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53)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62%
  • 리뷰 총점8 32%
  • 리뷰 총점6 4%
  • 리뷰 총점4 2%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9.0
  • 30대 9.0
  • 40대 9.0
  • 50대 9.0

포토/동영상 (4)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75] 바다는 잘 있습니다..
"[75] 바다는 잘 있습니다.." 내용보기
[ 사람의 자리 ] 깊은 밤에 집으로 가는 길에 집 앞에 한 사내가 굵은 나뭇가지 하나를 두손으로 붙들고 서 있다   할 말을 전하려는 것인지 의지하려는 것인지 매달리는 사실은 무겁다 사내가 나의 집 한 층 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서도 사내가 몇 번 더 나무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았다   손을 놓치지 않으려는지 나뭇가지는 손이 닿기 좋게 키를 내려놓기
"[75] 바다는 잘 있습니다.." 내용보기

[ 사람의 자리 ]


깊은 밤에

집으로 가는 길에 집 앞에

한 사내가 굵은 나뭇가지 하나를

두손으로 붙들고 서 있다

 

할 말을 전하려는 것인지

의지하려는 것인지

매달리는 사실은 무겁다


사내가 나의 집 한 층 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서도

사내가 몇 번 더 나무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았다


 

손을 놓치지 않으려는지

나뭇가지는 손이 닿기 좋게

키를 내려놓기까지 했다

 

어느 밤에

특히 오늘 같은 밤에는

그 가지가 허공에 팔을 뻗어

말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을

 

새를 날려 보냈는지

아이를 잃어버렸는지 모르겠는 위층 사내도

나처럼 내어다보고 있을 것이다

 

그 가지 손 끝에서 줄을 그어 나에게 잇고

다시 나로부터 줄을 그어 위층의 사내에게 잇다가

더 이을 곳을 찾고 찾아서 별자자리가 되는 밤

 

척척 선을 이을 때마다

척척 허공에 자국이 남으면서

서로 놓치지 말고 자자는 듯

사람 자리하나가 생기는 밤이다

 

[ 새 ]


 

자면서 누구나

하루에 몇 번을 뒤척입니다

 

내가 뒤척일 적마다

누군가는 내 뒤척이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지구의 저 가장 안쪽 중심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자면서 여러 번 뒤척일 일이 생겼습니다

자다가도 가슴에서 자꾸 새가 푸드덕거리는 바람에

가슴팍이 벌어지는 것 같아

벌떡 일어나 앉아야 죽지를 않겠습니다

 

어제는 오늘은 맨밥을 먹는데 입이 썼습니다

 

흐르는 것에 이유 없고

스미는 것에 어쩔 수 없어서

이렇게 나는 생겨먹었습니다



 

신(神)에게도 신이 있다면 그 신에게 묻겠습니다

 

지구도 새로 하여금 뒤척입니까

 

자다가도 몇 번을

당신을 생각해야

이 마음에서 놓여날 수 있습니까

 

 

[ 사는 게 미안하고 잘못뿐인 것 같아서 ]


 

거미가 실을 잘못 사용하더라도

 

계절이 한참 지나간 후에도

꽃대가 꽃을 내려놓지 못할지라도

그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리

 

그조차도 세상의 많은 조합일지니

나의 잘못이 아니리

 

찬바람이 여름의 옆구리를 슬쩍 건드리더라도

그래서 감기로 잠시 아프더라도

 

정녕 그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리

그 사람이 당신을 좋아하는 것도

당신이 그에게 나머지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는 것까지도


 

생각을 만나지 않고 시장에 간 것

나의 잘못은 아니리

 

오후에 붙들려서 길을 따라 나선 것은

조금 맨발이 되자는 것이었으니

 

마음이 구덩이로 빨려 들어가 휘감기는 것도

그리곤 구덩이에서 꺼내지는 것도

찬바람이 시키는 계절의 일들일 테니

 

애써 모른 체한들

이 모든 것 나의 잘못은 아니리

 

                                                                                                                                                                                                                                                                                                                                                                                                        

[ 새벽의 단편 ]

 

어느 긴 밤

좋아하는 편지지를 앞에 놓고 앉았던

그때는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좋은 시절이었다는 말은

오래된 시간을 부를 수도

다시금 사용할 수도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누구도 편지를 부치지 않는 동안

건물은 헐리고 꽃밭이 줄고

습관은 습관이 되고

 

아무도 읽어주지 않거나

어딘가에서 분실되지 말지도 모를 편지를 쓰는

그 새벽에 새들이 울면

두 눈 가득 침이 고이던 시절

 

감히 만나자는 말을 적어넣고 풀칠을 했습니다

많이 미워한다는 말을 읽었을 때는 말을 잃었습니다

편지지라는 말이 사라져버린 세계의 빈 봉투처럼

돌아볼 단편의 증거가 없다는 것은

 

접지 않았으나

펼쳐야 할 것도

봉하지 않았으니 열어야 할 세계가 없다는 말입니다

 

[ 노년 ]


 

어느 날 모든 비밀번호는 사라지고

모든 것들은 잠긴다

 

풀에 스치고 넘어지고

얼굴들에 밀리고 무너지고

 

감촉이 파이고

문고리가 떨어지기도 했다

 

그는 오래 빈집을 전전하였으나

빈 창고 하나가 정해지면 무엇을 넣을지도

결심하지 못했다



 

돌아가자는 말은 흐릿하고

가야 할 길도 흐릿하다

 

오래 교실에 다닌 적이 있었다

파도가 느꼈으나 그가 허락할 만한 세기는 아니였다

 

서점 이웃으로도 산 적이 있었다

경우에 따라 두텁거나 가벼운 친밀감이 스칠 이었다

 

오래 붙들고 산 풍경 같은 것은 남아 있었다


 

중생대의 뼈들이 들여다보이는

박물관 창문 앞을 지나는 길

늘 지나는 길인데

보내고 보내고 또 보냈을 법한 냄새가 따라붙었다

 

'여기'라는 말에 흘렸으며

'그곳'이라는 말을 참으며 살았으니

 

여기를 떠나 이제 그곳에 도달한 사람

 

[ 여행 ]


 

어느 골목 창틀에서 본 대못 하나

집에 가져다 물잔에 기울여 세워놓았더니

뚝뚝 녹가루를 흘리고 있다

 

