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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의 [뉴욕3부작]의 첫 구절은 "그 일은 잘못 걸려 온 전화로 시작되었다"이다. 잘못 걸려온 전화에 자신이 탐정이라는 거짓말로 한 말이 자신의 인생까지 변화시킬지 그 순간에는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살다보면 어떤 순간에 진실보다는 거짓을 말하고 싶은 때가 오기 마련이다. 추후에 막심한 후회가 되어 돌아올 지 몰라도 말이다.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인 언쇼는 리버플에 갔다가 고아인 소년을 자신의 가족에 포함시킨다. 어떤 영화에서는 흑인으로 나왔는데 다시 구절을 히스크리프의 표현을 "지옥에서 온 것 처럼 까맣다고" 한 걸 보면, 산업혁명의 한가운데에 노동자로 일했던 흑인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새로운 멤버가 된 히스클리프를 싫어하는 힌들리, 그리고 가족 이상의 감정을 갖게된 캐서린, 가정에서의 갈등속에서 많은 상처를 받게 된 히스클리프는 자신의 감정에 따라 은연중에 복수를 하게 된다.
도시의 부랑아로 살았을 히스클리프는 언쇼에 의해 구원받았지만, 새로운 멤버가 된 가족과 어울리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으리라, 히스클리프는 자신을 유일하게 사랑하고 아껴준 캐서린이 린턴과 결혼을 하게 되자, 상실감을 갖고 몇년간 어디론가 떠나 있다가 돌아온다. 여러가지 암시로 군대에 근무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군대에서 어엿하고, 지식까지 겸비하고 돌아온 히스클리프는 자신을 괴롭혔던 힌들리를 괴롭히고, 자신의 사랑을 뺏어간 린튼가까지 복수를 하게 된다.
17세기의 영국시골이 배경인데, 사유재산이 중요시되고 이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욕망과 이성에게 끌리는 사랑의 감정이 교차하는 이야기가 낮선 배경에서시작해 지금에도 일어날만한 개연성을 선사한다. 히스클리프의 간절했던 사랑의 감정이 맹목적으로 치우쳐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고 힘들게 한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 오히려 이야기를 더욱더 긴장감 있고 가슴아프게 만드는 것 같다.
이루지 못한 사랑의 경험은 이뤘을 때의 성취감과 행복을 느끼지 못한 아쉬움이 커서 일 것이다. 오히려 이뤘을때의 서로에게 주는 상처와 권태감은 그 아쉬움의 영역안에 들어 있지 않다. [폭품의 언덕]은 사람들에게 많이 읽히는 이유가 그 이뤄지지 않은 사랑에 대한 보편성의 감정이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가문과 가문끼리의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결혼이 팽배했던 사회에서, 인간과 인간의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 과도기의 영국사회의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좋은 소설로 남아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눈이 덮힌 숲과 들판을 헤메며 사랑을 찾아다니는 주인공들의 모습, 만나기 위해서 숨죽여 몇시간동안 기다리고 기다려야 했던 그 간절함들이 책 속에 묻어 있다. 지금 SNS로 감정을 쉽게 쉽게 전달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렵게 고민하며 기다리며 감정을 표현하는 절박함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지만 격변하는 환경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폭넓으면서도 얕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사람사이에 있지만 갑자기 찾아오는 고독감은 아직도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고 싶다는 내 내면의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영원한 캐서린의 모습이 아닌 시간에 따라 당연히 변해야 하는 캐서린의 모습까지 원하고 사랑할 마음을 가졌기에, 무덤까지 파헤쳤던 히스클리프, 죽기 전에 캐서린의 환각을 보았다는 안도감에 고통없이 죽었을 히스클리프, 누구에게는 악당이지만 우리들의 깊숙히 숨겨진 내면에도 '히스클리프'같은 질투와 사랑의 화신도 꿈틀거리고 있을 것이다.
젊은 나이임에도 우연한 사건에서 시작해 인간의 근본적인 사랑을 선사한 에밀리 브론테의 천재성을 볼 수 잇는 작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