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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새로운 가족관에 대한 엄마의 힘겨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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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는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다. 어머니가 딸을 걱정하면서 제도권 속에 들어와 타인들의 기대에 어울리는 그러면서 보통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하지만 딸은 그것을 완강히 거부한다. 자신만의 특별한 삶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그것을 위하여 가족의 동의도 필요치 않다는 자세를 보인다. 그것은 딸이 외국에 봉사활동을 다녀와서 집을 나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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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는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다. 어머니가 딸을 걱정하면서 제도권 속에 들어와 타인들의 기대에 어울리는 그러면서 보통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하지만 딸은 그것을 완강히 거부한다. 자신만의 특별한 삶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그것을 위하여 가족의 동의도 필요치 않다는 자세를 보인다. 그것은 딸이 외국에 봉사활동을 다녀와서 집을 나가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엄마의 시선과는 상관이 없다.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한다.

 

보따리를 들춰 메고 전국을 돌면서 강의를 하는 딸은 약방에 감초처럼 의롭지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회적인 일에 끼어들고, 그러면서 물질적인 궁핍함을 느낀다. 집을 나가 기거하는 곳에서 집을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 되고 엄마에게 SOS를 친다. 엄마는 딸의 그 상황이 황당하다. 남편을 잃고 혼자 요양사로 근무하면서 집세를 받아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입장에서 딸이 원하는 거금을 만들 수도 없고, 만들더라도 앞으로 해결해 나갈 길이 막연하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집으로 들어와 같이 살자는 얘기를 하게 되고, 딸애에게 자신이 가진 전세금을 저당 잡힌, 같이 사는 여자애까지 함께 집에 들어온다. 엄마는 그 상황이 너무나 황당하다. 딸은 혈육이기에 어떻더라도 같이 살 수가 있는데, 전혀 상관이 없는 여자애까지 같이 산다는 것이 못내 못마땅하다. 더구나 딸과 여자애의 관계가 엄마가 보기엔 정상적이지 않다. 얼마나 같이 있는 것이 부담이 되랴.

 

공부도 많이 시켰고, 비교적 똑똑하다고 생각하면서 키웠는데 엉뚱한 삶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딸은 엄마에겐 상처다. 엄마는 딸이 좋은 남자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기들을 가지며 세상이 보기에 단란한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하지만 딸애는 그럴 생각이 없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여자애와 가족이라는 끈으로 묶여 있다고 생각한다. 7년의 시간을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떨어져 살아갈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런 관계를 엄마는 지켜보면서 그들의 입에서 레즈비언이라는 말이 새어 나올까봐 전전긍긍한다. 이런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딸의 삶을 보면서 엄마는 여자애 때문에 그렇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여자애만 내보내면 딸애가 정상적인 삶을 살지 않겠나 생각한다. 그래서 여자애에게 집을 나가달라는 말까지 한다. 하지만 여자애는 지극히 현명한 태도를 보인다. 들어오면서 미리 세를 주고 있음과 가사에 일정한 비용을 지출하고 있음도 말한다. 딸애는 여자애와 같이 살지 않은 모습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

 

엄마는 딸애를 키우기 위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그만 두고 집에 들어앉은 사람이다. 딸 하나만 키우며 즐거운 삶을 살아왔는데, 남편도 떠나고 딸애도 엄마의 심기를 어지럽게 하는 생활을 한다. 그런 딸과의 관계가 고통이다. 엄마는 요양사로, 지난 시간 사회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타인을 도우며 살았다가 지금은 보호자 하나 없이 요양원에 들어와 죽을 날만 기다리는 치매 노인 젠을 간호한다. 젠은 처음 요양원에 들어올 때는 사회적 명성 때문에 요양원에 많은 이익을 준다. 독지가들로부터 후원금이 들어오게 하는데 기여하는 것이다. 그런 일환으로 젊은이들이 젠을 취재 차 요양원에 들린다. 엄마는 젠이 과거의 기억을 얘기함으로 요양원에 이익을 줄 수 있는 자가 되어 조금이라도 요양원 측으로부터 대접을 받는 입장이 되길 원한다. 하지만 젠은 취재 상 더 기대할 것이 없는 상태가 되고 젊은이들도 취재에 별로 열을 올리지 않는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젠은 육체적으로 궁핍해져 간다. 속이 곪아 가는데도 소독하는 것과 치유하기 위한 물품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엄마는 그것이 무척이나 못마땅하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젠이 요양원으로부터 이용 가치가 없어지자 요양원 측에서도 관심이 급감한다. 요양원에서는 젠을 다른 곳으로 보낼 계획을 세우고 엄마에게도 젠의 보호에서 손을 떼라고 한다. 엄마는 고용인의 입장에서 어찌할 수가 없다. 결국 젠은 죽을 때까지 보호되는 시설인 수용소 비슷한 곳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수면제 등으로 몽롱한 상태에서 죽음을 기다린다. 엄마는 그런 젠의 모습 속에서 딸의 미래를 본다. 엄마는 여러 가지 이유로 죽어가는 젠을 찾아 집에 데려오기도 한다. 아마 안타까운 마음이 작용해서였으리라. 이런 젠을 통해서 딸이 비정상적인 가족 관계를 형성하고, 사회활동만 하다가 결국엔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의구심도 일어났으리라. 그런 마음들이 또 딸을 위해 지속적으로 여자애를 떨어지게 하려는 작용으로 나타나기도 했으리라.

