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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대가들이 한 사람씩 등장해서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배워볼 수 있는 말 그대로 철학 교실을 표방하여 묶어낸 책이다. 총 열네 시간 동안 열네 명의 철학자들과 열네 개의 주제를 가지고 한 장씩 끝내고 나면 뭔가 확실하게 잡혀지지는 않지만 뭔가 어려운 것을 알게 되었다는 느낌은 든다. 사실 이제껏 여러 권의 철학책을 읽어봤지만 재밌다, 재미없다는 평가만 했을 뿐, 이렇다 할 깨달음을 얻거나 삶의 방향성을 얻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최근에 읽었던 강신주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나 본 지 꽤 된 안광복의 『인생고수』은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활력을 주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사람들이 보통 철학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은 적은 없었단 말이겠다. 이는 비단 철학책의 문제라기보다는 책을 선택하는 사람의 짧은 식견 때문일 테다. 그런데 이번 책을 통해서는 이제까지와는 관점이 다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철학이라는 것은 어떤 지식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목적이 되는 학문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 어떤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는 도구적인 학문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혹자는 뭐 이런 당연한 것에 대해서 뒤늦게 설명하냐고 하겠지만 나로서는 이 사실을 이제야 처음 알게 되었던 것이라 무척이나 신기하고 새롭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철학자인 오가와 히토시, 즉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철학을 공부하면 모든 고민이 사라지나요?”이란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마도 이것이었을 게다. 철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모든 고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내 삶을 긍정하고 나에게서 위안을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가 된다고, 그렇기에 한 번 위기를 극복한 사람은 과거의 경험을 발판삼아 다시 한 번 이겨낼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런 방법을 한 번 터득하고 나면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났을 때도 견뎌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이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난 철학책을 읽는 이유가 정말로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떤 위기가 닥쳐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에 철학적 사고방식을 적용해서 이겨낸 적이 없었던 나로선 철학책이 하나의 지적 유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쉽게 이해할 순 없는 내용이라 같은 내용을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 같은 기분으로 책을 보긴 했지만, 철학책은 내겐 ‘앎’을 위한 학문이었다. 정말 맞는가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외우는 것을 좋아해서 온갖 독특한 이름의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조들을 한데 묶어서 이해해보고 그 이후에 그것을 외우는 기쁨을 누려왔다는 것이 맞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봐도 배움을 위한 책읽기였다.
실은 읽고 나서도 머리에 남는 것이 없고 철학 사상은 도통 외워지지도 않아서 누군가에게 아는 척도 하지 못하는데 왜 철학책을 읽는 건지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그저 그런 분위기가 좋았던 것일까. 잘 모르겠다. 그저 나는 삶의 방향성을 정하는데 다른 방법과 사고체계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 철학이라는 학문이 어쩌면 잉여지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무래도 니체이다. 니체는 기독교를 전면적으로 부정한 철학자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렇기에 더욱 궁금했던 사상가였다. 제대로 알지를 못하니까 그의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도 알 수가 없었던 것이 제일 아쉬웠다. 내가 철학책을 좋아한다니까 누군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권해주셨는데 그 책에서 풍겨나오는 아우라가 무서워서 쉽사리 집을 순 없었던 책이여서 이 책에 나왔을 땐 반가웠다. 그런데 그의 주장에는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듯한 느낌이 들어 답답했다. 그러나 내가 그의 책을 낱낱이 이해한 것도 아니고 제삼자가 그의 사상을 짤막하게 정리해둔 것을 읽는 것만으로는 그의 사상에 대해 뭐라고 논박을 펼 수 없어서 아쉬웠던 생각도 강하다. 그래도 짧게나마 의문을 표시하자면, 그가 말한 “신은 죽었다”는 경구가 가장 강렬하게 인상에 남는다. 신에게 의지하여 노예적인 삶을 살지 말고 자신이 스스로를 믿어 삶을 긍정하면서 진취적으로 세상을 바꾸어나가자는 말로 그의 사상을 이해했다. 그리고 니체는 세상에 대해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잘못이고 세상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니힐리즘 즉 허무주의를 주창했는데 그 부분이 확실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일은 반복된다는 것을 받아들여 부조리한 일이 긍정적인 일보다 많이 반복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인생을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가지라고 주장하지만, 세상에 대해 의미를 두지 않는다면 어떻게 긍정적인 인생을 영위할 수 있을까란 의문이 떠올랐다. 지금의 어려운 일을 극복하고 다른 희망을 찾아 또 한 번 인생을 살고자 하려는 의지가 갖추어지려면 세상에는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니체의 주장은 처음 가정한 것이 뒤에 자신이 주장할 내용과 모순된다는 느낌이 들어서 이 부분이 가장 이해되지 않았다. 물론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겠지만, 이 책에 나온 짤막한 이야기만으로는 니체의 철학을 다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단 생각이 든다.
