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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책보다 어린이 책을 쓰는 것이 더 어렵다-'왜 연산군은 폭군이 되었을까?'
"어른 책보다 어린이 책을 쓰는 것이 더 어렵다-'왜 연산군은 폭군이 되었을까?'" 내용보기
나도 궁금했던 물음이다. 왜 연산군은 폭군이 되었을까? 왕의 적자로 보위에 올랐던 연산군은 어린 시절부터 왕 수업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명민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결함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조선왕조 전무후무한 폭군이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실정은 했지만 과도하게 폄하된 것이었을까. 모후인 폐비 윤씨가 사사당한 것을 알고 난 뒤에 받은 충격때문이었을까. 부왕인
"어른 책보다 어린이 책을 쓰는 것이 더 어렵다-'왜 연산군은 폭군이 되었을까?'" 내용보기

나도 궁금했던 물음이다. 왜 연산군은 폭군이 되었을까? 왕의 적자로 보위에 올랐던 연산군은 어린 시절부터 왕 수업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명민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결함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조선왕조 전무후무한 폭군이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실정은 했지만 과도하게 폄하된 것이었을까. 모후인 폐비 윤씨가 사사당한 것을 알고 난 뒤에 받은 충격때문이었을까. 부왕인 성종에 반발해서였을까. 아니면 신권이 지나치게 발호하자 왕권을 강화하려다 실정한 것일까.



 이 책은 연산군이 원고가 돼, 중종 반정의 주역인 박원종에게 반정이 아니라 국가변란을 도모했다는 혐의로 피고로 법정에 세우는 가상 재판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형사재판이 아닌 것인지  판사는 있지만 검사는 없었다.

원고, 피고 각각 변호사를 세우고 있고, 이외에 재판을 청구한 원고 연산군은 정승이었던 노사신과 김종직의 '조의 제문'을  고변한 유자광과 1인의 가상인물을 자신의 입장을 옹호해줄 증인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에 맞선 피고 박원종은 증인으로 자신과 함께 중종반정을 도모한 성희안과 '조의제문'을 사초에 적어 무참하게 죽었던 사관 김일손과 1인의 가상인물을 증인으로 내세우고 있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만 하더라도 역사하면 임금 이름과 사건, 인물, 연도를 외우는 쪽으로 공부를 했던 것 같은데, 요즘 아이들 역사 책을 보면 다양한 기획도 기획이지만 그렇게 단편적으로 왕조, 사건 중심으로 전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역사를 폭 넓게 바라볼 수 있게 하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다.

이 책만 해도 시작하기 전에 사림과 훈구파에 대한 대립점과 쟁점을 요약해 놓았고, 조선건국에서부터 16세기까지 주요한 사건을 세계사, 한국사 연표를 나란히 싣고 있다.당시의 조선과 세계사의 흐름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제공해줌으로써  단편적인 연도나 사건에 매몰되지 않게 정보를 제공해주는 걸로 받아들였다.

 


법정에서는 크게 세가지 쟁점을 놓고 피고와 원고가 논박을 벌였다. 1.연산군의 왕의 자격 2. 왜 연산군이 무오사화를 일으켰는지 3. 연산군은 악인이었던 것인지 미쳤던 것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반정과 정난에 대한 개념 정리를 명확하게 한 것이었다. 조선 역사에서 난과 반정을 통해 보위에 오른 네 명의 왕과  반정과 정난을 거론하면서 집권의 '정통성'문제나 사후에 역사적 평가가 따른다는 것을 인식하게 한 것은 아주 적절했다. 어린이들이 역사의 역할이 무엇인지, 역사의 엄중한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러면서 역사인식을 갖는 것에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좀 혼란스러웠던 점이 있었다. 어려운 낱말의 뜻 풀이를 해놓은 것을 보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겨냥한 책이 분명한데, 거론하고 있는 내용들은 중학교, 고등학교 교과서 안의 내용이라 내용과 대상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할까.



거기에 재판 과정에서 쟁점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고 있어서, 기획의도가 제대로 살지 못한 느낌이었다. 

왕권과 신권, 훈구파와 사림파등 조선의 통치 시스템이나 지배층의 흐름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가 선행돼야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인데다 폐비 윤씨, 성종의 정치, 연산군의 실정, ,무오사화,갑자사화, 중종반정 등 일련의 사건에 대해서도 전후사정과 맥락을 알고 있어야 재판 내용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독자층의 연령을 감안한 때 전체적으로 짚어볼 내용들이 많아서 복잡해보였고, 독자층보다 내용이 앞서간 것은 아닌지 염려스러웠다.


