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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 인간에게 전쟁은 어떤 의미일까? 인간에게 정말 동물적인 공격적 유전자가 내재되어있어 폭력으로부터의 희열을 갈망하는 것일까? 생각할수록 우울하고 무겁기만한 물음이다. 고대와 중세의 정복전쟁이 약탈의 다른 모습이었다면, 19세기이후의 제국주의 전쟁은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한 과도한 민족우월주의의 애착이 낳은 산물이 아닐까 한다. 최근의 큰 다툼은 종교적 악령에 휘둘리는 모양새이다. 지금도 지구 한켠에는 마치 스스로가 신의 대리인 인양 심판자가 되어 총부리를 겨누고 있고, 그 한켠에서는 신의 뜻이라며 폭탄을 둘러매고 자폭하여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이 현실. 야훼와 알라가 다른 신이 아니거늘, 꾸란이나 성경이나 '평화'가 기본 교리이거늘 반목과 다툼은 끊이질 않는 이 지옥도. 상실의 눈물은 땅을 적시고 절망의 피는 강을 이루어 서로를 증오하여 죽고죽이게하는 전쟁. 오늘에 있어 정의로운 전쟁(just war)은 과연 있는것일까? 인류애란 한갖 허울에 불과한 것이며, 모든 것이 인간의 광기요 오만의 결과가 낳은 자업자득이 아닐련지... 히로세 다카시의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는 원제목이 <클라우제비츠의 암호문クラウゼヴィッツの 暗号號文>이다. 클라우제비츠(1780∼1831)는 프로이센의 관리집안에서 태어나 12살 때 군대에 들어갔고 일개보병에서부터 장군까지 경험하였으며, 1818년부터 12년 동안 프러시아 육군대학교장으로 있으면서 미완성의 '전쟁론'을 집필하였다고 한다(집필 중 사망, 그의 아내가 유고 정리). '유럽형 손자병법'이라고도 한다는 이 전쟁론은 성공적인 모든 전쟁에 사용되었던 전략적 원칙들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는데, 전쟁의 본질, 전쟁이론, 전략과 전술, 공격과 방어, 군사력과 전쟁계획 등 전쟁의 여러 요소를 철학적으로 고찰하여 일반적인 전쟁서와는 격을 달리하는 찬사와 평가를 받고 있는 듯하다. - 전쟁은 단 한 번의 결전으로 종결되지 않는다.
- 전쟁 중에 양측은 서로가 서로를 도발하고, 투쟁은 제한 없이 발전하며, 멈출 줄을 모른다. - 전투력을 양상하고 유지하며 사용하는 것, 이 모두가 군사행동이다. 하지만 양상해서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전투력을 실제로 사용하는 것만이 군사행동의 목적이다. (136쪽)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
그 대답은 전쟁을 지향하는 ‘의지’에 있다. 종종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인 것처럼 말해져왔으나, 아니다. 전쟁은 그렇지 않다. 클라우제비츠의 말은 진리가 아니었다. 모든 분쟁의 역사 속에 그것을 꾸민 사람을 찬찬히 살펴보면 호전적인 의지를 가진 인물이 분명 떠오를 것이다. 따라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47년간의 분쟁사란, 47년간의 분쟁 선동사였다고도 말할 수 있다. 전쟁은 결단코 인간의 본성에 의한 결과가 아니다! (291~292쪽)
이 리뷰의 2부를 쓰고 싶다. 일단 한 호흡 돌리고... 책의 미시적 사안에 대한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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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을 받아들고서 생각해보니 지구 상에서 전쟁이 없던 날이 있었나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저자 히로세 다카시가 많은 시간을 들여 작성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1945년부터 1991년에 이르는 47년간에 걸친 47장의 전쟁지도를 살펴보고서는 “없었다”는 해답을 쉽게 얻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전쟁지도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 가운데 두 개의 집단 간에 전투력을 바탕으로 하는 충돌, 적어도 개인화기를 사용한 전투행위가 내전 혹은 국가간의 국지전 수준으로 발생한 사건들 뿐 아니라 시위 혹은 항공기납치와 같이 전쟁으로 분류하기에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사실들까지 포함하고 있는 점에는 수긍할 수 없었습니다.
