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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나라가 바로 고구려, 백제, 신라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고구려와 백제는 한때 형제의 나라이고 신라는 토착 세력이 똘똘 뭉친 결과 세워진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고구려는 본디 척박한 땅에서 여러 강대국들과 싸우며 나라를 유지해왔기에 강건한 이미지이고 신라 역시 오뚝이와도 같은 뚝심으로 홀로 우뚝 섯다고 할 수 있지만 백제의 존재감은 왠지 모르게 가장 미약하기 그지 없다. 이른바 왕권으로 대표되는 중앙집권이 그렇게 늦은 편도 아니건만 백제의 왕들 중 가장 강력한 왕이라하면 근초고왕외엔 딱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을 정도다. 그 외에 관심을 가질 만한 유명하고 위대한 인물은 기껏해야 성왕, 의자왕, 계백장군 뿐이랄까?
백제의 왕들 중 근초고왕과 성왕 이 두 왕이 그나마 꽤 찬란한 업적을 자랑하는데 근초고왕은 기회를 잘 엿보고 실리를 추구하는 굉장히 뛰어난 두뇌 플레이를 하는 왕으로 비쳐진다. 허나 임나로 칭해진다고 할 수 있는 '가야' 지역에 대해 정복하려하지 않고 독립적인 국가로 인정하고 자치를 허용함으로써 후대에 백제의 멸망을 초래할 불씨를 남긴다. 후대 백제의 왕, 성왕은 자신의 활약이 빛을 보지 못하고 역사속에 스러져간 인물이다. 그를 둘러싼 죽음도 미스터리인데 관산성 전투 당시 전사했다기보단 의견 조율등을 위해 타지역으로 가다가 중간에 신라에 사로잡혀 처형되었다는 쪽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 이야기는 전개된다.
여기서는 이 두 왕, 개개인의 정치, 업적, 사생활에 대해서 다룬다기 보단 그 당시 백제를 둘러싸고 혹은 왜(일본), 신라, 고구려와 얽혀 전반적인 외교 정세와 그들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전쟁에 관해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접근한다. 백제가 가야와 친해지기 위해 이미 친해놓은 왜에게 가교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을 하고 이렇게 함으로써 백제-가야-왜 사이에 동맹체제가 성립되었다던지, 이런 동맹체제가 광개토대왕의 임나가라 정벌로 붕괴된 점 등을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그리고 책봉이란 것 자체가 중국을 중심으로 한 외교전이었다는, 즉 어떠한 책봉을 받느냐가 중요하지 않은 명분상 필요한 부분이었다는 점도 조금 새롭게 다가온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보는 관점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달라질 수 있는 게 역사이다. 따라서 수많은 사료나 자료에 의거해 역사를 서술하더라도 절대 주관이 개입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사시간에 배우는 배움으로서의 역사가 아닌, 자칫 딱딱하게 다가갈 수 있는 역사를 조금 더 색다른 시각에서 현재와 빗대어 한번 더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백제를 이끌어간 지도자들의 재발견1>이라는 부제가 달린 만큼 어떤 인물이 또 다뤄질지 다음 권도 기대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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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우리 역사서 가운데 가장 오랜 된 책은 '삼국사기'입니다. 우리 나라 고대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고,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유학자 '김부식'이 유교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쓴 이 사서의 초기 기사를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고구려의 '유기'와 '신집', 백제의 '서기', 신라의 '국사' 등 이름만 전하고 내용이 전하지 않는 자국의 입장에서 당대에 씌어진 사서의 존재가 아쉽기만 합니다. 특히, 신화와 사실이 뒤섞여 있지만 삼국사기 보다 훨씬 먼저 씌어진 '일본서기'의 존재를 생각하면 더욱 그러합니다.
삼국의 역사 중 '백제'의 역사는 가장 소홀하게 다루어져 왔습니다. 백제라고 하면 떠오르는 인상은 '찬란한 문화' 정도입니다. 사실, 찬란한 문화라고 해도 이는 사서 속에 기록된 사실이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백제의 유물이 별로 없어 이러한 이미지도 크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어쩌면 지금 일본이 자랑하는 여러 보물들이 사실은 백제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백제를 대표하는 두 명의 걸출한 제왕, '근초고왕'과 '성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은이는 한반도를 지배한 여러 왕조 중 백제의 역사를 짓밟지 않은 것은 조선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백제를 멸망시킨 장본인인 신라는 말할 것도 없고, 삼국사기를 편찬한 고려도 그러했습니다. 심지어, 황국사관을 위해 역사를 조작하고 왜곡한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적어도 고대사에 있어서는 이를 그대로 이어받은 한국의 주류 역사학계까지 백제의 역사와 위대한 제왕들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해 보려는 노력은 별로 없었다는 것입니다.