요즘 인문학의 중요성과 함께 역사교육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분명 유의미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선행교육의 일환으로 내용이 다뤄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 생각이 기우이기를 바란다.

보통 어른 대상보다 어린이용 책을 쓰는 것이 더 어렵다고들 한다. 어린이들 눈높이를 감안해서 여러가지 심사숙고해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어휘력이나 기초지식이나, 세계관 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어린이인만큼 표현면에서 잘 전달될 수 있게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이고, 무엇을 어떤 관점에서 다뤄야할지, 어떤 생각거리를 던져줄 것인지 여러 면에서 섬세한 점검이 필요한 것이다.

 

e****0 2014.06.11. 신고 공감 5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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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연산군은 폭군이 되었을까?
"왜 연산군은 폭군이 되었을까?" 내용보기
백성에게 배고픈 기색이 있음을 깊이 걱정하고 윗사람을 업신여기는 풍속을 통한해 하네. 때때로 생각하는 것은 그 진실한 충성을 보려 함이며 매일같이 생각하는 것은 거짓된 충성을 막으려 함이로다. (1500년, 연산군 6년에 쓴 시)   하루 한권의 책을 읽고 독서록 쓰기, 엄마와의 약속이자 나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시리즈 [왜 연산군은 폭군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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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에게 배고픈 기색이 있음을 깊이 걱정하고 윗사람을 업신여기는 풍속을 통한해 하네. 
때때로 생각하는 것은 그 진실한 충성을 보려 함이며 매일같이 생각하는 것은 거짓된 충성을 막으려 함이로다. (1500년, 연산군 6년에 쓴 시)

   

하루 한권의 책을 읽고 독서록 쓰기, 엄마와의 약속이자 나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시리즈 [왜 연산군은 폭군이 되었을까?] 바로 이 책을 오늘 읽을 책으로 선택했다. 책머리에 연산군이 폭군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왜 폭군이 될수밖에 없었는지를 알려준다.  태어나면서부터 왕의 계승자로 태어났고 순조롭게 왕위를 승계한 연산군에게 있어 한가지 문제는 어머니(생모)가 폐비윤씨라는 것과 왕세자의 어머니를 폐비시키는데 일조한  조정중신들에게 있어 연산군이란 존재 그 자체는 부담이 아니었을까? 

더욱이 왕위를 계승할수 있는 또 다른 정통 계승자가 존재함에야 그들은 더 편한 쪽을 택하고 싶었을 것은 당연지사. 그런 그들이 주도한 중종반정이 성공했고, 연산군을 폐위시킨 원인을 백성들과 후대에 설명시키자면 가장 편한 방법이 바로 폭군(暴君), 폭정(暴政)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만약 연산군이 그토록 패악무도한 인물이라면 강력한 왕권도전자인 동생(진성대군)을 살려주었을리 만무, 연산군이 피붙이 형제들을 죽였다지만 그들 안양군 이항과 봉안군 이봉은 그들의 생모이자 성종의 후궁인 엄씨와 정씨가 폐비 윤씨의 사사에 관련된 탓이라고 본다. 부왕인 조선 제 9대 임금인 성종은 정비 3명과 후궁 12명 등 총 15명의 부인을 두었으며 그외에도 많은 여인들을 거느렸고 그 사이에서 수많은 자식들이 태어났다. 

   

연산군은 폭군일까? 엄마의 말로는 연산군이 폭군이 아닐수도 있다는데,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만약 연산군을 쫓아낸 무리들이 연산군에 대해 기록을 조작했다면 연산군은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물론 연산군이 성군이란 소리도 아니다. 절대권력자의 자리에 있던 왕이 쫓겨났을때는 그 나름대로의 잘못이 있었던 것일테고, 연산군이 잘못한 일도 분명하게 보여지고 있다. 역사는 어느 한쪽의 눈으로 보지않고 중도의 입장에서 살펴봐야 한다는게 엄마의 말이었다. 중도의 입장이라~~~.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연산군을 폭군이라고 말하는데, 답(판결)이 나오기전까지는 누구의 편도 들어줄수 없다. 조선의 왕 중 내가 알고 있는 왕은 얼마나 될까? 태조, 태종, 세종, 연산군, 중종, 단종, 세조, 이렇게 7명이다. 어 그러고 보니 내가 예전에 좋아하는 수만큼이네, 지금 좋아하는 숫자는 3이다. 자꾸 이야기가 샛길로 빠지려나, 폭군(暴君), 폭정(暴政)이 연산군과 관련된 단어로 고정되었다. 양파처럼 풀기 힌든 연산군에 관한 진실을 내가 밝혀보려고 한다. 그런데 하필 많은 사람들을 놔두고 박원종이라는 사람에게 소송을 걸었을까?

