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항목이 12개지만 이 책이 그것만 다루는 게 아니라 각 항목을 중심으로 훨씬 많은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독자들이 이를 따라가기만 한다면 그리스도교 전반에 대한 신학적 토대를 얻게 될 것이다.

김동건 박사는 책 앞쪽에 “한국교회에 바칩니다.”라는 헌정사를 남겼다. 이 짤막한 헌정사에 이 책의 정신이 담겨 있다. 김 박사는 한국교회를 마음에 품고 이 책을 썼다는 말이다. 그가 마음에 품고 있는 한국교회의 실상은 무엇일까? 그것을 내가 직접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힘들지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신학이 부족한 교회가 아니겠는가. 신학을 경원시하는 교회가 아니겠는가. 믿음의 열정은 산을 옮길만하지만 그 믿음의 내용이 부실한 교회가 아니겠는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보다는 보이는 교회가 목적이 되어버린 교회가 아니겠는가. 오죽했으면 지금 한기총 해체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김 박사는 몸은 크지만 머리가 너무 작아서, 마치 소두증에 걸린 것처럼 보이는 한국교회를 향한 깊은 연민으로 이 책을 쓰지 않았겠는가.

이 책의 제목을 구성하는 세 단어는 다음과 같다. 현대인, 신학, 강의. 여기서 ‘현대인’은 지성적 그리스도인을 암시한다. 계몽주의 이후의 시대정신 앞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일반 교회에서 영적으로 만족할만한 대답을 찾지 못해서 방황한다. 그런 방황이 길어지면서 교회를 떠나기도 한다. 오늘 한국교회에 젊은 지성인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씁쓸하지만 자타가 인정하고 있는 실상이다. 김 박사는 그들을 향해서 호소한다. 그리스도교는 단지 종교적 열광에 빠져야만 선택할 수 있는 종교가 아니라 합리적인 사유로도 얼마든지 동의할 수 있는 종교라는 사실을 외친다. 그들에게 접근하는 통로가 바로 ‘신학’이다. 신학은 전문적인 신학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대망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해야 할 영적 활동이다. 신학을 살리는 것이 곧 교회를 살리는 길이다. 신학은 교회의 기능이라는 바르트의 발언처럼 교회는 신학을 통해서 정체성을 바르게 세워나갈 수 있다. 김 박사의 이 책은 교회의 기능인 신학을 교회 현장에 뿌리내리게 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 작업을 위해서 그는 ‘강의’를 한다. 독일어로 강의는 ‘Vorlesung’이라고 한다. 청중 앞에서(vor) 읽는 것(Lesung)이다. 김 박사는 한국교회 신자들 앞에서 지금 마치 수도자처럼 신학을 읽고 있다. 읽는다는 것은 진리를 언어로 표현한다는 뜻이다.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표현처럼 김 박사의 이 책은, 즉 그의 신학 읽기는 그리스도교 영성이 거하는 집을 짓는 행위이다. 독자들께서는 그 집에 들어가 보고 싶은 생각이 나시는가? 먼저 들어가서 집 구경을 한 필자가 간단하게 느낌을 말하겠다.

우선 이 책은 친절하다. 독자들의 입장을 십분 배려한 글이다. 친절하다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이 책은 술술 읽힌다. 글을 관념적으로 써대는 신학자 유의 글이 아니라 절친한 친구나 애인에게 진심으로 전하는 속삭임처럼 들리는 글이다. 한 사람은 눈을 감고 다른 사람이 읽어줘도 똑같은 감동을 전달받을 정도로 흐름이 자연스럽고 표현이 소박하다. 신학개념을 이렇게 풀어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은 김 박사의 신학적 영성이 농익을 대로 익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둘째, 글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따뜻하다. 신학자가 따뜻한 글을 쓰다니, 놀랍지 않은가.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뚫고 있으면서도 그는 책망하는 일이 전혀 없다. 그러면서도 할 말은 다 하고, 독자들은 다 알아차린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학자들은 자신을 기준으로 대상을 가차 없이 깎아내리는 글을 쓰기 쉽다. 필자도 그렇게 글을 쓴 적이 많으며, 그걸 통해서 나름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한 것 같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부성애와 모성애적인 품위를 지키고 있다. 이렇게 김 박사의 글이 친절하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교회에 애정이 많다는 뜻이리라.