식당에서 먹다 버린 키조개 껍데기

뭐라도 담겠다 싶어 집에 가져왔는데

깊은 밤 쩌억쩌억 비명 소리가 들리기에

두리번거리다 안다

물 밖에 오래 나와 있어 조개의 껍데기가 갈라지고 있는 것을


 

나는 털면 녹 한줌 나올는지

공기로 나를 바싹 말린 뒤 내 몸을 쪼개면 쪼개지거나 할는지

 

녹가루를 받거나

갈라지는 소리를 이해하는 며칠을 겨우 보냈을 뿐인데

 

집에 다녀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이토록 마음이 어질어질한 것은 나로 인한 것인지

 

기어이는 숙제 같은 것이 있어 산다

아직 끝나지 않은 나는 뒤척이면서 존재한다


 

옮겨놓은 것으로부터

이토록 나를 옮겨 놓을 수 있다니

사는 것은 얼마나 남는 장사인가

 

 

[ 다시 태어나거든 ]

 

한 무리는 행복을 숭배하고

한 무리는 그렇지 않은 쪽으로 방향을 잡고 산다


 

이쪽 줄의 사람들은 아예 감정이 없으며

저쪽 줄의 사람들은 감정을 숨긴다

 

이 엄청난 사람들의 파도에 휘말릴 준비가 되었다는 듯

산소통을 메고 서 있는 한 청춘

 

걸음을 내딛는 순간부터 회오리바람을 만날 것이니

피할 수 없을지라도

이내 끝나고 말지라도

 

이번 생에는 한 덩어리의 완전한 혼자가 되어라

 

 

...  소/라/향/기  ...

s******8 2021.07.11. 신고 공감 21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바다는 잘 있습니다』당신에게, 안부를 묻다.
"『바다는 잘 있습니다』당신에게, 안부를 묻다." 내용보기
이병률 시인의 책은 나올 때마다 구매하게 된다. 마치 습관처럼. 구입하지 않으면 안될 것처럼. 그 책이 에세이건, 시집이건. 물론 시집은 당연히 구매하려고 한다. 에세이보다 시집이 더 좋으므로. 시를 좀더 읽자는 마음가짐으로.  이번 『바다는 잘 있습니다』는 다른 때보다 더 감성적인 시집이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찾아올 것만 같은. 지나간 사랑에 대한 아련
"『바다는 잘 있습니다』당신에게, 안부를 묻다." 내용보기

이병률 시인의 책은 나올 때마다 구매하게 된다. 마치 습관처럼. 구입하지 않으면 안될 것처럼. 그 책이 에세이건, 시집이건. 물론 시집은 당연히 구매하려고 한다. 에세이보다 시집이 더 좋으므로. 시를 좀더 읽자는 마음가짐으로.

 

이번 『바다는 잘 있습니다』는 다른 때보다 더 감성적인 시집이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찾아올 것만 같은. 지나간 사랑에 대한 아련한 감정을 갖게 했다. 삶이, 사랑이, 몇 편의 시로 다 대체될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시를 읽으며 우리의 마음을 다독인다.

 

 

바람이 커튼을 밀어서 커튼이 집 안쪽을 차지할 때나

많은 비를 맞은 버드나무가 늘어져

길 한가운데로 쏠리듯 들어와 있을 때

사람이 있다고 느끼면서 잠시 놀라는 건

거기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중략)

 

잠시 자리를 비운 탁자 위에 이파리 하나가 떨어져 있거나

멀쩡한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져서 하늘을 올려다볼 때도

누가 왔나 하고 느끼는 건

누군가가 왔기 때문이다

 

팔목에 실을 묶는 사람들은

팔목에 중요한 운명의 길목이

지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겠다

 

인생이라는 잎들을 매단 큰 나무 한 그루를

오래 바라보는 이 저녁

내 손에 굵은 실을 매어줄 사람 하나

저 나무 뒤에서 오고 있다

 

실어 끊어질 듯 손목이 끊어질 듯

단단히 실을 묶어줄 사람 위해

이 저녁을 퍼다가 밥을 차려야 한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힘으로는 닫지 못하는 문이 하나씩 있는데

마침내 그 문을 닫아줄 사람이 오고 있는 것이다  (44~45페이지, 「사람이 온다」 중에서)

 

홀로 있다는 건 외로운 일이다. 그래서일까. 시에서 쓸쓸함이 묻어난다. 오래전의 기억들을 더듬는 일이 많아지며 그 시간을 그리워도 한다. 시인이기에 그 마음들이 한 편, 한 편, 시로 나타낼 수 있다. 우리는 시에서 그의 마음을 짐작한다. 시를 읽는다고 해서 시인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감춰둔 마음이 압축된 단어에서 슬며시 나타날 뿐이다. 그럼에도 시인의 마음이 전해져 온다. 아주 미세한 틈을 남기지만, 그 틈새로 전해지는 마음때문에 우리는 시인의 시를 읽는다. 음미한다.

 

 

 

짧은 여행길에 들고 간 시집인데, 시가 너무 좋아 금세 다 읽어버렸다. 포스트잇을 몇개 붙이지 않았는데도 벌써, 이 시집 속의 시들이 좋다는 걸 알아버렸다. 시간이 지난 후 다시 꺼내 읽었다. 그때처럼 비슷한 감정이 생겼다. 마치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것처럼 시가 내게 다가왔다.

 

과연 우리는 점 하나로 온 것이 맞는지

그러면 산 것인지 버틴 것인지

그 의문마저 쓸쓸해 문득 멈추는 일이 많았으니

서로를 부둥켜안고 지내지 않으면 안 되게 살자

 

닳고 해져서 더 이상 걸을 수 없다고

발이 발을 뒤틀어버리는 순간까지

우리는 그것으로 살자

 

밤새도록 몸에서 운이 다 빠져나가도록

자는 일에 육체를 잠시 맡겨두더라도

우리 매일 꽃이 필 때처럼 호된 아침을 맞자 (104~105페이지, 「이 넉넉한 쓸쓸함」 중에서)

 

혼자 있는 시간, 쓸쓸함을 느낄 때 비로소 우리는 글을 쓰는지도 모른다. 얼마간 음악을 듣지 않았더니 책 읽을 때 듣던 음악이 갑자기 낯설었다. 귀를 자극했다고 할까. 조용조용한 클래식과 뉴에이지 연주곡을 들었음에도. 가만가만히 내뱉는 디제이의 목소리가 무척 매력적이라도 느꼈으면서도 습관이란 게 이렇게 무서운가. 갑자기 음악을 끄고 책을 읽었더니 책 속으로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이처럼 집중해서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아무 소리도 없는 고요함이 좋은가 보다.

