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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탈 때 발생하는 뇌파는 운동을 할 때의 베타파가 아니라 명상을 할 때의 알파파라는 것이다. 등산은 운동이 아니라 명상이다. 긴장이 아니라 이완이다._(P.30)
단체로 산행을 해보면 평지에서 이어지는 산의 초입부터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재잘재잘 이야기들을 나누며 즐겁게 시작한다. 어느 정도 경사를 만나 오르막을 줄곧 걸어오르기 시작하며 숨이 목까지 차게 되면 그 때부터는 떠들던 소리가 줄어든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극기의 단계에 이르면 가쁜 숨을 몰아쉬는 소리와 발걸음 옮기는 소리만이 남는다. 그야말로 무아지경의 명상상태가 된다. 그래서 산행은 평지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몸과 정신상태를 경험하게 해준다. 산행은 목적지를 정해놓고 오르기 마련이라 단순히 힘겹다는 이유로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는 드물다. 아무리 힘들어도 기를 쓰고 가게 되기 때문에 평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운동효과를 보게 되고 더불어 자신이 정신력이나 의지 등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산 정상에 올라 평지를 바라보는 즐거움은 그런 힘겨운 과정이 있었기에 배가 되는 것이다. 보람이 되는 것이다.
산행은 자신의 체력과 정신력을 테스트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래서 오랜 기간 평지형 인간이었던 이가 산행에서 자신의 심신상태를 확인하고 산행의 즐거움과 보람을 깨닫게 되면 자주 산행을 해야겠단 결심을 하게 된다. 땀범벅이 되어 얼굴은 엉망이고 온 몸이 축축해져 있어도 산에서만은 아무 것도 아닌게 된다. 산을 오르는 나는 이미 평지의 내가 아닌 것이다. 몸도 마음도 평지에 머물 때와 다른 상태를 경험하면서 미처 이전에는 닿지 못했던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지나기도 한다. 그리고 번잡한 일상을 벗어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도 한다. 때론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일생일대의 커다란 문제로까지 생각이 닿는다. 이처럼 산행은 일상을 벗어난 경험으로 인해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나와 삶에 대한 다양한 문제들을 평소와 다른 시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내게 산행의 장점을 꼽으라면 이부분을 들고 싶다.
"뭣 하러 산에 올라요? 결국 내려올 것을!"이라고 외치던 평지형 인간 김별아. 이 책은 그녀가 백두대간에 올랐던 산행의 기록이자 굴곡의 산행을 따라 떠올렸던 인생에 대한 성찰의 기록이다. 우리는 평생토록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세네카의 말처럼 평생을 배우겠다는 자세를 견지해야함을 이 책은 깨닫게 해준다. 이 세상은 한 사람의 인간이 일평생을 두고 헤집고 돌아다녀도 경험하지 못할 정도로 드넓은 곳이다. 지구촌 어느 한구석에서 나고 자라나 살다보면 그만의 편견으로 인생을 재단해 버리고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조금만 자신이 살던 곳을 벗어나 보면 자신이 우물안 개구리였다는 사실을 즉시 깨닫게 된다. 하물며 평지에 살다 산에만 올라도 그렇다. 평소와 다른 높이로 사람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평생을 평지형 인간이었던 작가에게 산행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삶에 대한 통찰력을 키운 엄청난 기회였을 것이다.
그런 그녀의 통찰과 희망의 기록을 나는 별 수고 없이 책으로 만날 수 있었다. 물론 직접 산행을 하며 깨달은 것과는 차원이 다르지만 그마나 책 속 산행의 기록이 마치 작가와 여행의 과정들을 함께한 느낌을 주긴 한다. 숨이 넘어갈 정도로 힘겨운 순간을 경험하며 깨달은 것은 분명 머리로 깨닫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므로 독자인 내가 머리로 이해했다고 해도 오래가진 않을 것이다. 작가는 온몸이 땀범벅이 되는 힘겨운 구간들을 폭우와 강한 바람을 맞으며 때론 죽음까지도 불사하며 경험했기에 그로 인한 깨달음이 남달랐으리라 생각된다. 작가와 똑같은 경험을 해보겠단 요량이 아니라면 책으로 그런 성찰의 기록을 만나 간접적으로나마 경험치를 늘려보려 해 봄직하다.
