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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 쉴곳이 사라져 버렸다. 어디로 가야지?
"쉼 쉴곳이 사라져 버렸다. 어디로 가야지?" 내용보기
이 갑갑한 세상 숨쉬러 나간다. 숨쉬러 나가다니! 숨쉴 공기가 없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쓰레기통, 세상의 오염은 성층권에까지 도달해있다. ‘이대로 살면 안 된다’ 는 오웰의 메시지는 아직도 허공을 맴돌고 있다. 인간의 발전과 환경파괴 그리고 전쟁과 국가(정부)의 덧없음을 이야기한다. 1940년대의 영국인데, 지금 우리네 모습이나 비슷하다는 것이 놀랍다. 사람 사는 세상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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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갑갑한 세상 숨쉬러 나간다. 숨쉬러 나가다니! 숨쉴 공기가 없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쓰레기통, 세상의 오염은 성층권에까지 도달해있다.

이대로 살면 안 된다 는 오웰의 메시지는 아직도 허공을 맴돌고 있다. 인간의 발전과 환경파괴 그리고 전쟁과 국가(정부)의 덧없음을 이야기한다. 1940년대의 영국인데, 지금 우리네 모습이나 비슷하다는 것이 놀랍다.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비슷하단 말인가? 아니면 우리가 사는 게 영국의 1940년 수준인지. 주위의 풍경과 상황의 차분한 묘사가 돋보이는 글이다. 어쩌면 우리가 읽던 동물농장이나 1984에 비해 자연적이라고도 비칠 수 있을 것 같지만, 소시민의 의지와 상관없는 세상을 담담히 그린 것 같다.

 

. 그의 모습은 현재의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점점 늘어나는 것은 허리둘레와 뱃살이고 줄어드는 것은 근육인 평범한 중년 남자가 어느 날 삶을 돌아본다. 그의 삶은 어디로 가버렸나.

 

틀니는 하나의 경계표이다. 17파운드, 나 같은 사람은 신사처럼 보일리가 없다. 하지만, 나는 겉으로 뚱뚱하되 속으로는 가녀린 구석이 있는 것이다. 나는 15년 동안 좋은 남편이자, 아빠였다가 싫증이 나기 시작하던 터였다. 늙은 개에게도 아직 누릴 생이 있으며 좋은 때가 많이 남아있는지도 모른다는 느낌으로 산다. 우리네 인생에서 우리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지 못한다. 좋았던 곳에는 다시는 가볼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숙명인가 

 

뚱뚱하면 이러하다는 사회적 편견, 하지만 보이는 이 모습만이 나이지는 않다. 나의 마음, 생각, 감정도 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써 묵묵히 성실히 살아가는 삶 그렇게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삶에서도 그에게 17파운드가 주어지고, 돈은 용기를 만들어준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 나에게 좋은 시절, 좋았던 곳은 나의 어린 시절의 고향 그곳을 보고 싶다.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삶은 행복하다.

 

나의 과거. 어린 시절의 기억은 온통 낚시에 대한 기억이 지배한다. 학교생활은 따분하고, 비슷한 집안 일 그리고 가족의 삶에서 나를 누릴 수 있는 것은 낚시뿐이었다.

 

나는 물고기가 낚싯줄을 당길 때의 손맛을 느껴봤던 것이다. 소년시절, 우리가 낚시를 다니던 나날을 중심으로 돌아갔다는 느낌이 든다. 아버지 가계의 어려움과 몰락, 영국의 유구한 생의 질서가 바뀐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의 삶과도 비슷한 작은 마을에서의 삶,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곳에도 변화가 다가온다. 그 속에 보통의 시골의 사람들처럼 우리가족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변화를 인지하지도 대응하지 못하는 삶은 점점 비루해진다 몰락을 해가면서도 느끼지 못하지 못하는 사람들. 하지만, 나는 전쟁이 만들어 준 장교라는 계급장과 장교생활 속에서의 기대 그러나 현실은 달리 나를 원하지 않았다. 나를 위한 일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상층(?)의 한마디로 직업을 갖고, 남들처럼 결혼도 한다.

 

구하기 어려웠던 일자리는 조셉경과의 만남으로 보험회사에 취직이 되고 결혼, 이 빈털터리 중산층 집안의 딸들은 단지 집에서 나오기 위해 바지 입은 치들이면 아무하고나 결혼하려 한다는 점이고, 결혼 생활은 돈에 쪼들리는 바람에 모든 활력이 다 빠져 나가버렸다는 사실이었다.

 

결혼이라는 함정,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생활은 돈이라는 지배자에 의해 졸려진 우리는 공기 빠진 풍선처럼 그저 존재만을 이어가고 있다.

 

나의 낭만인 로어빈필드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었다. 온통 주택뿐. 세부적인 것들을 아주 상세히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기억이 다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내 기억은 나를 속인 게 아니었다. 그라뱃처럼 영리하고 짜디짠 사람도 삼켜버리는걸 보니 저 대형기업연합체인의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엘시에서 쿡슨부인으로 그녀가 정도까지 되리라는 상상을 도저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쩌다 어떤 집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그 집에 대해 평생 동안 무슨 권리라도 있다고 느낀다는 건 바보스러운 것이지만, 우리는 실제로 그렇게들 느낀다. 한때 우리 집이었던 찻집은 더 이상 나의 집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죽음을 상기시키는 것을 못 참는다. 이 사회에서 내가 유령인 것이다. 내가 죽었고, 그들이 살아있는 것이었다

 

추억은 단지 추억이리라.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나만의 추억만이 현존할 뿐 그때의 모습들은 다 사라져 버렸다. 도대체 우리를 삼키는 것은 무얼까? 공장, , 대기업들이 우리를 삼킨다. 하지만, 그곳의 의미는 삼키지 못한다. 나는 추억을 믿고 사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들처럼 그렇게 살지 못하는 초라한 유령인지도 모르겠다.

 

현재와 과거. 우리는 역사 속에 있었고, 지금도 그 속에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만든 것이다. 현재의 특징 없는 삶은 하나의 획일적 통일로 나라는 개인은 사라졌다. 우리가 만든 제도에 우리가 묶여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가와 권력에 의해 약간의 반항을 가질 수는 있지만, 도전은 허락이 되지 않는다.

 

과거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다. 역사책에 나오는 많은 사건들처럼 우리가 알게 된 사실들의 조합일 뿐이다. 어디나 똑 같은 교외주택단지, 이곳은 감방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감옥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매수된 것이며, 더 딱한 점은 우리 자신의 돈으로 매수됐다는 것이다. 세금은 애완견 등록세도 낼 생각이 전혀 없는 게 그들이었다. 아무튼 이론상으로는, 해볼만한 건 사실상 무엇이든 금지되어 있었다.

 

전쟁과 삶. 전쟁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는다. 하지만 우리가 원해서 하는 전쟁이지가 않다. 왜 원하지 않는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사라져 가는 걸까? 전쟁은 가난한 자들을 더욱 가난하게 하고, 우리가 원하지 않는 선물, 수많은 사람들에게 죽음의 공포와 삶의 힘듦을 준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반대하면서도 전쟁은 일어나는 것 일까? 민중들의 단합이나 뭉침 그리고 요구와 실행이 없기 때문이다. 

 

청파리 소리와 폭격기 소리 중에 어느 쪽이 더 들어줄 만한가? 폭탄이 떨어질 작고 빨간 지붕들이 한 줄리 햇살을 받아 한동안 좀 더 밝아 보였다. 이 세상엔 동시에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항상 100만명은 있는 것이다. 지금은 시체가 나뒹구는 전쟁터보다 차라리 더 지저분하고 어수선했다. 전쟁이란 게 막상 참전해보면 미치도록 지겨운 경험일 수 있다. 전쟁 때문에 사람 운명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희한하다. 그저 거대한 기계가 우릴 휘 잡고서 마음대로 하는듯했다. 매사에 자기 삶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라는 느낌이 지배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른다. 전쟁을. 하지만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가 우리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얼까? 수많은 사람이 비슷한 생각을 하지만 변화시키지 못한다. 그냥 전쟁이라는 그 보이지 않는 거인의 손에 휘둘릴 뿐이다.

 

그들이 목숨 걸고 싸웠던 조국이 그들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 생활의 냉엄한 현실을 바닥에서 체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쟁에 나가 싸우지 않았으니 전쟁이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 정말 죽는 것은 두뇌활동이 멈춰질 때인지 모른다. 새로운 관념을 받아들일 힘을 잃어버릴 때 말이다. 정신적으로 내면적으로 죽은 사람들 말이다. 왜 사람들은 천치 같은 것에 세월을 허비하기만 할까. 나는 평화와 정적을 원했던 것이다. 염병할! 뭣 하러 고민을 한담? 한참이나 남은 일인데 말이다. 나는 금단의 영역에 들어선 것이었다.

