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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양은 저마다 다를지언정 우리가 짓는 마음의 결은 국적을 불문하고 서로 비슷하다는 걸 깨달을 때마다 나는 저으기 안심하곤 한다. 크게 복잡할 것도 없이 열 손가락만으로도 다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은 감정의 결들. 기쁨, 슬픔, 화남, 놀람, 공포, 혐오... 여행자는 기실 공간과 공간을 방문하는 게 아니라 마음과 마음을 찾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을 디딤돌 삼아 삶의 또 다른 징검다리를 건너는 게 여행의 묘미이자 순리일 테니 말이다. 그리고 나와 다르지 않은 그 마음결을 재차 확인하며 자신이 사는 이 세상에 대해 안심하는 것이다.
"유난히 사랑이 많은 나라를 여행하다보면, 그곳 사람들이 더 많이 키스하고 포옹할 뿐만 아니라 더 많이 울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눈물을 참는다는 것은 자신을 억압하는 일이다. 눈물을 잘 참는다는 것은 잘 억압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울지 않는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p.200)
몇 해 전에 나는 심리학 서적에 심취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봐야 깊은 지식을 요하는 전문서적은 어려워서 읽지 못하고 수박 겉핥기 식의 가벼운 책들만 주로 읽었지만 그때 내가 깨달았던 건 사람에 대한 깊은 신뢰만이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난 지금, 단단했던 그때의 깨달음도 흐르는 세월에 풍화되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평생 잊혀지지 않는 각성이나 깨달음은 오직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에서만 비롯될 뿐 책을 통한 간접적인 체험은 유통기한이 명시된 그저 일시적인 '앎'일 뿐이다.
여행작가 오소희의 <사랑바보>는 예전에 읽었던 김형경의 심리 여행 에세이 <사람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다만 김형경의 시선이 자신의 내면으로 향했었다면 오소희는 그녀의 시선이 타인에게 향했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우리는 모두 사랑을 '잘' 하고픈 사람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작가는 여행길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사는 방식, 말하자면 사랑하는 방식을 진솔하고 따뜻한 시각으로 그려내고 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여행을 기억하지 못할까봐 염려하지만, 사실 아이들은 기억엔 관심없어요. 언제나 현재를 살며 체험할 뿐이지요. 여행이라는 매우 강도 높은 체험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태도를 형성해줍니다. 열고, 뛰어들고, 함께하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요. 기억은 결국 사라지지만 태도는 평생을 관통해 남아 있게 되죠." (p.38)
맞는 말이다. 아무리 지식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삶을 오직 지식에 의존해서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사람을 사랑하려는 마음과 곁에 있는 사람과 더 가까워지는 방법은 머리가 아닌 가슴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철학자 대부분이 여행을 즐겼던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사랑의 다양한 형태, 이를테면 모성애, 자기애, 동성애 등과 함께 세대에 따라 달라지는 사랑의 모습을 자세히 그리고 있다. 남미로 가는 경유지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중년의 동성애자와 남미에서 만난 유쾌한 레즈비언 등 사랑의 다양한 모습과 세계 각국에서 만나는 청년의 사랑, 중년의 사랑, 그리고 프랑스에서 만났던 잊혀지지 않는 노년의 사랑을 작가의 편견없는 따뜻한 시선으로 만날 수 있다.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 부여한 아름다운 역할을 충실히 해나간다는 것과 동의어일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까르르까르르 박수를 치며 고맙다고 하는 것. 시간과 품과 진심을 내어주고도, 고스란히 받아주니 고맙다고 하는 것. 일 년에 한 걸음씩만 내딛더라도 더 나빠지지 않아 고맙다고 하는 것. 고맙다는 것의 참뜻, 아마도 그런 것인가보다. 다시 평범한 창밖을 보니, 온통 고마운 세상이었다." (p.265)
