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8)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88%
  • 리뷰 총점8 12%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10.0
  • 50대 9.0

포토/동영상 (5)

리뷰 총점 종이책
역사공화국 23 - 왜 양녕 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을까?
"역사공화국 23 - 왜 양녕 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을까?" 내용보기
태조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부터 차례대로 역사공화국 시리즈를 읽고 있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지나, 정도전과 이방원의 이야기 다음에 나오는 부분이 <양녕대군 vs 태종>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다.  <왜 양녕 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을까?>.  내가 알고 있던 양녕대군은 어땠지 하고 돌아보게 된다.  내 머릿속에 있는 양녕대군은 동생을 위해서 미친짓을 했던 인물이었다
"역사공화국 23 - 왜 양녕 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을까?" 내용보기

 태조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부터 차례대로 역사공화국 시리즈를 읽고 있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지나, 정도전과 이방원의 이야기 다음에 나오는 부분이 <양녕대군 vs 태종>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다.  <왜 양녕 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을까?>.  내가 알고 있던 양녕대군은 어땠지 하고 돌아보게 된다.  내 머릿속에 있는 양녕대군은 동생을 위해서 미친짓을 했던 인물이었다.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서 말이다.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랬다.  큰 아이는 양녕대군을 알까하고 물어봤더니, 자기는 정일우의 양명대군만 안단다.<해를 품은 달>을 이야기한것인데, 책 속의 양명대군은 대군이 아닌 그냥 양명군이다.  적자가 아닌 서자였으니까. 이야기를 꺼낼까 하다가 그냥 넘어갔다. 양명대군에 빠져있는 딸아이 맘 다칠까 그냥 넘어가자.  아버지한테 버림받았다고 맘 아파하는 양녕대군의 이야기를 읽었으니 말이다.

 

 

 

 조선은 적통의 맏아들이 왕권을 물려받는 나라다.  하지만, 조선 왕조 5백 년의 역사 속에서 적통이며 맏아들이기까지 한 원자가 왕세자로 책봉되었던 경우는 27명의 임금 중 겨우 8명 뿐이었다.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경종, 순종의 경우가 적통의 원자였다.  그러니 적장자가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는 조선 왕실의 규범이 무색할 정도다.  양녕대군은 조선 제 3대 왕인 태종의 맏아들이며, 한때는 조선의 왕세자 였다.  태어나자 마자 이방원에게 다가오는 위험으로 인해서 외가에서 7년을 키워졌고, 열한 살 되던 해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가, 스물두살에 '어리사건'으로 폐세자가 된후, 평생 자연을 벗 삼으며 시를 읊고 글을 쓰다 1462년, 69세에 생을 마감했다.  당시로써는 장수한 셈인데, 세종, 문종, 단종, 세조까지 무려 네명의 왕과 함께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방원에게 다가왔던 위험은 무었이었을까?  태조 7년인 1398년, 태조 이성계가 방원의 이복동생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자, 방원은 정도전을 살해하고, 신덕왕후 강씨 소생의 방석, 방번을 귀양 보낸후 죽인다.  이때 방원은 세자로 책봉되었지만 둘째 형인 방과에게 왕세자의 자리를 넘긴후, 방과가 조선 제2대 국왕 정종이 된 후, 제 3대 왕이 된다.  이 과정에서 이방원은 끊임없이 신덕왕후 강씨와 정도전에게 견재를 당해서, 양녕대군이 태어나자 마자 외가로 보낸다.  드디어 이방원은 왕이 되었다.  왕이 되었으니, 첫째 아들은 왕세자의 자리에 앉게 된다.  궁에서 살지 않았던 아이가 어느날 갑자기 세자가 되어 세자였기 때문에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양녕은 공부보다는 무술에 소질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하지만 왕세자였기에 공부를 해야만 했다.  여덟살 때부터 자신의 재능과 적성은 무시하고 공부만을 강요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공부를 했다.  물론, 그 덕분에 양녕은 태종 몰래 주색잡기에 빠졌고, 끝내, '어리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양녕의 첫 사랑이라는 어리 전에도 양녕주위에는 사랑에 빠졌던 기생이 있었지만, 어리는 곽선의 첩이었기때문에 불법이자 부도덕한 행실이었다.  법적으로까지 문제가 생긴것이다.  폐세자가 된 후, 태종은 양녕과 어리를 함께 살게 하지만, 갑갑함을 이기지 못했던 양녕으로 인해서, 어리는 자결을 하게 된다.  사랑에 목숨을 걸 수도 없었던 인물로 한국사 법정은 양녕을 평하고 있다.