 

조국은 전쟁에서 우리를 필요로 한다. 싸울 병사가 필요하고, 죽음의 기계들을 다룰 일꾼이 필요하다. 하지만, 보상은 없다. 우리는 소모품인가? 이런 전쟁은 아마 전쟁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생각하기에 벌어지는 사건이 아닐까! 그들이 만드는 세상대로 가는 것이지만, 애써 무엇을 일찍 걱정을 할까? 그것은 나중의 일인데, 그냥 닥치는 대로 살자 오직 현재로만 살아가자.

 

현재와 미래. 인간들에게 죽음과 고통을 안겨주는 전쟁이지만, 한쪽에는 새로운 기회와 직업을 제공한다. 나름 기회를 잡을 수도 있고, 전혀 생각지도 않은 실마리가 풀린다. 그 희한한 세상 속으로 우리는 빨려 들어간다. 우리의 파멸을 알면서도, 왜 국가와 이데올로기라는 미명하에 한걸음 한 걸음씩 다가간다. 적이 없으면 존재하지도 못하는 증오, 우리는 적을 만들고 그들을 증오하고, 그들에 대응해야 한다. 왜 그들이 우리의 적이 되었지? 라는 의문은 허용이 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은 적일 뿐이다. 그들과 싸워야 한다.

 

반파시즘이라는 것도 괴이한 생업이다. 우리가 빠져들고 있는 세계, 곧 증오의 세계나 슬로건의 세계라 할 만한 세상 말이다. 우리의 미래가 너무 두려운 나머지 그대로 미래로 뛰어드는 셈이며, 두렵다고 보아뱀의 목구멍으로 뛰어드는 토끼와 다를 바 없다.

 

사회의 지식인이며, 지도층들은 그들의 삶을 살아간다. 고생 한번 한할 것 같은 그들의 모습 하지만, 그들도 나름의 고뇌를 지고 산다. 사라져가는 우리의 과거, 알지만 어쩌지 못하는 힘없는 우리이기에. 

 

사립기숙학교와 대학을 나온 이런 사내들이 죽는 날까지 소년 같아 보이는걸 보면 참 희한하다. 번듯해 보일지는 몰라도 거기 사는 사람들은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하던 옛 시절이 뿌리부터 잘려나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만큼의 지각은 내게도 있다.

 

어디로 도망갈까? 어디에서 우리가 마음 놓고 숨을 쉴 수가 있을까? 그때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 사는 우리들, 우리들의 보금자리는 쓰레기와 오염물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늘어나는 것들은 쓰레기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우리는 점점 높은 곳으로 향해야 하는가?

 

숨쉬라 나가다니! 숨쉴 공기가 없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쓰레기통 세상의 오염은 성층권에까지 도달해있다.

 

나에게도 더 이상의 일탈은 없다. 힐다 볼링이 위독하다는 SOS라디오 방송과 잘못 떨어뜨린 폭탄, 추억을 접고 집으로 향한다. 교훈을 얻은 대가로 낭비해버린 1파운드일 뿐이었다. 어떤 일이든 다 벌어지고 말리라. 내가 5분 남짓 동안 그녀가 죽은 줄로만 알고 결국 애를 태웠다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그로써 끝이었다.

 

인생에서 가끔 일어날 일속에서 환경과 전쟁을 한번 더 생각하라고 외치고 있다. 삶에서 나는 무엇이고, 가족은 무엇이며, 사회는 무엇이고, 국가는 무엇인가? 인간이 만든 수많은 것들은 의문만을 남긴다. 전쟁의 본질에 대한 그의 생각은 무얼까? 전쟁의 위험에 대한 경고 아니면 전쟁의 허망함, 발전이라는 가면에 가려진 사람들의 몰락, 동일해지는 인간들과 인간들의 삶이다. 이런 모습으로 살려고 하지 않았는데, 왜 발전은 했으나 행복은 확 늘어나지 않았을까? 작은 행복을 누릴 자유도 내게는 없는가! 우리는 기계모양 똑 같은 모습으로 똑 같은 삶을 살아가는 걸까? 우리는 왜 변하지 못하는가.

 

오웰의 글은 해학적이다. 비판은 하되 돌려서 말하고, 조금은 웃음을 준다. 그의 다른 글에 비해 직접적인 비판은 없으나, 자연을 노래하면서, 그 사라짐, 인간의 정의 사라짐, 획일화되는 삶 등 안타까워하고 산업과 자본의 무서움, 전쟁의 처참함, 미래의 삶에 대한 경고를 한다. 숨쉴 공간은 남겨두라고.

이 글의 광고를 보고 바로 구입하여 읽고 싶었다. 오웰이란 작가의 작품이 그렇게 많이 소개되지 않은 우리의 현실에서 아주 반가운 작품이었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을 기대하며.



p*******t 2011.06.03. 신고 공감 12 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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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 남편 일탈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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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은 해학과 풍자가 가득한 글쓰기의 대표주자라 생각된다. 그의 대표적인 소설인 <동물농장>은 시대 비판과 더불어 풍자가 가득하다. 명성과는 달리 의외로 <동물농장>과 <1984> 이외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을 뿐 더러, 있다 하더라도 국내에 번역된 작품이 적은 편이다. 그의 나이 47세에 폐결핵이 악화되는 바람에 길지 않은 삶을 살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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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은 해학과 풍자가 가득한 글쓰기의 대표주자라 생각된다. 그의 대표적인 소설인동물농장은 시대 비판과 더불어 풍자가 가득하다. 명성과는 달리 의외로 동물농장<1984> 이외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을 뿐 더러, 있다 하더라도 국내에 번역된 작품이 적은 편이다. 그의 나이 47세에 폐결핵이 악화되는 바람에 길지 않은 삶을 살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외국에서는 조지 오웰이 대표적인 에세이스트라고 하는데도, 그의 수필인나는 왜 쓰는가는 불과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처음 번역된 걸 보면 말이다. <숨 쉬러 나가다는 그가 폐결핵 요양 중에 집필했다고 한다. 이 시기가 2차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이어서 그런지 불안한 시대적 상황을 작품 속에 잘 반영하고 있다. 그의 소설 중에서 이 작품이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주인공은 마흔다섯 살인데다 뚱뚱한 보험업계 외판원 조지 볼링, 일명 패티 볼링이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소도시의 작은 주택에서 마누라와 아이 둘과 함께 그리 넉넉하지 않은 살림을 꾸리고 있다. 그는 어느 날 자신만 알고 가족들은 아무도 모르는 그야말로 눈먼 돈이 생긴다. 마누라가 알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바로 뺏길 돈이었지만, 그녀에게 이실직고 하지 않고 혼자 멋지게 쓸 계획을 세운다.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그 돈을 조용히 은행에 넣어두었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뭔가를 처리해 본 건 처음이었다. 좋은 남편이자 아빠라면 그 돈으로 힐다(내 아내다)에겐 옷을 사주고 아이들에겐 부츠를 사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15년 동안 좋은 남편이자 아빠였다가, 싫증이 나기 시작하던 터였다(14).

 

그의 마누라 힐다는 전형적으로 생계를 미리부터 걱정하는 인물이다. 항상 남편을 들들 볶으며 자신이 그러지 않는다면 당장이라도 구빈원 신세를 질 것으로 믿고 있다. 

 

조지, 이건 아주 심각한 일이야! 앞으로 우리 식구는 어쩌란 말이야! 돈이 어디서 나오냐구! 당신은 이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모르는 것 같아!” (16)

 

이런 그녀에게 눈 먼 돈을 가져다 주면 그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었겠지만, 이 권태기 남편은 야심 차게 그 돈으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꾼다. 그는 결국 자기만의 휴가를 내고는 그야말로 평화와 정적을 얻기 위하여, 자신의 고향인 로어빈필드에 가기로 결심한다. 눈치 빠른 아내를 정교하게 속이기 위해 직장 동료에게 알리바이까지 부탁하고 말이다. 그러나 그가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기대에 부풀어 다다른 고향은 이미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공장과 주택을 건설하느라 숲은 베어졌고, 많은 물고기를 낚았던 강물은 오염되었다. 그곳에도 이미 전쟁의 기운이 가득하고, 전쟁이 날 거라는 소식에 피 끓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고는 이렇게 말한다.

