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게 걸림돌이 많다면, 사랑이라는 거 이룰 수나 있을까. |
![]()
|
|
과거 기사에서 한국사회의 도덕성의 옹졸한 시비를 가릴냥 어줍잖은 시시콜콜한 가십거리가 사회담론을 뒤덮은냥 기사화 된 적이 있었다.읽는 나로서는 이 사회에 인간성과 도덕성을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그 무엇이 순수히 존재하는가에 대해 의구심이 가슴 깊이 자리하던 때였다.제목처럼 '아프니까 사랑이다'는 말 그대로 사회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도 온전한 길의 허락이 허용치 않는다.그래서 아프다.시대는 5월 혁명의 격한 저항 열기 속에 교육체계와 고용에 대해 탈바꿈 할 수 있는 기회로 반체제,반문화 운동였겠으나 결국엔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사회적으로 프랑스는 보수적인 경향이 높은 나라였으나 이 시점으로 진보적으로 바뀌는 가치의 이동이 일어난 시기이기도 하다.그렇다면 다니엘과 제라르의 사랑이 결코 부끄럽지 않게,순수한 사랑임을 인정해 줄 수는 없는 것일까.인간의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어찌 사회적 잣대로 그 옳고 그름을 가늠한단 말인가.그 곱지 않은 시선과 편견 그리고 제도적 모순으로 철저히 유배당한 사랑을 다니엘은 그들의 순수한 사랑을 이 땅에 증명해 보이기 위한 최악의 몸짓인 '죽음'을 택하고만다.자신의 결백을, 사랑을 더이상 유린(蹂躪)되지 않도록 그렇게 자신의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만다.
'산다는 것은 곧 사랑한다는 것'이라든가 '자유여,나는 네 이름을 기록해 두겠다'라는 글귀를 통해 판사는 다니엘을 '반사회적인 인간'으로 내몰고 있는 부분에서는 그야말로 권위적으로 무참히 한 개인을 짓밟는 듯 해 되묻고 싶은 충동이 일기까지 했다.사회적/반사회적의 정확한 숙지를 하고 있는지 거짓 엄숙주의자들의 윤리관이 심히 의심스러울 뿐이다.
제라르,그들은 정말 존재하고 있지도 않은 인간들 같았어.나는 그들이 도저히 살아 있는 인간들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어.그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들이야.사람들로부터 더 이상 수모를 당하지 않으려면,이젠 죽어야만 하는 것일까? (91P)
이런 고루한 사회관습으로 인해 다니엘에겐 절대 꾸지 말아야 할 끔찍한 악몽이 현실로 이어지게 된다. 프랑스의 5월 혁명이 40주년을 맞으면서도 그 뜨거운 논쟁은 여전히 이어지는 것 중 하나는 '도덕과 사회질서의 재앙'을 덮어둘수만은 없을게다.그것에 대항해 맞바꾼 죽음으로 항변할 수 밖에 없었던 여선생의 비극은 프랑스 사회 전반적으로 정신적 고통과 속박을 벗어나 정신적인 자유를 얻게 해 준 전환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그들이 만들어 놓은 도덕의 허울 속에서 다니엘을 억압하고 사회 통념과 제도의 벽으로 제아무리 막으려 해도 그들의 숭고하고 위대한 사랑 앞에서 한 줌의 무의미한 거짓의 힘은 존재치 않는다는 것을 명명백백(明明白白)하게 증명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문명은 하나인 듯 하다.문명의 시대,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에도 사회적으로 이는 부조리,여자에 대한 사회의 편견등이 잔재로 남은 채 올곧이 뻗어나가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15년이라는 나이 차이를 극복해 나가는 동시에 자신의 당당함을 끝까지 잃지 아니하고 태양이 존재하고 진실과 순수함은 이 세상의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것은 결코 몽상 (夢想)이 아님을 힘껏 말해주고 있다.암울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또는 윤리의식을 이 땅에 바로 세울 수 있어야만 하는게다..그럴라치면 그 누구라 할 것 없이 사회의 감시자가 되어야만 한다.굳이 비분강개가 치솟아서라기 보다는 소위 전통적 윤리관을 운운하며 말하는 것은 이 사회의 모든 질서가 더 이상 교란되지 아니하고 자유와 기본권이라는 명분아래 개개인이 방해받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기도 하다.
