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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역사에서 사도세자와 함께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세자라고 하면 소현세자를 꼽게 된다. 둘다 다 부왕의 눈밖에 난 세자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면 전자는 그래도 아들이 보위에 올라 그래도 복권에 가까운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면 후자는 처도 사사당하고 아들 셋은 유배, 처가는 거의 멸문에 이르렀으니 그의 사후 역시나 비극으로 점철됐다.
놀랍다고 할까, 뜻밖이었다고 할까. 설흔은 소현세자하면 떠오르는 그 일가의 비극보다는 소현세자의 공부, 그것도 진짜 공부라니. 필자가 바라보는 포커스에 비로소 비극의 세자에 매몰돼 간과하고 있었던 병자호란을 겪고 청에 볼모로 끌렸갔던 조선 세자로서의 면모를 상기하게 됐다.
'소현세자의 진짜 공부'는 소현세자의 과거행적을 마치 패인을 복기하듯 돌아보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풀어가는 시점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조선시대 당시 소현세자를 등장시켜서 이런저런 상황과 그때의 심정을 토로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대의 인물이 과거의 상황을 말하는 방식으로 전개됐다.
화자 '나'는 사십대 백수 정 아무개로 전직 작가였고,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디서 온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존 이었다. 존은 그가 기억하고 있는 이름이 아니라, 신원불명의 사람에게 임의로 붙이는 이름인 존 도에서 따와 '내'가 붙여준 이름이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와 존 두 사람의 호흡과 말밖에 들리지 않는다. 두 사람은 강변과 놀이공원, 산성, 광화문 광장에서 만나 존이 말하는 청의 훈허,선양, 조선의 궁궐 이야기를 '나'는 들어주고 그것에 대한 나의 소회를 서술하는 형식이다. 시간적으로는 현대와 조선, 공간적으로는 청과 조선을 오가는 구성이 좀 복잡했다. 처음에는 존이 말하는 건지 '나'가 말하는 건지 헷갈려 이야기에 초집중해야 했는데, 시공간이 현대와 청, 조선을 오가기에 끝까지 집중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읽어야 했다. 그럼에도 아마 존이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구성이었다면 단조롭기도 하거니와 뻔하게 들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가 구성의 묘를 살린 거였다.
읽어가면서 윤동주의 '참회록'이 떠올랐다. 전쟁의 패배한 나라의 세자로 청에 들어가 죽은 듯 살아야 했던 볼모로. 전체적으로 '존'이 전하는 소현세자의 선양, 조선에서의 행적에는 자책과 참회가 묻어나왔다. 무능하고 이기적인 부왕의 행적에 참담해 하고, 할아버지의 정원군의 비행에 대해서도 숨기지 않고 털어놓으며 정통성에 스스로 흠집을 내고 있었다. 알려진 것 만큼 강경하지 않았던 김상헌의 태도 또한 꼬집으면서, 이 전쟁의 패전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비겁했던 왕실과 명분싸움에 집착했던 사대부들의 허세를 여지없이 폭로하고 있었다.
인물들의 이면, 알려진 행적과는 다른 행동은 혼란을 넘어 경악스러웠다. 정원군은 명색이 종친이었음에도 임진왜란 때 왜놈에게 조선군의 정보를 알려주고 뒷돈을 받았다는 소문이 있을만큼 악행을 저지른 인물이었다. 그만큼 조선과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과는 거리가 멀었고 오로지 일신상의 안위만을 찾던 인물이었다는 것인데, 정원군의 행태와 인조의 행동은 묘하게 오버랩됐다.
그러데 이렇게 왕가 탓, 사대부 탓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바로 이 작품의 알맹이다. 청에서의 행적에 대해서는 자책했다. 함께 간 조선 백성을 지켜주지 못했던 것을 두고두고 마음에 걸려했다. 그 역시 살아서 귀국하기 위해 치욕을 견뎌야 했다지만, 그런 자신이 경멸스러웠을 것이다.
소현은 자인했다. 모든 것은 자신 때문이었다고. 너는 왜 우리에게 패배했음에도 왜 만주어를 공부하지 않느냐는 청황제의 질책을 받고서 비로소 공부하지 않았던 자신의 죄가 부끄러웠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것이다.