내가 사는 세상은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천국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있다하지 않던가. 뭉근한 햇살 속에서 완만하게 변하는 겨울 날씨처럼 사랑은 그렇게 온유하고 상냥한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걸 믿는다면 당신의 삶은 안전할 것이다. 오늘 오전에 오는 20일 퇴임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고별연설이 있었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었던 그가 임기말까지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받았던 까닭은 아마도 8년간의 임기 내내 미국인의 화합을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1만 명에 가까운 예술인들을 배제하는 우리나라의 대통령과는 격이 달랐던 것이다. 그는 연설에서 자신의 부인인 미셸 여사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먼 나라의 대통령이지만 존경할 만하다. 사랑꾼 오바마의 연설문 일부를 인용해본다. “지난 25년간 당신은 나의 부인이자 내 아이들의 엄마이면서 가장 중요한 친구였다. 원치 않던 역할(영부인)이었지만 아주 우아하고 용감하고 폼나게 일을 해냈다. 당신은 백악관을 모든 사람의 장소로 만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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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의미있는 공간인 것은 바로 인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광활한 대자연의 규모와 화려한 동식물의 향연도 한 사람의 존엄을 압도하지는 못한다. 과학과 종교는 한 목소리로 일갈한다. 인간 이외의 만물은 결국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물질을 발견하고 다스리는 인간 정신의 고차원성은 이 세계가 곧 인간의 시공간이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 입증한다. 지구의 존재 이유. 그것은 바로 인간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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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보면 첫째 아이 낳고 100% 산후우울증이 왔었다. 잠들어 있는 모습 보면 내가 정말 낳았나 믿을 수 없을만큼 사랑스럽고, 보채거나 울 때면 혼자 감당하기 힘든 육아의 끝이 보이지 않아서 아기랑 같이 울고 또 울었다. 그 때 우연히 만난 책이 바로, 오소희 작가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였다. 슬픈 이야기 하나도 없는 아이와 함께한 터키 여행책을 읽으며 내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뒤로 5년이 흘렀다. 그런데 또, 둘째 아이 육아하며 5년 전 일을 되풀이하고 있는 지금, <사랑바보>책을 읽는 내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껴서 야금야금 읽어야지 하면서 출간되자마자 사서 읽었는데, 왜 이리 빨리도 끝이 난건지 책장에 오소희작가의 다른책들과 함께 정리해두며, <아..하..>하고 한숨이 나왔다.
5년 전과 똑같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내게, 주변 사람들이 <언젠가는 아물거야.. 괜찮아질거야..>라고만 말해줄 때, 오소희작가는 <나도 다쳐봤는데 많이 아프지? 아, 정말 쓰리겠다. 내가 썼던 연고가 어딨더라, 아! 여깄네. 내가 남은 연고를 발라줘볼게...>..라고 말해주는 거 같다. 그래서 괜시리 슬픈 이야기들도 아닌데 눈물이 나고 가슴이 울컥해지면서, 삶에 대한 희망을 얻게 되는 거 같다.
2년 전에 오소희작가처럼 터키까지는 아니지만 36개월된 아들의 손을 잡고, 10일 동안 아이 걸음에 맞춰서 걸었던 제주도에서의 시간은 내 인생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오소희 작가와 중빈군 따라 아들도 나도 세상속에서 잘 자라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내 했었다. 그러러면, 나도 오소희작가처럼 좀 더 용감해져야겠다고, 씩씩한 엄마가 되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요번 책을 읽고나니, 이젠 사랑을 받고, 하고, 찾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사랑하는 아들과 세상에 첫발을 딛기 시작한 딸과 함께...
언제나 내게 희망을 선물해 주는 오소희작가의 책들. 참 고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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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내내 든 생각,,,
이런 책은 오소희님 밖에 못 쓸 거 같다는 생각,,,, 예전 부터,,,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나올 여행에 관련 된 책들,,, 그 많은 책의 지은이중 이리도 따뜻한 가슴으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분이 계실까?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이렇게 따뜻한 가슴과 열린 마음으로 전세계를 여행하고 계신 이런 분이,,,
브라질의 밥,,, 요르단의 달랄,,, 효자동의 빙그레 수퍼 할머니까지,,,
어디로 떠나야 겠다는 생각보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 먼저 떠올랐어요,,, 아침에 편의점에서 만난 아가씨,,, 버스에서 옆에 앉은 아저씨,,, 그들을 사랑해야지,,,,하는,,,
이 책은 그래요,,, 이런 식이죠,,,^^
숨바꼭질하듯 숨 어 있다는 것에 , 문 득 , 목 이 메었다.