 

완전히 잘못 알고 계신 거요. 당시 우리는 전쟁이 정말 영예로운 일인 줄 알았소. 그런데 그게 아니었지. 말도 안 되는 엉망진창일 뿐이었단 말이오. …. 전쟁이라고 하면 영웅적인 공로와 빅토리아 십자 훈장 같은 것만 있는 줄 아시는 모양인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 영웅이 된 기분 같은 건 느낄 수가 없어요. 사흘 동안 잠을 못 잤고, 족제비처럼 몸에서 냄새가 나고, 무서워서 오줌을 지리는 바람에 배낭까지 젖었고, 손이 너무 시려 총을 들지도 못한다는 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없지. 그런데 그나마도 아무것도 아니지. 진짜 문제는 전쟁 뒤에 벌어지는 일들이니까.”(219)

 

그는 결국 일탈 행동에 대해 스스로 자기 발이 저려, 얼핏 들은 방송에서 자신의 아내가 아파서 죽어가는 것으로 착각하고는, 자진 납세를 위해 일정을 앞당겨 집으로 향한다. 사흘 동안 너무 마신 탓에 몸무게 4파운드만 불어난 채로 말이다. 일정을 앞당기는 바람에 그가 미리 세워 놓은 알리바이는 스스로의 모순에 빠지게 되고, 그 헛점으로 인해 아내는 그의 일탈을 알게 된다.

 

흠집 난 결백을 주장해봐야 부질없는 짓. 내가 바랄 수 있는 것이라곤 가장 말썽이 적을 노선을 택하는 것뿐이었다. 그런 생각과 더불어 당장 세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A.        힐다에게 정말 뭘 했는지 말해주고 아무쪼록 믿게 만든다.

B.        기억이 잘 안 난다는 등 구태의연하게 능글거리며 버틴다.

C.       딴 여자랑 있었다고 생각하게 놔두고 받을 벌을 받는다. (334)

 

글쎄, 잠시 대담한 척 했던 불쌍한 소심 남편은 어떻게 이 위기 상황을 모면했을까. 결국 어느 시대나 일상을 유지해 나가는 일은 지루하고 권태롭다. 하지만 오늘도 무사히 아무 일 없이 지냈다면 이것이야말로 축복받은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m*******4 2011.07.27. 신고 공감 9 댓글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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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삶의 위기를 詩心 넘치는 이야기에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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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평범한 중년 남자의 소박한 해프닝으로서 1주일간의 탈주라는 소재에 산업사회가 야기하는 우울한 정경들을 담아내고 있다. 주인공인 보험조사원,‘조지 볼링’은 주급 7파운드를 버는 하류 중산층, 즉 시대를 대표하는 계층, 일반인의 전형적인 표상이다. 그런데 작품은 오웰의 잘 알려진 작품들인 『위건 부두로 가는 길』,『1984』나 『동물농장』처럼 주제의 무게가 주는 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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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평범한 중년 남자의 소박한 해프닝으로서 1주일간의 탈주라는 소재에 산업사회가 야기하는 우울한 정경들을 담아내고 있다. 주인공인 보험조사원,‘조지 볼링’은 주급 7파운드를 버는 하류 중산층, 즉 시대를 대표하는 계층, 일반인의 전형적인 표상이다. 그런데 작품은 오웰의 잘 알려진 작품들인 『위건 부두로 가는 길』,『1984』나 『동물농장』처럼 주제의 무게가 주는 진지함과는 사뭇 다르다 할 만큼 경쾌하고 밝다. 그럼에도 이야기의 그 가벼운 흐름 속에 진중한 문제의식들이 아우성치는 기막힌 작품이다. 더구나 위의 후자인 두 작품을 구성하는 사고의 원천이랄 수 있는 문장들을 발견하게 되거나, 직간접적 영향을 준‘H.G.웰스’를 비롯한 문학 작품들을 흘끔거리게도 하는 것은 부가적 요소치고는 그 가치가 지고(至高)하다.


오웰의 노골적이고 경박하지 않으면서 구사되는 재치 넘치는 문장 또한 지루하기 십상인 1인칭 서술의 구조적 한계를 슬쩍 넘어버리게 해준다. 은근히 재미있어지는 것은 갑자기 굴러들어 온 17파운드의 돈을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고자 결심한 중년 가장의 용처에 대한 고민으로 시작되어 유년시절의 무한한 자유, “시간이 무한정 자기에게 펼쳐져 있으며 무얼 하든 영원히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으로 충만한 그 활력의 시공간으로 안내되어 펼쳐지는 추억담이라 할 수 있다. 사내아이들만의 독특한 시심(詩心)이라 주장하는 악동으로서의 다양한 일화, 특히 낚시에 얽힌 무용담으로 시작된 추억들은 작은 종자가게를 꾸리는 아버지, 가사(家事)를 우주적 소명으로 아는 어머니와 함께 정말 유쾌한 세계로 한동안 꿈을 꾸게 한다.

그리곤, “한적한 연못가 버드나무 아래 온종일 앉아”있는 것과 같은 안정감과 지속성으로서의 삶, 배가 따뜻해지는 평온함 같은 시공간으로 숙성된다.


이러한 어린 시절의 기억은 현실의 삶, 생활의 냉엄한 현실에서 발버둥치는 보통 사람들의 전형인 자신에 대한 자각과 대비되어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두 아이와 항상 돈에 쪼달려 활력이 다 빠져버린 아내, 그리고 허리가 휘청거리는 주택 할부금의 부담을 안은 집, 그래서 마치 무언가 잃을 것이 있는  냥 착각하며, 보수주의자가 되어 남의 밑이나 핥아주는 사람으로 숨 막힐 틈도 없이 틀을 벗어날 수 없는 삶 말이다.

그래서 “나에게 활동적인 삶은 열 여섯 때 끝났다.”라는 이 중년의 보험조사원 조지 볼링이 선언하는 말에는 현대적 삶의 방식이 요구하는 피로가 그대로 묻어있다.


이렇듯 화자의 내레이션을 따라가다 보면 문득 1세기전의 영국사회를 걷는 것이 아니라 21세기 한국사회를 걷고 있다는 느낌에 빠져든다. “해내라! 성취하라!”라는 온통 앞을 위해 달리라는 종용이 난무하고, 물질과 문화적 과시를 위한 소비를 위해 여유로움과 주변의 경이로움을 모두 놓친 채 뛰어가는 조지 볼링이 묘사하는 시대상이 그대로 한 치의 이탈도 없이 판박이 같으니 말이다. 이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조차 동일하다. “양식은 있지만 정신은 멎어버린”사람들, “위협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위험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 과연 물질적 풍요를 위해서 우리들이 잃어버리고 있는 것들, 빼앗긴 것들을 소위 신자유주의자들의 공리주의적 계산기는 어떻게 산출해 낼까? 를 생각게 한다.


한편 길가에서 발견한 “본 모양을 그대로 간직한 발간 잉걸 불”에서 “살아있다는 무엇보다 더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그것으로부터 “묘하게도 인생이 살 만한 것이라는 확신을 불현듯”느끼는 장면은 이 소박하고 세상을 의심할 줄 알게 된 하류 중산층 가장에게 20여년을 잊고 지내던 자신의 유,소년기를 품어주었던 고향 마을에 대한 향수, 잃어버린 그 무엇들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이어지게 한다.

자신만을 위해 쓰리라 다짐했던 17파운드를 지니고 아내와 직장을 속이고 1주일의 일탈을 감행한다. 현대산업사회가 만들어내는 그 인위와 부정적 흐름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기회주의적 유선형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그러나 평화와 정적을 기대하고 찾아간 고향마을‘로어빈필드’는 산업단지로 바뀌어 있고, 동심의 활력과 예전의 평화로운 안정감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음만을 확인한다. 남몰래 한적하게 1주일을 지내러 간 곳은 더 이상 삶의 지속성이나 평정심이 머무는 곳이 아니다. 이미 세상은 온통 오염되어 있다. “숨 쉬러 나가다니! 숨 쉴 공간이 없는데.”하는 탄식은 이 불온한 세상에 대한 침통한 낙망이다. 결국 실패로 돌아간 조지 볼링의 금단의 영역을 향한 탈주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곳, 바로 현실의 공간, 삶의 일상성, 그 너절한 다툼의 시공으로 회귀한다.


