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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과 모더니즘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버지니아 울프를 나는 영화<댈러웨이 부인>과 책<자기만의 방>을 통해 알게 되었다. 영화 속에 나오는 댈레웨이 여인을 보면 왠지 버지니아 울프 이미지를 떨칠 수 없었던 것은 아무 부족할 것 없어보이는 그녀가 자신이 입고 있는 옷에 돌을 넣어 강가에 투신하는 장면이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너무나도 똑똑하게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만의 방>을 읽기까지 그녀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을 뿐 아니라 페미니스트인 줄도 몰랐다. 그녀의 생애을 앎으로 그리고 그녀의 글을 읽음으로 그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의 글을 충분하리라 생각했던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그녀의 글은 몇 번을 읽어보아도 평범한 독자라고 자청하는 나로서는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러가지 그녀의 삶과 배경을 조각맞추기처럼 끼웠지만 그것은 결국 수박겉핥기식에 불과했다.
"우리가 모두 일년에 500파운드를 벌고 자기 방을 갖는다면"이라는 구절은 <자기만의방>에 나오는 구절이다. 19세기 여성으로서 작가의 활동은 남성우월주의에 걸림돌이 되었던 시대, 그녀는 정식으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천부적인 작가적인 재능이 돋보였는 것만큼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녀가 당대 유명한 작가들과의 자리를 함께 하며 만남을 가졌다는 것 또한 그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그녀는 작가로 활동하며 사회적으로 인정받기를 원했다. 여성이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돈이 있고, 자신만의 공간이 주어진다면 사회적으로 활동하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리라는 그녀의 생각은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소크라테스 부인도 소크라테스 못지 않게 인정받는 여인이었지만, 결혼과 출산, 남편 내조와 집안 일로 인해 타인의 질타를 받는 '악처'라는 명사를 얻게 되었다. 자신보다 남편을 위해 자신의 길을 포기했던 여인들이 많았다는 것은 여러 책을 통해 알려진 이야기인만큼 버지니아 울프도 당대 시대적 역사적 상황에 안타까움을 많이 느꼈으리라.
여하튼 버지니아에 대한 표면적인 이해에서 탈피해보고자 이 책을 집어 들었건만, 처음부터 진도의 진척을 보지 못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통해 조지 엘리엇, 제인 오스틴, 샬론 블론테등을 간접적으로 다시 만날 수 있어 기뻤지만, 그녀들과 그녀들의 작품을 평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글은 한마디로 평범한 독자인 나에게 큰 벽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그녀의 벽을 뛰어넘을까? 장애달리기라도 해야하는 것일까... 유명한 작가들과 작품을 통해 버지니아 울프가 바라보는 그녀의 작품에 대한 비평은 예리하고 분석적이며, 통찰력이 대단하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 또한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을 읽었는데 왜 그런 생각을 못했지?'
<보통의 독자>는 버지니아 울프의 수필집이다. 수필집의 특성을 살려 일반인들에게 다가가려고 애썼던 글인 만큼 독자 나름대로 그녀의 글을 느껴보는 것이 중요할 것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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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문학의 대표주자로서 페미니즘과 모더니즘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버지니아 울프의 글 을 『보통의 독자(2011.4.11.함께읽는책)』로 처음 만났다.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은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글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보통의 독자』에서 울프가 전제로 한 독자는 특별한 문학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 독자(p6)라고 쓴 소개 글을 보고 이 책이라면 나도 이해할 수 있겠거니 기대했다. 그래서 드디어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만난다는 생각으로 몸과 마음도 한껏 부풀어 있었다. 책을 받아 들기 전까지, 첫 페이지를 넘겨 읽기 시작하기 전까지 얼마나 산뜻한 기분이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책을 읽는 내내 울프가 전제로 한 보통의 독자 즉, 일반 독자는 어느 정도의 수준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는지가 미치도록 궁금했다. 아니 더 솔직하게 얘기하면 내가 일반 독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인 것은 아닐까 의심스러워졌다. 계속 머리를 갸우뚱 거리면서 책장을 넘겼다면 이해하실까. 아니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읽었다고 말하면 이해하실까. 언젠가 울프의 소설에서 느껴지는 난해함 때문에 그녀의 작품 가치를 깎아내리는 무리도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왜 그러한 이야기가 나왔는지 이유를 절감하는 시간이었다.
