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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어른동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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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하면 뭐가 떠오를까? 난 팀 버튼 감독의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생각난다. 우스꽝스럽게도 이 앨리스 영화의 포스터 주인공은 신사였다. 조니 뎁이었고, 그 유명세와 극중 비중을 생각한다면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실비와 브루노’라는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순 있을까? 재창작의 문제에서 두께가 15M쯤 되는 아다만티움 벽에 직면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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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하면 뭐가 떠오를까? 난 팀 버튼 감독의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생각난다. 우스꽝스럽게도 이 앨리스 영화의 포스터 주인공은 신사였다. 조니 뎁이었고, 그 유명세와 극중 비중을 생각한다면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실비와 브루노’라는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순 있을까? 재창작의 문제에서 두께가 15M쯤 되는 아다만티움 벽에 직면한 것 같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원작을 재작(再昨)함에 있어 원작에서 표현된 언어유희 등을 쳐낸 것처럼, 실비와 브루노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실비와 브루노의 첫 시작은 황당하다. 과거 환상문학이라고 하는 작품들을 읽어본 경험상, 이렇게 황당한 도입부는 거의 처음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이 처음의 이질감을 조금 극복하고 나면, 요정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궁금해 페이지를 넘기기 바빠진다. 화자인 ‘나’는 어느새 책을 읽고 있는 “나”로 변신해간다. ‘나’는 꿈을 통해 요정 나라의 모습을 보게 되지만, 현실에서 실비와 브루노가 나타나면서 꿈으로 보는 환상계와 현실계의 거리감이 좁혀진다. 그것이 묘하게 (실제로)느껴지면서 나중엔 분간을 하지 못하게 된다. 환상계와 현실계의 다리가 되던 ‘소리’들이 나중엔 ‘으스스한 느낌’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1 인칭 주인공 시점의 이야기들은 별로 읽어본 적이 없지만 다른 여타 글들이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야 작품의 말미에 가서는 올가미에 제대로 갇힌 꼴이 될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시가 나오는 부분이나 대화를 나누는 부분에서 나오는 심도 있는 이야기가 그 올가미를 때때로 느슨하게 풀어준다는 점이다. 독자로서는 집중력을 흩트리는 부분이다.


실 비와 브루노에서는 도중에 멈춰야 하는 부분들이 꽤 있다. 다시금 읽어서 이해를 하고 넘어가야할 것만 같은 대화들도 있다. 어린이들이 이런 수고를 할 것이라곤 생각하지도 않는다.(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탐구심에 불타는 어린이가 아니면 대부분 넘어갈 만한 어려운 얘기들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적이고 뭐시고를 떠나서, 어렵다. 어떻게 이런 내용을(실비와 브루노 안에서 다뤄진 주제들을) 어린이에게 읽히라는 건지……. 당최 모르겠지만 아마도, 조금 생각해보자면, 어린이들이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 이해가 될 만큼의 미래상을 보고 썼다고 하는 것이 그나마 루이스 캐럴에게 위안이 되지 않을까.


이 야기의 구조상으로 보면 확실히 실비와 브루노는 실험적인 작품이다. 작가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새로운 창조물’을 추구했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 새로움이 어른으로서 어린이에게 전해주려는 교훈 섞인 말들에 퇴색된 것 같다. 그렇다고 실비와 브루노의 매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브루노가 하는 깜찍한 말들이나, 아웃랜디시한 시계를 ‘나’가 사용해보는 장면, 그리고 멋진 삽화들은 상상력에 메마른 어른들조차 환상세계의 문을 두드릴 자격이 있다고 응원하는 것만 같다. 저자가 의도한 어린이를 위한 동화가 아니라 어른을 위한 동화로 훌쩍 넘어가는 것은 분명 저자가 의도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원작이 만들어진 시기를 생각하면 이렇게 생소하고 어렵고, 또는 거울 미로에 서있는 것처럼 알쏭달쏭하고도 그 면면에 비친 모습들이 만들어내는 즐거움에 사로잡힐 작품이 있었을까? 어른으로서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동화가 있다는 점은 왠지 축복받은 것만 같다.

