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자크가 살았고, 하여 그로 하여금 당시의 사회상을 그리게 했던 시대는 격동적인 시기였다. 1789년의 프랑스대혁명을 필두로 수차례의 반혁명, 나폴레옹의 등장, 왕정복고, 1848년의 혁명. 당시는 계급의 자기정체성 규명과, 치열한 계급간 투쟁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던 시기였다. 그리고 바로 그 시기에 리얼리즘의 첫걸음이자 큰 걸음을 내딛었던 이가 발자크였다. 사실 이 고전의 이름은 예전부터 들어왔거니와, 엥겔스가 지적하듯이 분명히도 하나의 명징한 리얼리즘 문학작품은 수십권의 통계-경제학서보다 더욱 한 사회를 잘 보여준다 함을 상기하면서 이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이 작품의 전개는 고리오 영감-으젠느 드 라스티냑-보트랭의 세사람을 축으로 삼고 있는데, 각각의 특이성들과 그것들의 절묘한 조화(이러한 부분에서 발자크의 작가적 역량이 명확히 표현된다고 생각한다) 속에서 혁명과 반혁명이 교차하던 당시 사회상과 그 구체적인 질감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허영심과 사치에 가득찬 귀족계급의 비윤리성-비도덕성은 고리오 영감의 두 딸을 통해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거니와, 라스티냑의 사교계를 향한 동경과 그 진행과정에서 보이는 그 추악한 모습들은 보트랭의 예민하고 강인한 현실주의를 쉽사리 이겨낼 수 없을 듯하다. 기껏해야 국가의 공권력을 동원한 억지구속뿐. 무엇보다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돈'의 물신화는, 추락하는 귀족계급의 비윤리성-비도덕성과 맞물려 상승하는 부르주아 계급의 '개인적 실력'들을 합리화하는 좋은 기제가 된다. 보케르 관의 삶과 귀족들의 타락한 삶이 마주치는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부르주아 계급이 상승하는 터가 마련되는 것일게다. 라스티냑의 합리성-도덕성의 우위는 마지막 대목에서 보이는 귀족사회, 혹은 상류사회에 대한 그의 도전이 가능케 함을 짐작케 하며, 일련의 삶들을 묘사하는 발자크의 솜씨는 그가 탁월한 작가라는 기본적 사실 외에도, 동시에 '리얼리즘의 승리'가 문예사조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적-계급적으로도 승인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의의를 가진다 할 것이다. 고전을 읽어야한다는 것은 이러한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감탄이 나올만한 훌륭한 작품이다. 정말 흠뻑 취해서 읽었다. |
| 고리오 영감. 발자크의 대표작으로 19세기파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이다. 소설 속에 빠져들어 이틀 만에 읽었는데 다 읽고 난 느낌은 너무 씁쓸했다. 블랙 코미디를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자신이 모은 전 재산을 딸들을 위해 쓰고 허름한 하숙집에서 한달에 단돈 2루이로 살아가는 아버지. 돈이 필요할 때면 아버지에게 와서 매달리는 두 딸. 딸의 하소연에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해서라도 딸에게 필요한 돈을 마련해주는 아버지. 그런 사랑에 빠진 여자들을 등쳐먹는 정부. 상류사회에 들어가기를 희망하고 그걸 배워가는 젊은이. 같은 하숙집에서 살던 범죄자를 밀고하는 밀정. 소설 고리오 영감 속에서는 여러 군상들이 등장하고,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나를 가장 씁쓸하게 만든 것은 고리오 영감에 대한 딸들의 처사였다. 자기 아버지의 임종보다도 무도회 초대장 한 장이 더 중요한 둘째 딸. 파산 직전에 있음에도 사교계에 퍼져 있는 소문을 무마하려고 다른 사람 앞에 화려한 모습을 하고 나타나는 첫째 딸. 그들은 자신의 아버지 임종에도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자신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했던 아버지 임에도 불구하고. 고리오 영감이 자신의 딸들을 저주하며 하는 말. 만약 내게 물려줄 재산이 있다면 그 애 들은 나를 이렇게 내버려 두지 않았을 건데. 사람의 필요나 가치성보다. 오로지 돈이 모든 걸 지배하고 움직여 나가는 세상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현대의 모습도 이 때와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나빠졌다면 더욱 나빠졌을지 몰라도...... 나는 다른 학생들도 이 책을 읽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등장하고 있는 고리오 영감이 혹시 우리를 위하는 부모님들의 한 단면은 아닌지. 그리고 배은망덕한 딸들이 우리 자신은 아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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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19세기 프랑스의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드러나는 '돈'의 문제를 보께르 하숙집이라는 공간 속에서 집약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즉 당대 프랑스 사회의 특징을 드러낼 수 있는 인물을 보께르 하숙집에 끌어들임으로써 당시 프랑스 사회의 축도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자연주의를 넘어선 사실주의를, 즉 현실에 대한 참다운 반영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하겠다. 전체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파리의 값싼 하숙집에서 여러 하숙인들과 함께 고리오 영감과 으제느 라스띠냑이라는 청년이 하숙을 하고 있다. 제면업자였던 고리오는 지난 날 백만장자였으나 두 딸에게 거액의 지참금을 주어 귀족에게 시집을 보냈다.