『보통의 독자』는 버지니아 울프의 첫 번째 수필집이라고 한다. 제인 오스틴, 조지프 콘래드, 몽테뉴 등과 같은 작가와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 등과 같은 작품에 대한 울프의 생각들이 책 속에 담겨있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울프의 평가는 단정하고 예리하며 진지하다. 그러나 울프에 대해서 알지 못하듯이 울프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작가와 작품도 모르는 게 더 많았기 때문에 『보통의 독자』가 아무리 편하게 쓴 에세이집이라고 하더라도 내게는 너무나도 이해하기 힘든 글이었다. 『보통의 독자』를 사자성어로 표현하자면 난공불락, 바로 이것이다!
솔직히 지금까지 버지니아 울프에 관해서는 작품보다는 생애에 더 관심이 있었다. 평생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았던 삶, 어느 날 산책을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은 그의 마지막 등 저자의 불행한 이력이 더 궁금했다고 하면 너무 속되다고 할까. 그런데 이번에 『보통의 독자』를 읽으면서 그녀의 작품 세계가 궁금해졌다. 나는 내게 온 이런 변화를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소득으로 여기려고 한다.
나는 읽은 책만을 꽂아두는 책꽂이가 따로 있다. 읽어야 할 책과 분리해서 보관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그런데 『보통의 독자』는 그 곳으로 직행하지 않는다. 이해하지 못했으니 읽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울프가 칭하는 보통의 독자 수준까지는 오르지 못하더라도 어떤 의미인지는 이해하고 싶은 희망이 내포된 행동이다. 『보통의 독자』가 언제 그 곳으로 가게 될지는 나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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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평상시 그녀의 색깔을 알지 못했던 나는 에세이식으로 쓰여진 이 책을 읽는데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 그 이유는 책을 잡식성으로 읽는지라 어려운 책도 거리낌없이 들때가 많았는데... 그녀의 책은 보통의 독자가 읽기엔 심히 심오했다. 그래서 읽다가...다시 돌아가서 다시 읽고... 뒷부분에서 이해가 안되면 앞부분에서 다시 읽고. 또하나의 이유를 들자면 그녀가 이야기하는 작가의 책을 전부 읽어보았다면 그녀의 생각을 더 많이 더 빨리 알아챌 수 있었을텐데 나는 그녀가 이야기하는 작가들의 책을 1/3정도 읽었다하면 많이 읽었다 할정도로 많이 접해보지 않았다. 그래서였나보다. 나에게는 그녀의 이야기가 심오하게 무거웠다. 그런데 그녀는 나를 여기서 멈추게 하지 않았다. 내가 읽어보지 않았던 책들을 읽어보고 싶다는 다짐을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 하게 되었다. 아... 쉬운 책들은 아니지만 내가 언젠가 한번쯤은 꼭 읽어야 하는 책들이리라 생각하게 되었다. 아마도 나는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그녀에게 설득되었나보다. 이 책은 굉장히 재미있고 유쾌한 책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만의 따스한 감성이 숨어있고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더 많은 이해를 하기 위해서 노력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책이다.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나는 그녀가 이야기하는 보통의 독자이고 싶었고 그만큼의 지식량을 갖고 싶었다. 적어도 그런 나로 한걸음 나아가게 하는데는 톡톡한 역할을 한 것 같다. 책을 읽는 독자를 지식을 향해서 한걸음 나아가게 하는 자극을 주는 것. 그것이 그녀의 매력이자 이 책의 매력인 것 같다. 보통의 독자를 통해서 처음 만난 그녀는 그녀가 썼던 다른 책도 궁금해지게 만들었고 그녀가 이야기하는 저자들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지식에 대한 갈망을 느끼게 만든 것이다. 지금까지 그저 평범하게만 책을 읽었던 독자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히 많은 도전을 주는 것같다. 아마도 올해 그녀를 만났기에 나는 조금 더 책에 욕심을 내지 않을까 싶다. 이런 마음을 많은 사람들이 들었으면 좋겠다. 자신이 책을 향한 도전을 더욱더 받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그녀는 당신으로 하여금 궁금증을 일게 만들 것이고 당신의 발걸음이 서점을 향하게 만들 것이고 당신이 조금이라도 더 책에 대한 열망이 일게 만들어 줄것임에 틀림이없다.