'근초고왕'이 활약했던 4세기는 한국이나 일본 양국의 고대사에 있어서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3세기 이전은 삼국이 각자 내적인 기반을 다져 나가는 시기라서 저마다 자체 세력권의 정비가 우선이었습니다. 그런데, 4세기 이후가 되면 주변의 국제 관계가 복잡해 집니다. '근초고왕'은 가야를 장악하기 위해 '임나'라는 연맹체를 만들어 관리하는 등 치밀한 전략을 펼쳤고, 그 과정에 '일본부'를 '임나'에 포함시키면서 신라와는 동맹관계를 맺는 등 복잡한 국제 정세를 잘 이용하여 백제의 위치를 견고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근초고왕'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백제와 고구려가 양 축을 형성하고 있었던 국제 정세에서 백제를 한 축의 중심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점입니다.
'성왕'이 등장한 시기는 당시 백제가 잃어버린 국제 사회의 맹주자리를 다시 찾으려 한 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첫 번째 목표는 이전에 백제의 세력권 아래에 있었던 '가야'의 회복이었습니다. 가야를 다시 세력권 안으로 흡수하기 위해 성왕은 '임나' 재건책을 추진합니다. 이는 '임나'를 강력하게 재편하자는 것이었지만, 그 속내는 백제가 남부의 맹주 자리를 되찾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불행히도, 성왕은 관산성 전투에서 신라군에 생포되어 죽음을 맞습니다. 걸출한 지도자를 잃은 백제는 점점 힘을 잃게 됩니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임나'입니다. '임나'의 실체가 점점 궁금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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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어난 곳은 경상도이지만, 줄곧 충청도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백제의 문화에 대해서는 이미지가 좋고익숙한 편이다. 신라가 3국을 통일했기 때문에 신라에 의한 역사가 씌여졌고, 드라마나 사극같은 곳에서도 신라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만 나는 백제가 가진 우아한 아름다움을 어느 순간부터 더 사랑했던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백제 하면 근초고왕이 아닌가. (학창 시절에 나는 근초고왕인지, 근고초왕인지 늘 헷갈렸는데 지금도 헷갈렸다. 역시 인간의 버릇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이번 기회로 다시 깨달았다....)
근초고왕의 업적에 대하여 이 책은 주로 다루어져 있다. 근초고왕 이전의 한반도 남부 상황을 설명한 다음, 근초고왕의 구체적인 업적들이 이어진다. 근초고왕 뒤에 나오는 성왕은 백제의 부흥이라고 불릴 정도로 여러가지 업적을 남겼는데, 그 업적의 토대를 닦은 사람이 근초고왕임을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다. 사려깊게 정책을 짜고 신중하게 정치를 했던 사람으로 이 책은 그를 표현한다. 충분히 강한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백제의 힘을 기르고자 노력하고 외세에 적극적으로 대항하기 보다는 평화를 표방하며 내실을 쌓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후에 성왕이 왕위에 올라 백제가 일본(왜)에 나제동생을 맺고 국제 관계를 변화시키려 했던 점을 주요 업적으로 꼽았다. 하지만 그것은 실익없는 외교였다는 것이 저자의 평이다. 저자는 성왕이 시행하려 했던 많은 의도들을 삼국의 관계를 토대로 그려낸다. 또 성왕이 죽은 그 후, 가야와 신라, 고구려의 정세를 살펴보면서 백제의 흥망을 고스란히 담아간다.
이 책은 두께도 얇고 꽤 짧다면 짧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백제의 오랜 역사 중 두 사람의 왕에 대해서만 써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백제를 대표하는 왕이라고 하기에 손색이없었다. 성군이 한 번에 두 명 나오기도 힘든 일인데말이다. 그들은 왕위를 이어나가면서 백제를 가장 살기 좋은 시대로 만들어 놓고 갔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전성기를 구가했던 왕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료의 양도 많아서 비교적 고증하기도 좋다고 생각한다. 삼국이 피를 흘리며 한반도를 집어 먹으려고했던 시기에 지도자 다운 지도자로서 백제를 이끌었던 두 왕을 재조명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어렸을 때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고대를 생각해보고, 나의 어린 시절 또한 회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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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의 나라 백제, 역사의 창으로보면 영원한 것은 없다지만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중에서 가장 먼저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린 백제는 후세가 살펴보기에 역사적 자료가 너무나 부족했다. 저자는 백제의 최전성기에 해당하는 13대 근초고왕과 26대 성왕을 중심적으로 다룬다. 내가 알고있는 백제의 역사는 어떤 것일까? 나라를 망하게 만들었다는 의자왕, 서동과 선화공주의 서동요,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패망한후 의자왕의 삼천궁녀가 떨어졌다는 낙화암, 지금 역사는 의자왕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나라를 망친 망군이 아니라 성군이었다고, 낙화암의 전설인 삼천궁녀 또한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전설일 뿐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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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솔직히 역사편에는 약하편이다. 물론 학창시절 암기인 국사시간도 싫었지만 수많은 왕들이 등장하고 배경과 사건, 연도 를 외워야한다는 자체가 너무 싫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후 역사를 드라마로 보게되고 우리의 역사에 대한 진실에 대해서 관 심을 갖지 않을수 없었다. 부모된 사람으로서 아이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쳐 주어야한다는 점도 있지만 내가 지금까지 알 지 못했던 진실들이 등장하면서 너무 재미있다는 사실이다. 무조건 외우라고 하던 시기와는 다르게 귀로 듣고 하면서 책을 통해서 오류를 발견할수 있고 왜 그래야만 했는지 왜 빛을 받지 못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조선에 대한 역사가 많았다. 하다못해 드라마 또한 그렇게 진행되어 왔다. 최근에는 고구려와 신라, 백제등 삼국의 역사를 골고룰 보여주 려는 시도들이 등장했다. 물론 드라마들이 얼마만큼 튼튼한 내용인지 어느정도까지 진실에 가까운지는 잘 모르지만 그런부 분에서 궁금증이 유발되어 역사책을 더 들여다보게 된다.
