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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죄를 지으면 언젠간 반드시 부메랑처럼 돌아온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소설이다. 저자는 냉소적인 시선으로 사회의 더러운 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소설을 통해 세상을 비판하고 있다. 저자의 표현은 다소 거칠다. 하지만 상황에 맞는 정확한 표현이기에 그리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 정도로 수위를 낮춘 것이 약하게 느껴질 정도다. 현재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들을 소재로 삼아서 지적해준 덕분에 독자의 속을 시원하게 만들어준다. 다만 사회 비판서가 판타지 소설로 변한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너무 심하게 세상을 비판하고 사람들을 전부 악마로 비유한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저자는 결말을 환상적으로 처리해버렸다. 해피엔딩이 아닐 바에는 차라리 판타지로 끝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결론지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확실한 매듭을 원하는 독자의 입장에선 이런 결론은 그리 탐탁지 않을 것이다. 이것만 빼고는 표현은 다소 거칠었지만 강한 매력을 발산하는 소설이어서 재미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강석규라는 남자다. 현재 한수생명 영업 7팀의 팀장을 맡고 있는데 자기 팀을 7회 연속 이달의 팀으로 선정되게 할 만큼 유능함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강석규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뛰어난 실적으로 보여주고 있고 유능함을 뽐내고 있지만 회사 동료는 물론이고 지인 심지어 가족까지 석규를 인정하지 않는다. 회사에서는 이젠 실력을 보여줄 만큼 보여줬으니 다른 사람에게도 기회를 주라는 식으로 견제를 하고 집에서는 돈은 그 정도면 충분히 벌고 있으니 가정에 좀 더 신경을 쓰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3년 전엔 무능함으로 푸대접을 받은 석규에겐 이런 대접이 그리 달갑지 않다. 아니 회사와 가족이 원하는 대로 유능함을 뽐냈지만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알아주지 않아서 석규는 영 기분이 좋지 않다. 이런 점이 과연 석규가 악마로 살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원래 이 사회가 이 따위로 굴러가서 그런 건지 석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석규는 고등학교 동창인 민혁을 만나게 된다. 민혁은 과거에 석규의 다른 지인들 만큼이나 석규를 괴롭히고 못 살게 굴었던 자다. 지금은 악마성을 숨기고 착한 이미지로 강연을 통해 입으로 밥을 먹고 사는데 민혁과 재회를 하면서 그 숨겨졌던 악마성이 다시 세상으로 드러나게 된다. 하지만 지금의 석규는 예전에 민혁의 꼬봉 노릇을 하던 그 석규가 아니다. 머리에 뿔이 난 악마로 세상 사람들을 벌벌 떨게 할 정도로 강해져 있다. 자식인 훈이에게만 악마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 약점인데 민혁을 만남으로서 이 약점에 문제가 생겨서 결국 석규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한다. 이 책은 총 2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부터 난 내가 주목한 것들 위주로 그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석규의 실적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다. 3년 전 석규가 무능하던 시절 석규는 주변인들에게 상당히 심한 푸대접을 받으며 살았다. 직장 상사는 물론이고 동료 그리고 가족에게까지 무능한 인간으로 낙인찍혔던 석규는 그들이 보내는 따가운 시선으로 인해 하루하루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이때의 석규는 성실하고 착한 인간이었지만 돈 버는 데는 재주가 없었기에 주변인들로부터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석규는 팀장이 되어 일곱 번 연속 이달의 팀이라는 성과를 보이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3년 전에 무능했던 강석규는 사라지고 자신의 팀을 매번 이달의 팀으로 이끄는 유능한 강석규만 존재하게 된 것이다. 표면적으로 석규는 직장은 물론이고 가족에게까지 대접을 받고 있다. 비록 악마로 변해 사람들로부터 두려움의 대상이 되긴 했지만 유능해진 것만은 사실이라 겉으로는 유능한 사람으로 대접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석규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석규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석규의 주변인들은 하나같이 유능해진 지금 석규가 무능했을 때와 달리 석규를 어느 정도 대접해주고 있긴 하지만 유능한 석규를 우러르거나 존경하진 않는다. 