 

이병률의 시는 마치 안부를 묻듯 했다. 나도 잘 있노라고 대답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달까. 가만가만히 등을 두드려주는 듯한 시. 그의 시에서 느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7.10.19. 신고 공감 10 댓글 5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리뷰] 이병률의 '바다는 잘 있습니다'
"[리뷰] 이병률의 '바다는 잘 있습니다'" 내용보기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의 표제는 수록된 시의 제목이 아니라(대개 시집의 표제는 수록된 시 중 한편의 제목으로 하는데), 3부에 실린 '이별의 원심력'이라는 시의 한 행에서 따왔다.     우리는 서로의 감정에 대해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당신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거짓이   세상을 덮어버릴까 두려워서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파먹다가 안쓰럽게 부스러
"[리뷰] 이병률의 '바다는 잘 있습니다'" 내용보기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의 표제는 수록된 시의 제목이 아니라(대개 시집의 표제는 수록된 시 중 한편의 제목으로 하는데), 3부에 실린 '이별의 원심력'이라는 시의 한 행에서 따왔다.

 

  우리는 서로의 감정에 대해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당신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거짓이

  세상을 덮어버릴까 두려워서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파먹다가 안쓰럽게 부스러기가 되었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나라에서

  당신도 압축된 거짓을 사용했습니다

  서로 오래 물들어 있었던 탓이겠지요

 

  우리가 마주 잡았던 손도 결국은 내가 내 손을 잡은 것입니다

 

  우리가 만날 수 없는 것,

  그것이 엄청난 일이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

  인생의 절반이라는 시간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놀랄지도 모릅니다

 

  나는 아이슬란드에 도착하려다 길을 잃었습니다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냄새를 따라 내려서 그렇습니다

 

  광채는 사그라들고 공기는 줄어들고 나는 마비되었습니다

  이별의 원심력의 영향권에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제 사라지기 위해 아이슬란드 폭포에 와 있습니다

 

  바깥의 일은 어쩔 수 없어도 내부는 그럴 수 없어서

  나는 계속해서 감당하기로 합니다

  나는 계속해서 아이슬란드에 남습니다

 

  눈보라가 칩니다

  바다는 잘 있습니다

  우리는 혼자만이 혼자만큼의 서로를 잊게 될 것입니다  - 이별의 원심력 전문

 

  이 시에서 '바다는 잘 있습니다'라는 말을 표면적 진술 그대로 읽어야 할까? 이 말은 아무래도 거짓말 같다. 눈보라가 치는데 어떻게 바다가 잘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시의 화자는 이별한 당신에게, 이제는 화자의 감정에 대해 더 이상의 관심을 두지 않는 당신에게, 자신도 또한 당신을 잊게 될 거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잊었다'와 '잊게 될 것'이라는 말은 분명 다르다. '잊게 될 것'이라는 말은 아직은 잊지 못했다는 것이고, 어쩌면 영영 잊지 못한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 시의 화자는 이별의 원심력의 영향권 안에 있는 거지, 아직 마음으로부터 당신을 완전히 떠난(잊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연의 '눈보라가 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바깥의 일'이고, '바다가 잘 있습니다'라는 말은 '계속해서 감당하기로 한 내부(마음)의 일'로 등치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곧, 화자는 당신을 '잊게 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당신과 원거리(아이슬란드)에 있으면서 당신을 잊지 않고 이별의 슬픔을 견딜 거라는 말을 당신에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별로 인한 안타까움과 슬픔을 누르고 '잘 있습니다'라고 말할 때 그 속은 어떠할까?!

  이 시를 이렇게 읽을 수 있다면, 왜 시집의 표제를 '바다는 잘 있습니다'로 정했을까, 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표제는 단순한 제목이 아니라, 시집의 내용을 표상하는 얼굴이기 때문이다.

  우선 시집의 구성을 살펴보자.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는 3부, 각 부 20편씩, 모두 6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60편의 시 중, 여러 시에서 화자는 사랑을 말하고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화자가 사랑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 있는 건 분명하다.

  화자는 그러나, 사랑의 마음까지 내려놓은 건 아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사랑에 대해 말하거나, 말하려고 애쓰고 있다.

  화자가 하거나 하려고 애쓰는 그 말이 바로 '바다는 잘 있습니다'가 아닐까? 그래서 이 시집의 제목을 '바다는 잘 있습니다'로 정한 게 아닐까?

 

  이 시집의 화자(어쩌면 시인)가 부단히 말을 하고 싶어하는 모습은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한 편만 살펴보자.

 

  비밀 하나를 이야기해야겠다

 

  누군가 올 거라는 가정하에

  가끔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간다는 비밀 하나를

 

  어디서 누가 올 것인지

  그것이 몇 시인지

 

  남의 단추를 내 셔츠에

  채울 수 없는 것처럼 모른다

 

  녹는 시간을 붙잡자며

  그때마다 억세게 터미널엘 갔다

 

  한 말의 소금을

  한 잔의 물로 녹이자는 사람처럼

  출발하고 도착하는 시간들을 기다렸다

 

  떠난다는 말도 도착한다는 말도

  결국은 헛된 말일 것이므로

  터미널에 가서 봄처럼 아팠다

 

  나직하게 비밀 하나를 이야기하자면

  가끔 내가 사라지는 것은

  차갑게 없어지기 위해서다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그동안의 오해가 걷힐 것 같아

  최선을 다해 당신에게 말하건대

  내가 가끔씩 사라져서

  한사코 터미널에 가는 것은

  오지 않을 사람이 저녁을 앞세워 올 것 같아서다  - '이구아수 폭포 가는 방법' 전문

 