어쨌든 철학이 단순한 앎의 영역이든 삶의 방향성을 찾는 영역이든 누구에게나 열린 학문임에든 틀림없다. 내가 암기를 위해 철학책을 본다고 해서 그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허나 점차적으로 철학책이 재미가 없는 것을 보니 그것이야말로 큰 일이다. 내 방 한 구석에 켜켜이 쌓여있는 철학책만도 조금 되는데 재미가 없으면 어쩌란 말인가. 부지런히 읽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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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학창시절 공부를 많이 안 한 탓에 철학자들에 대해 많이 알지도 못하고, 또 알았었다 해도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상식으로 철학의 교실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하이데거, 헤겔, 칸트, 플라톤, 마르크스, 사르트르, 니체 등 낯익음 이름들도 있었지만, 메를로 퐁티, 레비나서, 아렌트, 롤스, 오가와 등 처음 들어보는듯한 이름도 있어서 우선 대표적인 철학자들의 이름을 접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또 좋았던 것은 철학자들을 대표하는 질문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질문 자체만으로도 지금 이 시점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제들이었기 때문에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어떻게 도출할까 궁금할 정도로 좋았는데, 더 좋았던 것은 질문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질문을 대표할 수 있는 철학자들과 연결되어 있어서 한 철학자의 특징을 잡고 이미지화 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읽어보니 나름대로 이끌어낼 수 있도록 답을 제시해주고도 있었습니다. 총 14개의 질문이 있는데 이 질문들 속에 인생의 모든 중요한 주제들을 다 포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광범위했습니다.
이런 좋은 점들 가운데 아쉬운 점들이라면, 철학의 상식을 높이는 차원에서 한 사람 한 사람 글마다 그 철학자에 대해 조금더 사실적인 소개가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 당시 어떠한 사람이었고 무엇을 주장했으며 대표적으로 알아두면 좋은 것들이 좀 더 소개되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그 사람의 약력이 아주 짧게 소개되기는 합니다만)
저자도 밝히고 있듯이 철학자들이 그 시대에 와서 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철학자들이 현 시대로 와서 바라봤을 때 어떻게 답할 것인가를 상상해서 유추하는 식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객관적 사실적인 측면이 조금은 부족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 대입시켜 상상해보는 것도 좋았지만, 그 철학자의 실제상을 아는 것도 같이 다루어지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 외엔 아주 쉽게 설명도 되어 있어서 이해하기도 쉬웠고 철학책인데도 부담없이 접할 수 있는 좋은 책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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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유명했던 철학자들로부터 철학강의를 들으면 어떨까? 이 책의 출발점이 그것이다. 하이데거, 헤겔, 칸트 등 13명의 철학자들이 새벽 3시에 일본의 어느 고등학교에 나타난다. 수강인물들은 5명의 일본인들인데, 책의 내용은 철학자들이 강의를 하듯이 진행된다. 저자는 철학 교수로 그의 지식을 토대로 하여 철학자의 강의가 만들어진 듯하다. 다소 정해진 틀에 매여 있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철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쉽게 풀어쓴 책이라 생각된다. 철학 책이라고 하면 교육적 목적으로 쓰여진 교재식 설명을 다루거나 비평 형식을 빌어 어렵게 쓴 형식의 책으로 양분되는 듯하다. 그러다보니 일반인들이 철학을 접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매일 철학에 관한 책을 읽거나 생각을 꾸준히 이어온 사람의 경우에는 상당한 수준이 되겠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매일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관심분야를 갖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된다.