 

 무에 재능을 가지고 있고, 인간적인 양녕 대신 태종은 셋째 아들 충녕대군을 세자로 봉하게 된다. 분명 역사는 충녕대군을 최고의 세자라 칭하고, 그의 정치를 성군의 정치라 이야기 하고 있다.  하지만, 양녕이 충녕대군만 못했다고 이야기할수도 없다. 그가 왕이 되질 않았으니까 말이다.  태종은 어떤 생각이었을까?  조선은 건국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더 이상 전쟁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던 평화의 시대였다.  그리고 그 평화를 이끌어갈 국왕의 덕목은 무술이 아니라 뛰어난 학문이었다. 최고 지도자에게 요구되어지는 덕목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분명 전쟁의 시대나 혼란의 시대에는 양녕같은 지도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태종은 세종이 왕위에 오른 후, 혼란을 막기 위해 외척세력을 철저하게 제거했다. 세종이 다른곳에 힘을 쓰지 않도록 말이다.

 

 

 

 왕권만을 본다면 분명 양녕 보다는 충녕대군이 세자가 되어 왕위에 오른것이 다행이다 생각이 되어진다.  하지만 호랑이같은 아버지의 눈빛만을 기억하고 있는 아이의 입장에서는 어땠을까? 아버지에게 한번 안겨보지도 못하고, 칠삭동이였던 동생, 이도만을 사랑하셨다고 느꼈을 아이. 동생의 학문에 따라갈 수 없음을 알았기에 무술에 집착했고, 아버지에게 반항했던 아이로만 본다면, 양녕은 불쌍한 아이였다. 자신의 소질과 적성과는 상관없는 것만 했던 아이.  폐세자를 논하기 전에 양녕대군과 태종의 관계는 지금의 우리 아이들을 돌아보게 된다.  내 아이에게 나는 어떤 부모였는지 말이다.  태종처럼 한 나라의 왕으로 아이를 바라보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있음에 감사해야할까?   역사의 그늘속으로 사라져 버린 양녕대군을 통해서 생각이 많아지는 그런 날이다.  

 



d****2 2012.06.29. 신고 공감 4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왜 양녕대군은 세자의 자리에게 쫓겨났을까?
"왜 양녕대군은 세자의 자리에게 쫓겨났을까?" 내용보기
초등한국사 역사 공부의 내용은 사랑받지 못해 상처받은 양녕대군의 이야기예요. 한때 조선의 왕세자였던 양녕대군 무엇이 억울하였기에 아버지인 태종이 나쁜 아버지이자 부책임 한 가장이라 했을까요?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도 이야기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자연스럽게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아요.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은 어려운 용어들을 바로 주석을 통해서 설명해 주기에
"왜 양녕대군은 세자의 자리에게 쫓겨났을까?" 내용보기

초등한국사 역사 공부의 내용은 사랑받지 못해 상처받은 양녕대군의 이야기예요.
한때 조선의 왕세자였던 양녕대군 무엇이 억울하였기에 아버지인 태종이
나쁜 아버지이자 부책임 한 가장이라 했을까요?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도 이야기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자연스럽게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아요.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은 어려운 용어들을 바로 주석을 통해서 설명해 주기에
책을 읽으면서 막히는 부분 없이 읽어나갈 수 있어요.
양녕대군은 왕세자도 싫었고 공부도 싫어했어요.
그저 아버지의 따뜻한 눈빛을 원했었었고, 인정을 해주길 바랐죠.
하지만 그렇기 않았기에 반항아가 되었다고 해요.