아니 오히려 유능해진 석규를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석규가 무능해지길 바라고 있다. 석규는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하는 것일까? 이런 곱지 않은 시선을 피하기 위해 석규는 다시 무능한 과거로 돌아가야 하는 것일까? 석규의 실적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부끄러운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무능하면 용기를 북돋아줘서 유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유능하면 칭찬하며 그의 유능함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올바른 정의로운 사회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보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남들이 무능하면 짓밟기 일쑤고 유능하면 시기하고 질투하기 일쑤다. 이게 과연 이성을 지닌 사람들이 할 짓인가! 짐승들이나 하는 짓거리를 하면서 과연 우리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떠들어 댈 수 있을까? 자기보다 못나면 비웃고 자기보다 잘나면 시기하는 짓은 결코 바람직한 인간의 행동이 아니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이런 비뚤어진 사고를 비판하고 싶어서 이 책을 쓴 것으로 보인다. 거칠고 투박하게 사회상을 표현했지만 적절했기에 문제점을 제대로 비판한 저자를 칭찬해주고 싶다.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아들 훈이를 다룰 줄 모르는 석규의 모습’이다. 훈이는 아버지인 석규를 매우 불편하게 여긴다. 석규 또한 아들인 훈이의 이런 태도로 인해 자식인 훈이를 어렵게 여긴다. 이런 비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던 둘은 나중에 결국 갈라지게 된다. 훈이는 친아버지인 석규를 외면하고 다른 남자를 아버지로 택하게 되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석규는 아들인 훈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몰랐다. 초등학교 4학년인 훈이는 이른 사춘기를 겪고 있었는데 아버지 없이 자란 석규는 이런 상황에 어떻게 자식을 대해야 할지 전혀 알지 못했다. 사춘기에 직면한 자식을 어떻게 대해야 한다는 건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다. 가정에서 아버지가 보여준 행동을 통해 배워 훗날 자식에게 그대로 실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석규는 그럴 수 없었다. 애초에 석규에겐 아버지가 없었기 때문에 자식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하는지 배울 수 없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석규는 아들인 훈이가 자신을 불편하게 여기고 외면할 때에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게 된다. 사람들은 대개 학교 교육에만 열을 올린다. 그것만이 최선이라 여기며 거기에만 온 힘을 쏟곤 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학교 교육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식은 혼자 책을 통해서 얼마든지 쌓을 수 있다. 하지만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학교 교육을 통해서도 수백 수천 권의 책을 통해서도 배울 수 없다. 가정교육은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배우는 것이고 이를 통해 내림으로 자식에게 그 교육이 이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이와 같은 점을 간과하고 가정교육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학교가 만능이 아니거늘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학교에서 모든 걸 배우게 하려고 하고 학교 교육을 통해 모든 걸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이것은 크나큰 착각이다.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있고 없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아기들을 예를 들어보자. 아기들은 책을 통해서 말을 배우지 않는다. 전적으로 부모나 혹은 보호자에 의해서 말을 배운다. 그리고 아기들은 부모의 행동을 보고 배워서 그대로 따라하면서 성장한다. 중요한 점은 이런 학습과정이 단지 유아기 때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청소년들은 부모의 행동을 눈으로 익히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에게 배운다. 그런데 어른들은 이런 중요한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아기들과 마찬가지로 청소년들도 부모의 행동을 보고 학습한다. 그리고 훗날 그렇게 배운 것을 자기 자식을 통해 그대로 실현한다. 