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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역사를 알고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역사 드라마를 좋아했고, 열심히 봤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이렇게 조선의 4대 사화를 다 읽고 난후, 나의 역사관은 드라마로 일관되어왔음을 알았다. 거의 10년전쯤이었던것 같다. <여인천하>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었던 시기가 말이다. 그 드라마 내용이 을사사화를 이야기하는 줄은 몰랐다. 드라마를 보면서 알았던 것은 여권이 강했었구나 였었다. 그리고 지금, 책을 통해서 본 문정왕후는 여권강화가 아니었다. 문정 왕후는 명종의 어린 나이를 이유로 수렴청정을 하기 시작해 왕이 친정을 시작한 이후에도 뒤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였으며, 그 곁에서 윤원형은 20여 년의 세월을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바쳤다. 조선 백성들의 생활은 피폐해져 왕과 조정이 아니라 의적 행세를 하는 임꺽정을 지지하고 의지할 정도였다. 문정 왕후의 죽음과 함께 윤원형도 몰락하고 재야의 사림들이 다시 등용되었으나 사림 중심의 대의명분을 중요시하는 유교 정치는 권력 지향적인 붕당의 싹이 되었고, 왜구의 침략도 빈번해져 백성들이 겪는 고단한 삶은 더욱 심해졌다. 을사사화는 정치가의 중상모략과 보복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 대표적인 예이다. 문정왕후가는인종의 5월장을 3월장으로 만들어 버리고, 위패또한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세자의 위패를 모시는 연은전에 인종의 위패를 모셨다. 그를 필두로 대윤의 숙청이 시작되었다. 사화는 당쟁을 부르고 당쟁의 배후에는 반드시 벼슬아치들의 탐욕과 부정부패가 도시리고 있다. 조선 4대 사화는 사욕을 추구하던 권력자들로 인해 발생하였고, 각자의 권력을 확장하고 분명히 하기 위한 싸움의 결과라 보여진다. 그렇지만 또한 권력 싸움에만 그쳤던 것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 경제적인 변동과 깊은 관련을 가지는 정치 현상이기도 했다. 연산군으로 부터 시작된 무호사화부터 명종의 즉위와 함께 일어난 을사사화까지, 권력의 싸움은 끝을 모르고 치닿다가, 자신들 또한 나락으로 떨어진다. 한치 앞을 모르는 것이 사람이라지만, 사화를 일으키고 피를 뿌렸던 인물들의 말년은 평탄하지가 않다. 연산군이 그랬고, 중종시대의 조광조를 몰아낸 훈구파들이 그랬고, 소윤의 대두인 윤원형과 그의 첩 정난정, 그리고 문정왕후와 후사가 없는 명종까지 말이다.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안위보다는 나라와 백성을 먼저 살펴야 한다. 민심을 얻고, 백성을 먼저 살펴야 나라가 산다. 나라가 살아야 왕도 정치를 하는 자들도 산다. 이는 시대를 불문하는 일이다. 능지처참과 같은 무서운 형벌은 없을지라도, 지금 이 시대가 조선의 사화와 다른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삶. 내 안위보다 이 나라가 우선되어지는 삶.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알아야 한다. 과거가 이렇게 남아있어 우리는 과거를 보고, 과거를 보면서 우리가 살아야 할 길을 배우고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읽고 보아서 알면서도 나만을 위하여 눈감아 버리는 것일것이다. 아마 사화 시리즈는 역사 속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보기를 열망하면서 펴냈을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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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역사는 개인적으로는 참 부끄러운 역사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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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한 관심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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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사화는 조선시대 4개의 사화중 마지막으로 가장 비열하고 악랄한 사화이다. 문정왕후가 자신이 나은 왕인 명종을 임금으로 만들기 위해서 중종의 아들 인종을 어릴때부터 각박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인종은 중종 죽은후 왕위에 오른지 일년만에 세상을 뜬다. 