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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도 완장이고 지체나 명예도 말짱 다 완장이여."
1980년대에 쓰여진 소설이다. '완장'이란 말은 지금은 잘 사용 하지 않는다. 그보다 '갑질'이란 말을 더 많이 쓴다.
'완장=갑질=권력'
완장이 남들이 부러워하는 것이고, 작든 크든 나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이라면 누구나 그 완장을 놓고 싶지 않을 것이다. 여러개의 다양한 완장을 가진 사람이 있고, 한 개도 취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
주인공 임종술은 놀고 먹는 백수다. 폭력 전과가 있는 양아치에 트러블 메이커다. 어릴적 완장을 찬 반장에게 얻어 맞은 기억, 단속반에 시달리며 도망다니던 기억이 있다. 그에게 완장이란 더 이상 서럽지 않을 힘이었고, 폭력을 정당화 시켜주는 권력이었고, 이전보다 나은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근사한 것이었다.
화려하고 눈에 띄게 멋 부린 완장, 종술로서는 처음 손에 쥔 권력이었다. '저수지 감시원' 비록 한 마을, 그것도 저수지 에서만 통하는 작은 임무지만, 저수지 뿐 아니라 어디서도 통용될 거라 착각한다. 말보다 주먹이 가까운, 과잉 폭력을 휘두르는 종술에게 완장은 패악질을 눈감아 주는 면죄부였다.
"눈에 뵈는 완장은 기중 벨볼일없는 하빠리들이나 차는 게여! 진짜배기 완장은 눈에 뵈지도 않어! 자기는 지서장이나 면장 군수가 완장 차는 꼴 봤어? 완장 차고 댕기는 사장님이나 교수님 봤어? 권력 중에서도 아무 실속없이 넘들이 흘린 뿌시레기나 줏어먹는 핫질 중에 핫질이 바로 완장인 게여! 진수성찬은 말짱 다 뒷전에 숨어서 눈에 뵈지도 않는 완장들 차지란 말여!" (p314)
눈에 보이는 완장을 찬 하빠리들은 빈수레처럼 요란하다. 진짜 권력은 뒤에 숨어서 좋은 얼굴을 하고 알짜배기 잇속을 챙긴다. 악역을 담당한 앞잡이들은 '빛 좋은 개살구'처럼 온갖 욕은 다 먹고 작은 부스러기에 만족하며 미움 받는 일을 기꺼이 도맡는다. 완장 뒤에 숨겨진 진짜 권력이 자기 것인양 큰 착각을 한다.
"본시 우리 나라는 완장이란 게 없었느니라. 예로부터 우리가 팔에다 차는 게 있었다면 그것은 삼베로 맨든 상장 정도가 다였느니라. (...)죄인이라는 증거다. 집안 어르신을 돌아가시게 맨든 죄를 만천하에 자복허는 뜻으로다가 사람들은 상장을 둘렀다. 죄인이 부정을 멀리허고 매사에 근신허게코롬 상장을 둘리워서 일반인들허고 확연허니 구분을 지었다. 본시 우리가 조상님네로부터 물려받은 완장은 이렇게 미풍양속에서 시작된 것이니라. (...) 완장도 완장 나름인 벱인디, 니가 시방 차고앉었는 그것은 말허자면 왜놈들 찌끄레기니라." (p276)
이용 당하며 사는 힘없고 빽없는 사람들. 또 그런 힘 없는 사람을 알아보고 이용하는 사람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진짜 권력과 가짜권력. 진짜와 가짜의 보이지 않는 관계. 소설이 쓰여진 30년전과 지금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도에 차이만 있지 지금도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리얼한 사투리가 가독성을 높인다. 사투리 사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글로 읽는 사투리는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간혹 무슨 말인지 해석이 불가한 단어가 있었다. 사투리인지, 고어나 사어 인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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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집에 오랫동안 모셔만 놓고 읽지 않고 있는 책들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순간의 충동구매나 책 소개글에 현혹되어 들여놓기는 했는데 어쩌다 보니 읽지 않고 방치해놓은 책들이 많다. 그런데 일단 읽어야 소장가치가 있는지 그냥 다른 곳으로 보내도 좋은 지 판단을 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책장 속 저 깊은 곳에서 오랫동안 마음 한구석에 걸려있던 <완장>을 꺼내 들었다.