만약 청소년기에 잘못된 내용을 학습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당연히 잘못된 내용이 자손에게 이어져 악순환이 반복되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중요한 점을 간과하여 가정교육을 소홀히 하는데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석규와 훈이와의 갈등을 통해 이런 점을 일깨워주려고 노력한 것 같다. 이 점 또한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마지막 세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지어 위선의 연기를 한 지수’에 관한 내용이다. 지수는 대학 선배인 용준과 바람을 피우다 석규에게 딱 걸리고 만다. 대개 이런 경우엔 바람을 피운 자가 그걸 목격한 배우자에게 용서를 빈다. 하지만 지수는 석규가 직접 바람 피운 현장을 들이닥쳤는데도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이 모든 것이 다 석규의 잘못으로 치부해버린다. 자신이 바람을 피운 원인 제공을 석규가 했으니 자신에겐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지수는 이왕 이렇게 됐으니 그만 헤어지자는 말을 석규에게 건넨다. 그리곤 아들인 훈이와 함께 석규의 곁을 떠난다. 석규의 입장에선 이 모든 것이 그저 억울할 따름이다. 석규의 독백대로 지수는 석규가 왜 그동안 악마처럼 살아왔는지 잘 아는 여자다. 그리고 그 모든 걸 지켜보면서도 말리지 않았던 사람이 바로 지수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석규를 돈만 아는 부족한 인간 취급하며 부부 사이가 나빠진 것에 대한 모든 책임을 석규에게만 돌리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석규의 입장에선 황당하고 억울한 것이 당연하다. 물론 지수가 변심한 것에 대한 석규의 책임이 없진 않다. 석규는 돈을 못 벌어올 땐 무능함으로 지수를 힘겹게 했고 돈을 잘 벌어 올 땐 가정에 소홀해 아내인 지수를 외롭게 했다. 자식은 혼자 키우는 것이 아닌데 석규는 돈을 벌어오는 것으로 가장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해 부인은 물론이고 자식인 훈이를 소홀하게 대한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건 석규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바람의 명분이 될 순 없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석규는 아버지의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즉 일부러 가정에 소홀히 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아들이 사춘기 일 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몰랐기 때문에 부인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지 못했고 아들과 원활한 대화를 나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만 가지고 외도를 통해 다른 남자와 살려고 떠난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지수가 현명한 여자였다면 석규가 돈에 치여 악마로 변할 때 그 변화를 감지했어야 했고 악마성을 드러냈을 때 그 문제점을 지적해 석규를 바로잡아 줬어야 했다. 하지만 지수는 남편의 고통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자신의 고통만 생각하면서 인생을 살았다. 석규와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자기 인생만 챙기며 남편을 배려하지 않고 이기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에 석규의 행동을 문제 삼아 이혼을 요구하는 것은 얼토당토하지 않는 주장이라고 본다. 이런 쉽지 않은 문제를 생생하게 잘 드러낸 저자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태어날 때부터 악마인 사람은 없다. 잘못된 가정교육과 비뚤어진 세상이 악마를 키워내는 것이다. 우린 이점을 확실히 인식한 후 해결책을 찾아나가야 한다. 또한 악한 행동은 반드시 부메랑처럼 돌아오게 되어 있다. 이 점을 간과한다면 언젠가 후회할 날이 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가정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가정의 역할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인상적인 글귀 “진정한 악마는 인간의 ‘죽음’이 아니라 ‘삶’을 지배한다.” “능력이 없으면 좋은 사람도 아니다. 좋은 남편도 좋은 아빠도 아니다.” “사랑이란 신이 만들어낸 사기이고, 평화란 인간이 만들어낸 사기이다. 그런 것은 세상에 없다.” “인간의 영혼은 돈보다 더 더럽다.” “가짜 선도 선은 선이다. 선의 표현이 설상 가짜더라도 그것이 많아지면 그것에서 진짜가 나온다.” “사람은 갑자기 너무 많이 바뀌면 사고를 치는 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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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난 지금 악마는 존재하는가에대한 질문에 나는 악마가 아니라 악인이 존재한다라고 말하고 싶다. 석규는 세상에 악마가 존재하 자신과 같은 악마가 어딘가에서 나약한 인간을 조종하고 그들속에서 뭔가 일을 꾸미고 있다고 느낀다. 그러면서 왜 자신앞에 나타나지 않는지 궁금해 한다. 석규는 평하고 소심한 가장이었다.