저자는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 하는 화두를 놓고 그 해답을 구하기 위한 열쇠로 200여넌 전 프로이센의 장군이었던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클라우제비츠가 <전쟁론>에 감추어둔 암호를 풀면 해답이 나올 것이라고 주장하였지만, 사실은 <전쟁론>이 완성되기 전에 클라우제비츠가 사망하는 바람에 미망인이 유고를 수습하여 출판하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당연히 해답을 구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전쟁론>에서는 인간이 왜 전쟁을 하는지에 대한 답이 없다고 다키시 역시 인정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냉전시대에 소위 전쟁억지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미명아래 핵무기를 비롯한 각종 전쟁무기 개발에 주력해온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행태로 인하여 축적된 핵무기들은 예상치 못한 오류로 인하여 인류를 멸망케 하는 사태를 맞을 수 있다는 가상 시나리오를 제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구 소련이 무너지고 세계의 질서가 개편되면서 각국은 핵무기 감축과 평화적 이용에 합의하여 연차적으로 핵무기를 폐기하고 핵무기개발을 감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음은 인류가 공존할 방향에 인식을 같이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가야할 길은 아직도 요원하겠습니다만... 저자는 엄청난 분량의 신문 기사를 비롯한 각종 자료를 분석하였다고는 합니다만, 뉴스라는 것이 언제나 정확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오보일 수도 있는 내용을 인용하고 있어, 전체 저술에 대한 신뢰성이 다소 약해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제4장에서 다루고 있는 한국전 기간동안에 시도된 생화학전과 미국 내에서 일어났던 전염병 관련 사건 등은 소스가 정확한 것인지 해석을 잘 못한 것은 아닌지 싶은 점도 있습니다. <한국전쟁과 미국의 세균전; 스티븐 앤디콧과 에드워드 헤거먼 지음>에서는 관련국가의 기밀서류를 토대로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북한지역에서 대대적인 생물학전을 전재했다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만,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민간의 증언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분명치 않습니다. 또한 아프리카의 푸른 원숭이로부터 인간에게 전해진 것으로 추정되는 에이즈가 마치 미국내 연구소에서 바이러스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가지고 있다거나, 세균이 강한 인체 전염력을 가지게 된 이유는 “먼저 세균을 살아있는 인간의 체내에 주사한 다음, 이 인간의 체액을 수집하여 산 채로 내장을 꺼내고 그 상태로 세균을 배양했다.(167쪽)”는 식의 설명은 지나치게 작위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저자는 핵을 비롯한 첨단전쟁장비들이 전쟁억지력으로 작용한다는 논리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핵무기 보유국가들은 협의를 통하여 핵무기감축 프로그램을 적용하여 폐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국지전보다는 세계가 몇 개의 세력으로 나뉘어 생사를 결단하는 제3차 세계대전인지도 모릅니다. 지난 3월 일본 도호쿠 지역에서 일어난 진도 9.1의 강진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일본은 뒤이어 일어날지도 모르는 대지진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지진학자들에 따르면 지각을 구성하는 판이 충돌하여 지진이 발생하는데 작은 규모의 지진으로 그 응축력이 해소되지 않고 축적이 되어간다면 엄청난 규모의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간의 전쟁 역시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쌓여가면 종국에는 대규모로 부딪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에 국지전은 대규모 전면전의 가능성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유혈을 꺼리는 자는, 그렇지 않은 자에 의해 반드시 정복당한다! 전쟁은 가혹한 것이며, 여기에 박애주의와 같은 부녀자의 정이 개입할 여지 따위는 없다.”