배경은 일제 강점기와 6.25에 대한 기억이 여전히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 살아있는 그 어느 때, 이곡리라는 시골 마을이다. 마을에 있는 판금 저수지는 어종이 풍부해서 마을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혹은 오락을 위해 낚시를 하는 그런 곳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마을 출신의 한 사업가가 그 저수지에서 낚시터를 운영하는 사업허가권을 얻었다면서 마을 사람들이 더 이상 낚시를 하지 못하도록 감시원을 두려고 한다. 그런데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사람을 부리려고 하니 선뜻 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고 사업가 최씨의 조카인 마을 이장은 동네에서 마냥 할일없고 행패만 부리고 다니는 종술에게 '완장'을 채워주겠다며 자존심을 슬슬 부추기면서 감시원 역할을 맡게 만든다. 완장이라고는 했지만 저수지에서 몰래 낚시를 하는 사람들을 저지하는 것일 뿐 그 어떤 법률적 구속이나 권력과 하등 상관없음에도 종술은 완장을 차고서는 의기양양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폼새를 내며 마을 사람들의 빈축과 두려움을 동시에 산다. 종술이가 평소 짝사랑으로 애태우던 술집 여자 부월이만이 종술이의 완장 허세에 굴복하지 않다니 참 아이러니다. 종술이가 완장으로 얻으려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바로 부월이의 마음일 것인데 말이다.
저자는 종술의 국민학교 적 담임 선생님의 입을 빌어 완장이라는 것이 '왜놈들 찌끄레기'임을 폭로한다. 우리나라에 완장 비스무레한 것이 있었다면 그저 상중에 팔에 두르던 상장이라는 것인데, 이는 집안 어르신을 돌아가시게 만든 죄를 자복하고 매사에 근신한다는 의미로 일반인과 구분을 짓기 위해 팔에 둘렀던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종술이 팔에 두르고 무슨 큰 권력을 얻은 것처럼 나불대는 그 완장은 일본에 우리에게 남겨 준 '침 뱉어 마땅한 유산'이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금도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완장을 두르고 목을 뻣뻣이 세우고 잘난 척 하는 무리들과 매일 마주친다. 내가 누군 줄 알고... 감히 너 따위가..내가 가만 두나 봐라..소위 그런 완장들이 '갑질'이라는 형태로 드러난다. 저자는 종술이와 부월이를 통해 '완장'의 허세를 쫓는 인간 부류에게 일침을 놓는다. 위의 내용으로만 보면 어쩐지 어둡고 암울할 것 같지만 저자의 해학 덕분에 책은 예상외로 유머와 감동 코드가 있고 재치있는 문장들에 깜짝깜짝 놀라게된다. 이런 문장은 줄 쳐놓아야해 하면서 표시해놓았던 문장들 몇개를 인용해본다. <완장>은 소장용 책으로 낙찰!
종술은 밥에 섞인 모래알 모양으로 빠드득 씹히는 옛날 일 한도막을 문득 어금니 사이에서 찾아내었다. (p60)
좋은 생각이 떠오르라고 그는 누운 채로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그 담배가 다 타기 전에 그는 어제 먹다가 시렁 위에 얹어둔 좋은 생각 한 도막을 얼핏 찾아냈다. (p124)
종술은 발자국 소리를 호주머니 안에다 깊숙이 감춘 채로 살금살금 감시소까지 다가가서 다짜고짜 문을 열어젓혔다. (p155)
최사장이 당한 망신은 익삼씨의 안중에 별로 없었다. 그것은 아저씨의 몫이었다. 그는 자기 몫으로 자기가 당한 망신만을 소중스레 따로 챙겨 지니고 있었다. (p210)
실비주점이 적선이라도 하듯이 길바닥에 덜어주는 옹색한 불빛 속으로 (p264)
관상대의 예보가 들어맞아 모처럼만에 비가 내렸다. 관상대는 구름 또는 우산 표시뿐만 아니라 실로 오랜만에 내리는 그 비가 농사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는 사실까지 신통하게 알아맞힘으로써 오히려 농민들의 원성을 샀다. (p278)
메칠새 도라꾸를 두 대 저수지로 보내주셔야 되겄구만요. 왜, 저수지가 호남 고속도로를 타고 이사라도 가고 잡다냐? (p285)
실비주점을 방문하기엔 너무 이른 시각이었다. 벌건 대낮을 피하자면 호박씨만큼이나 자잘하게 깔린 시간의 낱알들을 어디서 일삼아 까먹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마을 안 구석구석을 하릴없이 기웃거리고 돌아다니는 참이었다.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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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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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조형기씨가 주연한 '완장'이 생각났다. |
