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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있어 정치라는 용어나 정치가 표방하는 일련의 프로파간다는 상당히 익숙한 존재이다. 역사적으로 소유나 사유재산이라는 개념이 태동한 청동기시대(물론 그 이전의 석기시대부터 어렴풋한 개념은 존재했겠지만)부터 지배와 피지배라는 구도가 틀을 잡기 시작하면서 통치와 지배 그리고 이에 대한 복종, 협력, 저하등의 사회적 활동을 총칭하는 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비록 그 각론적으로 지향하는 방법론에서 동서양의 약간의 차이는 존재하겠지만 큰 원론적인 틀에서는 대동소이하게 흘러왔다.
우리는 그동안 정치에 대한 담론에서 수도 없는 공방을 해왔으면서도 실상 그에 대한 원초적인 논의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2010년 하바드 교수인 마이클 샌델의 <정의는 무엇인가>로 인해 촉발된 사회, 개인의 정의에 대한 담론의 논의가 그나마 사회적으로 많은 주목과 참여를 거치면서 인간의 사회활동 본연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번 <정치의 생각>을 통해서 정의의 담론을 좀더 확대해볼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접하게 된다. 정치철학의 큰 틀속에서 정의, 자유, 평등, 공동체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각론적인 담론들에 대한 다양한 논거들에 대한 설명과 이들 각론적인 부분들을 조정자의 역활로서 이끌어가야 하는 정치철학의 원형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 많은 사유거리를 던지고 있다.
하지만 서양철학 특히 근대이후 전개된 철학적 사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이 책의 내용을 숙지해 나갈 수 있을까라는 점에 의문이 든다. 물론 철학에 대해서 거의 일자무식인 개인적인 무지함을 떠나서도 솔직한 심정으로 일독을 한다는 자체가 곤역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지금 서평을 올리는 이 순간 자체를 회피하고 싶을 정도의 난해함에 대한 정리자체가 힘이든다. 차라리 동양권 특히 유교문화권속에 고착된 철학적 선입견을 탓하고 싶을 정도로 너무 전문적인 영역으로 비쳐지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러면들이 자꾸 마이클 샌델의 저작과 비교되는 것은 일반대중에게 어떻게 다가가는가에 대한 방법론적인 차이점일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역시 상당히 어려운 담론을 담고 있긴 하지만 적절한 예시와 쉬운 용어의 선택으로 형이상학적인 사유를 접근성 용이하게 전파했다면 정치의 생각은 이러한 장치적인 결여가 자꾸만 아쉽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편차이기도 하다는 점을 밝힌다.
전반적으로 저자가 논거하는 정의, 자유, 평등, 공동체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담론은 근저에는 물론 서양철학의 기초적인 바탕이 깔려있어 동양권 특히 유교문화권인 우리에겐 다소 상충되는 요소들이 존재하고 있고, 기본적인 서양철학 특히 현대철학적인 기초체력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선 다소 내용들을 따라잡기엔 버겁게 느껴지는 것 역시 사실이다. 물론 독자들의 편차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쉽게 접근해서 이해하기엔 상당히 곤역스러운 저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의 키워드인 정치와 그를 둘러싼 정의,평등,자유라는 담론에 대한 총괄적인 이슈들을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특히 정치철학 자체가 전무한 국내정치판을 생각할때 필히 한번쯤은 일독을 해야할 책이기도 하다. 그 만큼 이 책에서 논거하는 담론들과 우리의 현실 정치철학의 괴리감은 크고 기초체력이 미비하기 때문이다. 과연 정치인들이 이 책을 읽고 어떤 점을 느낄지 의문스럽지만 시민참여적인 입장에서 일반 대중들에겐 정치을 바라보는 시각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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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정치에 가까이 다가가서 조석현·김영은|마음풍경 예술철학 오래도록 정치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싫어 떠났었던 머리는, 책을 읽으면서 거부증상이 나타나곤 했다. 거부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고, 조금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하는 정도라면 어떨까. 지금 우리에게 닿아있는 정치, 그리고 정치의 생각은 정치인의 생각은 아닐 듯 하다. 이 당 저 당을 기웃거리는 동안 국민은 간접세의 노예로 전락되어 점점 가난해지는 데도, 정치인들은 생각이 없는 듯 하다.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생각이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은 정치라 할 수 없다. 권력을 얻기 위한 행태만 자주 보일 뿐이며, 국민 위에 군림하는 법과 정치는 경제조차도 검게 만들었지 않았던가.