는 등, 클라우제비츠가 전쟁론에서 주장하는 이론에는 공감이 가는 부분과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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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원론적인 물음이다. 이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그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서 출발한다. 그는 클라우제비츠를 천재라고 부르면서 <전쟁론>에는 풀어야 하는 암호문이 있다고 말한다. 암호라는 단어에 순간 머리가 아파온다. 그리고 저자는 놀라운 작업을 보여준다. 그것은 47장의 분쟁지도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8월 15일 다음 날부터 시작되는데 놀라운 정보를 제공한다. 이 분쟁지도는 전 세계의 분쟁을 연도별로 지도 위에 기록한 것인데 이렇게 많은 나라가 한 해도 빠짐없이 분란을 겪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이 책의 가치를 더 높여주는 것이 바로 이 분쟁지도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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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란, 둘 이상의 서로 대립하는 국가 또는 이에 준 하는 집단간에 군사력을 비롯한 각종 수단을 사용해서 상대의 의지를 강제하려고 하는 행위 또는 그 상태를 말한다. 역사 학자가 역사를 논할 때, 언제 어디에서나 늘 등장하는 전쟁은 인류의 역사를 전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인류와 늘 함께 해 왔었다. 특히 20세기에는 1, 2차 세계대전과 민족, 종교 전쟁으로 인해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아직도 폐허, 기아의 고통에 허덕이고 있는 사람 및 국가들이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21세기에는 전쟁이 세계평화를 위한 노력으로 인해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최근 미국의 대 테러 전쟁에서도 알 수 있듯이, 끊임없이 전쟁은 계속 되고 있다.
이 책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의 저자는 일본 반핵평화운동가인 히로세 다카시로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모든 현대 전쟁의 본질에 관해 탐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 원제는 ‘클라우제비츠의 암호문'이다. 이 원제때문에 과거에 읽었던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이라는 책을 다시 집어들게 만들었다. 전쟁론의 앞부분에는 전쟁에 대한 다수의 정의가 담겨있다. 그 중 하나인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에 불과하다’라는 정의에 많은 공감이 갔다. 전쟁에서 정치적 의도는 목적이고 전쟁은 수단이기 때문에 목적이 없는 수단은 생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사 이래 문화국민간의 수많은 전쟁을 보면, 모두 정치적 목적에 의한 전쟁이었다. 만약 전쟁의 특성상 집단적 폭력 행위 그 자체에만 주목하고 전쟁의 목적을 간과하게 되면 올바른 전략, 전술을 생각할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에서의 진정한 승리는 ‘적을 무력 제압함으로 얻어지는 무조건적인 항복을 얻는 것’이라는 이론을 주장한다. 이것은 그가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며, 상대방에게 물리적 힘을 가하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수단이라는 기본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에 대한 전쟁의 영향을 연구하는 역사가들은 크게 두 흐름으로 분류된다. 우선 전쟁을 사회 변화의 기폭제(catalyst)로 보는 입장과 이와는 반대로 전쟁의 영향력을 최소로 줄이고 사회사에 있어서 연속성(continuity)을 강조하는 견해가 있다. 전쟁이 갖는 사회 변화의 기폭제 기능을 평가절하하는 연구자들 가운데서도 강조점의 차이를 발견할 수가 있다. 특히 사회정책을 연구하는 역사가의 경우 일부는 전쟁과는 무관하게 장기간에 걸친 정책의 점진적 발전과 이를 주도해 온 정부기관(agency)의 역할을 강조한다. 전쟁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는 흐름과 연계되어 역사가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또 다른 주제는 전쟁으로 초래된 변화의 영속성에 관한 것이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제1차대전 직후 영국 정부가 국가 역할을 대폭적으로 축소하게 된 배경을 밝히는 문제로 수렴되었다.