최근에 방영되는 근초고왕의 모습은 왕다운 카리스마 보다는 주위의 인물들에게 흔들리는 모습이 보여지는것 같다. 개인적 으로 그래서인지 신뢰가 가지 않는 임금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갈길은 멀고 밝혀질 진실들은 끝에 남아 있기 때문에 열심히 볼 생각이다. 반면 "근초고왕을 고백하다"는 반전을 보여준다고 말하고 싶다. 단연 근초고왕만 등장하면 재미없을 것이다. 바로 성왕도 등장하고 그가 신라에게 대승을 할수 있었던 이유는 운이 아닌 바로 능력이라는 점이다.
책의 내용에 집중하고 싶었지만 난 주로 근초고왕의 내용을 촛점을 두고 싶었다. 그가 어떤 인물이며 어떻게 임금의 자리에 올랐는지 말이다. "삼국시대의 3대 정복군주는 뽑는다면 고구려 광개토대왕 신라 진흥왕 백제 근초고왕을 말할수 있다고 한 다. 백제의 초기 왕권을 강화시키고 중앙집권화를 강화시켜 백제를 고대국가로 완성한 임금이라고 평가받는 다고한다." 온라인에서는 근초고왕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었다. 함축적인 의미를 부여하긴 했지만 충분히 자잘을 가진 임금이라는 점과 여러 상황을 보여주면서 왕들의 생각을 보여주어서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역사가 그저 재미없는 부분이라는 인식을 확실히 바꿔준것 같다. 보이는게 다 진실이 아니며 진실과 거짓은 한끝차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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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럴 듯한 표지를 가진 책은, 소설 같아 보이지만 결단코 소설은 아니다. 역사적 사실 중 숨겨진 것을 유추해서 면밀하게 근거를 들어 사실을 밝혀놓은 책이라고나 할까. 그저 역사서라고 하기엔 미진한 설명이지만 어쨌든 역사서이다. 그런데 서문을 보면 이 책은 몇 년 전에 나온 책의 업그레이드 판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혀놓고서도 시류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보완을 해버려서 전혀 다른 책이 나왔다고도 말하고 있다. 보통 책을 읽기 전에 꼭 읽게 되는 서문을 보면 작가가 쓴 책의 방향을 알 수 있기도 하고, 책을 쓴 작가의 의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에 책에 대해 애착을 더 크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서문을 보니까 그 전에 나온 책이 도대체 무엇이며, 그 책에서의 미진한 점은 무엇이었고, 작가는 과연 어떤 부분을 더 보강하고 싶었는데, 어떤 출판계의 사정 때문에 어떤 식으로 보완을 했는지가 궁금해졌다. 이거,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이고 온 격이 되어 버렸다. 나는 근초고왕에 대한 것만 알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책의 내용까지도 바꿔버리는 출판계의 사정까지도 신경쓰게 만드는 놀라운 서문이었다. 책의 내용에만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서문이라고 말할 수 있어도, 내겐 책에 대한 흥미를 더욱 높이는 역할을 해주었다. 저자의 고뇌가 물씬 묻어나오는 서문이기에 그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 책을 썼으며, 밝혀지지 않은 혹은 논란이 일고 있는 고대사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를 정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책이 나오건 이 저자의 책이라면 꼭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만큼 신뢰감을 주는 서문이랄까.
