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해부터 내가 특별히 관심을 가지게 된 분야가 있는데, 위 사진은 내가 최근에 읽은 이 분야의 책이다.
《흙을 밟으며 살다》는 농부가 된 철학자 윤구병 씨가 자신이 설립한 전북 부안의 변산공동체 생활의 단상을 그려낸 에세이이다. 《영철이 하고 농사 짓기》는 시인 최영철, 소설가 조명숙 부부가 부산 인근에 손수 주말농장을 개간하고 4년 동안 가꾸면서 겪은 경험을 풀어낸 책이며, 《다섯 평의 기적》은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인 정남구 씨가 서울 근교의 주말농장을 가꾸면서 느낀 농사와 자연에 관한 에세이이다.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는 잘 알려진 대로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여 지리산에 둥지를 틀고 소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돈 한푼 안 쓰고 1년 살기》는 '프리코노미(freeconomy)' 운동을 벌이고 있는 아일랜드 태생의 저자가 도시 근교에서 1년 동안 돈 한푼 쓰지 않는 생활에 도전하여 성공한 체험담이며,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는 아프리카 알제리에서 지금은 유럽과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환경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피에르 라비가 어떻게 인간이 자연과 불화하지 않고 공존할 것인가를 직접 행동으로 보여준 기록이다.
책의 면면을 보고 혹시 귀농을 준비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해 마시라. 나는 전원생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지만 결코 귀농을 할 생각은 없다. 주말농장이라면 모를까 귀농이 어디 쉬운 일인가. 단지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노년에 좀 더 소박하게, 그러면서도 외롭지 않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것,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욕심을 내려놓고 자연과 더불어 매일매일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실버 공동체'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온라인 인맥사이트 '링크나우'의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 - 행복 공동체'라는 그룹에 가입하면서부터이다. 이 그룹의 회원은 현재 600여 명에 이르며 나는 부운영자 겸 실행위원으로서 기획분과를 맡고 있는데, 이번에 우리가 꿈꾸는 '행복 공동체'의 모습을 구체화한 책이 출간되었다. 저자는 그룹의 운영자인 김송호 박사.
《퇴직은 행복의 시작이다》, 김송호 지음, 필맥, 2011년 5월
국민소득이 2만 불을 넘었는데도 우리는 별로 행복하지 않다. 엊그제 국세청의 발표에 의하면 종합소득세 신고자 중 상위 20%의 1인당 소득금액은 10년새 55%나 늘어난데 비해 하위 20% 소득자의 1인당 소득금액은 같은 기간 54% 급감했다고 한다. 소득의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진 자의 배만 불릴 뿐 자유시장주의가 결코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얘기다. 더불어 자연은 갈수록 황폐화되어 가고 자연재해 또한 늘어나고 있다. 요즘 들어 귀농을 하는 사람이 부쩍 늘어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이다.
그런데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결코 귀농이 쉽지 않다. 소박하게 살겠다고 하지만 농사 기술이 없이는 자급자족도 어려우며, 그보다 더 근원적인 분제는 바로 자녀의 양육 문제이다. 그러기에 아직 귀농은 확고한 의지를 가진 일부의 선택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 공동체'가 자녀 양육 문제를 떠난 '실버'를 대상으로 삼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바야흐로 직장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폭풍이 심각하기도 하고.
저자가 그려낸 '행복 공동체'의 개략적인 모습은 다음과 같다.
'행복 공동체'는 자족 할 수 있는 규모의 마을을 시골에 만드는 것이다. 자족할 수 있는 규모란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단 1,000명 이상 최대 5,000명 정도의 인원이 살 수 있는 마을을 말한다.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야 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그야말로 자족할 수 있는 규모가 되기 위해서다. 빵집을 하든, 미용실을 하든, 1,000명 정도는 돼야 그나마 경제적인 규모가 되지 않겠는가? 물론 5,000명 정도가 되면 더욱 경제적인 규모가 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5,000명 이상 규모가 커지면 더 이상 공동체로서의 기능이 발휘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이 숫자는 무슨 학술적인 근거가 있어서 제시하는 숫자는 아니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숫자가 공동체를 이루는 데 이상적이냐 하는 것은 실제로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면서 합의에 의해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자족을 하기 위해서는 구성원의 숫자도 중요하지만 각자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농사를 짓는 사람만 모두 있어도 곤란하고, 미용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도 안 될 것이다. 공동체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골고루 다른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이상적이다. 물론 '행복 공동체'의 자족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농사짓는 사람은 반드시 있어야 하겠지만, 나머지 댄스를 잘 하는 사람, 명상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 등도 있으면 전체적인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각자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다보면 행복 공동체도 자연스럽게 운영이 되고 구성원들도 힘들지 않으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게 자족 공동체를 이루게 될 것이다. (p93~94)
