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자생물학의 발달은 분자시계라는 개념을
통해 각 종들 사이의 유전적 거리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유인원 중에서 인간과 가장 가까운 것은 98.4%의 DNA를 공유하고 있는 침팬지로, 1.6%의 차이는 분자시계의 개념으로 보았을 때 인간이 침팬지계통에서 600만년
전에 분기했음을 뜻한다고 한다. 이처럼 600만년 전 인류계통은
침팬지계통과 갈라섰지만 그 때부터 인류계통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돌 조각으로 된
도구라도 남겨 놓은 때가 250만년 전, 이때부터 1만 3000년 전 농사를 짓기 시작할 때까지 그들이 남긴 건 여전히
돌 조각뿐이었다. 이런 인류역사 600만년을 1년으로 축소했을 경우, 1월1일 0시 침팬지계통과 갈라선 인류는 오로지 수렵과 채집을 하며 살다가, 12월31일 오전 6시 비로소 농경을 시작했다. 그리고 밤 11시40분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하루 전인 12월30일의 인류는 여전히 수렵과 채집을 하였을 것이며 침팬지와 딱히 구분되는 것도 없었을 것이다.
인간이 지닌 가장 독특한 점은 대형 포유류의
한 종이면서도 다른 동물과는 전혀 다른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인간의 성생활은 다른 종의 기준으로 보면
괴상하기 짝이 없으며, 인간만의 느린 노화는 다른 종보다 긴 자녀의 양육기간에 대한 문화적 적응이자
생물학적 적응의 결과라고 한다. 자연선택은 이익과 비용이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진화하기 때문이다. 또한 언어는 인간을 오늘날 다른 동물들과의 차별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간주되지만 언어 역시 진화의 산물이다. 그렇게 볼 때 언어란 꼭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은 아닌 셈이다.
이 책 [침팬지와의 대화]는 이처럼 언어가 인간만의 특성이 아니라는 것을
책제목 그대로 침팬지와의 대화를 통해 보여준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 인간이 다른 동물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알려줌과 동시에 과학실험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과학의 어둡고 추한 면을 폭로하고 있다.
아동의 심리를 연구하는 심리학자를
꿈꾸었던 저자는 대학원과정에 입학하면서 두살배기 침팬지 워쇼를 만나게 된다. 워쇼는 미국의 우주프로그램에
이용하기 위해 아프리카 정글에서 납치되었으나 언어실험을 위해 가드너 부부가 교차양육하고 있었다. 가드너
부부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진화상의 친척 침팬지가 인간과 마찬가지로 의사소통 능력을 타고 났다는 가설아래 수화로써 언어조기교육을 시작하고 있었다. 연구조교가 된 저자는 인간과 침팬지의 유사성을 언어 활동에 관한 실험으로 규명하는 것이었다. 저자가 워쇼를 처음 만났을 때 워쇼는 가드너 부부와 산지 1년이
넘었고 스무개 정도의 수화를 배운 상태였다.
저자는 이후 워쇼에게 수화를 가르치고 같이
생활하면서 침팬지가 인간과 똑같이 행동하고,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똑같이
생각함을 확인한다. 워쇼의 언어적 행동은 성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지만, 인간아이라면 누구나 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행동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에도 워쇼의 수화 순서와 미국 수화를 배우는 청각장애자의 수화 순서 사이에는 차이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이는
인간과 침팬지가 600만년 전에 공동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동일한 의사소통 체계를 각자의 필요에 맞게
적응 시킨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과 침팬지 각각의 의사소통 능력은 같은 조상의 인지능력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침팬지는 끔찍한 삶을 살고 있다. 인간과 가까운 종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간을 대신해 우주 공간과 같은 미지의 세계에 보내지거나, 암이나 화장품 혹은 화학제품의 유해성을 위한 생체실험 대상이 되어 좁은 철창에 격리되어 지낸다. 과학자들은 세상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지만 그 대상이 되는 침팬지들에 대해서는 동물이라는 피실험체로 대할 뿐이다. 교차양육되는 침팬지들도 성숙해지면 일반가정에서 양육이 불가능해진다. 그러기에
인간들은 침팬지가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커지면 별도의 수용시설에 보내어 격리한다. 그들이 느끼는 상실이나
다른 감정에 대해 인간은 무관심했고, 침팬지는 하나의 재산처럼 취급되었다. 워쇼 역시 그런 운명을 피해나가지 못했다. 다만 가드너 부부가 워쇼
프로젝트를 끝내고 워쇼를 다른 곳에 보내려고 했을 때 저자가 함께 했다는 사실이 다른 침팬지와 달랐을 뿐이다.
오클라호마로 옮긴 워쇼는 9살이되자 어른 침팬지 군락으로 옮겨갔고 그곳에서 두 번의 임신을 하고 아이를 출산하였으나 모두 잃게 된다. 상실감과 심한 우울증에 빠진 워쇼를 위해 저자는 10개월된 어린
침팬지 룰리스를 데려와 함께 둔다. 그러면서 침팬지도 다음세대에게 수화를 전하는지를 관찰하며 연구한다. 룰리스는 워쇼가 수화하는 모습을 처음에는 보고, 그 다음에 혼자
해보고, 마지막으로 그 수화를 적절한 때에 적절하게 사용하였다. 룰리스는
인간이 아닌 동물에게서 인간의 언어를 배운 최초의 동물이 된 것이다.
저자는 침팬지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자 오클라호마 대학을 관두고 워쇼와 룰리스 등세 마리의 침팬지와 함께 센트럴워싱턴 대학교로 옮긴다. 거기에
가드너 부부가 보내준 두 마리의 침팬지를 합하여, 어려서부터 인간의 수화를 배운 침팬지들 사이에서 룰리스를
관찰함으로써 이들의 사회적 교류를 연구한다. 연구결과 저자는 침팬지들이 보상을 얻기 위하여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은 인간가족처럼 일상에서 친밀한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하여 언어를
사용했다. 또한 ‘(침팬지들 각각은) 모두 기쁨과 슬픔, 두려움, 분노, 동정심, 사랑, 후회까지
모든 감정을 똑같이 느낀다. 그러나 인간과 마찬가지로 침팬지들이 감정적, 정신적 삶을 외부로 표현하는 방법은 아주 다르다.’ (462쪽)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저자는 인간이란 존재의 한
형태 임을 깨닫는다. 침팬지 역시 인간과 마찬가지로 침팬지라는 존재이고, 인간이나 침팬지는 모두 동등한 위치에서 공존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연구의 효용가치가 떨어진 침팬지들이 고통
받는 모습을 보고 그는 과학자보다는 동물애호가가 되는 쪽을 선택한다. 어찌 보면 이 책은 무명의 젊은
심리학자가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고 열정적인 동물 권익 운동가가 되는 성장기와 같다. 피실험체를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행동과학의 제1계명을 어긴 것이 학자로써의 실수라고 말하는 저자는, 자신의 연구소가 쓸모 없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워쇼 가족은
최선을 다해 보살피지만 이후 세대로의 번식 등은 의도적인 출산제한 등의 방법을 통해 막는다. 정글이
아닌 인간만을 위한 사회에서 침팬지 후손들은 그 어떤 편의가 제공된다 해도 절대 행복해 질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 심리학자와 워쇼라는 침팬지 사이의 이야기는 인간과 동물이라는 구분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를 알게 해준다.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동물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우리에게 이 책은, 600만년을 1년으로 축소한 달력 속에서 어제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