이래서 그런 말들이 나왔을 것이다. 계모는 전처의 자식을 제대로 건사하지 않는다...란 말을.. 그래서일것이다. 현재 자신의 아들을 왕만들기위해 그토록 노력한 것은 자신의 아들의 아들로써 조선을 이어가게 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명종은 후사가 없다. 그렇게 악랄하게 해서 얻은 자리를 자신대에서만 보존했을뿐 두고두고 연결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문정왕후에 대한 하늘의 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여자가 집안에 잘못들어오면 그 집안을 망친다는 말이 있다. 이런말은 모든 여자는 다 싫어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만드는 것또한 여자이리라. 그런말이 어떻게 해서 나왔는지는 모르나 그 대표적인 인물이 문정왕후이다. 중종의 넓은 마음씨에 어질고 착한 아들인 인종.. 게다가 명종까지 휘두른 여자이기 때문이다. 여자로 크게 나왔으면 좀더 공정하게 해서 나라를 위해 이름을 날려야지 이렇듯 앞으로의 조선사회까지 맥을 끊어 놓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 대감님들은 그저 탁상공론일 뿐이었나 보다. 명분이니 대의에 의긋나면 말들이 많으면서 어찌 자신의 목숨하나 보전하고자 다른 가족들을 밀고하는 건지.. 그런것만을 그대로 배우고 답습하는 것이 지금의 정치하는 사람들인 것 같다. 자기 밥그릇 하나만은 누구못지않게 잘 지키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은 천박하다고 말을 할줄 아는 대감님들이 자신의 행동에는 입을 다문다. 그들이 어찌 사대부라고 뜻뜻이 욀 수 있었을까..
사화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제 일신의 영달을 위해 친척과 부모, 동기간도 가릴 것이 없는 것이다란 말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을사사화는 같은 파평윤씨의 싸움이었기에 더 안타깝기만 하다. 일개의 나라가 한 집안의 싸움으로 인해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었으며 앞으로 이어나갈 후손들에게까지 미쳤기 때문이다. 정의를 향한 대의명분보다는 자신이 속한 그룹을 위해서는 거짓도 서슴치 않고 할 수 있으며 모략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일은 다시는 일어났으면 안되는 일이다. 이렇게 하면 나쁘다는 과거가 존재하는 데도 그대로 답습하는 후손들은 버려져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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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전 "여인천하"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중종의 죽음과 어린 아들을 앞세워 수렴청정을 했었던 문정왕후..
나는 그때 문정왕후가 참 멋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드라마는 우리가 알아야 하는 역사를 바로 보여주지 않는다.
사실 너무나 잔인한 면도 많고 또한 드라마로 다뤄질경우 재미도 추구해야 하기때문에 왜곡되는 경우도 심하니깐..
이번 을사사화는 그런 문정왕후를 중심에 두고 문정왕후의 동생들 윤원로와 윤원형 그리고 윤원형의 첩실 정난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00여년의 기간동안 세번의 사화가 있었고 그러면서 정권은 정말 이리저리 바람앞의 등불처럼 누구의 손으로 들어가냐에 따라 대권이 달라지는 형국이였다.
중종의 세번째 계비로 들어온 문정왕후는 중종을 독살했다는 말도 참 많이 들었었고 실제로 그렇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하기도 한다.
윤원형의 첩실이였지만 지략이 뛰어난 정난정은 윤원형의 본부인을 죽이고 자신이 그 자리에 오르는 무서운 여인이다.
그런 여인의 지략을 옆에 두고 그녀가 끌어들인 후원금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가는 문정왕후또한 어떻게 보면 정난정의 손안에서 놀아난건 아닐까 싶다. 문정왕후가 남편 중종이 죽고 나자 수렴청정을 시작하면서 대권은 대윤과 소윤의 대립에서 소윤의 우세로 돌아서게 되고 몇년사이에 100여명이 넘는 피바람을 몰고 오는 사화가 일어나게 된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새도를 누리는 윤원형은 자신의 앞길을 막는것은 그 무엇이든지 처단해버리는 서슬퍼런 극악무도한 인간으로 변모하게 되고 그런 그 앞에 발목을 잡을 인물이 자신의 형이란것을 알고 죽이게 된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그런 조정에 벌을 내리는 것일까?