저자는클라우제비츠의 주장과 달리, 저자는 자신이 조사한 47장의 분쟁지도를 가지고 분석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1992년까지 전세계에서 일어난 분쟁을 세계지도에 표시했는데전쟁의 지속 기간을 감안한다면 2차 대전 이후 지구가 하루도 쉬지 않고 전쟁을 계속해 왔다는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이 전쟁을 벌이는 이유를 분석한 저자는 세상에는 클라우제비츠형 인간과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의 소설에 등장하는 ‘바보 이반’ 같은 사람들 등 두 부류의 인간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클라우제비츠형 인간'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바로, 적'을 만들어 내는 기질이다. 우리 삶의 자유와 기쁨'을 말하면서 왠지 동시에 '적'을 만들어 내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다.
클라우제비츠형 인간'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바로, 적'을 만들어 내는 기질이다. 우리 삶의 자유와 기쁨'을 말하면서 왠지 동시에 '적'을 만들어 내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다.(279쪽)
인간의 역사는 전쟁사, 곧 피의 역사이다. 중국이나 인도, 페르시아 등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사나 그리스-로마시대를 거친 유럽사를 보아도 크고 작은 전쟁은 끊임없이 되풀이되었다. 우리 인간은 왜 전쟁을 하는가는 예부터 수많은 철학자와 역사가의 심각한 연구 주제 가운데 하나였다. 전쟁연구가들에 따라 전쟁이 벌어진 수는 달라지지만 수많은 전쟁들이 벌어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전쟁이 발생하는 요소로 종교, 인종, 인구, 자본 등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프로이드의 관점에서 인간은 무기물로 돌아가고 싶은 죽음충동 때문에 전쟁을 한다고 본다. 헤밍웨이는 또한 인간은 전쟁으로부터 희열을 느끼기 때문에 전쟁을 한다고 보았다. 걸프전 당시의 위성 중계가 그 예다. 자신의 죽음에 대한 갈망인 마조히즘이 타인에 대한 폭력, 죽음인 사디즘으로 전환된 것이다. 여기에 근거하여 마르쿠제는 모든 것이 소멸한다는 의식이 폭력을 정당화하게 되어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고 파악했다. 타자의 죽음으로 주체는 지배를 가지게 된다. 전쟁은 흔히 여러 가지 동기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난다. 정치적 이념 때문에 일어나기도 했다. 결국은 인간들의 결단에 의해서발생하며 모든 전쟁이 드러내고 있는 광기는 바로 인간의 광기이다. 하지만 저자는 전쟁은 결단코 인간의 본성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모든 분쟁의 역사 속에는 전쟁이란 인간의 본성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적'을 만들어 내는 기질을 가진 몇몇 소수의 '클라우제비츠형 인간' 때문에 발생했다고 말한다.
전쟁론은 전쟁에서 정치적 의도는 목적이고 전쟁은 수단이기 때문에 목적이 없는 수단은 생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사 이래 문화국민간의 수많은 전쟁을 보면, 모두 정치적 목적에 의한 전쟁이었다. 만약 전쟁의 특성상 집단적 폭력 행위 그 자체에만 주목하고 전쟁의 목적을 간과하게 되면 올바른 전략, 전술을 생각할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국가의 배후에서 자신들의 금융사업과 무기사업을 통한 또 다른 이익을 지속적으로 얻기 위해 전쟁을 을으키고 있다는 부분이 무척 공감이 갔다. 특히, 전쟁을 획책하고 실행하는 자가 악이라는 인식이 없는 경우, 세계는 계속해서 전쟁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경고는 모두가 세겨들여할 것이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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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는다. 곧 욕지기가 치밀어오른다. 히로세 다카시의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를 읽다가 현기증이 일어 잠깐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책 안에서 서술된 잔인한 고문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져 살이 튀고 피가 튀고 뼈가 가루가 된다.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를 아직도 읽지 않고 버티고 있었는데 결국 펼쳐야 하려나 보다. 전쟁이 사라져 태평 천하를 만끽하며 평화롭게 살다 저 세상으로 가기를 바라는 건 모든 인간의 일관된 바람인 줄 알았는데 그렇게 안일하게 여겼던 스스로가 부끄럽다.
