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살편지 라는 단어을 보고는 그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언짢았다. 미리보기를 해보니 자살미수로 살아나는 얘기고, 유쾌한 문체라서 궁금해졌다. 표지의 노란 부분 글씨가 눈에 확 들어왔다. <이책은> 들녁출판사의 댓글이벤트 당첨 도서다. 첫 인연이다. <저자는>
행복이란 단어를 접하면 왠지 그 단어만으로도 따듯함 같은게 느껴진다. 자살이란 단어를 접하는 순간에 드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은 몹시 놀람 나아가 경멸함이다. 물론 내 지인들중에 자살한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자살이 미치는 일상에서의 파장이 얼마나 큰지를 생각할때 매우 심각한 수준임을. 타인의 시선을 먹고사는 연예인들의 감정기복은 주목받음인 인기와 거기서 도태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의 연속이겠지. 이미 알려진 얼굴들이라 일상의 삶이 자유롭지 못함도 족쇄이겠지. 하루아침의 인기급부상으로 준비되지 않거나 덜준비된 자의 추락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만이 해방구마냥 비쳐지기도 한다. 따라서 무명의 세월을 오랜기간 겪어서 내공이 생기고 탄탄하게 성공한 사람의 대표주자로 김명민 이라는 연기자를 높게 본다. 집 팔고 차 팔고 이민 목전에서 섭외받은 이순신 사극이 그를 이젠 어느 분야에서든 탁월한 연기자로 자리매김 시켰다. 고최진실의 자살은 내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평소 좋게 여겼고 나와 같은 나이며 노력하는 연기자로 알던 사람이 저지른...자기성장 교육을 받으러 다니던때로 그날 운전을 어떻게 했는지...주체팀장이 나를 몹시도 염려스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연일 매체서 다루는 기사들은 정신적 고문이었다. 사람이 미쳐버릴 것 같은 상태. 가슴이 두근대고...하등의 관련도 없는 내가 그럴진대 가족이나 절친 등 나아가 지인들이야...그렇기에 자살한 사람들을 결코 우호적으로 볼 수 없는 이유다. 사자와 함께 했던 추억이 많을수록 생자가 사자를 만나게 되는 그 순간까지 삶은 영위되어야하며 그 안에서 어떤 장소만 가더라도 늘 아리고 아픈 상처로 돋아날거다. 쉬이 무뎌지는 감정이란 순리를 따른 죽음일 것이나 죽음을 선택한 댓가는 늘 아픈 상처로 회자되리라는 것을. 사자는 그걸로 끝일지 몰라도 생자는 어떻게든 살기는 하겠지만 사는 동안에 남겨준 상처는 두고두고 생자의 몫이라는 것을. 지금은 어쩌다 그녀의 웃는 사진을 봐도 이젠 일부러 피하게 된다. 싫다. 따라서 추모하는 분위기도 기사화되는걸 자제해야 된다고 본다. 자살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에 머물지 않는건 아니나, 그렇다고 죽음을 다 선택한다면...고최진실을 가장으로 의지한 고최진영의 말로는 그야말로 답습이다.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답습하는게 있다. 그게 장점이든 단점이든간에 말이다. 고인이 된 두사람을 어쩔 수 없이 예로 들었는데, 그 남겨진 자녀(조카)를 보라. 얼마나 가슴아픈가. 하등의 관련없는 아이들이지만 그저 보는것 만으로도 가슴이 아리다. 그 아이들이 크면서 자살이라는 단어를 얼마나 자유롭게 인식할까. 사는내내 큰 상처로 평생을 안고 갈 것이다. 자식을 둘씩이나 가슴에 묻은 환희(최진실 자녀) 외할머니는 산사람일까? 자식을 가슴에 묻고도 그 손자녀를 양육해야된다는 사실 앞에서... 그다음 놀랬던건 고안재환. 엄연히 법적인 아내였던 정선희 역시도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고 있겠다. 그녀가 텔레비전에 나와서 우울한 얼굴을 해도 이상하고 웃어도 이상하다. 그러자니 그녀 역시 한편으로는 생매장 당했다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일반인이었다해도 이미 고안재환이라는 인지도가 있어서 자유롭지 않을텐데 그녀 역시 알만한 사람은 이미 다 알던 연예인으로 고안재환 사건으로 더 만천하에 알려졌다. 그녀가 생계수단으로서의 라디오프로에서 그나마 숨을 쉰다는게 다행 아닌 다행이라 생각이 든다. 이만큼 순리로 맞이하게 되는 죽음이 아닐경우 그 여파는 너무나 너무나 크다는것을...개인차가 있다지만 대개는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맘이 어떨지...오래전에 고모님 딸은 어린딸을 두고 교통사고사, 숙부님 아들은 대학생으로 오토바이 뒷자리 탑승했다 사고사했다. 이 두 분은 그런면에서 가슴아픔을 서로 이해하시는 듯 하다. 그 맘이 오죽하랴는 가늠하기가 어렵다. 하물며 죽음을 선택한 자녀를 둔 부모맘이야 말해 무엇하리요. 이런 마음인데 이 책이 묘하게 끌린건 미리보기를 통해 무척 유쾌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자살편지가 떡하니 등장하고 그다지 시선몰입이 안되는 시작이었다. 조금 읽으면서부터 은근 웃기기 시작하는데...코믹이라 보기엔 진중하고 그렇다고 머리 아픈 책은 아닌 상큼발랄하고 유쾌하다. 이야기 중간중간에 편지글이 있는데 편지체로 글씨도 전환되면서 자신이 자살한후에 받도록 보낸 편지들이다. 나중으로 갈수록 자살미수가 되어 답변 편지도 실려 있다. 