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진하지 않은 파스텔톤의 숲 속을 세 남녀가 걷는다. 세 남녀는 풍기는 이미지가 몹시도 세련미가 느껴진다. 숲하고는 왠지 부조화스럽다 느껴질 법한데 너무나 자연스런 조화로 아름다운 숲 속이 더 돋보인다.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 숲 속이다. 그 숲 속의 집을 찾아주러 두 친구가 길을 나섰다. <이책은> 자음과모음 서평단 모집 이벤트에 당첨되었다. <저자는>
<책 내용 맛보기>
<책 읽은 소감> 삼대째 열쇠공인 와이. 느닷없는 열쇠공 기술만을 남겨놓은채 세상을 떠난 부모가 와이는 원망스러운 적도 있다. 한때는 소설을 써보려 노력하기도 했다. 코끼리를 제대로 묘사하지 못한채 케이에게 소설을 보여줬는데 기실 와이는 동물원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제이가 동물원에 가보고 싶다자 와이가 흔쾌히 동조하고 케이도 따라나선다. 커서 동물원에 간다는건 같이갈 사람이 있어야된다는 제이의 말에 와이도 어느새 공감한다. 케이가 그 옛날 소설은 형편없었다며 이야기를 꺼내나 기억에 없는데...또 다시 기억의 불씨를 헤부적거려주자 코끼리를 실제로 봤다면 달라졌을까를 속으로 생각한다. 케이는 말해준다. 네 소설엔 '삶의 비애'가 묻어났는데 그건 좋았다고. 그렇담 그 시절에 이미 삶의 비애가 묻어났을거라는 생각에 와이는 잠시 우울해진다. 어쩔 수 없는 삶의 비애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로 그랬겠구나 여긴다. 형들과 부모님에게서 인정을 받기를 원했던 케이. 부잣집 아들이건만 가식적이고 탐욕에 눈이 벌개진 형들처럼 적응하지 못한다. 미술에 소질이 있었건만 자신들 체제와는 다른 가족들틈에서 서로가 힘만 든다. 관심과 배려를 원했던 심성이 여린 케이는 조화로움을 바라고 바라다 결국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귀를 자르고 만다. 자신의 의지를 보다 강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했는데 가족들은 미치광이로 몰아 정신병원에 몇 달 입원을 시키고...케이는 남의 시선(와이와 그외 사람들)으로 보면 남부러울것 없지만 몇 차례의 자살 시도에도 살아남는다. 그 첫 번째도 두 번째도 공교롭게 와이가 발견하는 아이러니함이란. 물론 그것말고도 손목에 상처는 있었다. 깊은 우울은 케이를 늘 매너리즘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으로 만들다보니 생의 의욕도 집착도 없다. 아니 그의 곁에 사람이 없다. 가족들과는 일찌감치 떨어져 크나큰 집에 홀로 덩그라니 던져져 있다. 여자들은 그의 배경을 보고 왔다가는 갔다. 와이가 케이를 가장 미워하는 한 가지는 와이의 여친인 수정이가 케이에게 갔다는 사실. 자신과 다른 부자에게 갔다는데는 할 말이 없으나 케이가 돈의 위력으로 유혹했다고 믿는다. 여행중에 말해주는데 수정은 양성애자였고 케이와 유학을 떠나서 돈이 더 많은 흑인 여자에게로 갔다는 믿고 싶지 않은 사실. 무기력하고 심약한 예술가 기질을 가진 케이는 외로웠다. 징글징글하게도 자신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와이도 외롭기는 했으나 생활고에 닥쳐서 외로움에 빠질 새가 없었다. 제이도 외로웠기에 숲 속에서 사람들이 사는 도시로 여행을 왔다. 사람들속에서 오염되고(점점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있는 자신을 견딜 수 없어 하던 차 와이의 집에 오게 된 제이는 쓸쓸한 맛인 전기를 접한다. 와이의 전기에서 와이에게서 와이의 방에서 느껴지는 특별히 쓸쓸한 맛이 좋다고 한다. 전기에도 맛이 있다니...부잣집 전기는 구린내가 나고, 우울한 맛, 퀴퀴한 맛... 제이같은 미모에 다정한 배려심은 케이를 사랑에 빠지게 하고, 그걸 보는 와이는 매사 퉁퉁거렸는데 자신도 모르게 케이와 제이를 질투하는 모습에 난감하고...제이는 여전히 자신이 뽀뽀했다 감전사시킨 전력이 있어서 남자들이지만 그냥 사람으로 대할뿐. 이런 기묘한 관계의 여행이 시작된다. 제이가 돌아가고픈 숲 속의 집을 찾는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돈많은 친구가 있음에 여행은 부족함이 없다. 제이의 설명을 듣고 그린 그림과 같은 풍경은 참으로 많았다. 둘은 얼른 찾아주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셋이 다니는 여행과정에서 조금씩 자신들의 상처를 내보이고...그렇게 위안도 하며 티격태격하기도 하고...부자와 가난한 사람도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음도 한순간 터득한다. 배부른 돼지보다 고민하는 소크라테스가 났다 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자신이 가보지 않은 길이라 동경한다거나 비틀린 시선으로 볼 수 있음을 와이는 케이를 보며 생각한다. 부자라고 다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처음으로 접한 작가이다. 전혀 일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인지라 비현실적이다라고 치부하면서 읽어나가기엔 왠지 매도하는 느낌을 갖게 했다. 