한 번만 더 전쟁이 세계를 휩쓴다면 그때는 지구가 지옥이 되어 아무것도 기대할 수가 없어진다. 살아있는 인간들이 있어봤자 운이 좋다고 할 수도 없을만한 상황이리라. 누구도 살아남지 못하고 운이 좋아 살아있는 인간이 있다고 해도 지옥과 다를바 없다는 대목을 읽을 때에는 나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는데 '바로 어제까지 살아 있었던 각각의 인간에겐 내일에 거는 계획이라는 게 있었다면, 이 전쟁 이후로 계획이란 모두 헛수고라는 결과가 나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모두에게 내일이 사라져 버렸다. 아니, 과거가 없어졌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 문장을 읽고난 후에는 잠깐 심호흡을 했다. 누군가의 전쟁, 나와 무관한 다른 사람들이 다른 땅에서 불행을 겪고 있다, 이게 바로 현재의 내가 몸소 체험할 수 있는 '전쟁'의 전부였다.
전쟁의 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가 쓴 [전쟁론]을 펼쳐들고 그는 이 나라, 이 지구, 이 별에서 일어났던 무수한 전쟁의 구체적인 실상을 조곤조곤 얘기한다. 1945년부터 1991년까지 총 47장의 분쟁지도를 마주하는 동안 가능하면 보고싶지 않았다. 분쟁 지역을 살펴보다가 알았다. 전쟁과 평화 사이에 낀 지구인들, 어디에서 인간들은 서로를 죽인다. 어느곳에서 평화롭게 오렌지 쥬스를 마시면서 책장을 펼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인간들이 있다. 도대체 어디와 어디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지 평화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다른 별나라에서 이 행태를 본다면 그들은 뭐라고 할까.
책을 완독하기 전에는 심약한 사람들, 임신중인 여성들은 읽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가 완독 후 생각을 바꿨다. 당신의 안에 깃든 나약한 마음과 당신의 안에서 성장하고 있는 약하디약한 존재를 위해서 알아야 할 것과 행해야할 것,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마냥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쟁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어느 순간 와해될지 알 수 없다. 서두르지도 미루지도 말자, 본문이 시작되기 전 히로세 다카시가 건넨 말을 축으로 삼아 천천히 이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할 일을 하나씩 해나가자.
"인간이 인간을 괴롭히는 것, 그것이야말로 모든 사회 문제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인생이 어쩔 수 없이 고통의 연속이라면 적어도 그것을 피하러 계속해서 안간힘을 쓰기보다는 차라리 고통을 벗삼아 지내는 편이 어쩌면 삶을 대하는 보다 현명한 태도가 아닐까 하는 말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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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방에 가서 사람들이 하는 게임을 보면 상당수가 롤플레잉 게임이다. 게임의 종류에 따라 종족 하나 이상의 캐릭터를 선택한 후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상대와 싸운다. 그 상대가 컴퓨터든 또 다른 곳에서 접속해 있는 사람이든 상관없다. 버튼을 누르고 마우스로 클릭하고 필살기를 사용함으로써 마침내 상대를 쓰러뜨렸을 때의 쾌감은 상당하다. 상대가 더 능력 있고 셀수록 경험치는 더 올라가고 레벨업을 하기가 쉬워지는 이점도 있다. 레벨이 올라갈수록 파괴력은 더 커지고 더 센 무기를 구입해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비탈을 굴러 내려오는 눈덩이처럼 더 쉽고 빠르게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 게임을 해서 아이템을 파는 것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생겼을 정도이니 현실과 게임은 그처럼 구분이 모호하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이라크 전쟁에서 어두운 하늘을 날아가는 미사일을 심상하게 보았을 것이고, 방송에도 나오지 않는 나라의 전쟁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었을 것이다. 전쟁은 이제 너무나도 만연해 있기 때문에. 그렇지만 만약 내가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에 태어났다면 어떨까? 식민지 말기의 폭정을 견뎌야 하고 해방이 되는가 싶으면 3년 여에 걸친 전쟁을 겪어야 한다. 이런 상황이 펼쳐질 것을 예상한다면 그래도 살아갈 엄두가 날까? 나는 전쟁의 편에 설까, 완전한 피해자가 될까?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 (2011, 히로세 다카시 지음, 프로메테우스출판사 펴냄)를 읽으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전쟁의 피비린내를 맡으면서 나는 지금껏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일본의 저널리스트 겸 논픽션 작가인 저자가 1992년에 발표한 이 책은 근 20년 만에 우리에게 도착했다. 원제가 'クラワゼヴイッツの暗號文(클라우제비츠의 암호문)'인 것처럼 이 책은 나폴레옹과 동시대 인물인 천재 독일 군인인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중심 소재로 한다.
