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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볼 수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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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종실록에서부터 철종실록까지 471년간의 역사적 사실을 왕 별로 기록한 책으로, 1997년 10월에 유네스코 세계 기록 문화유산으로 등록되기도 하였습니다. 태종이 말에서 떨어진 사실은 물론, 그것을 기록하지 못하게 하라는 말까지 기록했다고 하는 태종실록. 태종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하늘과 사관뿐이다"라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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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종실록에서부터 철종실록까지 471년간의 역사적 사실을 왕 별로 기록한 책으로, 1997년 10월에 유네스코 세계 기록 문화유산으로 등록되기도 하였습니다. 태종이 말에서 떨어진 사실은 물론, 그것을 기록하지 못하게 하라는 말까지 기록했다고 하는 태종실록. 태종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하늘과 사관뿐이다"라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조선왕조실록은 기록이 왜곡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서 왕이라도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임금의 곁에서 자신이 보고 들은 바를 거짓 없이 기록하며, 올바른 시대정신을 갖고 비평을 했던 사람인 사관이 얼마나 중요한 자리에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김종직은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를 승계한 세조의 행위를 유교적 명분에 어긋나는 찬탈이라고 한 '조의제문' 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당시 사관이었던 김일손이 '조의제문'을 사초에 실었습니다. 유자광 중심의 훈구파가 이를 트집 잡아 김종직 중심의 사림파를 죽이고 귀양 보낸 사건인 무오사화를 일으켜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무고한 선비들에게 화를 입혔다고 비난을 받고 있는 유자광이 한국사법정에서 당시 김일손 등 사림파 학자들이 저지른 잘못을 낱낱히 밝혀 역사를 바로잡고자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사관이 역사를 기록했던 조선왕조실록이 어떤 책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무오사화가 왜 일어났는지, 연산군 때도 이어진 사림파의 현실 비판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보기도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이 세계 기록 문화유산이 되었는지도 더 자세하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열려라, 지식창고와 휴정 인터뷰, 교과서 안 역사 vs 교과서 밖 역사에서는 역사를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선 시대 간신배로 널리 알려진 유자광이 누명을 썼다고 주장을 하지만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에서 그 누명을 벗을 수 있을까요? 법정에서 많은 증인들의 이야기와 함께 법정에서 펼쳐지는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접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k*****7 2013.07.2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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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볼 수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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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볼 수 없었을까?] 사림파 Vs 훈구파 이번 법정엔 유자광과 김일손이 원고와 피고의 자격으로 재판정에 나섰다. 참 이해가 안되는 제목이었다. 뭐가 어쨌다고? 조선왕조실록은 쉽게 말해서 조선왕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런데 책이 왕이 되나? 실록을 아시나요? 실록은 왕의 사후, 왕의 생전 업적을 글로 남기는 것으로 이야기를 글로 쓰는 사람이 사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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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볼 수 없었을까?] 사림파 Vs 훈구파 이번 법정엔 유자광과 김일손이 원고와 피고의 자격으로 재판정에 나섰다. 참 이해가 안되는 제목이었다. 뭐가 어쨌다고? 조선왕조실록은 쉽게 말해서 조선왕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런데 책이 왕이 되나? 실록을 아시나요? 실록은 왕의 사후, 왕의 생전 업적을 글로 남기는 것으로 이야기를 글로 쓰는 사람이 사관이다. 임금도 사관을 함부로 대할수 없다고 하니 사관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것 같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있다. 왜 자꾸 무슨 파와 무슨 파로 나누어지는지 모르겠다. 

예를 들어 고려 초기(?)에 생긴 서경파와 개성파처럼 말이다. 그렇게 나뉘어진 파는 자기 세력을 더 키워나가려고 한다. 권력다툼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왜 자꾸 파를 나누는지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다. 원고 유자광과 피고 김일손, 그런데 여기서 잠깐 원고 이름이 특이하게 생겼다. 유자차가 떠오르는 이름이다. (아유~ 이야기가 자꾸 샛길로 새려나) 정확히 말해선 실록 이전은 사초라고 부르는 중요한 문서로 그 사초를 사관이 쓴다는 것이다. 사관도 한번 쓴 사초의 내용을 뜯어고치거나 할수 없으니 사초가 조선시대에서 제일 중요한 것으로 보여졌다. 