100년 전의 영국사회, 그 시공을 초월하여 오웰이 전하는 현대사회가 만들어내는 황무지 같은 삶의 표현들은 오늘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2차 대전의 발발이 있기 전에 써진 이 작품이 예견하는 전쟁의 공포와 그 후에 다시금 반복될 인간사회의 어리석음의 반복, 문명적 위기에 대한 전망은 그야말로 그의 선견적 통찰력을 확인케 하여준다. 또한 이야기로서의 친근함은 나와 우리들의 그것처럼 가까이 느껴져서 지금은 서울의 도심 한복판인 곳에 있던 미나리 깡에서 어울려 놀던 어린 시절의 추억에 한 동안 잠기기도 하는 포근한 그 무엇으로 모처럼의 안정감에 빠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걸작은 역시 세월에 풍화되지 않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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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Os::.. 우리에게는 "숨쉬러 나갈" 곳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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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과 “1984”를 읽으며 조지 오웰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작가” 로 각인이 되다시피 했다. 어쩌면 오웰의 기념비적이라 할 수 있는 두 작품이 정치적인 색을 짙게 띠고 있으니 당연한 것 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처음 두 작품을 접하고 오웰에 대한 내 생각은 “최인훈”작가와 많은 부분 닮아 있다는 것이었다. 두 작가 모두 전후(오웰은 1,2차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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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1984를 읽으며 조지 오웰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작가 로 각인이 되다시피 했다. 어쩌면 오웰의 기념비적이라 할 수 있는 두 작품이 정치적인 색을 짙게 띠고 있으니 당연한 것 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처음 두 작품을 접하고 오웰에 대한 내 생각은 인훈작가와 많은 부분 닮아 있다는 것이었다. 두 작가 모두 전후(오웰은 1,2차 세계대전, 최인훈 6.25) 작가라는 점이고, 그를 통해 대두 되어진 당시 정치적 특색 혹은 이데올로기적 갈등에 대한 문제를 꼬집고 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현 시점의 상황묘사나 그를 통해 그려질 미래를 점치는 데에 주력하고 비판하며 좀 더 나은 미래를 그려야 한다는 화두를 남긴 점에서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가 최인훈이 전후 월남하여 글쓰기를 시작한 것에 비해 오웰은 전쟁 전부터 작가 생활을 했기 때문에 정치색이 짙지 않은 작품들도 존재한다. 이번에 출간 된 숨쉬러 나가다의 경우 동물농장을 내놓기 바로 전에 집필한 작품으로 순수문학에서 정치적인 작가로 거듭나는 과도기적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1984 리뷰에서 잠시 스페인 내전 참전을 언급했는데, 그 사건이 오웰을 정치적 작가로 탈바꿈 시키는 전환점이 된다.

 

 

“숨쉬러 나가다”는 중산층 중 하류에 속하는 보험영업사원인 뚱보 조지가 꾀하는 일종의 일탈을 그리는 내용이다. 매사에 돈 걱정만 하는 아내와 말썽꾸러기 자식들 또한 매일 같은 일만 되풀이 하며, 정해진 간표 대로 움직여야 하는 기계적인 삶에 뚱보 조지는 사랑도 애정도 없어 진지 한참이다. 가족을 위해 앞만 보며 달려온 삶이 점점 지긋지긋해지고 있다. 조지는 우연하게 친구의 권유로 한 경마로 적은 비자금을 마련하게 되는데, 이 돈을 시발점으로 일탈이라는 행복한 꿈을 꾸게 된다. 생각만해도 즐거워 지는 일탈, 그 생각의 끝이 그리고 길가에서 우연하게 마주친, 옛 기억을 자극하는 일련의 무언가에 의해, 20년 전 자신을, 그리고 고향을 회상하게 된다.

 

 

숨쉬러 나가다 1930년대에 쓰여지면서 현대화 되어가는 사회를 풍자한다. 찰리 채플린의 1936년 작품인 "모던타임즈" 에서도 보여지지만 이때는 시계에 의해 지배되는 기계문명에 도래와, 자본주의의 인간성 상실이 심각했던 시기로, 작품의 뚱보 조지 또한 현대 사회의 불만족과 소외 등을 통해 일탈을 꾀한다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사실대로, 객관적으로 표현하자면 조지의 옛 생활은 지금보다 풍요롭거나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지금의 자신을 본다면 버젓이 집을 장만하고 살고 있는 것을 대견하다고 생각할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 자신이 좋아하는 낚시를 하고, 형의 패거리들과 몰려다니며 말썽을 부리고, 한 여인과 사랑을 나누던 그 시절을 좋았던 옛 시절 또는 황금 같던 시절로 표현한다. 별거 아닌 과거, 옛 시절이지만 무엇 때문에 지금보다 낫다는 것일까?

 

 

근대화가 진행되며 대규모의 주택단지, 공업단지 들이 생겨났다. 또한 기술적인 발전은 수치상으로 말 할 수 없을 만큼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변화는 단정지어 딱 어느 부분에서 얼마만큼의 변화가 되었다고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변화이다. 하지만 그 변화는 모두 장점만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산과 들을 개간하여 빌딩이 들어서고, 가축 되어지듯 길러지는 우리들의 모습. 무분별한 환경 파괴와 기업중심의 생활 등이 바로 행복한 그 시절을 부르짖게 만든 변화가 아닌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돌아온 조지에게 주어진 환경적 변화들. 그리고 거기에 맞춰 앞만 보고 달려온 20년의 시간들 저 편엔 숨쉬고 싶은 곳이 숨겨져 있었다. 그리운 추억을 되짚어 보러, 한가롭게 낚시를 하기 위해, 예전의 풍경을 바라보며 일상에서 탈출하는 일탈을 느껴보기 위해. 조지는 비자금을 들고 옛 고향을 향해 차를 몰기 시작한다.

 

 

소설은 전반적으로 전쟁의 발발을 암시하는 분위기로 가득 차 있다. 독일에서 히틀러가 활동하며 나치즘이 대두되고 있었고, 조지의 나라인 영국도 폭격기들이 날아다니며 훈련을 하고 있다. 소설은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이전에 쓰여졌기 때문에 이러한 오웰의 안목을 책을 소개하는 카피로 넘치게 사용하고 있다. 뭐 시대적인 상황에 누구나 그러한 분위기를 입감했다면 굳이.. 안목으로 까지..

 

 

아무튼 조지의 차가 고향에 도착하고 기대에 찬 마음에 마을을 둘러보지만 크게 실망해 버린다. 내 고향은 어디로 간 것인가? 숲이란 숲은 모두 베어내어 새로운 주택단지가 생겨나고 공장들이 잔뜩 들어와 있다. 한가롭게 낚시를 하던 연못이나 템즈강은 수 많은 사람들의 쓰레기와 보트운영으로 이미 물고기는 살지 못할 곳으로 변해있다. 조지가 사랑했던 연인. 그녀는 중년의 아줌마가 되어 완전히 망가진 채 발견된다. 지금의 아내에게 거짓말을 해서까지 계획한 일탈인데 이것이 얼마나 허무한 일이던가?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녀 보지만 그의 기억에 남아있는 장소는 찾아볼 수 없다. 여러 사람들과 말을 나눠 보지만, 더 이상 행복한 그 시절의 냄새는 맡을 수가 없다. 현대라는 이름의 괴물이 조지의 숨 쉴 곳마저 삼켜버린 것이다.

 

 

결국 지긋지긋 한 아내와 자식들 곁으로 돌아온 조지. 그와 더불어 우리는 더 이상 숨쉴 곳을 찾을 수 없게 된 걸까? 돌아오는 마지막 날 마을에 폭탄이 떨어져, 황폐해진 기억 마저 앗아가 버린다. 근대화의 과도기에 자라나 행복한 시절을 회상할 수 있었던 조지에 비해, 우리는 그러한 기억 속의 숨 쉴 곳이라도 존재하고 있을까? 거대한 콘크리트 빌딩 속에서 물질적인 풍요보단 정신적으로 풍요했던 시절을 떠올릴 수나 있을까? 과연 우리가 숨 쉴 곳은 어디인 것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정치적인 색이 적은 오웰의 책을 만나서 약간은 어색했다. 읽는 내내 오웰의 책이란 것을 망각할 정도로, 그는 내게 정치적인 작가로 자리를 잡았었나 보다. 하지만 그의 순수문학 물론 정치적 작가로 변해가는 과도기의 작품이지만 또한 비판과 풍자가 적절히 섞여있어 완전히 색다른 맛이라고 하긴 힘들지도 모르겠다. 삶에서 작은 일탈을 통해 바라본 우리의 삶의 모습들. 내 삶의 가치보단 국가, 기업에 예속되어 정작 내가 찾고, 보고 싶은 것들을 하지 못하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되새겨 보게 된다. 약간은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지만 오웰식 유머로 재미있게 버무려낸 숨쉬러 나가다. 앞으로 남은 소설들의 번역도 기다려 볼만 할 것 같다.







n******s 2011.04.22. 신고 공감 7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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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나지 않는 한...
"전쟁이 끝나지 않는 한..." 내용보기
"어떤 일이든 다 벌어지고 말리라.' 우리가 마음 한구석에 두고 있는 일들,끔찍이 두려워하는 일들,악몽일 뿐이거나 외국에서나 있는 사건이라고 자위하는 일들이 전부 벌어질 것이다. 폭탄,식량배급줄,경찰봉,철조망,무슨 색 셔츠단,슬로건,거대한 얼굴 포스터,침실 창 밖으로 갈겨대는 기관총.그 모든 일이 일어나고 말 것이다.(중략) 하지만 벗어날 길은 없다.일어날 수밖에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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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든 다 벌어지고 말리라.' 우리가 마음 한구석에 두고 있는 일들,끔찍이 두려워하는 일들,악몽일 뿐이거나 외국에서나 있는 사건이라고 자위하는 일들이 전부 벌어질 것이다. 폭탄,식량배급줄,경찰봉,철조망,무슨 색 셔츠단,슬로건,거대한 얼굴 포스터,침실 창 밖으로 갈겨대는 기관총.그 모든 일이 일어나고 말 것이다.(중략) 하지만 벗어날 길은 없다.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인 것이다." (숨쉬러 나가다 중에서)

정말,이것은 받아 들여야만 하는 숙명일까?