산은, 삶은 힘든 중에도 기쁘고 기쁜 중에도 힘들 수 있다. 그 순탄한 기쁨과 가파른 슬픔에 순연히 복종해야만 진정으로 산을, 삶을 즐길 수 있으리라. 이 또한 지나갈 숱한 일들 중의 하나이기에.(P.2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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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별아의 백두대간 종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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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갈수록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좋을 것들을 겪어가며 산다. 작년보다는 올해가, 올해보다는 내년이 살아온 시간이 늘어나는 것이니 경험하는 일들의 종류가 늘어만 가는 것이 실로 당연한데, 어쩐지 그래서 살아가는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가는 것이 힘들고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 보이지 않는 마음 깊은 곳에 굵디 굵은 주름살들이 하나, 둘씩 패여가는 기분이랄까. 시간이 갈수록 책임져야 하는 것은 비단 얼굴 뿐만이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얼굴보다도 마음을, 추하게 늙지 않도록 많이 많이 보듬어줘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마음에 깊게 패여버린 주름들을 탱탱하게 펴주는 링클 크림이나 보톡스가 있다면 참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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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미실>로 유명한 김별아 작가의 책은 이번 책이 처음이다.
이 책의 글들은 2년에 걸쳐 40차 산행으로 진행될 예정인 백두대간 종주 중 예비 산행을 포함한 1차에서 이렇듯 결국 내려갈 것을 알면서 오늘도 그녀는 산에 오른다.
책을 읽다보니 이 책은 산행기를 가장한 고백의 에세이라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어졌다.
'화를 붙잡고 있는 것은 그것을 누군가에게 던져버릴 요량으로 뜨거운 석탄을 쥐고 있는 것과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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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내가 자주 떠올리고 자타가 공인하는 천진한 아들녀석이 일을 저지르고 올때마다 마음을 다잡는 말이라 익숙하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작가 역시 산을 오르면서 얼마나 되새겼을지 읽는 내내 그 험난한 산행도 마치 지금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있는 이들과 한마음이 되기에 충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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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책을 마주대했을때 '산행'이라는 단어만 보고는 책 속에 산에 대한 풍경과 정보들이 가득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예비산행 꼭지를 읽으면서 내 생각이 완전히 틀린 것임을 깨달았다. 산에 대한 이야기는 맞되, 산을 오르는 자들에 대한 정보가 가득한 것이 아니라, 산을 오르는 마음가짐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했던 것이다.
나 역시 작가가 말하는 대로 '평지형 인간'이였다. 산을 오르는 것에 극도로 거부감을 가지게 된 것은 바로 중학교 때였다. 중학교 무렵, 체력을 길러주겠다며 새벽마다 아빠는 나를 산으로 데리고 가셨다. 다 커서 다시 가 본 산은, 산이라기보다 언덕에 가까운 곳이었지만 어렸을 때는 아침마다 가파른 곳을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른다는 것이 곤욕 이였다. 아침잠이 절실했던 터라 어떻게든 산에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산에서 사랑했던 것은 꾸역꾸역 정상으로 오른 뒤 날 맞아주는 시원한 바람과 새벽 공기였다. 그래서 미치도록 가기 싫은 새벽 산행 이였지만 시원한 바람이 그리워 일주일에 한 번쯤은 저절로 눈이 떠지기도 했더랬다.