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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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짓궂게 시작해 볼까? 버지니아 울프의 <보통의 독자>가 과연 “보통의 독자”를 위한 걸까? 모두 9편의 장편 소설과 수백편의 에세이와 단편을 쓰고, 빼어난 문학평론가로도 알려진 그녀가 쓴 에세이는 아쉽게도 보통의 독자를 위한 건 아니었다. 자수하건대 읽으면서도 내내 버거웠다. 또 하나 특이할만한 점은 버지니아 울프 역시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음에도 하도 이름을 많이 들어봐서 친숙한 작가라는 점이다. 그렇다, 난 <보통의 독자>로 버지니아 울프와 처음으로 만났다. 그녀가 생각하는 보통의 독자를 뛰어 넘기 위해서는 보잘것없는 교육이 아니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야 하며, 어느 정도의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일시적 즐거움으로 책을 읽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이 모든 생각이 바로 보통의 독자가 수행하는 독서의 방식인 것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녀의 생각을 따라 잡기 위해서는 문학의 총체적인 측면에 대한 냉정하면서도 포괄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다시 생각해보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아, 그래도 의식의 흐름 기법과 양성애자 그리고 1941년 정신질환으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이 작가는 보통의 독자에게도 그들 나름의 ‘생각과 의견’이 있을 수 있다는 말로 조금이나마 위로를 해준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이라고는 달랑 마지막 작품이 된 <설득> 하나를 읽은 이에게 제인 오스틴의 전작을 오가는 버지니아 울프의 냉철한 분석은 역시 쉽지 않았다. 혹자는 톨스토이와는 달리 나폴레옹 전쟁이라는 정말 특별한 소재가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 등장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건 사실이다. <설득>에서도 나폴레옹 전쟁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다지 큰 비중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제인 오스틴은 나폴레옹 전쟁 같이 한 시대를 풍미한 대사건보다 시골 마을의 관습, 사소한 것 따위가 더 중요했을 지도 모르겠다. 버지니아 울프는 제인 오스틴에 대한 분석을 통해 영문학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친절, 진실 그리고 성실 같은 가치를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제인 오스틴에 대한 평을 읽으면서, 문득 이탈리아 출신 문학평론가이자 작가인 이탈로 칼비노의 평론이 떠올랐다. 칼비노가 문학 자체에 대한 조금은 딱딱하면서도 지루한 느낌의 평을 했다면,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작품에 다가선다. <설득>의 본질을 거친 풍자와 생경한 코미디가 뒤섞인 묘한 아름다움과 묘한 지루함으로 풀어내다니! 정말 놀랍지 않은가. 마지막에 제인 오스틴이 요절하지 않았다면 어땠을 까라는 가정에 대해 일축하는 장면 역시 그녀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생의 절정에서 작품 활동에 종지부를 찍게 된 운명 그대로 받아들일지어다. 개인적으로 늘 어려워하는 러시아 문학에 대해서도 그녀의 신랄한 비평을 계속된다. 러시아 문학의 우월성을 이야기하면서 실제로 러시아 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번역인가 반역인가 하는 해묵은 논쟁은 차치하고서라도, 번역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에 대해 그녀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녀의 문학 전반의 대한 폭넓은 시선을 따라갈 수 없는 독자로서는 그녀가 다시 한 번 비슷한 사례로 비평한 그리스 시와 희비극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그녀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겠지만, 19세기 말을 사는 사람이 어떻게 수천년 전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당대인과 정확한 교감을 할 수가 있겠는가. 다른 언어로 번역되면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이 유머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정말 아쉬운 일일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해외 문학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역시 다년간에 걸친 문학적 훈련과 작가로서의 통찰이 돋보였다. 