 

딸애에게는 직장이 없다. 일을 하지만 직장이 없는 사람들. 열에 일곱이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에겐 자격이 없다. 대출을 받을 자격도, 공공 주택에 들어갈 자격도.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다수라는 게 위로가 되진 않는다. 오히려 내 딸이 그런 부류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매일 충격적이고 놀랍다. 그래서 매번 똑같은 강도의 실망감과 죄책감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딸애는 공부를 지나치게 많이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불필요한 공부를 내가 너무 많이 시킨 걸지도 모른다. 배우고 배우다가 배울 필요가 없는 것, 배우지 말아야 할 것까지 배워버린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계를 거부하는 법, 세계와 불화하는 법 (p32)

 

딸이 살아가는 현실을 통해 오늘날 젊은이들의 삶의 환경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일을 하기는 하는데 제대로 된 직장도, 적절한 물질도, 보편적인 삶도 되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잘 그려진다. 이것이 딸애가 엄마의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 계기가 된다. 원하지 않은 동거를 하게 되는 상황을 만든다. 이런 상황에 대해 엄마는 생각한다. 요즘의 젊은이들이 너무 특별한 삶을 가지고 있다고. 그것은 너무 많은 것을 배워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살아온 삶이 송두리째 뒤집어 지는 상황을 딸의 삶 속에서 만난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것이 조금, 엄마가 원하는 보편의 삶 쪽으로 흐를 수 있게 원하는 간절함이 된다.

 

딸애는 대학 강사다. 사회와 합의하지 못한 가정을 이루어 살아간다고 불합리한 대접을 받는 일에 딸애는 몹시 분개한다. 그래서 동질의 사람들이 해직되었을 때, 그들을 위해 투쟁을 한다. 대학 앞에서 시위를 하면서 전단지를 나누고 활동을 한다. 그런 활동에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함께 있다. 투쟁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사이에서 육체적으로 상처를 입는 상황이 발생한다. 딸애도 상처를 입는다. 딸애는 기본적인 자유도 하락되지 않는 세상이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투쟁하는 일, 엄마가 생각하는 세계와 불화하는 법이 되리라. 그렇게 딸애는 세계를 거부하고, 불화하는 삶을 보여준다. 그것이 엄마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는 내 딸이 이렇게 차별받는 게 속이 상해요. 공부도 많이 하고 아는 것도 많은 그 애가 일터에서 쫓겨나고 돈 앞에서 쩔쩔매다가 가난 속에 처박히고 늙어서까지 나처럼 이런 고된 육체노동 속에 내던져질까 봐 두려워요. 그건 내 딸이 여자를 좋아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잖아요. 난 이 애들을 이해해 달라고 사정하는 게 아니에요. 다만 이 애들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고 그만한 대우를 해주는 것, 내가 바라는 건 그게 전부예요.

이를테면 그런 이야기를 나도 소리 내어 말할 수 있게 될까. 딸애에 대한 두려움과 서운함, 배신감과 노여움 같은, 어떤 감정이라 할 만한 것들이 다 빠져나가고, 그 애들이 서 있는 자리가 가차 없는 세계의 한가운데라는 걸 말할 수 있게 될까.(p169)

 

딸이 투쟁을 하다가 다치고 그것을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여자애의 모습을 보면서 엄마의 생각이 조금은 변화의 여지를 보여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정이라는 것이 꼭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되는 엄마의 모습이 그려진다. 인정하기 싫지만 딸애는 보통의 가정을 뛰어넘는 형태의 삶을 보여주고 있고, 그것이 비현실적인 현실의 모습으로 엄마에게 다가온다. 그래서 엄마는 말하는 것이다. 딸의 운동을 변호할 수 입장이 될 수 있을까? 라고.

 

결국 이 이야기는 엄마의 이야기다. 딸이 바라보는 엄마의 걱정, 그것이 저자의 상상력이 동원되어 표현되고 있는 것이리라. 아마 엄마는 상식과 다른 가족관계를 형성해 살아가고 있는 딸애의 삶이 딸이 엄마를 역지사지하여 나타내고 있다고 여기면 되리라. 저자가 엄마의 연령대를 산 것은 아니다. 저자는 딸의 입장에서 자기 주변의 삶을 나타내고 있으리라. 그것을 바라보는 세상의 엄마들이 어떠한 생각을 지닐 것인가? 나의 엄마는 어떻게 대처할까? 이런 생각들이 이 이야기를 통해 엄마의 생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니랴 생각되어 진다. 전통적이고 윤리적인 가정을 꿈꾸며 그렇게 보편적으로 무난하게 살아가길 원하는 엄마의 마음이 이라는 사회에 봉사하면서 가족 등의 연고자 없이 살아간 사람의 결과를 보면서 더욱 안타까움으로 표현되는 것이리라. 지금까지의 가정이라는 틀에서 벗어난 삶에 대한 이해의 범주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글이다.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전통적인 가정만이 가정이 아니라는 패러다임을 보여주고 있다. 같이 살면서 행복하고, 즐거우면 그것이 가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육체적인 결합과 자신의 배를 통해서 낳은 아이, 그것만이 가족을 형성하는 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보게 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을 기피하고, ‘자가 들어가는 단어가 많이 생겨나는 것도 이런 생각의 하나가 아닌가 여겨진다. 이런 생각이 옳다는 얘기는 아니리라. 하지만 다양한 가치관, 다양한 삶의 방식, 개성적인 사고 등이 오늘의 사회를 이끌어 나간다고 생각할 때 앞으로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도 변화의 바람 앞에 서지 않을까 생각도 되어 진다. 이 책이 하나의 예시로 보여주고 있는 삶의 방식은 내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되어가는 세상이 되어 가리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무슨 일일까? 조금은 힘들게 느껴지기도 한다

j****3 2019.04.22. 신고 공감 10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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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결국, 우리 미래의 여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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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나타내는 문장들을 보고 이 소설 또한 『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인가 싶었다. 그럼에도 궁금했던 건 민음사에서 나온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이기 때문이다. 젊은 작가들의 시선이 궁금해 자주 찾아 읽게 되는 시리즈 중의 하나.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역시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소설을 읽어야 우리가 처한 현실을, 우리의 미래를 미리 엿볼 수 있겠다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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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나타내는 문장들을 보고 이 소설 또한 『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인가 싶었다. 그럼에도 궁금했던 건 민음사에서 나온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이기 때문이다. 젊은 작가들의 시선이 궁금해 자주 찾아 읽게 되는 시리즈 중의 하나.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역시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소설을 읽어야 우리가 처한 현실을, 우리의 미래를 미리 엿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팠다.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을 말하는 소설이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에서 남자들은 찾아볼 수가 없다. 거의 여자들이 소설을 이끌어 간다. 요양병원의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엄마, 엄마가 돌보는 여자 환자 젠, 엄마의 딸, 딸과 함께 사는 여자. 작가는 여자들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않는다. 엄마가 돌보는 환자의 이름도 이제희 이건만 미국식 이름으로 젠이라 부르고, 딸과 딸의  동성 연인도 서로 그린과 레인이라 불린다. 자기 딸이 그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게 싫지만 그들만의 애칭이므로 그녀가 관여할 수가 없다.