읽으면서 당신의 호흡이 글에 의해 움직여 지지 않아요? 아~~~~~~~~~~~~~~~~좋아라,,,,
동하면 그녀의 집 앞에서도 목청을 높여야 한다, 만남도 소개팅에서만 하는것이 아니다, 눈빛을 마주하는 것이, 말을 거는 것이, 사랑을 나누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 되어야 한다.
그저 잠시 나란히 앉았을 뿐인 페루의 아르카디오는 깨닫게 해주었다.
어디에나 사랑이 있다, 모 든 것 이 사 랑 이 다.
오히려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입니다. - 헨리 밀러
내가 만난 게이들은 차분한 남성성과 섬세한 여성성을 겸비한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군더더기 없이 세련되었으면서도 내면을 공유하는 데 숨김이 없었다. 다리를 훔쳐보지 않는 이성애 남자와 밤새워 속 깊은 얘기를 나누려면 십 년의 우정을 필요로한다. 운이 좋으면, 게이들과는 만난 그날 가능하다.
꼭 읽어보세요,,,^^ 한동안 친구들 선물은 이 책이 될 거 같으네요,,,^^
소희님이 남미 어느 도시에서 찍은 거겠죠,,,^^ 나 진심 해보고 싶어요,,,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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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혼자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자유로울까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사람 하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난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행할 수 있으리라. 물론 적당한 자금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내가 가진 또 다른 욕심으로 인해 제약을 경험하는 일이야 있겠지만, 적어도 다른 누군가의 존재 때문에 상처 받는 일은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 사랑에 쉽사리 빠지지 아니하고 급기야 사랑을 거부하는 까닭은 그 사랑이 내게 상처를 안겨다 줄 가능성에 대해 너무나 고심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소 외롭지 않을까? 사회적 동물이라 일컬어지는 게 사람이기에, 혼자서 살아 갈 수야 있긴 하겠지만 결국에는 외로움에 몸서리 치게 되지 않을까? 사정이 그러하다 보니 모두가 아프리라는 걸 알면서도 사랑을 갈망한다. 사랑 때문에 생긴 상처를 평생 가슴에 품고 살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사랑이라고 하면 흔히들 남자와 여자 사이에 오가는 오묘한 감정을 떠올린다. 그렇지만 세상 존재하는 오만 가지의 감정 중 사랑이 최고라고 언급할 때의 사랑은 그 좁디 좁은 범주의 사랑만을 뜻하지 않을 것이다. 언어가 아무리 거대한 세상을 담을 수 있다 하여도 이 사랑만큼은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리란 사실을 나는 잘 안다. 내가 갈망하는 사랑이 특정한 상대를 그리워하는 감정일 수도 있긴 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사람들 틈에 끼어 부대끼고픈 평범한 감정일 수도 있음을 말이다. 처음 작가의 책이 세상에 나왔을 때 나는 그녀의 눈을 통해 내가 미처 도달하지 못한 그 낯선 공간을 바라보길 꿈꿨다. 틀에 얽매이지 않은 그 여행의 자유로움이 그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동시에 마냥 신기하기도 했다. 네 살이었던가, 고작 네 살에 불과한 어린 아이를 대동한 채 떠나는 여행, 자유로워봐야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부러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갑갑함도 동시에 느꼈던… 그런데 그녀의 떠남은 멎질 않았다. 어린 아이는 혼란스러울 수도 있는 환경의 변화를 외려 즐기고 있었다. 중빈의 세상은 한없이 넓었고, 단순히 공부를 잘 하고 못 하고의 차원은 그 아이에게 아무것도 아닐 터였다. 비로소 나는 그녀의 여행을 가슴으로 끌어안기 시작했다.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 그녀의 책은 낯선 세계에 대한 동경 그 이상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여행기의 핵심은 바로 ‘사람’이었다. 적지 않은 여행을 떠나보았지만 사실 나는 줄곧 여행사만을 따라다녔다. 직접 길을 찾아 나설 정도로 적극적이지 못하기도 했거니와 일상에 치이다 보니 그저 유명한 장소를 따라다니는 게 속 편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일 유럽 배낭 여행도 그런 식으로 다녀왔다. 