묘하게 끌리는 듯한 글 풀어냄이 능히 비현실적인 사안인데도 마치 실제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어찌 사람이 전기를 먹어야살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이 책을 읽고는 어느날 그런 여인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말도 안되는 일을 마치 있을 것 같은 생각으로 돌릴 수 있는 감칠 맛나는 글 풀어냄. 누구나의 입에 다 맞는 음식이건만 뭔지 2% 독특한 그녀만의 맛내기가 매력이다. 빨아들이는 흡인력이 대단했다. 그건 전혀 모르는 맛이 아니기에 거부감도 들지 않으면서 서로의 상처를 자연스레 내보이고 다독여주는 치유가 있었다. 세상의 인간은 부자와 가난한 자라는 이분법으로만 매사 가늠했던 와이에게 텅 빈 상자안에서도 우주를 꺼낼 수 있음은 '만족'이라는 마음이 있을때 라는 큰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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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경주 여행에서 돌아오는 KTX에서 묘한 풍경을 하나 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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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예상치도 못할만큼 많은 전기 요금 고지서를 받은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녀가 다녀간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당신의 집 전기 맛을 음미했다. 당신의 집에는 외로움과 비애가 섞였기 때문에 그녀가 전기를 달콤하게 먹었다는 것이다.
제이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의 골격에 튼튼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그래도 편안히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소설이다. 휴가지에서 읽기 적합한 책이 아닌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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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진은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몇몇 문학상을 수상한 저력있는 작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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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등단 작가인 장은진. 그녀의 두 번 째 장편소설이 새로 나왔다. 숲길을 향한 두 남자와 여자의 사이가 왠지 즐거워 보이지 않는 여정을 말해주는 듯 거리감이 느껴지는 표지다. 같이 걷고 있지만 쓸쓸함이 묻어나 보이는 것은 왜 일까?
‘집’에 의미는 무엇일까? 혈연으로 맺어져 자신을 누구보다도 이해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것이 바로 마음의 고향이고 ‘집’일 것이다. 비교적 가족 간 소통이 잘 되어야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특히, 도심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집은 같이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그 소통이 삐걱거리고 있다. 아마도 작가는 그런 소통의 부재와 그 속에 스며드는 외로움, 쓸쓸함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 책에는 전기와 물만 먹고살아야 하는 여자 제이. 아버지의 작고 뒤 열쇠공이 된 가난한 와이, 그리고 그의 친구이자 경쟁자인 부자친구지만 우울증을 갖고 있는 케이. 이렇게 세 주인공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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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이 등장하면서 글이 시작된다. 그 여인은 자신의 생일을 어둠과 밝음이 교차하는 짧은 시간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생일이 하루 중에서 순간의 시간, 시나브로 와버리는 시간이라고 한다. 그는 나에게 그 생일의 시간에 특별한 것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가고 나의 상상과는 다르게 그녀는 밝음이 오는 찰나의 시간, 전기를 먹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전기를 입술에 가져가 그 맛을 음미하는 자로 그려진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초반 읽기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케이의 귀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사귀는 여자들한테 냉동실에 보관해 둔 귀를 한 번씩 보여 줬어. 다들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데 아주 가관이었어. 