그가 계속 사업을 하는 것을 사위들이 싫어하자 고리오 영감은 제면업을 처분하고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싸구려 하숙집에서 생활하게 된다. 청년 으제느 라스띠냑은 지방의 가난한 귀족의 후손으로 화려한 출세를 꿈꾸는데 사촌 누이와 보세앙 자작 부인의 원조를 받아 고리오의 막내딸 델핀느 드 누싱겐 남작 부인에게 접근한다.라스띠냑은 사교계 생활을 하는 동안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되어 보뜨랭의 유혹에 시달리지만 결국 거절하고 만다.한편 고리오가 그토록 사랑하는 두 딸은 아버지를 부끄러워하며, 화려한 사교계에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끊임없이 아버지의 돈을 필요로 한다.
고리오는 딸들의 거듭되는 낭비로 마침내 빈털털이가 되고 가난에 빠져 더 이상 딸들을 도와 주지 못하게 되자 괴로워한다. 또한 딸들이 추악한 형제 싸움을 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픈 나머지 병들어 쓰러지고 만다.그러나 두 딸은 병문안조차 오지 않으며, 으제느와 그의 친구가 병 간호를 하게 된다. 고리오는 헛되이 그의 딸들의 이름을 부르며 저주와 축복의 말을 교대로 중얼거리다가, 두 청년을 자기 딸이라고 착각한 가운데 숨을 거두고 만다.라스띠냑은 고리오의 장례를 치러 주고는 그의 유해를 뻬르 라셰즈의 묘지에 매장하면서 청춘의 마지막 눈물을 묻는다.
그리고 파리를 향하여 '사회에의 도전'의 첫걸음을 내디딘다. 또한, 이 작품에서 주목할 것은 '돈의 논리'이다. 돈은 이 작품의 모든 인물을 지배하고 돌아다닌다. 돈은 가족 관계마저도 왜곡시킨다. 이 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돈의 위력과 문제점을 시사해 준다. [인상깊은구절] 로슈피드 집안과 뜻을 통하고 있던 다쥐다 후작은 사이가 벌어졌던 이 부인과의 화해를 도리어 잘된 상황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는 보세앙 부인이 이 결혼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에 점차로 익숙해져서, 그런 마땅히 예상되는 애인의 미래를 위하여 오후의 데이트를 희생해 주는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매일 새로운, 말할 수 없이 신성한 약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쥐다 씨는 근사한 연극을 하고 있었고, 자작 부인도 속는 것을 싫어하지 않고 있었다. '긍지 있게, 창문에서 몸을 던지지 않고, 저 분은 계단을 굴러 떨어지고 있어요.' 하고 그녀의 친구인 랑제 공작 부인은 말했다. 그렇지만 이 최후의 불빛이 꽤 오랜 동안 계속해서 빛나고 있었기 때문에 자작 부인은 파리에 남아서, 친척인 이 젊은 사나이를 위해서 일종의 맹목적인 사랑을 베풀어 도와 주었다. 으제느는 이제는 어떤 인간의 눈 속에서도 진정한 연민이나 위로를 찾아낼 수 없다고 할 상황에 놓인 그녀에 대해서, 헌신과 감수성이 충만한 태도로 행동했다. 이런 경우에 사나이가 그녀들에게 상냥하게 말을 건네는 것은, 대개의 경우 생각이 따로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