 

소설에서 엄마는 딸의 여자 친구 레인을 인정할 수가 없다. 공부도 많이 해 대학 강사로 일하는 딸이 좋은 남자를 만나 아이도 낳고 살았으면 싶다. 딸은 왜 남자가 아닌 여자를 좋아하는 것일까. 그저 레인이 눈에 안보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딸과 그 여자애는 몇 달 분의 집세와 생활비 명목으로 엄마에게 돈을 주었고, 그걸로 2층의 누수 문제를 해결했다. 꼼짝없이 그들을 보아야 했다.

 

엄마는 요양원의 젠을 보며 딸의 미래를 염려한다. 미국 유학까지 갔던 젠. 한국계 입양아인 한 아이를 오래도록 후원했지만 그녀에게 남은 건 아무도 없다. 그저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고 있을 뿐. 젠의 모습이 마치 미래의 자신과 딸 모습인 것만 같다. 요양병원 측은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기저귀 하나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많은 돈을 들여 요양원에 들어온 젠에게 더이상의 돈을 지출하기 싫어 그녀를 갋싼 다른 시설로 보내게 한다. 엄마는 다만 사람을 사람답게 대했으면 했다.

 

나는 엄마의 염려가 옳지 않다고 여기지 않았다. 엄마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여겼다. 가족이 없으면 어때, 혼자서도 충분히 잘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젊은 날의 패기일 수도 있다는 걸. 노년이 되어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때 가족이 커다란 버팀목이 될거라고 생각하는 엄마의 생각에 조금쯤은 동의하는 바다. 젠에게서 떠올리는 딸의 미래, 혹은 자신의 미래. 엄마는 그렇게 안타까워했다.  

 

우리의 미래 이야기 임과 동시에 우리 사회의 한 단면들을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성소주자라는 이유로 대학 시간 강사에서 쫓겨난 사람들, 무연고자라는 이유로 함부로 취급하는 요양원 관계자들. 우리 사회의 병폐를 바라 보는 느낌이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들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가까이에서 그 사람들을 대한다면 우리 또한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을까. 다만, 그게 염려스럽다. 다만, 그게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의 시선이 어디에 속해 있는가를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7.12.05. 신고 공감 9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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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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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자의 이야기에는 한 없이 너그러워질 수 있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에 대한 고민을 할 때 ‘공부 말고 다른 재능이 있을 거야. 그러니 기다려줘’, 유난히 독특한 아이에 대해서는 ‘개성이 강한 모양이네, 나중에 크게 될 거야.’ 이런 식의 말을. 하지만 그게 내 아이가 되면 달라지는 게 사람이다. 나에게도 그런 아이가 있다. 큰 아이와는 너무도 달라 유난히 버거운 아이. 누구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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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자의 이야기에는 한 없이 너그러워질 수 있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에 대한 고민을 할 때 ‘공부 말고 다른 재능이 있을 거야. 그러니 기다려줘’, 유난히 독특한 아이에 대해서는 ‘개성이 강한 모양이네, 나중에 크게 될 거야.’ 이런 식의 말을. 하지만 그게 내 아이가 되면 달라지는 게 사람이다. 나에게도 그런 아이가 있다. 큰 아이와는 너무도 달라 유난히 버거운 아이. 누구보다 얌전하게 생겼고, 누구보다 착하게 생겼다. 어른들 앞에선 예의 바르게 인사도 잘하고 말도 잘 듣지만 집에 오면 그 모든 가면을 벗어던진다. 유난히 나와 합이 맞지 않아서 나와는 유독 힘든지 모르겠다. 그 아이도 나도. 이런 고민들을 아는 지인들에게 이야기 하면 모두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그런 아이가 나중에 효도 많이 해... 글쎄. 난 효도 안 해도 좋으니 지금 편안하게 지내고 싶지만.. 이 또한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라 참을 수밖에 없다. 이렇듯 자식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고민을 낳고 아픔을 낳는 것 같다. 아직은 성장하고 있는 이 아이에게 어느 날 남들과 다른 성정체성에 고민이 온다면... 나는 또 어떤 생각으로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받아들이게 될까?

 

무남독려 외동딸을 둔 엄마인 ‘나’. 딸아이가 살던 집에서 쫓겨날 처지에 처하자, 나는 딸에게 집으로 들어 올 것을 제안한다. 딸은 자신의 동성 연인과 함께 엄마가 살고 있는 집으로 들어온다. 딸의 연인인 여자아이를 바라보는 나는 괴롭고 힘들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저런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전쟁을 치른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은 동성애 문제로 대학에서 해고된 동료들을 위해 시위에 나선다. 누구보다 많이 배우고 똑똑한 딸은 왜 거리에서 시위하며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것일까? 그렇게 사는 딸을 인정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나는 분노와 미움을 딸의 연인에게 토한다. 나는 노인요양병원 요양 보호사로 치매환자를 돌보고 있다. 나의 담당은 젠이고 누구보다 열심히 젠을 돌본다. 하지만 가족도 연고도 없고, 의식까지 불분명한 젠을 병원에선 홀대하고 오로지 이익을 남기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한다. 일터에서고 집에서고 뜻대로 되지 않는 나의 고민은 깊어만 가는데...