- 유혈을 꺼리는 자는, 그렇지 않은 자에 의해 반드시 정복당한다. - 전쟁은 가혹한 것이며, 여기에 박애주의와 같은 부녀자의 정이 개입할 여지 따위는 없다. - 전쟁의 수단은 딱 하나, 그것은 '투쟁'이다. - 양측은 서로가 서로를 도발하고, 멈출 줄을 모른다.
이런 클라우제비츠의 사상을 따르는 이들로 인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도 전 세계에는 총성이 멈출 새가 없다. 위의 그림에서 검은색으로 표시된 나라들처럼, 지구의 대부분이 크든 작든, 짧든 길든 전쟁에 휩싸여 있던 적이 있다. 저자는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연도별 세계의 분쟁사, 그때 사용한 무기(총칼부터 폭탄까지), 전쟁을 기획하고 지시하는 사람(대표적으로 CIA와 KGB)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클라우제비츠의 암호문을 판독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수단과 방법까지는 알았지만 왜 전쟁을 하는지는 밝혀지지 않는데, 저자는 클라우제비츠의 삶을 둘러싼 시대 배경과 인물들을 통해 '클라우제비츠형 인간'을 설명해낸다. '자신의 승리를 위해 민중의 피를 흘린, 한낱 '복수의 화신'', '아무것도 아닌 남자'(275쪽), '전쟁을 치르고 있는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비난함으로써 자기의 군사적인 행동을 옹호하고 적을 만들어내는 인간(289쪽)으로 말이다. 저자는 이의 대척점에 서서 자신의 것을 뺏기면서도 우는 일밖에 못하는 '바보 이반'적 인간, 평화를 추구하는 인간들이 성공한 정말 적으면서도 귀중한 순간들을 이야기함으로써 클라우제비츠형 인간에게 맞설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위의 1992년 그림에서 적으나마 하얗게 남았던 부분들은 1993년 이후 자취를 감춘다. 클라우제비츠형 인간의 완전한 승리이다.