나와 마찬가지로 네팔 포카라에 머물면서도 히말라야 쪽에 눈길도 안주었던 작가가 산에 오르게 된 것은 특별한 계기가 있다. 첫 번째는 아이와 특별한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서였고 두 번째는(제일 중요한 이유일수도 있는)제일 밑바닥에 마주한 자신과 마주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이 글은 산행기이되 산행기만은 아니다. 산을 오르며 쓴 글이되, 때로 산보다 더 가파르고 굴곡진 삶과 그 굽이굽이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백두대간을 오르며 산행 첫날부터 무언가를 발견하고, 내 안의 신비한 무엇을 발견했다고 호들갑스럽게 적었더라면 아마 끝까지 책을 읽어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소아우울증에서 시작된 우울한 유년기와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 그리고 워커홀릭이 되기까지 적나라한 자기성찰이 산행과 함께 펼쳐졌다. 가까운 누군가의 깊은 비밀을 알게 된 것처럼, 처음에는 '아...'라는 짧은 탄식과 함께 쉽사리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결코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하면서도 끝까지 작가와 함께 산행을 한 것은 솔직할 만큼 자신의 어두운 부분과 함께한 작가의 용기 때문이리라.
<그야 당연히 산을 타는 게 더 어렵죠! 공부는 하는 척할 수도 있지만 산은 타는 척할 수 없잖아요? 열네 살짜리의 말이 내 마음에 묵직하게 얹혀 있던 그 어려운 질문에 대해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다. 산은 타는 척할 수 없고 삶은 사는 척할 수 없다. 죽은 척하고 살 수는 있을지 몰라도 사는 척 흉내를 내면서는 단 한순간도 온전히 살 수 없다. 산을 대신 올라줄 수 없는 것처럼 무엇을 위해 사는지는 누구도 대신 대답할 수 없다. 그러니 피투성이에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악전고투 끝에 절벽을 기어올라 닿은 정상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남에게 이러쿵저러쿵 설명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산은 오직 스스로 올라야 그 끝에 닿을지니.> 여러 사람이 있는 만큼 여러 삶이 있을 것이다. 물론, 진정 나를 위해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혹은 남에게 보이는 나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연 어떤 삶이 행복한 것일까? 작가는 산을 오르며 정답을 찾아냈다. 정상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오롯이 나만 길 위에 남겨져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도 정상을 오르고 그리고 내려오는 것은 '척'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내기 위한 것임에 틀림없다.
나도 문득, 산에 가보고 싶어졌다. 백두대간처럼 높은 곳은 아직도 겁이 나지만 중학교 때 올랐던 그 곳에라도 올라보고 싶어졌다. 마음 먹은 대로 살아가기 힘든 인생이지만, 내면의 자아에 충실하게 오르다보면 결국 내가 만나보고 싶은 나와 만나게 될 것이란 믿음을 다시 확인해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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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을 오르고 내리며 만날 뭇 생명과 숲, 물, 바람이 저희와 별개가 아니라 서로서로 하나로 기대 있음을 깨우치게 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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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 이후로 '독고다이'는 좀 실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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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흥망이 있고 성쇠가 있듯 우리의 삶은 굴곡이 있다. 인생길을 가다보면 오름과 내림이 있고 평길과 가시밭길이 있고 좁은 길과 넓은 길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산'은 인생을 비유하는 근본 은유로 자주 활용된다. 요즘은 산을 심신 치료의 상징 내지는 방법론으로 활용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산을 말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신체적 측면에서 등산의 이로운 점을 말하는 법과 정신적 측면에서 또는 실존적 측면에서 산행의 의미를 말하는 법.
김별아의 산행 에세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에코의서재, 2011)는 후자에 속한다. 즉 정신적 측면에서 산의 상징과 삶의 의미를 중첩해 말하고 있다. 백두대간 종주라는 엄청난 목표와 2년이라는 데드라인을 정해 놓고 정기적으로 이우학교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오르내리는 와중에 느낀 바를 적어 내려간 심리치료 에세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산타기를 극도로 싫어하던 평지형 인간이었다고 고백한다. 평지인이 백두대간을 통해 자연과 인생을 알아가는 산악인으로 변모해 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16차 산행까지 마쳤지만 그래도 저자는 아직까지는 하산할 때가 제일 좋다는 얼치기 산악인이다. 산에 오르면 좋은 점 네 가지를 나름 정리해 보았다. 첫째, 등산은 가장 좋은 유산소 운동이다. 둘째, 도시문명에 찌든 때를 산림욕으로 날려 보낼 수 있다. 셋째, 가장 높은 곳에서 마음의 밑바닥을 들여다볼 수 있다. 넷째, 가족들과 함께 오르면 속물적인 '가족판타지'를 걷어낼 수 있다.