김 박사의 이 책을 읽으면서 친절하다는 느낌이 든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김 박사가 신자들의 영적 상태를 일반 목회자들보다 더 깊이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가 전업 목회자 활동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그런데도 실제적인 신앙생활의 문제를 소상히 알고 있었다. 물론 간접적으로 신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겠지만 평소에 자신의 신학행위를 영성의 차원에서, 즉 구도의 차원에서 수행하지 않았다면 알 수도 없고, 알았다고 하더라도 적절하게 해명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이 책의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실제적인 신앙생활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목회 현장에서 사용하기에 맞춤한 게 아닐까 생각된다.

이 책은 특징은 단순히 친절하고 목회적 영성이 풍부하다는 것만이 아니라 신학적 전문성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매력이 넘친다. 목회자라고 한다면 거기에 도달할 수 없는 신학적 깊이를 이 책이 확보하고 있다는 말이다. 136쪽 이하에 나오는 칭의와 성화에 관한 내용을 보라. 그는 칭의와 성화에 관한 루터와 칼뱅의 입장을 정확하게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다. 루터는 칭의에, 칼뱅은 성화에 방점을 두고 있지만 이원론적으로 구분되는 게 아니라고 한다. 한국교회에서는 칼뱅의 입장에서 칭의 뒤에 성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강하지만, 김 박사는 칭의와 성화가 동시적인 사건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짚는다. 다만 칼뱅은 성화에 강조점을 두고 있을 뿐이다. 칭의와 성화의 이런 변증법적이고 상호 내재적 긴장에 대한 신학적 이해가 없으면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을 놓칠 수 있다. 성령의 은사에 대한 항목이나(165쪽 이하), 특히 한국사회에서 뜨거운 이슈라 할 수 있는 타종교에 대한 항목(190쪽 이하)에서 독자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타종교와의 문제에서 그리스도교의 자리를 ‘연대와 긴장’으로 보는 김 박사의 견해가 인상 깊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면 저자나 독자들에게 실례가 될 것 같아 이만 줄여야겠다.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책값도 저렴하다. 양장본, 본문 2도 인쇄로 된 책이 단돈 12,800원이다. 독지가의 도움이 있었을까, 아니면 인세를 반납했을까, 또는 ‘대한기독교서회’에서 작심하고 한국교회를 섬긴다는 생각으로 파격적인 값을 매겼을까, 어떻게 이런 값으로 책이 나왔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김동건 박사의 노고에 다시 박수를 보낸다. <현대신학의 흐름>으로 2009년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상을 받았는데, 이 책은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더 큰 공헌을 하리라 의심하지 않는다. 필자가 쓰고 싶었던 책을 김 박사가 선수를 치신 것 같아 좀 섭섭하다. 그게 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아니겠는가.


o*******4 2011.04.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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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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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오랫동안 다니면서 품었던 많은 고민들....나이를 먹어서도 여전히 생기는 물음들.. 계속해서 진리에 대해 의혹들을 품으면서내가 과연 신앙인이 맞는가 하는 회의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접하면서그 동안 가졌던 많은 고민들이 하나씩 하나씩비늘이 벗겨지듯 풀리기 시작했습니다..비록 늘 의심가운데, 고민 가운데 있었지만,저에게 너무나 소중한 신앙의 내용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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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오랫동안 다니면서 품었던 많은 고민들....
나이를 먹어서도 여전히 생기는 물음들..
계속해서 진리에 대해 의혹들을 품으면서
내가 과연 신앙인이 맞는가 하는 회의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접하면서
그 동안 가졌던 많은 고민들이
하나씩 하나씩
비늘이 벗겨지듯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늘 의심가운데, 고민 가운데 있었지만,
저에게 너무나 소중한 신앙의 내용들이
신학의 이야기로 체계적으로 풀어지고 있어서
마음이 시원해 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절대로 어려운 용어로 쓰여지지 않아서
마음에 쏙쏙 들어왔습니다.