수필집인 <보통의 독자>만으로는 그녀의 작품 세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할 것 같아, 마침 가지고 있던 단편집에 실린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맛보기로 살펴볼 수가 있었다. 너무 짧은 작품이라 그녀의 문학 세계를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이탈로 칼비노 때와 마찬가지로 버지니아 울프의 책 역시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전문작가의 비평은 보통의 독자에게 소화불량인 모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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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그림이 첨엔 골짜기인 줄 알았어요. 밝은 별이 빛나는 밤의 정경을 그린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제가 골짜기라고 여겼던 건 바로 책 무더기였습니다. 차곡차곡 쌓인 책이 깊은 골짜기를 이루고 있는 걸 보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어머나, 세상에! 그리고 제 시선이 향한 곳은 그 책 무더기 사이에 놓인 작은 책상이었습니다. 노란빛 스탠드가 밝게 켜진 책상, 거기로 다가오는 한 여인의 그림자. 왠지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어요. 학창시절 겁도 없이 덤벼들었다가 난해함의 소용돌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포기하고 말았던 버지니아 울프, 이번엔 그녀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 예상은 여지없이 어긋나고 말았습니다. 책의 서두에 ‘보통의 독자’란 ‘특별한 문학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 독자’이고 격식을 차리지 않고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듯‘ 썼다는 문구에 너무 안일하게 생각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책은 특별한 문학 훈련을 받지 않은 평범한 제가 읽기에 무난한 그런 글이 아니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제인 오스틴, 다니엘 디포, 몽테뉴, 조지 엘리엇, 조지프 콘래드를 비롯한 작가를 비롯해서 브론테 자매의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 셰익스피어와 러시아 작가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요. 겉으로 드러난 형식만 보자면 <보통의 독자>는 여느 수필이나 문학 비평과 다를 바 없습니다. 문제는 내용의 깊이입니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문학작품을 읽을 때 글 속에 녹아있는 주제와 더불어 저자의 삶, 행간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데요. 그녀의 글은 각각의 작가의 삶과 당시의 시대상에 더 비중을 두었으며 하나의 장면, 배경 같은 것들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풀어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관심 있는 작가이거나 읽었던 작품의 경우에는 그녀의 글이 난해할지라도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동안 알지 못했던 작가이거나 읽지 않은 작품에 대한 글을 읽을 때는 마치 몇 겹의 미로 속에서 빠져나갈 길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것처럼 내가 이 정도 밖에 안 되나...절망적인 기분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책을 읽다가 덮고 읽다가 한숨 쉬고...이게 뭐가 보통이란 말이얏! 외치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예전에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를 읽었을 때가 생각납니다. 정치인이면서 한 정당의 대표인 그의 청춘시절엔 어떤 책이 있었을까...궁금해서 읽었다가 ‘이해하기 어려움’에 난감했던 적이 있는데, <보통의 독자>에 비하면 그나마 나았던 것 같은데요. 그건 아마 유시민의 ‘청춘’과 나의 ‘청춘’이 달랐듯이 <보통의 독서>도 마찬가지인 건 아닐까 싶습니다. ‘보통’의 의미와 기준이 다른 거지요. 