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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딘'처럼 살고 싶었다...[황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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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황무지' 하면 내겐,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로 이어지는, 그 뜻을 잘 알지도 못하는 티 에스 엘리어트의 긴 시 <황무지 The Waste Land>와,김창완씨와 그 아우들로 이루어진 '산울림'이 돼지 멱따는 소리로 부르는 <내 마음은 황무지>에 나오는 "나의 마음은 황무지 / 차가운 바람만 불고 /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 뜨거운 황무지였어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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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무지' 하면 내겐,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로 이어지는, 
그 뜻을 잘 알지도 못하는 티 에스 엘리어트의 긴 시 <황무지 The Waste Land>와,
김창완씨와 그 아우들로 이루어진 '산울림'이 돼지 멱따는 소리로 부르는 <내 마음은 황무지>에 나오는 
"나의 마음은 황무지 / 차가운 바람만 불고 /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 뜨거운 황무지였어요..."가 떠오른다.

글이나 노래를 떠나 영화 쪽은 어떨까?
테렌스 맬릭 감독이 1973년에 만든 <황무지 Badlands>는 그래서 눈길이 가는 영화다.
철이 없는 사내와 계집아이가 황무지를 집으로 삼아 타잔과 제인 같이 살고 싶었지만,
세상을 살아가려면 어른답게 살아야 함을 알지 못한 탓에 꿈으로만 끝이 난 슬픈 영화였다.

2.
고등학교에 다니는 열다섯 살짜리 계집아이 홀리(씨씨 스페이식)는 엄마가 죽고 나서
아버지가 새 삶을 찾아 텍사스주에서 사우스 다코타주 포트 듀프리로 집을 옮기자 따라 나섰다.
낯선 곳이라 혼자 노는데, 어느 날 잘 생긴 젊은이가 그 앞에 나타난다.

쓰레기를 치우는 일을 하는, 스물다섯 살의 젊은이 키트(마틴 쉰)가 바로 그다.
그런데 키트는 삶이 고달프다. 나름대로 애를 써서 일을 하지만 일터에서 잘리고 만다.
또 홀리와 사귀고 싶지만, 홀리의 아버지(워렌 오티스)가 못마땅하게 여긴다.

어렵사리 홀리와 말을 트게 되었지만 홀리는 키트한테 말한다.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과는 만나지 말래..."
키트는 성이 나서 홀리한테 되묻는다.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이 어때서?"

아버지가 말리든 말든, 홀리는 사랑이 고픈 터라 아버지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제임스 딘처럼 멋있게 보이는 키트를 놓칠 수가 없다. 그래서 끝까지 가본다.

3.
이젠 사내가 나서야 하는 때다.
홀리보다 나이가 열 살이나 많고 껄렁해 보이는 키트를 좋아하지 않는 홀리 아버지를 키트가 찾아간다.
"홀리는 제 모든 것입니다. 저는 사귀는 다른 아가씨가 없어요..." 홀리와 사귀게 해달라고 말을 해본다.
그런데 홀리 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딱지를 놓는다.
"앞으로 귀찮게 하지 마! 다시 너를 보고 싶지 않아. 넌 참 특이한 놈이야..."

"아무도 내 생각을 묻지 않아...나를 괴롭히기만 하지..." 키트한테는 피붙이도 없고 벗도 없다.
그래서 마음 붙일 데로 찾아낸 사람이 바로 홀리다. 홀리와는 마음이 서로 맞아 좋다.
그런데 키트를 둘러싼 것들은 키트를 반기지 않는다. 
홀리의 아버지는 만나지 못하게 말리고, 새로 일자리를 찾지만 늘 떨어지고...

드넓은 미국 땅이지만 키트를 반겨주는 이는 홀리 말고는 없다. 
제 마음을 받아주는 홀리와 같이 살려면, 이제 키트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디로 가며...
키트를 막는 홀리 아버지를 넘어서야 하고, 일자리를 주지 않는 세상과도 맞서 싸워야 한다.
홀리가 태어난 텍사스로 가서 카우보이라도 하는 수밖에...

4.
타잔과 제인 같이 아무한테도 얽매이지 않은 채 황무지를 일구며 둘이 알콩달콩 살고 싶었다.
그들에겐 총이 있고, 먹을거리가 있는 터라 무서운 것도 없었다.
임자 없는 땅에서 죽을 때까지 '님과 함께' 즐겁게 사는 꿈을 꾸었다.

그렇지만 세상은 사람을 죽인 이들을 그냥 두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있든 없든 죄값은 받아야 한다고 어른들이 따라 붙고, 
이젠 세상을 우습게 보는 키트여서 '날 잡아 봐라!' 하듯이 발자국을 남기며 달아나고,
집을 나선 길을 되돌아가기도 어려운 홀리는 키트가 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두며 따라 다니기만 한다.

영화에서 감독은 세상살이를 담담하게 그리고 있었다.
누가 옳고 그른지를 가리려 하지 않고 그냥 보여 주기만 했다.