신앙에 고민이 계신 분,
기독교에 대해 오해를 하고 계신 분들께
강력 추천해요.

o********5 2011.04.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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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은 아무나 만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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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한 신학이라고 여겼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 한권으로 인해 생각이 바뀔 것이다. 신앙적 고민을 신학적인 명쾌함으로 답을 제시하며 저자의 깊은 기도의 땀방울이 스며있는 글임을 알게 될 것이고, 또 저자가 한국교회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비판 일색의 학문적인 신학 책이 아니라 독자를 향한 진한 사랑과 관심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 신앙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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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한 신학이라고 여겼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 한권으로 인해 생각이 바뀔 것이다.

신앙적 고민을 신학적인 명쾌함으로 답을 제시하며 저자의 깊은 기도의 땀방울이 스며있는

글임을 알게 될 것이고, 또 저자가 한국교회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비판 일색의 학문적인 신학 책이 아니라 독자를 향한 진한 사랑과 관심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 신앙적 고민을 풀어주는 명품강의이다.

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독자는 생각이 달라질 것이고
크게는 한국교회의 방향이 바뀔 수 있다.

읽어보시길 그러면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적극 추천하는 바입니다.

v*****d 2011.04.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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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을 위한 산학강의를 읽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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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읽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책이 나올 수 있구나' 하는 감격을 맛보았다. 그동안 수많은 신학서적들이 나왔지만 이렇게 명쾌하면서도 쉽게 내용이 전개된 것을 보며 저자의 학문적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된다.해밍웨이가 그랬던가 쉽게 읽히는 읽히는 글일수록 어렵게 쓰여진 것이라고. 이 책이 신학도나 목회자가 아닌 일반 교인들이나, 아니면 일반인들까지도 쉽게
"현대인을 위한 산학강의를 읽고서" 내용보기

처음 이 책을 읽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책이 나올 수 있구나' 하는 감격을 맛보았다. 그동안 수많은 신학서적들이 나왔지만 이렇게 명쾌하면서도 쉽게 내용이 전개된 것을 보며 저자의 학문적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된다.
해밍웨이가 그랬던가 쉽게 읽히는 읽히는 글일수록 어렵게 쓰여진 것이라고.
이 책이 신학도나 목회자가 아닌 일반 교인들이나, 아니면 일반인들까지도 쉽게 읽을 수 있을 정도이면 저자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수십년간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그저 기복적인 신앙관에 사로잡혀왔던 현대 기독인들에게 새로운 영성이 펼쳐지게 될 것이다.
그동안 목회현장에서 신학무용론을 주장해왔던 목회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무식한 처사였는지 분명히 밝혀질 것이다.
지금까지 있어왔던 기복주의 목회, 교인수 증가를 위한 목회에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책이 그동안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던 현대인들에게 기독교를 새롭게 이해하는 관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나는 이 책을 교인들에게 필독서로 읽히고, 이 책을 가지고 주일 오후 예배 설교를 할 것이다. 
교인들이 이 책을 통해 보다 깊은 영성을 회복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설레인다.
이 책을 세상에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저자에게, 그리고 기독교서회에도 감사드린다.

s*****7 2011.04.1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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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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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주부입니다. 김동건 교수님의 책을 3번째 대합니다.이 책은 저와 같이 신학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읽으면 더욱 은혜를 받을 것 같아요.남편이 신학공부를 하는 분이예요.매일 딱딱한 이야기를 하여 신학공부는 힘들다고 생각했어요. 이 책을 읽는 순간 순간 가슴이 벅차 올랐어요.남편이 꼭 읽어 보라고 해서 읽었는데 참 고맙네요.남편이...주부들이 읽는다면 남편을 새롭게 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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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주부입니다.