  비밀은 말하는 순간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이 시의 화자는 비밀이라며 묻지도 않는 말을 한다(비밀이라는 시어가 무려 세 번이나 나온다.). 비밀의 내용은 '누군가 올 거라는 가정하에 터미널에 가서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화자가 기다리는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 곧 익명의 사람일까? 그렇다면 '오지 않을 사람'이란 누구일까? 터미널이란 사람이 오고 가는 곳이다. 터미널이 폐쇄된 상황이 아니라면 한 명도 오지 않고 한 명도 가지 않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오고 갈 것이다. 그런데도 화자는 기다리는 사람을 '오지 않을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기다리는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정말로 익명의 존재가 아니라 특정인, 곧 사랑하는 사람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올 거라는 기대감이 적기 때문에 '오지 않을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화자는 가끔씩, 다시 말하면 여러 차례 터미널에 갔지만 아직도 기다리는 그 사람을 만나지 못했으니까. '오지 않은'이 아니라 '오지 않을'로 표현한 것 또한 화자의 낮은 기대감을 알게 해준다.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의 시의 화자들은 이렇듯 사랑을 말하고 싶어하지만, 사랑의 대상과 근거리에 있지 않다. 지금 있는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곧 원거리에 있다. 머물러 있지 않고 찾아간다 하더라도 고작 중간지점이다. '이구아수 폭포에 가는 방법'처럼 터미널에 가거나, 다음 시(수색역)처럼 역에 가거나 하는 정도이다. 그곳에도 가기는 하지만 끝내 직접 고백은 하지 못한다.

 

  복잡한 곳일수록

 들어갈 때 구조를 외우면서

 나올 때를 염두에 둡니다

 재채기를 할 때 얼른 양손이 나서는 것처럼

 

 모든 순서가 되었습니다, 당신

 

 기차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당신이 산다고 했습니다

 그 역의 막차 시간 앞에서 서성거리다

 

 추운 그 역 광장에

 눈사람 만들어 놓고 왔습니다. - '수색역' 전문

 

  위 시에서 화자는 당신과 만나기로 약속하고 수색역으로 온 것도 아니고, 화자는 당신이 그리워서 혼자 수색역에 와 당신 생각을 하며 (한참을) 머물다가 (떠나지 않을 수 없는) 막차 시간이 되어 쓸쓸히 기차에 몸을 싣고 떠나간다.

  사실, 화자가 적극적이라면, 굳이 터미널에 갈 필요 없이, 역을 찾아갈 필요 없이, 핸드폰을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이 시집의 화자의 방식이 아니다. 화자는 자신의 사랑을 직접적으로 털어놓지 못한다. '눈사람'을 만들어놓고 오는 것이 이 시의 화자(곧 시인)의 사랑법이다. 시인 소개를 보니까 이번 시집 이전에 낸 시집의 제목이 '눈사람 여관'(2013, 문학과지성사)이던데(나는 읽지 못했다.), '눈사람'이란 시어는 이전 시집과 연계해서 살펴보는 것이 이해의 폭을 넓히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에 실린 시들은 대부분 사랑을 말하고 있는 시다(어쩌면 대부분 시인들의 시가 사랑을 변주한 것이 아닐까?).

  '바다는 잘 있습니다'라는 말이 정말로 표면적 진술 그대로 읽히지는 않지만, 그러기에 오히려 더 사랑의 간절함이 느껴지는 게 아닐까, 이병률의 이번 시집에 실린 시들이.

  뒷표지에 실린 시(?)를 인용하는 것으로 리뷰를 마쳐야겠다.

 

  우리는 안 괜찮으면서 괜찮다고 말합니다. 당신은 혼자 핑계로 혼자만이 늘릴 수 있는 힘에 대해 모른 척합니다. 누군든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겠지만 당신만은, 방에서 나와 더 절망하기를 바랍니다.

 

  오래 전하지 못한 안부를 전합니다.

  바다는 잘 있습니다.

t*******1 2021.07.26. 신고 공감 8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있 지 ㅡ 이병률 시
"있 지 ㅡ 이병률 시" 내용보기
있   지  ㅡ  있지 가만히 서랍에서 꺼내는 말벗어 던진 옷 같은 말 있지 문득 던지는 말던지는 곳이 어디인지 모르므로 도착하지도 않는 말 있지 더없이 있자 하고 싶은데말할 수 없음이 그렇고 그런 말 있지 전기 설비를 마친 새 집에 등을 켤 때있지 , 라는 소리와 함께 켜지는 것 같아소스라치게도 되는하지만 들어도 들어도 저울에 올릴 수 없는 말 있지 그러다가도 그러다가도 혼자
"있 지 ㅡ 이병률 시" 내용보기

있   지

 

 

 

있지

 

가만히 서랍에서 꺼내는 말

벗어 던진 옷 같은 말

 

있지

 

문득 던지는 말

던지는 곳이 어디인지 모르므로 도착하지도 않는 말

 

있지

 

더없이 있자 하고 싶은데

말할 수 없음이 그렇고 그런 말

 

있지

 

전기 설비를 마친 새 집에 등을 켤 때

있지 , 라는 소리와 함께 켜지는 것 같아

소스라치게도 되는

하지만 들어도 들어도 저울에 올릴 수 없는 말

 

있지

 

그러다가도 그러다가도 혼자가 아닌 말

침묵 사이에 있다가도

덩그마니 혼자이기만 한 말

 

있지

 

수상하고 수상하도록

무엇이 있다는 것인지

무엇으로 청천벽력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것인지

포개고 자꾸 포개지는

순박한 그 말에는 참 모두가 있지

 

 

 

ㅡ이병률 시집 [ 바다는 잘 있습니다 ] 중에서ㅡ

( 24 , 25  쪽 )

 

 

 

치열하게 더운 여름엔 해를 가리고 , 땀을 닦느라

중력을 느껴도 거기 빠질 새가 없었다 .

월 화 수 목 금 , 매일 오르는 작은 둔덕을

그리 가파르지도 않은 언덕인대도 오르며 걸으며

숨을 내뱉으면서 , 속엣말은 늘 , 내 언제고 여기서

한번 엎어지고 말지 , 그랬다 .

꼭 그럴 것 같았다 . 평평한 아래에서부터 맹렬하게

마음을 다잡아봐도 오르다보면 , 아니 시작 몇 걸음에

무릎이 푹푹 꿇릴 듯한 절망이 신발 바닥을 잡아 끌어서

너무 더울 땐 , 일도 많고 서로 배우기 바빠서

마음이 허물어질 틈도 없었다 .

오늘을 그저 잘 보냈다는 기특함에 대견함에 취해서

잘 가라고 잘 했다고 인사하기 바빴다 .

그래도 , 사람들 일이라 한번은 꼭 마찰도 있겠거니

그래도 , 사는 일인데 잘 풀어나가면 되겠거니

그 중에 내가 마음이 젤 여물지 못할 줄은 나도 몰랐다 .