그럼 역사가 왜곡된 점이 있으면 사초에다 따져야지.(그래서 수정실록이 있는 것 아니냐고~) 원고 피고 다 문제점 투성이니 누구편도 못들고 제3자의 입장에서 보게 되었다. 현재 학교 사회시간에 배우고 있는 부분은 고려, 사회책을 훑어봐도 공을 세운 사람이나 난을 일으킨 사람, 한 나라를 세운 사람만이 눈에 잘 들어온다. 하지만 그런 일만 있었을까? 앞의 말처럼 파와 파가 나뉘어지면 파의 탄생에 꼬리라도 되듯 갈등이 따라온다. (어휴~그 갈등은 누가 처리하지! 내가 처리할까?)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다고 파를 나누고 그 상대파를 죽음으로 몰아넣기도 하는 것이 정치인가보다. 조선왕조실록은 왠지 속 깊은 우물 같아 정확히 알기란 쉽지않다. 

어느새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을 지켜본지도 29회가 되었다. 그로인해 난 역사법정의 반전문가 수준이 되었고, 역사를 더 재미나게 관찰하며 공부하게 되었다. 역사가 재미없다고? 이 책을 읽어보고 그런 소리를 하시라는 말로 이 책의 재미를 말해주련다. 각자 억울한 점을 한가지씩 가지고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을 찾아오는 동안 나는 구경꾼이 되기도 하고, 판사가 되어 판결을 내려보기도 했다. 진자 판결문은 내가 쓴 판결문과 무엇이 다를까? 에구야, 내가 쓴 판결문이 더 복잡하네. 이거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을 왜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애고~ 헤갈려~~~. 연산군시절에 대해 쓰여졌다는 연산군일기는 어떤 내용이 주를 이루는지 보고싶다.

[판결문]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은 유자광이 김일손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 훼손에 대한 손해 배상 청구를 기각한다.

[내가 지은 판결문]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은 유자광이 사림파를 없애기 위해 김일손을 깍아내린 것을 인정하니 본 법정은 원고 유자광의 손을 들어줄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했다. 고로 유자광이 김일손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 훼손에 대한 손해 배상 청구를 기각한다.



s*******1 2011.06.17. 신고 공감 2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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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볼수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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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속 역사 이야기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29 왜 조선왕조 실록은 왕이 볼수 없었을까? 유자광/김일손 훈구파의 유자광과  사림파의 김일손이 피고와 원고가 되어 한국사 법정에 서게되면서 한국사 법정은 시작된다. 조선왕조실록은 ​사관에 의해 쓰여진다. 사관이란 임금의 곁에서 자신이 보고 들은 바를 거짓없이 기록하며 올바른 사대 정신을 갖고 비평을 했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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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속 역사 이야기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29