'어째서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게 죄가 됩니까? 저는 우리들의 사랑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나는 학생을 사랑한 게 아니고 한 사람의 완전한 남자를 사랑했습니다. 그는 내게 있어서 유일한 남자였습니다' |
|
[ 아프니까 사랑이다] 제자를 사랑하고 죽음을 택한 어느 프랑스 여교사의 숨 막히는 사랑 이야기라고 하고 프랑스 대통령도 눈물을 흘린 감동의 실화라니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녀는 나보다 15년을 더 살았다. 그러나 나보다 30살을 더 살았더라도, 다니엘이라면 기꺼이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다 --페이지 159 -- 일생의 어느순간엔가는 반드시 숙명처럼 다가오는 사랑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언젠가는 내가 사랑하게 될
폭력을 휘두를 수 있을 것인가? 왜 내가 스스로 내 인생을 선택하는 게 불가능한 걸까? -- 페이지 150--
|
|
1권의 끝에서 끝내 아버지가 갈라놓은 두 사람. 하지만 인위적으로 두 사람을 갈라놓기는 했지만 그들의 사랑까지는 갈라놓지를 못했다. 다시 재회하는 곳에서 그 지역 경찰에게 잡힌 두 사람은 그 지역 경찰까지도 아버지가 손을 쓴 감시자였음이 밝혀지고, 결국 둘의 만남은 고작 10분 정도에 불과했고, 제라르는 학교로 다니엘은 임시숙소로 또 다시 갈라진다. 이후 제라르는 학교를 탈출하여 다니엘의 숙소로 가서 두 사람은 재회를 하게 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두 사람은 다시 고향 루앙으로 돌아온다. 대신 제라르는 친구의 도움으로 폐쇄된 채석장 근처 오두막에서 18살이 될 때까지 은둔하기로 한다. 그러나 세상은 무정했다. 아들이 또 탈출한 것을 다니엘의 탓으로 돌리는 아버지는 결국 다니엘을 '미성년자 유괴범'으로 고발한 것이다. 이에 따라 다니엘은 감옥에 가기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다니엘은 판사 앞에 서는 대가로 다니엘의 석방을 요구한다. 이후의 이야기는 너무 잔인하다. 어떻게 아버지가 자식을 정신병원에 넣고 격리시키고 할 수 있는 지 너무 잔인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사랑하는 사람이 감옥에 갇힌 것을 대신 아파하고자 하는 제라르, 그리고 제라르가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는 것을 대신 감옥에 갇히는 것으로 아파하려는 다니엘. 두 사람의 영원하고 순수한 사랑은 여선생과 남학생 제자의 불륜으로 몰아가는 비정한 사회. 그리고 이를 기득권을 수호하는데 활용하고자 하는 더러운 권력에 빌붙은 자들. 2권에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제라르의 변화다. 1권에서 아버지가 더 없이 비열하고 자기 이기주의고 겉과 속이 다르다고 가족임을 부정한 제라르. 하지만 2권에서는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하기에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뭐 그렇다고 다니엘과의 사랑을 단절하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래서 자신이 파괴되는 순간까지도 다니엘을 위한 마음으로 끝까지 버텼던 것이다. 권력의 만행 앞에서 끝내 죽음으로 항변하는 다니엘. 다니엘은 영원히 제라르의 가슴에 남고 싶었던 것이었다. 사실 2권의 책을 읽을 때에는 그렇게 크게 감동을 받지는 못했다. 대신 아버지가 제라르를 정신병원에 집어넣는 장면이나 모르핀과 같은 마약을 강제 투약하는 장면에서 치를 떨게 만들었다. 책을 덮으면서 2권을 정리하면서 비로소 눈물이 앞을 가린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이 책과 관련된 이야기는 이 정도에서 마쳐야겠다. 대신 1,2권을 포함한 이야기를 따로 하고 싶다. 그 글에서는 이 이야기와 관련된 여러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
|
이 소설은 여교사와 제자의 순수하고도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실화 소설이다.지금으로부터 40여년전인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을 배경으로 31세 여교사와 17세 남학생간의 사랑이야기는 선입견에 사로 잡힐 수 있다. 거의 나이가 곱절이나 먹은 여교사와 미성년자인 제자간의 사랑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선생과 제자의 사랑이라는 소재에 묘한 야릇함이 느껴졌고 제법 나이차가 많이 나는 커플의 이야기인지라 호기심이 컸다.