김동건 교수님의 책을 3번째 대합니다.

이 책은 저와 같이 신학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읽으면 더욱 은혜를 받을 것 같아요.

남편이 신학공부를 하는 분이예요.
매일 딱딱한 이야기를 하여 신학공부는 힘들다고 생각했어요.
 
이 책을 읽는 순간 순간 가슴이 벅차 올랐어요.
남편이 꼭 읽어 보라고 해서 읽었는데 참 고맙네요.
남편이...

주부들이 읽는다면 남편을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요즈음 남편이  설겆이를 하고 방청소를 하는 것이 이 책을 읽었기 때문인가요?

y*****e 2011.04.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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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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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저는 목사입니다.12년동안 신학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신학공부를 해도 늘 공허했습니다.김동건 교수님의 "......신학강의"를 읽고아...그렇구나. 아...그렇구나. 아멘. 아멘을 수없이 반복했습니다.도서관에서 단숨에 읽었습니다.어느듯 눈물이 턱을 적시고 있었습니다.하나님과 마주함, 성경의 경전성,은혜의 우선성, 희망,하나의 역사,지금,연대...긴장,이미..아직,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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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저는 목사입니다.

12년동안 신학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신학공부를 해도 늘 공허했습니다.

김동건 교수님의 "......신학강의"를 읽고
아...그렇구나.
아...그렇구나.
아멘.
아멘을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도서관에서 단숨에 읽었습니다.
어느듯 눈물이 턱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마주함,
성경의 경전성,
은혜의 우선성,
희망,
하나의 역사,
지금,
연대...긴장,
이미..아직,


어느것 하나 귀하지 않은 말씀이 없네요.
감사합니다.

앞으로 은혜 받은 자의 삶을 살겠습니다. 

y*******2 2011.04.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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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현대인을 위한 신학 강의
"(책) 현대인을 위한 신학 강의" 내용보기
(책) 현대인을 위한 신학 강의 김동건 대한기독교서회   올바른 신앙관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교회에서 이리저리 듣고 배운 것들이 있고, 그것들이 자연스럽게 생활과 행동 속에 적용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러다보면 지금 내가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정리되지 못한 채 그저 막연하고 정확하지 않은, 대략적인 생각으로 내 신앙이 둘러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
"(책) 현대인을 위한 신학 강의" 내용보기

() 현대인을 위한 신학 강의

김동건

대한기독교서회

 

올바른 신앙관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교회에서 이리저리 듣고 배운 것들이 있고, 그것들이 자연스럽게 생활과 행동 속에 적용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러다보면 지금 내가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정리되지 못한 채 그저 막연하고 정확하지 않은, 대략적인 생각으로 내 신앙이 둘러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다보니 이단들이나 믿지 않은 이들의 몇가지 툭툭 던지는 질문과 반박에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무너져 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그런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런 류의 책은 읽어 둘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성경, /율법, 고난, 운명, 기도, 거듭남, 성령의 은사, 타종교와의 관계, 은혜, 죽음, 부활, 유토피아라는 주제에 대해 기독교인이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를 아주 어렵지 않은 방식으로 독자에게 내용을 전달해 준다. 

마치 목사님의 말씀을 듣는 듯한 느낌으로 책을 읽어나갈 수 있는데, 그 내용이 쉽게 이해되지만 그 무게는 묵직하다. 

 

믿는자에게 고난은 어떤 의미인가, 기독교의 구원은 배타적이지 않은가? 복을 비는 것이 옳은 일인가? 운명론과 예언은 비슷한게 아닌가? 등등 그냥 막연하게 생각하면 답하기 까다로운 내용들에 대해 신학적인 내용을 조곤조곤 풀어낸다. 

