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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러운 사람들이 풀어내는 뜨거운 말- 권선희『꽃마차는 울며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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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러운 사람들이 풀어내는 뜨거운 말- 권선희『꽃마차는 울며 간다』    권선희는 두 번째 시집인 『꽃마차는 울며 간다』(애지, 2017)에서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약자들에게 주목한다. 그녀의 시에 묘사되는 사람들은 “횟집 차렸다가 삽시간에 쫄딱 말아먹고 갈치배 타는 이 씨”(「해파리는요」)나 “귀도 막고 입도 막은 복자 언니”(「복자 언니」)처럼 무한경쟁 사회에서는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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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러운 사람들이 풀어내는 뜨거운 말

- 권선희『꽃마차는 울며 간다』

 

 

 

 

권선희는 두 번째 시집인 『꽃마차는 울며 간다』(애지, 2017)에서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약자들에게 주목한다. 그녀의 시에 묘사되는 사람들은 횟집 차렸다가 삽시간에 쫄딱 말아먹고 갈치배 타는 이 씨”(해파리는요)귀도 막고 입도 막은 복자 언니”(복자 언니)처럼 무한경쟁 사회에서는 살아남기 힘든 약자들이다. 무한경쟁 사회는 성과를 내는 사람만 인정한다. 성과란 무엇인가? 끊임없는 욕망이다. 다른 사람을 밟고 넘어선 자리에서 성과=욕망은 드넓게 펼쳐진다. 성과를 내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삶이라는 맥락에서 보자면 그들 또한 그들의 삶을 살아가기 마련이다.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죽도록 일해도 이들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분명하지만, 이 씨는 이 씨대로, 복자 언니는 복자 언니대로 어떻게든 삶을 산다.

 

경쟁사회의 바깥에서 팔자대로 살아가는 이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팔자라는 시에서 시인은 땅값이 오른 텃밭을 바라보며 팔자를 외치는 한 사내를 이야기한다. 복숭아 값이 좋아 빚을 갚나 했더니 자식 놈이 사고를 쳐서 남 좋은 일만 해버렸다. “집 나간 큰년이 돌아오니 셋째 년이 나가버렸고, 소처럼 일만 하던 마누라는 수술도 못하고 죽어버렸다. 참 기구한 팔자이다. 길이 보이면 이내 무언가 그 길을 막아버린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외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직접 당하는 사람은 미칠 노릇이다. 와중에 텃밭에 매겨진 땅값은 자꾸만 오른다. 기뻐해야 할까, 슬퍼해야 할까? 좋은 일이 생겼으니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하긴 더 이상 벌어질 나쁜 일이 또 있겠는가? 흘러가는 대로 살 도리밖에 없다. ‘팔자라는 말에 드리워진 이 서러움을 어찌 하면 좋을지 도통 모를 일이다.

 

영기가 면도칼로 손목 세 군데나 긋고

수술에서 깨어났을 때

큰형 팔뚝 움켜잡고 했다던 말

나 좀 살려줘,

 

둘째 영기가 이제는 맘 잡겠다고

오른쪽 새끼손가락 자르고

퇴원하던 날

두 손을 두 손에 가두고 했다던 엄마의 말

 

니는 죽은 니 아부지와 내가 만든

고귀한 선물이다 이 상노무 새끼야

- 뜨거운 말전문

 

영기라는 사람이 면도칼로 손목을 그었다. 무엇이 서러워 그는 스스로 죽으려고 했을까? 다행히 수술을 하고 그는 깨어났나 보다. 그런데, 죽으려 했던 그가 큰형 팔뚝을 움켜잡고 나 좀 살려줘,”라고 외쳤다. 씁쓸하다. 이토록 살고 싶은 사람이 왜 죽으려 한 것일까? 죽음의 고통을 경험했으니 이제 그는 더 이상 제 손목을 면도칼로 긋는 짓을 하지 않을까? 영기는 둘째 아들인 모양이다. “오른쪽 새끼손가락 자르고마음을 잡겠다고 엄마 앞에서 맹세했단다. 엄마는 두 손으로 아들의 두 손을 잡는다. 무슨 말을 해주면 좋을까? 따뜻한 말로 달래야 할까? 어쨌든 죽는 것보다 사는 게 좋다는 사탕발림이라도 해주는 게 좋지 않을까 

 

아니다. 엄마의 입에서 쌍욕이 터져 나온다. “니는 죽은 니 아부지와 내가 만든/ 고귀한 선물이다 이 상노무 새끼야라는 구절을 읽고는 가슴이 한없이 먹먹해진다. “고귀한 선물이라는 시구에 눈길이 머문다. 누군가에게 받은 그 고귀한 선물이 왜 이 모양으로 죽으려 했는가? 영기가 자살을 시도한 이유는 이 시에 나와 있지 않다. 추측만 할 뿐이다. 성과사회의 바깥으로 내몰린 자의 비극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산전수전 다 겪은 시골 청년의 비애로 해석할 수도 있다. 시인은 정작 이런 추측성 시 쓰기에 매달리지 않는다. 그녀는 엄마가 외치는 고귀한 선물이라는 시구를 쌍욕과 더불어 독자들에게 내밀고 있다.

 

이래도 저래도 서글픈 인생이다. 표제작인 꽃마차는 울며 간다에 드러나는 대로 우리네 인생은, 시인의 표현대로라면 채찍이 긋는 이 오후는/ 이승인가, 저승인가라는 물음으로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꽃마차는 달려간다는 오래된 노래 가사를 뒤집어 시인은 꽃마차는 울며 간다고 표현한다. 달려가는 것과 울며 가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산전수전 다 지나온 말이 산전수전 다 지나온 노부부를 싣고 꽃무덤을 끄는 이 상황을 산전수전 다 지나온 독자들은 어떻게 판단할까? “절벽 아래 수심은 터무니없는데라고 시인은 쓰고 있다. 한 발을 내밀면 저 터무니없이 깊은 절벽 아래로 떨어질까? 채찍을 맞으며 꽃무덤(꽃마차가 아니다!)을 끄는 늙은 말의 지친 모습이 눈앞에 삼삼하기만 하다.