“어째서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게 죄가 됩니까? 저는 우리들의 사랑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나는 학생을 사랑한 게 아니고 한 사람의 완전한 남자를 사랑했습니다. 그는 내게 있어서 유일한 남자였습니다.”(p.201) 17세이지만 180이 넘는 키에 훤칠한 외모를 갖춘 제라르, 32세의 철학 여교사인 ‘다니엘’ . 청순하면서도 똑똑한 지식인이며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었던 유능한 선생님에게 많은 학생들이 매료가 되었고 그 중 가장 중심에 있던 이가 바로 다니엘이었다 다니엘의 강의는 교실 안에서 끝나지 않고 카페에서, 알프스의 스키장에서, 5월 혁명의 시위 현장에서, 그리고 여름 방학 때의 바닷가에서도 이어진다. 이런 과정에서 ‘제라르’와 ‘다니엘’은현격하게 차이를 보이는 나이라는 장벽을 뛰어넘는 사랑을 한다. 40년전이라는 사회적 상황을 보면 지금과는 더 많은 사회적 편견이 존재하던 시기였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의 이목이 선생님이라는 위치와 아이를 낳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이혼녀라는 상황때문에 그녀를 더 괴롭혔으리라 짐작이 간다. 어떤 사람이 사랑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왜 이 문제가 우리가 사적이라고 여기는, 삶의 신비한 부분을 이해하는 데 중심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는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육체적 욕망의 이야기는 외적인 드라마가 어떻게 전개되든 관심을 사로잡는 힘이 있지만 이 소설은 달콤하지만 눈물겹게 가슴 시린 봄날과도 같은 느낌이 드는 소설이다. |
![]()
책을 다 읽고 뒷이야기를 읽고 나자 이 소설의 배경이 된 실화 이야기가 1968년 5월 혁명(드골을 권좌에서 물러나게 한)을 배경으로 해서 일어났다는 것은 내가 최근에 읽었던 인터넷 뉴스기사속 이야기는 아니었음을 알게 해주었다. 요즘의 프랑스라면 이렇게까지 심하지는 않았을텐데..어쩌면 우리나라보다도 더 보수적으로 보이는 문화가 그 당시에는 존재했나 보다.
진정으로 내가 미워한 것은 아버지가 믿고 의지한 법률 우월주의, 전체주의적 질서와 도덕만을 강요하는 인간 말살의 권력이었다. 60p
자식을 원치 않는 사람으로부터 지켜내겠다는 아버지의 단호한 결심은 사실 도를 지나쳤다. 좌익에 투표하고 진보성향을 띤 것처럼 행동했으나 사실은 지나친 보수주의였던 아버지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 아들을 용서할 수가 없었고, 그 화살은 아들의 사랑인 다니엘 선생에게 너무나 잔인하게 꽂혔다.
프랑스 대통령의 눈물까지 흐르게 했던 소설이라더니, 그 정도의 충격은 아니었다라고 자만(?) 했던 내게 보기 좋은 뒷통수를 맞게 한 책. 아이 한글 선생님 오신 동안 거실에 앉아 보통 책을 읽곤 하는데, 대개는 집중을 못 하고 아이 수업에 귀를 기울이기 마련이었다. 오늘은 이 책에 정신없이 빠져들어 아이 수업 내용이 거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게다가 긴장했을 그 시간에 주책맞게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었다. 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아 어찌나 난감했던지 모른다
"5월에는 아이들이 모두 다 성숙한 어른들처럼 행동했소. 그러나 법률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나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습니다." "삭제!삭제!삭제!" 74p
5월 혁명을 짓누르기위해 본보기처럼 그들 커플을 희생양으로 삼은 정부와 부모님. 그리고 그들을 가쉽거리로 몰아세우며 재미난 눈요기로 즐겼던 잔인한 시민들 제라르보다 나이가 더 많았어도 너무나 여렸던 다니엘이 받은 충격은 어마어마했고, 제라르 또한 자신의 아버지에 의해 정말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된다. (심적으로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이대로는 죽을 수도 있겠다라는 고통을 말이다.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소설이기도 했다. 세상 앞에 너무나 연약하게 드러났던 두 연인. 그들은 모든 것을 걸고 사랑했으나 세상에 인정받지 못했고, 그 끝은 정말 비극으로 끝날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 죄로 잠들 수 밖에 없었던 그녀 다니엘. 세상에 이토록 절절하고 가슴아픈 사랑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프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
|
사랑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설을 통해, 시를 통해, 노래를 통해 그리고 그림을 통해서 보여주는 사랑은 이미 내 안에 자리하고 있는 사랑과 일치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그 사랑 자체만으로 사랑스러울 것입니다.