태종은 말하죠. 
늘 호랑이의 눈빛으로만 양녕을 바라보았지만, 미워서가 아닌 기대가 너무 높았기 때문이라고.
충녕대군을 바라본 나의 눈빛은 편애의 눈비치 아닌 기대가 없었기에 그저 사랑스러운 아들로만 봤다고요.

재미있고 독특한 설정을 통해서 흥미를 유발하고 딱딱하고 지루한 역사가 아닌
재미있게 역사를 살펴볼 수 있게 해주죠.
교과서 속 역사 지식과 함께 각 시대의 다양한 배경지식을 만날 수 있어요.
한국사를 어려워하는 아이라면 추천하고 싶어요.

 









 

y******1 2022.03.1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초등한국사 초등역사전집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과 함께해요
"초등한국사 초등역사전집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과 함께해요" 내용보기
역사 속 라이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재판을 벌이는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법정이라는 공간속에서 펼쳐지는 교과서 속 역사이야기 절대 지루할수 없는 초등한국사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이번에는 양녕대군 vs 태종 왜 양녕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을까?   알다시피 조선의 제 4대왕인 세종대왕은 현재 우리 민족이 세계에 자랑하는 한글과 금속활자를 창조했으며
"초등한국사 초등역사전집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과 함께해요" 내용보기

역사 속 라이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재판을 벌이는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법정이라는 공간속에서 펼쳐지는 교과서 속 역사이야기

절대 지루할수 없는 초등한국사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이번에는 양녕대군 vs 태종

왜 양녕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을까?

 

알다시피 조선의 제 4대왕인 세종대왕은 현재 우리 민족이 세계에 자랑하는

한글과 금속활자를 창조했으며

국토를 확장하고 집현전에서 우수 인재양성하면서 한국사 5000년을 대표하는

최고 위인으로 존경받고 있죠

세종은 제 3대 왕이 태종의 셋째아들이라고해요

첫째아들이 다음 왕위를 따르는 장자세습을 하는 조선왕조에서

어떻게 세종이 왕이 되었을까??

바로 세종의 형인 양녕대군이 세자자리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라고해요

그렇다면 왜 양녕대군은 왜 쫓겨났을까??

계속 궁금해지는 초등한국사 역사공화국을 통해서 자세하게 알수가 있더라구요

 


 

태종은 나쁜 아버지이자 무책임한 가장이었을까?

양녕대군은 문제아이자 불량 세자였을까?

양녕대군은 왕의 자질이 부족했을까?

 

계속 질문을 하면서 글이 이어지는 한국사법정

그 질문의 답을 스스로 찾아가면서 역사를 이해하고 흐름을 연결하면서 초등역사논술까지이어갈수 있는 한국사법정이어요

 


 

 

초등한국사이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는 어떻게 이야기가 연결되는지도 확인할수 있어요

 

 


 

 

등장인물 원고에는 양녕대군과 민제, 원경왕후, 이래

 


 

 

피고쪽에는 태종, 하륜, 세종대왕가 나오네요

 


 

15세기 초반, 조선 3대 국왕 태종의 맏아들 양녕대군이 왕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나는 일이 발생해요

왕이 될 자격과 자질이 부족하다는 이유때문이죠

이에 양녕대군은 아버지 태종의 무관심과 편애로 상처받아 방황했던 것뿐이라고 주장하면서 시작하네요

 


 

 

먼저 태종의 가계도부터 그시대의 상황부터 미리 알아보기

역사속 사건은 그 사건 하나만으로 잘잘못을 따질수가 없는게 많죠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역사속 배경을 여러방면으로 알아야 이해가 되더라구요

 


 

먼저 태종은 나쁜 아버지이자 무책임한 가장이었을까??

 


 

 

양녕대군은 태어나자마자 외가로 옮겨져서 일곱살때까지 자랐다고해요

태종에게는 양녕대군보다 먼저 세아이가 태어났는데 연달아서 죽었다고해요

그래서 혹시나 나쁜기운때문에 외가에 피해가도록 했다고하네요

 


 

 

중간중간 교과서속에 어떻게 이야기가 나오는지도 설명이 되어있어서

역사속 배경지식도 탄탄하게 채워갈수 있어요

 


 

양녕대군은 문제아이자 불량 세자였을까??