 

그러다보니 그동안 실뭉치처럼 두리뭉실하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내용들이 머릿속에서 정리되는 느낌이다.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어 그게 뭐였지?'했던 것들도 조금 명확해지고, 알고 있던 내용들도 체계적으로 정리되다보니 '맞아 이게 이런 내용이었어'라고 생각하게 된다. 

 

제목에 '신학'이라는 말이 들어가 너무 딱딱하고 경직된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책의 서두에서처럼, 이 책은 '신학'이라는 것이 단지 이론적인 작업으로서의 학문이 아닌, 성경의 내용을 일관되게 보도록 하는 관점을 제공하는 것이며, 신앙과 사회 생활의 분리를 막아줄 수 있는 토대이며,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가 나아갈 바를 보여주는 것으로 거창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신학을 해야 할 것이라 말한다. 사실, 신학이라고는 했지만 그것이 학문이라기보다는 신앙인의 자세, 관점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더 낫지 않나 싶다. 

 

과연 나는 어떤 관점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내 삶과 교회와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가 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는게 어떨까? 특히 내가 어떤 관점에서 어떤 생각으로 내 삶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내 삶의 방향과 질이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 책을 통해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위치를 다시한번 점검하는 것은 투자한 시간에 대해 훨씬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이익이 되는 일이니 해볼만 하지 않은가 

 

 

#56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결코, 단 한순간도 인간 사유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인간이 말씀을 가지고 와서 자기 앞에 둘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인간이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말씀이 주체입니다. 말씀이 구원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 속에서 주체로서 다가오는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구원의 주체는 오직 그리스도일 뿐입니다. 

 

#64

율법에 대한 해석의 차이는 죄에 대한 이해의 차이를 가져온다는 사실입니다. 율법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죄의 개념이 달라집니다. 예수님과 바리새인의 논쟁에서 나타나듯이, 율법에 대한 해석에 따라 율법은 이중적인 의미로 사용됩니다. 즉 율법을 하나님의 뜻으로 보는 관점과 인간이 지켜야 되는 율례로 보는 관점이비다. 예수님에게 죄는 하나님의 뜻을 떠난 것이었고, 바리새인에게는 율례를 지키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66

성경이 율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율법에 하나님의 뜻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에서 하나님의 뜻을 빼버린다면, 율법은 화석처럼 경직되고 인간을 정죄하는 법이 될 뿐입니다. 

 

#68

바울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삶의 목표와 의미를 벗어난 상태를 죄라고 보았습니다. 

 

#74

주일성수나 헌금을 가볍게 여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교인들에게 주일성수를 권하고, 헌금의 의미에 대해 잘 가르쳐야 합니다. 경건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인 중에 신앙 생활을 제대로 못하는 이가 있으면, 목회자는 잘 권유하고 도와야 합니다. 그러나 주일 성수 잘하고, 헌금 잘하고, 성경 공부에 잘 참석하는지 여부가 죄나 신앙의 기준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주일 성수, 헌금, 경건생활, 성경공부 모두 그 자체로 귀하고 중요하나, 결코 이들을 율법적으로 만들어서는 은됩니다. 하나님의 뜻 외에 다른 무엇인가를 신앙의 기준으로 삼으면, 그것은 율법이 됩니다, 이를 행하면 거룩한 자가 되고, 이를 지키지 못하면 죄인이 됩니다. 이 때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율법화에 빠지게 됩니다. 이제 죄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근본적인 차원을 벗어나 인간이 지키는 율례가 됩니다. 

 

#78

젊은 분들은 삶의 목표를 설정할 때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이 죄입니다. 때로는 힘들고 지치더라도 포기하면 안됩니다. 그러나 인내하십시오. 다시 하나님께 물으십시오. 끈기를 가지고 하나님께 물으며 살아야 합니다. 