왜 조선왕조 실록은 왕이 볼수 없었을까?
유자광/김일손
훈구파의 유자광과  사림파의 김일손이 피고와 원고가 되어 한국사 법정에 서게되면서 한국사 법정은 시작된다.
조선왕조실록은 ​사관에 의해 쓰여진다.
사관이란 임금의 곁에서 자신이 보고 들은 바를 거짓없이 기록하며 올바른 사대 정신을 갖고 비평을 했던 사람이다.
사관이 가지고 다니며 기록했던 책이 바로 사초인데 김일손이 적은 사초에 이극돈과 유자광이 나쁘게 적혀있어
사초에 적은 내용을 지워달라는 유자광의 부탁을 물리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럼 조선왕조실록은 어떻게 기록되는가..
조선왕조실록은  공정성과 객관성을 가지고 엄격한 규율에 의해 작성된 왕의 실록이다.
왕의 실록은 왕의 사후에 기록되며 임금은 어떤 경우에도 열람을 할수 없던 책이다.
사관들의 의해 기록 되었으며 사소한 사항까지도 가짓없이 기록 되어 조선시대사 연구에 근본자료가 된
우리문화 유산의 중요한 자료이다.
그래서 사실성과 역사가 뚜렷하기때문에 세계기록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든다.
조선왕조는 왕의 권력이 절대적으로 강한 나라였으며 왕과 신하가 만날때는 사관을 꼭 투입했다고 한다.
밀실정치,음모정치를 피하기 위해서였고 사관이 쓴 사초는 기밀유지를 위해 임금도 보지 못하게​ 만전을 기했다고 한다.오늘날 신문기자와 같았던 사관의 붓이 비뚤어질것을 우려해서 였다고 한다.
나라를 위해 사초의 내용을 연산군에게 알릴수밖에 없었다는 유자광과 목에 칼이 들어와도 사관의 직필과 비판정신을 지키겠다는 김일손...​ 원고와 피고에게 판사는 유자광이 사림파를없애기위해 김일손을 깎아내린것은 인정하나 유자광의 손을 들어줄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한다라는 판결을  내린다.
역사속 라이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재판을 벌이는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은 세상을 지헤롭게 바라볼수있는 
힘을 길러주는것 같다.  ​
 
d******5 2014.06.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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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볼 수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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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을 통해 알아보는 이야기가 흥미롭게 구성되어 있어요.  어떤 내용에 대한 부분을 알아보게 되는지 읽어보면서 초등역사논술 도움되는 부분도 있었는데요.  아이 뿐 아니라 어른이 봐도 재미있겠더라고요.          등장인물에 대한 소개도 중요하죠.  초등역사전집 읽어보기 전 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미리 알아두면 훨씬 수월하게 읽어볼 수 있어요.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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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을 통해 알아보는 이야기가 흥미롭게 구성되어 있어요. 
어떤 내용에 대한 부분을 알아보게 되는지 읽어보면서 초등역사논술 도움되는 부분도 있었는데요. 
아이 뿐 아니라 어른이 봐도 재미있겠더라고요. 

 

 

 


 

등장인물에 대한 소개도 중요하죠. 
초등역사전집 읽어보기 전 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미리 알아두면 훨씬 수월하게 읽어볼 수 있어요. 

 

 

 


 

재판 첫째 날에서 알아볼 수 있는 내용은 조선왕조실록을 누가 기록했을까 하는 주제였는데, 
아이는 이 부분이 궁금했는지 살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조선왕조실록이 어떤 책이며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에 대해 알아보게 되는데, 
조선의 성립과 발전, 민족 문화의 발달에 대한 교과서 내용과 연계독서 할 수 있는 부분이랍니다. 

 

 

 


 

책을 읽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재미있는 그림을 볼 수 있었는데요. 
어떤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었어요. 

배경지식을 쌓으려고만 하는 책이 아니고, 
재판을 통해 말을 주고받고 하는 대화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는데요. 
그래서 더 빠져들어 읽게 되었는지도 모르죠!! 

 

 

 


 

법정에서 벌어지는 교과서 속 역사이야기 재미있게 읽어봤어요. 
중등역사 까지 확장되어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초등역사전집 이만하면 추천 할 만 하죠!!! 
초등역사논술 까지 도움되니 아이랑 같이 저도 잘 읽어보려고요^^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리뷰입니다. 

 

o********y 2022.02.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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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볼 수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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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29 왜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볼 수 없었을까?     제목도 흥미진진한 책을 읽어 본다. 이 책은 조선 중기 정치인인 유자광이 연산군을 부추겨 무오사화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매도하는 역사를 개탄하며 당시 사관이었던 김일손은 그 일을 사초에 실었고, 본인에 대해 나쁘게 기록했기 때문에 사림파 학자들의 잘못을 지적하며 소송을 제기한다.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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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29

왜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볼 수 없었을까?