 


 

 

양녕대군은 왕세자 교육을 대부분 잘따라했다고해요

그러나 활쏘기,사냥, 운동등에 더 관심을 가져서 공부보다는 무술과 운동에 소질이 많았고 잘했다고하네요

 


 

그에 반해 셋째아들인 충녕대군은 글공부를 더 좋아했었구요

활쏘기와 무술을 더 좋아했던것에 지적을 받고

공부잘 하는 동생과 비교가 되고 열등감이 생기면서 점점 공부를 포기하게 된거

같다고하네요


 

양녕대군을 둘러싼 사람들을 소개하면서 양녕대군의 삶을 이해를 도와주는 역사인물 돋보기

 


 

그리고 마지막을 양녕대군은 왕의 자질이 부족했을까??

 


 

 

양녕대군이 사랑에 빠지면서 더욱 아버지 태종과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네요

아버지의 따스한 애정과 관심이 덜하고 왕세자로써 막중한 책임과 임무만 주어지니

양녕대군도 힘들었을듯하기도하구요

아버지 태종으로써는 왕이 될 세자를 더욱 엄하게 교육하기도 했을듯하구요

 


 

 

역사이야기는 누가 찬반으로 딱 나누기는 조금 힘이 들지만

그시대와 그상황속에서 보면 안타깝고 슬픈역사가 많은거 같기도해요

 

아버지가 저를 사랑해 주셨다면 저는 비뚤어지지 않았을거예요!!!

vs

조선의 기틀을 잡기 위해 양녕 대군을 폐위한 것뿐이다 !!

 


 

양녕대군이 잠든 지덕사라는 곳이 서울 동작구에 있네요

날씨가 조금 따뜻해지면 역사여행을 하고싶은곳이 하나 더 늘었네요...ㅎㅎ

초등한국사 한국사법정을 통해서 더 깊이 있게 역사를 배우고 생각해볼수 있는거 같아요

 

 


 

 

h******9 2022.03.0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초등역사전집 추천 역사 공화국 한국사법정으로 초등한국사 재미있게 배워봐요
"초등역사전집 추천 역사 공화국 한국사법정으로 초등한국사 재미있게 배워봐요" 내용보기
제가 역사를 너무 어렵게 생각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역사를 쉽게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어릴 때 한국사의 흐름을 알기에 좋다는 전집도 보여주고 학습만화도 보여줬지만 점점 학년이 올라가면서 빈틈이 보이는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 빈틈을 채워줄 전집을 알아보다 한국사법정을 알게 되었는데 초등한국사부터 중, 고등까지 교과학습을 커버해 줄 뿐만 아
"초등역사전집 추천 역사 공화국 한국사법정으로 초등한국사 재미있게 배워봐요" 내용보기

제가 역사를 너무 어렵게 생각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역사를 쉽게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어릴 때 한국사의 흐름을 알기에 좋다는 전집도 보여주고

학습만화도 보여줬지만 점점 학년이 올라가면서 빈틈이 보이는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 빈틈을 채워줄 전집을 알아보다 한국사법정을 알게 되었는데

초등한국사부터 중, 고등까지 교과학습을 커버해 줄 뿐만 아니라

역사를 보는 눈을 길러주는 초등역사전집이더라고요.

한국사 오천 년 역사 속 주요 인물을 통해 역사를 배우는 한국사법정은

각 시대의 주요인물 두 명의 법정 다툼이라는

재미있고 독특한 설정을 통해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역사를 어렵고 딱딱하다는 편견을 깰 수 있도록 해주는

초등역사전집이에요.

왜 양녕 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을까?

동생에게 왕세자의 자리를 넘겨준

양녕 대군의 숨겨진 이야기!

이번에 살펴본 한국사법정은 양녕 대군과 태종의 법정 다툼을 통해

조선 초기의 역사와 문화를 배울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어요.

양녕 대군 VS 태종

교과서 속 역사 지식과 함께 각 시대의 다양한 배경지식을

쌓을 수 있는 초등역사전집으로

아이들의 한국사 실력을 키워주기에 정말 좋은 전집인듯해요.