철학이라고 하면 뭔가 고상하고 인생에 대한 정답을 알려주는 듯한 환상을 주는 느낌이 든다. 물론 나도 그런 생각이 들어 철학에 관련된 책들을 많이 읽어 왔었다. 어떠한 지적 산물이나 결과물도 마찬가지이지만, 절대적인 진리를 제시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즉 크라테스의 생각일 뿐이고, 플라톤의 생각일 뿐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일 뿐이다. 지구가 멸망한다고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 개인의 생각일 뿐입니다. 그것이 옳은 것처럼 전달하는 방식이 잘못된 것이다. 요즘은 워낙 많은 지식들이 난무하다보니 자신의 것들을 웬만큼의 노력으로 전파하기 힘들다보니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게 된다. 조금이라도 사람들에게 많이 노출되기 위해 다양한 광고들을 사용하고 있으며, 뉴스를 동원해 노출시키기도 한다.
철학도 절대적인 가치나 진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핵심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너무 자주 접하다보면 물들게 되고, 벽을 만든 후 알아보면 속뜻을 알기 어렵게 된다. 다시 말하면 공자의 밑에서 질문하는 자가 여럿이 나오는데, 공자의 말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생각하여 그들은 수제자가 되어 인생을 헌납하면서 따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들과 생각이 같다면 진리로 보이겠지만 생각이 다르다면 어리석은 행위로 보일 것이다. 철학도 그런 성향이 강하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에 상응하는 진리 표현인 듯하다.
같은 철학자라도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그 수준이 정해질 수밖에 없다. 책에 나온 삶과 죽음에 대한 하이데거의 강의도 고딩이 보는 관점과 70대 이상의 노인이 보는 관점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꿈에 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당장 꿈을 펼쳐가야 하는 사람의 입장과 그것을 몽상이라고 외면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친구라는 잣대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도 모른다. 부모나 스승, 사회, 국가 등이 해줄 수 없는 같은 세대의 생각과 가치를 친구가 가이드해주는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듯하다. 물론 모두 옳을 수는 없지만 비교대상은 된다고 생각된다. 그러다보니 친구에 대한 속담도 많은 듯하다. 한편으로는 속고 속이는 세상사를 보는 것보다는 이런 철학 서적의 눈을 통해 잣대를 세우는 것도 좋을 듯하다. 최소한 그들은 속이거나 거짓말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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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철학 입문서로 일본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은 '세상에서 가장 쉽고 재미있는 철학 수업'인 [철학의 교실]. 이책은 철학을 싫어하는 고등학생인 큰아이와 함께 보기 위해 선택한 책으로 책의 표지를 보면 하이데거, 헤겔,칸트등 한번쯤은 들어봄직한 14명의 철학의 대가들이 나온다.이14명의 철학자들이 표지의 그려져 있는 순서대로 철학의 교실에 찾아와 현대를 살고있는 우리가 가장 고민하고,걱정하고 있는 인생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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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전 지대넓얕의 저자인 채사장의 영상을 보았다.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라는 주제의 강의였다. 강의 내용을 한문장으로 요약하면 '불편한 책'을 읽어보라는 이야기 였다. 그렇다면 나에게 불편한 책들은 무엇인가? 학생때는 이과를 선택하고 난 뒤 읽기 시작한 책은 과학서적 뿐이였다. 그러다보니, 인문서적에는 손이 잘 가지 않고 볼 때마다 모르는 내용에 어렵다는 느낌만 들었다. 나에게 불편한 책 바로 인문서적 이였다. 