버지니아 울프가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당시 최고의 지성인으로 통하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엄청난 책 무더기 속에서, 수준 높은 독서와 깊이 있는 사색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 그녀는 작가의 길을 걷게 됐고 창작의 고뇌와 고통을 겪으며 ‘의식의 흐름’이라는 새로운 기법을 창안해 낼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여겨집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생각하는 보통의 수준이 되지 못하기에 <보통의 독자>는 험난하고 힘겨운 책읽기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소득 없는 책읽기도 아니었습니다. 언제가 되더라도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만났을 때 그녀의 문학과 삶을 이해하는 밑바탕이 되어줄 거라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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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작가의 산문집에 대한 기대는 크다. 해서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책을 선택한 이는 많을 것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작가이기에 그녀의 소설을 읽은 것처럼 여겨질 정도다. 『자기만의 방을 』초반을 읽고 멈추기를 반복한 후 아직 잡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자신을 ‘특별한 문학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 독자’, 즉 ‘보통의 독자’라 칭하며 들려주는 문학 이야기라면 더욱 끌리기 마련이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은 결코 보통일 수 없는 책이다. 반면에 버지니아 울프의 ‘첫 번째 산문집이자 최초 완역’이란 문구로 출판사의 광고 전략은 맞아 떨어졌다 하겠다. 쉽게 말하자면 버지니아 울프의 독서기이며 어렵게 말하자면 비평집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하니 정말 보통의 독자인 내게 그녀의 글은 어렵고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재미있는 책이 절대 아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관심을 갖고 읽은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오만과 편견』의 작가 제인 오스틴, 『폭풍의 언덕』과 『제인 에어』의 브론테 자매, 조지 엘리엇, 사상가인 몽테뉴처럼 잘 알려진 작가와 소설을 비롯하여 영국의 대표적 작가 셰익스피어와 러시아 문학, 현대 소설들을 언급하고 있다. ‘러시아 인의 관점’이란 제목으로 쓴 글에 인상적인 구절이 있다.
‘하나의 문장 속에 있는 모든 단어를 러시아 어에서 영어로 바꾸고, 감각을 약간, 각 단어의 소리와 무게, 다른 언어들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단어의 강조 등을 완전히 바꾸었다면, 조악하고 생경한 감각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렇게 처리된 위대한 러시아 작가들은 지진이나 열차 사고를 당한 사람처럼 그들의 의복뿐 아니라 더 미묘하고 더 중요한 것 - 그들의 태도, 작중 인물들의 특징- 까지 빼앗긴다. 그리고 남아 있는 것은 영국인들이 열렬한 숭배를 통해 입증해 온 것처럼 매우 강력하고 매우 인상적인 것이지만, 이들 손상을 감안할 때 우리가 잘못 귀속시키거나 왜곡하거나 틀린 강조를 하지 않는다고 확신하기 어렵다.’ p. 355
개인적으로 이 글은 번역에 관한 것이라 생각한다. 언어가 가진 고유성과 문화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변화되어 본래의 의미 전달에 제대로 되지 못할 수 있다고 그녀는 말하고 있다. 자유자재로 외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보통의 독자들의 입장을 잘 대변하는 글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이 부분은 보통의 독자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녀가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걸 생각할 때 이처럼 폭넓고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었던 건 문학자이자 철학자인 아버지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의 서재의 수많은 책들이 그녀를 성장시켰을 것이다. 그녀는 정말 대단한 독자임이 분명하다. 보통의 독자란 제목 때문에 지극히 평범한 많은 보통의 독자들이 도전하고 싶은 책일 것이다. 분명하게 말하자면 이 책은 산문이라기 보다는 비평집에 가까운 책이니 진중히 선택해야 할 것이다.