문정왕후의 아들은 후에 아들을 하나 더 두지만 그 아들또한 어린나이에 색을 탐하고 방탕하게 지내다가 10대의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조선의 역사를 통틀어서 제대로 대가 이어져 온적이 없는거 같단 생각이 든다.
명종이든가...(아 이 치매..)
명종의 뒤를 이은 왕 선종도 조카를 양자로 들여 왕권을 잇게 한 경우이니 말이다.
역사는 반복되고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언젠가는 멸망하게 되는것이다.
문정왕후의 후사를 등에 업고 부귀영화를 누리던 윤원형과 정난정도 문정왕후가 죽고 나자 급격하게 기울게 되고 귀양아닌 귀양을 가게 된다.
하지만 백성들이 자신들을 가만히 두지 않을거란 것을 알게 된 그들은 도망을 가다시피 하다 결국은 자살을 하게 된다.
죄짓고는 못산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는 부분이다.
망초가 들었다는 말을 나는 여기서 처음 그 뜻을 알게 되었다.
망초.. 흔히 개망초라고도 하며 빈공터 어디에서든 피어나는 꽃이다.
이 꽃이 피면 나라가 망하거나 집안이 망한다고 하여 보이는 족족 멸하게 했는데...
그런 망초가 나라에 든것이니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을까...
역사책을 읽다보면 지금의 정권과도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권을 어느 정당이 잡냐에 따라 그들은 순식간에 앞면을 몰수하고 말을 바꾸고 상대방을 죽이기에 바쁘다.
어제까지는 국민의 편을 들던 사람들이 정권을 잡은 정당이 되는 순간 국민이 아닌 자신들의 밥그릇을 불리기 바쁘니 정말 우리 나라 역사는 늘 그렇게 피비린내나는 역사의 반복인듯 싶다.
500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는 정권의 구도.. 참으로 답답할 뿐이다.
역사를 통해서 배울것이 참 많은데도 그들은 도데체 달라지지 않으니 말이다.
책속에서 만난 문정왕후의 모습은 너무나 무섭고 섬뜩하다.
정말 말로 표현을 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갖고 있기도 하지만, 그만큼 무섭고 독한 여자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 앞을 막는 것은 무엇이든지 갈아 엎어버리고 사라지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무서운 집념의 여인이란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정말 대가 차고 똑똑한 여자라는 생각도 들지만 과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또 한번 실감나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세명의 부인이 남편을 갖기 위해 어쩌면 시기 질투했었던건 아닌지..
그렇기에 그 어떤 부인도 남편 중종의 옆에는 묻히지 못한건 아닌지..
읽으면서 정말 어쩌면 자신의 밥그릇과 출세의 길을 지키기위해 자신을 가르친 스승을 죽이고 자신과 한 핏줄인 형제를 죽이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숨밖에는 나오는것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우리끼리 뭉치지 못하고 이렇듯 싸우는데 어떻게 주변국에서 우리를 무시하지 않을수 있을까?
얼마나 쉽게 보고 덤벼들었을까...