 

죽고 사는 문제로  생계를 들이대며 어이없는 조롱에

협박에 , 그 치는 살아 온 생이 그래서 그렇게 밖에

소통할 줄 모르는 거라고 하자 . 

또 한 치는 비겁함을 감추는 방법이 그 뿐이어서 ,

비열해졌다고 하자 . 

이 모든 일이 자신의 탓이 되는게 싫어 비겁하게

나를 팔기로 했다고 .

또 다른 치는 이 일로 자신에게 손해가 될까 화가 나

그 모든 것에 소릴 질러 대기만 했다고 하자 . 

그래도 누구 하나는 제대로 들으려고 할 줄 았았다 .

귀만 열면 되는데 ...

나도 그깟 목소리는 크게 낼 줄 아는데 ,

나이는 더 많이 먹는게 안되네 ,

그 치보다 더 쎄게 강짜 부리면 되는데 ,

그 치보다 더 비겁하기만 하면 되는데 , 

나는 그냥 금붕어처럼 입만 벙긋대다 마는 이 나이에 막내였다 .

기어이 언덕에서 콕하고 엎어졌다 .

무릎에 힘이 스륵 빠져서 ...

내리막도 아닌 오르막에서 아주 살포시 ,  앞에 뭐 떨어진 냥

엎디뎠다 일어났지만 ,  그래도 온통 까질대는 까지고 멍들대는 멍들고

피 날대는 피 났다 . 

딱지가 앉아도 맘은 쉬이 아물 것 같지가 않다 .

 

명랑한 가면의 고백 ㅡ

시는 경계해야 해 ... 있지 ,

크리넥스 티슈처럼 속속 계속 뱉어내고 싶어지거든 ,

 

y*****7 2017.10.19. 신고 공감 6 댓글 18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숱한 날들을 꺼내 놓지 않아도
"숱한 날들을 꺼내 놓지 않아도" 내용보기
시를 읽고 싶은 마음을 잃어버린 것 같다. 시에 대한 마음은 여전히 내 안에 있는데 그 마음이 부서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어딘가에 흘리고 주워 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훑어보기가 아니라 천천히 시집의 책장을 넘기며 나는 그런 생각을 붙잡고 있었다. 이병률의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를 읽으면서 나는 유독 ‘사람’이란 시어에 끌리고 있는 나를 보았다. 좋고 나쁨이 아
"숱한 날들을 꺼내 놓지 않아도" 내용보기

 시를 읽고 싶은 마음을 잃어버린 것 같다. 시에 대한 마음은 여전히 내 안에 있는데 그 마음이 부서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어딘가에 흘리고 주워 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훑어보기가 아니라 천천히 시집의 책장을 넘기며 나는 그런 생각을 붙잡고 있었다. 이병률의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를 읽으면서 나는 유독 ‘사람’이란 시어에 끌리고 있는 나를 보았다. 좋고 나쁨이 아니라 나는 사람을 노래한, 사람을 위로한, 사람을 말하는 시에 자꾸만 눈길이 머물렀다.

 

 이병률의 시를 많이 읽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의 시인들, 그 안에 그는 없었다. 여행 에세이 『끌림』을 만났을 뿐, 시는 잘 알지 도 못했다. 어쩌면 이번 시집도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방송에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지 않았더라면 그랬을 것이다. 이 시집을 읽는 동안 좋은 시는 무엇일까, 다시 생각한다. 자꾸만 읽게 되는 시, 친구에게 전하고 싶은 시, 그런 시가 좋은 시 일지도 모른다. 우연일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선인장을 이 시집에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이 죽으면

 선인장이 하나 생겨나요


 그 선인장이 죽으면

 사람 하나 태어나지요


 원래 선인장은 널따란 이파리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것이 가시가 되었지요

 찌르려는지 막으려는지

 선인장은 가시를 내밀고 사람만큼을 살지요


 아픈 데가 있다고 하면

 그 자리에 손을 올리는 성자도 아니면서

 세상 모든 가시들은 스며서 사람을 아프게 하지요


 할 일이 있겠으나 할 일을 하지 못한 선인장처럼

 사람은 죽어서 무엇이 될지를 생각하지요


 사람은 태어나 선인장으로 살지요

 실패하지 않으려 가시가 되지요


 사람은 태어나 선인장으로 죽지요

 그리하여 사막은 자꾸 넓어지지요 (「사람」전문)

 


  사람과 선인장이라니. 누구나 자신만의 가시를 가지고 살아간다. 가시로 방어를 하거나 가시로 존재를 증명하거나. 오래전 선인장을 보면서 나도 선인장처럼 가시를 꽃으로 피우기를 바랐던 마음의 한 조각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번엔 이런 시다.


 

 바람이 커튼을 밀어서 커튼이 집 안쪽을 차지할 때나

 많은 비를 맞은 버드나무가 늘어져

 길 한가운데로 쏠리듯 들어와 있을 때

 사람이 있다고 느끼면서 잠시 놀라는 건

 거기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 잠을 자다가

 갑자기 들리는 흐르는 물소리

 등짝을 훑고 지나가는 지진의 진동


 밤길에서 마주치는 눈이 멀 것 같은 빛은 또 어떤가

 마치 그 빛이 사람한테 뿜어나오는 광채 같다면

 때마침 사람이 왔기 때문이다


 잠시 비운 탁자 위에 이파리 하나가 떨어져 있거나

 멀쩡한 하날에서 빗방울이 떨어져서 하늘을 올려다볼 때도

 누가 왔나 하고 느끼는 건

 누군가가 왔기 때문이다


 팔목에 실을 묶는 사람들은

 팔목에 중요한 운명의 길목이

 지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겠다


 인생이라는 잎들을 매단 큰 나무 한 그루를

 오래 바라보는 이 저녁

 내 손에 굵은 실을 매어줄 사람 하나

 저 나무 뒤에서 오고 있다


 실이 끊어질 듯 손목이 끊어질 듯

 단단히 실을 묶어줄 사람 위해

 이 저녁을 퍼다가 밥을 차려야 한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힘으로는 닫지 못하는 문 하나씩 있는데

 마침내 그 문을 닫아줄 사람이 오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온다」 전문)


 

 「사람이 온다는 제목의 시를 읽으면서 정현종의 시 「방문객」을 떠올린다. 닮은 듯 다른 시. 우리는 저마다 자기 힘으로는 닫지 못하는 문 하나씩 있는데 마침내 그 문을 닫아줄 사람이 오고 있는 것이다 란 마지막 연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전할 수 있는 모든 말들을 이 시집에서 마주한다. 어떤 시는 혼잣말처럼 들리고, 어떤 시는 안부처럼 들리고, 어떤 시는 편지처럼 도착한다. 스치듯 지나가는 당신, 멀리 떨어져 있어도 손을 꼭 잡은 것 같은 당신, 특정한 날에, 어떤 계절에 나를 기억하고 생각해 줄 것만 같은 당신.