볼링이 그랬던 것처럼,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동물농장>>의 무대였던,'매너 농장'으로 다시 가 보고 싶어졌다.

어느날 밤,매너 농장으로 동물들은 모여 든다. 더이상은 노예와 같은 비참한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동물들은 자신들의 비참스런 모습에 드디어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오히려 '삶의 본질'에 그들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볼링의 생각과 너무도 같은,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드디어 하기 시작한 거다.

 

<<숨쉬러 나가다>>의 주인공 볼링은 우울하다.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하지만 행복하지 않다. 많지 않은 나이에 이미 틀니를 하게 된 것도,남들 보다 조금은 뚱뚱한 외모도,불만스럽다.게다가 먹여 살려야 하는 가족에 대한 부담감은,그를 더욱 옥죄게 한다.

사는게 그런 까닭이라고,생각은 하지만,왜 어째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는 것일까? 왜 나는 내가 좋아하는 낚시도 마음껏 즐길 수 없는 것일까?

다시 매너농장의 동물들의 풍경을 들여다 보자.

동물들은 자신들의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없는 것에 대한 원인은 오로지 인간들의 탐욕스러움 때문이라 생각한다.인간들만 몰아낸다면 그들은 풍족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동물농장의 동물들은 과연 행복해졌던가? 그들은 소위 반란(?)을 통해,혁명이라 해도 좋겠고,어쨌든 자신들의 목적인 인간을 몰아내었다. 그렇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다른 노예가 되어 버리는 모습이였다. 이런 풍경은 ,
자본주의 노예로 전락한 우리들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었다.

볼링도 말하지 않던가? 주민의 9할은 자신들이 집을 소유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지만,그것은 주택금융조합의 영악한 사기 일 뿐이라고. 집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지만,집이 생기게 되면 사람들은 과연 만족하던가? 더 큰집을 찾아 볼 궁리,뉴타운에 투자할 생각들을 할 뿐이다.

그럼,도대체 이런 문제들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어째서 동물농장주 매너는 동물들이 반란을 일을킬 수 밖에 없게 만들었으며,볼링의 삶은 왜 퍽퍽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전쟁'때문이라고 볼링은 생각한다.

총을 들고 상대방을 겨눠야만 우리는 전쟁이라 생각하지만,지금 이순간에도 우린 끝임없이 전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작가는 말해 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언제나 싸우고 부산을 떨어야 한다는 느낌,남한테서 빼앗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리라는 느낌, 내 자리를 노리는 누군가가 반드시 있다는 느낌,다음달이나 그 다음달이면 감원이 있을 것이고 이번은 내 차례일 것이라는 느낌.'그런'건 전쟁 이전의 옛 시절엔 존재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동물농장>>속 나폴레옹과 스노볼의 모습은 동물농장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것이다.

때로는 내 모습에 나폴레옹의 모습도,스노볼의 모습도 있었을 것이다.그리고 작가는 볼링을 통해 다시 한 번 인간의 우둔함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당연히 이런 숨막히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란 숨쉬러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일텐데..
그것도 생각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였다

 
아....
정말 숨쉬러 나가고 싶다.

그러나,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이미 쓰.레.기!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았다.

천국이란 이상은 어쩌면 그저 허상일지도...

'전쟁'이 멈추지 않는 한 우리들의 숨쉬기는 늘 숨가쁨일지도 모르겠다.

 

w*******i 2011.05.10. 신고 공감 3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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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현실에 불안한 현대인의 삶을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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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지난 자신의 오랜 과거시절과 비교하여 과연 행복을 그때보다 조금 더 느끼고 살아가는 것일까.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면서 물질의 풍요로움과 생활의 편리성이 늘어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만큼 비례하여 우리가 느끼는 행복의 정도가 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생각해보면 오히려 지금과 같은 불확실한 현실에 현대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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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지난 자신의 오랜 과거시절과 비교하여 과연 행복을 그때보다 조금 더 느끼고 살아가는 것일까.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면서 물질의 풍요로움과 생활의 편리성이 늘어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만큼 비례하여 우리가 느끼는 행복의 정도가 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생각해보면 오히려 지금과 같은 불확실한 현실에 현대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마치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것처럼 고통과 아픔의 형국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하는 것도 개인적으로 그리 과한 억측은 아니라고 본다. 오늘보다 나은 희망찬 미래를 바라며 매일 같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보지만, 점점 치열한 경쟁에 내몰려지면서 우리의 인간관계는 점점 건조무의미해지고 잠깐 동안의 여유조차도 찾아 볼 수없는, 어쩌면 우리는 오히려 마치 하루살이와 같은 불안한 삶을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겨지기도 한다.


먼저 이 작품은 조지오웰이 한때 지병을 앓게 되면서 모로코로 휴양을 갔다가 그 기간 동안 쓰게 되었다고 하는데 발표 당시 독자들의 호응이 좋았으나, 곧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묻혀 있다가 전쟁이 끝난 뒤 그의 베스트셀러와 함께 재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그의 에세이에서 자신의 작품 활동이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작업이라고 밝혔듯, 이후 작품들이 정치적인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다고 보면, 이 소설의 내용은 순문학에 가까운 편이어서 독자들이 그의 감성적인 면을 엿볼 수 있는 보기 드문 작품이라 하겠다.


작품 속 배경은 주인공 조지 볼링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1910년대의 어느 영국의 작은 시골의 풍경에서 그가 성장하여 그곳을 벗어나 전쟁을 겪으면서 도시로 이주하여 결혼과 함께 가정을 이끌어 가는 1930년대 후반까지를 주 무대로 하고 있다. 조지볼링은 약간은 뚱뚱한 외모를 가진 평범한 중산층으로 현재 보험 외판원을 하고 있는 한 집안의 가장이며, 그의 아내는 남편의 일정한 수입에도 불구하고 매일 같이 절약을 강조하며 돈 걱정에 불평을 늘어놓으며 바가지를 긁어대는 아이 둘을 키우지만 자기관리에는 소홀한 아줌마다. 어느 날 조지는 친구가 권유한 경마 베팅에 내키진 않지만 약간의 돈을 걸었다가 생각지 않은 목돈의 배당금을 손에 쥐게 되는데, 아내 몰래 이를 어디에 써야 할지 오랜 고민 끝에, 문득 자신이 떠나온 오래전 고향을 방문하여 멋진 날들을 보내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는 자신의 사소한 행동에도 급작스런 반응을 보일 정도로 눈치가 빠른 아내와 회사에 둘러댈 적당한 알리바이를 사전에 계획하여 통보한 뒤에, 그는 이윽고 자신의 차를 몰고 자신이 태어나 자랐던 평화롭던 그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흥분과 부푼 기대감으로 과감한 일주일의 비밀 여행을 떠난다.