많은 전쟁을 겪고 지배를 받으면서도 전혀 달라지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또한번 생각하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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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조선의 그 4번째 피바다의 중심인 을사사화를 만나니 갑자기 친정집이 재력이 없음에 감사해야 하는가 싶어진다. 외척이라는 단어 하나에 이렇게도 잔인한 피가 홍건히 맺힐줄은 솔직히 생각도 못했다. 권력욕이 그렇게도 뼈에 사무치게 강해질 수 있는 것인지. 먹을 것이 없어서 먹고 죽는 문제도 아닌데 권력은 왜이리도 사람을 황폐하게 만들고 결국은 한 나라를 초토화시킬수 있는지 상상도 못할 일이면서 그래서 더욱 우리 선조들은 이 작은 땅덩어리에서 살아남고자 자신의 가문이 살아남고자 애닳파하는 모습에 안쓰럽기까지 하니 나도 결국은 조선인의 피가 흐르는 대한민국 국민일 수 밖에 없구나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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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4대 사화 무오사화(1498), 갑자사화(1504), 기묘사화(1519), 을사사화(1545) 중 연산군 4년에 일어난 무오사화(1498), 연산군 10년에 일어난 갑자사화(1504), 중종 때 일어난 기묘사화(1519), 명종 원년에 일어난 을사사화(1545)로 앞선 두 사화는 연산군 재위 시절에 일어난 사화였으며,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을사사화는 명종 시절에 일어난 것으로 두 외척의 세력다툼이 원인이 되어 일어난 사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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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가 중, 고등 학교때 배운 역사가 한 번도 왜곡되었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었다. 단지 역사는 역사일 뿐 그냥 옛 이야기로만 생각했고 그 시절엔 당연히 권력과의 싸움으로 인해 부모는 물론 자신의 신화나 백성을 죽이는 일이 대소롭지 않다 여겼다. 한국인물 역사 연구원에서는 원장 이원석 박사를 중심으로 우리가 미처 느끼지 못했고 잊혀져만 갔던 왜곡된 역사를 밝혀 과거를 단지 과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은 점을 배우게 하였다. 조선시대 4대 사화는 정치적인 탄압과 그로 인해 온 백성이 울부짖었으며 단순한 권력 싸움에만 그 영향이 미친것뿐만 아니라 당시의 사회, 경제적인 변동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는 정치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사화는 조선중기에 신진 사류의 훈신과 척신들로부터 정치적인 탄압을 말하며 총 4건의 사화가 조선시대 때 일어났다.
1. 1498(연산4) 무오사화는 김일손 등 신진사류가 유자광 중심의 훈구파에게 화를 입은 사건이다. 사초가 발단이 되어 일어난 사화로 조선시대 4대사화 가운데 첫 번째 사화이다 2. 1504(연산10) 갑자사화는 갑자년에 연산군의 생모인 성종비 윤씨의 폐출과 사사에 대한 연산군의 보복과 이를 기화로 척신세력이 훈구사림세력에게 화를 입힌 사건이다. 3. 1519(중종14) 기묘사화는 기묘년에 일어난 사화이다. 죽음을 수반한 재앙으로 남곤, 홍경주 등의 훈구파에 의해 조광조 등의 신진 사류들이 숙청된 사건이다. 4. 1545(명종1) 을사사화는 조선 왕실의 대윤(인종의 외척)과 소윤(명종의 외척)의 반목으로 일어난 사림의 화옥으로 소윤이 대윤을 몰아낸 사건이다.
이 책에서는 네 번째 사화로 을사사화에 얽힌 이야기와 그에 관련된 인물들을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중종이 세상을 떠나자 인종이 제 12대 왕이 된다. 그러나 중종의 외척 세력이 두 갈래로 갈리게 되는데 인종의 외숙 윤임을 대윤(사림파)이라고 불렀고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을 소윤(훈구파)이라 불렀다. 중종이 죽기 전에 대윤과 소윤의 싸움은 치열해졌다. 인종은 성품이 부드럽고 여린데 비해 대윤이 왕위를 잇자 문정왕후는 자신의 소생을 왕위에 올리게 위해 무단히 애를 섰는데 그녀는 여장부 기질이 타고 났으며 조선 역사상 가장 권력을 많이 잡았던 왕후이기도 하다. 그만큼 욕심도 많았고 야심도 큰 여자이다. 인종이 왕위에 오르자 대윤 일파의 세력은 날로 강해 졌으며 그동안 중립선을 타고 있던 사람들도 대윤으로 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광경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은 문정왕후였다. 인종의 목숨을 무단히 없애려 노력했고 문정왕후의 노력 탓인지 모르지만 마침내 인종은 즉위한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고 죽은지 닷새만에 문정왕후의 소생 이환이 13대왕 명종에 즉위하게 된다. 당시 명종은 어린 나이였기에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한마디로 권력을 휘두를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다. 인종때는 소윤이 많은 박해 사건이 없었지만 명종이 즉위하자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많은 움모와 밀고로 인해 소윤의 세력이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대윤의 세력들을 하나하나씩 제거해 나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대윤의 우두머리인 윤임마저도 제거에 성공한다. 뿐만 아니라 윤원형은 자신의 형으로 인해 자신이 화를 입을까봐 형까지 죽였으며 대윤의 세력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즉각 처리하였을 정도로 문정왕후와 윤원형은 피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을사사화로 인해 윤원형 일파의 음모로 화를 입은 반대파 명사들은 100여 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을사사화는 표면적으로는 윤씨 외척간의 싸움이었으나 사림파에 대한 훈구파의 공격이었다.