미리 알아두기

태종의 가계도

3대 태종

*원경 왕후 민씨

-양녕 대군

-효령 대군

-충녕 대군(제4대 세종)

-성녕 대군

-정순 공주

-경정 공주

-경안 공주

-정선 공주

*효빈 김씨

경녕군

*신빈 신씨

함녕군, 은녕군, 근녕군, 정신 옹주, 정정 옹주, 숙정 옹주, 소신 옹주, 숙녕 옹주, 숙경 옹주, 숙근 옹주

*선빈 안씨

의녕군, 소숙 옹주, 경신 옹주

*의빈 권씨

정혜 옹주

*소빈 노씨

숙혜 옹주

*숙의 최씨

희령군

*덕숙 옹주 이씨

후령군, 숙순 옹주

*고씨

혜령군

*김씨

숙안 옹주

세종의 형, 양녕 대군

양녕대군은 세종 대왕보다 세 살 위로

일찍이 세자로 책봉되었습니다.

차근차근 왕의 뒤를 이을 인물로 자라며, 태종 대신

중요한 일을 대신들과 의논해 결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인 태종은 유난히 셋째 아들인 충녕 대군(뒤의 세종 대왕)을

편애하였고, 양녕은 잦은 탈선으로 태종의 눈밖에 나죠.

'이제부터는 조금이라도 새사람이 되어

부왕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맹세문을 써서

태종의 노여움을 사기도 한 양녕은 결국 1418년 폐세자 되고,

충녕 대군이 세자로 책봉됩니다.

이후 태종은 세자를 왕위에 앉히고 자신은 상왕으로 물러나

4년간 인사와 군정과 관련된 권력을 쥐고 있었습니다

한국사를 배울 때 유난히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용어 때문이라고 생각돼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한자어로 된 개념이

아이들에게 한국사를 더 어렵게 느끼도록 한 거죠.

한국사법정에서는 이런 용어들을 바로바로 주석을 통해 설명해 주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막히는 부분 없이 바로 이해하며 읽을 수 있었어요.

또 지루하게 역사적 사실을 나열한 게 아니라

대화체로 되어있어서 역사를 생생하게 배울 수 있더라고요.

우리가 알고 있던 승자의 입장이 아닌 패자로 알려진 인물들의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어서 역사를 편견 없이 배우며

올바른 시각을 갖고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초등역사전집이에요.

재판이 끝날 때마다 나오는 휴정 인터뷰에서는

앞의 재판 내용을 요약해 정리해 주는데

요점정리가 잘 되어있어서 좋더라고요.


 

열려라 지식 창고에서는 본문에서 자세히 다루지 못한 얘기들을

다루고 있는데 [조선 왕비의 태교법],[조선 왕세자의 신부 간택 법],

[왕세자의 유모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와 같은 내용을 담아

배경지식을 쌓고, 조선시대의 궁정문화를 배울 수 있었어요.

양녕대군은 세종과 달리 무과쪽으로 좀 더 발달되었던 사람이었던 듯해요

하지만 태종 때 왕권을 강화하는 데 힘을 쏟았다면

다음대에는 나라를 안정시키고 자리 잡는데 힘을 쏟아야 하기에

그에 적합한 충녕이 왕위에 올랐다고 볼 수도 있을듯해요.

조선왕조는 첫째 아들이 왕위를 잇는 장자 세습이 원칙이었지만

왕자의 난을 통해 왕이 된 태종, 폐세자가 된 양녕이 있었기에

한국사 5000년을 대표하는 최고의 위인인 세종대왕이 탄생했고

자랑스러운 한글과 금속활자가 창제되었다고 볼 수 있겠더라고요.

 

교과서에서 다루고 있는 역사 이야기를 흥미롭게 배우고

핵심 내용을 정리하면서 교과 대비도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알찬 초등역사전집인듯해요.