칼릴 지브란은 자신의 시 ‘그대를 처음 본 순간’을 통해 영원까지 사랑하고 그 무엇도 자신들의 사랑을 갈라놓을 수 없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책 <아프니까 사랑이다>를 한 편의 시로 만날 수 있다면 이 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책 <아프니까 사랑이다> 1권을 덮고 2권으로 향하는 나의 마음은 너무나 무거웠습니다. 이제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나와의 싸움일수도 사랑이 꼭 보수와 진보를 논하고 싶지도 않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부득이 보수와 진보를 논하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을 때 시대적 배경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실화는 우리나라가 아니라 보수와 진보 혹은 민주주의나 사랑의 표현에 있어 우리나라보다 앞서 있는 프랑스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에 대해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어떤 것들은 과거 그리고 현재 아니 어쩌면 몇 년 아니라 몇 십 년이 지나도 이해하거나 용서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겠지만 이는 내가 어디에 있고 어느 관점에 있느냐가 그 사랑을 사랑으로 보느냐 아니면 17살 철부지 소년과 15살 연상의 여교사의 불장난으로 생각하느냐를 결정지을 것 같습니다.
제라르와 다니엘은 제라르의 아버지 혹은 보수 진영과 괴로운 소모전을 벌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아버지로서 아니 부모로서 겉으로 보이는 진보성향 보다는 가족과 아들을 지키려는 보수 성향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권 서평에서도 언급했던 꼭 보수와 진보 보다는 만약 내가 제라르의 입장이라면 혹은 아버지의 입장이라면 둘 모두가 맞고 또 둘 모두가 틀리는 아니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에게는 사랑도, 두 사람의 사랑을 비추어 줄 따뜻한 햇빛도 허락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이 무너지는 심정을 태양의 존재에 비춰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멜로 영화나 사랑을 다룬 책들은 종종 '사람을 사랑한 죄'에 대한 아픔을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 두 사람도 그 죄를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의 죄가 서로를 사랑한 것이 문제일까요? 사회에 대한 도전, 체제에 대한 도전이기에 용서받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다니엘은 인간의 존재 이유마저 부정한 사회를 거부했습니다. 그것은 곧 그녀의 육체적 죽음을 의미합니다.
다니엘을 부정한 사회를 다니엘도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제라르는 다니엘이 부정하며 떠나며 못다 쓴 유서를 살아서 완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라르는 다니엘을 자신의 가슴에 안아 그녀를 재웠습니다.
옮긴이는 이 책이 '소설로 나오기까지'에 대해 프랑스의 시대적 배경과 두 사람의 사랑이 사회에 던진 문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남녀의 나이가 바뀌었거나 시점이 조금만 바뀌었다면 그들의 사랑도 바뀌었을지 모릅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한 때 비슷한 뉴스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분명 같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문학과 현실에서 나의 위치와 사랑에 대한 내 생각은 어쩌면 보수와 진보를 얘기하지 않더라도 조금은 열려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 사랑이 우리 아이들 이야기라는 전재라고 한다면 그래도 그럴 것이라고 100% 장담하지는 못하겠지만 분명 그 문제에 대한 정답까지는 아니어도 풀이는 해보려고 찾고자 할 것이라는 것은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몇몇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은 죄가 없어도 죄를 만들 수 있음은 이 사회에서도 종종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모두가 같은 사랑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상식을 벗어나는 일을 맞이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법이 있고 상식이 있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준들이 있지만 사람사는 세상에는 예외도 인정해 주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일들이 사람이 사는 세상이기 때문에, 완벽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데서 그 이유가 될 수 있다. 남녀 평등사회라고 부르짖는 사회지만 아직까지는 남자들이 더 우위에 서서 권력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체제를 용납하는 사회이다. 그러다 보니 남자가 행한일은 그냥 덮어주고 넘어가는 사례들이 있지만 여자들이 행하는 일에서는 관대하거나 너그럽지 못한 경우가 생긴다. 이러한 사회에 반기를 들고 사랑을 쟁취하려는 한 여교사의 아픈 사랑이야기가 1권과 2권에 실려 있다.