 

#79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삶의 목표와 의미'를 추구하는 것을 거창하게 생각해서 겁내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사회적으로 대단한 성취를 해야 하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큰 성취를 해야 삶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되면, '삶의 의미'를 다시 율법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성취 여부에 따라 의미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취가 기준이 되면, 삶의 의미가 율법화된다는 말입니다.

 

#92

신앙인이라고 항상 좋은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고난이 피해가는 것도 아닙니다. 기독교인도 사고를 당하고 질병에 걸립니다. 여기에는 신앙인과 비신앙인의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고난을 당한 후, 어떻게 응답하는지에서 차이가 납니다. 

 

#94

진정한 신앙인은 고통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악인은 그의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14:32)

나아가 신앙인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봅니다. 신앙인도 고난이 주는 물리적 고통과 심적 고통을 겪지만 그 너머에 있는 주님의 뜻을 찾습니다. 고난을 통해 오히려 신앙이 깊어지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합니다. 

 

#105

성경에 나오는 예언은 결정론에서 말하는 예언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성경의 예언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뜻은 현재적으로 전하는 행위라면, 결정론의 예언은 무신론적이고 기계적으로 고정된 미래를 지시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예언자는 미래의 길흉을 말하는 복술자나 점쟁이가 아닙니다. 예언자는,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를 섭리해 나갈지를 알리는 자입니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로서, 그의 역할은 자기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106

미래는 하나님 안에서 열려있습니다. 하나님은 고정된 기계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인간의 잘못을 보시고 진노해서 심판하려다가도 인간이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용서해 주시는 예가 무수히 나옵니다. 

 

#109

하나님이 현재의 역사를 인도해서 역사의 완성까지 다스리는 것에 대한 주제는 '섭리론'입니다. 섭리론의 근거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해서 그냥 버려두지 않고 지속적으로 관여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피조세계와 끊임없이 관계하면서 이 역사의 완성까지 인도하신다고 증언합니다. 하나님이 역사를 섭리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말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역사와 우주의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123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이 정한 시기에 당신의 방법으로 응답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선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는 것이 좋은 것이고 선한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그 순간에는 알아채지 못하는 방법으로 응답하십니다. 때로는 침묵으로 응답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응답의 방법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124

하나님의 복을 구하는 기도는 당연한 것입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나님의 축복만큼 귀한 것은 없습니다. 다만 기도의 모든 응답을 물질이나 부귀같은 몇가지의 세상적 기준에 국한시키는 것이 문제입니다. 

 

#134

거듭남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자기 변화가 아닙니다. 오직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거듭남의 토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대속의 죽음을 죽고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거듭남이 있을 수 없습니다. 

 

#137

우리의 능력과 상관없이, 우리 밖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의롭다'는 의인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오직 믿음'으로 의로워진다는 말은 '오직 은총'으로 의로워진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칭의 교리의 핵심은 ''가 그리스도에게서 온다는 것입니다. 의는 인간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인간에게 ''는 덧입혀진 의이며, '그리스도의 외래적 의'입니다. 인간에게는 생소하고 이질적인 의입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오직 은혜로 인간에게 전가되는 것이지요. 바로 이것이 칭의이며 의인의 의미입니다. 

 

#143

말씀을 읽고 기도만 하면 신앙이 활력을 잃고, 봉사만 하면 신앙적인 영성이 흐려진다. 이 두 요소를 함께 병행하면 신앙이 튼튼해지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게 될 것이다. 

 

#165

성령님은 인간의 특정 측면에만 작용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인간의 어떤 측면이 아니라 그 '인간'에게 임합니다. 성령님의 임재와 능력은 제한되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형태' 속에서만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인간에게 임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인간의 이성과 인식의 깨달음을 통해서도 가능하며, 설교나 대화를 통해서도 임하실 수 있습니다. 바른 신앙과 진리를 위해 투쟁하고 애쓸 때도 성령님이 임하십니다. 바른 성경 이해를 위해 노력하다가 깨닫게 되는 성령님의 지혜 역시 같은 은사입니다. 