 

s********a 2011.05.08.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실비와 브루노 - 앨리스 시리즈를 넘어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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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랜드는 자애로운 총독의 지배 하에 평온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총독의 욕심 많은 동생은 소심한 대법관과 멍청한 아내를 한패로 끌어들여 총독을 여행 보낸 뒤 자신이 황제에 즉위하여 모든 것을 독차지할 음모를 꾸민다. 그러자면 총독의 아이들인 실비와 브루노 남매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는데... 과연 천진난만한 실비와 브루노는 삼촌의 계략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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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랜드는 자애로운 총독의 지배 하에 평온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총독의 욕심 많은 동생은 소심한 대법관과 멍청한 아내를 한패로 끌어들여 총독을 여행 보낸 뒤 자신이 황제에 즉위하여 모든 것을 독차지할 음모를 꾸민다. 그러자면 총독의 아이들인 실비와 브루노 남매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는데... 과연 천진난만한 실비와 브루노는 삼촌의 계략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한편 이 모든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걱정하던 '나'는 갑자기 이상한 낌새를 채고 눈을 뜬다. 그랬더니 그곳은 시골로 향하는 여객열차의 객실이 아닌가! 그렇다면 방금까지 벌어진 일들은 단순히 꿈에 불과했던 걸까? 의문을 떨쳐 버리고 우연히 동석한 백작가의 따님과 흥미진진한 대화를 나누던 '나'의 눈 앞에 또 다시 아웃랜드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비치기 시작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로 문학사에 영원한 발자취를 남긴 루이스 캐럴(본명 찰스 도지슨)이 1889년에 발표한 판타지 동화. 심장질환을 앓는 중년남자 '나'를 화자(話者)로 삼아,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과 어딘지 알 수 없는 환상계에서 동시진행되는 두 가지 이야기를 보여준다. 하나는 환상계에 위치한 인간의 나라 '아웃랜드'를 무대로 총독의 아이들인 실비와 브루노가 사악한 삼촌의 음모로부터 도망쳐서 요정이 되는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나'의 친구인 젊은 의사 아서 포레스터가 이웃의 백작 영애를 사랑하지만 차마 고백하지 못하고 가슴만 태우는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환상계 파트에서는 주로 철없는 어린이인 실비와 브루노 남매가 천진난만하게 노는 모습이나 총독의 동생이 음험하지만 다소 우스꽝스러운 계략을 꾸미는 모습을 부조리극 비슷한 스타일로 보여주고, 현실 파트에서는 '나'와 아서, 그리고 백작 가문 사람들을 비롯한 이웃들의 대화를 통하여 당시의 여러 가지 이슈를 직설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우연히 내뱉은 한 마디나 분위기를 돋우는 음악, 한여름 낮의 노곤함 등등 다양한 계기를 통하여 현실과 환상을 오가면서 두 개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런 장면전환 수법은 처음에는 독자를 당혹스럽게 만들지만 익숙해진 뒤에는 마치 시계추처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화자의 정신상태와 싱크로하여 색다른 재미를 준다. 하지만 해설자에 불과한 그가 할 수 있는 일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고, 그저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며 가끔씩 맞장구쳐주는 것이 고작이다. 게다가 다른 인물들도 (음모를 꾸미는 총독 대리 일당을 제외하면) 그다지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편이 아니라서 다소 답답한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의 개성이 제법 뚜렷한 편이고 그들의 대사 하나 하나가 리듬감 있게 어우러지는 편이라 아무 생각 없이 술술 잘 읽히는 편이다. 단지 저자의 성향에 따른 동음이의어 말장난이나 정상적인 논리를 벗어난 인물들의 화법, 당시 사회배경이나 저자의 주변사정을 모르면 이해가 잘 안 가는 토론 등이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에 영문학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난해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문학의 독창성을 중요하게 여겼던 저자는 앨리스 2부작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보다 실험적이고 진취적인 방식의 새로운 동화를 쓰려고 고심했고, 그리하여 20여년에 걸친 구상 끝에 태어난 것이 본 작품이라고 한다. 덕분에 본서에는 앨리스 작품들과는 또 다른 독특한 매력과 시대를 앞서간 장치들이 가득하다. 인간의 본성과 당대의 현실에 대한 예리한 풍자, 작품 안과 밖을 넘나들며 스스로를 패러디하는 포스트모던스러운 태도, 어른의 눈으로 보면 이치가 닿지 않고 부조리하기 그지없으나 순수하고 변덕스런 어린이의 입장에서는 극히 자연스러운 대화들, 요정이면서도 실제 존재하는 아이들처럼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귀여운 주인공들, 현실과 꿈 사이를 위태위태하게 왕복하다가 급기야는 꿈의 존재가 현실에 뒤섞여 영향을 주기도 하는 스토리 구조 등 여러 모로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다. 해리 퍼니스의 고풍스러우면서도 익살맞은 삽화도 읽는 맛을 더해준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아쉬운 구석도 많은데, 가장 큰 문제는 개개의 에피소드는 몽환적이고 아기자기하지만 그 에피소드들을 하나로 묶는 통일적인 구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현실에서 펼쳐지는 아서의 백작 영애에 대한 짝사랑은 별다른 진전 없이 실연으로 치닫고, 환상에서 펼쳐지는 실비와 브루노의 모험은 중간부터 삼촌 일당이 아예 등장하지 않음으로써 별 의미 없는 소꿉장난만 계속되어 지루한 느낌을 준다. 현실 파트의 시니컬하고 메마른 분위기와 환상 파트의 부조리하고 재기발랄한 분위기가 너무나 대조적이고 각각의 내용이 많이 달라서, 대체 어린이와 어른 중 어느 쪽을 독자로 상정하고 쓴 건지 헛갈릴 정도다. (본문 내용으로 보아 저자 본인은 아무래도 어린이 대상으로 쓴 듯 하지만...)

