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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근대화의 아버지가 아닌 제국주의 사상가였다.『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 사상을 묻는다』
"그는 근대화의 아버지가 아닌 제국주의 사상가였다.『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 사상을 묻는다』" 내용보기
<난쏘공 4기 -3> 일본에서는 근대사상가의 대표적 인물로 후쿠자와 유키치를 단연 꼽는다. 그는 일본의 근대화 기저에 깔린 사상적 진보와 자유주의의 확산을 부르짖은 근대화의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로 일본 내에서 추앙받고 있다. 일본에서 후쿠자와 유키치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가를 객관적으로 설명하기엔 너무 방대해진다. 따라서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면 많은
"그는 근대화의 아버지가 아닌 제국주의 사상가였다.『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 사상을 묻는다』" 내용보기

<난쏘공 4기 -3>



일본에서는 근대사상가의 대표적 인물로 후쿠자와 유키치를 단연 꼽는다. 그는 일본의 근대화 기저에 깔린 사상적 진보와 자유주의의 확산을 부르짖은 근대화의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로 일본 내에서 추앙받고 있다. 일본에서 후쿠자와 유키치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가를 객관적으로 설명하기엔 너무 방대해진다. 따라서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 대단한 인물이구나’ 할 것이다. 바로 일본의 최고액 지폐인 일만엔 권의 초상인물이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사실이다. 그 사실만으로 부수적인 설명이 없어도 후쿠자와 유키치를 모르는 사람마저 ‘누군지는 잘 모르나 위대한 사람인가보다’라는 섣부른 판단을 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그 나라를 대표하는 화폐의 초상인물은 그토록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렇다면 이 책은 왜 쓰여 졌는가? 후쿠자와 유키치 같이 위대한 인물의 어떤 점을 부각시키고자 쓰여진 책인가?




저자 야스카와 주노스케는 서재파 학자로 일본의 대표적인 지식인이자 시민운동가이기도 하다. 정년퇴직 후 지금은 비상근 강사와 명예교수직을 겸하면서도 실천하는 지식인이 되고자 적성에도 맞지 않은 시민단체의 간부로 활동하며 일본의 보수우경화에 맞서고 있다. 그 일환으로 아시아 멸시와 침략사상으로 점철된 인물인 후쿠자와 유키치부터 제대로 평가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의무감으로 이 책까지 쓰게 된 것이다. 일본 근대사상의 아버지인 후쿠자와 유키치를 비판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대다수 국민들이 존경하는 인물이기에 거기에 대고 누군가 입바른 소리를 한다면 어떠한 비난을 맞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가 후쿠자와 유키치에 대해 제대로 밝혀야겠다고 다짐한 것은 일본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로 나아가기기 위해선 덮어버린 역사적 과오를 들추어내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사죄할 것은 사죄하여야 역사적 오류를 바로 잡고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후쿠자와 유키치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으로 엇갈리는 것인가? 그리고 대다수 일본 국민들은 그를 추앙하며 일본 근대화 과정의 총체적 스승이라고 평가하는 것인가?

 

저자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대표 저서인 『학문의 권유』제 3편에 실린 “일신독립 해야 일국독립 한다”는 구절부터 후쿠자와에 대한 잘못된 평가의 시작이라고 본다. 후쿠자와가 초기에 주장했던 이 유명한 구절 때문에 지금까지도 후쿠자와는 일본 근대 사상의 아버지로, 또는 스승으로 불릴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에 보태진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고 사람 아래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이 구절 역시 함께 인용되며 후쿠자와를 계몽사상가나 민주주의의 선구자로 평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저자 야스카와 주스노케는 후쿠자와의 책 『학문의 권유』에 담긴 이 구절들이 심각하게 오독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후쿠자와를 연구한 학자들이 부분만 인용하여 그를 미화하고 후쿠자와 신화를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고 는 것이다. 이는 학문을 연구하는 방법부터 잘못된 것이고 후쿠자와를 제대로 판단하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후쿠자와의 논리 속의 맥락을 파악하여 그 논리를 축으로 총체적이고 거시적, 그리고 구조적으로 파악해야한다고 주장한다.(50p) 후쿠자와가 뱉었다고 착각하는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고 사람 아래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는 원래 미국 독립선언문에 있는 내용을 발췌한 것인데도 마치 후쿠자와가 직접 말을 한 것처럼 후대 학자들이 오독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부분부터 명백히 짚지 않으면 후쿠자와의 전체적 사상의 맥락을 시작부터 잘못 짚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나마 “일신독립 해야 일국독립 한다”는 구절은 후쿠자와의 초기의 계몽사상이 내포된 것으로, 이것만 본다면 그에게 붙여진 여러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문제는 후쿠자와의 일신독립과 일국독립의 의미가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의 본연의 자유주의 사상과는 멀어지고 국민 위에 국가가 있다는 식으로 변질되어 가는 데 있다. 후쿠자와 초기 사상이 말년으로 갈수록 국권론을 우위에 둔 국제사회관을 강하게 가지게 되면서 ‘부국강병’, ‘약육강식’ 논리로 국가 관계를 규정짓는다. 따라서 제국주의를 부추기고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속국으로 또는 식민지로 삼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초기의 국가 평등관은 어디로 갔을까! 그래서 후쿠자와 스스로가 말한 “언제나 변화하고 있었다는 점에서만 늘 변함이 없었다”(68p)라는 구절을 보니 나도 모르게 쓴 웃음을 짓게 된다. 그는 철저히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국제관계를 규명했으며 ‘일신독립’보다 ‘일국독립’에 목숨을 걸고 그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일본이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나 야만인의 나라 조선과 창창 되놈들이 득실대는 중국을 일본이 지배하는 것은 자신들의 앞선 문명을 그네들에게 전수하는 것이므로 조선과 중국은 감사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그가 말했던 ‘일국독립’의 의미는 일본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상대국의 주권을 유린하는 것에는 “동양의 진보주의 전사”(208p)로서 당연한 처사였던 것이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동양에 대한 멸시사상으로 가득찬 인물이었다. 가장 가까운 나라인 조선을 “스스로 국사를 처리할 수 없는” 국가로 묘사했을 뿐만 아니라 “미개”, “야만”이라는 표현도 서슴치 않았다. 중국에 대해서도 “창창 중대가리”, “돼지 꼬랑지 머리” “창창 되놈” 등으로 묘사하면서 일본의 제국주의 방책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상대국은 최대한 비하하였던 것이다. 그의 논조가 실린 책과 칼럼과 사설은 일본 국민들에게 보급되고 메이지 정부와 천황제를 공고히 하는데 사상적 뒷받침이 되면서 나중엔 국가를 위해 생명을 바치는 것은 국민으로서 가장 영광스러운 의무임을 세뇌 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가 말했던 “일신독립”은 어디로 갔는가? 인류 보편적 가치인 개인의 자유와 영예와 생명은 어디로 가고 국가가 최우위에 있는 것인가! 그의 사상의 전파에 영향을 받은 일본 병사들의 가혹한 학살과 인권 유린을 자행한 사실은 어디에 묻혀있는가? 국가가 나서서 검은 천으로 덮어버리면 그 역사는 없어지는 것이 되는 것일까? 이 모든 의문의 해결은 “일본 근대사의 역사상(歷史像)을 재구성하는 것”(82p)이라고 야스카와 주노스케는 주장한다.

 

후쿠자와가 말했던 “문명주의”를 진보주의로 오해했고 오독되면서 그것에 계몽사상과 근대화의 신화가 덧입혀서 그를 과대평가해갔다. 부분만 보고 전체를 파악하지 못한 학문적인 심각한 오류이다. 이에 후쿠자와를 인용했거나 연구했던 학자들은 반성해야한다. 후쿠자와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이상 일본의 근대사 역시 오류를 바로 잡기가 힘들다. 후쿠자와를 떠올리면 ‘인간 평등관’을 떠올리던 것은 철저히 잘못된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천황제 찬양이나, 농민과 빈민과 여성을 비하하고 일본 외의 동양 국가들을 멸시한 것은 분명 자민족 중심주의의 최극단을 보여주는 것인데도 왜 아직까지 그가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는가?

