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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약 사비약 사비약 눈 정완영/그림 김세현 문학동네/2011.4.10.
‘공부도 하기 싫고 노는 것도 시시한 날은 빠른 길을 옆에 두고 짐짓 논두렁 밭두렁 길을 멀리 돌아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다’고 저자는 책머리에서 고백하면서, ‘굽은 길은 하늘이 만든 길이고, 곧은길은 사람이 만든 길’이라는 말이 있듯이, 하늘이 만든 길을 굽이굽이 돌아가며 사람 사는 도리와, 자연의 순리를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그것이 이 책을 읽는 방법이자 까닭이라고 말하고 있다. 효율과 경제의 논리에 취해서 잊어버린 우리의 정서를, 굽이굽이 돌아가는 시골길처럼 순리를 찾아 지켜가자는 말이라 생각한다.
<사비약 사비약 사비약눈>에서는 우리의 자연과 함께 생활하며 느낀 동심들을 동시조로 엮어내고 있다. ‘봄꽃 잔치’에서 봄꽃들이 잔치를 여는 모습을 그림을 보여주듯 표현하고 있다. ‘목련은/ 손을 내밀어/ 하늘 빛 받아 내리고/ 벚꽃은/ 온몸을 흔들어/ 구름 빛 끌어안고/ 복사꽃 개나리꽃은/ 장구치고, 징치고’ 와 같이 장구치고 징치며 봄꽃 잔치를 벌이는 듯 표현 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김세현 화백님은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아이들의 마음을 수채화로 그려내 동시조를 더욱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든다. ‘감꽃’에서는 어릴 적 시골마을에서 아침 일찍 감꽃을 주어 꽃목걸이도 만들고, 밥과 반찬을 만들며 소꿉놀이 함께한 동무들과 듣던 뻐꾸기 소리를 떠올린다. 2연에서 ‘울고 있는 뻐꾸기에게, 누워 있는 감꽃에게/ 이 세상 한복판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여기가 그 자리라며 감꽃 둘레 환하다.’라고 모든 것이 지금 여기가 중심이라는 어린이의 마음을 통해 철학적 사유까지 비약하는 상상의 세계를 보여준다. ‘나무2’에서는 사람은 겨울이 오면 옷을 껴입는데, 나무는 반대로 옷을 벗어서 춥지 않을까 걱정하는 어린이들에게 ‘다 벗고/ 더 넓은 하늘을/ 얻어 입고 섰습니다.’처럼 종장의 반전을 통해 우리 인간이 껴입는 옷에 비교할 바가 못 되는 아주 큰 하늘을 입고 있다고 걱정하는 마음을 토닥여 주고 있다.
동시조를 통해 초장과 중장에서는 우리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을 친숙하게 표현하고, 종장에서는 그 속에 숨은 뜻을 읽어내어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재미를 선물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생각도 하나의 틀을 벗어나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자고 98년을 살다간 정완영 할아버지는 <사비약 사비약 사비약눈>에서 60여 편의 동시조를 통하여 말하고 있다. 그렇게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져야만 새로운 세계의 주인공으로 우뚝 설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봄꽃 잔치 목련은 맨손 내밀어 하늘 빛 받아 내리고
벚꽃은 온몸을 흔들어 구름 빛 끌어안고
복사꽃 개나리꽃은 장구 치고, 징 치고
감꽃
바람 한 점 없는 날에, 보는 이도 없는 날에 푸른 산 뻐꾸기 울고 감꽃 하나 떨어진다 감꽃만 떨어져 누워도 온 세상은 환하다.
울고 있는 뻐꾸기에게, 누워 있는 감꽃에게 이 세상 한복판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여기가 그 자리라며 감꽃 둘레 환하다.
나무는2
사람은 겨울이 오면 옷을 자꾸 껴입는데
나무는 입었던 옷을 자꾸 벗어 내립니다
다 벗고 더 넓은 하늘을 얻어 입고 섰습니다.
사비약 사비약 사비약눈
다섯 살 우리 아기 앞니 빠져 내리듯이 하늘에서 하얀 눈발이 쏙쏙 빠져 내립니다 사비약 사비약 하며 사비약눈 내립니다.
가을밤 별하늘은
여름은 하도 더워 밤하늘도 불타더니 가을은 별하늘도 흔들리는 들국화밭 은하수 흐르는 소리도 내 귀 속에 들립니다.