그 이유는 박원종이라는 사람이 폭군이라는 연산군을 비난하는 글을 썼기때문이다. 글 내용이 어떻기에 소송까지 당했는지 살펴볼까? 연산군은 성품이 포악하고 의심하기를 좋아했으며, 정치를 가혹하게 하였다. 주색에 빠져 종묘사직의 제사를 없애고, 쫓겨난 어미를 추숭(追崇)하면서 대신들을 많이 죽였으며, 신하들이 간하는 것을 듣기 싫어하여 언관들을 즉이거나 귀양보냈고, 서모(庶母)를 대려죽이고, 여러 아우들을 내쫓았다. (29쪽)  이 폭군론만 읽어보면 연산군이 진짜 폭군같지만 박원종이 괜히 생트집을 잡았을 가능성도 있어 나는 잠자코 있었다. 연산군때 일어난 사화는 2개로 무오사화, 갑자사화이다. 이것으로 연산군이 폭군이라 말할수 있을까? 


   

[판결문]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은 연산군이 박원종을 상대로 한 ’박원종의 국가변란 및 연산군에 대한 명예훼손’에 의한 정신적 손해 배상 및 사과 청구를 기각한다. 

[내가 지은 판결문]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은 박원종이 연산군을 너무 폭군 또는 제 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몰고 간 것을 인정하며 박원종에게 심리적 피해보상을 요구한다. 다만 연산군도 왕으로서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일부 인정한다.



s*******1 2011.06.15. 신고 공감 3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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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은 폭군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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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화국 / 한국사법정 / 왜 연산군은 폭군이 되었을까? / 자음과모음   (중1 연우의 글)   조선에 수많은 왕들이 존재했음에도 조선의 왕 중에서 가장 폭군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고르라고 하면 대부분 연산군을 고른다. 두 차례의 사화를 일으키고, 백성들을 괴롭혔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비슷하게 강등된 광해군에 대해서는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상하게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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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화국 / 한국사법정 / 왜 연산군은 폭군이 되었을까? / 자음과모음

 

(1 연우의 글)

 

조선에 수많은 왕들이 존재했음에도 조선의 왕 중에서 가장 폭군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고르라고 하면 대부분 연산군을 고른다. 두 차례의 사화를 일으키고, 백성들을 괴롭혔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비슷하게 강등된 광해군에 대해서는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상하게 연산군에 대한 평가는 한결같다. ‘폭군

 

연산군은 그것이 억울했다. 자신에게 기어오르려는 신하들을 조금 누르고, 어머니의 원수를 갚았을 뿐인데 사람들은 자신을 미친 왕으로 생각한다는 게 황당하다는 것이다. 재판을 통해 연산군은 자신의 억울함을 풀었을까? 불행히도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결정적인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원고 측은 기존에 있었던 역사 자료를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는 방향으로 재판을 진행했다. 그런 방식으로 연산군이 폭군에서 벗어난다면 백제의 유물 칠지도 역시 일본의 것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다만, 연산군의 악행이 부풀려진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 시대 첫 사화로 기록되는 무오사화는 정작 사형을 당한 인물이 7명이라고 한다. 물론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것은 연산군의 잘못이 맞다. 그렇지만 7명을 죽이고 관계되어 처벌된 사람이 40명이라고 해서 이것을 사화라고 보고 연산군을 폭군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올바른 판단이 아니다.

 

연산군이 말년에 미친 인간처럼 행동했던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때의 연산군과 그 전의 연산군을 구분시켜 판단해야 한다. 말년의 연산군을 연산군의 전체 모습으로 확대시켜 판단하면 안 된다. 일부를 전체로 판단하는 사고방식이 옳다면 어째서 재위 말기에 폭행을 일삼은 광종은 성군으로 분류되기도 하는 것일까.