 

푸른 바다 물빛 털며 돌아가는 생이다

지느러미 흔들고 흔들리며

삶을 부린 저 바다

노대바람 뚫고 명주바람 건너온

아비처럼 어미처럼 돌아가는 길이다

서글픈 속내일랑 뒷산에 묻고

그리운 사랑일랑 가슴에 묻고

시누대에 눈을 꿴 몸뚱이들

덕장마다 환원의 문장을 쓰고 있다

화르르 비늘 돋는 구룡포

차디찬 겨울 빛나는 율동律動

샛바람이 읽고 있다

- 과메기전문

 

과메기는 포항의 명산물이다. 꽁치(처음에는 청어였다)를 말린 게 과메기인데, 쫄깃한 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시인은 물론 단순히 과메기를 얘기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꽁치가 과메기로 변하는 과정에 시인은 주목하고 있다. “시누대에 눈을 꿴 몽뚱이들은 낮에는 강한 햇살을 받고, 밤에는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제 몸의 물기를 시나브로 없앤다. 바람만으로도 안 되고, 햇살만으로도 안 된다. 바람과 햇살이 번갈아가며 시누대에 걸린 몸뚱이들을 오고간다. 시인은 이 상황을 덕장마다 환원의 문장을 쓰고 있다는 구절로 표현한다.

 

환원의 문장푸른 바다 물빛 털며 돌아가는 생과 이어져 있다. 꽁치든, 청어든 시누대에 걸린 저 몸뚱이들은 지금 푸른 바다에서 새겨진 물빛을 털고 있다. 물빛을 털고 그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지느러미 흔들고 흔들리며/ 삶을 부린 저 바다로 돌아간다고 시인은 이야기한다. 제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꽁치는 왜 제 몸의 물빛을 털고 있는 것일까? 햇살이 들어올 자리를, 바닷바람이 들어올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햇살과 바닷바람이 들어올 자리가 없으면 꽁치는 과메기로 변할 수 없다. 생명과도 같은 물빛을 포기함으로써 꽁치는 비로소 과메기로 가는 길을 연다.

 

노대바람 뚫고 명주바람 건너온/ 아비처럼 어미처럼 돌아가는 길이 차디찬 겨울이 되면 화르르 비늘 돋는 구룡포에서 펼쳐진다. 덕장을 내리쬐는 겨울 햇살을 받으며 시누대에 눈을 꿴 몸뚱이들은 춤을 춘다. 샛바람이 몸 구석구석을 읽고 가면 서글픈 속내그리운 사랑은 하나하나 몸 밖으로 떨어져 나간다. 서글픈 속내에 집착하면 저렇게 빛나는 율동을 내보일 수 없다. 비울 건 비워야 한다. 비워야 채울 자리가 생긴다.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일은 이렇듯 험난한 과정을 동반한다. 아비와 어미가 운명처럼 겪은 삶을 그 자식들이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 이것은 비극일까, 희극일까? 샛바람에 온몸을 내보이는 저 몸뚱어리들이 쓰는 환원의 문장에는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죽는 우리네 민초들의 삶이 깃들어 있다.

 

꽁치가 과메기로 변하는 과정에는 시간이 개입되어 있다. 낮에는 햇살을 견디고, 밤에는 바닷바람을 견디며 꽁치는 서서히 과메기로 변해간다. 밝고 따뜻한 세계와 어둡고 차가운 세계는 둘이면서 하나이다. 시간은 모순으로 휩싸인 우리네 인생을 한곳으로 몰고 가는 힘이 있다. 이리저리 꼬인 인생도 어김없이 시간이 내주는 한곳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제 삶을 견디는 저 몸뚱어리들을 보라. “환원의 문장은 생명으로 태어난 존재의 몸에 낙인으로 찍혀 있다. 그것을 죽음이라고 말해도 좋고, 새로운 생이라고 말해도 좋다. 꽁치는 제 몸을 비워야, 달리 말하면 제 몸을 죽여야 과메가라는 새 인생을 얻는다.

 

권선희 시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과메기와 같은 인생살이에 젖어 있다. 꼬리라는 작품에 표현된 대로, 그들은 떠나란다고 훌쩍 떠난 당신에 대한 마음을 쇳줄 끌고 빙빙 도는 검둥이의 꼬리에서 발견한다. 입으로는 분명 떠나라고 말했다. 떠나지 말라는 말을 하면 반드시 떠날 것 같아 입으로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꼬리는 그것이 거짓이라는 걸 안다. “감추지 않은 속내는 저리 꼬리를 흔들고 있다. “정작 사랑 앞에서/ 힘차게 흔들려야 할 꼬리를 감추고 입으로만 사랑과 이별을 떠드는 이들에게 시인은 북실한 반응 차오르는/ 꼬리뼈가 울고 있다는 말을 전한다. 인간의 입=언어는 꼬리에 비한다면 얼마나 부질없는가? 제 몸의 물기를 없애고 과메기가 되지 못할 바에는 저 꼬리처럼 제 속내라도 제대로 표현해야 하지 않는가. 권선희 시는 꼬리가 전하는 생의 언어로 시를 쓴다. 둘러갈 것 없다. 그녀는 사랑 앞에서는 힘차게 꼬리를 흔들고 싶은 것이다.

o*****s 2017.12.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