 

술술 읽히는 소설이다. 하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내용은 결코 쉽거나 가볍지 않다. 만약.. 내 아이가 어느 날 사랑하는 사람이라며 남자 연인을 데리고 온다면? 그랬을 때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모르겠다. 3자 입장에서라면 그래 아이의 의견이나 생각을 존중해야지, 성정체성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잖아.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게 내 아이라면... 달라지겠지. 한때는 부모의 자랑이었을 딸. 그랬기에 더 많이 가르쳤고, 더 많이 배웠던 딸아이. 그 딸아이가 사랑한다며 데리고 들어온 연인이 여자라니...

‘내 딸은 왜 이토록 가혹한 걸까요? 내 배로 낳은 자식을 나는 왜 부끄러워하는 걸까요. 나는 그 애의 엄마라는 걸 부끄러워하는 내가 싫어요. 그 애는 왜 나로 하여금 그 애를 부정하게 하고 나조차 부정하게 하고 내가 살아온 시간 모두를 부정하게 만드는 걸까요.’ (84) 엄마의 독백형태로 이뤄진 이 책을 보면서 계속해서 나에게 묻고 있었다. 나라면 나는 어떤 엄마로 아이와 대립하거나 인정할지..

 

그와 함께 젠을 돌보며 느끼는 죽음이라는 키워드. 치매로 기억을 잃어버린 젠이 이 사회에 점점 쓸모없는 생명으로 취급받는 모습은 나를 더욱 슬프게 만든다. 평범하게 살지 못하는 딸과 젠을 동일 선상에 놓고 혹 딸이 그렇게 늙어갈까 힘들어하는 엄마의 마음이 이해된다. ‘좁고 갑갑한 고독 속에서 늙어가는 사람. 젊은 날을 타인과 사회, 그런 거창한 것들에 낭비하고 이젠 모든 걸 소진한 다음 삶이 저물어 가는 것을 혼자 바라봐야 하는 딱하고 가련한 사람. (104) 이들이 있었기에 이 사회는 조금씩 달라지고 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중심에 내 아이가 있는 건 엄마 입장에선 싫었겠지. 그냥 평범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아기를 낳고 그렇게 늙어가길 바랬겠지. 하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한다. 자식이 있어도 홀로 죽음에 가까이 가는 사람도 있다고. 무엇이 정답이고 우리가 향해가야 할 사랑이고 정이고 가족인지 또 그렇게 모호함을 느낀다.

 

훌륭한 삶요? 존경받는 인생요? 그런 건, 삶이 아주 짧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나 하는 말이에요. 봐요. 삶은 징그럽도록 길어요. 살다 보면 다 똑같아요. 죽는 날만 기다리게 된다고요. (173) 100세 시대라고 말한다. 약과 병원에서의 혹은 요양원에서의 생활. 그게 10년이고 20년인 상태에서의 100세라면 사양하고 싶지만 이 또한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알기에 씁쓸하다. 참으로 먹먹하고 아련한 소설이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k*****3 2017.10.06. 신고 공감 8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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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김혜진]추천사는 왜?
"[딸에 대하여-김혜진]추천사는 왜?" 내용보기
작가가 책을 쓰면서 정말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다. 표면적으로는 치매, 고단한 생활, 그리고 이해불가한 자식과의 갈등 등을 나타내고 있지만, 젠은 먼 훗날의 내 모습이고, 딸은 젊었을 때의 내 모습이고, 작중의 '나'는 현재의 내모습 같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삶은 로맨틱 코메디처럼 달콤할 수 없어서, 매일 지어먹는 밥 한끼 속에서도 애잔함이 담긴다. 그런데, 딸이 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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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책을 쓰면서 정말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다. 

표면적으로는 치매, 고단한 생활, 그리고 이해불가한 자식과의 갈등 등을 나타내고 있지만, 

젠은 먼 훗날의 내 모습이고, 딸은 젊었을 때의 내 모습이고, 작중의 '나'는 현재의 내모습 같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삶은 로맨틱 코메디처럼 달콤할 수 없어서, 매일 지어먹는 밥 한끼 속에서도 애잔함이 담긴다. 

그런데, 딸이 저도 성인이 되었고 제 인생을 살겠다하는데, 그 모습이 보편적이지 않으니...미국 드라마에서처럼 쿨~한 엄마가 아니고서야,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마찬가지로, 기껏 살아왔더니 돌봐주는 이 없는 치매 환자가 되어 인생을 마감하는 젠을 보면, 젊었을 때의 타인을 위한 삶이나 희생 같은 것이 과연 연금 보험 한구좌보다 더 중요한가 싶기도하다. 

어차피 어떻게 살든, 죽는 것은 거의 같은 모습일테니 말이다. 


요즘 한국 젊은 작가들의 저마다의 소소한 고민거리를 주제로 스타일리쉬한 글을 쓰는 것에 아주 질색을 하는데, 김혜진 작가처럼 작정하고 덤벼들어 글을 써내는 것을 보니, 아직 한국 문학에서 찾아낼 보물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들었다. 


딱 뭐라 정의할 수 없지만,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마음에 와 닿았다. 

이건 외면하고 싶어도 외면할 수 없는 인생의 한 자락이고, 결론이 어찌 되었던 저마다의 깜냥으로 해결해야할 일들일 것이다. 책은 다 읽었지만, 그 잔상이 남아 한동안 이런저런 생각에 빠질 것같기도 하다. 


책이 살짝 거친 문장들이 조금 아쉽지만, 이런 글들만 쭉쭉 써내려간다면, 김혜진 작가의 글을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다. 


아쉬운 점은 작품이 아니라, 듣보잡 작가의 추천사와 작품해설이다. 


1. 책 자체가 훌륭한데, 작가는 뭐가 아쉬워서 저런 작품해설과 추천사를 부탁하여 책에 실었는지 의문이다. 책 판매에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은데.  

2. 김현경의 작품 해설은 말같지도 않아서 그냥 한 두페이지 읽다가 넘겨 버렸다. 작품 자체가 사회적 배경이 중요하여 덧붙여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면, 차라리 이런 작품 해설은 빼는 것이 나을 것 같다. 