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도록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정당한 역할이다, 라는 책 속의 문장은 국가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하게 한다. 우리의 국가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존재하는가? 군림하는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은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정치는 무엇인가? 더 잘 살게 하기 위함이라 할 때, 잘 산다는 정의는 UFO와 다르지 않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도 사지 않으면 안되는 이상한 심리를 사회 전반에 뿌려놓은 것은 잘못이 아니던가.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쓴 프랑스 귀족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과거에 프랑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재산을 자식에게 그대로 상속하지 않고 자식들에게 고루 균등하게 분배하는 체제는 위대한 사상가들을 더 적게 배출하거나 전혀 배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라고, 저자는 균등에 대한 의견을 밝힌다. 앞서 니체의 이야기를 곁들이는 데, 덕은 노예에게 적합한 것이라는 섬뜩한 표현이 그것이다. 위의 균등함과 덕과 노예의 관계는 미묘하지만 복잡한 것이 아니다. 복잡하게 보이는 신기루인데도, 위대함을 낳을 수 있는 상속에 대한 견해가 민주주의에 걸맞는지 살펴보아야 한다는 암시를 곳곳에 묻어두었다. 하이에크와 사회정의는 철학자들이 범주상의 오류(categorical mistake)이라고 부르는 종류의 혼돈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정의한 이유는 사람은 정의로운 행위를 수행할 때 정의롭게 행동한다는 귀결을 그는 보았을 듯 싶다. 정의로운 행위라는 것은 서양보다는 동양철학에 더 알알이 박혀있다. 서양의 철학은 방법론적이고 공격적이며 이해타산적인 것이 적지 않다. 그러나 동양의 생각은 균형에 대한 사유를 오래도록 유지해왔다. 물론 전쟁이나 뇌물이라는 현상은 같지만, 그 땅에 사는 개개인에게는 선함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고 생각해왔다. 서양의 논쟁과 토론방식이 이 세상을 살기 위해 습득해야 할 방법이지만,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하는 것은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서가 아니겠는가. 체스 선수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초보 선수들은 이기려고 하고 최고 선수들은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상대방이 지도록 하죠. 그게 고수입니다. 초보는 이기려고 하지만 고수는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김현구 옮김, 남상구 감수 '블랙스완에 대비하라' 중에서 ,동녘사이언스)의 문장을 가만이 음미해본다. 정치나 경제는 초보에 가깝다. 늘 그래왔던 것같다. 고수라고 하지만 언제나 초보였던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이기려고 했지 지지 않으려고 한 적이 없다. 하우스 푸어라든가 자동차 연료비, 대학 등록금은 틈만 나면 오를 기세다. 통신비 또한 매한가지다. 통신이 더 잘 살게 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면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신상품이라는 명분, 새 제품이라는 환상이 심어놓은 것은 소비문화를 조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는 이런 소비문화를 뒤에서 밀어준 댓가로 걷어들인 세금으로 운영되는 가상에 지나지 않는다. 불확실성이 가장 높은 곳이 정치이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이러한 이해타산이 깊숙히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이에크는 국가가 쓸데없이 참견함으로써 재화의 분배를 왜곡시키지만 않는다면 자유롭게 상호 작용하는 개인들은 카탈락시(catallaxy, 자발적 교환질서) 혹은 개인들의 두뇌에 흩어져 존재하는 정보와 지혜를 유요한 지식으로 전환시켜주는 자생적인 질서를 만들어낼 것으로 본다고 했다. 나도 여기에 동의한다. 국가가 개입함으로써 더 나아진 것보다는 그렇지 않은 것이 많아서였다. 빨라지는 것, 경쟁력이라는 화두가 좋은 것일 수 있겠지만 더 좋은 것은 아니다. 롤스는 <정의론,1971>과 <정치적 자유주의,1993>의 중요한 두 권의 서적을 발표했다. 이 책은 1,000 쪽이 넘는데, 그의 아이디어는 원초적 상황(original position)과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이다. 어떤 정의가 공정한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선택될 정의의 원칙들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과연 어떤 정의의 원칙들을 선택할 것인지를 추론해보는 것이라 했다. 어려운 상상 중 하나다. 개연성과 자의적 해석이 다분히 들어갈 여지가 있으나, 그 벽에 창문과 문을 만들면 공정이라는 세계가 있을 것이라 본인도 믿고 있다. 