서문이 어찌됐든 이 책은 우리 고대사 중 가장 드러나지 않은 역사인 백제를 알고자 마련한 책이다. 특히 가장 주목받아야 할 근초고왕과 성왕의 개인적인 자질이나 능력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다. 삼국 중 신라가 대세를 이루었으니 신라에게 득이 되지 않는 역사는 굽히기 마련이라 백제와 신라 사이에서 분명히 드러나야 할 관산성 전투만 해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저자의 말로는 백제의 역사를 곡해하지 않은 그 이후의 나라는 조선 뿐이라고 하니까 통일 신라나 고려, 대한제국 때까지도 백제의 역사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은 풍조는 계속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 일본의 식민사관이 들어온 이후부터는 완전히 그 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백제의 역사를 조명하기란 어려운 일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저자처럼 일반적인 인간사에 바탕을 두어 고대사를 살펴보고 판별하는 학자들이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특히 『일본서기』는 처음부터 거짓 기록이 판치고 있어 그것을 감안하고 보는 눈을 키우지 않으면 처음부터 시작도 하지 못하고 말아햐 하니, 특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이렇게 고대사부터 왜곡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본을 보면 정말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진실을 가리는 역사관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그런 썩은 마음가짐은 애초부터 틀린 것이다. 하여튼 그런 오류투성이 사료를 가지고 제대로 된 역사를 추출해내려면 상식선에서부터 생각하내는 법을 키워야 할 것이다. 예전부터 나는 삼국의 문화를 보면 고구려는 호방하고 신라는 후에 생겨나는 조선의 문화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박함이 있고 백제는 일본의 문화 원류가 되는 세련됨이 있다고 여겼었다. 일본의 세련된 문화가 너무나 아름다워 항상 매혹적으로 생각했던 나로선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던 것이 상당한 아쉬움이 있었는데 백제의 문화가 어떻게 일본에게 전해질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그 전모가 밝혀지는 내용이 담겨있어 이 책이 술술 잘 읽혔다.
전반적으로 책의 구성이 간단하고 어렵지 않게 전달해주고 있어서 읽기에는 부담이 없다. 게다가 처음부터 호기심을 자아내는 수법을 쓰는 읽지 않고선 못 배기게 하는 책이기도 한다. 또한 이 책은 일반적으로 백제에게 낮은 평가를 내리는 방식을 먼저 설명하고 그 이후에 저자 자신이 밝혀낸 역사적 사실을 설명해주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통용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몰랐던 사람들도 충분히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백제의 두 왕을 면밀히 살피기 위해 마련된 책이니, 전반적인 백제의 역사나 흥망성쇠는 다 나타나지 않지만 충분히 재미있게 근초고왕과 성왕의 능력을 살펴볼 수 있다. 중학교 교과서에는 중앙집권 기틀을 갖춘 왕으로 3세기 고이왕이 등장하고 4세기에 백제의 전성기를 연 근초고왕이 있고 6세기에 중흥기를 연 성왕으로만 간략하게 한,두 줄이 등장하기 때문에 많이 외울 것도 이해할 것도 없었는데 최근들어 발굴되는 여러 유적들도 등장하고 있어 좀 더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근초고왕이 등장한 시기는 4세기였는데 이 때가 우리 고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한다. 그 전에는 각기 나라마다 중앙집권체제를 만들기 위해 다른 나라에 대해 신경쓰지 않았던 시기였다면 4세기부터는 다른 나라의 정세까지도 파악해야 했던 시기였다는 것이다. 특히 자타가 공인하는 강자로 고구려가 떠오르기 시작한 시기가 4세기였기에 북쪽에는 고구려가 있고 남쪽에 실세를 잡고 있는 것이 백제란 것이다. 백제-가야-왜로 연결되는 세력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대항 세력이 왜이냐 백제이냐를 생각해볼 때, 당연히 사료상 백제가 맞다. 아무리 허구가 많다지만 실제 있었던 일까지 지울리는 없지 않은가. 『일본서기』에도 고구려에 대한 기록이 보이지 않으니 둘 사이의 관계는 없다고 봐야 맞으니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많이 등장하는 백제와 고구려의 대립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백제가 강대국 고구려를 대항하기 위해 가야와 왜, 그리고 신라까지 끌어들인 작전은 상당히 교묘하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가야와 왜, 왜와 신라, 신라와 가야의 국제 정세까지 다 읽을 수 있어야 했다. 우선 왜는 신라에게 호시탐탐 노략질을 일삼았지만 그것이 신라에게 큰 해를 줄 정도가 아니였다는 것, 그리고 신라에서는 왜를 한 나라 취급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고, 왜 입장에서는 신라가 아니더라도 중국과의 교역을 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해서 신라를 끊임없이 약탈했고 가야와는 그리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는 것, 가야도 신라와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그래서 백제는 고구려에 대항하기 위해 가야와 왜를 포섭하기로 했는데, 쓸데 없이 힘을 쓰지 않고 그들을 회유하는 방법으로 동맹체를 만드는 방법이 있었다. 그것은 신라의 지배권에서 벗어나 가야들의 연맹을 만들 수 있게 해주고 왜에게는 중국과의 교역을 위한 통로를 만들어준다는 이권을 보장해주는 방법으로 임나를 만든 것이다. 왜에게는 일본부를 만들어주고, 가야에게는 임나를 만들어서 백제 통제 하에 그들만의 연합을 형성한 것이다.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4세기의 남쪽 세력을 장악하기 위한 아주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을 주면서 자신의 뜻대로 그들을 조종할 수 있는 방법, 4세기밖에 되지 않은 그 때부터 백제는 무력 없이 다른 나라를 움직이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다. 그것의 중심에 근초고왕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후에 신라가 고구려와 동맹을 맺게 되었고, 나중에 고구려의 임나가라 정벌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 다음에는 성왕이 나설 차례인데, 먼저 고구려와 파토가 난 신라와 동맹을 맺어 고구려와 대항하고, 예전에 만들어놓은 가야-왜 동맹을 언급하며 신라를 견제하게 된다. 가야나 왜 입장에서는 백제에게 동조하긴 싫지만 그를 무시할 수 없어 따라가는 척했다가 순간적으로 실수해서 완전히 백제에게 꼬리 잡히게 되었다. 그 후에 신라와 관산성 전투를 하게 되었다.