그 중에서 가장 손이 안가던 책이 바로 철학 분야이다. '철학의 교실' 이 책은 철학에 관심은 있지만,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여러 철학자들이 등장하여 강의식으로 쉽고 재미있게 자신의 이론을 설명한다. 저자가 일본인이라서 일본 사례를 들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와 비슷한 문화라서 거부감이 없었다. 그래서 철학의 입문서로는 좋은 책이다. 철학책을 읽을 때마다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자들은 어렵고 난해한 말을 하기는 하지만, 어떻게 살고, 무엇이 중요한지 고민의 흔적들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내용을 이해하기는 어려운 지라 느낌으로만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요즘 핫한 이슈가 있다. 바로 의사들의 진료 거부이다. 정부가 아래와 같은 정책에 반대하여 일어난 일이다. 1. 기존 의과대학의 의대정원 증원 2. 지역의료제도 개편 3. 기존 정원을 활용한 공공의대 설립 4. 기존 의과대학에 지역의사 선발전형 신설(10년 복무) 그러면서 의사들은 다음 정책을 전면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1. 지역 의사 양성을 위시한, 의대 정원 증원 2. 공공 의대 설립 발의 3. 한방 첩약의 급여화 4. 원격 의료 추진 의사들은 환자들이 목숨을 담보로 한 권력을 가지고 정부의 권력과 대립 중이다. 푸코는 '권력은 우리를 이끄는 존재'라고 한다. 책에 보면 아래와 같은 문장이 있다. 누가 우리를 어떤 방향으로 이끄는지 잘 살펴보면 보이지 않는 권력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그 방향으로 이끌어서 이득을 얻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면 되니까요. -p.261 푸코의 말에 따르면 의사권력과 정부권력에서 이득을 얻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의사들이 주장한 의대 정원 증원을, 공공 의대를 반대해서 누가 이득을 볼까? 확실한건 나는 아니다. 철학자들은 질문을 많이 한다.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을 알게 되며, 스스로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의사들도 스스들에게 한번 물어보길 바란다. 책에 칸트의 의무론이 소개되어 있다. 칸트는 인간 한사람 한사람을 늘 존중해서 판단하고, 옳은 일은 무조건 해야한다는 의무를 부여한다. 그렇다면 어떤 일이 옳은것 인지가 중요하다. 누구나 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면 아무리 노력해도 비윤리적 결과를 낳을 수 밖에 없습니다. -p.89 모호하긴 하지만, 칸트는 공동체 속에 뒤섞이면서 공동체에서 무엇이 옳은가를 논의하고 계속 탐구하라고 한다. 칸트의 내용을 의사의 진료거부 사태에 적용해보면, 의사들 공동체에서는 공감능력이 떨어진다. 의사들만의 공동체에서는 누구나 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의사들의 공동체는 의료계라는 공동체로 들어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써 무엇이 옳은지 논의하고 탐구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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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질문들에 당신이라면 뭐라고 답하겠는가?
"어차피 죽을 텐데 왜 사는 걸까요?"
"성욕이 위험할 정도로 강한데 병인가요?"
"나는 누굴까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요?"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연애를 못하겠어요. 결혼을 꼭 해야 하나요?"
"인생이란 무엇인가요?"
헉.. 이 질문들을 하나씩 듣고 나면, 아마도 두 번 머리가 멍해질 것이다. 하나는 '어? 이거 내 고민인데?', 또 하나는 '나보고 답하라고? 답이 있기는 한거야?' 아니면, 아니면 어쩔 수 없고.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 우리는 쉽게 '철학적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작 '철학'이라는 단어는 여기저기 쉽게 쓰이는 데도, 그 의미를 제대로 알거나, 내 인생에 활용하는 것은 어렵다. 익숙하지만, 낯선 묘한 아이러니다. 이에 대해 과감하게 답을 제시하는 것이 이 책 '철학의 교실'이다.