이는 허블 망원경이 수 많은 별들을 조사하면서 지구와 같은 행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내린 결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주에 지구와 같은 별이 없다는 것으로 지구를 더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돌아왔다는 과학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롤스는 합리성의 능력(the capacity of rationality)이 가치관을 형성하고 수정하며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견해 중 하나다. 균형과 정의에 대한 선택을 할 수 있으나 개인적 좋고 싫음으로 숙덕숙덕이 되어선 안되는 것이다. 이런 자각自覺은 누구에게나 있고, 어떤 사회를 이끈다는 이들은 더 깊숙히 받아들여야 할 덕목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막연한 합리성은 균형도 아니고 균형감각도 아니다. 이 책의 전반부는 이런 질문이 만든 길이다. 길을 걷기가 그래서 매우 어렵다. 적지 않은 생각들을 해야 하고, 한 생각들 조차 반성으로 이어지는 것이라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해서다. 그러나 미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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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만큼 이 사회는 정의에 목말라 있거나, 정치철학과 같은 인문학, 사회과학 분야에 관심을 갖는 독자들이 많아진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에는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일종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소비되고 있는 느낌도 강하다) 그것을 필두로 하여 그 뒤로 정치철학 관련 책들이 제법 출간되고 있다. 정치철학은 이제 정치가와 학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종의 인문학적 지식으로 자리잡은 듯 하다. 애덤 스위프트의 <정치의 생각(원제 Political Philosophy)> 은 그러한 정치철학에 관한 입문서로, 정의와 자유, 평등과 공동체, 그리고 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정치와 사회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들에 대해 명료하게 서술하고 있다.
1부에서는 사회 정의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부분만 읽으면 샌델의 책을 읽을 때와 약간 비슷한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샌델의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의'를 주요한 테마로 다룬 반면 이 책은 정치철학에 있어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여러 개념들에 대해 각각의 장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은 곧 사라지게 되었다. 사회 정의가 정치철학의 핵심 주제가 된 배경과 함께, 하이에크, 롤스, 노직의 사회 정의에 대한 이론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회 정의라는 관념 자체를 부정하는 하이에크의 입장에 대하여, 저자는 불평등한 상황 혹은 정의롭지 못한 상황을 비록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결과를 낳은 정치적 행위에 따른 책임의 문제는 외면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비판하고 있다. 또한 다른 책에서도 자주 접했던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에 기반을 둔 롤스의 '공정으로부터의 정의'와 그 한계를 설명하며 롤스와 가장 빈번하게 대비되는 노직의 '자기 소유권적 개념'에 기초한 정의론을 권리로서의 정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여담이지만 내게 있어서 노직의 정의론은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상당히 냉혹한 것으로 느껴졌다.
2부에서는 자유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사야 벌린이 구분한 '~으로부터의 자유'인 소극적 자유와 '~할 자유'인 적극적 자유의 이분법적 구분에 대해 저자는 그 둘 사이에는 궁극적인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그러한 구분을 극복해야만 자유에 대한 관념들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벌린이 적극적 자유의 개념을 전체주의적이며 위험한 것으로 본 반면 저자는 '자율성으로서의 자유'라는 가치를 보호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자유의 개념에 호소하는 많은 정치적 논쟁들은 재산과 재분배와 관련된 문제들에 관심을 집중시켜 왔다. 우파는 재분배를 위한 과세가 재산을 가진 자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좌파는 재분배가 대다수 사람들의 실질적 자유를 더 증진시키기 때문에 정당한 것이라 말한다.