 

 

 도시는 불빛이 많으니까 스스로의 빛도 필요하다

 바깥 불빛보다는 안쪽의 불빛에 의지해야 하므로

 감정도 필요하다

 

 지탱하려고 지탱하려고 감정은 한 방향으로 돌고 도는 것으로 스스로의 힘을 모은다 (「생활이라는 감정의 궤도」부분)


 

 바깥의 일은 어쩔 수 있어도 내부는 그럴 수 없어서

 나는 계속해서 감당하기로 합니다

 나는 계속해서 아이슬란드에 남습니다


 눈보라가 칩니다

 바다는 잘 있습니다

 우리는 혼자만이 혼자만큼의 서로를 잊게 될 것입니다 (「이별의 원심력」부분)

 

 숱한 날들을 꺼내 놓지 않아도 이 시집으로 다 전할 수 있을 것 같은 이상한 자신감이랄까. 한 번도 말하지 못한 감정을 꺼내어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구겨지고 너덜너덜해진 감정을 말이다. 한 번쯤은 다시 만나고 싶은 당신이 생각나는 시집이다. 당신은 당신의 삶을 살고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있다는 걸 분명하게 전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우습게도 그런 확신이 든다.  

r*********s 2019.02.14. 신고 공감 6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왜 그렇게 말할까요 ㅡ 이병률 시
"왜 그렇게 말할까요 ㅡ 이병률 시" 내용보기
왜 그렇게 말할까요  ㅡ 이병률 시    우리는 , 우리는 왜 그렇게 말할까요   그렇게 말한 후에 그렇게 끝이었다죠그 말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 길이 없으니절대 겹치거나 포개놓을 수 없는 해일이었다지요  우리는 왜 그렇게 들어놓고도그 말이 어떤 말인지를 알지 못해 애태울까요  왜 말은마음에 남지 않으면신체 부위에 어디를 떠돌다두고두고 딱지가 되려는 걸까요왜 스스로에게
"왜 그렇게 말할까요 ㅡ 이병률 시" 내용보기

왜 그렇게 말할까요  ㅡ 이병률 시

 

 

 

우리는 , 우리는 왜 그렇게 말할까요

 

 

그렇게 말한 후에 그렇게 끝이었다죠

그 말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 길이 없으니

절대 겹치거나 포개놓을 수 없는 해일이었다지요

 

 

우리는 왜 그렇게 들어놓고도

그 말이 어떤 말인지를 알지 못해 애태울까요

 

 

왜 말은

마음에 남지 않으면

신체 부위에 어디를 떠돌다

두고두고 딱지가 되려는 걸까요

왜 스스로에게 이토록 말을 베껴놓고는 뒤척이다

밤을 뒤집다 못해 스스로의 냄새나 오래 맡고 있는가요

 

 

잘게 씹어 뼈에 도달하게 하느라

말들은 그리도 억센가요

돌아볼 일을 만드느라 불러들이는 말인가요

 

 

대체 그 말들은 어찌어찌하여

내 속살에다

바늘과 실로 꿰매 붙여 남겨놓는단 말인가요

 

 

이병률 시집 ㅡ [ 바다는 잘 있습니다 ]ㅡ중에서

( 82 , 83 쪽 )

 

 

 

 

가능한 예쁘고 좋은 말만 하면서 , 내가 내뱉은 말들의 잔해가 허공 중에

떠돌 때 , 그것이 눈에 보이는 안개같은 것이라면 그래도 가능하다면

덜 뿌옇고 덜 거칠고 덜 상처난 것이기를 바랐다 .

그러면서도 남은 못된 마음은 어쩌지 못해서 안절부절 했다 . 버릴 곳을

찾을 수가 없어서 였다 . 내 속 들어줄 사람 하나 못 만든 천치라 그렇고 ,

어디 뱉어도 결국은 누워 내 얼굴에 떨어지는 내 침이고 ,

내 더러운 맘을 들키는 창피함이란 생각에 꺼낼 수도 없는 일였다 .

그러다보니 내 속에 쌓이는 일과 내 속에 쌓인 먼지만 잔뜩이라 빛 볼날

없다보니 냄새만 났다 . 그 안에서 썩었다 . 아무리 잘 정리해 놓은 것들도

오래 묵어 버리면 먼지가되고 , 먼지와 같아지면 애초에 뭐였는지 알 수도

없는 것들이 되고마는 것을 , 뭘 그리 꽁꽁 싸매고 들어 앉아 소중히 했나

나는 , 예쁜 말도 , 거친 말도 , 생각한 말을 필요한 때에 하지 않으면 ,

제대로 전달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을 ,  먼지하나로 전설이 될

셈이 아니라면 ,  좀 털어내란 의미로 , 저 말들의 의미를  훑는다 .

 

 

 

 

y*****7 2017.10.20. 신고 공감 4 댓글 16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바람의 바다 - 이병률《바다는 잘 있습니다》
"바람의 바다 - 이병률《바다는 잘 있습니다》" 내용보기
이병률 시인의 첫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2003)부터 《바람의 사생활》(2006), 여행 산문집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까지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람’이 아닐까. “탁자 밑에 공간이 있다는 것은/손을 잡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그가/바람이 들어오는 쪽으로 들어왔다가/바람이 나가는 쪽으로 빠져나갔다/아프지 않았다”(「마음 한편」) 트리스탄 굴리는
"바람의 바다 - 이병률《바다는 잘 있습니다》" 내용보기

 

이병률 시인의 첫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2003)부터 바람의 사생활(2006), 여행 산문집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까지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람이 아닐까.