고구려와 한강 유역을 다투다가 신라에게 뒤통수를 맞았을 때, 성왕은 신중하게 계산했다. 자신이 신라를 쳐들어가면 고구려가 내려올 것을 알고 배신을 당했지만 바로 고구려를 쳐들어갔기 때문인데, 이것은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면밀하게 계획을 짠 지도력을 보여준다. 그렇게 해서 고구려에게 한 방 먹인 다음, 관산성에 쳐들어가는데 거기서 신라에게 대승해버린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은 신라가 백제를 압도적으로 이긴다는 것이었는데 실제로는 아니란다. 김유신의 할아버지가 있는 부대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다 이겨놓은 관산성 터에 가는 성왕을 매복해서 생포해놓고 처형했던 것이라고 하니까 다 잡은 고기를 아깝게 놓친 격이 되었다. 승리에 취해 신중하지 못했던 행동으로 승리를 신라에게 내주어야 했으니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그 일 때문에 앞으로의 역사에서 백제의 이름이 없어지게 되었지만, 만약 성왕이 그 때 매복으로 죽지 않았다면 신라에게 큰 피해를 준 관산성 전투에서 크게 이겨 결국 신라를 무너뜨렸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근초고왕의 탁월한 외교 능력과 성왕의 감정을 누르는 치밀한 전략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역사에는 만약이란 없으니 백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들의 대단한 지도력까지 잊어버리지는 말아야 할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도 우리의 위대한 선조들일 테니까 말이다. 졌으니까 면밀하게 파악하지 않았던 과거의 실수를 되돌리는 이런 작업은 앞으로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역사란 그 자체로 배울 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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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사료라고 불리는 텍스트와 그 사료를 검증할 수 있는 고고학적 유물이다. 그렇기에 고대사는 늘 논란의 여지가 많다. 전해오는 것들이 적은 데다 전해지는 것들 역시도 매우 부분적이고 파편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중세인 고려와 근세인 조선의 경우 전해지는 유물과 기록이 많은 반면, 그전의 고대 시대는 유물도 적고 기록 역시도 미미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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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하면 우리는 중국의 위, 촉, 오가 대립 및 경쟁을 하던 시기를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그러나, 분명 우리의 고대사에서도 그러한 시기가 존재하였으니 모두 잘 알고 있는 백제, 고구려, 신라의 삼국시대가 그것이다. 우리는 이들 국가가 수백년간 서로 경쟁을 하면서 결국 신라로 통일이 되었다는 역사를 알고 있지만, 정작 각 국가의 역사에 대해서는 간과한 부분이 많이 있어 보인다. 오래전의 역사이기에 문헌도 많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노력과 연구를 통하여 역사를 분석하려고 애를 쓰지만, 역설적으로 확실한 기록이나 자료의 부족으로 인하여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과 일본의 고대사는 왜곡의 여지가 많아 보인다. 실제 일본의 고대 역사서인 <일본서기>의 내용을 본다면 허황된 기록이 많아서 신뢰가 가지 않는 대표적인 책이라 생각된다. 우리나라도 그나마 삼국시대의 역사서라고 볼 수 있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역시 상당히 신라의 관점에서 기술된 내용이 많아서 역시 완전한 믿음을 주는 역사서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근초고왕을 고백하다>라는 책은 고대사 중에서도 우리의 기억에 상당히 희미하게 인식되고 있는 백제의 4~6세기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교과서에 그저 4세기 백제가 전성기를 맞이하여 이 시기의 근초고왕은 집권 당시 백제의 최대 영토를 확보하였으며, 평양성 전투에서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업적을 이루었음을 짧막하게나마 배운 적이 있다. 그러나, 한 국가의 최대 전성기를 어찌 이렇게 짧은 서술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백제의 희미한 역사를 나름의 문헌 연구를 통하여 당시 백제의 국제 정세에 따른 외교적인 측면에서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저자라고 해서 특별히 기존의 역사가와 다른 사료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주목받지 못했던 4~6세기의 백제의 외교정책을 분석하여 이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그렇다면 근초고왕을 책의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말 그대로 근초고왕은 백제의 최전성기를 이룩한 인물이다. 