그는 어른이 되어 결혼하기까지 로어빈필드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성장했는데, 집안의 가세가 기울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식료품 가게 점원으로 일하다가, 전쟁이 터지면서 징병되어 나중에는 운 좋게도 장교로까지 진급되어 제대하면서, 지난날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서 벗어난 약간은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가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한 것이다. 그러나 얼마 못가 자신의 아내가 멋도 부릴 줄 모르고 애교도 없는, 오히려 매일 같이 자신의 사소한 작은 행동하나에도 잔소리만 늘어놓는 재미없고 따분하기만한 결혼생활을 왜 하게 되었을까 하는 뒤늦은 회의감과, 직장에서 힘들게 일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어느새 기계적이고 숨 막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떠나게 된 뜻하지 않은 이번 그의 여행이, 비록 겉으로 보이기에 일탈적인지만 그 이면에는 답답한 현실을 뒤로 하고 숨쉬러나가고 싶은 그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우여 곡절 끝에 도착한 20년 만에 다시 찾은 그의 고향은 그의 기억에 남아있던 것과는 달리 흉하고 볼품없는 작은 도시로 모든 것이 변해 있었으며, 그 모습을 보게 된 그는 차라리 오지 말았으면 하는 후회감에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그의 눈앞에 나타난 현실은 악몽 같은 또 다른 시간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누구나 행복한 미래의 꿈을 꾸며 살아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자기 앞에 놓은 현실은 그러한 이상과는 다소 거리가 먼 힘들고 버거운 일들로 가득해 있을지 모른다. 그런 맥락에서 이 작품은 어디에도 자신의 자유와 행복을 위한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보이지 않는 고통과 아픔을 대변한 그런 작품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다. 돌이켜보면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여러 상황들은 여전히 불확실하고 그로 인해 고단한 현실의 고통스런 삶이 지속되는 것은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실의 아픔은 더욱더 커져갈 것이고 답답하게 죄어 오는 암울한 현실의 일들은 그만큼 우리의 더욱 초라하게 만들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자신에 남은 삶까지를 쉽게 포기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차라리 자신을 위안해줄 인간적인 그 무언가를 외부에서 찾기보다, 거친 인생이라 해도 스스로의 삶 속에서 보람을 찾으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현재보다 조금 더 노력을 기울여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p*******3 2011.06.03.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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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가 오기 전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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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동물농장>과 <1984>의 충격과 감탄이 <숨 쉬러 나가다>로 이어졌다. 이 책은 사실은 앞의 두 권보다 앞서 나온 책이며 내용 면에서도 두 시대를 앞선 시간의 이야기이다. 즉, 전쟁이 벌어지고 파시스트가 세상을 지배하기 전의 불안과 흉흉함이 주를 이루던 시대의 이야기이다. 그가 그려내는 디스토피아의 세계, 그 시작에 <숨 쉬러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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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동물농장>과 <1984>의 충격과 감탄이 <숨 쉬러 나가다>로 이어졌다. 이 책은 사실은 앞의 두 권보다 앞서 나온 책이며 내용 면에서도 두 시대를 앞선 시간의 이야기이다. 즉, 전쟁이 벌어지고 파시스트가 세상을 지배하기 전의 불안과 흉흉함이 주를 이루던 시대의 이야기이다. 그가 그려내는 디스토피아의 세계, 그 시작에 <숨 쉬러 나가다>가 있었던 것이다.1984를 1948년에 썼고 1938년에 1893년 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숨 쉬러 나가다를 썼다니 숫자를 뒤바꿔 설정한 번득이는 기지에 칭찬부터 나온다. 그럼 1984년이 오기 전의 세상으로 숨 쉬러 나가보겠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틀니를 하게 된 45세의 남성으로 퉁퉁한 몸집의 조지 볼링이다. 가정은 악몽처럼 괴롭히는 마누라와 거머리처럼 피를 빠는 아이들이 있는 곳이오, 직장은 못되게 구는 상사가 있는 곳이라 느끼는 평범한 가장이다. 반면, 1984의 주인공은 자유, 평등, 진실, 사랑 등을 박탈해버린 전체주의 사회에서 무기력에 빠져 있지만 마음을 나누는 사랑을 하고싶은 삼십대 후반의 윈스턴이다. 윈스턴에 대한 자세한 외모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공간적배경으로 추측컨대 매우 마르고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둘은 현실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 불만을 느끼고 안주하지 못하는 인물들이다.

<숨 쉬러 나가다>의 볼링이 사는 세상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산업화로 바뀌는 과정에서 느끼는 하류층의 불안과 또 다시 전쟁이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섞인 어두운 시기이다. 반면 1984의 배경은 이미 그 전쟁은 시작되었고 파시스트가 모든 것을 철저히 지배하는 암흑의 시대이다. 양쪽 모두 암담한 현실이다. 조지 오웰은 왜 이렇게 현재와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생각을 품었을까? 시대와 문명의 위기를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가 아니었을까.

 

자신의 뚱뚱한 외모를 함부로 대하는 사회와 전투기가 날아다니고 잘린 여인의 다리가 발견 되는 흉흉한 현실에서 낚시를 좋아했고 독서를 좋아했던 어린시절의 고향으로 떠나고픈 마음, 바로 숨 쉬러 나가고픈 마음이 볼링에게 강하게 일어난 것은 틀리를 하던 날이었다. 뭘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단지 평화와 정적을 원하는 마음으로 유년 시절 느낌에 젖어들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찾은 곳은 이미 기억 속의 고향이 아니었다. 다 삼켜져버렸다는 뜻이 맞을 듯 큰 공업타운이 들어선 고향은 낯선 곳이 되어 있었다. 고향의 예전 모습을 기억하는 자신이지만 정작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곳이다. 1984에서의 윈스턴도 금지되어있는 자유를 찾아 지하조직에 가담한다. 이렇게 두 작품 속 주인공이 타인의 눈을 피해가며 이탈을 저지른다는 면에서 꽤 닮아있다. 그런데다가 윈스턴 또한 현실의 벽에 부딪쳐 결국엔 이탈이 좌절로 끝난다는 것도 꽤나 비슷하다. 

볼링이 꿈꾸던 장소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커다란 물고기가 있던 자신만의 비밀 연못은 깡통이 가득한 큰 구덩이가 되어있었다. 숨 쉬러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이곳엔 더 이상 숨 쉴 공기가 없어진 것이다. 그러면서 볼링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에게 닥칠 것은 무엇인가? 게임은 정말 시작되었나? 우리는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세계는 영영 사라져버린 것일까?' 질문 보다 더 잔인한 그의 대답이 미래에 대한 어두움과 두려움을 확대시킨다.

'옛 시절은 끝나버렸고, 그걸 다시 찾으러 다닌다는 건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어떤 일이든 다 벌어지고 말리라. 우리가 마음 한구석에 두고 있는 일들, 끔찍이 두려워하는 일들......하지만 벗어날 길은 없다.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인 것이다'

그리고 1984년에 그 일들이 일어 났다.

 

소름끼치게 앞 뒤가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들이었다. 조지 오웰이 보여주는 반유토피아의 세계는 소설이 줄 수 있는 간접경험의 최대치를 맛보게 해주는 것 같았다. 빈틈 없이 짜여진 구조, 날카로운 통찰력이 보여주는 인간의 본성, 마음에 깊이 남는 주제의식 등, 그의 작품은 매 번 울림이 크다.

그가 지금도 살아있다면 우리에게 어떤 현실과 미래를 보여줄까?

g******a 2011.05.0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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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에 대한 부담감을 가시게 해준, 그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해준 재미있는 작품
""조지 오웰"에 대한 부담감을 가시게 해준, 그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해준 재미있는 작품" 내용보기
수십 년 만에 어릴 적 다녔던 초등학교 교정에 다시 섰다. 교문에서 교실까지 까마득하게 멀기만 했던, 우리 학교 운동장이 전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생각했던 그 운동장이 주위를 둘러보며 몇 걸음 걷자 금세 본관에 닿을 정도로 작았다니, 여름철에 우리에게 큰 그늘을 드리워졌던, 내 팔뚝보다도 굵었던 등나무 줄기가 저렇게 가늘고 보잘 것 없었다니, 책걸상이며 칠판이며 유리 창문
""조지 오웰"에 대한 부담감을 가시게 해준, 그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해준 재미있는 작품" 내용보기

수십 년 만에 어릴 적 다녔던 초등학교 교정에 다시 섰다. 교문에서 교실까지 까마득하게 멀기만 했던, 우리 학교 운동장이 전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생각했던 그 운동장이 주위를 둘러보며 몇 걸음 걷자 금세 본관에 닿을 정도로 작았다니, 여름철에 우리에게 큰 그늘을 드리워졌던, 내 팔뚝보다도 굵었던 등나무 줄기가 저렇게 가늘고 보잘 것 없었다니, 책걸상이며 칠판이며 유리 창문이며 현대식으로 말끔히 단장해서 예전 모습은 찾아볼 수 는 없었지만 크기만큼은 변함없는 저 작은 교실에 60 여 명이 넘는 아이들이 어떻게 다 들어갈 수 있었는지.........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여유로움을 찾기 위해 수십 년 만에 떠난 초등학교 시절로의 추억 여행은 아련한 향수(鄕愁)를 느끼기 보다는 너무나도 변해버린 풍경에 생소함과 낯섦만 확인했던 그런 시간이 되고 말았다. <1984>, <동물농장>으로 이제 고전 작가  - 시대적인 의미가 아니라 누구나 꼭 읽어야 할 “필독서(必讀書)”라는 의미이다. 동시대를 살았던 “헤르만 헤세” 작품처럼 말이다 - 반열에 오른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숨쉬러 나가다(원제 Coming up for air(1939)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은 이처럼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20년 전 떠나온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너무나도 변해 버린 고향 모습에 안식은 커녕 숨이 막히는 것 같은 경험을 했던 한 중년 남성의 이야기이다.