권력 앞에선 형제도 없고 눈물도 양심도 없는 4대 사화를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를 함께 읽으면 보다 이해가 잘 되고 이어지는 내용들이 많아서 한편의 사극을 보는듯한 느낌을 받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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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사화
조선의 4대사화를 시리즈로 다룬 '타오름'의 네 번째 '을사사화'는 명종 즉위와 함께 문정 왕후의 권력에 대한 욕심과 '윤임' 이 속한 대윤과 '윤원형'이 속한 소윤의 싸움으로 100여명의 피를 부르게 된다. 핏빛 사화라는 글처럼 역사적인 사화를 읽어가면서 권력이라는 것이 형제나 인척간에도 서로 적이 되어 죽고 죽이는 모습을 보면서, 한 번 차지한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한 끝도 없는 인간의 욕망은 과거나 현재 모두 같은 모습으로 비쳐진다. 자신의 적이라고 생각되는 순간 그것이 형제라고 해도 피를 봐야 안심을 할 수밖에 없는 그들이지만, 어느 경우든 그 권력이 끝나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 한 부모 밑에서 난 형을 죽이면서 권자에 오른 '을사사화'의 주역 윤원형과 그의 첩실이지만, 본처를 독살하고 결국은 정실이 된 정난정. 세상을 다 가질 것만 같았던 그들이지만 두 사람의 마지막은 비참하기만 하다. 소윤의 중심에서 수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던 피도 눈물도 없던 그들이었지만, 권력을 잃은 후 정난정은 스스로 비상을 먹고 자살을 택해야만 했다. 윤원형 역시 정난정의 죽음 이후 독약을 먹고 죽음을 택했으니, 권력이란, 한 순간의 일장춘몽처럼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무엇을 위해 그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자신의 조강지처까지 죽음에 이르게 하며 욕망 앞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가. 권력은 늘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 물길처럼 끝도 없이 흘러가면서 피를 부르고, 조선의 사대 사화를 알아가는 과정은 인생에 대해, 삶에 대해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다. 평생 자손만대가 부귀영화를 누릴 것만 같지만, 꽃이 피고 지듯이 그들도 한 때는 활짝 피는 순간이 있었겠지만 다시 시대가 바뀌고 권력을 잃게 되면 시들어 버리고 지고 마는 것이다. 나라에 크고 작은 당파싸움은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백성들을 힘들게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고, 지금도 여전히 정치인들의 반목은 이어지고 있다. 물론 모두가 같은 마음일 수는 없고, 서로 자신에게 이로운 쪽에서 힘을 겨루는 일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상황들이 우리 인류를 지금까지 전쟁과 고통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제 이기심이나 욕심을 버리고 더불어 함께 가는 방법을 찾기를 소망해본다.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 까지 ''핏빛 조선 4대 사화' 의 네 번째인 을사사화를 먼저 만나 읽게 되었다. 앞서 나온 나머지 3가지 사화를 아직 읽지 못했지만, 을사사화의 구성이 매우 마음에 들어 다른 시리즈도 기대가 되고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을사사화의 경우 '조선의 사대 사화, 을사사화, 을사사화의 인물, 훈구파와 사림파, 정몽주에서 윤원형까지 라는 순서로 그저 사화에 관한 내용만을 다루지 않고, 책의 절반정도는 을사사화에 대해 다루고 있고, 뒷 부분에 다시 사화와 관련된 수 많은 인물들을 그들의 가계도와 함께 무덤, 인물등의 많은 사진자료를 포함해 설명하고 있다. 따로 사건과 관계된 인물마다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어 매우 깊이 있는 역사공부를 할 수 있었기에 나머지 시리즈도 소장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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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조선 4대사화의 마지막 편이 을사사화다.