우리가 살아가고/내고 있는 인간 사회란 것이 어쩔 수 없이 여러 (권력) 관계의 얽힘으로 구성되어 있다라는 사실이, '권력'에 관한 이야기 - 권력의 시작과 종말 - 를 풀어내고 있는 '완장'이라는 제목의, 꽤나 오랫만에 접해본 문학 작품이었던 이 책을 그저 '한 권의 소설'로만 한정지어 이해하게 해주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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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사상적 업적에 대해 감탄을 금할 수 없게되는) 칼 마르크스가 쓴「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의 서문 중 한 구절인 위 문장이 이 소설의 핵심 줄거리를 단적으로 요약해주고 있습니다. --- 이곡리 마을의 한량이었던 임종술이란 인물이, 널금 저수지의 감시원이 되고, '감시원'이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권력의 행사'라는 달콤한 '그 무엇'이 임종술의 생각과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기본적인 줄거리로 하는 이 소설에서, 작가는 도대체 '그 무엇'이 어떠한 것인지를 독자들에게 생각해볼 것을 권유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 · · 【 권력의 소유 】
이 소설에서 보여지는 '권력의 구조'는 ①널금 저수지의 주인(최사장)과 주인의 대리인(최익삼)으로부터 주인공 임종술에게 작동하는 권력과, ②임종술이 마을 사람들에게 행하는 권력의 두 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중 우리는 (당연히) ①번의 권력 구조에 보다 더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 ②번의 권력 구조가 어찌 보면 훨씬 더 넓은 범위에서 보여진다 하여도, 그 권력 구조의 근원은 결국 ①번으로부터 파생된 것이기 때문이지요. 최사장/최익삼이 임종술에게 부여한 '감시원'의 권력에, 임종술이 빠져버리게 된 것은 (다른 요인들도 어느 정도는 작동하였으나) 단연코 '선전'의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종술 자신의 과거에서 '완장'이라는 하나의 물건으로부터 받아왔던 수많은 피해들을, 본인이 그 '완장'의 주인이 됨으로써 보상받으려 했던 것이지요.
종술은 자신의 왼팔에 차여져 있는 '완장'을, '자신이 갖지 못한 모든 미덕을 완전하게 갖춘 존재'로서 기능하는 일종의 '물신(fetish)1이라 믿고 있습니다. '완장'이 있기에 자신은 권력을 갖고 있다고, 더 나아가 그 '완장'의 소유자가 본인이기에 권력 또한 자신의 소유물이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지요.2 이 지점에서 독자는,
주인공 임종술이 '완장'과 본인의 존재를 동일시하는3 모습, 더 나아가 임종술이 완장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완장이 임종술을 조종하고 있는 모습까지도 목격하게 됩니다.4
【 권력의 근원 】
내 주머니 속에 있는 자동차키 때문에, 내가 차에 다가가면 차문이 자동적으로 열립니다. 물론 그 차와 차에 딸려있는 자동차키는 나의 소유이고, 실제 그 차문을 열게 하는 것은 자동차키입니다만, 나의 아이는 '우리 아빠가 차에 다가갔기에 차가 열렸으니, 우리 아빠가 차 문을 연 것이다'라 생각하게 됩니다. --- 자동차의 소유주인 아빠는 자동차의 문을 열고 닫을 (일종의) 권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권력의 원천은 아빠가 돈을 지불하고 그 자동차를 구입하였기 때문이죠. 그리고 자동차의 구입과 함께 '딸려온' 자동차키는 그저 차의 문을 열고 시동을 켜는 것에 국한된 기능만을 부여받았을 뿐입니다. 물건인 자동차키는 단순히 자신이 부여받은 기능에 충실할 뿐이지만,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로 규정되는 인간인 임종술은, 타인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본인 스스로에게서 생겨난 권한으로 착각하게 되고 맙니다. 작가는 이를 설명함에 있어 임종술의 과거사 하나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공부를 못해 매번 나머지 공부를 해야했던 임종술은 구구단을 끝내 외우지 못해 반장에게 매를 맞곤 했었죠.
선생의 권력이란 그가 '선생임'이라는 그 자격으로부터 발생되는 것이기에, 그 '선생의 권력'은 선생이 아닌 다른 자에게는 이양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임종술의 과거는 그같은 권력의 이양이 일종의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되게 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이 --- 작가가 이 소설을 "80년대 군부독재 시절에 태생부터 잘못된 권력을 야유할 속셈"(pp5~6)으로 집필하였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부분입니다. (사실 이건 '대의제'에 내포되어 있는 태생적 한계라 생각됩니다. 각 개인의 의사를 '투표'라는 제도를 통해 특정 집단/특정인에게 이양하는 과정에서 '취사선택'이란 있을 수 없으니까요.) 【 권력의 하수인 】
이 소설의 가장 핵심적인 문단이라 생각합니다. 작가가 꼬집고자 했던 80년대의 상황에서, 진짜 권력을 쥔 자들은 그들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으나, 그들에게서 일정 부분의 권력을 위임받은 자들(당시의 안기부, 검찰, 경찰 등)은 기꺼이 권력자들을 위해 본인들의 손에 피묻히기를 주저하지 않았죠.6 칼 마르크스가 설파했던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라는 주장, 어쩌면 인류의 역사에서 내내 이러져 왔던 인간 본성과도 같은 악습이, 아주 생생하게 1980년대의 대한민국에서도 또한 보여졌던 겁니다.