3부는 평등에 대한 부분으로, 저자는 평등이라는 가치의 곤혹스러운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자유가 보편적인 가치로 인정받는 반면, 평등은 현실과 거리가 먼 이상주의 혹은 마르크스주의적인 주장으로 취급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대 정치철학은 평등을 전제로 하여 진행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실천적 차원에서 평등이 배척되는 것은 분배의 문제와 결부되기 때문이며, 정치철학에서의 평등의 의미는 '모든 시민들의 행복이 똑같이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한다. 역시 같은 개념이라도 때로는 관점에 따라 의미하는 바가 달라진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는 부분이다. 평등에 대한 이러한 복잡성은 정치인들이 평등이라는 단어 자체를 사용하기를 꺼리게 한다. 정치인들이 재분배정책들에 대한 옹호가 분배적 평등과는 전혀 상관이 없으며 생활수준의 개선이 가장 시급한 사람들의 상황을 개선시켜주는 것과 완벽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흐뭇할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아주 강력히 동감한다. '젠장, 누가 부자들 것 다 뺏어서 똑같이 나눠주자고 했나? 단지 가장 가난한 이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이라도 하게 해 달라는 것 아니야!' 이런 생각을 평소에 항상 하고 있는 나는 꽤 불온한 인간일지도 모른다.
4부에서는 샌델의 책에서도 등장한, 공동체주의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저자는 공동체주의 전반에 대해 비판하며, 공동체주의자들이 자유주의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들을 지적한다. 공동체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이 공동의 관계, 공유된 가치, 공동의 정체의식이 갖는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오해하고 있다고 말하며, 저자는 자유주의적인 정의 자체가 하나의 공동선이라고 주장한다. 자유주의적 가치 자체가 개인의 권리를 진술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개인들이 모인 공동체가 추구해야 하는 공동선이라는 의미이다. 또한 지역 공동체나 다른 정체성(계층, 종교 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행위가 분열적이고 불평등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지역감정이나 종교분쟁, 인종간의 갈등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샌델은 저자의 글을 '명석하며 공정하고 유려하다'고 평가했지만, 아무래도 이 챕터에서 저자는 샌델을 한 방 먹인 것 같은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5부에서는, 현대 정치철학이 좀 더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인 민주주의에 대해 다루고 있다. 사실 민주주의는 하나의 절차일 뿐인데, 현실에서 민주주의는 일종의 정치적인 만병통치약으로써 사용되는 단어가 되어 버렸다. 민주주의는 무해하고 순수한 것이며 정의, 자유, 평등 등의 다른 개념들과는 달리 논쟁할 필요가 없는 개념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지닌 가치들을 진정으로 실현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민주주의에는 왜 가치가 있는지 등을 생각하면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지극히 까다로운 과제를 부여한다. 민주적 가치들은 물론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들은 더 많은 가치들 중 일부 가치들일 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 적어도 우리는 어떤 것을 판단하기 전에 그것이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어떤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주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정치인들의 모호하고 불명확한 말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정치적 개념들에 대해 정확하고 명료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몇 가지 핵심적인 정치적 개념들을 논할 때 발생하는 이슈들을 설명하고 명료화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정치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주장이 어떻게 들리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이지 주장의 실질적인 내용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개념의 엄밀한 사용이나 도덕적 책임은 표보다 중요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인들의 달콤해 보이는 공약 따위를 곧이곧대로 믿었다가는 발등 찍힌다는 이야기다. 가까운 예로 '반값 등록금' 공약이 그렇다. 이 말은 납부해야 하는 등록금을 반으로 줄인다는 말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말은 '심리적 반값'이라는 의미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정말로 등록금의 부담이 반으로 줄어든 것으로 느낄만큼 경제적으로 윤택해졌는가? 물가는 계속 오르고, 생활은 팍팍해져 가는 것이 현실 아닌가? '반값 등록금'보다 차라리 모 대형마트에서 내건 '통큰XX'이라는 이름이 훨씬 정직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이래저래 정치 관련 책은 읽으면서 마음이 착잡해지지 않을 수 없다. (망할 놈의 사기꾼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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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정치철학자 애덤 스위프트(Adam Swift)는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논쟁을 접하면서 알게된 학자다. 스테판 뮬휼(Stephen Mulhall)과 공저한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한울아카데미, 2013)가 바로 그의 출세작인데, 이 책은 캐나다 정치철학자 윌 킴리카(Wil Kymlicka)가 쓴 [현대정치철학](Contemporary Political Philosophy,1990)과 [자유주의, 공동체 그리고 문화](Liberalism, Community, and Culture, 1989)와 더불어 정치철학의 필독서로 손꼽힌다. 이 책으로 인해 스위프트는 롤스, 노직, 드워킨, 라즈, 코헨 등을 이어갈 차세대 정치철학자로 주목받았다.