특히나 환상 파트는 아예 명확한 결말이 지어지지 않아 이야기가 중간에 끊긴 듯한 인상까지 주는데, 이것은 원래 본서가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가 아니고 2부 구성으로 만들어진 작품의 전반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후반부에 해당하는 <실비와 브루노 완결편Sylvie and Bruno Concluded>은 1893년에 별도의 책으로 나왔는데, 이 작품에 대해서는 본서의 역자 해설에서 잠깐 언급될 뿐이고, 같은 출판사에서 이 책까지 펴낼지 어떨지에 대해서는 전혀 정보가 없기 때문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완결편을 보지 않고서는 이 작품 전체에 대한 온전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운 만큼, 최종적인 감상은 언젠가 완결편을 볼 기회가 있을 때로 미루어 둬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과연 나올 수는 있는 걸까? OTL)

 

z*****y 2011.05.05. 신고 공감 1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실비와 브루노] 앨리스에 가려진 루이스 캐럴의 역작, 드디어 한글 완역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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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와 브루노] 앨리스에 가려진 루이스 캐럴의 역작, 드디어 한글 완역되다! 장장 20년을 공들여 썼지만 대중에게 철저히 외면받았던 저주 받은 걸작        <앨리스>만큼 분석당하는 동화가 있을까, 19세기 영국이 낳은 이 문제작은 수많은 수학자와 정신과의사, 심리학자, 영문학자에 의해 열광되고 분석되어 왔다. 또 수많은 버전의 동화책과, 만화영화, 영화 등으로 각색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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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와 브루노] 앨리스에 가려진 루이스 캐럴의 역작, 드디어 한글 완역되다!

장장 20년을 공들여 썼지만 대중에게 철저히 외면받았던 저주 받은 걸작 

 

 

 

<앨리스>만큼 분석당하는 동화가 있을까, 19세기 영국이 낳은 이 문제작은 수많은 수학자와 정신과의사, 심리학자, 영문학자에 의해 열광되고 분석되어 왔다. 또 수많은 버전의 동화책과, 만화영화, 영화 등으로 각색되고 패러디되었다. 가장 원문 완전판에 가깝게 복원된 것은 엄청난 주석이 달려 판을 거듭하고 있다. 수학과 교수였지만 수학 자체보다 <앨리스>를 쓴 동화작가로 그의 인생과 인간적 면모와 작품들이 연구 대상인 루이스 캐럴, 그러나 그가 생전에 가장 심혈을 기울여 쓴 역작은 <앨리스>가 아니라 다른 작품이었다?