우리는 고이왕이 백제의 중앙집권 체제를 성립한 것으로 배우고 있지만, 실제 정황을 본다면 근초고왕에 의하여 그것이 완성되었음을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물론 당시 백제의 내부 상황에 대한 자세한 문헌이 없기 때문에 거꾸로 저자는 그나마 중국과 일본의 문헌과 삼국사기를 통하여 백제의 외교적인 정책을 통하여 내부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근초고왕은 어떠한 정책을 추진하였을까?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근초고왕은 당시 동북아의 강자였던 고구려와 적대적인 관계를 취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백제는 가야와 신라와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배후의 적을 두지 않는 정책을 취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은 아직 신라와 가야가 백제에 대항할만한 힘을 갖추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레 백제와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다. 특히 백제는 어느 정도 힘을 갖춘 신라보다는 가야를 적극적으로 통제하는 정책을 취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바로 '임나'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낯설지 않은 단어이다. 일본이 '임나일본부설'을 통하여 당시 왜가 한반도의 가야 지역을 지배하였다는 가설이다. 이 가설의 근거는 그들의 역사서인 <일본서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이 문헌 자체가 고대 판타지와 같은 허구와 왜곡이 많은 것이라서 일본의 아전인수식 가설이라 비판을 한다. 그렇다고 '임나'가 아예 존재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저자는 바로 임나는 백제의 근초고왕이 가야 지역을 간접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상호 협력 기구와 같은 조직이라 설명을 하고 있다. 여기에 왜를 끌어들여서 왜의 입장을 전달하는 파견 기구인 일본부를 만들어서 결국 백제는 임나를 통하여 가야와 왜를 동맹으로 이끌었다고 주장을 한다. 물론 이 부분도 문헌에서 직접적으로 기술되지는 않았지만, 저자는 당시 왜가 중국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백제와 친선 관계를 유지해야 할 상황이라는 점과 백제의 주도적인 위치를 고려하여 그렇게 설명을 하고 있다. 빈약한 문헌과 왜곡된 역사서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부분은 앞으로도 연구가 되어야 할 부분이라 생각된다.
<근초고왕을 고백하다>는 근초고왕 사후의 백제의 외교적인 상황도 언급을 한다. 5세기의 광개토대왕에 의하여 백제의 패권은 무너지고, 이제 신라와 백제는 우호적인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군사 동맹을 수반하는 동맹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임나 지역은 이러한 백제와 신라에 의하여 결국 분열되어 소멸이 되고, 백제의 성왕은 이러한 시점에서 고구려를 공격하는 한편 근초고왕 시기의 임나의 재건에 힘을 쏟게 된다. 신라와 동맹 관계를 맺고 고구려와 대항을 하는 입장이었기에 이전의 근초고왕이 그랬듯이 배후에 탄탄한 동맹 체계를 확보하기 위하여 다시 임나와 왜를 동맹 체제로 편입을 시키려고 노력을 한다. 그러나, 임나는 이제 백제와 신라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이전과 같이 백제의 영향력에 묶이지 않으려고 하다가 결국 신라와 백제에 부분적으로 흡수가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백제의 중흥을 꾀하던 성왕은 고구려로부터 한강 이남을 수복하는 개가를 이루지만, 한강 이북을 차지한 신라의 배신으로 한강 이남 지역을 빼앗기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성왕은 어떠한 선택을 하였을까?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그 결정과 결과를 잘 알고 있다. 신라에 대한 복수전을 감행하다가 도리어 관산성 부근에서 성왕이 매복하고 있던 신라에게 포로로 사로잡혀 처형이 되면서 백제의 중흥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음을 말이다. 저자는 이러한 기존의 역사에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태자와 같은 주전파에 의하여 백제는 무려 3만의 군세를 일으켜 신라를 침공하였으며, 오히려 관산성까지 함락을 시키는 개가를 올렸으며, 신라의 일선 부대마저 격파를 하였다고 주장을 한다. 이는 삼국사기의 단편적인 지식과 일본서기의 내용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제시되고 있는 주장이다. 실제 성왕은 관산성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장에 있던 태자를 위무하러 가다가 도중에 신라의 매복에 의하여 사로잡혔을 것으로 추측을 한다. 당시 기록에도 분명 성왕은 50여명의 수하를 이끌고 가고 있었기 때문에 이는 전쟁을 이끄는 행군이 아니라 태자를 방문하러 친히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또한 삼국사기에서는 백제의 3만이 전멸하였다고 기록을 하였지만, 저자는 패배는 하였으되 백제의 병력이 전멸한 것은 아니었음을 역시 문헌의 비교를 통하여 주장을 하고 있다.