 

#186

성경에 바탕을 둔 구원론의 구조를 보면,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을 증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이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를 많은 구원자들 중의 하나로 간주하려면, 성경의 중심 진술을 포기해야 합니다. 이는 기독교 정체성 자체를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187

그 종교의 정체성이 없어지면 타종교와 대화하기 위한 토대도 함께 없어지는 것입니다. 타종교와의 대화를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중략).. 기독교는 구원의 개념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는 종교다원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는 구조입니다. 기독교에게 종교다원주의를 수용하라는 것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경전성을 포기하고 기독교의 근본 진리를 포기하라는 요구와 같습니다. 기독교가 종교다원주의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배타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오히려 무리한 주장입니다. 

 

#188

구원의 주체가 누구인지에만 초점을 맞춰 배타성을 규정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입니다. 성경의 전체적인 정신에서 봐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은 이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중략).. '오직 예수'는 우선적으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헌신을 지시하는 말이지, 배타성을 의미하는 말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은 누구나 많은 자가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소외받는 자들과 함께했고, 당시 유대교에서 죄인으로 칭해지는 창기와 세리를 사랑했습니다. 그는 모두를 받아들였고, 모두를 사랑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세계가 열렸습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도 차별이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을 인류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으로 승화시켰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은 모든 피조물을 포함하는 구원의 총체입니다. 성경의 구원론의 기저에는 모든 인류와 피조물에 대한 사랑과 개방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203

'일방적'이라는 말은 인간의 행위가 은혜를 받기 위한 조건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은혜를 베푸는 것이지, 인간의 요청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적'이라는 것은 은혜를 받기 위한 어떠한 선제적인 노력이나 자격이 필요없다는 말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은 은혜를 받기 위해 어떤 행위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207

뒤늦게 포도원에 온 일꾼처럼, 탕자처럼, 1만 달란트 빚진 자 처럼, 간음한 여인처럼 더 이상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는 전적으로 무능한 인간에게 하나님이 대가없이 주는 것이 은혜입니다. 구원에 대한 책임성은 더 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구원에 대해서 인간은 전적으로 무능하기 때문입니다. 전적으로 무능한 자에게 무슨 책임성을 묻겠습니까? 인간은 자신의 구원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단지 은혜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210

아무런 헌신도 없이 은혜와 책임의 영역을 질문하는 것은 아직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거나, 혹은 '책임성'의 개념을 모호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체험하면 그에 따른 소명이 올 것입니다. 이 때 소명은 책임감으로 나타납니다. 자기 자시에 대해, 가족에 대해, 이웃에 대해, 민족에 대해, 역사에 대해 명확한 기독교적 책임성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211

기독교인의 책임성은 건조한 의무감과는 다른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행하는 실천이 아닙니다. 기독교인의 책임성은 은혜에 대한 응답이므로 언제나 감사의 모양을 가집니다. 책임감은 은혜받은 자의 사명으로, 즐겁고 힘찬 신앙의 표현입니다. 

 

#263

기독교인은 현재의 가능성에만 의지해 희망이나 절망에 처해서는 안됩니다. 신자는 미래가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한 의지를 믿습니다. 현재 자신을 볼 때 아무런 가능성도 없는 하찮은 인간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까? 당신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자신에 대해 포기하지 마십시오. 