 

 

<실비와 브루노>는 <앨리스> 시리즈 후 20년에 걸쳐 쓴 대작 환상문학이다. 그 어떤 문학보다 새롭고 자신이 한번도 시도하지 않은 글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쓴 이 책은 <앨리스> 이상의 기괴함과 난해함을 보이는 실험적인 작품이다. <앨리스>를 변증적으로 극복했고, 환상과 현실의 비중이 동등해지고 플롯이 더욱 정교해졌다. 그러나 <앨리스>의 엄청난 성공과 관심과 달리 <실비와 브루노>는 대중들에게 처참하게 외면당했으며, 평론가들이나 학자들에게 조명도 훨씬 덜 받았다.   

 

  

이번에 최초로 한글 번역, 그것도 완역판으로 출간되는 <실비와 브루노>는 장르문학잡지 <판타스틱>(출판사: 페이퍼하우스)에서 번역 연재해오던 것을 단행본으로 마무리한 것이다. 그리고 1889년 출간한 <실비와 브루노>, 1893년에 출간한 <실비와 브루노 완결>을 모두 엮어 한 권으로 출간하였다. 번역은 다트머스대 비교문학 전공(석사)한 이화정이 맡았고,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최대한 주석을 달았고 마지막엔 간단하게나마 몇장의 작품해설을 썼다. 삽화는 앨리스 헤이버가 그린 한 장 외에 모두 해리 퍼니스가 그린 원문 삽화를 그대로 실었다. 삽입된 시(노래)는 11장 폴과 피터를 제외하고는 영어원문과 병기하였다. 다른 언어 번역본에 비해 늦은 출간이지만, 최대한 꼼꼼한 구성으로 한글 번역을 오래 기다렸을 독자들을 최대한 만족시키려 한 노력이 엿보인다.

 

 

내용은 주인공 '나'가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겪는 이야기다.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친구인 아서를 방문하는 도중 기차에서 아서가 연모하는 뮤리엘 백작 영애를 만나고, 계속 그녀와 교류하며 보고 겪는 일련의 이야기가 현실에서의 '나'의 이야기라면, 환상 속에서는 아웃랜드 총독이 부재한 사이 야욕을 부리는 부총독과 그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총독의 자녀들인 요정 실비와 브루노를 위해 함께 아버지를 찾으러 떠나는 모험담이다. 기본적으로 현실의 뮤리엘 백작 영애와 환상 속의 요정 실비가 똑닮아 있고, 상황은 다르지만 같은 말을 할 때 '나'가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시점이 된다. 


 

<실비와 브루노>를 읽는 내내 어렵다란 느낌이 지배했다. 일단 루이스 캐럴 문학 속의 언어유희나 풍자는 당시 유행이나 사회분위기에 기반하고 있기에 현대로 올수록 그의 작품이 독자들에게 난해하게 받아들여진다고는 하지만 계속되는 현실과 환상의 전환, 부조리극의 스토리텔링, 엄청난 수의 영어 언어유희와 세태풍자에 쉽게 글이 파악되고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도전의식을 강하게 심어주고 매력 넘치는 작품인 것은 분명하다. 읽고 있으면 정말 작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발상을 집대성했고 개인의 취향을 완성했다는 것이 다분히 느껴져, <앨리스>를 읽을 때완 또다른 감흥이 느껴지고 또다른 루이스 캐럴의 모습이 보인달까.

 

 

특히 언어적인 면이 인상 깊었는데 어려서 단어구사를 제대로 못하는 브루노나 계속 비슷한 단어로 말장난하는 등장인물들을 보며 영문학적 지식이 풍부해서 원어 그대로의 늬앙스와 의미들을 다 이해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역자는 볼드체, 각주, 애기말투 등을 써가며 최대한 살리려고 하고 있다) 시나 노래, 삽화 등등 다른 것들도 물론 흥미롭다. 작품에 대한 아쉬움보다 책을 읽는 사람의 능력 부족으로 한번 읽어서 의미들을 다 이해하지 못해 한스러웠다. 조금 쉬었다가 다시한번 독서 도전하고 싶은 작품. 



 원문 http://der_insel.blog.me/120129724168

i*****7 2011.05.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