키트 같이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을 그 속은 보지도 않고 발아래로 보면서
그런 이가 제 딸과 엮이지 못하도록 애를 쓰는 홀리 아버지의 치우친 생각이나,
혼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치는 키트한테 일자리를 주기는커녕 내쫓기나 하는 사람들이나,
꿈으로만 끝날 게 뻔하지만 머리가 굳어진 어른들과 떨어져 제 생각대로 살고 싶어한 키트와 홀리의 꿈을,
흘러가는 물처럼 하나씩 보여주면서 보는 이들이 생각하도록 엮어내는 게 좋았다.

5.
'키트와 홀리의 모험'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홀리가 영화 속에서 일어난 일을 풀어서 들려준다. 
"조용한 마을의 샛길에서 비롯된 일이 몬태나의 '황무지'에서 끝이 난다는 걸..."
홀리의 마음 속에 남아있는 키트를 찾아가는 영화다. 같이 꿈꾸었던 옛날을 그리워하면서...

그런데 키트가 사람들을 뜻하지 않게나 일부러 죽일 때 홀리는 곁에서 구경만 했을 뿐이라고 나온다.
장 뤽 고다르 감독이 1960년에 만든 영화 <네 멋대로 해라 À bout de souffle / Breathless>를 본땄을까?
여기서는 마음에 드는 파트리샤(진 세버그)를 꼬드기려 할 때 
잘 생긴 사내인 미셀(장 폴 벨몽도)만 총을 들고 나쁜 짓을 했을 뿐이었다.

아서 펜 감독이 1967년에 만든 <보니와 클라이드 /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Bonnie and Clyde>에서는
클라이드(워렌 비티)가 총들고 돈을 빼앗으러 나섰을 때 같이 다니던 보니(페이 더너웨이)도 총을 들었다.

키트와 같이 다니기만 했지, 키트가 일(?)할 때 같이 하지는 않았다는 게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
아마도 나중에 키트가 홀리를 지켜주려고 그렇게 짜맞췄을지도 모르겠다.

키트로 나온 마틴 쉰은 찰리 쉰의 아버지인데 더 젊게 나오니까 처음에는 조금 얼떨떨 했지만,
볼수록 사람을 빨아들이는 솜씨를 보여주었다.
골목길을 걸으면서 밀걸레를 손바닥에 놓고 안 떨어지게 몸을 움직일 때는 슬며시 웃음이 나왔고,
홀리와 단 둘이 살아가던 제 성(?) 안에 총을 들고 들어온 사내들을 보고 나무 집에서 내려와 숨을 때는
잽싸게 뛰어내려와서 잠깐 액션 영화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주근깨가 앉은 얼굴로 철이 덜 든 계집아이 홀리로 나온 씨씨 스페이식은
1949년에 태어났으니까 우리 나이로 스물다섯 살에 이 영화에 나온 셈인데,
나이가 들어보이지 않았다. 열다섯(우리 나이로 열예닐곱 살)으로 보아도 괜찮을 만큼.
핫팬츠같이 짧은 옷을 입고 가녀린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영화관에서 본 미국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궁금해진다.

6.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면서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쉽게 생각하게 되는 키트를 나무랄 수밖에 없지만,
그렇게 키트를 몰아간 그 때의 어른들도 좋아 보이지는 않는 영화였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도록 하려면 어렵고 힘겹게 사는 이들을 나라나 잘 사는 사람들이 도와주고 이끌어
주어야 할 텐데, 그렇게 하지는 못하면서 쪽박을 깨려고 하면 누가 가만히 앉아서 목을 내놓고 있을까?

영화에 깔리는 냇 킹콜의 노래 "꿈은 사라지고 / 참사랑은 죽고..." 마냥
한여름밤의 꿈처럼 물거품이 되는 꿈을 꾼 사람들을 보면서 가슴이 쓰라렸다.
그래서 영화는 끝이 났지만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싫었다.

어쩔 수 없이 그랬다지만, 아버지를 죽인 사람을 사랑할 수가 있을까? 철딱서니가 아니고선...
영화는 그런 대목을 그대로 보여주었는데, 나로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영화 끝머리에 영화에 나오는 이름이나 벌어진 일들은 모두 지어낸 것이라고 써놓았다.
그런데 이 영화를 찍기 앞서 1958년에 미국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본따서 만들면 나중에 법정에 설 수도 있어 지어낸 이야기라고 둘러댄 듯하다.

영화가 나온 지 벌써 마흔 해가 넘게 지난 까닭에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컬러로 보여주는 디뷔디 화면은 아주 깔끔하게 나와서 뜻밖이었다. 소리도 괜찮다.
그런데 잘 만든 영화면 디뷔디에 담을 때 덤으로 좀 넣어주면 좋을 텐데, 예고편마저도 없다.
사기가 무척 어려운 영화여서 눈에 보이자 바로 사고 말았지만,
덤도 없는 한 장짜리에 14,800원은 비싸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b******g 2011.06.02. 신고 공감 8 댓글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