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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우리나라의 오은선이 세계최초로 8천미터가 넘는 고봉 14좌를 완등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오은선은 겔린데 칼텐부르너와 에두르네 파사반 두 사람 중 하나가 달성할 것으로 기대했던 유럽 사람들의 적대적인 공격에 시달렸을 뿐 아니라 낭가파르바트에서 실족사한 고미영과의 경쟁구도로 인해 고국의 산악인들에게 마저 비난과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저돌적으로 성공시킨 이 여성을 향해 벌어지는 이 잔인한 모함을 보고 드디어 라인홀트 메스너가 그녀를 변호하기 시작했다.
라인홀트 메스너는 오은선이 14좌 완등을 끝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네팔의 카트만두에서 그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오은선은 에베레스트와 K2를 등반할때 산소를 사용했으며, 다울라기리 베이스캠프까지 헬리콥터를 타고 이동했고, 단독등반이 아니라 셰르파와 남자산악인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징기즈 칸을 가장 존경한다며 등반의 스타일보다는 여성 최초의 14좌완등의 기록을 세우는데 집중했던 그녀의 당당한 스타일에 메스너는 호감을 느낀 듯하다. 징기즈 칸도 언제나 시종과 군사를 대동했으나 누가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겠느냐고 말하면서 따뜻한 방안에 앉아 죽음의 지대의 위험을 감수한 여인에게 뒷말을 퍼붓는 사람들을 조롱했다.
메스너는 자신이 세계 최초로 14좌를 완등했던 1986년에는 등반스타일에 대해서 따질 필요가 없이 누구나 비슷하게 혹독한 조건에서 등반했지만 위험의 상당부분을 줄일 수 있는 현대에 일부러 위험을 감수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이상주의이며, 일반인들을 위한 고산 관광상품까지 있는 마당에 알파인 등반은 누구에게도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오은선에 대한 비난도 패배자들이 승리자를 깎아내리기 위한 흠집잡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산을 오르면서 여자의 배낭을 들어주고, 정상에 서면 달콤한 입맞춤을 해 주던, 여성을 보호해주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가 (236쪽)" 버려서 여성산악인들도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짐을 지고 독립적인 산행을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여성산악인들은 어떻게 엄마가 아이들을 남겨두고 위험을 감수하려 하느냐, 임신한 몸으로 산에 오르려고 하느냐는 비난에 직면하곤 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산악인으로서 헤티 디렌푸르트, 크라우드 코간, 반다 루크비에비치, 알리슨 하그리브스 , 준코 타베이같은 위대한 여성들이 역사를 만들어 갔기에 오늘날 오은선같은 여성 산악인이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남자들이 해놓은 일을 여자들이 뒤이어 했다는 것이 그토록 큰 일이 아닐 수도 있고, 최초의 여성이 되는 것은 최초의 인간이 되는 것 보다 그 영광이 작을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등반의 역사에서 여성들이 기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메스너가 자기와 가장 비슷한 스타일이라고 소개한 니메스 메로이는 히말라야의 봉우리 몇 개를 더 오르는 것이 인생을 걸만큼 중요한 일이 아니라며 모든 등반을 함께 했던 동료의 사망을 애도하고, 고산병이 심해진 남편과 함께하기 위해 14좌완등 레이스에서 벗어났다. 어쩌면 여성들이 새삼스럽게 페미니즘의 전사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필요도 없는 지금이야말로 여성산악인들이 여성성을 자유로이 드러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정상정복을 향하여 전투적이고 공격적으로 등반하던 문화에서 우호적이고 평등한 분위기, 등반기록보다는 산에서의 체험과 깨달음을 나누는 행복한 등반 문화를 만들어가는데 여성의 힘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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