위에서 제시한 질문들은 우리들에게 어렵지 않다. 삶에서 문득문득 가슴 속으로 파고 드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답을 찾기 위해 나름 고군분투 한다. 어떤 이는 이에 천착해서 평생을 바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너무도 절박하게 갈구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저자 오가와 히토시는 어떻게 이에 대한 답을 주겠다는 것일까. 그는 공무원이었고, 야간대 철학박사 출신이며, 현재는 한 공업 고등 전문학교 준교수다. 철학자로서 그닥 경력이 오래돼 보이지 않는 그가 우리에게 어떤 명쾌한 답을 줄 수 있을까. 그는 역사적인 철학자들을 등장시킴으로써 문제들에 대해 색다르게 접근한다.
어차피 죽을 텐데,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어쩌면 그는 이렇게 생각할 지도 모른다. 이따가 밥 또 먹을 텐데 지금 이빨은 뭐하러 닦냐, 내일 청소할 텐데 오늘 뭐하러 청소하냐, 다음에 한 번에 정리하면 되는데 지금 뭐하러 책상정리 하냐...... 들어보면 응당 맞는 말인 것 같다. 열심히 살아봐야 결국 죽는 거 아니냐는 말도 지극히 비관적으로 들리지만, 얼핏 그럴 듯 하게 들리기도 한다. 이에 대해 하이데거는 말한다. 죽음을 생각하고 이를 악물고 살라고. 죽음이란 삶을 빛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에, 우린 죽음을 외면하지 말고 의식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이는 이렇게 들린다. 인생은 죽음의 도구가 아니라, 죽음이 인생의 도구라고 말이다. 과정의 선후, 원인과 결과, 수단과 목적을 바꾸어 보니, 삶이 달라보인다. 유한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는 첫 단락을 읽고 내가 생각해본 것이다. '답은 이것이다.'라고 정의내리는 것이 아니라, 철학자가 강의하고 중간중간에 강의의 참석자들이 코멘트나 질문을 던진다. 그 과정에서 질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 그것이 철학이란 학문의 본연의 의무가 아닌가 싶다.
저자는 철학을 통해 인생의 고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자신이 철학에 매료된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철학을 통해 문제에 직면했을 때,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된다고 말이다. 철학이란 것이 삶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는 학문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오히려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우린 인생의 과정에서 '삶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에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가. 그 때마다 멈추어서서 골머리를 앓다보면, 인생의 방향을 잃게 된다. 철학의 힘을 빌리면 그 과정이 덜 고통스럽지 않을까. 좀더 현명하게 그 장애물을 넘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린 너무도 생각없이 산다. 생각하는 것이 불편하다. 사회가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고, 생각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사회 탓만 할 것도 아니다. 인생이란 결국 나의 것인데, 나 이외의 다른 것에 열심히 휘둘리게 놔두지 않았나. 어느 날 문득, 철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 건, 내 인생임에도 내가 주체가 되지 못한다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너무도 쉽게 철학에로의 길을 안내해 준다. 죽은 이가 멀쩡히 살아나서 강의한다는 설정이 살짝 유치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쉽게 내 손을 내밀게 되는 촉매제가 된다. 철학의 교실에 당신도 참석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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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이라면 왜 지금 죽지 않는가? 자살은 잘못된 것일까? 꿈과 이상을 추구하며 사는 것은 쓸데없는 짓일까? 어떤 직업을 갖고 살아야 할까? 연애와 결혼, 꼭 필요한 것일까? 모두 ‘돈 돈 돈’ 하면서 살지만, 가진 자도 못가진 자도 불행한 듯하다.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는 없을까? 이런 고민들이 또 무슨 소용이람?’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이런 질문들을 문득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이런 질문들은 분주한 일상에 묻혀버린다. 그러다가 어느 날 또 다시 문뜩 떠오르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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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부분이 이해가 안된다. 자기는 왜 넣은겨.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는 철학이란 것은 계속해서 고민해나가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부분이 더 마뜩찮았던듯. 하지만 그래도 되게 입문서로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편집적인 면에서 시간 순서대로 했어도 좋을 것 같다. Thematic하지만 동시에 chronological할 수도 있잖아! 사람들이 막 튀어나오는 느낌이 든다. 아 그리고 미키는 너무 전형적인 캐릭터라서 짜증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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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철학 관련된 입문 서적이 많아지고 있다. 