 

야스카와 주노스케 같은 양심적 지식인이 명쾌하고 합리적인 논조로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조목조목 따져주니 멸시 대상이었던 조선의 후손인 나로서는 속이 다 후련하다. 일본 국민들도 제대로 판단해야한다. 당신의 존경 대상이 과연 존경받을 짓을 했는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후쿠자와의 사회계약 사상이 루소와 로크처럼 국민주권론이 아니라 껍데기만 민권론을 거론했을 뿐 속 알맹이는 “인민의 직분이 국가가 시키는 것을 부정 불편해도 따라야한다”는 말을 수시로 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는 진보사상가가 아니라 보수사상가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국가가 우선’이다 세뇌를 당했다 할지라도 일본국민은 <아이히만의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철학자 아렌트가 규정했던 “악의 평범성”을 가진 인물인 아이히만(1906~1962)이 유대인 학살에 핵심적 인물로 활동했지만 막상 잡혀온 아이히만은 유대인들이 상상했던 잔악무도한 괴물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아저씨였다는 것을 기억하자. 아이히만은 순종적이고 상부의 명령을 그저 따랐을 뿐인데 그가 왜 재판대에 서야했던가? 이것을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을 옹호하고 묵묵히 따랐던 병사와 국민들에게 상치시켜보면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후 일본 사회가 전쟁 책임 의식이 낮은 이유가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천황의 명령과 보국안위를 위한다는 명분을 앞세웠기에 자신들이 굳이 책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바로 아이히만처럼 히틀러의 명령에 복종하는 지극히 평범한 관료였을 뿐인 것처럼. 그러나 여기부터 수정하지 않으면 일본의 근대사 역사像의 재구성은 힘들다.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의 피해국이었던 한국인과 중국인 등의 국민들과의 역사인식의 심각한 단절은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을 해결하는 과정에 필요한 것이 아렌트가 말한 ‘사유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아렌트는 ‘사유란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바로 그러한 인식의 전환이 전제되지 않는 이상 일본 내에서도 후쿠자와 유키치의 추앙 분위기는 지속될 것이고 그의 실체와 사상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체 역사적 모순을 이어갈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스카와 주노스케의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 사상을 묻는다』저술의 의미는 상당히 고무적이다. 책을 통해 일본국민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오고 그들의 근현대사를 자발적이고 한 차원 높은 민주성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를 선사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잘못을 자각하고 반성하지 않은 이상 역사적 전진은 없다.

 


(이 책은 인용문이 많고 일본식 한자와 어휘의 낯설음으로 평범한 독자들이 읽기엔 다소 부담은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도 일본의 아시아 침략 사상을 제대로 알아야 비판할 수 있기에 그러한 어려움을 무릅쓰고 읽을 필요성이 더 크다. 저자가 ‘후쿠자와 유키치 아시아 인식의 궤적’을 시대순으로 정리하여 부록으로 첨부해두었기 때문에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후쿠자와 유키치를 연구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오타발견 : 108p, 밑에서 7번째 줄 “재껴두고” --> “제껴두고”



YES마니아 : 로얄 g********s 2011.05.31. 신고 공감 10 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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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자와 유키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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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인물을 평가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참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후대를 위한 올바른 역사관의 정립을 위해서라도 객관적인 평가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하여 전제되어야 할 것은, 당시 행적들에 대한 정확하고도 철저한 조사와 자료를 통해 이를 바라보고 판단하는 평가자들의 냉정한 시각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똑같은 상황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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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인물을 평가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참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후대를 위한 올바른 역사관의 정립을 위해서라도 객관적인 평가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하여 전제되어야 할 것은, 당시 행적들에 대한 정확하고도 철저한 조사와 자료를 통해 이를 바라보고 판단하는 평가자들의 냉정한 시각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똑같은 상황을 보고도 사람마다 보는 시각은 모두 제각각이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 이르다 보면 내용에 대한 평가를 놓고 찬반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지만, 이는 어느 관점에서 볼 것인가 하는 인식의 문제 일뿐 평가의 결과하고는 별개의 문제로 단지 지엽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핵심적인 사항을 간과하지 않는데 그 초점을 맞추고 어떠한 경우에라도 결코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 시대를 이끈 개화 사상가이자 계몽가로 일본 통화의 최고 화폐인 1만 엔 권에 등장할 만큼 일본사회에서 마치 우상숭배의 대상이 되는, 한편으로 일본의 악의적인 침략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었던 우리나라를 포함해 해당 당사국들의 입장에서는 원흉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인물을 대해서, 당시 그의 여러 행적들을 명확하고 상세하게 살펴보면서 왜 그가 이러한 상반된 인물로 평가되는지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이 명쾌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서, 그동안 그를 바라보는 여러 다양한 시각적 해석들이 얼마나 왜곡되어져 우리에게 전해져왔는지를 독자들로 하여금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따라서 자주적인 방식으로 외세의 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구한말의 혼란스러웠던 우리의 역사를 오늘의 시각에서 다시 한 번 되새겨보고, 지금도 이러한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적 행태가 자국 내에서 정당화되는 현실을 생각해볼 때, 우리 자신의 투철하고도 확고한 역사관을 위해서라도 누구나 꼭 한번은 정독해야 할 도서라는 생각이다.

 

이 책은 이미 10년 전 일본에서 출간되면서,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인물을 두껍게 둘러싸고 있던 가식적이고 말도 안 되는 여러 모순들을 모두 걷어냄으로서, 그동안 일본사회에 미쳤던 그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당시 일본 국민들에게는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저자가 이 책에서 논하고자 했던 많은 내용들이 거부할 수 없는 엄연한 논리적 사실이라는 것이며, 누구에게나 당연이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고 이를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이러한 객관적인 평가의 해석이 왜 우리의 손에서 먼저 이루어져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과,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행여 그렇다 해도 이 책에서 지적한 여러 가지 논점들을 대하여, 이를 논리적으로 반박하지 못하고 엉뚱한 궤변을 늘어놓거나 혹은 외면하면서,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한 인물에 대한 잘못 고정된 인식을 바꾸려 하지 않는 일부 시각들이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 존재해 있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게 여겨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후쿠자와 유키치가 젊은 날 세 차례의 구미 여행을 통해서 아시아 식민지배의 현실을 목격하면서 “압제를 내가 당하면 싫지만, 내가 아니라면 남을 압제하는 것은 몹시 유쾌하다.”라고 말했던 그의 말을 인용하면서, 당시 영국이 인도나 중국의 역사를 무자비하게 유린했던 것을 그대로 본받아야 한다는 그의 제국주의적 야욕의 과정을 시대별로 여과 없이 낱낱이 밝히고 있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문명론의 개략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강화도사건에 즈음하여 조선이 우리의 속국이 된다고 해도 이를 기뻐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말하며, 일본을 문명국으로 조선을 야만국으로 단정 짓고 이웃나라의 문명개화를 돕는 것이 바로 일본의 책임이며 이를 위해 서양인의 아시아 침략을 제거하고 일본 스스로 아시아의 맹주가 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이후 그는 조선의 모습을 보고 부패한 유학자의 소굴이며 미개하고 야만적인 나라와 다를 바 없다는 식으로 비하하고, 중국 역시도 유교주의에 배부르고 썩어문드러진 망국의 상태에 와 있다고 주장하면서 본격적인 제국주의적 침략을 합리화한다. 그 결과 조선으로부터는 임오군란으로 촉발된 반일폭동을 이유로 대원군을 유폐하는 동시에 수도에 군대를 주둔시키면서 조선의 개화파 인물들을 도와 갑신정변이라는 쿠데타의 배후 인물로 등장하기도 하고,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관련하여서는 미국의 여론이 좋지 않게 되자 왕비가 생전에 참혹한 음모를 마음껏 저질렀다는 식의 허무맹랑한 말을 만들어 여론을 호도하면서 조선의 정사를 무참히 유린하는 등의 내용을 조목조목 짚어내어 비판하고 있다.