…………………………………………………………………………… 임종술의 삶은, 적어도 소설 속에서 보여지는 부분에서만큼은 불행한 결말을 맞고 있습니다. '완장'으로 인해 자신에게 허여되었던 권력이 그 생명을 다하자, 술집 작부인 부월과 함께 마을을 떠난 후의 삶이 어떠한 모습으로 진행될지에 대해 작가는 전혀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다만,
임종술과 부월의 소설 밖 삶이 '진짜배기 완장'을 차기 위해 노력으로 점철될 것이라는 짐작을 어렵지 않게 하게 됩니다. 문학 작품에 대한 저의 어렴풋한 이해로는 어쩌면! --- 정말로 작가가 비판하고자 했던 부분이, 1980년대의 상황 그 자체가 아닌, 그러한 상황이 자아낼 이후의 역사가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본인의 경험, 거기에 더해지는 그 경험과 동일한 타인의 현실을 목격할 때 우리는 그 상황을 별 저항 없이 일반화시켜버리게 됩니다. 본인 임종술의 과거에서 완장들로부터 받았던 고통들, 본인이 그 완장을 차고 휘두르는 권력, 그리고 그 권력에 고통받는 친구 준환의 모습을 보며 --- 현재 자신의 쥐고 있는 그 한 줌의 권력에의 집착이 더더욱 강해지며, 이후의 삶에서도 더 커다란 권력을 탐하는 것이 (일견) 정당화되어버리죠.
'완장'의 역사가 일제 치하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주장의 진위와 관계 없이, 1980년대의 권력 구조가 그로부터 40여 년이 흐른 지금에도 일종의 계급 격차라는 유산을 통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 그가 똑똑해서 서울 법대 교수가 된 것인지, 혹은 그가 그의 자녀에게 안겨 준 살뜰한 '배려들'을 그 역시 그의 부모로부터 받았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라는 의구심까지를 자아낸, (그럼에도 불구하여 여전히!) 본인을 사회주의자라 자칭하는 사이비 진보 인사의 예에서 여실히 보여졌었듯, (이 사회에서 '만석꾼의 권력을 쥔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에 상관없이) 보이지 않는 '완장'을 차고 이 대한민국 사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이들의 속내란 것이, 16세기 초 프랑스의 한 청춘이 지적했던 '궁사, 경호원, 창기병'들의 수준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목수정이 칼날처럼 지적했던 바, "기회주의가 가장 현명한 삶의 해법임을, 힘 있는 자 밑에 엎드려 마름 노릇을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생존의 전략임"7은, 비단 1980년대의 군부 정권 시절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2020년에도 여하히 부인할 수는 없네요. 오로지 '소설'로만 보자면, 읽어내는 재미가 있었다라는 점을 빼고는 크게 좋은 평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야기의 시종(始終)이 애초의 예상과 큰 오차없이 그려지는 점도 그렇고, 인물의 내면에 대한 묘사도 그다지 세밀하지는 않았다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참으로 진부한 표현이기는 합니다만, '현재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의미에서의) '희망찬' 미래를 그려볼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예의 이 작품을 '한 권의 소설'로만 이해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이 지구를 들쥐와 바퀴벌레들이 지배하는 날이8 오기 전 언젠가 반드시,
작가 윤흥길 역시 가졌었을, 이러한 바람(願)이 이루어질 날이 올거라, 우리 모두 믿고 있으니까요. ※ 이 소설이 담고 있는 주제들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자발적 복종」,「권력의 종말」,「20 VS 80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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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군사정치 시대에 씌여진 책이다. 뭐 그렇다면 예상이 가겠지만 군사정치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우리는 살면서 평소에는 힘도 없다가도 조그마한 권력을 쥐어주면 사람이 180도 돌변해서 횡포를 부리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가 있다. 이 소설은 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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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단편으로 쓴 소설을 출판사의 권유에 따라 중편을 거쳐 결국 장편으로 거듭 태어난 소설이다. 억지로 늘렸다고 할 수 있는 소설이지만 순간순간 위기를 반전이라면 반전으로 잘도 극복하고 이야기가 연결된다. 그 절묘한 상황의 전개에 감탄하게 된다. 하지만 잘 연결되던 이야기는 마지막에 아쉬움이 드는 결말로 마무리 된다.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소설로 단막극과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