 

 


제목도 흥미진진한 책을 읽어 본다.

이 책은 조선 중기 정치인인 유자광이 연산군을 부추겨 무오사화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매도하는 역사를 개탄하며 당시 사관이었던 김일손은 그 일을 사초에 실었고, 본인에 대해 나쁘게 기록했기 때문에 사림파 학자들의 잘못을 지적하며 소송을 제기한다.


 

조선왕조실록은 사관이 정치가 벌어지는 자리에 참석하여 모든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는 사초를 바탕으로 다시 정리한 기록이다.

역사를 객관적으로 기록하기 위해 실록은 임금도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우리에게 알려진 바로는 이극돈과 유자광이 사초를 미리 보고 그 내용을 연산군에게 이른 결과 무오사화라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사관은 보고 들은 내용을 낱낱이 적는 것이지만 거기에 비평을 써 넣거나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사관들이 인쇄까지 끝난 실록을 사고에 보관하고 편찬에 사용된 모든 자료를 태우지 않고 재생 종이로 활용하기 위해 물로 빨았다고 한다.

이를 '세초'라고 하는데 세초는 자하문 밖 세검정 부근의 차일암에서 거행되었다니 그 절차도 까다롭고 사관이라는 직업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또 기밀 유지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직업인지 알 수 있었다.


세계 기록 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은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가 총 1,893권 888책에 수록되어 있다.

세계 기록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실록은 왕의 정치사를 빠짐없이 기록했다는 점과 그 내용에 정치에 대한 비판 등이 모두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 인정된 것이다. 또한 금속 활자나 목활자로 된 인쇄물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그러나 우수한 역사서이지만 한계점도 있다. 지배층의 역사서라는 점에서 국가 정책이나 양반 관료 위주의 기록으로 가득 채워졌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이미 편찬된 것을 고친 경우가 있는 '수정 실록' '보수 실록'의 사례도 한계점이다.


판결문을 살펴보면 피고 김일손의 사초 작성 행위가 왕실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정국의 혼란을 가져 온것에 대해 충분한 근거가 부족한 것으로 기각한다. 법정은 유자광에게 사화로까지 비화시킨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게 하고, 김일손에게는 자신의 신념에 넘치는 행동으로 피해를 입은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하라고 명한다.

역사란 정말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진실이다. 그런 면에서 역사는 꼭 알아야 할 우리의 숙제임에는 틀림없다.

c*********1 2014.12.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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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볼 수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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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많은 국민들이 함께 슬퍼하고 걱정하고 있는 때입니다.   모두가 힘이 되어주어야 할 이시기에 어떤 언론에서는 사건 현장의 모습을 그대로 보도해야 할 의무를 잊고 사건현장을 감추거나 다르게 포장하기 급급한 모습이 보여서 참 마음이 아팠답니다.   그때 읽게 된 이책 왜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볼수 없었을까?   이 책에서는 알고보면 정말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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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많은 국민들이

함께 슬퍼하고 걱정하고 있는 때입니다.

 

모두가 힘이 되어주어야 할 이시기에 어떤 언론에서는 사건 현장의 모습을 그대로 보도해야 할 의무를 잊고 사건현장을 감추거나 다르게 포장하기 급급한 모습이 보여서 참 마음이 아팠답니다.

 

그때 읽게 된 이책

왜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볼수 없었을까?

 

이 책에서는

알고보면 정말 당연한 이치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왕이 만약 실록을 보게 된다면 왕의 입맛에 맞춰 모든 사건들이 왕의 편에서서 아름답게 미화된 픽션이 되어 우리에게 전해졌을것 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조상들은 지혜롭게 왕이 볼수 없는것이라고 단정지어버리고

현실을 왜곡하지 않고 있는그대로 기록하여 후대에 그대로 전해지게 하였습니다.