생각하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한 사람이 크게 어질면 나라가 바르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소현세자의 일성은 후손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 돼서, 나를 믿는 이가 곤경에 처했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려하는 것. 아마도 이것은 스스로의 다짐이자 배우고 익혀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소현세자가 생각했던 진짜공부가 아니었을까.
소현세자는 부끄러움을 아는 인간이었다. 윤동주에게서 느껴지는 부끄러움과 참회의 정서와 일맥상통하고 있었다. 그는 백성을 구하지 못한 세자였던 것이 부끄러웠고, 나라를 구할 수 있게 공부하지 못했던 자신을 자책했다. 언젠가부터 우리사회는 타인에 대한 비판에는 한없이 날을 세우지만 자신을 돌아보는 데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내 탓이오'는 사라지고 '너 때문이야' 소리만 넘치는 세상이 됐다. 부끄러움과 성찰을 잃어버린 사회, 소현세자는 패배의 역사를 돌아보라고, 거기에서 부끄러움을 배우라고, 그것이 진짜 공부가 될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때론 선문답같기도 하고, 애매하게 에둘러 표현한 부분이 많아서, 명확하게 손에 잡히지 않는 내용이 많았다. 짐작으로 소현의 마음을 읽으려고 애썼지만 내가 정확하게 그의 심정을, 그의 언어를 이해했는지는 영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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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의 아들로 병자호란 후 청나라로 볼모로 잡혀갔다가 조선으로 돌아와 갑자기 죽은 이가 바로 소현 세자이다. 소현세자는 독살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여러 역사책에서 언급되고 있고, 서양의 선진기술과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다면 우리나라의 미래가 또다른 모습을 가졌을 것이라는 말들이 많다. 어쩌면 그런 관심과 열의가 인조에게 반감을 주었고, 그를 죽음으로 몰은 것일 수도 있다. 똑똑하고 어진 인품을 가지고, 혁신적 변화를 추구하는 이게는 기득권층의 적이 많다고 해야 하나? 소현세자는 아무튼 조선에 돌아와 갑자기 죽게 되었고, 그의 아내와 가족들도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소현세자의 진짜 공부라는 제목에서 소현세자가 조선과 청나라에서 겪었을 여러 일들이 연상이 된다. 그리고, 소현세자의 안타까운 죽음과 함께 그 분이 왕으로서 세상에 뜻을 펼치지 못함이 아쉬움으로 느껴지게 한다. 이 책은 현대와 과거의 결합이다. 이야기 전개의 배경은 현대지이만, 그 속에 담긴 진짜 이야기의 배경은 소현세자가 살았던 조선시대이다. 현대와 조선시대를 자연스럽게 오가면서 이야기가 전개가 된다. 이 책에서 화자는 전직작가인 사십대의 정 아무개이고, 존이라고 불리우는 이가 소현세자이다. 소현세자가 현대에 다시 환생해서 화자에게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형식을 띠고 있다. 현실과 과거를 대화 형식과 독백 형식으로 오가는 내용이 마치 다른 세계 속으로 여행하는 느낌을 준다. 열네 살의 나이에 병자호란을 치르고, 삼전도의 굴욕을 겪고, 청나라로 인질로 끌려간 소현세자의 진짜 공부는 무엇일까? 세자로서 여러 스승에게 교육을 받은 것도 공부였을 것이고, 청나라에 가서 왕의 아들로서 그리고 차기 왕이 될 세자로서 조선을 생각하고, 청나라를 생각하는 것이 공부였을 것이다. 어린 나이지만 국가를 책임지고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공부에 대한 큰 부담이 되었을 것 같다. "부끄러움은 부끄러움을 호출한다." 겸손한 성격을 가진 듯한 소현세자는 병자호란으로 인한 모든 것들을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며 자책하는 모습을 보인다. 책 여기저기에서 소현세자는 거만하지 않고 겸손한 낮은 자세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인품을 가졌음이 느껴졌다. 병자호란의 패배와 삼전도의 굴욕에 대해서는 매우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조선은 패배를 인정하고서 인조와 세자는 청나라 황제 앞에서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만주족 전통의 삼배구고두를 행했다고 한다. 반정으로 왕이 된 인조가 전쟁에서 패하고, 청나라 황제에게 굴욕을 당한 것은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는 소현세자의 선양에서의 생생한 일상들이 이야기 되어 있고, 청나라에 함께 잡혀간 조선인들의 수모도 나타나 있다. 병자호란 후 소양세자와 조선인 일행이 선양으로 향하면서 함께 간 말들의 죽음과 이를 대체할 말들을 조선에서 지원받는데, 그 지원 받은 말들이 온전하지 않아 또 몇 일만에 죽어서 제대로 역할을 못한다는 것은 그 시대의 조선의 능력과 실상을 보여주는 부끄러운 모습들이었다. 