 

연산군은 분명 폭군이 맞다. 그러나 세상이 알고 있는 그의 행적은 훨씬 부풀려졌다. 사람들이 그의 행동을 과장과 왜곡 없이 바라봐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h******2 2014.08.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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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연산군은 폭군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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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에는 크게 네차례의 비 정상적인 집권이 있는데 태조 이방원과 수양대군, 광해군 마지막으로 연산군이 있어요 그중 제가 읽은 이 책의 주인공은 연산군이랍니다. 연산군은 성종 임금의 큰아들로 신하들에 의해 쫒겨났으며 역사적으로도 폭군이라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고있지요   하지만 태어날때부터 임금이 되기로정해진 조선의 왕은 단 2명, 단종과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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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에는 크게 네차례의 비 정상적인 집권이 있는데 태조 이방원과 수양대군, 광해군 마지막으로 연산군이 있어요

그중 제가 읽은 이 책의 주인공은 연산군이랍니다.

연산군은 성종 임금의 큰아들로 신하들에 의해 쫒겨났으며 역사적으로도 폭군이라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고있지요

 

하지만 태어날때부터 임금이 되기로정해진 조선의 왕은 단 2명, 단종과 연산군뿐이었는데 그중 연산군은 성을 갖춘 임금으로 왕위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나 연산군의 신하였던 박원종과 그 무리들이 반정을 으키고 자신들이 그릇된 처사를 정당하게 하기 위해 연산군을 폭군으로 묘사하여 역사속에 세겼다고도 몇몇학자들에 의해 재해석되는 부분이 있지요

 

이런 관점에서 법정공방을 벌이게 되는 연산군과  반정을 일으킨 박원종 세력간의 대립된 의견진술

법정공방을 통해 연산군이 왕위에 있을때 왕권을 강화하기 또 백성을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말년에는 비정상적인 통치를 하여 신하들에의해 폐위되는 과정까지 단숨에 읽어내릴만큼 재미있는 책이랍니다.

 

비록 연산군이 폭군의 이미지를 벗어낼수는 없지만 그래도 연산군을 다시한번 생각해 보는 책을 읽는 동안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d********n 2014.07.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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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연산군은 폭군이 되었을까?』-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28
"『왜 연산군은 폭군이 되었을까?』-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28" 내용보기
500년 조선 왕실에는 비정상적 집권이 네 차례 있었다.  태종 이방원이 태조 이성계를 끌어내리고 왕위를 차지한 '왕자의 난', 수양 대군이 조카 단종을 내쫓아 죽이고 왕위에 오른 '계유정난'과 신하들에 의해 연산군이 왕위에서 쫓겨나고 중종이 왕위에 오른 '중조반정' 그리고 서인들이 광해군을 내쫓고 인조를 추대한 '인조반정'이 있다.  이중 태종과 세조는 논란의 여
"『왜 연산군은 폭군이 되었을까?』-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28" 내용보기

  500년 조선 왕실에는 비정상적 집권이 네 차례 있었다.  태종 이방원이 태조 이성계를 끌어내리고 왕위를 차지한 '왕자의 난', 수양 대군이 조카 단종을 내쫓아 죽이고 왕위에 오른 '계유정난'과 신하들에 의해 연산군이 왕위에서 쫓겨나고 중종이 왕위에 오른 '중조반정' 그리고 서인들이 광해군을 내쫓고 인조를 추대한 '인조반정'이 있다.  이중 태종과 세조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비판의 대상이고, 광해군의 경우는 '외교의 달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재평가가 되고 있다.  하지만 연산군은 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폭군이라는 비난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영상물 속에서도 연산군은 폭군이었고 광군이었다. 몇해전에 본 <왕의 남자>라는 영화에서는 할 수 있는 모든 악행을 저지르는 인물처럼 보여지기도 했다.  그만큼 연산군에 대한 이미지는 폭군과 광군의 대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산군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조선왕조 500년 역사의 27대 임금 중 태어날 때부터 임금으로 예정돼어 있던 사람은 많지 않다.  태조에서 연산군까지 아홉 명의 임금만 보더라도 원자에서 임금까지 된 인물은 단종에 이어 연산군이 두 번째 인물이었다.  원자로 나서 세자가 되었다가 정상적으로 왕위에 오른다는 것은 그 만큼 힘들었다는 이야기다.  연산군은 그만큼 임금으로서의 정통성에는 하자가 없었다. 단 한가지 어머니 폐비 윤씨의 문제를 제외하면 말이다.  <연산군일기>를 통해서 만나게 되는 연산군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일까?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의 28번째 사건은 폭군이 될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느 연산군과 연산군을 몰아낸 박원종에 이야기이다.  