그 자살편지는 모든이가 다 오해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확실한 답변이자 혹은 건의사항이다. 이미 죽은 사람이 한 이야기라 치고 쓴 내용이다보니 직설적으로 사실을 나열한지라 받은이가 충분히 난감해 할 만하다. 이렇듯 게리는 모든이가 오해가 오해를 불러 선입견으로 대하는 생활을 오래토록 한 것이다. 서른이 넘은 게리는 소설가. 그녀의 일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대부분 30대의 여자 심리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아들을 원했던 아버지에게 엄마는 딸 넷만을 안겨줬기에 이름도 다 남자이름처럼 되어버렸다. 그 이름조차 다 외우지 못해 한자씩만 따서 한꺼번에 부르는 엄마. 일요일 점심은 온 식구가 다 모여야하는 행사. 그 행사에 둘째 언니만 딴 나라에 살아서 불참이다. 큰언니네 애들은 정신을 홀라당 빼놓고 음식을 남기면 형부 차지요, 바로 위 언니는 애인이 생겼다. 헌데 그 남자의 생김새가 '망치처럼 딱딱한 31'이다. 데이팅 카페에서 첫만남을 가졌던 남자의 아이디로 무척 불쾌한 남자였는데 잘생기긴 했었다. 영낙없는 망치...인데 사람을 비교적 잘 기억하는 게리지만 이번엔 아닌가 싶을 정도로 천연덕스러운 패트릭. 이젠 기억력에도 문제가 생겼나 애궂은 노처녀 게리는 자신에게 실망감을 더 얹을뿐이다. 실상은 패트릭이 망치...였다. 연애는 변변히 해보지도 못하고 좀 살았던 남자는 친한 친구와 결혼을 했고, 그럼에도 여전히 껄끄럽지만 친구 내외와 인간관계는 지속되며, 치과의사이자 상당한 핸섬남과는 잘 되어가던중 헤어진 여친이 나타나 도루묵이 되었다. 엄마가 권하던 동창도 다른 애와 결혼했는데 그리 잘 산다며 노처녀 게리는 여기저기서 안타까운 말과 늘 주눅드는 시선을 느껴야 했다. 견뎌야 했다. 그저 자신이 못나고...모든게 자신의 탓이라고만 여겼다. 그럼에도 여전히 글쓰기는 생업이자 즐거움인데 그것마저 출판사 통폐합으로 자신의 입지가 위태롭게 되고...일과 사랑 등 모든면에서 자신이 없어진 그녀. 서른이면 그다지 많은 나이는 아니라는 생각인데 궁지에 몰릴대로 몰리고 자신은 한없이 작아지다보니 유통기한이 지나 폐기처분해야하는 수면제를 자신이 사용하기로 맘먹는다. 그건 엄마가 반납하라며 심부름을 시켰는데 위기를 기회로 여긴 것. 죽기전 마지막으로 자신의 주변정리를 한다. 그것 역시 사후에 깔끔한 사람이란 인상을 주고 싶어서였으니 얼마나 주변사람을 의식하며 살았는가를 절실히 말해준다. 멋진 의상과 구두를 사고 마찬가지로 멋진 호텔에 예약도 한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죽고 싶어서다. 그,러,나, 하필 그날 시선을 잠시 끌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게 일어 와인 한 잔을 마시고자 행동한게 자살방지를 할 줄이야. 거기엔 이미 자신을 찼던 남자가 앉아 있다가 우아하고 세련된 그녀를 보며 눈을 의심한다. 합석을 하며 서둘러 둘러댄 게리의 남친이 올때까지만 이라며 울먹인다. 자신의 아내가 딴 남자와 출장이나 교육을 핑계로 그동안 죽 외도를 했는데 지금도 만나고 있으며 미행해 왔노라...한때는 결혼을 생각했던 남자인지라 치과의사인 그남자를 뿌리치지 못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기에 이르르고...자살 미수후 될대로 되라는 식의 살아남기를 위한 글쓰기. 고수해오던 부문이 아닌 다른 장르에서의 빛발함과 그 능력을 알아본 더 부유하지만 역시 비슷한 처지의 편집장과의 인연맺음... 세련되지 못하고 감성이 풍부한 그녀. 그렇기에 어리숙하고 인정만 많아 남의 딱한 처지를 무시하지 못한다. 초반에 그렇게도 골칫덩이자 집안의 수치로까지 여기는 게리지만 그 맘새가 드디어 빛을 발하는 사건은 자살미수 후에 생긴다. 그녀의 값어치가 빛나는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 시간들이 어찌나 유쾌하게 그려지는지 500여 페이지가 결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자살이라는 단어에 무척 심기언짢음을 가지고 있는 내게 이 글의 소감을 쓰는일 자체가 힘들어 여지껏 숙제로만 마음 묵직하게 가지고 있었다. 신간을 미리 본 자의 예의와 나의 양심에 더는 지체하면 안될 것 같아 오늘 드디어 용기를 냈다. 사견이라 앞 서두가 심히 불쾌할 소지도 다분하나 이 글은 나의 책 읽은 소감이니...많이 살아온 세월은 아니지만 80으로 본다면 이미 반은 넘은 나이다. 비교적 큰 풍파없이 살아올 수 있었던 삶에 늘 감사한 일상이나 잔 파도가 어찌 없었겠는가. 그 파고가 있을땐 나만 힘든것 같음도...그러나 죽고 싶다는 생각은 안들었다. 그 상황에서 좀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만큼 좀더 나은 개선책을 찾으려 했다. 개똥밭에 뒹굴어도 이승이 났다지 않은가. 삶은 살아볼 가치가 너무나 많다. 그 많은 날들에 때론 살아있음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행운인지 여겨지는 날도 아주 가끔은 존재한다. 살아있음이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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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게리,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동안 나름대로 잘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인생이 심히 꼬이기 시작한다. 