별빛
옷자락에 매달리는 풀벌레 울음소리 초저녁 하늘에는 콩꽃 같은 별이 뜨고 묻어 둔 이야기들이 하나둘씩 떠오릅니다.
정완영 할아버지는 1919년 태어나 2016년 8월까지 근 1세기를 살다 가셨다. 우리말과 글을 빼앗긴 일제시대부터 광복되어 OECD회원국이 되기까지 일생을 한 마음으로 우리의 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셨다. 우리나라 고유형식인 시조를 지키고 널리 알리기 위해 직접 1000여 수 시조를 지어 발표 했으며, 1962년 조선일보에 <조국>이 당선된 이후 가람시조문학상, 대산문학상, 만해시문학상등을 받았다. 시조집으로 <정완영 시조 전집>, <구름 산방>등을 내었으며, 오래오래 이 세상에서 살아갈 어린 벗들을 생각하며 동시조집 <엄마 목소리>, <꽃가지를 흔들듯이> 등 여러 책을 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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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글자 수를 맞춰서 지은 시조들을 읽으며 배울 때면 어쩜 요렇게 기가 막힐까 했었는데, 어린이들을 위해서 동시조를 지으신 시조시인이 계셨다. "굽은 길은 하늘이 만든 길이고, 곧은 길은 사람이 만든 길"이라는 말을 빌어서 자연의 순리, 사람의 도리를 생각하시며 그 길을 시조로 밝히신 시조시인 정완영 할아버지. 그리고 김세현 선생님께서 그려주신 알록달록 예쁜 삽화도 시조와 더불어 너무 잘 어울린다. 오래오래 살아갈 어린 친구들을 생각하며 지은 동시조들을 읽노라면, 아이들의 마음을 어쩜 이리도 잘 아시는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마음을 맞추신 시인의 마음이 따뜻하고 재미있고 감사하게 느껴진다. 시란 자유로운 생각을 자유롭게 쓰는 거지만, 정해진 글자 수를 억지로가 아닌, 기가 막히게 맞춰서 지은 시조를 읽는 기분이란... 우리 인생의 희로애락이 스며있고, 사계절의 순환의 원리가 담겨있고, 어른의 깊은 안목과 아이의 순수한 바람이 드러나는, 글자 수 45자 내외의 짧은 동시조이지만, 그 내용의 넉넉함에는 무한대의 깊이가 있다.
눈이 오면 차가 막히고, 처음 내릴 때는 괜찮지만 녹을 때 지저분해 질 것을 생각하며 얼굴 찌푸리는 어른들의 걱정이 앞서는 요즈음이다. 그저 내리는 눈을 보며 즐거워하던, 공부하다가도 창밖에 눈이 오면 소리지르며 괜히 기뻐하던, 선생님께 첫사랑 얘기 들려달라며 보채면 못이기는 척 해주던 선생님들이 생각난다. 요즘의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어떨지... 자못 궁금해진다. 눈을 보고 그저 좋아하고 기뻐하던 그 시절 그 마음이 살짝 그리워진다. 제목인 "사비약 사비약 사비약눈"의 '사비약눈'은 펑펑 내리는 함박눈이 아니라 아이들 이가 빠지듯이 한 잎 두 잎 내리는 첫눈을 일컫는 말이다. 소리내어 읽으면 더 예쁜 우리말인 '사비약눈'이 11월에 올까, 12월에 올까... 벌써부터 설레며 기다려진다.
감꽃
바람 한 점 없는 날에, 보는 이도 없는 날에 푸른 산 뻐꾸기 울고 감꽃 하나 떨어진다 감꽃만 떨어져 누워도 온 세상은 환하다.
울고 있는 뻐꾸기에게, 누워 있는 감꽃에게 이 세상 한복판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여기가 그 자리라며 감꽃 둘레 환하다.
나무는 1
나무는 푸른 비 오는 날 머리 감고 섰습니다
나무는 햇빛 밝은 날 머리 말리고 섰습니다.
바람결 구름결 좋은 날 머리 빗고 섰습니다.
나무는 2
사람은 겨울이 오면 옷을 자꾸 껴입는데
나무는 입었던 옷을 자꾸 벗어 내립니다
다 벗고 더 넓은 하늘을 얻어 입고 섰습니다.