1498년 연산군4년에 일어났던 무오사화, 1504년 연산군 10년때의 갑자사화에 이어
1519년 중종때의 기묘사화, 조선 4대 사화의 마지막은 1545년 명종때의 을사사화로
마무리 된다.
사화란 무엇일까? 사림의 화의 준말로 조선중기 신진 세력이었던 사림들의 중앙정치
무대에서의 화를 뜻한다. 앞서 사화가 주로 당시까지 기득권 세력이었던 훈구세력과
신진 정치 세력이었던 사림들간의 권력 싸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면 마지막 사화인
을사사화는 외척들간의 세력다툼으로 발생했다고 봐야 할것이다. 중종이후 막강한
외척으로 자리잡은 윤씨 일가. 하지만 중종시절 정비였던 장경왕후의 오빠인 윤임은
장경왕후의 원자인 세자를 왕위로 책봉하기 위해 노력했었고, 장경왕후가 죽자 제 2계비
가 된 문정왕후의 오빠인 윤원형은 장경왕후의 아들이자 세자인 인조보다 문정왕후의
아들 명종이 왕위에 오르도록 노력하게된다. 결국 똑같은 윤씨 집안이었음에도 윤임과
윤원형을 중심으로 한 세력들이 서로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게 되고 이게 바로
윤임과 장경왕후 일가를 뜻하는 대윤, 윤원형과 문정왕후를 지지하는 세력들을 뜻하는
소윤으로 파벌이 형성되고, 소윤이 대윤을 밀어내는 과정에서 또다시 사림들이 화를 입는
사화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재임시절 기묘사화를 일으켰던 중종은 재임 말기 조광조등을 필두로 사림을 박해했던
행위를 후회하듯 대윤을 통해 사림을 다시 중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인조가 즉위한지
6개월만에 의문에 쌓인 죽음을 맞이하고 문정왕후의 아들 명종이 즉위하자 소윤은 대윤일가
를 비롯, 사림들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특히 이 을사사화와 관련해서는 몇년전 큰 인기를
끌었던 KBS드라마 '여인천하'를 통해 잘 알려지기도 했다. 사실 당시만해도 난 문정왕후가
주인공이자 좋은편에 서있는 인물인줄만 알았다. 그런데 이번 을사사화 책과 함께 다른
역사서들을 살펴보니 심지어 문정왕후를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악녀이자 패륜적인 인물로
묘사하고 있는 책들이 많더라. 초기에는 장경왕후의 아들 인조를 친아들처럼 아끼면서
보살폈지만 자신이 아들을 낳고나자, 자기 아들인 명종을 왕위에 앉히고자 인조를 핍박하고,
심지어 독살설이 나돌기도 했을정도이니 말이다. 후에 인조가 의문의 죽음을 맞고, 아들인
명종이 왕위에 즉위했음에도 어린 나이를 핑계로 자신이 직접 수렴청정하면서 권력을 쥐고,
조선을 흔들었으며 이때에 오빠인 윤원형과 함께 사림을 탄압하며 아까운 인재들을 무수히
죽음으로 몰고 간 인물이기도 하다.
사실 이와 상관없을지는 모르지만 명종이 죽고 다음 왕인 선조때 임진왜란이 일어나 조선이
왜의 발밑에 쑥대밭이 됐던것도 어쩌면 문정왕후 시절 왜구에 대한 대비가 소홀하고, 국방이
약해졌으며,내정이 문란했던 것도 그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왜 그리 조선시대에는 서로가
파벌을 형성해 훌륭하고, 아까운 인재들을 그렇게 서로 죽이고 죽였을까?
당시의 당파싸움이 지금의 정당정치와 다를게 없다지만 정말이지 당시에는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이 많았던듯 싶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역사가 중요한 거다. 이때의 잘못된 경험들을 후세에 깊이
새겨 다시는 역사의 불운한 이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것도 우리의 사명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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