그 땐 숙소만 예약을 해놓은 상태로 장소는 내 스스로가 선별해 찾아다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현지인과의 만남은 극도로 자제하는, 지극히도 소심한 모습으로 일관했었다. 내가 놓친 게 대다수의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였다. 내가 경험치 못한 게 여행을 통해 얻어야만 했던 핵심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도 난 여전히 어리석게 굴고 있다. 한 번 몸에 배인 습관은 좀처럼 떨구어 내지 못하는 셈이다. 이 책에는 참으로 많은 나라가 등장한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나타나 그녀에게 삶의 의미를 일깨운다. 길에서 만나는 자는 모두 우리의 스승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본다. 난 얼마나 많은 가르침을 스스로 뿌리치며 살아왔던가! 어쩌면 내가 진정 부러워했던 건 단지 떠남이 자유로운 사람들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여행이 가져다 줄 드넓은 견문, 제한 없는 만남. 내가 놓쳐 버린 많은 기회들. 우리는 모두 사랑을 ‘잘’ 하고픈 사람이라는 저자의 말을 향해 깊은 공감을 보내본다. 안정된 생활을 뒤로한 채 끊임없이 제 앞날을 개척하는 사람들이 경험 중인 그 깊은 사랑이 오늘밤은 무척이나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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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나의 사랑에 대한 정의도 시간과 더불어 무수히 바뀌어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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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개월 전, 생일을 맞아 선물받은 이 책. 제목만으로도 설레고 마음 따뜻해지게 만드는 책이었지만 왠지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서야 손에 쥐고 읽기 시작했다. 다 읽고난 지금, 읽기 전 기대했던 것처럼 정말로 가슴 따뜻해지고, 내 맘까지 알 수없는 설레임에 콩닥콩닥, 책장을 덮기가 아쉬울 정도였다.
'오대양 육대주에서 만난 사랑하는 영혼들과의 대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연인의 사랑도 있고, 혼자만의 가슴아픈 사랑도 있고 한순간의 달콤함을 위한 사랑도 있고, 정열적인 혹은 소극적인 사랑도 있고, 겉모습만 다를 뿐 사랑하는 방식은 그누구와 별다를바 없는 동성애도 있고, '희생'이 어우러져 그무엇보다 강인하다고 할 수 있는 모성애도 있고, 생의 챔피언들이라 불리는 노년의 사랑이 있을 수 있다.
이처럼 사랑이란 장소, 상황, 여건, 남녀노소 불문하고 그 어느곳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달콤하고도 행복한, 그무엇인가 보다.
각기 다른 곳에서, 그리고 저마다의 사연들을 가지고 충실히 그 사랑을 행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공감하며 읽어 내려갔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가진 사랑을 하고 있을까?
오래전부터 너무나 잘 알고 지낸 우리였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서로에게 전과는 다른 마음을 갖게 되었지만, 결국엔 두손 꼭 잡을 수 있는 우리만의 사랑을 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매일 툴툴대기만 하는 나를 받아주고 잡아주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는 함께 관심 가져주는, 꼼꼼함과 세심함으로 내 맘을 항상 따땃하게 만들어주는 '그' 덕에, 한번도 싸우지 않고 옆에 나란히 앉아만 있어도 마냥 즐거운, 알콩달콩한 사랑을, 나름대로 우.리.만.의. 사랑을 잘 해오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이는 스무 살에 했던 사랑이 진짜였다고 했다. 바람은 가슴 한가운데로 불어와 혈맥을 따라 고스란히 파장을 일으켰고 고개를 들어 둘러보면 아무것도 정해진 것 없어 늦도록 시시덕거렸던 그 사랑이 진짜였다고 했다. 어떤 이는 서른 살에 했던 사랑이 진짜였다고 했다. 사랑은 더 이상 해일처럼 덮치는 것이 아니라 손 안에서 편안하게 주관되는 것. 어떤 이는 생의 반절을 살고 나서 했던 사랑이 진짜였다고 했다. (p.120-121)
모두가 공감하고 느끼는 것이 다르지만, 그 '어떤이'란 결국 지금, 현재에 충실하기에 느끼게 되는 것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는 지금 충분히 즐겁고 행복하니, '지금의 사랑이 진짜'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 처럼.