이책에서 나오는 유자광은 조선중기의 벼슬아치로 부자였으며 그 부를 유지하기 위하여 어떠한 짓이라도 하였던 사람이었지요

그에 반하여 김일손은 청렴결백하고 진실을 쫒는 올바른 사람이지요

이둘은 조선왕조실록을 두고 대립하였으나 결국엔 목숨을 바쳐 정의를 지켜낸 김일손이 우리의 역사를 바르게 지켜냈습니다.

지금의 현실도 올바르게 지켜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해준 고마운 책입니다.

d********n 2014.04.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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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볼 수 없었을까?』-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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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화국을 연달아 읽었다. '연산군 vs 박원종'에 법정 싸움을 읽은 후 읽은 내용이 '유자광 vs 김일손'이 벌이는 '조선왕조실록'에 관한 이야기다.  앞에서 김일손이 사초에 기록한 '조의제문'에 대한 부분이 언급되었었는데,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들이 교집합을 이루면서도 글을 쓴 작가가 달라서 새로운 관점으로 사건을 만날 수 있는 것이 <
"『왜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볼 수 없었을까?』-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29" 내용보기

  역사공화국을 연달아 읽었다. '연산군 vs 박원종'에 법정 싸움을 읽은 후 읽은 내용이 '유자광 vs 김일손'이 벌이는 '조선왕조실록'에 관한 이야기다.  앞에서 김일손이 사초에 기록한 '조의제문'에 대한 부분이 언급되었었는데,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들이 교집합을 이루면서도 글을 쓴 작가가 달라서 새로운 관점으로 사건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역사공화국>의 매력이다.  한 두권만 읽어도 다각면으로 하나의 사건을 보게 되니 말이다.  이번호는 조선시대에 정치가 이뤄지는 모든 자리에 참석해서 직필을 목숨처럼 여겨던 사관에 대한 이야기다.  여론에 흔들리지 않고 쓰는 직필과 강한 윤리성, 비판 정신을 두루 갖춘 사관을 통해 막중한 역사적 책임이 붓 끝에서 시작된다는 걸 알 수 있는데, 그들에 이야기 중 가장 굵직한 것이 김일손과 '무오사화'일 것이다.

 

 

 

 

 

  태종이 사냥을 나갔다.  왕의 사냥 놀이인 만큼 고위 관료는 물론이고 궁녀와 내시까지 대규모 인원이 사냥터에 동행했다.  그런데 태종이 사냥터에 도착해서 말에서 내리다가 떨어지고 말았다.  말에서 떨어진 태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곳 사냥터에 사관이 따라 왔는가.  내가 말에서 떨어진 것을 기록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했다.   - 태종실록 중에서

 

 