 

우리가 이 책에서 눈여겨 볼 것은 오늘날 야스쿠니 신사문제와 관련하여 후쿠자와 유키치가 자신의 생애에 걸쳐 자국의 국민들로 하여금 천황을 위해서는 개인의 목숨과 재산은 아낌없이 바쳐야 한다는 천황옹호론을 일관적으로 주장하고 있다는 것과 동시에, 일본이 조선과 중국을 침략함에 있어 진실을 은폐하고 조작함으로서 제국적인 야욕을 마치 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것으로 포장하면서 자국 국민의 눈을 가리는데 일조한 그의 만행을 우리가 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는 겉으로 보면 일본의 근대화에 많은 영향을 준 계몽적인 사상가요 언론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그의 모습은 침략 선동가 그 이상의 인물은 아니라는 것이며, 그동안 일본국민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허상에 우리가 결코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후쿠자와 유키치에 씌워진 인위적인 가면을 벗겨냄으로서, 한때 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하며 일본이 저질렀던 전쟁책임으로부터 회피하려는 그들의 그릇된 자세를 냉엄하게 비판하고, 더불어 이 책의 말미에 오늘날 역사왜곡과 더불어 또다시 전쟁국가의 길로 들어서려는 그들의 야심에 제동을 걸어야 함을 보다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책에 나타난 역사적 사실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지난 우리의 역사가 그들에 의해 치욕스러웠던 만큼, 이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투철한 역사관을 통해 한 치의 부족함도 없도록 단단한 정신적 무장을 해야 할 것으로 본다.

YES마니아 : 골드 f****1 2011.06.01. 신고 공감 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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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 올바른 역사인식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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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자야 유키치란 인물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일본의 최고액권 지폐인 1만엔권의 초상인물이고 조선과 중국인에 대한 멸시관을 만들고 일본의 아시아 침략 사상의 선두에 있던 사상가라고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는데 내용이 짐짓 많이 심각하다. 일본 정부는 여전히 전쟁책임과 사후대처를 하지 않았고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도 모자라 몇일 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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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자야 유키치란 인물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일본의 최고액권 지폐인 1만엔권의 초상인물이고 조선과 중국인에 대한 멸시관을 만들고 일본의 아시아 침략 사상의 선두에 있던 사상가라고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는데 내용이 짐짓 많이 심각하다. 일본 정부는 여전히 전쟁책임과 사후대처를 하지 않았고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도 모자라 몇일 전에는 역사 교과서에 독도를 일본 국토라는 내용을 넣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물론 일본내에서 이 책의 저자인 아스카와 주노스케처럼 일본의 역사 인식의 심각한 균열과 틈새를 메우려고 애쓰는 양심적 지식인도 있지만 문제는 잘못된 역사인식과 과거반성이 전혀없는 우파들이 일본이라는 나라를 점점 더 우측으로 움직이고  이끌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인에게 후쿠가와 유키치는 근대 일본 최고의 계몽사상가이자 '민주주의'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실체는 '민비암살'의 저자 쓰노다 후사코가 소개하고 있듯이, 한국에서는 "한국의 근대화과정을 짓밟고 파탄으로 내몬 한국 민족 전체의 적"으,로 대만에서는 "가장 가증스러운 민족의 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왜 이런 간극이 발생하였는가? 이는 마루야마 마사오를 필두로 아시아태평양전쟁 이후 지금까지 후쿠자와 유키치 연구에서는 "후쿠자와 유키치 전집" 가운데 원래의 문맥과 상관없이 자신의 주장에 들어맞는 부분만을 뽑아 쓰는 자의적인 연구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가 30여년 전에 일단락지었던 후쿠자와 유키치 연구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면서 집필되었다. 1990년대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을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필자는 책에서 후쿠자와 유키치의 실체를 역사적 증거들과 함께 설명하고 있으며 부록으로 후쿠자와 유치이의 아시아 인식의 괘적을 쉽게 보여주기 위해 도표를 기재했다. 저자의 바람대로 마루야마 마사오 등에 의해 심하게 왜곡된 후쿠자와의 이미지를 걷어내고 그 본모습을 복원하는데 끝나지 않고 일본 근대 사상의 재구축했으면 한다.

심하게 비틀려 있는 일본의 역사인식을 보며 불과 얼마전까지도 우리나라 국사교육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란 부분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우리 아이들의 역사의식 부재로 인해 이 나라의 미래가 흔들릴 수 있는 부분이다. 학교에서 역사는 반드시 필수이어야 하며 보다 강도있고 민족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역사 수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독도문제와 위안부 등 전쟁 책임에 관한 한 정부의 보다 더 단호한 조치가 요구된다. 작년인가 대통령이 일본에서 독도에 관련된 질문을 받았을 때 "지금은 대답하기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란 답변을 한 것으로 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무척이나 실망을 했다. 그때 일본은 우리를 간봤던게 아닐까.. 버젓이 남의 영토를 자기네 땅이라고 자기네 교과서에 올려놓는 부분은 더욱더 적시에, 강력한 대응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으로 인해 다시금 일본과 왜곡된 역사 그리고 현재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읽기에 결코 쉬운 책은 아니지만 많은 분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b********7 2011.05.30.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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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게 오역의 역사에 대한 재평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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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직까지도 일본의 1만엔권을 장식하고 있으며 수많은 이들에게 존경받고 있는 후쿠자와 유키치에 대한 재해석이다. 지금까지의 그에 대한 해석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여 우리는 이 책으로 하여금 두 얼굴을 가진 유키치를 만나게 된다. 일본 근대화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유키치의 인도주의적 발언과 반대되는 아시아 침략사상을 표리부동한 그의 언행에서 밝히고 있으
"독자에게 오역의 역사에 대한 재평가를 묻는다" 내용보기

이 책은 아직까지도 일본의 1만엔권을 장식하고 있으며 수많은 이들에게 존경받고 있는 후쿠자와 유키치에 대한 재해석이다. 지금까지의 그에 대한 해석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여 우리는 이 책으로 하여금 두 얼굴을 가진 유키치를 만나게 된다. 일본 근대화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유키치의 인도주의적 발언과 반대되는 아시아 침략사상을 표리부동한 그의 언행에서 밝히고 있으므로 유키치에 대한 두 얼굴을 읽는다고 할 수 있지만 그가 일본의 근대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전후 일본의 대처와 지금까지의 국제적 반응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자꾸 지금의 일본의 모습 중 일부를 발견하려 하기 보다는 유키치 개인을 그 대상으로 한정하고 독서하려 애써야 했다. 유키치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의 논조도 아니다. 시종일관 저자는 유키치의 언행을 빠짐없이 알려주고 약간의 가설을 제시할 뿐이다. 우리는 그저 후쿠자와 유키치에 대해 더욱 정확히 알아가는 여정에 동참한 것이다.

 

일본근대화의 아버지가 불리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다른 얼굴은 근대폭력, 아시아침략에 대한 사상적 근거 및 토대 마련, 천황중심의 일본민족주의를 다지고 침략사상의 정당화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참으로 책이란, 글자란 무섭기 까지 하다. 우리나라에서 이 책 이전에 유치키에 대해 소개된 글과 책들은 유치키의 사상을 단면만 제시하고 미화한 것에 그친 것이었으니 그 순간 얼마나 우리는 무지하게도 자신도 모르게 유치키의 사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을까.(학문의권장 '문명론의 개략' 을 읽을 때도 이제는 독자의 유치키에 대한 비판적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옹호하거나 비판하고 있는 역사가 있지는 않은지 늘 비판적인 시선을 늦추지 말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신뢰가 매우 가는 책이다. 유치키의 글과 말에 대해 집중적인 조사와 일일히 옮겨놓은 인용(부록)에서 역사 속의 유치키를 보다 정확히 알리려는 저자의 노고가 감사하다. 특히 일제강침과 식민지 시대를 겪은 우리나라로서는 그 역사의 주역을 정확히 아는 것이 미래의 같은 역사를 반복하는 것 또한 방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뉴스를 보니 일본 강제노역에 동원되었다가 현지에서 숨진 조선인 35명을 추모하는 비석을 일본 시민단체가 세웠다가 공공성이 없다면서 자치단체의 과세를 당했다고 한다. 영국인 포로의 묘지는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나 조선인에 대한 조처는 없었던 일본의 태도는 유치키를 떠오르게 했다. 유치키의 영향이 너무 강했던 것일까. 조선인을 비롯한 아시아인에 대한 비하는 지금까지도 일본당국의 이중적 태도를 낳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범에 대한 특별한 세계적 차원의 처벌문제를 강요당하지 않아서인지 위안부 문제와 강제노역에 대한 임금 문제 등 여전히 한국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치 기업의 오너가 큰 회사의 존명을 생각한다는 핑계로 개개인을 희생해도 될 소수로 보듯...