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위해 보험회사에 입사한다. 알다시피 보험설계사라는 직업이 사교적이고 활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쉬운 직장이 아니다 역시 소심한 석규는 팀원에게 피해만 주는 사람으로 자신의 목은커녕 있는것도 유지하지 못한다. 석규의 현실은 가정과 직장에서 무능력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힌다. 석규가 가장 행복할때는 사진을 찍을때이고 자신이 찍은 사진을 지울때 가장 슬픈 모습을 보인다. 왜 그가 변했을까 그가 변하게된 사건은 교통사고를 목격하면서다 승용차는 질주하듯 달려와 사거리 중앙에서 급정거를한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머물고 반대편에서 오던 차량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뒤쪽을 들이받는 사고를 낸다. 승용차의 운전자는 기이한 눈빛으로 밖을 바라보고 마침 석규와 눈이마주친다. 그의 눈빛에서 보지 말아야할 인간이 아닌 악마의 눈빛을 받게된다. 악마가 되기로한 결정적인 이유는 역시 무능한 자신을 바꾸기위해서 였다. 악마로 거듭난 석규 그는 진정한 악마였을까 자신을 괴롭혔던 인물들을 찾아 과거의 일들로 그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보며 즐거움을 느끼며 실적을 올린다. 내가 보기에 석규가 악마로서 행복하냐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는 행동을 하면서 끊임없이 괴로워한다. 오랫동안 잠재했던 부당한 일들이 더 이상 피할수 없는 자신의 현실 때문에 돌파구를 찾는게 자신의 존재를 악마라고 부르는 듯 보인다. 사실 그가 악마라는 존재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위태로워보인다. 진정한 악마라면 자신의 아내와 아들을 걱정할까 석규는 자신을 거부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괴로워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기위해 떠나는 아내와 아들의 모습을 지켜본다. 우리의 안에 천사와 악마는 공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현실이 환경이 내안의 무엇을 꺼내게 만드느냐에 따란 변할 수밖에 없다고 어릴때는 성선설을 믿었다 세상을 조금더 살아본 지금은 성악설이 어느정도 맞지않을까 내 믿음이 흔들린다. 세상에 악으로 뭉친 사람이 존재한다고 믿게 되었다. 다만 악마라고 주장하는 석규는 천사가 되고 싶었지만 악마가될 수밖에 없는 불쌍한 가장이었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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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시나리오 픽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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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나도 모르는 악마가 살아 숨쉬고 있다. 그것이 어떨때는 나 자신을 괴롭히기도 하고, 나를 끝없는 절망의 구덩이속으로 끌고 들어가기도 한다. 세상에 대한 분노의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나보다 약한자를 향한 끝없는 저주와 폭행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면서 무기력하게 당하는 상대에게 미안함보다는 답답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악마]를 읽으며 느껴졌던 생각이었다. 상대에게 무력하게 당하기만 하던 석규가 악마의 힘을 받아들인 후, 그것을 이용 상대에게 복수를 감행할때 내 안에 깃들어 있던 그 악마도 호흥을 하는것을 지켜보며 나도 몰랐던 악마의 존재를 느껴야만 했다.
뒤이어 억울한 감정이 복받쳐 오르기 시작했다. 자기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악마처럼 살아왔는지 아는 여자다. 영혼을 갉아먹는 석규의 위악을 지켜보면서도 말리지 않았던 여자다. 오히려 석규가 다시 바보로 돌아갈까 봐 노심초사하며 말을 닫고 몸을 아끼던 여자다. 그런 지수가 자신을 따돌리기 위해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짓는 위선의 연지를 해대다니. 석규는 어금니가 바스러질 정도로 억울했다. (p.2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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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생에 남자로 태어나고 싶으냐고 내게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아니오'이다. 이 세상은 남자로부터 요구하는 것이 너무도 많다. 맨몸으로 왔다가 맨몸으로 가는 이 서글픈 세상에 남자의 몸은 굴레 그 자체일것이다. 남자도 사람이건만, 그들은 마음놓고 울 자유도 없다. 약해질수도 없다. 아내가 귀여워도 드러내놓고 귀여워할 수도 없다. 아이가 태어나면 그들은 더 어깨가 무거워진다. 가장으로서의 책임이 그들로 하여금 숨 한번 제대로 쉴수 없게 보이지 않는 사슬로 묶어버릴것이 분명하니까. 나는 그래서 남자로 태어나고 싶지 않다. 전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