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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말한다. 지금은 평등한 사회라고. 예전처럼 신분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하지만 조금은 알 것 같다. 이 세상이 온전히 평등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지금도 그렇다. 누군가는 부모를 잘 만나 시작점이 우리와 다르고, 신분제도는 없지만 자본이라는 막강한 힘이 보이지 않는 계층을 만들고 있으니까. 그리고 생각해 본다. 힘없는 자, 돈 없는 자, 빽 없는 자. 이들이 항거할 수 있는 수단은 과연 무엇인가? 정치에는 관심도 없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의 횡포에도 별다른 저항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나와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이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제 조금은 안다. 결국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은 상위 권력을 가진 그들이기보다는 우리, 어찌 보면 한 점에 불과한 바로 우리, 우리 국민이라는 사실을. 나쁜 것, 잘못된 사회에 항거할 수단.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저항하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언제부터인가 불특정 대상을 목표로 하는 작은 테러가 일본 전역에서 일어난다. 범인들은 빈곤층에 속하는 사람들로 서로 얼굴을 본 적도 없고, 조직화 되어 있지도 않다. 그런데 왜 이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작은 테러를 일으키는 것일까? 목숨을 던져 사회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를 자처하고 나선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 것일까? 테러를 저지르는 사람, 테러를 저지르는 사람을 쫓는 사람, 그리고 그들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마음 아픈 사람, 그러거나 말거나 방관하고 무시하는 사람 등. 테러를 바라보는 다양한 사람의 입장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책을 보면서 이런 현상이 비단 일본에 국한 된 이야기 일까 생각해 봤다. 이런 모습 모두 결국 언젠가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지 않을까 두렵다는 생각이 든다. 부자인 사람은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여전히 가난한 사회. 60~70년대는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혹은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청년들은 그 어떤 희망이 없다고 한다. 대학 졸업과 함께 대출이 함께 딸려오는 인생. 연애나 결혼은 생각할 수 없고 거기에 출산은 남의 집 이야기가 된다. 빚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그 빚이 사라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정규직은 남의 이야기이고 평생 비정규직으로 혹은 파견 직원으로 끝날 판이다. 이 사회가 변하길 바라지만 아무도 총대를 메지 않는다. 그렇다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렇게 소규모 테러가 발생하지만 그 상황 속에서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죽게 된다. 그 테러로 인해 가족이, 사랑했던 연인이 죽게 되고 남은 사람은 테러를 벌인 그 누군가를 증오한다.
결국 없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을 증오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게 되는 것. 그리고 생각한다.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혼자서는 어렵지만 모이면 큰 힘이 되는 것. 그렇게 우리나라는 촛불의 힘을 보여줬다. 그리고 우리가 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때보다 힘든 요즈음이라고 한다. 건국 이래 한 번도 쉬운 세상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우린 저항하고 변화시키고, 또 변화하며 지금의 우리 모습을 만들었다. 힘든 세상이라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작은 희망을 생각한다. 희망이 없는 세상이 가장 두려운 세상이라고 했듯, 희망까지 무시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의 목숨을 헤치는 그런 테러가 아닌 평화로운 방법으로 세상이 변화되길, 결국 국민이 똑똑해야 함을 조금은 안 것 같다.
보다 나은 세상. 그런 세상이 오기를 바라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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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몇명으로도 얼마든지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마사아키는 믿었다.(399p)
전세계적으로 테러가 유행이라도 하듯이 번져나가고 있다. 기억속에서 가장 뚜렷하게 남아있는 건 911테러. 분명히 비행기가 날아가는데 건물을 피해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건물속으로 돌진. 당연히 그 빌딩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포함해서 비행기에 있는 사람들까지 수많은 사상자를 냈던 테러였다.
그런식의 대규모 테러들을 비롯해서 본문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소규모 테러들까지도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고 있다. 소규모 테러는 그야말로 작은 규모다. 때로는 한명이 폭탄을 두르고 나타나서 총으로 무고한 시민들에게 총격을 가하기도 하고 본문에 나온 것처럼 차를 끌고 건물이나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돌진하기도 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단지 그 때에, 그 곳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아무런 잘못이 없는 사람들은 죽음을 당한다.
그렇다면 '왜?' 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테러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왜, 무슨 이유로 이와 같은 테러를 벌이는 것일까. 소규모 테러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보통 자신도 자살을 하는 경우가 많다. 자세한 것을 알아볼수는 없지만 종교와 관련된 경우가 많기도 하다. 신이 있다면 과연 그 신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창조물이 자신이 위대하다는 칭송을 남기고 죽는 것을 원할까. 아니 그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잘못된 종교관의 성립이랄까.
하나의 테러사건에 저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얽혀 있다. 작가는 실제로 이런 사건을 보고서 이런 기획을 만들어 냈을까. 다큐로써도 충분히 매력있는 이야기. 어느날 갑자기 트럭이 빌딩으로 돌진한다. 운전자 또한 죽는다. 사람들은 그 사람이 무슨 이유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모른다.