 

 

 

 

r*******2 2017.08.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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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은 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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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을 위한 신학강의 “신학과... 나오셨어요?”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마다 듣는 이야기다. 신학을 공부 했다는 자체가 상대방에게는 굉장히 특이하게 느껴지는 것임에 분명하다. 그들에게 자연스레 생기는 편견. “딱딱함, 고리타분함, 재미없음” 안타까운 것은 교회를 다니는 일반 교인들도 신학에 대한 인식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목회자는 ‘신학’을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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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을 위한 신학강의


 

신학과... 나오셨어요?”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마다 듣는 이야기다신학을 공부 했다는 자체가 상대방에게는 굉장히 특이하게 느껴지는 것임에 분명하다그들에게 자연스레 생기는 편견. “딱딱함고리타분함재미없음” 안타까운 것은 교회를 다니는 일반 교인들도 신학에 대한 인식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심지어 어떤 목회자는 신학을 너무 열심히 공부하면 신앙의 열기가 사라진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그러나 그것은 오해다신학은 스스로 가지고 있는 하나님이라는 틀을 깰 수 있으며신앙인을 보다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만든다.따라서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신학을 공부해야 한다이러한 필자의 주장을 보다 적극적으로 말하는 이가 있다바로 󰡔현대인을 위한 신학강의󰡕의 저자 김동건이다.

저자는 신학 공부를 통해 우리가 바라보는 성경의 내용을 일관되게 보게 하며신앙생활과 사회생활을 극복할 수 있게 하고더 나아가 신학은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가 나아갈 지평을 보여준다. (8~11p.)’고 말하며 신앙의 중심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그런데 그 주제들이 우리의 신앙생활과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가역사적 산물인가?,기독교에서 말하는 죄와 율법은 무엇인가기독교인에게 찾아오는 고난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복을 바라는 기도는 잘못된 것인가기독교에서의 죽음과 그 이후의 의미는 무엇인가기독교의 희망과 유토피아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같은 목차들만 보더라도 신학이 우리의 생활과 얼마나 긴밀히 밀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가를 알려준다.

사실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신앙인들은 모두 다 자기만의 신학을 가지고 있다그 신학은 어릴 적 주일학교에서부터그리고 자라오면서 주위의 사람들과 책으로 만들어진 신학 즉 하나님에 관한 체계이다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인들 가운데 잘못된 신학으로 인해 성경과 신앙생활을 한쪽으로 왜곡되게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또한 이러한 신앙인들의 특징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신학과 상이한 신학들을 가지고 누군가 접근하거나 대화하려 할 때 굉장히 불쾌해 하며 거부하며심지어 이단시 여기는 경우도 많다이같은 상황에서󰡔현대인을 위한 신학강의󰡕는 우리의 신학을 균형 잡아주고스스로 가지고 있는 틀(frame)을 깰 수 있도록 도와준다.

󰡔현대인을 위한 신학강의󰡕가 12개의 주제들 가운데 고난타종교나라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아무래도 이 단어들이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특히 한국교회의 강단에서 이 단어들에 대한 선동의 이야기들이 난무하다. “하나님을 잘 믿어야 물질과 건강의 복을 받는다하나님을 잘못 믿어서 이 같은 고난을 겪는 것이다.” 이같은 언급은 잘못된 신학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이웃의 아픔을 조금도 배려하지 않은 독선적인 주장이다저자는 이에 대해 물러서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난은 신앙인이나 비신앙인에게 구별없이 옵니다세상에서의 고난이나 성공이 신앙과 비례하는 것이 아닙니다이 세상적인 어떤 것으로도 신앙을 측정할수 없습니다.”(91.p) 더 나아가 저자는 타 종교의 배려없이 사원에 가서 찬양을 하며 동영상을 찍는 다는지기독교의 신앙을 예수천당 불신지옥의 교리만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대하여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바른 신학을 제시한다.기독교는 모든 성도가 하나님과의 직접적 교류가 가능하다고 여기는 만인 제사장 주의를 따른다따라서 개신교에서 모든 성도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체계 즉바른 신학이 중요하다바른 신학은 우리를 하나님 안에서 더욱 풍성하게 누리고 교제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이제 신학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내려놓고 다시 한번 신학을 진지하게 공부해 보는 것은 어떨까생각해본다.



YES마니아 : 골드 p*******6 2014.05.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