 사관은 태종이 말에서 떨어진 사실은 물론, 그걸 기록하지 못하게 하라는 말까지 낱낱이 사초에 기록했으니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하늘과 사관뿐이다'라는 태종의 고백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실록에는 국왕이 행한 정치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무슨일을 했는지 소상히 알 수 있다.  거기에 사관의 역사적인 평가까지 들어 있어서 당시의 정치와 경제, 역사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책이다.  실록은 조선 역사를 꿰뚫어 보고, 양반 관료들의 글쓰기 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조선 시대에 낙타나 있었는지, 안경이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도 실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번 화는 유자광대 김일손의 공방을 통해서 오늘날의 정치가들, 신문사와 기자의 역할을 생각하게 만들면서 그들을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사관은 어떻게 뽑을까?   사관은 문관에 급제한 인물로 역사를 께뚫어 보는 눈과 역사를 서술하는 능력,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판단 능려이 있어야 했으면 기본적으로 본인은 물론 친가와 처가 모두 문제가 없어야 사관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사관을 뽑을 때는 가문의 이력까지 낱낱이 훑은 후 조상 중에 불법으로 재산을 모았거나 서자 출신이 있으면 임명되지 못했고, 미혼자는 결혼한 뒤 처가 쪽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었기에 뽑지 않았다.  물론 요행으로 사관으로 뽑힌 사람도 있었지만 오래가지 못했고, 정직하지 않은 이는 사관이 될 수 없었다.  사관은 입시와 사초의 작성, 시정기의 작성을 주요 하게 다뤘는데, 입시란 사관이 정치가 벌어지는 모든 자리에 참석하여 관련 내용을 기록하는 것이고, 사초는 실록의 초안으로 사관의 비평까지 들어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정기는 관청의 정치 일기로 볼 수 있는데, 사초와 달리 사관의 개인적인 판단이나 평가가 없는 자료로 당시 사회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중요한 열 쇠 중 하나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실록'이라고 약칭하기도 하는데, <연산군일기>나 <광해군일기>도 모두 실록이다.  연산군, 광해군처럼 왕위에서 쫓겨난 왕들의 실록에는 정식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담아 '일기'라는 이름을 붙인다.  <조선왕조실록>은 거의 5백년 가까운 왕조의 기록이 하나의 체계 아래 기록된 사실은 세계 역사상 드문 일이다.  뿐만 나니라 세종 이후부터 금속 활자나 목활자로 된 인쇄물이라는 점에서도 가치가 크다.  동아시아 대부분의 실록은 한두 질에 그쳤으므로 필사본으로 만족했는데, 유독 <조선왕조실록>만 후세에 영구히 전하려는 의식 아래 네다섯 곳에 나누어 보관했기 때문에 활자 인쇄를 했다.   조선 왕조 5백년 역사 동안 얼마나 많은 사관들이 있었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것이다.  그런데 그 분들중 개인적인 이득을 챙기려고 사초를 누출한 사관이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은 열리 정치를 지향하고 제 몫을 올곧이 해 내려는 위대한 사관들이 있었다는 증거다.  제 목숨만큼인 귀중하게 여겼던 사초, 이것을 통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조선왕조실록>이 탄생했다고 하도 과언이 아니다.

 

  일부의 경우이지만 왕조의 정당성이나 당파의 이해 관계에 따라 역사적인 사실이 왜곡되기도 했다.  조선 건국기의 사실이나, 중기 이후 당쟁이 전개되던 시기에 편찬된 것들이 그런데, 집권 당파의 잏관계에 따라 서술 내용이 달라지거나 이미 편찬된 것을 고치면서 '수정 실록', '개수 실록', '보수 실록'의 예도 있지만, 실록 편찬은 현재군주의 아버지나 할아버지 대의 역사를 정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군주에게 미움을 받을 수도 있는 사업이었다.  따라서 굳건한 의지 없이는 해내기 어려운 일이었다.  실록에는 서놩에 대한 비판은 물론이고, 정치권의 힘 있는 인사들 모두 상세하게 평가되어 있기 때문에, 편찬에 참여해서 직필을 견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오사화'는 김일손이 사초에 자신의 스승이 지은 '조의제문'을 실은 것으로 야기되어졌는데, 사관의 우두머리였던 이극돈이 자신의 비리와 '조의제문'이 실린 사초를 보고 유자광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비롯되기 시작했다.

 

 

 

  단종을 폐하고 왕위에 오른 세조 임금을 우회적으로 비난하는 글이라는 '조의제문'.  세조 임금을 비난하고 국가를 위태롭게 한 반역자 일당이라며 연산군은 김일손을 죽이게 되는 '무오사화'.  이번 화에서 다루는 문제는 연산군의 폭정이 아닌, 봐서는 안되는 '사초'에 글을 임금에게 보였다는 것에서 부터 시작될 것이다.  열린 정치를 위한 길은 정도를 지키는 것이다.  조선왕조의 역사 속에서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간 총 1,893권 888책에 수록된 실록이 명맥을 유지한것은 임금과 사관이 함께 정도를 지켰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 올곧은 가치관과 신념으로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은 존경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그들의 글에 칼을 들이밀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역사가 되니 말이다.

 



d****2 2013.12.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