 

후쿠자와 유키치를 일본을 동일시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리고 일본만의 정치적 문제만도 아니건만 유키치의 양면성은 전후 일본의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국내 혹은 자국민 내의 문제, 보통은 정치권과 시민과의 대립의 양상이 예상될 경우에는 바로 유키치가 인심을 돌리기 위해 외전을 획책하고 일시적으로 인심을 기만했던 것처럼 지진피해에 피폐해진 이들에게 독도의 자국영토를 주장하는 교과서를 편찬하고 이에 대한 언론플레이로 자국민들에게 다케시마에 대한 소유를 당연시 여길 기회를 한번 더 마련한다. 일본국민이 개인의 피해보다는 국가의 당연한 소유권에 한번 관심을 돌리게 되는 순간이다. 아마도 일본의 민주주의는 유키치와 같은 근대사상가들에게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러한 유키치 적인 정치대처는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진 유키치의 일신독립=일국독립발언에 대한 저자의 제시자료를 떠오르게 한다.

조선과 중국을 무지랭이로 치부하는 비하적 태도는 어디서 온 것일까. 문명으로 따지고 들면 과학적으로나 미학적으로나 훨씬 앞서가던 문명을 가진 조선과 중국에 당시의 일본문명은 비할 바가 아니었을텐데 말이다. 유키치는 영국 제국주의를 선망한 나머지 서구문명을 긍정적으로만 수용하고 동양전통을 비문명과 야만이라는 단어로 대체하는 행동대장역할을 했다. 이것은 중국과 조선인을 무력으로 제압해야 하는 전쟁의 축인 일본 군인들에게는 야만인 혹은 동물을 죽이거나 괴롭히는 느낌을 주었고 일본으로서는 내부의 반발없이 수월한 식민사업을 펼치게 했을 것이다.

일신독립=일국독립과 함께 유키치의 여러 다른 글과 말로 볼 때 이 말은 개인의 권리를 중요시해서보다는 전쟁에 임하는 일본 국민에게 잘못된 내셔널리즘을 강조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인민의 희생의 당의성을 교육하고 국가가 시민에게 어떠한 행동을 하게 했는지 보이지 않는 그 만행을 정당화하느라 유키치의 모든 양면성이 존재해 온 듯 하다. 지금까지 일본내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의 일본학 내에서도 유키치는 철저하게 오역되어 온 환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일본 내에서도 자국의 현 민주주의 뿌리를 짚어볼 일이다
. 적어도 유키치의 영향 아래 형성된 일본의 근대 민주주의는 상징천황제와 전쟁책임의식의 부재가 더불어 왜곡된 민주주의로 전후에 고착되었을 것이다. 일개 교육사상가의 영향이 어찌 그정도일까를 의심해볼 수 있지만 화폐인물 변경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1만엔권의 모델이라는 점은 그 영향력을 과소평가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한다.

일본 아니 적어도 후쿠자와 유키치의 식민주의 꿈의 모델은 영국이라는 제국이었다. 유키치가 그렇게 강조한 자국의 힘이란 국경을 침범하여 타민족을 식민화하고 착취하는 힘이다. 그저 침략주의의 결과일 뿐인 그가 일본 근대의 석학이었다니 일본의 침략주의의 근간은 이러한 사상가와 정치의 결합에서 온 것이 아니었겠는가.

폭력적 점령과 식민지 착취로 부를 쌓는 당시의 제국주의 모델을 꿈꾸었다는 것은 사상가로서도 교육가로서도 근시안적인 무지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아시아로부터 독립해 서구열강과 같아지기를 바랐던 유키치는 서구의 어떤 것을 닮고 싶었을까. 군림하는 태도, 어디든 전통을 무시하고 오지라고, 비하하는 판단을 내리는 근거없는 자신감? 식민지를 힘으로 늘리는 그들의 태도에서 오는 국가적 권력을 느꼈던 것일까. 유키치에게는 동의 못할 사대주의와 파시즘 에 대한 욕망이 공존하는 듯 하다.

 

직접적으로 말하는 부분은 적지만 저자는 학자의 태도에 대해서 묵묵히 문제제기를 하고 있기도 하다. 지식인들의 왜곡된 해석들이 모여 유키치에 대한 환상이 완성되었으니 말이다. 유키치가 민주주의 선구자라는 것이 신화임을 이제는 지식인들이 먼저 입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

 

진실을 대하고 있자니 책과 더불어 미디어의 역사재현의 리얼리티와 각색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다큐가 아닌 이상 각색을 피하기 어려운 미디어 안의 역사적 소재, 특히 인물은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왜곡되기 쉽다. 이것은 미디어 소비자가 얼마나 비판적으로 역사와 인물재현을 대하느냐에 따라 그 영향력에 개인적인 차이가 있을 것이다. 재현에 대한 이해는 사실을 소재로 하고 실제 인물을 소재로 했다는 인지의 차이만으로도 쉽게 왜곡된 역사를 흡수하거나 전달하는 것을 차단한다.

 

한번 더 우리는 정치를 위한 지성, 정부를 위한 정치적 지식인의 이데올로기의 종교적 전파방법에 대해 인지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은 일본내에서의 지식인의 평가를 중심으로 왜곡된 인물에 대한 인식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일본학 내에서의 협소한 시각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저자의 말과는 달리 내가 느끼기에 식민시대와 일본의 전쟁책임 등에 대한 일본과 우리나라의 엄청나게 큰 인식의 간극에 비해서는 일본내에서든 우리나라에서건 후쿠자와 유키치에 대한 인식에는 거의 간극이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과 같은 다른 아시아국가에서는 그 간극이 저자의 말대로 클수 있으나 내게는 그 차이가 크질 않았으니 나의 역사에 대한 관심도와 우리나라의 일본학 또한 얼마나 비판력있는 연구인가에 대해서도 관심이 갔다. 역자도 언급한 것처럼 국내 일본학의 현주소도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독서가 된 셈이다.

 

유키치가 관여하고 주장했던 여러 문제 중 특히 교육문제와 여성인권에 대한 지금까지의 유키치에 대한 평가 중 가장 왜곡된 부분들이라는 점을 강조해야겠다. ‘학문의 권장으로 번역된 뉘앙스는 그를 꽤 양심있는 교육가로 묘사하고 있지만 그가 말하는 바는 모두 아시아 침략을 정당화하거나 일본의 식민주의를 조장하기 위한 아시아 비하와 언급들과 더불어 다른 목적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그가 교육사상으로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졌다는 걸 생각하면 청소년 독자들에게 지금까지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 우려가 된다. 또 공창제와 공창해외노동을 장려한 이가 아시아 태평양 전쟁 시기에 존명했다면 종군위안부를 반대하진 않았을 것이라는 저자의 가설에 100% 동감이다. 인간사회에 창부가 불가결하다고, 매춘의 해외진출은 외화벌이라고 (감히 진출의 자유를 주자며 자유라는 단어를 들먹이는 것이 학자라는 타이틀이 부끄러울 정도다) 말하는 이가 진정 일본이라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물불 안가리다 보니 표리부동해진 것인지 그냥 시쳇말로 영국빠 정도인 인물이었던 것이 엄청난 왜곡과 재학습을 거쳐 새로운 인물로 탄생해버린 것인지 의심스럽다.

 

내셔널리즘이 강한 일본 내에서 이러한 양심적 연구는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켰을까. 우리나라의 경우라고 가정해보면 내 얼굴에 침뱉기라며 더욱 거센 비판을 받았을 듯하다. 다행히 일본 내에서는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일부의 움직임으로 이어진 듯 하다. 저자가 격렬한 운동가는 아닌 학자였지만 이러한 연구를 시작으로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 시민운동의 중심으로 끌어내어졌다고 하니 말이다.

