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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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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를 보며 항상 나를 달래던 말이 있었다."저건 사실이 아니야...."라는 생각을 하면 공포를 이길 수 있었던 경험이 있는데 이 책은 내게 그런 위로의 말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논픽션이다.그리고 논픽션이라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지만 실제로 제노비스는 죽었고 살인자였던 윈스터 모즐리는 2008년에 72세가 되었으니까  지금은 76세 쯤 되었겠다. 미국사회에 제노비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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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를 보며 항상 나를 달래던 말이 있었다."저건 사실이 아니야...."라는 생각을 하면 공포를 이길 수 있었던 경험이 있는데 이 책은 내게 그런 위로의 말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논픽션이다.그리고 논픽션이라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지만 실제로 제노비스는 죽었고 살인자였던 윈스터 모즐리는 2008년에 72세가 되었으니까  지금은 76세 쯤 되었겠다. 미국사회에 제노비스 사건은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고 실제로 제노비스의 죽음으로 인해 긴급구조대 119가 탄생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사건이 되기도 한다.결국 제노비스의 죽음으로 수천명의 죽음을 구하게 된 것이다.그리고 그 사건을 바라보았던 목격자들을 토대로 한 연구로  이른바  제노비스 신드롬 또는 방관자 효과라는 심리학 용어도 생겨나게 되었다.

젊고 생생하고 아름답고 살고 싶어하며 이탈리아 식당을 차리는 꿈을 가지고 있던 레이첼과 빈센트 제노비스의 딸 캐서린 수잔 제노비스.그녀가 잘못한 것이 있어 그런 잔인한 죽음을 당한 것일까? 아니면 그녀가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에게 잠재되어 있는 도덕적인 기준은 항상 그런 질문을 하게 하지만 그녀는 단지 젊은 여자였을 뿐이라는 것이다.우리나라의 잘못된 편견중의 하나도 강간범이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를 강간하면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의 행실문제라는 일부 사람들의  심히 곤란한 편견을 들은 적이 있다.그러나 살인자 윈스터 모즐리가 먹이를 고르는 목표는 단 하나의 이유였다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시체애호가였던 모즐리는 자신의 욕구의 만족이라는 단 한가지의 목표만을 가지고 사냥에 나선다는 것이다..모즐리에겐 여자는 그저 먹이일 뿐이었고 파리처럼 하찮은 존재일 뿐이기에 여자가 짧은 치마를 입고 안입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수많은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죽음이란 너무도 친숙하며 수없는 살인이 일어나는  도시이기에 제노비스의 죽음 또한 잊혀질 수 있는 죽음 중의 하나였지만 그들을 경악하게 하였던 것은 한 기자의 호소문 때문이다.경찰서장의 언질로 제노비스의 죽음을 목격했던 사람들이 38명이나 있었음이 기자에 의해  밝혀지게 되면서 제노비스의 죽음은 뒤늦게야 사람들의 관심의 표적이 된다. 그 많은 증인들은 제노비스가 폭행당하며 차가운 복도에서 피를 흘리고 있을 때 제노비스의 죽음을 지켜보며 침묵하였지만 모즐리가 체포되어 법정에 서자 더이상 침묵하지 않았다. 제노비스의 죽음이후에나 그들은 모두가 무언가를 들었고, 그제야 할말이 생긴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사람의 심리작용이라는 것이다.그 38명이 제노비스가 폭행당하고 죽음을 맞이하고 있을때 침묵하게 된 심리..이른바 실험을 통해 연구 해본 결과 목격자가 많을 수록 책임이 분산되어 주위에 사람들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게 되는 현상을 뜻하는 심리를  방관자효과 또는 구경꾼효과라고도 한다. 이후 모즐리의 살인은 제노비스살인에 그치지 않고 여러 사건이 드러나게 되고 모즐리에게 늑대인간 증후군이란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그가 평소에는 모범적인 가장이며  성실한 직원으로 생활하였지만 밤만 되면 살인자가 되는 것을 일컬어 늑대인간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설명되어진다. 시민들이 그를 사형으로 몰아가지만  법은 그에게 관대한 관용을 베풀고 ....살인범에게 까지 관용을 보여준 법이 38명의 목격자들을 처벌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그것은 우리안에 숨겨져 있는 방관과 무관심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비열함은 우리 안에도 있다는 사실을....누가 자신 할수 있겠는가..이 책을 그저  단순한 소설로 읽을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방관과 무관심에 경종을 울리는 책이란 사실이 놀라웠다.우리의 방관과 무관심으로 죽어가고 있는 제노비스가 있지 않은지를 살펴보아야 겠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2 2011.05.12. 신고 공감 3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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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무도, 제노비스의 죽음을 막지 않았는가
"왜 아무도, 제노비스의 죽음을 막지 않았는가" 내용보기
지난 겨울, 한 노숙자가 지하철역 출구 통로에서 동사했다. CCTV에 찍힌 영상에는 역무원과 그의 곁을 지나쳐가는 여러 행인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가끔 뒤돌아보듯 그에게 눈길을 던지는 행인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아무것도 못보았다는 듯 무심하게 그의 앞을 지나쳐갔다. 혹한에 떨었을 노숙자, 이른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지하철역이 활기를 찾아갈 무렵 그는 죽은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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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한 노숙자가 지하철역 출구 통로에서 동사했다. CCTV에 찍힌 영상에는 역무원과 그의 곁을 지나쳐가는 여러 행인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가끔 뒤돌아보듯 그에게 눈길을 던지는 행인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아무것도 못보았다는 듯 무심하게 그의 앞을 지나쳐갔다. 혹한에 떨었을 노숙자, 이른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지하철역이 활기를 찾아갈 무렵 그는 죽은 체로 발견되었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어느 한 구석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목에 있던 그는 왜 죽음을 맞이했어야만 했는가. 왜 아무도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지 않았나. 이와 같은 현상을 '방관자 효과' 혹은 '제노비스 신드롬'이라고 칭한다.
제노비스. 1964년 살해당한 한 여인의 이름.
이 책은 그녀의 죽음을 재구성하고 있다.