누군가 당신이 본 수많은 연인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연인이 누구였느냐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말할 수 있다. 어제까지 평생을 같이 하고 오늘 또 손을 잡고 걷는 바로 저 노부부라고. (p.250)
가끔 길을 다니다보면 머리가 새하얀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서 혹은 손을 꼬옥 쥐고서 나란히 걷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한평생을 기쁜일, 슬픈일 함께 겪으며 두 손 꼭 잡고 걸어 오신 것일테니,
열정적인 남미의 라티노들이 가르쳐준 게 있다면 한가지야. 지금 당장 사랑하라! 남편이 있으면 끌어안고, 아내가 있으면 키스하고, 음악이 흐르면 눈치 보지 말고 같이 춤추는 거야. 힘도 들지 않고 돈도 들지 않아.
혹시나 지금 내가 하고있는 사랑이 어설프고 결점 투성이일지라도 '현재에 충실할 것, 그리고 내 사람뿐만 아니라 세상에 모든 것들을 더 많이 사랑할 것'만큼은 다시금 마음에 새기고 느낄 수 있게 해준 책인 것 같다. 읽는 내내 한 장, 한 장 넘기기가 아쉬울 정도로 재미나게 읽었던 책. 오랜만에 가슴 따뜻해지는 책을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참 좋다.
길 위에서 언제나 다시 깨닫는 것. 함부로 지나쳐도 되는 풍경은 없다. 풍경 안에 놓인 작은 고양이 하나, 깨어진 장독 하나, 취해 넘어진 이 하나, 함부로 스쳐가도 좋은 것은 없다. 모두가 진한 사연의 귀한 주인공들이다. (p. 265)
그.러.므.로.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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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그녀의 글이 봄비처럼 촉촉히 마음을 적신다. 매번 구질구질한 반성과 낡은 다짐을 되풀이 하면서도 전혀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일상을 이어나가는 나 지만 왠지 잠시 동안은 생각하고, 사랑하고, 또 감사하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녀의 글 덕분에.
내 삶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이젠 '한번 해보고 싶은 일' 이나 '진정 하고 싶은 일' 을 염두에 두기보다 '해야할 일' 에 쫓겨 달려나아가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아니 '나이' 의 문제라기 보다는 '자리' 의 문제라고 결론 짓는다.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돌보아야 할 자식이 있는지 없는지. 가끔은 온 하루가 '나' 이외의 것들로 채워진다.
이런 와중에 그녀의 글은 내게 '자극' 이자 동시에 '위안' 이 된다.
그녀가 여행작가라고 해서 어느 이국적인 까페에 앉아 먹기 아까울 정도로 어여쁜 쿠키와 홍차를 홀짝거리며 야경을 감상하고, 멋지게 보정된 유럽사진들로 소위 '관광기' 를 채웠다면은 나는 잠시동안은 부러워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이렇게 많은 것에 구속되어버린 내 처지를 한탄하면서 언젠가 자유로워질 멀고 먼 훗날의 '그 날' 을 그리며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마치 직장인들이 '주말' 을 보고 '주중'을 살아내듯이.
하지만 그녀의 글은 당신에게 속삭인다.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마음이 열려있다면, 누군가와 '관계맺기' 를 할 수 있고, 그 경험이 크고 작은 것이든 우리에겐 각기 다른 에피소드들이 하나 하나씩 생긴다고. 그 '에피소드' 를 기억하고, 곱씹고, 반추하면서 우리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감을 깨닫는다고.
이 책을 통해 그녀는 그동안 각 한권으로 펴낸 터키, 라오스, 아프리카 여행기에 미쳐 담지 못한 이야기와 가장 최근의 남미 여행에서의 에피소드를 풀어낸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그녀는 그들의 '사랑' 을 엿보았다. 나이차를 극복한 사랑이든, 처음 시작하는 사랑이든, 말년의 사랑이든, 동성애든 모성애든 그녀의 사유 앞에선 다 인류 보편적인 공통성을 띤 이야기로 공감이 갔다. 그것은 때론 먼 길에서 찾지 않아도 되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여행자의 에피소드는 일상의 에피소드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누군가와 일상에서 비슷한 대화를 나눌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한번 스쳐지나가는 사람과 길 위에서 나누는 대화라면, 그것이 몇시간 동안 사전을 한자 한자 짚어가며 의미가 통하는 타지인과의 대화라면 거기에 '간절함과 의미' 가 부여된다. 누군가는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여행을 하고, 누군가는 철저하게 홀로되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리고 누군가는 새로운 사람, 세계, 만남을 갈구하며 여행길에 선다. 그런데 그곳에서 우리는 모습은 다르지만 비슷한 고민을 하고 똑같은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는 이들을 만난다. 그리고 깨닫는다. 나만 떠나오고 싶었던게 아니란 것을. 모두가 떠나기 싫을 정도로 행복해서 일상을 계속해 나가는게 아님을.