 

 “징그럽게” 뚱뚱하지도 않고, 뱃살이 반쯤 아래로 처지는 것도 아닌, 엉덩이 둘레가 좀 불룩해서 술통 같아 보이는 경향이 있을 뿐인 마흔 다섯 살의 중년 남성 “나(조지 볼링)”는 올헤 서른 아홉이자 시시한 “재앙”- 버터 값이 오른다거나 가스 요금이 엄청나게 나오는 것 등의 - 을 내다보는 것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 타입의 수다스러운 아내 “힐다”와 아침마다 들소 떼 몰려오듯 우당탕거리는 소리를 내며 욕실로 들이닥치는 두 아이를 기르고 있는 평범한 가장이다. 징글맞은 1월의 어느날, 새 틀니를 하던 그날 아침에 하루 휴무보다도 나를 더 기분 좋게 하는 일은 친구가 무릎 꿇고 빌며 사정하여 경마(競馬)에 돈을 걸고 말았는데, 걸었던 암말이 가볍게 우승하면서 내 몫으로 17파운드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은행에 돈을 넣어둔 나는 그 돈을 어디다 쓸까 고민하다가 20년 이 넘게 가보지 못하고 있는 고향을 떠올린다(책에서는 회상 장면이 꽤나 길게 소개된다). 아웅다웅하기만 한 현실이 주는 중압감을 떨쳐 버리고 오로지 자신 혼자만의 공간에서 편히 쉬고 싶다는 생각 - “숨 쉬러 나가다” - 에 어린 시절의 옛 마을로 떠나 일주일을 보내다 올 계획을 세우고 마침내 알리바이를 꾸며 고향으로 떠나게 된다. 부푼 기대를 안고 도착한 옛 고향 마을, 그런데 옛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큰 공업타운으로 변해 버린 모습에 당황스럽게까지 느껴진다. 고급스러운 호텔로 변모해버린 주점, 멋 부린 찻집으로 변해버린 나의 생가이던 가겟집,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성당의 신부님, 정신병원이 되어 버린, 비밀의 연못이 있던 주택 등 어느 하나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변해버린 고향의 풍경과 뒤태가 익숙해 따라가 본 퉁퉁한 중년여인인 알고 보니 옛 연인 “엘시다”였는데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모습에 실망스럽기까지 한, “숨 쉬러” 왔는데 “숨 쉴 공간”은 이미 아득히 사라져 버린 그런 상황을 맞닥뜨리고야 만다. 결국 쉼 쉴 공간을 찾지 못하고 집으로 되돌아와야 만 했던 나는 혹 고향에서 들었던 아내가 위독하다는 라디오 방송 - 속임수로 치부했던 - 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돌아오지만 다행히 라디오 방송은 동명이인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런 나에게 아내는 딴 여자와 놀아난 것이 아니냐고 다그치고, 내가 바랄 수 있는 건 가장 말썽이 적을 노선, 즉 아내에게 사실대로 말하든지, 아니면 기억이 안난다는 둥 구태의연하게 능글거리며 버티던지, 그냥 딴 여자랑 있었다고 생각하게 놔두고 벌을 받든지 세 가지 가능성을 떠올린다. 그런데......“젠장할! 셋 중에 어느 것을 택해야 하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작품이 발표된 게 1939년이었으니 주인공 조지 볼링이 살았던 시기는 2차 세계 대전이 막 시작될 혼란스러운 유럽이었고, 그가 회상하는 20년 전 고향 마을은 1910년대, 역시 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었던 그런 시기였으니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지금 현대 상황과 비교해도 전혀 다르지 않는, 그 시대를 짐작하게 하는 몇 가지 상황들 - 런던 상공을 가로 질러 날아다니는 폭격기,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전쟁 소식 등 - 을 제외한다면 지금 현대 사회 어느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이고 있어 마치 수십 년 후의 지금 사회를 내다보고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물론 조지 오웰의 걸작이라는 사회성 짙은 소설들인 <동물농장>,<1984년> 이전에 발표된, 낭만주의와 정치풍자 소설 경향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는 작품이라고 하니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현대화” - 지금은 “개발”이라는 말이 더 익숙한 - 라는 이름 하에 자꾸만 과거의 질서와 가치관이 사라져만 가는 상황은 100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전혀 변함이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수십 년 만에 다시 찾아본 “초등학교”에서 낯섦만 느꼈던 나처럼 주인공에게 더 이상 숨 한번 제대로 쉬어볼 공간이 되지 못하는 “고향”은 이제는 다시 되찾을 수 없는 그런 공간이 되어버리고 만 셈이다.

 

사실 조지 오웰의 <1984년>과 <동물농장>을 제대로 읽지 못했던 - 두 권 모두 청소년 시절에 읽었던 터라 함의(含意)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텍스트만 읽었었으니 엄밀히 말하면 “제대로” 읽지 못한 셈이다 - 나로서는 이 책도 조지 오웰 특유의 정치 풍자나 사회 비판을 담고 있는 “어려운” 책이겠니 하는 선입관에 쉽게 시작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막상 읽고 시작하고 나니 평범한 중년 가장의 짧은 일탈이라는 이야기가 주는 재미에 푹 빠져 전혀 막힘없이 술술 읽히는 참 재미있는 책이었다. 물론 책 곳곳에 당시 정치, 사회적 상황에 대한 비판 의식이 담겨 있지만 시대적 배경으로서만 이해한다면 굳이 책을 읽는 데 방해할 정도로 그리 심각하지 않고, 그래도 어렵다면 건너 뛰고 읽어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무난한 수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도 심각함과는 거리가 먼, “이 작품이 조지 오웰 작품 맞아?” 하고 의문이 들 정도로 가볍고 재미있는 장면들이 등장하는데, 특히 마지막 페이지에서 주인공의 부재(不在)를 닦달하는 아내에게 주인공이 세 가지 변명꺼리를 떠올리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절로 터져 나올 정도로 코믹스러워 마지막 페이지까지 부담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세계대전이라는 대혼란기에서의 시대적인 모순과 불안을 다룬 작품으로 평가할 수 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심각한 부분은 싹 걷어내고 그저 평범한 중년 남성의 소심한 일탈을 그린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내 멋대로 이해해버린, 그래서 더 재미와 공감을 불러일으킨 그런 작품이었다.

 

 부담감으로 시작했지만 의외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그런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조지 오웰”, 그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검색해보니 그저 <1984년>, <동물농장> 정도만 알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꽤나 많은 작품들이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한 권으로 그에 대한 부담감을 떨쳐 버렸다고 말 할 수 는 없겠지만 이 책이 나에게는 조지 오웰이라는 작가를 새롭게 알아가게 만드는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전환점”과 같은 작품이었음에는 분명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a*****7 2011.06.14.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숨 쉬러 나가다] 숨 쉴 곳 없는 잔인한 현실이란 참...
"[숨 쉬러 나가다] 숨 쉴 곳 없는 잔인한 현실이란 참..." 내용보기
언제부턴가 사회고발성격의 책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참 좋은 세상, 따뜻한 사람들이라는 교과서적 포장에 길들어온 내가 스스로 찾아 본 ‘진짜’세상은 그렇게 따뜻하고 밝은 곳이 아니었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이야기가 딱 들어맞는 그런 곳이 내가 숨 쉬고 살아가는 세상이었는데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이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느끼는 걸까 새삼스레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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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사회고발성격의 책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참 좋은 세상, 따뜻한 사람들이라는 교과서적 포장에 길들어온 내가 스스로 찾아 본 ‘진짜’세상은 그렇게 따뜻하고 밝은 곳이 아니었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이야기가 딱 들어맞는 그런 곳이 내가 숨 쉬고 살아가는 세상이었는데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이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느끼는 걸까 새삼스레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아마도 내가 여전히 책을 즐겨 읽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올해 초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을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 어리석은 인간사회를 우화적으로 비판한 그의 풍자적 위트에 넋이 나갔다면, 함께 읽은 그의 저서 ‘위건부두로 가는 길’은 마치 한 편의 다큐를 글로 옮겨 놓은 것 같아 놀랍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조지오웰이라는 작가에 대한 기대가 하늘을 찌를 때 쯤 만난 세 번째 작품이 바로 ‘숨 쉬러 나가다’였다.