단지 억울하게 죽은 사람과 다친 사람만 있을 뿐이다. 죽은 사람의 가족들은 이루 허망함을 견딜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어디에서 보상도 받지 못한채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누군가에에 원한을 품을수도 없다. 그저 운이 나빴다며 불운을 탓해야 하는 걸까.
백주대낮에 일어난 칼부림 사고. 경찰들의 조사에 의해서 그런 소규모테러를 일으킨 배후가 슬슬 밝혀진다. '도베'라는 이름의 그는 무엇 때문에 멀쩡한 사람들에게 바람을 불러 일으켜서 이러한 활동들을 벌이게 한 것일까.
처음 이야기부터 마지막 이야기까지 작가는 끊임없이 일본인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는다. 좋은 점도 많지만 스스로 나서려 하지 않는 일본인들. 남에게 피해를 주려하지 않지만 또한 피해가 났을때도 뛰어들어 직접 행동하기보다는 방관자가 되는 그들. 일본의 국민성이라고도 할수 있는 부분을 끊임없이 비판하며 '우리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런 국민성을 바꾸기 위해서, 나라 자체를 변신하기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레지스탕스들. 과연 그런다고 사람들이 바뀌게 될까. 너무나도 국지적인 시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다. 나라마다 다른 국민성을 탓해 볼 생각은 없다. 비단 일본 뿐 아니라 한국 또한 그런 점이 많으니 말이다.
일본과 한국 뿐 아니라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그런 현상이 아닐까. '방관자효과'라는 이름도 붙여져있던. 여러 사람이 한 사건을 목격하게 되면 가다 나서서 그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켜보거나 남의 일처럼 여기고 지나간다고. 누군가가 도와주겠지 하는 생각이겠지만 오히려 그것은 자신이 귀찮아서 일수도 있다. 내가 그 상황이었어도 그러지 않았을까.
'나를 닮은 사람'이 온 천지에 가득하다. 나도 튀기 싫어하고 그들도 나처럼 튀기 싫어한다. 그저 지금 자신의 자리에서 현실에 안주하며 조용히 살아가고 싶을 따름이다. 그러면 안되는 걸까. 나를 닮은 사람이 또 있다면 그건 위험한 일일까. 작가는 일본 사람들을 겨냥하고 이야기를 풀어놓았지만 괜스리 생각이 많아지는 한 권의 책이다.
- 아이고, 내가 찬밥 더운밥 가릴때니, 대머리든 뚱뚱보든 돈만 잘 벌어오면 돼.(357p) 싱글맘의 소원인데 싱글맘도 아닌 나는 왜 너무나도 공감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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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소규모 테러가 일본전역에 걸쳐 빈번하게 발생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조직적인 것인가? 아직은 알 수가 없다. 범인들끼리 안면도 없고 사상의 공유, 조직과 지도자, 그 어느 것에도 연관성을 발견할 수는 없으나 한 가지 공통점이라면 범인들은 스스로를 사회의 부조리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라고 자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가 피해를 입는다면 이들이 사회에 저항한다는 명분이 국민적 공감을 얻지는 못할 것인데 단지 사회에 대한 반감을 개인적으로 표출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 같은 소규모 테러가 왜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질문과 해답을 열 사람의 눈과 입을 통해 낱낱이 파헤치고 있는 것이 이 소설이다.
누군가는 헤어진 전 여친이 소규모 테러에 희생당하자 복수를 꿈꾸고, 누군가는 최하위 빈곤층에서 중산층으로의 상승은 꿈도 꿀 수 없다는 현실에 절망하여 소규모 테러를 시도하고, 누군가는 주변사람들의 무관심으로 어이없이 죽은 절친에 애통해 하고, 누군가는 혹시라도 소규모 테러와의 연관성을 괜히 의심받을까 전전긍긍 하다가 끝내 울타리를 치고 말고, 누군가는 테러 배후자로 지목되는 이를 낚기 위해 딸을 이용하고..
이렇게 하나하나 꺼풀을 벗겨 각기 사연을 들여다보노라면 우리가 사회적 공분에 대응하는 천차만별의 자세를 만나게 된다. 모두가 알게 모르게 소규모 테러의 공범이자 종범이 되어 있는 줄도 모른 채, 나 하나쯤이야 라는 관망적 태도를 보였었다. 어차피 돈으로 굴러가는 세상을 단숨에 바꾸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테러를 자행하는가? 스스로의 판단이 아니라면 테러를 사주하는 배후가 궁금해진다. 아무래도 병 맛 사회적 구조가 고착화 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옳은 지 그른 지에 대한 판단을 스스로 내리도록 유도하고 싶었던가 보다. 마지막에는 반전이라고 해도 될지는 모르겠으나 놀라움을 안겨주기 보다는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마음이 무겁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문제의 원인을 거시적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이번 같은 경우 방향이 잘못 되었던 거다. 테러에 분노하되, 고민을 필요로 한다. 쉽게 나무랄 게 아니란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