 

우리가 후쿠자와 유키치에 대해 긍정적으로 묵인하고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김옥균과 같은 조선 개화파를 지지하고 유길준을 도와 한성순보 발간에 도움을 주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저자가 제시하는 자료들을 보자면 이러한 지지는 표면적이거나 양면의 단면이었거나 아예 날조의 역사일 가능성이 높다. 무지한 아시아의 조선은 식민지로서 착취의 대상으로, 아예 계몽의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한 유키치가 그러한 일에 진심이 담겼거나 일본의 이익에 반하더라도 조선을 위한 무언가를 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민비(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대한 유키치의 태도는 개인의 범죄문제로 돌려 일본의 정치적 입지를 계산한 발언일색이다. 게다가 일본과 유키치를 비롯한 정치비평가들의 발언으로 조선의 내부문제로 언론플레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대원군과 민비의 대립에 초점을 맞춤 민비시해의 역사에 대한 재현을 간혹 본 기억이 있다. 이러한 해석은 다양성의 문제가 아니라 왜곡된 역사를 다시 왜곡시키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잠깐 우려가 된다. 당시의 정확한 상황을 지금을 사는 우리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모든 역사를 재현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정확한 모든 상황을 알 수 있는 가능성은 제로다) 그 어떤 해석도 정치와 사상의 교묘한 설득으로 대중들의 공동기억을 형성하게 한다는 점을 잊지 않는다면, 그리고 저자가 제시하는대로 진정 그 사람이 내뱉은 말과 글만으로 평가는 개개인에게 맡긴다면 왜곡의 그래프는 조금 평평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저자는 모순적 발언 때문에 어느 한쪽을 유키치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말해버리는 것은 오히려 오역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가 수집한 수많은 유키치의 발언 자료는 독자 개개인으로 하여금 그에 대한 재평가를 제안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친일사전등의 집필도 이와 같은 연구방법이 동원되었을 것이다. 기사와 문헌, 말과 행동의 궤적을 찾았을 것이다. 우리가 유키치를 다시 살피는 것은 유키치의 삶을 나열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말처럼 지금까지의 재현된 유키치에 대한 오역을 바로 잡을 기회를 가지는 데 있다. 후세대의 정확하고 도덕적이고 비판적인 판단은 전쟁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매우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유별난 애국자가 아니더라도 유키치의 조선에 대한 발언을 듣고 있자면 일제시대의 모진 탄압과 잔혹한 군지배체제가 이해가 될 것이다.(여기에서의 이해는 용서나 화해의 의미가 아니라 어떻게 그러한 만행이 가능했는지의 과정을 알게 되는 것이다) 국민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전쟁에 임하는 군인의 사상은 정치가들과 유키치와 같은 사상가들의 언행으로 자신을 합리화하게 된다. 유키치의 사상은 그 군인들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며 중국와 조선에 대한 무력탄압에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유키치는 아시아의 타국에서뿐만 아니라 자국민조차도 비하하고 무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일본과 유키치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에 한숨이 난다.  여기에서 독서의 격앙된 분위기가 느껴졌다면 그것은 유키치에 대한 실망보다는 책의 힘과 얼마나 수동적인 독자에 불과했던가라는 생각 때문이다.또한 권력의 정치적 행동에 대해 시민으로서의 비판적이고 주체적인 태도에 대한 책임통감에 더 처절했던 독서로 기억될 듯 하다.

 

f*****5 2011.05.25.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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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파시스트이자 제국주의자였던 후쿠자와 유키치!
"극우 파시스트이자 제국주의자였던 후쿠자와 유키치!" 내용보기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위인 1위에 꼽히고, 오늘날에도 1만엔 화폐에 그 초상이 들어간 후쿠자와 유키치.     흔히 일본 내에서는 그를 가리켜 계몽 사상가이자 교육자라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일본의 진보적인 지식인 야스카와 주노스케 교수는 그의 저서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 사상을 묻는다>에서 이것은 그의 본질을 모르고 사람들이 멋대로 추켜세운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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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위인 1위에 꼽히고, 오늘날에도 1만엔 화폐에 그 초상이 들어간 후쿠자와 유키치.

 

  흔히 일본 내에서는 그를 가리켜 계몽 사상가이자 교육자라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일본의 진보적인 지식인 야스카와 주노스케 교수는 그의 저서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 사상을 묻는다>에서 이것은 그의 본질을 모르고 사람들이 멋대로 추켜세운 것에 불과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의 본질은 일본이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여 우수한 군사력을 갖추고, 조선과 대만 및 중국 등 동북아를 정복하고 영국 등 서구 열강마저도 굴복시키는 군사 대국이 되기를 열렬히 갈망했던 극우 민족주의자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평생 동안 가난한 저소득층과 노동자, 농부 등 일반 서민과 여성의 인권을 극도로 멸시했습니다. 그야말로 진짜 극우 파시스트라고 할 수 있죠.

 

  그가 남긴 불후의 명언들을 몇 가지 정리해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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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사꾼과 수레꾼의 논의를 한쪽에 두고 정부권력의 균형을 잡으려는 것은 제등을 저울추 삼아 범종의 무게를 다는 것과 같다. 농사꾼과 수레꾼에게 학문을 가르쳐서 그들에게 기력이 생기기를 기다리는 것은 삼나무 묘목을 심어놓고 돛대를 구하는 것과 같다. 터무니없는 바람이지 않은가.” 1875년 6월. 일반 서민 대중을 극도로 멸시함.

 

  “조선은 아시아 중에서도 조그만 야만국으로 그 쪽에서 조정을 찾아와 우리의 속국이 된다고 해도 기뻐할 만한 가치가 없다.”- 1875년 10월

 

  “대만 야만인은 짐승과 같은 자로 사람 두서넛 잡아먹는 것은 보통이고, 조선인은 그저 완고함으로 똘똘 뭉친 사람으로 외국선만 발견하면 다짜고짜 발포하는 것은 마치 우리의 지난날과 같다.” - 1876년 11월

 

  “훗카이도의 토착민 자제를 양육하고 이들에게 학문을 배우게 하여 고생고생 가르쳐도 유전의 지덕이 부족하다. 호농, 부농, 양가의 자제는 이미 유전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 - 1882년 3월. 가난한 저소득층은 원래 무식한 자들이므로 애써 가르쳐봐야 헛일이라는 말. 덧붙여 인간은 빈부의 격차에 따라 그 유전자를 물려받는다는 기상천외한 유전학까지 제시.

 

  “압정을 싫어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지만 남이 자기를 압정하는 것을 싫어할 뿐, 자기 스스로 압정을 행하는 것은 인간 최상의 유쾌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1882년 3월. 만국의 파시스트들이 들으면 감격하여 눈물을 흘릴 사자후(?).

  “조선인은 미개한 백성이다. 극히 완고하고 어리석으며 흉포하다.” - 1882년 4월

 

  “조선인은 완고하고 사리에 어두우며 거만하다.” - 1882년 9월 6일.

 

  “지나(중국)가 예상대로 자립을 이루지 못하고 외국인의 손에 떨어지면 우리 일본도 수수방관할 이유가 없다. 우리 역시 분기하여 함께 중원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할 뿐.” - 1882년 9월 9일.

 

  “언젠가 한 번은 인도, 중국의 현지인 등을 다스리는 것에서 영국인을 본받을 뿐만 아니라, 그 영국인까지도 노예처럼 압제해 그 수족을 속박시키고 동방의 권세를 우리 한 손에 움켜쥐자고 장년 혈기가 넘치던 시절에 내밀히 마음속에 약속” - 1882년 12월의 논고에서

 

  “우리 일본은 동양의 선구자이자 우두머리로서 지나와 조선을 유도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무력으로 협박하는 것이 필요” - 1883년 1월.

  “조선의 사절이 미국에 가면서 중국인을 동반했다는 것은 거지와 천민이 함께 가는 것과 같다.” - 1883년 8월.

 

  “세계 각국이 서로 대치하는 것은 금수가 서로 잡아먹으려는 기세로, 잡아먹는 자는 문명의 국민이고 먹히는 자는 미개한 나라이므로 우리 일본국은 그 잡아먹는 자의 대열에 서서 문명국민과 함께 좋은 먹잇감을 찾자.” - 1883년 10월.

 

  “천황이 시모노세키로 와서 행재소를 세우고, 조선과 중국에 맞선다면 전군은 용기백배하여 기꺼이 적(조선과 중국)을 몰살하게 될 것이다.” - 1885년 1월 8일

 “짱짱 되놈의 군함을 격침시키고 그 육군을 몰살시키는 것은 식은 죽 먹기,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짱짱 되놈들의 심사” - 1894년 8월 7일.