3.강영숙의 추천의 말은 어처구니 없다. 특히 "우리가 지금껏 기다려온 소설도 이런 여성들의 서사가 아니였는지"라는 문장을 보고, 이 작가의 면상이 궁금하여 인터넷을 찾아보았더니, 별로 존재감이 없는 소설가였다. 젠과 나와 딸과 딸의 여친을 전부 남자로 대입하여도, 이 소설의 가치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왜 한 인간 혹은 사람 혹은 존재를 이야기할때 자꾸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는 건가. 젠과 나와 딸이 여자라서 이런 이야기가 쓰였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런 빈곤한 상상력으로 무슨 소설을 쓰고, 남의 주옥같은 글에 젠더 이분법의 추천사를 쓰는건지원.   

c******m 2019.09.25. 신고 공감 7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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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 김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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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성남시 이재명 시장의 강의를 조금 들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 중에 성남시는 우리나라 지자체들 중에서 국가보조금을 받지 않는 5곳 중의 하나라고 하는 내용이 귀에 들어왔다. 성남시가 이럴 수 있었던 것은 굉장히 단순했는데 시장과 공무원들이 ' 나쁜 짓'만 하지 않으면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이재명 시장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 곳곳에 적용된다. 작은 단체를 운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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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성남시 이재명 시장의 강의를 조금 들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 중에 성남시는 우리나라 지자체들 중에서 국가보조금을 받지 않는 5곳 중의 하나라고 하는 내용이 귀에 들어왔다. 성남시가 이럴 수 있었던 것은 굉장히 단순했는데 시장과 공무원들이 ' 나쁜 짓'만 하지 않으면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이재명 시장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 곳곳에 적용된다. 작은 단체를 운영하는데도 편법들이 당연시되는 것을 봤다. 이미 거기에 적응된 사람들은 그것이 부득이한 상황이라고 합리화하고, 혹시 적발되면 운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왜 메뉴얼대로 하지 않을까. 운영자들은 오너의 입장이 돼보면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하는데 이 뒤에는 반드시 돈 문제가 따랐다.

 

이 책은 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어머니의 고단한 삶을 먼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결혼 전에는 교사였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다가 남편이 병으로 사망하자  점점 더 노동의 강도가 세지는 일을 하는 어머니는 지금 요양보호사 일을 한다. 요양병원의 행태는 보호사인 '나'가 보기에 끔찍하다. 보호자들 앞에서는 그렇게 매끄럽게 굴다가도 요양대상자들을 대하는 태도는 냉담하기 그지없다. 운영자들에게 대상자는 '돈벌이'의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설마 요양병원의 실태가 이럴까 싶으면서도 이보다 더한 곳도 많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아찔하다. 기저귀조차 깨끗한 것으로 제공받지 못하는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이재명 시장의 말처럼 '나쁜 짓'만 하지 않으면 대상자들에게 이렇게 잔인한 대우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리자들이 노인들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인식할 때 '나'는 비록 파견직에 불과하지만 그것에 분노하고 가진 것을 희생하면서 대상자의 존엄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나'의 하나 뿐인 딸은 욕심껏 가르쳤지만 대학의 시간강사 자리도 간신히 꾸려나가는 입장이다. 거기다 삼십대 중반의 동성애자다. 밖에서 셋집을 얻을 처지도 안돼서 "나'가 인정할 수 없는 동성의 상대와 함께 집으로 들어왔다. '나'는 돌보던 대상자가 사회에서 버림받는 처지가 되자 잠시만이라도 돌보고 싶어서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다.

 

잠깐이지만 '나'의 집에는 '나'와 요양병원에 있던 젠, 그리고 딸 그린과 딸의 연인 레인이 함께 지내게 된다. 이 넷은 모두 열심히 살아왔지만 사회는 이들의 성실과 정직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나쁜 짓'을 하지 않은 결과는 소외고 가난이며 남들의 무시였다. '나'는 개인의 무능력으로 치부했던 이것을 사회구조의 문제로 이해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딸의 세계를 받아들이면서부터다.

 

 사람을 다른 생물과 구분 짓는 것 중에 '상상'할 수 있는 능력도 중요하게 포함된다고 들었다. 만약 내가 저렇다면 어땠을까? 라는 '역지사지'를 상상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일들은 줄어들지 않을까. 소설 속에서 '나'가 딸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만큼 우리 사회가 투명해졌으면 좋겠다. 이런 소설을 읽으며  '나쁜 짓'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누구라도 인식한다면 소수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일도, 분노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t******e 2017.12.21. 신고 공감 7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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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결산] 평범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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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의 철학 소설 3부작 중 <평범한 인생>이라는 작품이 있다. 단순하고 뻔하게까지 느껴지는 삶에도 의미가 있다는 내용인데, <딸에 대하여>를 읽으며 그 평범성에 대해 떠올렸다. 이 책의 주인공이 원하는 것이 바로 그 평범한 삶이기 때문이다. 그냥 남들처럼 사는 것, 일 년에 한두 번은 여행도 가고 남들한테 자식 자랑, 손주 자랑도 하고 그런 삶. 주인공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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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의 철학 소설 3부작 중 <평범한 인생>이라는 작품이 있다. 단순하고 뻔하게까지 느껴지는 삶에도 의미가 있다는 내용인데, <딸에 대하여>를 읽으며 그 평범성에 대해 떠올렸다. 이 책의 주인공이 원하는 것이 바로 그 평범한 삶이기 때문이다. 그냥 남들처럼 사는 것, 일 년에 한두 번은 여행도 가고 남들한테 자식 자랑, 손주 자랑도 하고 그런 삶. 주인공 '나'는 결혼하기 전 교사였다. 아이가 생기고 육아를 위해 퇴직하였다가 생계를 위해 도배, 교습소, 운전 기사까지 안 해 본 일이 없다. 지금은 요양 보호사로 일한다. 사별한 남편은 해외파견 건설노동자였다. 남은 재산은 낡은 2층집 주택. 가방 끈이 긴 딸은 시간 강사로 일하는데 밑 빠진 독처럼, 계속 손을 벌린다. 이제는 주택을 저당잡아 돈을 융통해달라길래 들어와 살라고 했다. 함께 온 그 애는 딸의 오랜 동성 연인이다. 나는 그 애가 싫지만 못 본 체 한다. 딸과 그 애가 점령한 주방과 거실에서 밀려나듯, 나는 내 방에서 갑갑함을 느낀다.