텔레비전
할아버지 보거나 말거나 혼자 도는 텔레비전 텔레비전 돌거나 말거나 코를 고는 할아버지 시계는 초저녁인데 우리 집은 한밤중.
텔레비전 방방 울려야 잠을 자는 할아버지 할아버지 자거나 말거나 혼자 신난 텔레비전 시계는 오밤중인데 우리 집은 초저녁.
별빛
옷자락에 매달리는 풀벌레 울음소리 초저녁 하늘에는 콩꽃 같은 별이 뜨고 묻어 둔 이야기들이 하나둘씩 떠오릅니다.
할아버지의 잠
한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오신 할아버지는 잘 차린 침대에 누우면 잠이 도망가 버린단다 맨땅에 등을 붙여야 푸우푸우 불을 부신단다
한평생 흙만 주물며 살아오신 할아버지는 땅을 깔고 눕고, 하늘을 덮고 누워야 이승도 저승도 모르고 더렁더렁 코를 곤단다.
무 배추 살찌는 소리
허리 굽은 우리 아빠 굽은 허리 더 굽은 채 비지땀 흘리면서 가꾸어 놓은 산밭에는 김장 무 힘주는 소리 꿍꿍 하고 들린대요.
새까맣게 타다 못해 더 작아진 우리 엄마 뜬눈으로 밤새우며 가꾸어 놓은 채마밭에 통배추 살찌는 소리 뿌득뿌득 들린대요.
귀뚜리 울음소리
귀뚜리 울음소리에 또랑또랑 별이 뜨고 귀뚜리 울음소리에 대롱대롱 이슬 맺고 오소소 꽃씨는 추워서 씨방 속에 숨습니다.
외딴집
낮에는 해가 하나, 밤에는 달이 하나 고목나무 가지 끝에 올라앉은 새 둥지 하나 할머니 혼자서 사는 집 허리 굽은 길이 하나
할배 구름 손주 구름
어릴 적 내 고향은 구름마저 어렸었네. 들찔레 새순처럼 야들야들 피던 구름 할버지 백발구름에 업혀 잠든 손주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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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우리 아기 앞니 빠져 내리듯이 하늘에서 하얀 눈발이 쏙쏙 빠져 내립니다 사비약 사비약 하며 사비약눈 내립니다. - ‘사비약 사비약 사비약눈’ 전문 ‘사비약 사비약 사비약눈’이 입 안에 감기다 무심코 내뱉게 될 때 사비약눈이 하늘에서 빠져 내린다면 아이처럼 방방 뛸지도 모르겠다. 작은 눈송이 하나가 내 손바닥에 사뿐히 앉아 액체가 되어가는 과정을 천천히 붕괴하는 아름다운 성처럼 보여준다면. 겨울을 아니 반길 수 없으리라. 시조시인 정완영 덕분에 동시조의 맛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형식미를 쌓아올린 다음 그 안에 아이의 마음으로 음악을 차곡차곡 넣은 시인. 읽다보면 가락이 잡혀 절로 외워지는 놀라운 힘을 숨겨놓은 작품들. 얼마나 큰 부채가 저렇게 시원할까 어떤 선풍기가 저렇게 빙빙 돌까 더위도 구름도 다 날리는 동구 밖 느티나무 - ‘동구 밖 느티나무’ 전문 계절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름답다. 겨울에서 추위를 말끔히 걷어내더니 느티나무를 흔들고 온 바람이 뒷목을 간질이는 상쾌함으로 무더위를 날려 보낸다. 여름이 닥치면 겨울의 한기를 그리워하고 겨울이 오면 어서 여름이 다시 찾아오길 바라는 대신, 이제는 계절이 주는 특별함을 즐기고 싶게 한다. 등을 타고내리는 땀줄기도, 언 손을 겨드랑이나 두 허벅지 사이에 끼게 하는 행위도 계절이 주는 선물인 것이다. 낮에는 해가 하나, 밤에는 달이 하나 고목나무 가지 끝에 올라앉은 새 둥지 하나 할머니 혼자서 사는 집 허리 굽은 길이 하나 - ‘외딴집’ 전문 살아가면서 좀체 떨쳐낼 수 없는 고독에 대해서도 노래하고 있다. 아이들 또한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고독과 악수하는 순간이 오겠지. 아, 외딴집 문 앞을 서성대다 지나가는 바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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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70 스무 해쯤 지난 뒤에도 동시가 있을까 ― 사비약 사비약 사비약눈 정완영 글 김세현 그림 문학동네 펴냄, 2011.4.10. 