 

  “바로 중국의 국경을 넘어 들어가 성경과 길림, 흑룡강 3성을 점령하고 일본의 판도에 편입시켜야 한다. 중국이 고집을 부리면 만주 3성뿐만 아니라 중국 본토 400개 주는 중국의 소유가 아님을 알게 하라.” - 1894년 8월 11일.

 

  “일본 전국 4천만 국민이 인간의 씨가 마를 때까지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 1894년 8월 14일.

  “눈에 띄는 것은 노획물 밖에 없나니. 아무쪼록 이번에는 온 북경을 뒤져 금은보화를 긁어모으고, 저 관민을 가릴 것 없이 아무것도 남기지 말고 빠뜨리지 말고 부피가 많이 나가는 것이 아니라면 ‘창창 되놈’의 옷가지라도 벗겨 가져오는 것이야말로 바라는 바. 그 가운데는 유명한 고서화, 골동, 주옥, 진기한 보물 등도 많을 테니 개선한 다음 팔아서 한밑천 잡는 거야.” - 1894년 9월 20일. 청일전쟁이 발발하자 병사들에게 중국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약탈을 공공연하게 선동함.

 

  “조선의 인민은 소와 말, 돼지와 개와 다를 것 없다. 실제로는 조선을 정복한 것으로 간주해 그 정부 중추의 지위에 일본인을 채워 실권을 잡게 하고, 일체 일본인의 손으로 직접 실행케 해도.” - 1895년 1월 5일.

 

  “대만의 반민 등은 필사적으로 저항을 시도하나 대수롭지 않은 오합지졸의 좀도둑떼. 무지몽매한 오랑캐 대만인을 모조리 바깥으로 쫓아내고 일체의 권력을 일본인이 장악하고 그 전토를 모두 과감히 일본화하는 방침을 확정하고.” - 1895년 8월 14일

 

  “대만에 있어서는 섬 전체를 소탕하고 원주민 같은 존재는 안중에도 두지 말라. 비록 무기를 들고 저항하지 않아도 우리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무리는 하루도 그냥 놓아둘 수 없다. 조금이라도 우리 병사에 저항하는 자는 군인이고 민간인이고 가릴 것 없이 한 사람도 남기지 말고 주살하고 살육하여 살아 있는 자가 없도록 해야 한다.” - 1895년 8월 14일.

 

  “무기를 들고 저항하는 대만인은 닥치는 대로 주살하고, 그렇지 않아도 불순한 자들은 모두 쫓아내야 한다.” - 1895년 8월 22일.

 

  “우리에게 반항하는 대만 도민은 한 사람도 남기지 말고 섬멸하여 악인의 무리를 없애고, 병력을 동원하여 가차없이 소탕하여 이파리도 말려죽이고 뿌리도 끊어 모든 악인의 무리를 섬멸시키고 토지 같은 것은 모조리 몰수하여 섬 전체를 모조리 관유지로 만들라.” - 1896년 1월 8일.

 

  “대만인의 완고무식함은 그들의 성질로서 도저히 깨달을 수 있는 바가 아니므로 섬멸하는 것 외에는 수단이 없다. 풍속습관에 대한 법률 같은 것은 일본 국내와 똑같이 집행하고 조금이라도 못 본 척 봐주어서는 안 된다.” - 1896년 1월 15일.

 

  “매춘부의 해외 진출은 결코 비난해서는 안 되며, 자유롭게 하는 것이 경세상 필요하다.” - 1896년 1월 18일.

 

  “대만의 미개한 야만인에게 문명의 법률을 시행하려는 것은 수레꾼이나 말구종의 무리에게 무가 집안의 예법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 - 1896년 7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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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 사상을 묻는다>의 저자인 야스카와 주노스케의 말로 끝을 맺습니다.


  - 후쿠자와는 대만 문제에 한해서만 도대체 몇 번이나 섬멸, 주륙, 살육이라는 단어를 남발하고 있는 것일까. 마치 흡혈귀처럼.

x***2 2011.04.2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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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인물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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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인물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사람은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 본다.’는 말이 실감나는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을 두고 엇갈리는 평가를 하게 되는 이유가 분명하게 있을 것이다. 누가, 무엇을 보고자 하는가에 따라 극명하게 달라지는 평가를 두고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인지 의문이다. 더욱 힘을 가진 권력자에 의해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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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인물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사람은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 본다.’는 말이 실감나는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을 두고 엇갈리는 평가를 하게 되는 이유가 분명하게 있을 것이다. 누가, 무엇을 보고자 하는가에 따라 극명하게 달라지는 평가를 두고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인지 의문이다. 더욱 힘을 가진 권력자에 의해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평가되는 경우라면 한 사람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아닐 것임은 자명하다 할 것이다. 하여, 역사를 평가할 때 누가 무엇을 보고자 하는 것인지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동아시아의 지난 역사에서 빠트릴 수 없는 일은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자행된 제국주의적 침략전쟁일 것이다. 군국주의 일본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아시아 여러 나라를 침략하고 약탈했던 분명한 사건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흐려지는 경향성이 있지만 아직 해결되지 못한 전후 처리과정이 남아 많은 아시아 국가의 국민들에게 아픈 상처로 남아있다. 그 침략 전쟁의 중심에 서 있던 한 사람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하는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 사람은 바로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ふくざわゆきち, 1835년 1월 10일 - 1901년 2월 3일)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오사카에서 태어나고 도쿄에서 사망하였다. 일본 개화기의 계몽 사상가이자 교육가, 저술가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일본의 고액권 화폐에 초상화가 실려 있을 정도로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평가되어져 왔다. 특히, 우리나라와 관련해서 조선 개화기의 사상가 유길준, 윤치호 등의 스승이자 한국 개화파에 영향을 준 인물이라고 한다. 그에 대한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평가는 대단히 우호적인 인물로 되어 있으나 이는 일본 내 극우주의자들에 의해 의도된 평가라는 해석과 더불어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들에서도 그의 행적을 근거로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며 그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젊은 시절 외국을 다니며 보고 들었던 것을 비탕으로 일본으로 돌아와 ‘천황을 중심으로 국력을 결집시켜 아시아를 집어삼킨 뒤 서구열강과 겨루겠다는 포부가 무엇보다 앞섰다. 그러기 위해 “가장 긴요한 일은 전국 인민의 머릿속에 국가의 사상을 주입시키는 것”이었고, “일국의 인심을 흥기하여 전체를 감동시키는 방편으로는 외전(外戰)에 필적하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그의 시각은 필요에 따라 시의적절 하게 다른 표현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조선은 본래 논할 가치도 없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당면의 적은 지나이기 때문에 우선 병사를 파견해 경성에 주둔 중인 지나 병사를 몰살하고, 바다와 육지로 대거 지나에 진입해 곧바로 북경성을 함락시켜라.’

이 책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는 바로 ‘후쿠자와 유키치’에 대한 현재적인 평가와 이러한 평가가 무엇이 잘못되어 있으면 어떻게 그러한 평가가 이뤄질 수 있었는지에 대한 개관적인 평가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한 평가의 근거로 제시되는 것은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로 볼 수 있는 그의 발언과 저작물들이다. 우선 저자의 한국판 서문에서 한국 내에서 평가되는 ‘후쿠자와 유키치’에 대한 ‘근대화의 아버지’라는 인식의 문제점을 이야기 한다. 왜 이런 평가가 가능했을까? ‘조선 인민을 위해서 그 나라의 멸망을 축하한다.’라는 식으로 우리나라에 대한 침략의 본성을 숨기지도 않았던 사람인데도 말이다.

저자의 시각으로 본다면 일본 내에서 ‘후쿠자와 유키치’는 전후세대의 사상가들이 전쟁과 패전으로 얼룩진 시대를 넘어 새로운 희망을 찾기 위해 후쿠자와 유키치에게 ‘자유주의자’라는 환상을 덮어씌우고, 그 이미지를 뒤흔들 만한 발언은 외면한 채 오로지 입맛에 맞는 문구들만 주목해왔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가 정당하지 못함을 인식한 저자는 진정한 후쿠자와의 참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그의 텍스트들에 정면으로 도전한 결과물이 이 책이다. 