고전에 강하거나 책 속에 언급된 작품들을 이미 읽은 독자라면 충분히 공감하고 반가울 내용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줄거리나 감상뿐 아니라 소설 속 등장 인물과 작가의 성향을 분석하고 시대적 상황과 배경까지 접목시켰다. 버지니아 울프만이 가진 예리함과 섬세함이 잘 드러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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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는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을 저미게 만든다. 그녀의 삶이 자살로 끝나서 일까? 어찌 됐건 여류 작가가 많지 않던 시대에 살았던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는 그 어떤 책보다도 섬세하고, 버지니아 울프만의 시각이 담겨 있다. 이 보통의 독자 책은 그녀의 최초 수필집이다. 그녀는 보통의 독자라는 책에서 자신이 보통의 독자가 되어 있다. 그래서 마치 그녀의 독후감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책을 고를 때 아무래도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유명한 사람들의 그 책에 대한 평일 것이다. 유명인들의 식견에는 내가 고른 책이 어떤 느낌일까? 하는 그런 기분으로 그 평들을 읽게 된다. 이 책 또한 유명 책들에 대한 버지니아 울프만의 서평이 담겨 있다. 그녀만의 의식적 흐름과 섬세한 시각이 이 책의 매력일 것이다. 이 책 안에는 샤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처럼 역대 유명 작가의 책들 뿐만 아니라 여느 다른 작가의 책들과 다양한 나라의 책들까지 이 책에 안에는 담겨 있다. 그로 인해 그녀가 얼마나 책읽기를 좋아했는지. 그리고 그녀의 책 읽는 습관이 어느 한 곳에 치중하기 보다는 폭넓은 책 읽기를 좋아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 또한 보통의 독자가 인가’하는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보통’이라는 단어가 난해한 의미를 내포하듯. 보통의 독자가 되기 위해서는 쉬울 수도 있지만, 쉽게 접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의 책을 통해 책을 접하는 태도나 시각을 다시 새롭게 점검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정말 즐거운 책 읽기 시간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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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헌책방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세월]을 구입했다.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상당히 익숙하다. 누구나 한번쯤은 그의 작품을 읽어봣을 걸로 생각을 한다. 아마도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라는 시 때문일 수도 있다. 버지니아 울프를 모르면 어쩐지 무식할 것 같은 생각을 나도 모르게 가졌다. 그래서 , 그의 책을 구입한 것 같다. 세월이라는 책은 두께도 만만치 않지만, 내용은 더욱 녹녹치 않다. 깨알같은 글씨를 그냥 읽어 나가려니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결론은 중도 포기였다. 지금도, 나의 책장 어딘가에 고히 모셔져 있다. 그의 대표작 [댈러웨이 부인]은 읽어 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그의 작품은 난해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났다. [보통의 독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찾아온 버지니아 울프. 처음 이 책의 소개글을 보고 '보통'이라는 말이 눈에 확 들어왔다.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에도 '보통'수준의 책이 있었구나. 그렇다면, 나 같은 보통사람도 읽을 수 있는 책이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과감히 도전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풍차를 향해 뛰어가는 돈키호테 보다도 더 무모한 행동이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결코 '보통'이 아니었다. 그의 방법은 더욱 잔인했다.