프랑스의 대통령도 이 내용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는 글이 실려 있는데 오히려 실화라서 더 마음이 아프게 다가온다.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담당한 여교사 다니엘과 그의 제자인 고등학교 3학년인 제라르, 이들을 둘러싸고 제라르의 아버지의 심한 반대에 부딪치며 정신병원에 갇히기도 하고 감옥에 수감되면서 형을 살면서까지 이 둘은 서로의 사이에서 진실되고 거짓이 없는 더욱 절박하기만 한 서로의 사랑만 확인할 뿐이다.
만약 이 이야기가 통속적인 소설이었다면 그리 큰 감흥은 없었을 것이지만 실화라서 이들의 아픔이 더 세세하게 가슴을 짓눌러 온다. <아프니까 사랑이다>는 책의 제목처럼 아프니까 사랑이고 사랑을 하니까 아픔이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겠지만 결말이 여교사의 자살로 마감되는 마지막 엔딩은 더 마음을 아리게 만들었다. 최후의 선택이 그것 밖에 없었을까 생각을 하다가도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으면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자신의 순수한 사랑을 증명하고 싶었을까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먼 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도 프랑스 신문의 일간지에 이들의 이야기가 오르 내리면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을만한 일이었을까를 되물어 보게 된다.
진실한 사랑이었음에도 사람들은 그들의 사랑에 비난의 화살을 퍼부으며 여주인공을 매도하기에 이른다. 그 여교사에게 죄가 있다면 교사의 몸으로 사랑한 죄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 사랑이 남자교사의 사랑이었다면 저토록 사회의 지탄을 받는 재판 대상자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라르는 말한다. "학교를 나오면 언젠가는 다니엘의 진실을 책으로 쓰고 싶습니다. 부정,위선, 이른바 도덕심이 어떻게 사람을 파괴시킬 수 있는가 하는 점- 이를 통해서 나는 우리들의 진실햇던 사랑과 다니엘의 무죄를 증언하고 싶습니다." 이런 다니엘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은 것은, 자신이 사랑했던 대상을 조금만 어려운 상황이 닦쳐와도 떠나거나 버리기 쉬운데 끝까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켰다는 사실이다. 사실 여교사만 고통을 받은 것이 아니고 제라르도 아버지로 부터 말할 수 없는 고초를 받았지만 그 고통을 몸소 다 겪으며 다니엘이 겪었던 상황과 마찬가지로 정신요양소에 갇히고 외딴 곳에서 감시를 받으며 생활을 하고 학교도 그만두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목숨처럼 지켜 내었다. 어린나이지만 참 성숙하고 사람됨됨이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조건과 배경에 따라서 사랑의 모습과 유형이 변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되는 요즈음 제라르처럼 어리지만 자신이 지켜내야 할 여자를 지켜내고 위해주면서 그의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게 자신의 진실된 사랑을 증명해 보이려는 한 남자의 꿋꿋한 절개를 보게 된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미우라 아야꼬' 옆에도 이런 진실한 한 남자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 미우라 아야꼬의 '빙점'을 읽고 난 후에 그의 책을 통해서, 사랑하는 사람의 아픔을 감싸주고 그 아픔에 자신이 동화되는 진실된 사랑을 읽을 수 있었고 이런 사람이 좋은 사람이란걸 알게 되었다. 만약 다니엘도 상황이 이 반대의 경우였다면 아마 둘은 아름다운 결말을 보지 않았을까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의 편견과 상식을 깨뜨리는 것이 이처럼 어렵다는 것을 책은 말해주고 있다. 아마도 남녀 평등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이뤄지지 못하는 사랑만이 세상에 남아서 지탄을 받게 될 것이다.
상식과 편견 이전에 한 인간의 존엄성이 먼저 부각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편견과 상식을 뛰어넘는 한 여자, 한 인간으로서 다니엘을 바라볼 수는 없었을까? 사랑엔 어떤 잣대로도 설멸할 수 없는 무언의 힘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비록 세상의 손가락질이 무섭고 두렵고 떨리긴 하겠지만 그 이상을 뛰어넘는 것이 바로 숭고한 사랑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녀가 가졌던 신념과 확고한 요지부동의 사랑은 우리에게 어떤것을 시사하고 있는지? 이러한 사랑을 과감없이 실천한 용감한 다니엘에게 사람들은 어떤 평가를 내릴지 자못 궁금하기만 하다. <아프니까 사랑>이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오늘도 내일도 여전히 사랑을 이어갈 것이다. 그 사랑이 아픈 사랑이지만 내게서만은 아프지 않은 사랑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가슴이 시리고 아린 먹먹한 사랑이야기를 읽으며 하나님의 사랑과 견주어 가며 읽을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