저자가 참고한 ‘후쿠자와 유키치’의 행적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부분을 살펴보면 그의 사상과 행동이 어떻게 유지되고 발현되었는지 잘 알 수 있다. 저자가 본문에서 언급한 일련의 말들에 대한 정확한 증거를 찾아 볼 수 있도록 독자를 배려한 마음이 보이는 부분이다. 

현대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평가를 받는 사람이 있다. 박정희 전직 대통령으로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긍정적인 평가에 이어 민주주의를 말살한 독재자로 서로 엇갈리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다. 이 사람 역시 누구 무엇을 보고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에 따라 달라지는 평가를 받는다. 진실은 어떻게 하더라도 밝혀질 수박에 없는 것임을 확인한다.



m*****8 2011.05.26. 신고 공감 2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 진실에 눈을…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 진실에 눈을…" 내용보기
일본에 불어 닥친 쓰나미. 그곳을 향하던 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손길. 그리고 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도 더 뜨거운(?!) 관심과 도움을 보냈던 대한민국의 모습들을 기억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국내의 다른 수많은 문제들보다 더 유별난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에 그리 달갑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뭐,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들은 그런 우리의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우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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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 불어 닥친 쓰나미. 그곳을 향하던 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손길. 그리고 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도 더 뜨거운(?!) 관심과 도움을 보냈던 대한민국의 모습들을 기억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국내의 다른 수많은 문제들보다 더 유별난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에 그리 달갑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뭐,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들은 그런 우리의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우리에게 돌려주지 않아야 할 것을 돌려주었다. 가당치도 않은 독도 영유권 논란을 새롭게 부추긴 것이다. 쓰나미로 타격을 받은 그 순간들에, -그들이 원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우리가 작게나마 주려던 도움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말이다. 이런 나라를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받아들이며, 어떻게 행동해야하는 것일까!?


 일본과 우리의 관계는 쓰나미와 독도 영유권 주장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 것이다. 오랜 시간 우리나라를 비롯한 이웃나라들에 대한 침략, 그리고 그 이후 자기비판과 반성 없는 또 다른 오랜 시간을 보내는 모습들에서 단순한 불쾌를 넘어서 분노로도 부족할 만큼의 감정을 가지게 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더군다나 그 침략사상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 오늘날 1만 엔 권의 초상인물이며, 누군가에게는 바람직한 근대 일본 구축을 위한 가장 기대되는 인물상이기도 하다는 사실까지 더해지니…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이 책,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는 일본 근대화 과정의 총체적 스승이라 일컫는-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후쿠자와 유키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본사람이, 1만엔권의 초상인물이며 우리에게는 탈아론으로 익숙한, 그만큼 일본 내에서 존경받는 인물인 그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전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 근대 스승이자, 근대 일본 최대의 계몽 사상가이며 인간평등사상가로 알려져 있는 그가 아시아 침략의 중심에 놓여있다는 사실에서 시작하는 이 책은 지금까지 그를 바라보던 시선과는 다르다. 지금까지 알려져 있고 받아들이던 후쿠자와 유키치의 전혀 다른 면을 보게 만드는 것이다. 더군다나 반론조차 제기되지 않을 정도의 이론과 현실인식으로 말이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의 ‘야스카와 주노스케’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글을 주제별로 분류하고 그에 대한 근거를 하나하나 찾아가며 그-그리고 그를 떠받드는(?!) 마루야마 마사오-를 비판한다. 방대한 유키치의 글과 그를 반박하는 다양한 사료들을 담고 있기에 이 책을 읽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단순히 감정에 치우친 이야기가 아닌 객관적이며 분석적으로 정밀하게 검증하며 보다 정확하게 그를 바라보게 함으로써 차근차근 읽어나가다 보면, 메이지유신을 이끈 사상가라는 인물이, 일본, 나아가 동아시아 근대문명의 선각자라는 인물이, 민주주의자 등으로 미화되는 인물이 사실은 어떠했는지 차츰 눈을 뜨게 될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이 한권의 책만으로 어떤 일이나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뭔가를 판단한다는 것이 상당히 조심스럽다. 이것도 결국에는 어느 한쪽의 입장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기존의 관점에 새로운 관점을 더하는 입장이며, 그것은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불러온다는 점에서 평소에 겪던 조심스러움에서는 보다 쉽게 벗어날 수 있을 듯하다. “일본의 1만 엔 지폐에 후쿠자와가 인쇄되어 있는 한 일본인은 믿을 수 없다.”는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 윤정옥 전 대표의 말이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그것도, 군국주의 일본의 침략에 대한 스스로의 비판과 반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우리의 역사적 인식마저 흔들린다면 과연 무엇이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보게끔 한다는 사실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역사적 인식부터 바로 세워야 그를 바탕으로 뭔가를 시작해도 제대로 되는 것이 아닐까!? “지금은 곤란하니까 기다려달라”는 어이없는 말을 할 필요도 없이 말이다.

b****j 2011.05.3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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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우익의 뿌리 후쿠자와 유키치를 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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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인물을 평가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참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후대를 위한 올바른 역사관의 정립을 위해서라도 객관적인 평가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하여 전제되어야 할 것은, 당시 행적들에 대한 정확하고도 철저한 조사와 자료를 통해 이를 바라보고 판단하는 평가자들의 냉정한 시각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똑같은 상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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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인물을 평가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참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후대를 위한 올바른 역사관의 정립을 위해서라도 객관적인 평가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하여 전제되어야 할 것은, 당시 행적들에 대한 정확하고도 철저한 조사와 자료를 통해 이를 바라보고 판단하는 평가자들의 냉정한 시각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똑같은 상황을 보고도 사람마다 보는 시각은 모두 제각각이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 이르다 보면 내용에 대한 평가를 놓고 찬반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지만, 이는 어느 관점에서 볼 것인가 하는 인식의 문제 일뿐 평가의 결과하고는 별개의 문제로 단지 지엽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핵심적인 사항을 간과하지 않는데 그 초점을 맞추고 어떠한 경우에라도 결코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 시대를 이끈 개화 사상가이자 계몽가로 일본 통화의 최고 화폐인 1만 엔 권에 등장할 만큼 일본사회에서 마치 우상숭배의 대상이 되는, 한편으로 일본의 악의적인 침략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었던 우리나라를 포함해 해당 당사국들의 입장에서는 원흉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인물을 대해서, 당시 그의 여러 행적들을 명확하고 상세하게 살펴보면서 왜 그가 이러한 상반된 인물로 평가되는지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이 명쾌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서, 그동안 그를 바라보는 여러 다양한 시각적 해석들이 얼마나 왜곡되어져 우리에게 전해져왔는지를 독자들로 하여금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따라서 자주적인 방식으로 외세의 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구한말의 혼란스러웠던 우리의 역사를 오늘의 시각에서 다시 한 번 되새겨보고, 지금도 이러한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적 행태가 자국 내에서 정당화되는 현실을 생각해볼 때, 우리 자신의 투철하고도 확고한 역사관을 위해서라도 누구나 꼭 한번은 정독해야 할 도서라는 생각이다.