암울하고 답답한 현실과 그에 따른 불안이라는 주제 때문에 많이 무거울거란 예상을 뒤로 하고 한 편의 콩트를 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소설이었다. 오히려 ‘위건부두로 가는 길’을 읽었을 때는 탄광촌의 삶과 그곳에서 생활하는 노동자들의 하루하루가 생생히 고발되어진 활자 속에서 질식될 것 같고 우울하기만 했는데 이 책은 어딘가 통통 튀는 매력마저 느껴진다. 이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비극을 뛰어넘는 블랙코미디라는 말이 제격이라고 생각된다. 분명 비극적이고 슬픈 현실이 드러나지만 울어야 하기 보다는 어이없게도 실소가 터져 나오는 그런 느낌말이다.

 

여기 뚱뚱한 중년의 보험 영업사원이 있다. 토끼같은 자식과 여우같은 마누라사이에서 벗어나고픈 일탈을 꿈꾸는 그는 우연히 생긴 공돈으로 그 소망을 실행에 옮긴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기회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고민하던 그가 선택한 것은 멋진 여자와의 하룻밤도, 물 좋은 곳에서 환락의 밤을 보내는 것도 아니었다. 엉뚱하게도 20년 전 떠나온 고향을 찾아가는 것. 마치 우연히 낡은 서랍 속 한 구석에 쟁여놓았던 오래된 노트를 펼친것인양 어린 시절의 추억이 몽글몽글 되살아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마도 그곳에서라면 지금과는 다른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숨통이 트일 수 있을것이리라 그는 생각했더랬다. 허나 내가 지금까지 치열하게 살아오고 있었다면 나의 고향 역시 그런 시간을 함께 견디었을거란 걸 예상하지 못한 그의 선택이 어리석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제 과거로 돌아가 본다는 생각일랑은 끝이다. 소년시절 추억의 장소에 다시 가본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런 건 존재하지도 않는다. 숨 쉬러 나가다니! 숨 쉴 공기가 없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쓰레기통 세상의 오염은 성층권에까지 도달해 있다.” [숨 쉬러 나가다 중]

 

숨 쉴 현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없었던 것이다. 지금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좋았을 것처럼 그 어딘가를 꿈처럼 찾아보지만 결국 내가 보고 느끼는 이 공간이 최종 도착지였음을 진작에 알았어야 했다. 이렇게 조지오웰의 작품 속에서 만난 시대는 도대체가 희망이 없어 보인다.

 

“3페니로 고기는 얼마 못 사지만 ‘피시 앤드 칩스’는 충분히 살 수 있다. 우유 한 파인트가 3페니고 ‘순한’ 맥주도 4페니나 되지만, 아스피린 1페니에 일곱 알이며 차는 4분의 1파운드 한 다발로 40잔을 짜낼 수 있다. 단연 돋보이는 것은 모든 사치 중에서도 가장 값싼 도박이다.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이라 해도 당첨금에 1페니를 걸어봄으로써 며칠간의 희망을(그들 말대로 “삶의 이유가 되는 무언가를”) 살 수 있는 것이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중]

 

당장 먹고 살 돈이 부족하면서도 도박으로 단 며칠의 희망을 사는 그들, 아니 우리들이 사는 세계가 이런 곳이다. 그렇지만 그의 글이 우울하고 비참해서 숨통이 막힐 지경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도 조지오웰이 냉철하게 현실을 파악해가는 모습이나 그럼 그렇지라고 간단하게 인정해버림으로써 현실을 슬픈 현실이 아닌 ‘그 자체’로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준다.

 

“그렇다면 현대 생활의 현실이란 대체 무엇인가? 아마 제일 주된 것은 무언가를 팔기 위한 끊임없는 광적인 발버둥이 아닌가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자신을 파는 형식을 띤다. 달리 말해 일자리를 구하고 자리를 보존하는 것이다... 그런 현실은 인생살이에 참 별나고 살벌한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생존자는 열아홉 명인데 구명튜브는 열네 개밖에 없는 난파선에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게 특별히 현대적인 형상인가, 할지도 모르겠다. 그게 전쟁과는 무슨 상관인가? 나로서는 전쟁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싸우고 부산을 떨어야 한다는 느낌, 남한테서 빼앗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리라는 느낌, 내 자리를 노리는 누군가가 반드시 있다는 느낌, 다음달이나 그 다음달이면 감원이 있을 것이고 이번은 내 차례일 것이라는 느낌.” [숨 쉬러 나가다 중]

 

부족한 난파선의 구명튜브를 붙들려고 혹은 붙들기 위해 발버둥치는 나란 인간이 바로 여기에도 있었다. 그런데 간신히 붙든 튜브에 작은 구멍이 뚫려있어 얼마 가지 못한다는 걸 알았을 때의 그 상실감이란?!!! 그걸 깨닫고 몸서리를 치는 인간...이 바로 나인지도 모른다.

숨 쉬러 나가고 싶어 뛰쳐 나가보지만 결국엔 숨 쉴 곳마저 찾지 못하는 이 잔인한 현실이여~ 70년 전 이나 지금이나 어찌 그리 변한 것이 없는지 놀랍기만 할 뿐이다.

s*****m 2011.05.11. 신고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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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기가 정말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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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과 <1984년>을 통해서 조지 오웰은 국내 독자들에게 깊은 각인을 남기고 있다. 그 각인이란 것은 특히 전체주의 이데올로기가 가져오는 결과를 정확하리만큼 예측한 그의 혜안과 더불어 이데올로기를 해학으로 자아내면서 이데올로기속에 갈등하는 인간 내면의 세계를 가감없이 보여주었던 기억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지향적인 작품들이 오웰의 이미지를 상당히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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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과 <1984년>을 통해서 조지 오웰은 국내 독자들에게 깊은 각인을 남기고 있다. 그 각인이란 것은 특히 전체주의 이데올로기가 가져오는 결과를 정확하리만큼 예측한 그의 혜안과 더불어 이데올로기를 해학으로 자아내면서 이데올로기속에 갈등하는 인간 내면의 세계를 가감없이 보여주었던 기억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지향적인 작품들이 오웰의 이미지를 상당히 딱딱하게 남기도 했던 것 역시 부인할 수는 없다. 물론 작가자신의 특이한 이력이 밑바탕이 되어 작품으로 승화되었지만 왠지 오웰하면 정치소설이라는 항등식이 오래토록 남게된 원인이기도 하다. 이러한 영향으로 이번 국내에 초역된 <숨쉬러 나가다>역시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와 산업자본화에 대한 또 다른 담론을 담고 있는 작품일거라는 선입관을 지울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품의 전체적인 내러티브는 <동물농장>,<1984년>에 비해서 다소 이데올로기적인 뉘양스가 흐릿하게 엿보이지만 전반적인 맥락에서 이번 작품역시 당시대를 관통하는 거부할 수 없는 패러다임에 대한 작가만의 항거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1차세계대전을 극복하고 재건시대로 접어들었지만 왠지 또 다른 전화의 조짐이 일기 시작했던 당시 2차 세계대전을 암시하는 과정에서 평범한 보험세일즈맨의 이탈을 통해서 푹풍전의 불편한 평온을 평범한 중년 남성의 삶에 투영시켜 그 당시 시대적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보험세일즈맨이라는 극히 평범한 중년 남성의 일상생활의 이탈마저도 허무하고 헛된 망상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즉 당시를 살아가는 모든이들에게 전쟁과 산업자본이라는 거대한 괴물의 습격을 피할 수 없다는 다소 회의론적인 메시지가 강하게 풍기고 있다. 작가는 작중 주인공의 평온했던 과거사를 작품 전반에 배치하면서 정치적인 뉘양스를 덮을려고 하고 있지만 외히려 이러한 일련의 장치가 극적인 효과를 배가 시키고 있다. 70년전에 발표된 작품이지만 지금 이시대를 살아가는 중년남성들의 생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한번 오웰의 혜안에 감탄하게끔 하는 작품이다. 숨쉬러 나갈 틈조차 없이 다람쥐 챗바퀴속을 달려가고 있는 이 시대의 중년 남성들에게 헌사할 수 있는 작품으로 국내에 소개된 오웰의 전작에서 보여준 해학과 위트가(결혼에 대한 생각이나 전쟁에 대한 또 다른 시각등에서) 적절히 가미되어 독자들로 하여금 다양한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1938년 런던 안팎의 무겁고 답답한 시대 분위기가 2011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듯하게 그리고 있어 왠지 마음을 무겁게 한다.

l******e 2011.07.28.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