8500원 도시에서 사는 이웃은 ‘시골에 사람이 얼마나 빠르게 줄면서 어른뿐 아니라 아이도 얼마나 빠르게 사라지는가’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도시에서는 ‘인구 감소’를 말할는지 몰라도, 도시에서 ‘아이가 없어서 문을 닫는 학교’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와 달리 시골에서는 ‘다닐 아이가 없어서 문을 닫는 학교’가 해마다 꾸준하게 늘어납니다. 앞으로 열 해쯤 지나면 면소재지 초등학교는 거의 다 문을 닫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스무 해쯤 지나면 읍내 초등학교조차 아이 숫자가 부쩍 줄면서 아슬아슬할 수 있습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 있는 학교를 다닌다고 하더라도 옛날하고 달라서 ‘시골 놀이’를 누리거나 즐기는 아이는 매우 드뭅니다. 오늘날 시골은 어디에서나 농약을 엄청나게 뿌릴 뿐 아니라, 기계와 자동차도 흔하게 돌아다니기 때문에 ‘고샅놀이’도 ‘도랑놀이’도 없습니다. 아이들끼리 짝을 지어 골짜기를 타거나 바다로 놀러다니는 일도 없다시피 합니다. 시골에서도 도시하고 똑같이 스마트폰으로 놀고, 텔레비전이나 인터넷게임을 할 뿐입니다. 다섯 살 우리 아기 앞니 빠져 내리듯이 / 하늘에서 하얀 눈발이 쏙쏙 빠져 내립니다 / 사비약 사비약 하며 사비약눈 내립니다. (사비약 사비약 사비약눈) 별들은 등불을 끄고 하늘 속에 꼭꼭 숨고 / 눈은 등불을 켜 들고 밤새도록 내리는데 / 우리는 한 이불 속에서 호끈호끈 잠이 듭니다. (눈 내리는 밤) 아흔 살이 넘은 할아버지가 쓴 동시조를 그러모은 《사비약 사비약 사비약눈》(문학동네,2011)을 읽습니다. 아흔 살이 넘은 할아버지는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동시조’라기보다는 ‘어른이 읽을 시조’를 쓰는 분이었고, 이 동시조집에도 ‘어른이 읽을 시조’가 많이 나옵니다. 차창에 어둠을 싣고 시골 버스가 달려갑니다 / 호박꽃 초롱만 한 등불 싣고 달려갑니다 / 또 하나 그리운 등불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시골 버스) 새벽부터 매미가 운다 자지러지게 운다 / 젖 달라고 보채는 아기 엄마 품을 뒤흔들듯 / 축 처진 나뭇가지들 들어 올리며 운다. (매미) 〈시골 버스〉 같은 시조는 아련하도록 고운 노래라고 느낍니다. 다만, 어린이한테 걸맞을 만한 노래는 아니라고 느낍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아이들은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라고 도시에서 일자리를 찾는 어른이 되어요. 이런 도시 아이들한테 〈시골 버스〉는 ‘고향’을 그리는 이야기가 되기 어렵습니다. 시조 작품으로는 고운 노래일 수 있어도 동시조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매미〉도 그렇지요. “젖 달라고 보채는 아기 엄마 품” 같은 말마디는 어린이가 읊지 않습니다. ‘아기’나 ‘아기 엄마’ 같은 말마디를 넣는다고 해서 동시조일 수 없습니다. 어린이 삶을 헤아리고, 어린이 꿈을 노래할 때에 비로소 동시요 동시조라고 느낍니다. 수문 닫아 걸었는가, 수문 열고 서 있는가 / 밀물처럼 오던 아이들 썰물처럼 다 나가고 / 햇살이 혼자서 찾아와 유리창을 닦고 있다. (폐교에 서서) 〈폐교에 서서〉 같은 동시조도 오직 어른 눈길로 써서 오직 어른이 누릴 만한 시조일 뿐, 어린이하고 함께 읽을 동시조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시골 아이라면 ‘폐교’를 알 수 있을는지 모르나, 학교버스를 타고 마을과 학교 사이만 오가는 요즈음 시골에서도 폐교를 떠올리기는 어렵습니다. 도시 아이한테는 두말 할 것도 없습니다. 폐교 이야기를 동시조로 그리려 한다면, 아흔 살 웃도는 할아버지가 먼 옛날에 학교 다니던 이야기를 그릴 때에 한결 구수하면서 구성진 노래가 될 만하리라 느낍니다. 