탁자 밑에 공간이 있다는 것은/손을 잡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그가/바람이 들어오는 쪽으로 들어왔다가/바람이 나가는 쪽으로 빠져나갔다/아프지 않았다”(마음 한편)

트리스탄 굴리는 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에서 모든 중요한 날씨 변화는 바람의 변화와 함께 오거나 뒤이어 일어나기 때문에바람을 주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병률 시인의 이번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2017)에도 바람의 길이 가득 열려 있다. 바람이 통하도록 창문을 열어두자 나무 이파리 한 장이 그의 곁에 날아와 잠을 청하기도 하고, 카페에서 바람이 그의 시를 흩어놓아 사람들이 그것을 주워주는 경험 속에 그는 눈시울이 붉어지는 심상을 떠올리기도 한다.(내가 쓴 것), “발을 땅에 붙이고서는 사랑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이토록 투박하고 묵직한 사랑)는 표현은 또 어떤가. 그의 시는 그 모든 것에 과하게 속하지 않”(얼음)으려는 바람()과 움직임, 바람()과 함께하는 실천을 담고 있다. 그는 어떤 질문에도 공중에나 머물고 있어서 잘 모르겠다고”(착지) 말하려는 사람이기도 하다.

한자 에는 여러 뜻이 담겨 있다. ‘바람, 가르침, 풍속, 경치, 모습, 기질, , 기세, 절조, 노래, , 풍채와 태도, 소식, 멋대로, 외우다, 떠돌다, (암수가)서로 꾀다[네이버 사전 참조]’ 사람 삶이 이 한 단어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 놀랍다. 시인은 소금의 중력에서 하나의 단어에 여러 개의 의미가 모이는 것을 선호한다/단숨에 한 번에 만들어진 그런 단어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소금은 육중한 짠맛의 부동의 의미가 아니다. 그에게는 소금도 이동하는 것, 바람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소금은 세상에 가라앉고/몸에 음식에 바람에 섞이면서도/일말의 물음은 없었을 것이다.(중략)이 세계/이토록 하나가 아닌 세계(중략)사람이 그토록 사이를 마칠 때도 소금 같은 짠맛이 각막에 흩뿌려진다는 사실을/아무도 누설하지 않는 세계에 살면서//왜 당신이냐고 묻지 않은 일은 잘한 일이다소금이 짠맛이면서 그것이 아니게 되고, 사람도 나이면서 내가 아니게 되는 세상에서 확고한 질문과 답은 바람에게 맡기는 게 타당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가 인식하고 드러내는 이런 상관성은 여러 시에서 느낄 수 있다. 그들의 땅이 아닌 땅을 힘차게 일구는 사내와 자신을 소유한 사람이 있는 곳에서 꽃을 피우는 씨앗과 계절의 심부름을 하고 있는 여름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당신”(여름은 중요하다)이고, “우리가 딛고 사는 것은 알고 보면/고래의 뒤편이거나 고래의 심장 쪽/우리가 마시고 사는 것은 알고 보면/고래가 사는 수족관의 물”(가방)이다그가 묘사하는 바람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의 성질도 아니다. “바람이 커튼을 밀어서 커튼이 집 안쪽을 차지할 때나/많은 비를 맞은 버드나무가 늘어져/길 한가운데로 쏠리듯 들어와 있을 때/사람이 있다고 느끼면서 잠시 놀라는 건/거기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사람이 온다) 그가 그리는 바람 속에는 한자 의 저 많은 뜻들이 한껏 담겨 있다. 이 기다림, 이 움직임은 하나의 끝이 아니라 많은 뜻의 이동이다. “사랑이 끝나면 산 하나 사라진다/그리고 그 자리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퍼다 나른 크기의 산 하나 생겨난다”(사랑의 출처) 시인은 이 바람의 길을 공들여 계속 갈 생각인 것 같다. “내게 공중에 버려지는 고된 기분을/여러 번 알리러 와준 그 사람을/지금 다시 찾으러 가겠다고 길을 나서고 있는 나는 어쩔 것인가요”(그 사람은 여기 없습니다) “완벽한 사랑은 공중에 있어야 한다”(이토록 투박하고 묵직한 사랑)고 말하는 시인이지 않는가. “옮겨놓은 것으로부터/이토록 나를 옮겨놓을 수 있다니/사는 것은 얼마나 남는 장사인가”(여행)라고 말하는 여행가이지 않는가. 바다는 어디서 봐도 바다로 있을 테고, 나는 웃음과 울음이 섞인 바람 같은 미소로 시인의 시를 마중하고 배웅하는 역할을 잠시 맡아할 뿐. 그가 이 시집의 마지막 시로 왜 「착지」를 둔 것인지 퍽 이해된다. 

 

바람 얘길 한참 하다 보니 윤상 바람에게가 생각나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너무도 쉽게 끝날 걸 알면서도. 그래서 계속 듣는다. 서로 닮아 있는 바람을, 음악을, 시를.

 

윤상 3집 - The 3rd Cliche

윤상
DMR | 2000년 06월

 

https://youtu.be/BrdzjjaEe5I

 

 


 

g******i 2017.10.18. 신고 공감 3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호불호가 갈릴 책(바다는잘있습니다_이병률)
"호불호가 갈릴 책(바다는잘있습니다_이병률)" 내용보기
이병률 작가의 '끌림'이 너무 좋아서큰 기대를 안고 읽게 되었다.작가님은 시로 등단하셨으나산문이 더 맞는 분 같다는 건나의 생각일 뿐.시들이 벽에다 대고 혼자 얘기하는 느낌이 든다내겐 이 시집으로부터 어떤 치유도넘기기 싫은 행복도 느끼지 못했다여백을 파는 도장장이새벽에게 나를 업어다 달라고 하는 것멍이 드는 관계와 멍이 나가는 관계-몇몇 아름다운 표현은 가끔씩 마음속
"호불호가 갈릴 책(바다는잘있습니다_이병률)" 내용보기
이병률 작가의 '끌림'이 너무 좋아서
큰 기대를 안고 읽게 되었다.

작가님은 시로 등단하셨으나
산문이 더 맞는 분 같다는 건
나의 생각일 뿐.

시들이 벽에다 대고 혼자 얘기하는 느낌이 든다
내겐 이 시집으로부터 어떤 치유도
넘기기 싫은 행복도 느끼지 못했다

여백을 파는 도장장이
새벽에게 나를 업어다 달라고 하는 것
멍이 드는 관계와 멍이 나가는 관계-

몇몇 아름다운 표현은 가끔씩 마음속에서 반주를 하였으나
계속 핸드폰이 울려 몰입할 수 없는 연주같은 느낌.
단어가 허공에 흩날려 당최 뭘 말하려는지 모르는 느낌.
자기 생각대로 독자를 과하게 끌어당기는 느낌.