이제 곧 중학생이 되며 한국사를 좀 더 깊이 있게 배우게 될 첫째 아이에게

도움이 많이 되는 전집이라 아이와 함께 저도 부지런히 읽어봐야겠어요.

l******2 2022.03.0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왜 양녕 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을까?
"왜 양녕 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을까?" 내용보기
태종 이방원과 그의 첫째 아들 양녕대군의 이야기를 다룬 책인 [왜 양녕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을까?] 태조, 정종, 태종을 거쳐 세종에 이르는 조선왕조의 시작에서 세종은 사실 첫째 아들이 아니었다. 셋째 아들인 세종이 왕이 되고 첫째 아들인 양녕대군이 왕이 되지 못했던 이야기를 이제부터 시작해보자.   자음과 모음의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은 역사를 법정이야기로
"왜 양녕 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을까?" 내용보기

태종 이방원과 그의 첫째 아들 양녕대군의 이야기를 다룬 책인

[왜 양녕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을까?]

태조, 정종, 태종을 거쳐 세종에 이르는 조선왕조의 시작에서

세종은 사실 첫째 아들이 아니었다.

셋째 아들인 세종이 왕이 되고 첫째 아들인 양녕대군이 왕이 되지 못했던 이야기를 이제부터 시작해보자.

 

자음과 모음의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은 역사를 법정이야기로 풀어내어 흥미로운 법정 공방을 통해
누구의 이야기가 더 타당성이 있는지를 스스로 생각해보게 만든다.
우리가 흔히 영화나 사극을 통해 역사이야기를 접하다 보면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인 적자와 서자
적자는 본부인인 정실이 낳은 아들이고 후궁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서자라고 한다.
한 인간의 태생이 너무나 중요했던 신분사회에서 내가 적자인가 서자인가는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중요한 것이다.
양녕대군은 서자도 아니었고 태종의 아내인 원경왕후 민씨에게서 태어났다. 원경왕후 민씨는 여러 번 아이를 잃은
아픔을 겪고 어렵게 낳은 양녕대군을 데리고 친정에서 양녕대군이 7살때까지 지내게 된다.
그러면서 양녕대군은 자연스레 아버지와의 교류가 없이 유년시절을 보내게 된다.
게다가 양녕대군은 무예에 재능이 있어 글공부를 게을리하게 되고 그런 양녕의 모습은 태종의 마음에 들지 않게 된다.

 
더욱이 충녕대군은 칠삭둥이로 태어나 더 깊은 보살핌을 필요로 했고 잘 자라게 된다.
태종은 역사서에서도 나오도록 충녕을 편애했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 있자니 양녕대군은 자신보다 더 능력있는 충녕대군의 그늘에 가려 살게 되고, 그러면서 양녕대군은
점점 더 왕세자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겸비하는 것이 아닌 그 반대의 삶을 살게 된다.
어리라는 기생을 사랑하게 된 양녕대군,
모든 걸 버리고 그녀를 선택했지만 결국 사랑은 이루지 못하고 불행으로 그 결말을 짓게 된 비운의 주인공이 된다.
 
태종은 아비보다는 왕으로서 조선을 위해 충녕대군을 선택하고, 양녕대군은 적자로서의 화려한 삶을
기구하게 마감하게 된다.
숨막히는 왕위쟁탈전은 승자와 패자가 공존한다.
한 명만이 선택되어야 하는 상황, 그러나 그 한 자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거니 불행은 언제나 숨어 있다가
기회만 보며 고개를 들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한 역사 속 이야기.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보면 양녕대군이 왕이 되었어도 세종대왕처럼 그렇게 멋진 왕이 될 수 있었을까..
선견지명이 있었던 태종의 혜안이 빛을 발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불현듯 드니 양녕대군에겐 미안하다.
c*********1 2014.01.2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왜 양녕 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을까?
"왜 양녕 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을까?" 내용보기
왜 양녕 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을까? 신명호 글 / 안희숙 그림 (주)자음과 모음 펴냄   1392년 지금으로부터 600년전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생겼습니다. 성리학을 따르는 신진 사대부와 백전백승으로 유명한 이성계 장군, 그리고 이성계 장군의 다섯번째 아들 태종 이방원이 협력하여 조선을 세웠습니다.   신진 사대부들은 당시의 고려 왕조가 너무 타락했
"왜 양녕 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을까?" 내용보기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왜 양녕 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을까?