 

다음 날, 그 애에게 집에서 마주치지 말자고 한다. 그 애는 넉달 치 집세를 냈으니 권리가 있지 않느냐 당돌하게 반문한다. 그 애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딸의 모습에 불편해진 나는 일찍 집을 나선다. 내가 돌보는 환자 젠은 젊어서 성공한 사업가였고 많은 사람들을 후원했지만... 젠을 보며 나는 나의 미래를, 딸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섬찟하다. 요양원에서 아무리 눈총을 받아도 젠을 정성껏 돌보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 나. 이제 그녀는 나를 엄마라고 부른다.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 딸 대신 그 애를 붙들고 묻는다. 딸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해직된 동료들을 돕는 시위를 한다고 한다. 퍼런 멍을 달고 들어오고, 집은 행동가들이라는 사람들과 피켓으로 가득하고. 왜 정상적으로 평범하게 살지 않느냐 원망하는 나에게 그 애가 말한다. 자신이 딸의 생계를 책임진지 벌써 몇 년 째라고. 이 관계가 의미가 없다면 내가 그렇게까지 하겠느냐고. 윤택한 삶을 물려주지 못하고 경제적인 책임을 지지 못한 죄로 나는 할 말이 없다. 이게 부모로서 지은 죄일까.

 

주인공에게 평범한 삶이란 무난하고 안정된 삶이다. 최선을 다해 키운 딸은 똑똑하지만 사회와 타협하는 법을 모르며 제가 믿는 정의를 위해 어머니와 연인을 희생시키고 있다. 주인공은 어떤 것이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삶이 괜찮은 삶인지는 안다. 평범한 삶. 대부분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평범한 삶. 결혼해서 애 낳고 사는 그런 평범한 삶, 엄마는 자식이 편안한 삶을 살았으면 한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딸의 동성 연인을 못 본 체하는데 그 삶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피하고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를 인정하면, 딸이 앞으로 살아갈 삶은 젠의 삶과 다름없다는 예감이 들어서다. 결혼을 하면 남편도 있고, 자식도 생길 것이다. 늙고 아파도 돌봐 줄 사람이 생긴다. 엄마가 아는 평범한 삶, 젠과는 다른 삶이다. 동성애자로 설정되어 있으나 이 소설의 딸은 부재하는 아들처럼 느껴진다. 완전한 독립을 이룩하지 못해서일까? 함께 실린 평을 보면 자궁가족이란 표현이 나오는데 그 연장선 같기도 했다. 딸의 연인은 며느리이자 또 다른 딸이고.

 

우리 딸은 평범하게 살 수 있었는데 왜 너를 만나서라는 원망, 딸이 이야기해주지 않는 사정에 대한 해설을 해줄 사람, 딸의 빈 자리를 채우고 나와 잘 지내보려는 끊임없는 노력. 전통적인 가족에서 며느리 포지션이 아닌가. 게다가 가장이 큰 일, 바깥 일을 하는 동안 부모와 아내의 희생은 당연시되는 것도 은근히 겹쳐진다. 연인의 엄마와 잘 지내보려는 그 수많은 노력들과 밀어냄이 맘에 차지 않는 며느리를 보는 시모 같았다. 부모가 자식을 어떤 소유물처럼 느낀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사위라면 그런 말을 안 할 가능성이 있어서? 모르겠다. 경제적 불안정성에 관하여서는 언젠가 비혼을 다짐하는 글에서 읽은 구절을 떠올렸다. 다는 기억이 안 나고 평범한 남자와 결혼해서 평범하게 살다보면 당신이 생계를 책임지게 될 시기가 온다. 남자가 퇴직해서 집에 있으면 당신은 애들 키우고 마트 캐셔, 파출부로 일하게 된다. 그 직업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경력이 단절됐기 때문이라고, 주변을 둘러보라는 글이었다. 주인공의 삶이고 우리네 삶이다.

 

<딸에 대하여>는 주인공, 젠, 딸, 딸의 연인, 요양 보호사 동료 등- 등장하는, 세대를 넘은 여성의 삶에 대한 글이다. 그리고 사회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어떤 안전망 바깥에 있는 삶. 그런 삶에 대한 글이다. 신념을 지키고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그를 지키며 살아가는 삶은 얼마나 불안정한가. 평범한 삶을 살아욌지만 여전히 평범한 그룹에 속하지 못한 '나'의 바람은 내일로 미뤄진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나의 세계에서 그의 세계를 이해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삶인지도 모른다. 정의와 윤리를 찾는 딸과 딸의 연인의 열정이 때론 가리워진 세상의 고독을 보지 못한 것처럼. 모나지 않고 평범한 삶이 안정과 평화를 가져올 거라고 생각하는 엄마가 세상에 맞서는 딸과 딸의 연인을 젊은 날의 치기라고 짐짓 외면하는 것처럼. 겹치지 않는 세계에 몸을 담그고 상대의 일방적인 이해를 바라는 것은 평행선을 걷는 것... 그렇다면 세계를 넓혀서 겹치는 부분을 만드는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삶이 고단하더라도 조금씩, 할 수 있는 만큼 앞으로 나아가면서.


하루를 살기도 힘겨워서 평범함이 사치가 되는 세계를 옮긴 글이다. 외롭고 서늘하고 지쳐서 놓아버리고 싶지만 놓을 수 없는, 그런 삶. 초반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대사가 마지막에 몸을 뉘이는 장면 위로 맴돈다.