바쁘게 살다보면 착각하게 되는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특별한 상황 속에서, 아주 자유로운 여건 속에서만 우리는 무언가 뜻깊은 것을 해낼 수 있다' 고 단정짓는 것이다. 그건 일정부분 공감은 가지만 어찌보면 애처로운 변명이기도 하다. 그녀의 글을 통해 나는 '위안' 을 먼저 받는다. 길 위에서 그녀는 끊임없이 수첩을 들고 끄적거렸을 것이다. 누군가의 생각을 읽고, 누군가와 공감하고, 누군가를 위로하는 마음이 '스쳐지나는 관계' 이상의 것을 가능케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꼭 길 위에서가 아니더라도 내 주변에서 내가 의미만 제대로 부여한다면 '어린왕자의 장미' 이상의 것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자신을 가졌다. 그것은 시간의 문제도 자유의 문제도 아닌 오직 내 '관심' 의 문제일 것이기 때문이다. 거울에 비친 자기자신의 모습만 보고서는 자신에 대해 다 알 수가 없듯이, 우리는 다른 사람의 모습에 투영된 자신을 보면서 자기에 대해 더 알아간다. 그건 나누고, 주고 받고, 때로는 쏟아부을 때만 가능하다.
한편 그녀의 글은 동시에 '자극' 으로 다가온다. 이런 '사람 여행기' 가 가능한 작가는 얼마되지 않는다. '요르단의 함지' 가 밤에 테라스로 올라오라고 했을 때, 소심하고 폐쇄적인 마음으로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면, 그 사람이 가진 애정결핍의 문제를 읽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페루의 노동자들과 사전의 한자 한자를 짚어가며 몇 시간동안 겨우 몇마디만 통하는 대화를 피곤해 했다면, 이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가끔은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길에서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며 '마치 떠나오지 않은 듯한' 공감을 느낄 때 우리는 깨달음을 얻는다. 마찬가지로 일상을 여행자의 마음으로 시도한다면, 좀 더 넓게 인식하고, 깊에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녀의 자유로운 영혼을 동경한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의미를 부여한 기록에 공감한다. 그녀의 글에 동하여 아이를 키울 때, 나는 늘 아이와의 산책과 길에서 마주하는 풀 한포기에도 마음이 설레고 미소가 절로 났다. 아이와의 일상을 하루 하루 기록하고, 늘 행복했다. 하지만 잠시, 그걸 잊고 지낸 바쁜 시간이 있었다. 그녀의 글은 또 한번 에너지가 된다. 언제, 어느 순간이라도 좋으니 자신의 행복을 축출할 짬을 좀 내라고. 그건 어느 누가 가져다 주는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자기 일상에서 뽑아내는 정수와 같다고.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보고, 듣고 느끼고 기록할 것이다.
어딘가로 반드시 떠나야 '여행'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 책은 당신이 이미 지구별을 '여행중' 이라는 걸 알게 해줄 것이다. 이 책은 당신이 지금 서 있는 자리를 떠나야만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하지 않고,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놓치고 있는 것을 보게 만들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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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여행 떠나는 엄마로 알려진 오소희. 그녀의 책 몇 권을 읽은 후 작가의 다음 행보가 궁금했다. 대한민국에서 아이와의 여행을 꿈꾸지 않은 엄마가 어디있으랴마는 나또한 그런 엄마였고, 그래서인지 은근히 '아이와 함께 여행하는 엄마'를 부러움 반 시샘 반으로 다음을 기다렸었나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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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글은 사람을 감동시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