마치 온전한 귀 때문에 날 사랑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돈만 많으면 귀가 두 짝 다 없어도 날 사랑할 것 같던 여자애들이 시퍼렇게 질리기 시작하는데........ 돈 때문에 날 사랑했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데 말이야. 나중에는 그게 참 쓸만 하더라고. 주인공의 친구로 등장하는 인물인 케이, 그는 보편을 뛰어넘는 인물로 그려진다. 물질적으로 풍요하면서도 자학하고, 자살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인다. 때에 따라 나타나는 우울증이 그를 매우 비현실적인 인물로 만들어 간다. 한 쪽 귀를 잘라 그곳을 보물처럼 상자에 넣어 가지고 다닌다. 어디를 가더라도 신체의 일부분이라고 여기면서 자신이 있는 곳에는 항상 그 귀가 함께 있도록 한다. 냉동시킨 귀다. 그 귀를 다른 사람을 보여주는 것을 좋아한다. 자신이 사귀었던 여인들은 그 귀를 보면 놀라 모두 달아난다고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여인들에 때어낼 때 그 귀는 너무 쉽게 떨어져 나가게 만들어 주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고 한다. 전기를 주식으로 하는 여인, 도저히 현실적인 사람이라 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여인은 어느 실제의 여인들보다 아름다운 용모로 그려진다. 남자들이면 한 번 손이라도 잡아보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하는 여인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 여인을 탐하는 남자들은 감전되어 이상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아무도 여인을 건드릴 수가 없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나는 물질적으로 부유한 케이에게 그녀를 넘기고자 그녀를 데리고 케이의 집을 찾게 된다. 그런데 찾았을 때 케이가 자살을 시도하고 있다. 우울증에 빠진 케이는 스스로의 몸을 학대하면서 생명의 위협에 놓여 있는 상태였다. 나는 그런 케이를 구한다. 그런 일은 전에도 몇 번이나 있었던 일로 얘기된다. 그러면서 그때마다 나의 여인-아오이 유우, 일본 배우인데 생김새를 가지고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들을 취하면서 그는 살아났다고 얘기된다. 그런데 그 나의 여인들을 케이는 하나도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갈등이 가득한 속에 전기를 먹는 여인을 데리고 그를 찾은 것이다. 케이는 그녀에 대해 상당한 매력을 느낀다. 그러나 그녀가 가진 특성에 의해 접근할 수 없는 여인으로 스스로를 다잡는다. 그러면서도 케이는 그녀에 대한 관심을 끄지 않는다. 와중에 여인은 나의 집도 케이의 집도 모두 싫어하게 되게 자신의 집에 가겠다고 한다. 그 자신의 집을 그림으로 제시한다. 케이와 여인, 그리고 나는 여인의 집을 찾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다. 이 글의 많은 이야기는 그 여행의 과정 속에서 듣게 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여인의 집은 그녀의 아버지가 들려줬던 기억에 의해 다리가 있고, 숲이 있는 곳이라 했다. 그들은 그것을 그림으로 만들어 그것을 지도 삼아 그녀의 집을 찾아 나선 것이다. 바다가 있고, 숲이 있는 그러면서 구름다리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케이와 나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케이가 자신의 여인들을 차례로 강탈해간 것처럼 느낀 상황에 대한 오해도 풀고, 케이가 정신적인 혼란을 겪고 있는 이유도 알게 된다. 그러면서 그들의 여행은 지속된다. 한 번은 케이가 운전 실수를 해서 차 사고를 내게 된다. 그런 후 차는 내가 몰게 되고, 여인에게서 어떻게 숲에서 살았는지에 관해 듣게 된다. 그녀는 책이 사교고 종교란 이야기로 책의 중요성을 얘기한다. 그녀에게는 책을 통해 도시에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얻었고, 책을 통해 모든 능력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숲에서의 삶에서 너무 바빠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는데, 그 바쁨이 책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인간이 앓고 있는 병이란 어쩌면 자연을 거스르고 위배한 대가로 생겨난 재앙이거나 재난일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그 재앙과 재난은 알약처럼 끊임없이 생겨날 것이고, 결국 오만으로 똘똘 뭉친 인간이란 종을 파멸로 이끌지도 모른다. 신에게 도전하거나 신이 되려고 하는 자에게 기다리고 있는 건 오로지 파멸뿐이니까. 그녀의 말을 듣고 있자니 문득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자연을 성스럽게 대하지 못하는 인간들의 삶을 비극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마 작가가 그녀를 통해서 우리에게 들려줄 이야기 하나가 아닌가 생각했다.