이렇게 간략히 이 책의 내용을 살펴보아도 우리가 알고 있던 당시 백제의 역사와는 많은 부분에서 다름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저자도 밝힌 것처럼 분명 이 시대에는 문헌이 많지 않기 때문에 많은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하였기 때문에 저자의 주장이 모두 역사와 일치한다는 보장은 할 수 없다. 그러나, 최소한 저자는 일본의 식민주의 사관 또는 국수적인(백제의 최고 전성기가 중국 서부 지역을 차지하였다는 설) 시점과 같이 극단적인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문헌에서 신뢰성이 있는 사실만을 추려서 자신의 학설을 주장하고 있다라고 생각된다. 삼천 궁녀와 의자왕, 계백의 결사대만 떠올리던 백제의 역사에서 몇년 전에 근초고왕을 주인공으로 한 역사 드라마가 방송된 적이 있다. 사실 나도 이 드라마를 모두 시청하였지만, 최대 전성기를 이룩한 백제의 근초고왕이 귀족에 의하여 휘둘리는 모습과 더불어 치세와 외교적인 활동이 아닌 연인에 대한 사랑을 허구로 내세워서 실망한 적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빈약한 역사 의식을 공개적으로 반증하는 것이기에 더욱 씁쓸해보였다. <근초고왕을 고백하다>라는 책도 사실 당시 백제의 내부 사정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아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당시 백제의 국제 정세와 외교 정책을 나름의 재해석을 통하여 저자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기에 잘 알려지지 않은 그 당시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 읽어보면 괜찮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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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다닐때 즐겨서 매달 사던 참고서에 백제와 일본에 대한 자료가 조금씩 실리곤 했었다. 두나라의 문화적 교류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백제가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일본이 이를 받아들여 배우는 입장이었다. 기술자를 보내고 이외에 책이나 의류, 건축방법, 예절등에 이르기까지 백제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곳은 없어보였다. 이는 백제가 우리 역사안에 존재했던 나라라는 것이 무척 자랑스럽게 느껴지게 했고 오랫동안 잊을 수가 없었다. 배운사람으로서 존경을 받으며 베풀었던 백제인과 이들을 반기고 받들었던 일본인들...... 내 기억속의 두나라는 그렇게 따뜻하고 모범적인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자료가 너무도 부족해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힘든 고대사의 영역중에는 나라의 기틀을 다져가던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있다. 물론 가야나 마한등의 힘이 약한 나라들도 있다. 북방의 많은 땅을 차지하고 떵떵거렸던 고구려나 삼국을 통일했던 신라에 비해 백제는 가장 인상도 적고 제일 먼저 망해버린 나라라는 인식이 있다. 그래서 백제는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다는 말이 많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최근엔 백제에 대한 책이 좀 더 눈에 띄는것 같다. 얼마전에 보았던 책 <대백제>도 객관적인 평가를 받지못한 백제의 진가를 알리고자 하는 의도로 기획되어 집필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백제 역시 급변하는 정세속에서 자국을 지키고 힘을 키우기위해 훌륭히 외교를 하고 힘겨루기를 했음을 알려주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근초고왕과 성왕이라는 두 왕을 골라 이들이 집권했던 이전과 당시, 이후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나라의 기틀을 다지고 가장 큰 힘을 먼저 가진것은 역시 고구려였다. 하지만 고구려는 위치상 북방에서의 침입에도 항상 대비하고 있어야하고 전쟁도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남쪽으로 손을 댈 여력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마냥 안심할 수 없었던 백제 근초고왕은 이후 언젠가 있을 고구려와의 전쟁을 대비해야 했다. 그래서 마한을 흡수하고 신라의 힘이 커져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곤란해하던 왜에 손을 뻗었다. 동시에 가야에도 회유를 하여 백제-가야-왜의 동맹을 맺었다. 가야에는 신라로부터의 위협에서 지켜주고 일본에는 기술과 문화를 전파해주었다. 이렇게 시작된 한반도의 정세는 자국의 이익에 따라 필요하면 손을 잡고 욕심이나 불만이 생기면 배신해 적이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근초고왕은 정세를 읽고 앞을 내다보며 동맹을 만들어 신라를 경계하면서 힘을 키워냈다. 이를 본다면 저자가 너무도 왕의 위엄이 없는 드라마 근초고왕을 맘에 들어하지 않는것은 당연하다. 이 당시의 정황이 잘 설명된 덕분에 가야와 왜에 대한 지배를 위해 설치된 임나에 대한 이해도 쉽게 되었다. 그리고 참고서의 자료만 보고 가졌던 애틋한 이미지가 실상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도 알게된것은 조금 아쉬웠다.