-내가 염려하는 건 언제나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e***a 2018.01.11. 신고 공감 3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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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엄마를 바라보는 소설로 남았다... 『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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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일들을 하나씩 잃어 가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말이다. (8페이지) 이 소설을 읽기 전에는, 일방적으로 엄마가 바라보는 딸에 대한 내용이 아닐까 추측했다. 내 딸을 이야기하는 엄마의 시선으로 더 가깝고 애틋한 느낌이 이 소설을 가득 채웠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그런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은 한없이 따뜻한 애틋함과는 거리가 있다. 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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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일들을 하나씩 잃어 가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말이다. (8페이지)

 

이 소설을 읽기 전에는, 일방적으로 엄마가 바라보는 딸에 대한 내용이 아닐까 추측했다. 내 딸을 이야기하는 엄마의 시선으로 더 가깝고 애틋한 느낌이 이 소설을 가득 채웠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그런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은 한없이 따뜻한 애틋함과는 거리가 있다. 딸이 아니라, 여자의 삶을 말하는 느낌이 더 큰 소설이다. 하지만 '여자 이야기'라고만 하기에는 뭔가 더 많이 얹어진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상 속 여자의 삶이 적나라하게 비치는 소설이다. 동성애자 딸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 엄마는 자기가 배워온 대로, 살아왔던 대로 딸이 따라와 주기를 바라지만, 어디 자식이 내 맘대로 되는 존재였던가. 무엇보다, 삶의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엄마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 소설이 풀어갈, 결국 다다를 곳이 어디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화자인 '나'는 노인 요양보호사로 요양원에서 일한다. 어느 날, 딸이 부탁한 돈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어영부영 딸과 딸의 파트너와의 동거가 시작된다. 자기가 사는 집으로 들어온 딸과 딸의 파트너가 못마땅하지만, 몇 달 치의 생활비를 미리 받은 상태라 함부로 대할 수도 없다. 여유 있는 삶이 아니었던 '나'는 미리 받은 월세 겸 생활비로 위층을 수리하는 데 다 썼다. 하지만 이 이상한 동거가 단지 딸에게 내줄 돈이 없다는 이유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서로 이해 못 하는 상대의 마음을 가끔은 받아들이기도 하고 가끔은 싸우기도 하면서 이들의 동거는 계속된다.

 

엄마는 바란다. 자신의 부족한 삶에 빗대어 내 딸이 나처럼 살지 않기를, 조금은 부유하고 여유 있게 살기를, 혼자가 아니라 남편과 아이들을 가진 평범하고 보편적인 삶을 만들어가기를, 사랑 하나에 목숨 거는 게 아니라 평온한 일상을 만들기를.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보통 '정상'이라고 부르는 삶을 만들어야 할 텐데, 딸의 동성애는 그런 의미로 엄마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이다. 자기 일을 신경 쓰고 사는 것도 힘들고 팍팍한데 다른 이의 삶을 위해 같이 나서서 싸우는 것도 맘에 들지 않는다. 고요하고 안전하게 사는 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오지랖 부리지 말고 자신만을 위한 선택으로 살아가기를 바라지만 딸은 번번이 엄마의 그런 바람을 벗어난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면서 겪는 불합리한 일 처리를 보면서, 을의 처지로 별다른 항의조차 못 하는 자신의 인생이 비루해서, 딸은 자신과 다른 생활을 영위하기 바라는 엄마였다. 그런데 딸이 동성애자로 살면서 겪는 불합리한 일들을 보며 엄마의 불안과 불만은 커진다. 내 딸이, 내 자식이 왜...

 

단순하게 생각하면 딸을 걱정하는 엄마의 한숨과 욕심처럼 보이는 이 소설은, 속내를 들여다볼수록 커다란 그림이 다시 그려진다. 요양보호사인 엄마가 돌보는 '젠'은 아이들의 입양과 후원으로 평생을 바친 여자다. 훌륭하다고 칭송받고 존경받았던 여자의 현재는 치매 걸린 노인,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외로움뿐이다.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을 바쳐 봉사의 삶을 걸었던 젠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요양원의 방 하나를 차지하고 누워 지내는, 먹을 것을 탐내는 치매 노인으로 남았을 뿐이다. 젠을 돌보면서 엄마는 당신 딸의 인생을 겹쳐봤을지도 모른다. 내 딸이,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지 못하고,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동성의 애인과 평생 살아갈지도 모르는데. 누군가 가족이라고 할 사람도 없고 힘이 되어주지도 못하는 노년의 삶을 맞이할 거로 생각하면, 딸의 현재를 인정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던 거다. 그러니까 엄마가 걸어온 보통이고 정상이라 여기는 여자의 삶은 남편과 아이가 존재하는, 누군가 의지가 되고 돌봐줄 나중이 그려지는 거였다. 불합리함을 위해 싸우며 온몸에 멍이 들고 다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보호 아래 든든한 일상을 누리는 것. 그런 인생을 위해서는 동성애가 아니라 이성애로 만들어진 가족이 필요하다는 것.

 

엄마가 겪어온 인생에서 서글펐던, 중심에서 밀려나고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들 그대로 목격했는데, 딸이 그 대상이 되어가려는 걸 막을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과 걱정. 엄마의 바람을 모르는 건 아닐 테지만, 딸이 가고자 하는 세상은 또 다른 곳이었으니... 그렇게 이해의 선을 넘지 못하고 싸움의 연속인 일상에서 찾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여성의 삶이 이렇게 흘러간다는 것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면서도, 그렇게 계속 흘러가도록 둘 수 없는 대책을 위해 온몸으로 말하려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세상에 스미지 못하고 소수자의 삶을 이어가려는 딸을 어떻게 해서든 구해내고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딸의 외침을 이해하고 싶기도 한 엄마의 마음과 시선을 그대로 담은 소설이다. 그 시선을 따라가면서 변하는 건 오히려 엄마였다. 딸의 선택과 행동에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의문 '왜?'를 찾아가는 길. 세상의 부조리를 드러내면서 그 안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삶의 현실적인 장면들을 그대로 고발한다. 이해가 아닌 다름을 인정하면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세상의 많은 일을 엄마가 확인한다. '내 딸이 이런 세상을, 이런 마음으로 부딪히며 살아가고 있었구나' 하는 이해의 언저리쯤 닿았을까? 사실 이해라는 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단어일지도, 타인의 이해가 어디까지 가능한지 재어볼 필요가 없는 일은 아니었을까. 각자의 시선에서 보는 세상은 너무도 다르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우리 사는 시간에 애타게 바라는 건 역시 그 이해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늘 그 시간이 닿으려 애쓰는 곳은 완전한 이해가 아니라, 가장 가까이 닿을 수 있는 지점일 것이다. 내가 하는 최선의 이해가 상대에게 닿는 지점. 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딸이, 딸의 파트너가, 젠이 가 닿을 수 있는 곳. 그곳이 삶의 최선이었을 테지.