그들은 길을 찾아가는 중 여인의 요구로 동물원을 찾는다. 내비게이션에 동물원이라고 치고 차를 몰아 찾아간 동물원은 한가하여 쉽게 구경할 수 있었다. 사파리를 구경하면서 호랑이에 관한 이야기도 나눈다. 여인이 아버지와 함께 만난 호랑이에 관한 이야기다. 호랑이는 뒤로 돌아서 물러나면 죽는다고 한다. 호랑이를 따라가면 호랑이가 가는 길을 안내한다고 한다.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이야기다. 동물원 이야기를 왜 했는지 의문이다. 이렇게 여행 중에 만나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잡다하게 제시해 놓고, 그것들이 가지는 의미를 일깨워 보려는 셰에라자드의 이야기 구성이 아닌가 생각도 해보았다. 이야기들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흔들리며 가는 차 안에서 책을 읽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여인의 집을 찾아야 하는데, 중간에서 다른 이야기들로 자꾸 빠지니 집중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이 책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구성인 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여행은 계속된다. 그들은 심신을 추스르고자 찜질방으로 간다. 그곳에서 여인이 사랑했던 남자와 있었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소설 속의 작가들이 그리는 사랑의 행위가 어떤 것인지 너무 궁금했던 여인이 그 남자를 붙들고 키스를 했다고. 그리고 그 남자는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그런데 나는 여인이 키스를 해서 죽은 남자의 경우는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인에 대한 육체적인 사랑을 하고 싶은 마음이 아주 자신을 힘들게 함을 느낀다. 그는 비둘기를 잡기로 한다. 비둘기를 여인의 몸에 던져 보려는 의도에서다. 그런데 비둘기를 잡아 그녀에게 던졌을 때, 비둘기는 그녀의 몸을 스치듯 지나쳐 하늘로 날아 가버려 그녀의 진실도 구하고 자신의 목숨도 구하게 된다. 참으로 황당한 결말이 이루어진 것이다. 숲에서는 교환이 필요 없지만 도시에서는 교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를 가졌으면 비슷한 하나를 상대방한테 주어야 한다. 도시에는 공짜가 없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그녀는 전기수나 강담사 같은 모습이었다.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책을 읽어주거나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이야기꾼. 어쩌면 그녀는 셰에라자드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여인에게서 느낀 것을 적고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여인은 말한다. 나는 이야기하는 것보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을 많이 했다고. 도시에는 이야기에 목마른 사람들이 많다고. 이야기를 통해서 공동체가 형성되어 나갈 수 있는 곳이 도시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도시의 사람들이 나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기피하게 되었어. 그것은 나를 위해서 그들의 욕망을 더욱 값싸게 충족시키는 것을 원했기 때문이야. 여인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인간의 욕망의 끝없음을 이야기했다. 그들은 결국 여인이 요구하는 숲을 찾았다. 그리고 그 숲에 내려 여인을 다리 너머로 떠나가게 했다. 그러면서 숲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자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되뇌게 되었다. 그들, 제이와 내가 집으로 돌아오고 한결같은 일상이 지속되어나갈 때, 나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런 것인지 혼란스러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기타와 니체의 책을 항상 읽고 있었던 여인을 떠올리며 다시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그녀의 이야기를 한없이 들어주리라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본다. 조금은 판타지적인 요소가 있다. 판타지와 여행을 함께 엮으면서 사랑의 이야기까지 하고 있는 글이다.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도시와 숲, 인간의 욕심, 육욕적인 사랑, 자연의 소중함 등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비현실적인 일들을 현실처럼 엮어나가는 솜씨가 이야기를 잘 따라가게 만든다. 재미있게 읽었다. 자신을 절제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며, 인간관계를 이루어가는 설정도 좋았다. 전기라는 것이 그 기능을 하게 한 듯하다. 새로운 사고, 창의적인 관계 등은 우리가 추구해 나가는 이야깃거리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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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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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때였나, '소설'이라는 것에 대해 수업시간에 한줄로 정의내렸던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실제로 없는 일을 있음직하게 쓴 글'. 그 한 문장이 너무도 기억에 남아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 나는 문득, 그 기초적인 소설의 정의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이 글은 너무나도 그 정의와 부합하는 글이지 않을까 싶다. 이 이야기 속의 '그녀(제이)'도, '나(와이)'와 '그녀석(케이)'도 그다지 흔한 인물은 아닌데도 이건 마치 내 소소한 일상을 글로 옮긴 것 같다. 내가 겪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위화감이 없다는 뜻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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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어느날 전기를 먹고 사는 그녀가 나타나 전기세가 엄청 올라간 것을 알게된 와이. 부자지만 가족에 대한 상처로, 본인의 꿈에 대한 상처를 한가득 안고 심각한 우울증에 걸린 케이와
거짓말일줄 알았던 그녀의 집을 찾게되고, 누구나 결국은 홀로서기가 되버리는 현실과 상황. 개인주의, 이기주의, 혼자만의 세상에서 조금은 소통하는 방법을 비춰주려 했던 의도를 언젠가 우리집에 전기세가 엄청 늘어나면 찾아봐야겠다 나의 고립되고 횡한 마음을 치유해주러 그녀가 왔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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