세상은 더 이상 내 편이 아니다. 직업도 연애도 흐지부지해진다. 재미있는 일이 생기리라는 기대가 없으니 살아갈 이유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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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자살을 하기로 했다. 그 여자는 자살에 앞서 주변인들에게 작별 편지를 쓰기로 했고, 자살하기로 마음 먹은 날 그 편지들을 우체통 안에 넣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자살에 실패했다.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편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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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게리 탈러. 서른이 넘었지만 아직 미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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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무겁다. 자살이라는 글자도 그렇고 편지라도 글자도 그렇고. 그러나 내용은 무겁지 않다. 무슨 한편의 코믹 영화를 보는 듯 한 기분도 든다. 나이 서른의 독일 노처녀. 요즘 시대에 서른이 무슨 노처녀 축에 드나 모르겠지만 적어도 독일에서는 그럴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일찍 감치 발견하고 연애소설을 써서 밥을 먹고 사는 직업 소설가이다. 그러던 그녀에게 어느날 자신의 책을 내던 출판사가 통합되고 자신의 책은 더이상 내지 못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안 그래도 가장 친한 친구가 임신을 한 마당에 그것만으로도 슬픈데 직업까지 잃어 백수가 될 처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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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아라! 내겐 너무 불친절한 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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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은 마음이 가물에 콩 나듯 드는 사람은 행복하다. 반면, 요즘 나처럼 "아주 매우 종종" 드는 사람은 차암 불행하다. 누군가처럼 "나 이런 사람이야!" 하고 힘 좀 주면서 살아갈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만, 난 소심해서 그렇지 못하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자살편지>라는 제목에 눈이 확 가버렸다. 자살할 때 사람들은 보통 유서를 쓴다. 물론 그게 편지형식일 수는 있다. 그런데 정확히 자살편지. 죽기 전에 편지도 쓰나? ...... 게르다는 이제 갓 서른을 넘겼다. 아직 미혼이고 지금 <거의 실업> 상태다. 로맨스소설을 써서 밥을 먹고 살았는데 그곳이 다른 데 합병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맘에도 없는 <뱀파이어 소설>을 써야만 연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에라, 그녀는 이 불친절한 세상살이를 마감하기로 마음 먹고 그동안 가슴 속 깊이 쌓아두었던 말과 생각(원래 이런 생각들은 듣는 이에겐 뼈 아픈 법이다, 진실이니까)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친구에게, 가족에게, 그녀의 명줄을 쥔 출판사 편집장에게. 그런데 맙소서, 우연히 만난 남친과 샴페인을 마시느라 약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자살은 미수에 그치고 만다. 문제는 이제부터. 이미 진실을 까발린 터, 우체부를 추적하기도 집 앞에 진 치고 있다가 우편물을 낚아채기도 묘한 시점. 그때부터 게르다의 일생일대의 분투가 시작된다. 그런데,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속마음을 털어놓다보니 "우연한 행복"들이 걸리는 게 아닌가? (짐작과는 달리) 가족은 자신을 사랑하고 있고, 친구들의 우정도 가짜가 아니고, (본인이 느꼈듯) 그리 미운 오리도 아니다. 아, 그러니까 이제부터 시작이야, 적들은 더 이상 적들이 아니고, (물론 몇 명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즐거운 예감만땅. 이 책의 장점 하나, 독일 소설인데도 우리나라 가족을 보는 거 같다. 아 재녜들도 원래는 가족적이구나!! 게르다가 가족과 화해 아닌 화해를 하는 장면에선 코끝이 시렸다는 첨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