지원받은 말들은 숫자는 채우지만, 그것이 전부이고, 대부분 곧 병들어 죽게 되어 실제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실질적인 능력이 없이 형식에만 급급한 조선의 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책에서 보여지는 나약한 조선과 허세만 가득한 조선의 모습이 그 당시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선양에서 공연을 하는 조선인들은 짙은 화장에도 불구하고 감춰진 눈물을 숨길 수는 없었다는 말에서 그들이 느꼈을 울분과 참담함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것 같았다. 오리 이원익 선생에 대한 이야기... 광해군 때 영의정이었는데 인조 반정 후 다시 영의정이 되는 것은 인조의 정당성 홍보를 위한 전략이었다고 한다. 왕이 되어서는 안 될 사람이 억지로 왕이 된 것이 어쩌면 역사의 비극이다. 존과 화자는 편의점으로 가기도 하고, 놀이공원에 가기도 한다. 그들이 간 배경에 따라서 소현세자의 이야기가 함께 전개가 된다. 참 특이하면서도 재밌는 이야기 전개 구성이다. 작가가 상상력과 이야기 구성력이 매우 탁월함이 느껴졌다.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은 개망나니 중의 개망나니로 이름을 날렸던 인물이라고 한다. 정원군은 여러 비행을 저지르기도 했고,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게 조선의 정보를 알려주고 돈을 받았다는 소문도 있다고 한다. 그런 아버지의 아들이 반정으로 왕이 되다니... 이건 분명 비극이 아닐까? "생각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한 사람이 크게 어질면 온 나라가 바르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요.(p.198)" 책 후반부로 갈수록 소현세자의 진짜공부가 무엇인지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소현세자의 진짜공부는 진짜 무엇일까? 이 책에서 저자는 그것을 한 문장으로 가르쳐주려 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화자와 존의 대화와 독백으로 대신 말해주고 있다.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지만, 역사를 시간적인 순서로 조목조목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기존의 역사책과는 좀 다른 느낌이고 책 내용을 이해하기에 조금 어려움이 많았다. 사실 책 내용 전개가 좀 어렵게 느껴졌다. 이 책은 분명 특이한 구성의 청소년을 위한 역사소설이다. 기존에 접한 역사 이야기 책과는 확연히 다른 구성을 보여준다. 특이한 구성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자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는데, 프로필을 보니 심리학을 전공한 작가이다.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기에는 이야기 전개가 다소 어렵고 무겁게 느껴진 게 사실이다. 기존의 역사 소설이나 역사 책과는 다른 구성 방식이 그런 어려움과 무게감을 느끼게 한 것 같다. 청소년 소설로서의 가치는 색다른 구성에 대한 경험 그리고 소현세자라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심도있는 이해, 병자호란 전후에 대한 역사적 사실의 재해석이라 생각한다. 어른이 읽기에도 좋은 역사소설이다.
소현세자의 진짜공부는 무엇이었을까? 이 책에서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았듯이 내가 느낀 감정을 명확하게 표현하기는 좀 어려운 것 같다. 분명 소현세자는 진짜공부를 한 인물이다. 그것은 스승으로부터의 학습과 여러 사건과 일상을 겪으면서 느낀 혼자만의 생각들이 진짜공부의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소현세자가 죽지 않고 왕이 되었다면 더 나은 미래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책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여전히 가슴에 남는다. ※ 소현세자의 진짜공부 독서후기 포스트는 라임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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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간에 잠깐 만나봤음직한 소현 세자의 삶을 직접 전해들었다. 이역만리 볼모로 끌려들어가 수모와 고통을 당했음은 짐작하고도 남겠지만 소현 세자가 들려주는 수많은 상황과 환경들은 그를 좀더 담담히 현대로 끌어내려와 준거 같다. 역사적으로 소현 세자가 누군가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우리의 역사고 청나라에 볼모로 7년간 살다 간신히 돌아왔으나 조선에 들어온 직후 짧은 시간에 죽음을 맞은 세자이기에 그의 석연친 않은 죽음뒤로 궁금해질것이 참으로 많기 때문이다.