정완영 님 스스로 어떤 놀이를 했는지, 동시조 할아버지 스스로 어떤 웃음꽃을 피우면서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아스라한 옛날에 어떤 이야기를 길어올리는 하루를 지냈는가 같은 이야기를 그릴 때에 비로소 오늘 이곳에서 아이들하고 어깨동무하는 동시조가 되리라 느낍니다. 한평생 흙만 주물며 살아오신 할아버지는 / 땅을 깔고 눕고, 하늘을 덮고 누워야 / 이승도 저승도 모르고 더렁더렁 코를 곤단다. (할아버지의 잠) 〈할아버지의 잠〉 같은 동시조도 아이들한테는 어렵거나 아리송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서 죽을 때까지 늘 흙만 주무르던 할아버지 삶을 고이 그린 동시조이기 때문에, 이 같은 동시조는 아이들한테 ‘아흔 넘은 할아버지’가 어떤 꿈을 가슴에 품으며 살았는가 하는 대목을 엿보도록 이끌 만하리라 느낍니다. 할아버지가 아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기에, 〈할아버지의 잠〉은 어여쁜 동시조라고 봅니다. 우리 마을 앞 냇물을 건너가는 징검다리 / 돌팍 밑에 숨어 사는 버들붕어 두 마리는 / 돌팍이 저이들 집이래 여울목이 놀이터래. (버들붕어 두 마리는) 요새는 시골에서도 버들붕어를 찾기 어렵습니다. 도랑도 냇물도 온통 농약냄새라서 물고기가 살기 어렵습니다. 도랑에서 가재를 친다는 말은 그야말로 옛말입니다. 요새는 시골 아이도 개똥벌레 구경을 거의 못 합니다. 그러나, 동시조 할아버지가 버들붕어 이야기를 노래한다면, 도시 아이도 시골 아이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궁금해 할 테지요. ‘징검다리’는 뭔가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할 테지요. ‘돌팍’은 또 뭔 소리인가 하면서 귀를 쫑긋 세울 테지요. ‘여물목’은 어떤 곳일까 궁금해서 어른들한테 여쭙겠지요. 참새는 참새끼리 오고 가는 길이 있다 / 잠 깊은 봄 하늘에 여울지는 길을 내며 / 아랫말 윗말 오가듯 오고 가는 길이 있다. (참새 길) 스무 해쯤 뒤에도 이 땅에 동시가 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스무 해쯤 지난 이 나라 시골자락에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읍내에 한 곳쯤 가까스로 남을 만한 모습이 된다면, 또는 읍내에조차 학교가 모조리 문을 닫는다면, 그야말로 이 나라 거의 모든 아이들이 좁은 도시에 몰려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나 예술가가 되기만을 바란다면, 그때에도 동시가 있을 만한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앞으로 우리 어른들은 어떤 동시를 써서 아이들한테 읽힐 수 있을까요? 앞으로 우리 어른들은 어떤 삶을 지어서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을까요? 앞으로 우리 어른들은 어떤 노래를 불러서 아이들한테 들려줄 수 있을까요? 동시조집 《사비약 사비약 사비약눈》은 ‘사비약눈’을 노래하지만, 도시에 사는 어른들은 눈이 오면 길이 막히고 자동차가 못 다닌다면서 투덜댑니다. 아이들은 이런 ‘어른들 목소리’를 으레 듣습니다. 눈이 오는 날 ‘눈이 오니 너희는 즐겁겠네. 우리도 함께 눈놀이를 할까’ 하면서 빙그레 웃는 목소리를 낼 만한 어른은 앞으로 스무 해쯤 뒤에 몇이나 남을까 궁금합니다. 눈이 오는 날에는 모든 수업을 덮고는 모든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뛰어나가서 함께 눈사람을 굴리자고 외칠 만한 교사나 교장선생님이 앞으로 몇이나 있을 만할까 궁금합니다. 4348.10.5.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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