 

이 애들이 삶 한가운데에 있다. 환상도 꿈도 아닌 단단한 땅에 발을 딛고 서 있다. 내가 그런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이 애들은 무시무시하고 혹독한 삶 한가운데에 살아 있다. 그곳에 서서 이 애들이 무엇을 보는지, 보려고 하는지, 보게 될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밥알은 좀처럼 삼켜지지 않고 나는 울컥거리며 치솟는 뜨거운 것들을 계속 삼킨다. (149~150페이지)

 

노년에 다다른 여자의 삶은 어떨까, 하는 걱정과 고민이 그대로 드러난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왔어도, 세상을 위해 애쓴다고 살아왔어도 우리를 기다리는 노년은 소설에서 보여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딸의 태도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닌데, 읽을수록 엄마의 시선이 눈에 들어온다. 세상 좀 살아본 여자의 한숨 섞인 목소리는 현실이었으니... 페이지를 넘길수록 세상이 혐오하고 배제했던 딸의 인생을 엄마가 품어주는 게 눈에 보인다. 타인에게 거부당하는 존재가 아니라 엄마가 보듬고 배려해주는 시간으로 거듭난다. 엄마라는 존재가 그런 것일까. 소설의 제목과는 다르게, 결국 엄마를 바라보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n******i 2017.11.03.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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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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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엄마의 애틋한 관계를 기대했지만 이 책의 엄마는 딸을 이해하지도, 그렇다고 포기하지도 못한다.딸을 키우기 위하여 교사 직업을 그만두고 여러 일을 전전하다가 현재는 요양보호사로 가족이 없는 젠이라는 노인을 돌보고 있다.힘들게 키운 딸은 엄마의 바람[안정되고 평범한]되로 살지 못하고 비정규직 시간 강사에 동성애자로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엄마는 젠 할머니의 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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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엄마의 애틋한 관계를 기대했지만 이 책의 엄마는 딸을 이해하지도, 그렇다고 포기하지도 못한다.
딸을 키우기 위하여 교사 직업을 그만두고 여러 일을 전전하다가 현재는 요양보호사로 가족이 없는 젠이라는 노인을 돌보고 있다.
힘들게 키운 딸은 엄마의 바람[안정되고 평범한]되로 살지 못하고 비정규직 시간 강사에 동성애자로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엄마는 젠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에 딸의 미래를 떠올리며 불안해하고 딸과 그 애의 관계를 인정. 이해하지 못하면서 힘들어한다.


YES마니아 : 골드 k*****3 2025.05.0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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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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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엄마와 딸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 가까이에 딸의 동성 연인, 직장인 요양원에서 보살피는 젠 할머니가 등장한다. 가족은 뭘까? 부모, 엄마, 여자,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삶은 어떻게 다를까? 행복이 뭘까?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동성애자인 딸이 못마땅하다. 아니 인정하고 싶지 않다. 적당한 남자 만나 아이낳고 평범하게 살길 원하지만, 딸은 엄마의 바램과는 다른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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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엄마와 딸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 가까이에 딸의 동성 연인, 직장인 요양원에서 보살피는 젠 할머니가 등장한다.


가족은 뭘까?
부모, 엄마, 여자,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삶은 어떻게 다를까?
행복이 뭘까?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동성애자인 딸이 못마땅하다. 아니 인정하고 싶지 않다. 적당한 남자 만나 아이낳고 평범하게 살길 원하지만, 딸은 엄마의 바램과는 다른 삶을 살아간다. 학교 강사인 딸이 경제적 이유로 집으로 들어온다. 딸의 동성 연인과 함께. 엄마는 요양병원에서 보호사로 일한다. 가족이 없는 젠을 돌보며....
딸은 불합리한 것들에 목소리 내며, 일과 사랑 모두에 소신 있는 삶을 살아간다. 다만 엄마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봐주길 원하며...


젠의 인생을 보며, 딸의 생각과 행동을 직접 보며 딸이 선택한 삶과 사랑을 이해해 주길 바랐는데...엄마의 마음은, 우리의 현재를 반영한 지극히 현실적인 속도로 딸에게 가다가는 것 같다.


"엄마 같은 사람들이 못 하게 막고 있다고는 생각 안해?"
"공부를 너무 많이 시킨 것 같아요. 교수도 되고 좋은 신랑감도 만나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p******y 2023.02.0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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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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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에 대한 이야기인데, 동성애자인 딸의 시점이 아니라 그의 엄마의 시점에서 보여지고 느껴지는 점이 신선했다. 글을 읽는 내내 '만약 나였다면,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 떠올려보기도했다. 그리고 글 속의 엄마와 딸의 모습이 실제 나와 엄마의 관계와도 비슷해보여서 더 와닿았던 점도 있었다. 딸은 본인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지 않는 엄마가 답답하고 미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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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에 대한 이야기인데, 동성애자인 딸의 시점이 아니라 그의 엄마의 시점에서 보여지고 느껴지는 점이 신선했다. 글을 읽는 내내 '만약 나였다면,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 떠올려보기도했다. 그리고 글 속의 엄마와 딸의 모습이 실제 나와 엄마의 관계와도 비슷해보여서 더 와닿았던 점도 있었다. 딸은 본인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지 않는 엄마가 답답하고 미울수도 있겠지만, 엄마의 시점으로 내내 진행되어서인지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 앞에 선 엄마가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엄마는 그저 평범하고 좋은 사람이고 싶었을 뿐인데.
w*******3 2020.06.10.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