소현 세자가 현대에 나타났다. 이책을 읽고 있자니 지난번 너무도 충격적으로 큰 재미를 주었던 <시그널>이 생각난다.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 하는건 아니지만 <소현세자>임이 틀림없을 자신의 이야기를 주저없이 하는 한 남자는 그렇게 조선의 부끄러운 과거, 곧 자신의 이야기를 여과없이 최대한 객관적으로 이야기를 해주는 형식으로 이책은 씌여졌다. 이름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초코파이를 무심히 건네주는 이남자는 <존>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현대의 <나>는 또 한명의 화자가 되어 <존>과 <나>의 관계가 무척 궁금하게 전개되는 가는 중 마지막 반전에서 아~!!하게 만드는 매력많은 책이다.
자신이 부끄럼 많은 소년이요, 먹는것에 욕심많은 아이였다는 고백과 함께 덤덤히 볼모시절의 이야기를 해주는 <존>, 그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믿는 <나>는 존의 이야기를 들어가면서 자신의 정체를 조금씩 드러내보이기도 한다. 색다른 특이한 형식이라 이책은 참 재밌다. 미리 예측할 수 없어서 더 재밌다. 어린이, 청소년 책이지만 탄탄한 글의 맥락이 어른인 내가 봐도 정말 감탄스럽게 다가오는 역사다. 소현세자하면 비운의!!!라는 단어가 가장 잘 따라나닐테지만 소현세자 자신은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였기에 자신의 나라를 이렇게 망쳤다는 자책감을 가지고 정말 부끄러워 하고 있다.
너는 왜 만주어를 공부하지 않느냐?
너의 악함으로 나라가 망하고 백성이 고통 겪은 것을 아느냐?
잡혀왔다는 슬픔에 갇혀있던 세자에게 만주족 황제는 이렇게 말했다. 역관의 통역내용을 듣고 소현세자는 정말로 부끄러웠노라 말한다.분노와 슬픔뒤로 이렇게 부끄럽게 만들기도 한 황제는 대청국 왕답다라는 생각까지 품었다고 한다.
삼배구고의 예를 마친 아버지와 내가 황제의 허락을 받고 단위에 올라 여러 친왕들 사이에 자리를 잡자,~
황제는 우리를 보며 만주어로 무언가를 말했습니다. 여런 친왕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습니다.~
나는 그냥 있기 멋쩍어 아주 살짝, 뭐가 좋아서 웃느냐는 식으로 책잡히지 않을 정도의
미묘하고도 외교적인 미소를 부드럽게 지었습니다.
하지만 조선 출신 역관을 통해 곧바고 전해 들은 황제의 말에
이제는 두 나라가 한집아닝 되었다는 그 명쾌한 족보정리 내기 친족 결합 선언의 말에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쌀밥 먹다 돌을 씹었으나 보는 눈이 많아 뱉을 수도 없는 애매한 표정만 지어야 했지요.
소현 세자는 전쟁에서 패하고 망한 뒤의 암담함을 이렇게
이겨내고 있었다. 그래서 <존>이 말하는 당시당시의 상황이
눈앞에서 재현이 되는듯한 상상을 하는 <나>처럼 독자인
나도 당장 다시 울컥해지는 기분이 들었더랬다.
추레하고 야윈 존이 오래전 어느 날 <나>와 함께 살았었다고 믿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더욱 현실적으로 끌어내주는 방법 같다.
볼모로 잡혀 올수 밖에 없었던 나태하고 게으른 자기반성을 하면서
백성을 저버리고 고통받게 했다는 소현 세자의 통렬한 자기반성은
확연히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역사에 관심없는 이라도 이책 한권을 읽다보면
소현세자의 아픔을
다 공감하면서 그의 참회를 아프게 아프게 들여다볼수 밖에 없을 테다.
그래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더 많이 공부하고 더 크게 어질어서
온 나라를 바르게 세워야 할테다.
촛불집회의 대담함을 선보였던 의지로
소현세자에게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