2006년 출간된 [정치의 생각](개마고원, 2011)은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자매편이라고 보면 된다. 스위프트는 이 책에서 현대 정치철학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인 정의, 자유, 평등, 공동체, 민주주의에 대해 설명한다. 학생들과 일반 시민들을 위해 쓰여진 정치철학 입문서이기에 실타래처럼 복잡한 정치이론의 맥락을 명료하게 정리하고 있다. 사회정의를 비롯한 다섯 가지 주제는 정치적 주장을 구성하는 도덕적 개념들로 보편적인 정치적 이상에 해당한다. 이런 이상에 대한 해석과 현실적 평가는 과세율, 복지, 교육, 낙태, 포르노그래피, 마약 등 여러 이슈에 대한 정책적 입장에 영향을 미친다.
오늘날 정치권에서 좌익과 우익의 이데올로기적 이분법은 허물어진 상태다. 이제는 혼합과 조화 혹은 절충이 대세다. 중도 좌익은 '제3의 길'을 운운하고, 우익은 '온정적 보수주의'를 표방한다. 그러면 오늘날 정치철학의 지배적 정설은 무엇일까?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학술적 패권 자리를 놓고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가 서로 팽팽한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둘 외에도 다양한 정치적 담론들이 있는데 자유지상주의, 평등주의적 사회주의, 분석적 마르크스주의, 최소국가론, 무정부주의, 공공선택이론 등이 그러하다.
정의란 무엇인가? 저자는 정의에 대한 포괄적 개념 설명과 더불어 롤스의 공정으로서의 정의, 노직의 권리로서의 정의, 응분의 몫으로서의 정의 이 세 가지 발상들을 소개한다. 국내에 '정의론' 열풍을 몰고 온 마이클 샌델이 개인 윤리 차원에서 정의 문제를 다루었다면, 스위프트는 국가 차원의 사회정의를 다루고 있다. 여전히 분배냐 성장이냐하는 문제를 놓고 티격태격하는 한국 사회는 사회정의에 대한 관심이 뜨거울 수 밖에 없다. 존 롤스는 '정의가 사회제도들의 가장 으뜸가는 덕목'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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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몰아쳤던 인문학 바람의 근원지... Justice의 심화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책을 읽다보면 노직의 주장들이 영 성에 안찼었는데 역시 심화과정에 들어와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는... 그래서 어렵다. 뭐 한국말로 써있으니 독해가 안되는건 아니고 1쪽 1쪽 읽다보면 생각이 많아지고 곧 넘쳐나 ... 부러운 것은 그들의 세계에서는 철학을 이용가치로 사용하기만 하더라도 그래도 생각이 있는데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도통 뇌가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라는것. 사회정의, 민주주의, 평등, 자유... 각각 다 소중한 가치이지만 이것들이 서로가 충돌하면 어떤게 옳은걸까 도통 정리가 안된다. 이책을 읽으면서 더더욱... 오히려 지금까지 내가 가져온 생각이 얼마나 편견에 치우쳐있거나 편협한 것이었나 반성하게 된다. 아니... 반성만 하게된다. 결론을 못내리겠다. 그래도 읽고난 후 난 얼마만큼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만한 책이다. 다시 한번 읽어볼만한.... 적어도 10년에 한번씩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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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치철학에 대한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철학'사史'라든지, 인물소개로 그치는 그런 책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굉장히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다.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은, '사회정의', '자유', '평등', '공동체', '민주주의'와 같은 정치철학에 있어 아주 기초적인 개념들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출발점을 삼는다. 사실 위에 나열한 개념들은 굉장히 추상적인 것들임에도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개념들이다. 그럼에도 이 '기초적인' 개념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따라서 이 책의 저자가 서론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독자들에게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다만 '명료한 설명과 해설을 제공'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저자는 독자와 '논쟁'을 하거나 독자를 설득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정치철학 전문가의 입장에서 독자가 이해하고 있는 방식이 어떠한 것인가를 스스로 알게끔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저자의 의견이나 견해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오히려 저자는 명료화 작업 중에 적극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반영하여, 모호하거나 혼란스러운 개념을 제시하거나 왔다 갔다 하는 학자들을 비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