근초고왕의 뒤를 성왕이 바로 이은것은 아니지만 책의 구성이 두 왕을 중심으로 시간적인 흐름에 맞춰 서술하고 있어 결과적으로 백제가 나라의 틀을 잡고 강해지던 때부터 기울어져가는 시기까지 모두 알게된 셈이다. 성왕 이후 백제는 힘이 약해져갔다. 당연히 성왕이 있던 당시의 정황과 그의 죽음은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그의 죽음은 남아있는 자료의 기록이 달라 진실을 알지 못한채로 남아있었다. 전투에서 전사를 했는지 매복하고 있던 적에게 잡혀 사형을 당했는지 모른다. 어쨌거나 성왕이 죽고 백제가 관산성 전투에서 패하면서 이전같은 위치를 차지할 수 없게되었다. 추측만 남은 전투와 죽음이지만 성왕 역시 정세를 읽고 이전의 힘을 되찾으려 노력해온 것은 분명하게 보였다.
나라간의 어지러운 사정을 잘 설명하고 있고 내용도 그리 어렵지 않다. 처음에는 두 왕이 나라 안에서 어떠한 일들을 해왔는지에 대해서 알려줄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책은 백제의 행보를 설명하고 있었다. 큰 그림을 그리고 시대의 흐름을 서술한 책이다. <대백제>가 일본이나 중국등에 남아있는 백제의 흔적을 통해 당시의 백제가 어느정도의 영향력을 지녔고 얼마나 수준높은 문화를 갖고있었는지 설명했다면 <근초고왕을 고백하다>는 나라끼리의 권력다툼을 그린 책이다. 관점이 달라서 오히려 백제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백제에 대한 책이 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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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와 고구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로 인식되어 오던 백제가 최근 드라마 ‘근초고왕’의 방영 덕분인지 백제의 진면목을 알고자하는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이번에 읽은 책 ‘백제를 이끌어간 지도자들의 재발견1’이란 부제가 달린 《근초고왕을 고백하다(2011.4.20. 가람기획)》도 이러한 맥락에 부합되는 책으로, 백제하면 떠오르는 두 명의 왕, 근초고왕과 성왕에 대해서 살펴본다. 《근초고왕을 고백하다》는 크게 1장 근초고왕의 시대와 2장 성왕의 시대로 구분했다. 근초고왕 이전의 상황과 이후의 상황 그리고 근초고왕의 업적을 설명하며, 성왕 시대의 설명도 1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신라와 고구려의 역사에 비해 백제의 역사는 머릿속을 아무리 뒤져봐도 딱히 떠오르는 정보가 없다. 근초고왕 시대에 백제 역사상 최대 영토를 가졌었고 일본에 칠지도를 하사했었다는 정도. 그리고 나 ․ 제동맹이 파기되고 성왕의 죽음 후 백제의 중흥이 좌절되었다는 정도가 기억날 뿐이다. 저자도 안타까움을 토로하듯이 백제는 한반도에 존재했었는지 여부가 의심스러울 만큼 백제사의 자취는 희미하다.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역사임에 분명하지만 백제에 대한 관심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고구려와 신라 시대를 조명했던 시대극을 재미있게 시청했던 것과 비교했을 때 드라마 ‘근초고왕’을 한 번도 보지 않은 내 경우를 보더라도 그렇다. 이러한 현실에서 《근초고왕을 고백하다》는 ‘백제의 역사에 있어서 최고의 전성기를 이끌어왔지만 자료 부족으로 그 진면목이 가려져왔던 백제 13대 근초고왕과 26대 성왕에 대한 역사를 자세히 살폈다’고 말하지만, 역시 백제를 대표하는 두 명의 왕에 대한 자료가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만 절감하게 만든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신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가야 연맹과 관련된 역사다. 고구려에 대항한 남쪽 세력으로 백제 - 가야 - 왜가 자리했었다는 사실, 게다가 백제가 가야에 영향력을 미쳤다는 사실은 훗날 가야가 신라에 흡수된 것으로 미루어 가야연맹이 신라의 영향권 아래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은 잘못된 생각이다. 백제를 조명한 책과 만나면 얼마나 흥분되는지 모른다. 이번에야 말로 자세한 백제사를 들여다볼 기회가 되겠거니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번번이 그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백제사를 읽을 기회와 마주하게 된다면 언제나 그랬듯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갈 때처럼 마음이 들뜰 것이란 걸 나는 안다. 그리고 언젠가는, 잃어버린 백제사를 되찾을 날이 올 것이란 걸 나는 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