책의 서문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특별한 문학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 독자를 상대로 한 책' 말 그대로 보통의 독자들을 위한 책이었다. 한 때 '보통사람'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보통사람을 위한 보통사람의 정치를 한다는 그 보통사람은 결코 보통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보통의 독자 또한 지극히 작가의 주관에 불과했다. 문학적 훈려과 소양이 부족한 사람들이 이해하기에 버지니아 울프라는 산은 그저 높고 가파르기만 했다. 1925년에 발간된 버지니아 울프의 첫번 째 수필집인 보통의 독자는 저자의 작가관을 느낄수 있는 책이다. 마치 장정일의 독서일기 와 같이 유명작가의 작품들이 많이 언급되고 있다. 제인오슨틴의 [오만과 편견],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샬롯 브론테의 [제인에어]와 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들의 이야기를 아주 익숙하지 않게 펼치고 있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그의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었던 혹은 이미 읽었던 책들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비범함 재주를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몽테뉴와 여러명의 러시아 작가들,현대의 무수히 많은 작가들까지 그의 손을 거쳐가면서 새롭게 탄생하고 있다. 또한 작품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깊은 통찰력은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너무도 뛰어난 작가의 심도 깊은 이야기에 보통의 독자가 아닌 나로써는 책을 읽었다는 자체만으로도 만족해야 할 지경이다. 아마도, 지극히 얕은 내 문학적 소양에 버지니아 울프는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존재였음을 깨닫게 되었다.하나 위안을 삼을 수 있는 점은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작가들을 슬쩍이나마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혹시라도 다음에 또 만날 기회가 있다면 그 때는 부디 지금과 다른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은 바람이다. 물론 부단히 노력을 해야 할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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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버지니아 울프에 관한 약간의 지식이 필요하다. 현대인들에게 그녀는 영국의 대표적인 작가로 기억된다. 그런 그녀가 자신을 ‘보통의 독자’라고 칭하는 것이 의외일 것이다. 사실 버지니아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 문학자이자 철학자인 아버지로부터 받은 재능과 교육이 전부라 할 수 있다. 그녀가 천재적 작가인지는 모르겠지만 매우 섬세하게 글을 다뤘고 출간되는 작품마다 큰 호응을 얻었던 것을 보면, 분명 훌륭한 작가란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글을 쓰는 작업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대중의 호응은 글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그녀의 글은 지금까지도 사랑받을 만큼 매력적이며 특별하다. 여성 작가로서 당당히 인정받았던 그녀지만 개인적인 삶은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을 이해하고 온전히 사랑해주는 남편이 곁에 있고, 원하는 작품을 쓸 수 있는 여건을 지녔지만 심각한 신경증과 불안 증세로 인해 결국 집 근처 우즈 강에 투신하며 삶을 마감했다. 정말로 평범한 보통의 독자인 나로서는 창작의 고통을 이해하기 어렵다. 버지니아 울프의 삶이 치열한 예술가의 고뇌 때문인지, 인간적인 고통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마지막 선택이 최선이라고 할 만큼 힘들었다는 점은 너무도 안타깝다. 버지니아 울프의 <보통의 독자>는 그녀가 관심을 가진 작가와 작품에 관한 소견이며 일반 독자들을 위한 안내서라 할 수 있다. 보통의 독자는 아니지만 비평가도 아니기 때문에 다른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표현해낸다. 동일한 책도 독자마다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듯이 책에 소개된 작품들도 버지니아 울프의 시각을 통해 새롭게 탄생된다고 볼 수 있다.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와 에밀리 브론테의<폭풍의 언덕>,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나 <악령>,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처럼 알만한 작품은 좀 더 공감하기 쉽지만 그 이외의 작가나 작품은 전적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독특한 시각을 본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한다. 이 책을 통해 그녀가 전달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문학에 관한 견해였을 것이다. “미래의 걸작이 만들어지는 것은 현재의 공책으로부터이다.” (432p) 즉 현재의 책들을 비평가들처럼 판단하기보다는 한 발짝 물러나 문학 그 자체에 관한 흥미로움을 찾아서 걸작을 만들 수 있는 준비를 하자는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보통의 독자>는 그녀만의 문학 세계뿐 아니라 그녀의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몽테뉴에 관한 글 중에서 그녀의 내면을 잘 드러낸 부분이 나온다. “......우리는 잠시도 그의 책이 바로 그 자신임을 의심할 수 없다. 그는 가르치기를 거부하고 설교하기도 거부했으며,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 같을 뿐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이 모든 노력은 그 자신에 대해 쓰고 소통하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바로 ‘겉보기보다 훨씬 울퉁불퉁한 길’이다. 왜냐하면 자신과의 소통이 지니는 어려움 너머에는 자신으로 존재하는 최상의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74p) 버지니아 울프도 그녀 자신이 바로 작품이며 세상과 소통하는 길이었지만 삶 자체에서는 자신과의 소통이 늘 어려웠고 극복하기 힘들었던 것은 아닐까? 버지니아 울프의 첫 번째 에세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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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참 예쁘다. 그런데 이 책, 참 어렵다.