요즘처럼 급변하는 시대에 쓰인 지 20년 가까이 된 책은 수명을 다했다고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이 아직까지도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하고 있듯, 20년 동안 세계는 전쟁으로 한발 더 나아간 듯하다. 그래서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은 여전히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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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는 가히 전쟁의 역사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호락호락하지 않는 자연에 대해서, 더 많은 잉여생산물과 계급을 위해서, 확장과 정복을 위해서,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상징들-금융-을 이용하여서 인류는 싸워왔고 또 싸워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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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무기는 평화를 싫어한다 [내 사랑 1000권] 29. 히로세 다카시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 전쟁무기란 전쟁을 벌이면서 쓰는 무기입니다. 전쟁무기란 땅을 갈아서 곡식을 거둔다든지 나무를 돌보는 연장이 아닙니다. 전쟁무기는 아픈 사람을 고치거나 힘든 사람을 일으켜세우는 동무가 아닙니다. 전쟁무기란 사람을 죽이려고 만든 녀석입니다. 전쟁무기로는 오직 사람이 사람을 죽일 뿐입니다. 탱크는 길을 망가뜨리고 숲을 무너뜨립니다. 총은 우리 몸을 꿰꿇거나 갈가리 찢습니다. 미사일이든 폭탄이든 마을이며 나라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구실을 합니다. 그런데 나라에서는 전쟁무기가 무엇인가를 제대로 가르치거나 알린 적이 없습니다. 전쟁무기를 거느려야 적군한테서 우리를 지킬 수 있다고만 가르치거나 알릴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적군이라 여기는 곳에서는 ‘우리한테 있는 전쟁무기를 들먹이’면서 그곳은 그곳 나름대로 ‘평화를 지키려고 전쟁무기를 만들어서 거느린다’고 밝혀요. 히로세 다카시 님은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라는 책에서 전쟁하고 전쟁무기란 무엇인가를 낱낱이 밝힙니다. 권력자하고 기업이 왜 손을 맞잡고서 전쟁무기를 만들어서 군대를 크게 거느리려 하는가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교과서에서도,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에서도 알려주지 않는 이야기를 또박또박 들려주어요. 왜 권력자는 전쟁을 바랄까요? 사람들이 전쟁에 미쳐야 그들 권력을 단단히 지킬 수 있어요. 왜 기업은 전쟁을 바랄까요? 사람들이 전쟁에 나서야 떼돈을 벌어들일 수 있어요. 우리는 왜 전쟁터에 싸울아비로 끌려가거나 스스로 나아갈까요? 권력자하고 기업하고 지식인하고 교사한테 속기도 하지만, 먹고살려는 뜻으로 함께 전쟁을 벌이곤 해요. 처음부터 전쟁무기 아닌 낫이랑 호미에 돈을 들이면 가난할 사람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군대나 정치권력이나 기업 아닌 마을에 돈이 흐르도록 하면 배곯을 사람이 없습니다. 전쟁무기하고 군대는 평화를 끔찍하게 싫어합니다. 2018.2.5.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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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엇을 이용해서 전쟁을 하는가. Atomic(원자무기) Bio(생물무기) Chemical(화학무기) Dynamite(화약무기) Edge(날붙이무기) 등 갖가지 무기로 싸우면서 언제나 X무기를 만들어낸다. 톰 클랜시의 <베어 & 드래곤>에는 미러 연합군이 중국군을 무력화시키는 모습을 무인정찰기로 촬영해 전 세계에 생중계하는 장면이 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전쟁이란 게 이렇게 편하고 즐거운 것이 되었으니 얼마나 좋은가 말이다.
인간은 누구의 지시를 받아 전쟁을 하는가. 미국에는 스쿨 오브 아메리카로 알려진 흔히 서반구안보협력기구(WHISC)란 것이 있다. 미국은 이곳에 남미 학생들을 불러모아 고문, 폭동진압 등을 교육한다. 이곳에서 배출된 사람들은 본국으로 돌아가 미국을 위해 자국 억압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된다. 자국민 학대로 악명높았던 파나마의 노리에가, 아르헨티나의 갈티에리, 페루의 몬테시노스 등이 모두 이곳 출신이다. 민주주의 국가라는 미국이 아메리카의 독재를 무럭무럭 키워주는 셈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 현대로 올수록 국가 간 전쟁은 줄어들었지만, 국가 내 분쟁은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이 종교이든, 자원이든, 민족이든 중요한 것은 모든 전쟁은 인간이 일으킨다는 것이다. 포린폴리시에서 '미국의 핵감축은 보호국에게서 핵우산을 걷어내는 효과가 있으므로 그 나라들도 핵보유를 시도할 것이고 따라서 핵감축은 세계 안보에 큰 위험이 될 것'이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인간은 결코 전쟁을 멈출 수 없는 존재인가. 평화는 결국 이룩할 수 없는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