 

  우리가 '명백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조선왕조 실록이다. 문제는 <연산군일기>와 <중종실록>에서 연산군에 관한 기록이 그다지 신빙성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실록의 모든 내용을 부정할수는 없지만, 이 두 실록이 어쩔 수 없이 '연산군'에 관해서만은 심한 과장과 왜곡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은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지만, 국왕의 잘잘못을을 따지던 사관들도 왕이 바뀌는 혼란스런 상황을 기록할 때는 무너진 왕조나 쫓겨난 임금에 대해 가혹할 정도의 비판을 가해 왔다는 사실은 어찌보면 인지상정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기록들이 그렇다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말이다. 연산군이 쫓겨난 1506년 9월 2일, 박원종을 비롯한 주도 세력들은 연산군이 쫓겨났어야 하는 '죄목'을 다음과 같이 열거했다.

 

 

    연산군은 성품이 포악하고 의심하기를 좋아하였으며, 정치를 가혹하게 하였다.  주색에 빠져 종묘

  사직의 제사를 없애고, 쫓겨난 어미를 추숭하면서 대신드을 많이 죽였으며, 신하들이 간하는 것을 듣 

  기 싫어하여 언관들을 죽이거나 귀양 보냈고, 서모를 때려죽이고, 여러 아우들을 내쫓았다.  

 

 

  연산군은 12년 정도 왕위에 있었다.  그 중 3분의 2, 즉 8년 동안은 평범하거나 왕권 강화를 위해, 그리고 국방력 강화를 위해 애쓴 임금으로 <연산군일기>에서는 묘사되고 있다.  연산군을 '폭군'이나 '광군'이라고 말하는 것은 재위 말기에 이야기이다.  <연산군일기>에는 연산군이 경복궁내 경희루 앞의 연못에 만세, 영충, 진사라는 세계의 섬을 쌓아놓고 온갖 종류의 꽃과 희귀한 풀들을 심은 다음, 백성의 배를 빼앗아 타고 놀았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이는 과장된 이야기다.  경회루 앞 작은 연못은 베르사유 궁의 후원에 있는 연못이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연산군이 '왕권 강화는 정의이고, 신권 강와는 불의'라고 여겼던 것도 사실인것 같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의 사대사화 중 2개의 사화가 연산군 시절에 일어났다. '무오사화'와 '갑자사화'.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김을손이 사초에 쓴것을 보고 사림세력이 화를 입게 된 '무오사화'와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의 죽음에 관련된 인물들에게 광기를 드런낸 것이 '갑자사화'이다. '무오사화'의 경우에는 조선 사화중에서 가장 적은 인명피해가 있었지만 '갑자사화'는 역사적 자료에 따르면 100명이 죽고, 22명이 부관참시를 당하고 106명이 유배를 갔다고 되어있다. 사화는 신하들에게 국한된 일이기 때문에 궁궐의 이야기를 알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정통성있는 왕에 폐위는 어려웠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점차 폭정이 심각해지고 일반 백성까지 피해를 당하면서 급속하게 여론이 조성되었고 1506년에 연산군은 폐위된다.  폐위 후 강화도 교동에 유배된 연산군은 두달 후 역질에 거려 세상을 떠나게 된다.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28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왜 연산군은 폭군이 되었을까?>이지만 연사군을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시대의 역사를 알고자 이 문제가 제기 되었을 것이다.  분명 '무호사화'는 훈구파 세력들의 입김이 연산군에게 가해졌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광군'이었던 연산군에게 '김처선'같이 죽음을 무릎쓰고 간언을 했던 이들이 너무나 적었던 것이 문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도 용기내어 말하지 않고, 임금의 귀를 막아버리는 건 결국 위정자의 모든것을 끊어버리는 길이니 말이다.  연산군같이 매력적인 이야기 소재는 드물기에 끊임없이 연산군에 대한 이야기는 책으로 드라마와 영화로 나올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을 읽고 보면서 우리는 연산군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의 주변 인물들도 관심을 가져야 할것이다.

 

 



 
d****2 2014.06.30. 신고 공감 0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