생활철학이라 불리며 일상생활의 각종 문제를 두고 철학적 해법을 제시하는 책들도 많고, 그보다는 바삭하게 철학자들의 사상을 일상어로 풀어서 설명하는 책들도 많다. 학부 신입생 때는 대부분 철학 입문 수업이나 교양철학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이 시절에 앞서 설명한 부류의 책들을 가장 많이 읽었다. 이후에 종종 접할 때엔 시간이 흐르며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된 사상들을 되새기며 정리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입문 서적도 모두에게 진짜 입문이 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철학'이란 단어만 들어도 공포에 가까운 반응을 느끼며 난색을 표하는 사람들이 내 주위에만 해도 적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일본 철학교사의 책은 내 주변에 있는 철학거부자들에게 추천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철학은 아무리 쉽게 풀어도 쉽지 않은 대상으로만 여겨진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고등학생 세 명과 30대 직장인, 40대 주부가 모인 아주 늦은 밤의 교실을 배경으로 철학 수업이 펼쳐진다는 가상의 이야기. 이 수업의 교사는 매일 바뀐다. 고인이 된 역사 속 철학자들이 한 명 씩 방문하는 것이다. 이들은 수강생들의 일상적 고민을 명쾌하게 풀어준다.
황당한 설정이지만 그래서 더 딱딱하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 철학자들의 개성을 잘 드러내도록 서술 방식을 택하고 있어서 멀게만 느껴지던 철학자들이 꽤 가깝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노란 배경의 박스에 칠판 필기를 연상케 하는 내용 정리를 해주는데, 이는 설명을 이해하는 데에 효과적인 역할을 한다. 기본적으로 철학 수업을 들어본 경험이 있다거나 다른 입문 서적을 읽어본 사람에게는 너무 기본적이며 쉽게 느껴질 수도 있다. 중학생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법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고학년도 요즈음 초등학생 수준이 워낙 높으니 사고력을 집중해서 발휘한다면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아주 유치하진 않다. 직장인과 주부도 등장하는 만큼 일반인의 눈높이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직장인으로 등장하는 남자는 영화 마니아여서 각각의 주제에 맞는 영화도 소개해주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죽음은 삶을 빛나게 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은 서둘러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필요도 없으며 반대로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아갈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죽는 그 순간까지 그저 오로지 열심히 살아가면 됩니다. 산다는 것은 모든 일에 앞서는 전제입니다. (41쪽, 하이데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일부러 현실을 선택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상이 지나치게 높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그곳으로 다가가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현실을 선택하는 것은 현실에 안주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저 너머에 있는 이상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66쪽, 헤겔)
자기 자신과 타인이 우리 안에 공존하는 것입닏. 이처럼 자신과 타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타인을 무한히 책임져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물론 한쪽이 일방적으로 책임을 진다는 개념이 불공평해 보일 수도 있겠죠. 그런 의미에서 이를 비대칭 윤리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138~140, 레비나스)
행복은 주위 사람까지 행복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우선 사회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행복해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행복론』에 이렇게 쓰기도 했죠. "행복해지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에게 시민의 월계관을 만들어서 표창하자."고요. 행복이 너무 멀리 있는 것 같나요? 그럼 속는 셈치고 한번 웃어보십시오.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첫 걸음입니다. (238, 알랭)
사실 모든 사람에게는 디오니소스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디오니소스적 측면이란 우리가 인생의 어두운 면과 치열하게 싸우는 과정을 통해 결국 슬픔과 괴로움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하죠. 그런 의미에서 아폴론적인 측면은 디오니소스적인 측면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본질적으로 괴로움을 받아들이면 더욱 강하고 밝게 살아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332~333,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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