과연 이러한 공동체가 실현 가능할까?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불가능하지도 않다. 이러한 시도가 처음이 아니라 이미 이와 유사한 많은 시도가 있었으며,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행복 공동체'에 대한 아이디어를 처음 생각한 계기는 《부동산 신 투자전략》이라는 책을 2009년 3월에 출간하기 위해 자료를 찾다가 미국 애리조나 주의 관광 레저형 기업도시인 ‘선시티(Sun City)’를 알게 되면서다. 선시티는 새로운 개념의 실버타운으로 애리조나 주 수도에서 45분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인구는 약 4만 명이다. 선시티는 1960년대부터 실버타운 전문 개발 회사인 델웹(Del Webb)에서 건설하였으며, 레저 휴양형 실버타운으로 커뮤니티 안에서 100퍼센트 자급자족할 수 있는 정주요건을 갖추고 있다. 기존의 다른 실버타운에서는 은퇴자들을 퇴물 취급하는 데 비해 선시티에서는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개발함으로써 은퇴자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게 되었다. 실제로 선시티 안에서는 주민들끼리 자원 봉사 활동이 활발하고 자기 계발을 위해 선시티 내에 소재한 애리조나 주립대학교와 피닉스대학교를 이용할 수도 있다. 즉 기존 실버타운 개발이 단순히 주택을 지어 제공하는 개념이었던 데 반해, 선시티는 공동체 사회를 만드는 한 수단으로 주택을 공급하고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비슷한 형태로 필라델피아 주의 윌로우밸리(Willow Valley)라고 불리는 대규모 은퇴자 커뮤니티를 들 수 있다. 은퇴자 커뮤니티는 미국에서 발달한 고령자 전용 집합주택을 말한다. 윌로우밸리는 펜실베니아 주의 주도 필라델피아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랭커스터라는 인구 6만 명의 작은 도시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윌로우밸리에는 80만 제곱미터의 넓은 부지에 2000호의 주택이 들어서 있다. 윌로우밸리는 자기 완결형 시설로서 현재의 입주율은 건강생활형이 96퍼센트다. 즉 ‘입주자 참가형’의 독특한 운영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윌로우밸리는 매년 4월부터 10월 사이에 100명에서 200명 단위로 단지의 견학을 여러 차례 개최한다. 견학자가 입주를 결정할 경우 안내자의 월 이용료가 공제되는 등 경제적인 인센티브도 제공된다. (p118~119)
구체적인 추진계획은 다음과 같다.
'행복 공동체'는 정해진 틀에 따라 진행되는 것 아니라 구성원들이 스스로 의논하면서 만들어 가야 하기 때문에 추진 일정도 확정된 것은 아니다. 다만 너무 늦게 진행이 되면 추진력을 상실할 염려가 있고, 너무 급하게 서두르다보면 시행착오를 겪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 4~5년 내에 행복 공동체가 실질적으로 장소를 정하고 입주에 들어가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2~3년이면 너무 짧아서 참여한 구성원들의 생각을 모으는 게 힘들 것으로 생각되고, 10년이면 너무 길어서 추진하는 동안 동력이 상실될 염려가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2010년 1월 25일에 링크나우에 '행복 공동체'를 개설했는데, 이런 계획대로라면 5년 후인 2015년 1월에는 온라인상이 아닌 실체를 갖는 '행복 공동체'의 모습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게 어떨까 생각한다. 실체라는 것은 지역을 정하고, 일부 회원들은 거기에 살기로 하고 실행에 들어가는 수준을 말한다. 그러자면 한꺼번에 그 일을 이룰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1년의 준비 단계는 지나갔다. 즉 온라인상에 모임을 만들고, 공감을 하는 회원들을 모으는 단계까지 와 있다. 다음 단계는 기획 단계로 20∼50명의 실행 위원들이 '행복 공동체'에 대한 비전을 수립하고, 실행 계획을 짜는 기획 단계를 거쳐야 할 것이다. 현재가 바로 그 기획 단계로 앞으로 2년 정도 걸릴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 (p107~108)
책은 크게 3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에서는 '행복공동체'의 필요성과 구체적인 모습을, 2부에서는 '행복 공동체'에 대해 자주 듣는 질문과 이에 대한 답변을, 3부에서는 인생 후반부의 행복한 마음가짐을 다루고 있다.
위에서 보듯이 이 책은 '행복공동체'의 필요성을 막연히 제안하는 이론서가 아니라 이와 같은 공동체를 만들어가기 위한 '마스트플랜'이라고 할 수 있으며, 실제로 이 마스터플랜에 따라 현재 추진하고 있다.
▼
어쩌면 이 책은 그동안 땀 흘려 국가 경제를 부흥시킨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를 맞아 그들이 일구어놓은 삭막한 경쟁의 현장을 일탈하고자 꿈꾸는 반란의 시도일 수도 있겠다.
당장의 노후가 걱정인 베이비붐 세대는 물론 '행복 공동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의 일독을 권하며, '링크나우'의 '행복 공동체' 그룹에도 가입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