칭찬 일색의 댓글이 많지만
나는 전혀 모르겠다
바이백에 그대로 넣는다
YES마니아 : 골드 m********r 2018.10.18.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바다는 잘 있습니다
"바다는 잘 있습니다" 내용보기
《바다가 잘 있습니다》는 이병률 시인의 시집이에요.이 책은 이병률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이자 문학과지성 시인선 503번째 시집이에요. 2017년 9월 출간된 시집 첫 장에는 '시인의 말'이 적혀 있어요."어쩌면 어떤 운명에 의해 아니면 안 좋은 기운을 가진 누군가에 의해그만두었을지도 모를 시(詩).그럼에도 산에서 자라 바다 깊은 곳까지뿌리를 뻗은 이 나무는,마음속 혼잣말을 그만
"바다는 잘 있습니다" 내용보기

《바다가 잘 있습니다》는 이병률 시인의 시집이에요.

이 책은 이병률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이자 문학과지성 시인선 503번째 시집이에요. 

2017년 9월 출간된 시집 첫 장에는 '시인의 말'이 적혀 있어요.

"어쩌면 어떤 운명에 의해 

아니면 안 좋은 기운을 가진 누군가에 의해

그만두었을지도 모를 시(詩).

그럼에도 산에서 자라 바다 깊은 곳까지

뿌리를 뻗은 이 나무는,

마음속 혼잣말을 그만두지 못해서

그 마음을 들으려고 가는 중입니다."


시집을 읽으면서 '다행이다, 참말로 다행이다.' 했어요.

시인의 말처럼 그만두었을지도 모를 그 시가 지금 여기 있으니 말이에요. 

"있지 / 가만히 서랍에서 꺼내는 말 / 벗어 던진 옷 같은 말" (24p) 이라는 <있지>라는 시를 통해 이야기하듯이 우리에겐 마음 서랍 어딘가에 꾸깃꾸깃 넣어둔 말들을 끄집어내야 할 순간들이 있어요. "우리는 저마다 / 자기 힘으로는 닫지 못하는 문이 하나씩 있는데 / 마침내 그 문을 닫아줄 사람이 오고 있는 것이다." (45p) 라는 <사람이 온다>라는 시를 읽으면서 '아, 나에게 시가 왔구나!'라고 느꼈네요. "눈보라가 칩니다 / 바다는 잘 있습니다 / 우리는 혼자만이 혼자만큼의 서로를 잊게 될 것입니다." (103p)라는 <이별의 원심력>이라는 시를 읽으면서 바람과 함께 묵혀 있던 먼지들을 날려보냈어요. 그리고 "닳고 해져서 더 이상 걸을 수 없다고 / 발이 발을 뒤틀어버리는 순간까지 / 우리는 그것을 살자." (104-105p)라는 <이 넉넉한 쓸쓸함>이란 시를 읽으면서 "살자!!!" 외치며 잘 살아보자고 다짐했어요.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a*****7 2024.05.04.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온통 옮겨 쓰고 싶은 시 [시집-바다는 잘 있습니다]
"온통 옮겨 쓰고 싶은 시 [시집-바다는 잘 있습니다]" 내용보기
시집을 집어 들 때가 있다. 가끔 충동처럼, 그리움처럼 솟아나는 시 읽기. 마침 떠오르는 시인이 있어 준다면 더없이 고마울 일이고, 미처 모르고 있었던 시인을 만나게 된다면 그 또한 반가운 일이다. 이 시집은 시인의 이름에 매달려 있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의식하지 못한 채로 만났다. 앞서 읽은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내 쪽에서 찾아 읽는 시인은 아직 아니었다.시집 제목이 크게
"온통 옮겨 쓰고 싶은 시 [시집-바다는 잘 있습니다]" 내용보기

시집을 집어 들 때가 있다. 가끔 충동처럼, 그리움처럼 솟아나는 시 읽기. 마침 떠오르는 시인이 있어 준다면 더없이 고마울 일이고, 미처 모르고 있었던 시인을 만나게 된다면 그 또한 반가운 일이다. 이 시집은 시인의 이름에 매달려 있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의식하지 못한 채로 만났다. 앞서 읽은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내 쪽에서 찾아 읽는 시인은 아직 아니었다.


시집 제목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바다로부터의 안부라니. 보고 또 봐도 질리는 적이 없는 바다인데, 그 바다가 잘 있다고 하니, 바다 보러 가는 대신에 이 시집이라도 읽어야지, 냉큼. 부드럽게 읽혀서 놀랐다. 살금살금 시집 안을 후루룩 넘기면서 보았다가 한 편 한 편 머물러 읽었다가 차례의 제목을 훑었다가 골라 읽었다가 멈춰지지가 않았다. 아, 오랜만에 내가 빠져드는 시집을 만났구나.   


보통은 한 권의 시집을 읽으면서 찾아낸 몇 편의 시나 몇 줄의 시어에 만족한다. 시인은 한 편 한 편 정성을 다해 썼을 시들이겠지만 내게로 와서는 다 와 닿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적은 발견에도 좋아하는 마음이 충분했는데 이 시집의 시들에서는 반가움이 넘쳐 나기에 이르렀다. 첫 작품부터 '흠, 옮겨 적어야겠군,' 넘겼는데 다음 작품도 다음 작품도. 혹시 싶어 가운데쯤 펼쳐 읽었는데도 역시 '옮겨 적어야겠군.'이 되어 그만 이 책은 처음부터 한 편씩 다 옮겨 적어 보자 여기게 된 것이다.


타이핑으로 안 할 것이다. 손글씨로, 내가 갖고 있는 공책 중에 예쁜 걸로 골라서, 예쁜 색의 필기구로, 한 편 한 편 다른 색으로 옮겨 적어야지. 적으면서 젖어 들어야지. 잘 있다고 하는 바다 소리도 다시 듣고 내가 감춰 둔 바다도 불러 내야지. 


모처럼 사람을 부르는 따뜻한 시들을 만났다. 기분이 좋다. 

YES마니아 : 로얄 j***6 2018.05.14.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