이 책은 이미 10년 전 일본에서 출간되면서,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인물을 두껍게 둘러싸고 있던 가식적이고 말도 안 되는 여러 모순들을 모두 걷어냄으로서, 그동안 일본사회에 미쳤던 그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당시 일본 국민들에게는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저자가 이 책에서 논하고자 했던 많은 내용들이 거부할 수 없는 엄연한 논리적 사실이라는 것이며, 누구에게나 당연이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고 이를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이러한 객관적인 평가의 해석이 왜 우리의 손에서 먼저 이루어져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과,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행여 그렇다 해도 이 책에서 지적한 여러 가지 논점들을 대하여, 이를 논리적으로 반박하지 못하고 엉뚱한 궤변을 늘어놓거나 혹은 외면하면서,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한 인물에 대한 잘못 고정된 인식을 바꾸려 하지 않는 일부 시각들이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 존재해 있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게 여겨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후쿠자와 유키치가 젊은 날 세 차례의 구미 여행을 통해서 아시아 식민지배의 현실을 목격하면서 “압제를 내가 당하면 싫지만, 내가 아니라면 남을 압제하는 것은 몹시 유쾌하다.”라고 말했던 그의 말을 인용하면서, 당시 영국이 인도나 중국의 역사를 무자비하게 유린했던 것을 그대로 본받아야 한다는 그의 제국주의적 야욕의 과정을 시대별로 여과 없이 낱낱이 밝히고 있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문명론의 개략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강화도사건에 즈음하여 조선이 우리의 속국이 된다고 해도 이를 기뻐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말하며, 일본을 문명국으로 조선을 야만국으로 단정 짓고 이웃나라의 문명개화를 돕는 것이 바로 일본의 책임이며 이를 위해 서양인의 아시아 침략을 제거하고 일본 스스로 아시아의 맹주가 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이후 그는 조선의 모습을 보고 부패한 유학자의 소굴이며 미개하고 야만적인 나라와 다를 바 없다는 식으로 비하하고, 중국 역시도 유교주의에 배부르고 썩어문드러진 망국의 상태에 와 있다고 주장하면서 본격적인 제국주의적 침략을 합리화한다. 그 결과 조선으로부터는 임오군란으로 촉발된 반일폭동을 이유로 대원군을 유폐하는 동시에 수도에 군대를 주둔시키면서 조선의 개화파 인물들을 도와 갑신정변이라는 쿠데타의 배후 인물로 등장하기도 하고,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관련하여서는 미국의 여론이 좋지 않게 되자 왕비가 생전에 참혹한 음모를 마음껏 저질렀다는 식의 허무맹랑한 말을 만들어 여론을 호도하면서 조선의 정사를 무참히 유린하는 등의 내용을 조목조목 짚어내어 비판하고 있다.


우리가 이 책에서 눈여겨 볼 것은 오늘날 야스쿠니 신사문제와 관련하여 후쿠자와 유키치가 자신의 생애에 걸쳐 자국의 국민들로 하여금 천황을 위해서는 개인의 목숨과 재산은 아낌없이 바쳐야 한다는 천황옹호론을 일관적으로 주장하고 있다는 것과 동시에, 일본이 조선과 중국을 침략함에 있어 진실을 은폐하고 조작함으로서 제국적인 야욕을 마치 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것으로 포장하면서 자국 국민의 눈을 가리는데 일조한 그의 만행을 우리가 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는 겉으로 보면 일본의 근대화에 많은 영향을 준 계몽적인 사상가요 언론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그의 모습은 침략 선동가 그 이상의 인물은 아니라는 것이며, 그동안 일본국민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허상에 우리가 결코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후쿠자와 유키치에 씌워진 인위적인 가면을 벗겨냄으로서, 한때 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하며 일본이 저질렀던 전쟁책임으로부터 회피하려는 그들의 그릇된 자세를 냉엄하게 비판하고, 더불어 이 책의 말미에 오늘날 역사왜곡과 더불어 또다시 전쟁국가의 길로 들어서려는 그들의 야심에 제동을 걸어야 함을 보다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책에 나타난 역사적 사실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지난 우리의 역사가 그들에 의해 치욕스러웠던 만큼, 이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투철한 역사관을 통해 한 치의 부족함도 없도록 단단한 정신적 무장을 해야 할 것으로 본다.



p*******3 2011.05.29.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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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지않은 메이지와 어두운 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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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지진 참사이후 최근에는 일본발 원전 뉴스가 없는 듯하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원전 참사로 이어졌는지 알수가 없다. 체르노빌때는 원전 주변의 피해사례와 원전처리과정까지 자세히 보도되었던것같은데 일본의 경우 마지막 타전소식이 체르노빌 못지 않은 피해일 거라는 예측기사였는데. 지난 3월의 일이 마치 일년도 더 된 느낌이 든다.  오늘 세계뉴스를 다루는 프로에서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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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지진 참사이후 최근에는 일본발 원전 뉴스가 없는 듯하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원전 참사로 이어졌는지 알수가 없다. 체르노빌때는 원전 주변의 피해사례와 원전처리과정까지 자세히 보도되었던것같은데 일본의 경우 마지막 타전소식이 체르노빌 못지 않은 피해일 거라는 예측기사였는데. 지난 3월의 일이 마치 일년도 더 된 느낌이 든다.  오늘 세계뉴스를 다루는 프로에서 일본 지진피해 현장을 보도한 내용이 있었는데 여전히 폐허가 된 피해지역에서 복구에 손을 못대고 울고 있는 중년남자의 모습을 비쳐주고 있었다. 원전은 어떻게 됐을까? 독일은 앞으로 10년이내에 모든 원전을 중단시킨다고 하지 않나. 일본산 생태는 못먹겠지만 대만산 꽁치와 제주도산 칼치는 마음놓고 먹어도 되는지 궁금하단 말이다... 원전 주변 바다는, 원전은......

여진의 공포가 계속되던 중 일본인들의 질서의식을 보도하던 외신이 생각난다. 그런데 한 일본인의 인터뷰에는 어느 지역의 주민들은 상점에 난입하고 물품을 서로 가져가려고 아수라장이 된 얘기가 나왔었다. 그런데 일본 방송은 전혀 혼란스런 모습을 보도하지 않았고 난민이 수용된 곳에서도 사람들의 우는 모습을 가능한 내보내지 않았다. 일본은 어떤 나라일까......

일본 최고액권 지폐에 얼굴이 나온다는 후쿠자와 유키치, 그의 사상을 재조명한 일본 학자의 책인 이 책은 전후 일본의 정치학자와 역사가들에 의해 미화되고 찬양되어 온 후쿠자와 유키치 사상의 허구성을 철저히 파헤치고 있다. 저자 야스카와 주노스케는 근대사상의 시초이자 민주주의 선구자로 칭송받는 역사의 인물이 실상은 철저한 아시아 멸시사상에 기초한 국권확장의 화신이었음을 그의 저술들을 통해 증거한다.
 
저자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초기부터 중기, 청일전쟁기, 그리고 말기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사고의 궤적을 추적하고 기존의 해석에서 발견되는 오류들을 지적해준다. 나아가 '밝은 메이지와 어두운 쇼와'라는 대조적 두 시대에 대한 접근 방식에서 '밝지 않은 메이지와 어두운 쇼와'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다. 말하자면 이미 메이지시대의 후쿠자와 유키치의 사상에서 아시아태평양전쟁으로 가는 사고의 배경이 조성되었음을 강조한다.

저자 야스카와 주노스케는 원래 교육자였으며 정년후에 사회운동의 흐름속에서 다시 후쿠자와 유키치전집을 읽게되면서 이와같은 역사해석의 작업을 시도한 것이다. 일본의 소위 주류라고하는 역사학계에서는 여전히 이 인물이야말로 '전형적인 시민적 자유주의자'라는 마루야마 마사오의 이해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대다수 일본인들의 관념을 지배하고 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은 자칫 잘못 생각하면 자국의 역사에 대한 타자의 입장이란 판단의 오류로 치부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일본역사속에서 자국역사의 오해와 미화가 끊임없이 이어져왔다는 사실을 알면 일본이라는 나라의 역사왜곡에서는 충분히 객관적인 오류의 증거를 찾을 수 있을 것같다.

후쿠자와는 메이지시대에 정부에 속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확고한 선동적 글을 계속해서 발표함으로써 한 시대의 언론을 장악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 누구보다도 영향력이 컸던 그는 갑신정변의 개화파가 일본으로 망명했을때 유일한 은신처를 제공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고 유길준역시 경응의숙에 그의 도움으로 유학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일부이나마 일본 역사학계의 이러한 움직임을 환영할 수 있으나 전체 보수적 학계에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조차도 아닌 형상일 것이다. 오히려 왜 일본의 학자들이 그동안 후쿠자와를 신화적 인물로 묘사했는지 그 잘못된 근거를 알아보는 작업이 현단계 우리에겐 더욱 필요한 작업이 되겠다. 후쿠자와 역시 제국주의 시대가 만들어낸 야망이 지나친 한 인물이었는지 그 개인의 독단적인 견해가 어떻게 한 시대의, 아니 그 다음시대의 어둠으로 이어져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오점을 만들어낸 것인지 궁금하다. 나아가 같은 시대의 서양의 제국주의 정체에 대한 어떤 규명들이 이루어졌는지 역사학의 성과들도 검토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저자가 말하는 진정한 한일우호, 동아시아 공동체의 기초구축은 꿈이 아니길 바랄뿐이다.

f****e 2011.05.31. 신고 공감 1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