버지니아 울프의 첫 번째 에세이집, 『보통의 독자』. 난해하기로 유명한, 그래서 왠만하면 한 번 읽기 시작한 책은 끝을 보고야마는 나조차도 몇 번이고 두 손 두 발 다 들게 만든 버지니아 울프임에도 불구하고 '울프가 전제로 한 독자는 특별한 문학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 독자'이며 그렇기 때문에 '격식을 차리지 않고 열린 자세로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듯 썼다.'라는 추천의 글에서 용기를 얻어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왠걸! 어렵다. 문장이 긴 데다 읽다보면 생소한 표현도 많고 한국말 같지 않게 느껴질 때도 있다. '아무리 쉽게 썼다지만 버지니아 울프 맞군.'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고, 이 책이 번역서임을 여실히 보여준 번역가를 원망하게 된다. 여하튼 울프가 가정한 '보통의 독자'들보다 나, 수준이 한참 떨어지는 걸까,라는 야릇한 자괴감을 안고 책을 읽어 내려갔다. 사실 읽다가 중간에 한 번 포기하고 다른 책 두어 권을 읽은 후 용기를 그러모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 스스로를 '장하다'고 느낀 것은 오랜만이다.
버지니아 울프(1882~1941)는 영국의 여류 소설가이자 비평가다. 서구 현대 문학의 기틀을 마련한 대표적인 모더니스트 소설가인 그녀는 현대 소설의 특징적 문학 기법인 의식의 흐름 기법(인간의 정신 속에 끊임없이 변하고 이어지는 주관적인 생각과 감각을 (특히) 주석 없이 설명해 나가는 문학적 기법)을 구사한 장편소설, 『등대로To the Lighthouse』, 『댈러웨이 부인Mrs. Dalloway』 등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정신 질환이 심해져 자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소설, 서평, 전기,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다수 발표했는데 1904년과 1922년 사이에만 500편이 넘는 수필과 서평, 그리고 논문 등을 당대의 주요 문학 저널에 발표했다고 한다. 쓰기 위해서는 읽는 것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법. 그렇다면 버지니아 울프는 읽고 쓰는데 그야말로 '올인'했던 사람이 아닌가!
『보통의 독자The Common Reader』를 읽는 것은 버지니아 울프가 마음가는 대로 글을 끼적여 놓은 일기장을 몰래 엿보는 것과 같은 짜릿함을 선사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특정 주제에 대해 떠오르는 대로 생각의 가지를 뻗어나가는 그녀를 내 눈 앞에 그려보게 된다. 버지니아 울프는 스스로를 작가가 아닌 보통의 독자로 가정하고 제인 오스틴, 샬롯 브론테와 에밀리 브론테 자매, 다니엘 디포, 조지프 콘래드 등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작가들과 일반에게 덜 알려진 몇몇 작가들의 삶, 그리고 그들이 쓴 작품을 포함한 문학세계 전반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있다. 이와 더불어 러시아 문학, 그리스어를 배우는 것, 당대의 문학에 대한 자신의 의견 등을 막힘없이 개진하기도 한다. 책을 읽으면서 버지니아 울프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얼마나 깊게 생각을 하는 사람인가를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는 버지니아 울프가 이미 고전이 되어버렸지만 그녀의 글은 스스로를 '현대인'으로 여기고 생각을 전개시키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역시, 작가와 시대를 아우르는 문학과 사회에 대한 빼곡한 지식을 지닌 버지니아 울프가 가정한 '보통'의 독자와 내가 생각하는 '보통'의 독자와의 간극은 메울 수 없는 것일까? 솔직히 말해 보통의 독자인 내가 이 책을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버거운 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