산행길에는 생각을 동반할 수도 있고 아무런 생각없이 무작정 발길 따라 흘러갈 수도 있다. 저자가 백두대간의 산행길에 떠오른 여러 잡다한 생각들 가운데 특히 내 눈길을 멈추게 만든 것이 있다. 하나는 등정(登頂)과 등로(登路)에 대한 생각이다. 등정이라는 표현 자체가 성공과 실패, 지배와 종속, 극기와 포기의 이분법적 사고 또는 수직적 사고를 조장한다. 그러고보니 뉴스에서 듣고 보는 알피니스트들의 이야기에 정복주의, 과시주의, 성과주의, 제국주의의 혐의가 조금도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반면에 등로는 결과보다는 과정 자체의 의미를 추구하는 수평적 사고를 강조한다.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올레길' 같은 평등과 소통의 길이 아닐까 싶다.
다른 하나는 짐과 힘에 대한 반짝이는 성찰이다. 얼핏보면 자음 하나 달리한 말장난 같기도 한데 생각하면 할수록 그 의미가 더욱 가슴 깊이 스며든다. 공감한다. 어깨에 짊어진 짐을 버틸수만 있다면 그건 우리로 하여금 앞 발을 내딛게 만드는 견인력이 된다.
"가만히 곱씹어보면 내가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이 고스란히 나를 짓누르고 억압하는 '짐'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상처와 고통과 슬픔과 걱정과 책임일망정 때때로 그 짐을 감당하기 위해 앙버티는 것이 삶의 근거가 되었다. 그때 짐은 '힘'이었다. 상처도 힘, 고통도 힘, 슬픔과 불안까지도 힘이었다. 니체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그것들이 나를 무너뜨리지 못했기에 나는 더 강해질 수 있었다."(168-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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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주말의 썰렁한 산길…. 그 숲을 일부러 찾아갔다. 한 때는 부처가 와서 머물다 갔을 화려한 그 절, 두견새 꾀꼬리가 자리를 바꾸면서 나를 맞았고, 다람쥐가 도맡아 단풍의 낙원을 지키는가 싶었다. 그러나 이제 다시 오를 때, 환영(幻影)을 불러 모으는 골짜기마다 낙엽의 융단이 깔렸다. 찬바람이 점령한 숲길은 발길에 으스러지는 낙엽의 신음으로 지배된다…. 잿빛 하늘에 부푼 구름은 무슨 악몽에 시달렸는지 곧 눈폭풍이라도 날릴 기세다. 언덕을 오르며 부르르 몸을 떠는 나 자신을 비웃기도 했다. 하긴, 小寒을 지나는 계절이니... 잠깐 스틱으로 허리를 바치듯, 등을 폈다. 고개를 쳐들다가 머리 위의 느티나무 높은 가지에 눈이 걸린다…. 폭풍에 떠는 마지막 나뭇잎 하나…. 그리고 일체의 설명이 생략된, 꽉 막힌 감정으로 굳어진다. 눈엔 보이지 않아도, 저 초조하게 서성이는 나뭇잎 뒤에 누가 와서 생명을 위협할까? 그 징후는 잘 알 수 없어도 어떤 두려운 큰 힘이 엄습해 오는 기분으로 내 머리끝을 쭈뼛하게 조인다…. 