신명호 글 / 안희숙 그림

(주)자음과 모음 펴냄

 

1392년 지금으로부터 600년전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생겼습니다.

성리학을 따르는 신진 사대부와 백전백승으로 유명한 이성계 장군, 그리고 이성계 장군의

다섯번째 아들 태종 이방원이 협력하여 조선을 세웠습니다.

 

신진 사대부들은 당시의 고려 왕조가 너무 타락했다고 생각했지요.

당시 고려의 국가 권력을 장악했던 권문세족들은 부정부패했고, 고려의 가장 중요한 종교인

불교 역시 타락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고려 말의 권문세족들은 원나라에 빌붙어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불교는 천년이 넘도록 왕실의 보호를 받아 오면서 본래의 정신을 잃어 갔습니다.

그래서 신진사대부들은 성리학을 이용해 새로운 나라를 만들게 되었답니다.

 

새로운 나라의 이름을 조선이라 불렀는데요 단군왕검의 정신과 전통을 이어받아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다짐에서 조선이라고 한것입니다.

이렇게 성리학을 기초로 하여 건국된 조선은 태조, 정종, 태종을 거쳐 세종 대왕 대에

이르러 유교문화를 꽃피우게 됩니다.

 

조선 4대 임금 다들 아시죠? 세종 대왕은 국토를 확장하고 집현전을 통해 인재양성.

그리고 길이 길이 남을 한글을 편찬하셨습니다.

그런데 3대왕 태종이나 그의 아들 세종은 모두 왕이 될수 없었습니다.

첫째 아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섯째 아들 태종 이방원도 셋째 아들 세종대왕도 왕이 되었습니다.

세종대왕의 큰 형 양녕대군은 세자 자리에서 쫓겨났습니다.

 

양녕대군은 불량세자 였을까요?

아버지는 세종인 충녕대군을 어려서부터 더 이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세종대왕이 훌륭하게 많은 업적을 남기셨지만 양녕대군에 대한

억울함은 풀고 싶어졌습니다.

 

태종 이방원의 권력을 위한 전진...

그러나..그 뒤엔 많은 것을 잃었다고 합니다

뒤늦게 후회하는 태종을 보면서 가슴아파서 혼났네요..

 

양녕대군도 이젠 이해해주시겠죠???

 

YES마니아 : 로얄 y*****0 2013.10.3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왜 양녕 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을까?
"왜 양녕 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을까?" 내용보기
아버지의 왕위를 잇는 장자 세습을 따르고 있던 조선 왕조에서 왕자의 난으로 태종 이방원은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태종의 맏아들 양녕 대군도 폐세자 되었고,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양녕 대군이 왕위에 올랐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양녕 대군에게 가했던 폐세자 조치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기로 합니
"왜 양녕 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을까?" 내용보기

 

아버지의 왕위를 잇는 장자 세습을 따르고 있던 조선 왕조에서 왕자의 난으로 태종 이방원은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태종의 맏아들 양녕 대군도 폐세자 되었고,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양녕 대군이 왕위에 올랐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양녕 대군에게 가했던 폐세자 조치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기로 합니다.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에서 '왜 양녕 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을까?'로 읽어보면서 조선 초기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양녕 대군은 태종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 상처 때문에 반항아이자 비행 청소년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아버지인 태종이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저버리고 가정을 돌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태종은 자신의 잘못을 외면한 채 양녕 대군을 문제아이자 불량 세자로 몰아세우고 세자의 자리에서 내쫓았습니다. 조선 왕조 시대에 왕위 계승권자인 왕세자는 왕과 왕비에서 태어난 맏아들이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조선 왕조 27명의 임금 중 적장자가 왕위를 계승했던것은 8명 뿐이였다고 합니다. 조선 왕실의 규범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여기에서 왕을 둘러싼 권력 다툼이 많이 있었다는것을 알수 있는 부분입니다.