초점 잃은 생각에도 온 몸이 조여드는 불길한 수축감을 알게 한다. 하지만 잠시 후, 찰나적 순간의 두려움이 사라지고, 너무 고요한 둘레의 텅 빈 진공관에 갇히듯 온 몸에서 힘이 쪽 빠졌다… 낮은 산 중턱…. 새 한 마리 얼씬하지 않는 무덤 상석에서 떡갈나무 마른 잎 한장을 보았다…. 마른 잎이 조금씩 바람에 사락사락 흔들려 울려올 만큼 주위가 고요했지만, 그 소리가 괴이한 마찰음으로 내 몸 신경을 후볐다…. 멀리서 들려오는, 마치 풀벌레 울음 같은 울림 탓일까, 온 몸이 무엇에 부딪혀 추락하는 무의식의 고포를 일게 했다. 텅 빈 분위기의 중심이 그 낙엽의 설렘 소리에 이어져…, 듣는 쪽의 몸도 마음도 함께 휩쓸리는 절박감으로 가슴이 무겁게 차올랐다. 적막, 공허, 절망, 고독, 죽음…. 그런 허식에 찬 감상의 과장을 송두리째 팽개치고, 다시 힘을 내 가파른 언덕을 올랐다. 이번에는 돌연한 까치 소리에 폐쇄된 마음의 창이 바스스 열렸다. 저 길음(吉音)…. 우러러보니 숲 사이 정자의 옥상이다. 아직 이름이 없어, 현판도 걸리지 못한 아담한, 등산객의 쉼터였다. 그렇지 않아도 정자에서 쉬려니 했는데 먼저 터줏대감이 인사를 보내오지 않는가…! 이 까치는, 철새와 달리 사철 이곳 정자를 지켜왔다. 반갑게 처음으로 이편에서 소리 높여 회답해 보이느니, "봉주르…!" “끼익ㅡ 끽ㅡ!” 까치는 이내 날아갔다. 나는 알지만, 저 녀석은 할 일없이 바쁜 체 이리 뛰고, 저리 날며 생리적으로 안정감을 되찾지 못했다. 저 녀석을 위해 이 기회에 쉼터 정자 이름을 ‘작갑정(鵲岬亭)’이라 정해주고 싶었다. ‘鵲岬亭’의 휴머니즘ㅡ. T. 모어의 지적 정서대로, 풍치 좋고 정자 좋은 쉼터의 시간은 한 마디로 `만족'이다. 나는 그렇게 서둘러 정자 명을 지을 수 있어 흐뭇했다. 이제부터는 글을 쓸 때 ‘鵲岬亭’을 잊지 않겠다. 딴은 이와 유사한 이름이 없지 않다. 一然의 [三國遺事] <圓光西學>에 있다…. 구청에서 건립한 이 정자에는 현액(懸額) 시 한 편 걸려 있지 않다. 옛 시대 같으면 정작 화려했을 것을ㅡ. 다음 옛 시는 나의 풍류를 읊은 느낌이다. 쇠잔한 꽃 밟으면서 산에 올라 이리 저리 굽어보고 돌아갈 생각 잊네 훗날 만일 내 마음 말하면 선경 높이 누워 세상 일 잊었다 하게 (文烈公集ㅡ龍岩院). 겨울에도 포근한 날은 많다. 어떤 해는 크리스마스나, 설 명절이 얼마나 지내기에 화락한 휴일이던가? 그 느슨하고 아늑한 날엔, 쪽빛 아침 하늘부터 경쾌한 외출을 축원해 주는가 싶었다…. 그러나 겨우 十二月을 넘겼는데, 상황은 뇌성벽력과 잦은 비가 없을 뿐, 어제의 을씨년스런 날씨를 이어 받았다. ‘鵲岬亭’에 쉬는 사이, 갑작스런 폭풍에 진눈깨비가 몰아왔다…. 혼자 산에 온 여성이 눈보라를 피해 정자로 뛰어들었다. 빨간 더블 클로스에 등산모 위로 벙거지를 겹쳐 쓴 30대 중년이었다. "안녕하세요, 올 겨울은, 시작부터 낭만적이죠? 호호호…" “환영합니다. 날씨가 미팅을 주선했을까요? 하하하…” 그녀는 쫓겨 들듯, 눈을 털며 마루에 와 앉는다. 이쪽을 보고, 그녀는 한 눈에 평가했던지 쓰렁쓰렁한 경계의 눈빛을 풀어 내린다. 