 

 

태종이 나쁜 아버지이자 무책임한 가장이였는지, 양녕대군은 문제아이자 불량 세자였는지, 양녕대군은 임금의 자질이 부족했는지,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에서 증인들의 증언과 양녕 대군과 태종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태종이 양녕대군을 사랑해 주었다면 양녕대군은 비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양녕 대군의 이야기, 조선의 기틀을 잡기 위해 양녕 대군을 폐위했다고 주장하는 태종의 이야기, 충녕을 바라보는 태종의 눈빛은 정말 부드러웠을까요? 공부와 학문이 월등했던 충녕대군이 양녕을 대신해서 세자가 되었으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글을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동생에게 왕세자의 자리를 넘겨준 양녕 대군의 숨겨진 이야기를 알아보았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 된다고 좋은것만 있었을까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k*****7 2013.06.2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23. 왜 양녕 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을까?
"23. 왜 양녕 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을까?" 내용보기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23호 법정. [왜 양녕 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을까?]편, 똑똑한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주기위해 별짓을 다한 양녕대군이 무엇이 억울하다고 자신의 아버지 태종에게 소송을 걸었을까? 그동안 수많은 재판을 지켜보았고 재판을 지켜보면서 나 스스로가 판사가 되어 판결을 내리기도 해봤다. 많은 재판중 자신의 부친을 법정에 세운 사람이 있었던가? 그런 면
"23. 왜 양녕 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을까?" 내용보기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23호 법정. [왜 양녕 대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을까?]편, 똑똑한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주기위해 별짓을 다한 양녕대군이 무엇이 억울하다고 자신의 아버지 태종에게 소송을 걸었을까? 그동안 수많은 재판을 지켜보았고 재판을 지켜보면서 나 스스로가 판사가 되어 판결을 내리기도 해봤다. 많은 재판중 자신의 부친을 법정에 세운 사람이 있었던가? 그런 면에서 양녕대군은 특이했다. 왜 양녕대군은 부친인 태종을 영혼 법정에 세워야만 했을까? 우리가 알고 잇는 사실은 양녕대군이 동생 충녕대군을 위해 왕위를 양보했다고 알고있는데,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양녕대군이 불량세자가 된 원인에는 태종이 있었다? 무척이나 가혹한 태종의 태도가 양녕대군을 불량세자로 만든 것이라고 양녕대군은 말한다. 하지만 태종의 주장은 자신은 나라일에 애쓰느라 가정일에 소홀할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내 생각에는 양녕대군이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난 이유가 무엇이든 세자의 규칙을 어기고 왕으로서도 적합하지 않으니 양녕대군을 세자의 자리에서 몰아내고 총명한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종한 것 같다. 양녕대군은 학문보다 무예로 뛰어나니 양녕대군이 왕위에 올라 무예보다 학문쪽으로 뛰어난 충녕대군이 옆에서 도와주는 것도 좋은 방법일것 같다. (문제는 양녕대군이 충녕대군이 하는 충고를 잔소리로 들을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런데 태종은 왜 안된다고만 했을까? 양녕대군은 충녕대군만큼은 아니지만 왕세자로서 손색이 없을만큼 학문쪽으로도 그럭저럭 잘하는 편이었다. (만약 조선의 왕들 중 과거시험을 치뤄 자격을 논한다면 합격할 임금이 얼마나 될까 궁금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똑똑한 동생 충녕대군과 비교를 당해야만 했다. 내 생각에는 그것때문에 충녕대군을 더 싫어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제 세워진지 얼마안되는 조선 입장에서는 쫗은 왕, 출중한 왕을 늘 원해왔다. 하지만 양녕대군은 조선이 원하는 왕의 조건에는 어긋나나 고구려의 왕이라면 딱 적당할 것 같다.



[판결문]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은 원고 양녕대군이 태종을 상대로 제기한  제기한 폐세자 처분 취소 청구를 기각한다. 

[내 판결문] 1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은 피고 태종이 원고 양녕대군에게 정신적 피해를 준것을 인정하며 그에 따른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아버지와 아들이 화해하는 시간을 갖도록 한다. 또  앞으로의 역사학자들은 양녕대군에 대해 옳바르게 판단하길 바란다. 그렇지만 국왕의 자리는 개인이 아닌 모든 백성들의 어버이의 자리로서 태종이 양녕대군이 아닌 충녕대군을 올린것도 옳바른 판단이라고 인정해야 함이다.



s*******1 2011.06.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