은은한 샤넬의 향기…, 그것만으로 첫 인상을 대충 점칠 수 있게 했다. 그녀의 벙거지 밖으로 밀려나온 갈색 곱슬머리…, 산을 즐겨선지 조각처럼 강렬한 윤곽이 두 눈빛만으로도 지적 풍모를 도드라지게 발산해 보인다. 다만 날카롭고 차갑기에 문학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궂은 날에도 그 쪽은 산행을 일과로 하시오?" "습관이 됐어요. 저 모르시죠? 산에서 뵐 때마다 목례를 드렸는데…." "역시 우린 구면이던가요? 하하하…" “우정을 얻는 확실한 방법은 내 스스로 남의 벗이 되는데 있다. ㅡ에머슨.” “묵은 시간 위의 남은 찌꺼기로 현재를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 ㅡ앙구스티누스.” 그리고 둘은 웃음으로 침묵을 불렀다. 그녀는 말주변이 좋았다. 하얗게 눈이 쌓이는 사이, 인습을 거부하는 자유분방한 기질이 눈 위를 달리는 토끼 모양 톡톡 튀었다. 활달한 외향성이 거부감을 없앴다. 나중에 보니 우리동네 젊은 신경외과 의사의 부인이었다…. 그녀는 눈보라가 멎자 행복같이 왔다가 기적처럼 떠났다. 스마트한 뒷모습…에, 내 시선을 조심조심 딸려 보냈다. 눈보라가 지나가면서, 뽀얀 바림(渲染)으로 색칠해진 산 숲은, 백색의 우수를 빚어내도록 감정을 역전해 이끌었다. 모스크바에서 파리로 돌아가던 기착지, 눈 내리던 十二月 초 헬싱키 공항에서 쉬는 시간, 그렇게 서운할 수 없었던 여운이 빨간 더블 클로스로부터 시선을 거둘 때, 다시 은은히 일렁인다…. 그녀와는 반대 방향으로 언덕을 올랐다. 미끄러웠다. 그러나 평지로 나와 솔숲이 길 양쪽으로 약간 하늘을 덮고 있었기에 노란 들국화들은 거의 눈에 덮이지 않았다. 그냥 갈까 했는데 돌아보아 잘했다고 여겼다. 나를 향해, 노란구슬 들국화 한 송이가 바람결에 굽실해 보인다. 나도 너무 반가웠다. “옳아, 누군가 했는데 너, 황진이 아냐…?” “평안하셨어요? 아까 그 아줌마 예쁘죠, 다시 만나고 싶잖으셔요? 호호호…” “하하하…, 우리 황진이 다 컸네!” “절 꺾어갖고 가셔요, 제가 그 아줌마 되어드릴게요…” “그래? 어쩜 이리 아줌마 닮았을까, 꺾어도 되겠니?” “고맙습니다.” 노란 국화 한 송이를 슬쩍 따 들었다. 길섶에 작은 구슬로 무늬 져 있는 저 꽃들의 행렬…, 마치 울면서 상심해 있다가 이 광경을 보고 부러워 웃음을 보내오는 소녀들마냥 얼굴마다 조금씩 눈물이 괴기 시작한다. 들국화들은 훌쭉 여윈 몸을 떨며 찬바람에 저항해 보였지만, 난들 도울만한 아무런 재간이 없었다…. 꺾어든 황진이는 기뻐서 쫑알쫑알 우스갯말을 풀어놓는다. 말을 할 줄 아는 구슬 꽃이었다. 나는 정말 얼마나 흡족한지 몰랐다. 그 뒤의 환상적인 얘기는 다시 며칠 후, 속편으로 쓰겠기에 여기서 접는다. 이따금 폭풍이 모퉁이를 돌아올 때,, 산 벚나무에서 지잇… 지잇… 울며 날아드는 산 솔새 떼처럼 머리 위로 우수수 낙엽들이 흩날린다. 생명의 묵시로 새카맣게 환영(幻影)되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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