한 여자가 30분 넘게 살인범에게 쫓기며 칼에 찔리는 동안 서른여덟 명의 퀸즈 구역 주민들은 지켜보기만 했다.
(갠스버그의 기사 中)

캐서린 키티 제노비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자신의 아파트 앞에서 강간, 살해당한다. 범인은 사건 발생 십여일만에 체포된다. 범인은 순순히 벙햄을 자백했고 사건은 순조롭게 종료되어갔다. 키티의 죽음은 '흉악 범죄'의 한 사례로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질 터였다. 하지만 사건의 상세한 내막을 알고 있었던 경찰서장은 평소 친분관계를 맺고 있던 언론사 편집장에게 '또 다른 진실'에 대한 운을 띠운다. 그날 밤 '정말로'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에 대해.

서른여덟 명의 목격자.
경찰은 사건의 정황을 시간대별로 -그래봤자 삼십여분이지만- 정확하게 재구성해냈다. 범인과 피해자 키티 제노비스의 동선 하나하나까지 말이다. 키티의 동선은 범인의 자백만으로는 정확하게 추리해낼 수 없을 터. 이는 모두 목격자의 진술로써 가능했다.
범인이 처음 키티를 공격했을 때, 그녀의 비명소리는 여러 동네주민을 깨웠다. 여러 집에 불이 켜졌고, 한 주민은 창문을 열어 범인에게 고함을 질렀다. 범인은 도망쳤고 혼자 남은 키티는 비척비척 일어나 집쪽으로 달아났다. 그녀가 범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하지만 어떤 도움의 손길도 없었다. 과다출혈로 지친 키티는 아파트 입구에 쓰러졌고, 범인은 '일을 마저 끝내기 위해' 돌아왔다. 처음엔 주민들의 반응에 겁을 먹었던 범인은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아무도 그녀를 돕지 않을 것이다.'
키티의 비명은 다시 울려퍼졌다. 하지만 범인이 옳았다. 그 누구도 그녀를 구하러 오지 않았다. 범인이 일을 해치우고 자리를 떠서야 한 주민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도착했다. 키티는 병원으로 후송 중 사망했다.

목격자들은 어둠 때문에 사건 당시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그들은 밖의 비명소리를 단순히 사랑싸움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일까. 적어도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남자가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았다. 한 증인은 내려가 보려는 남편을 말렸음을 시인했다. 한 여인은 밖의 추위가 싫어서 창문을 열고 싶지 않았다고 했고, 한 남자는 비명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라디오의 볼륨을 높였다고 했다.
그들은 밖의 상황이 어떠한지 알고 있었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미국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이 사건은 인간심리의 새로운 측면을 제시했다. 과연 제노비스 사건은 우연히 일어난 불행한 사건일 뿐일까? 아니면 목격자들의 심리상태는 우리 인류의 보편적인 특성일까? 컬럼비아 대학의 빕 라타네 교수와 뉴욕 대학의 존 달리 교수의 실험은 후자를 지지한다. 그들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긴급한 상황이 발생시 목격자가 많을수록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 라타네와 달리 교수는 그들의 실험을 다음과 같이 결론내렸다.
'긴급 상황에 목격자가 단 한 명만 있을 때는 개입해야 할 책임감을 갖게 되지만 다른 목격자가 있을 경우에는 책임이 분산된다.'

점점 각박해져만 가는 세상에서 참 암울한 결론이지 않을 수 없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하지만 저자가 우리에게 '제노비스 사건'을 들려주는 이유는 이러한 허탈감을 안겨주기 위함이 아닐 것이다. 우리 스스로는 부정하겠지만 '방관자 효과'는 무시할 수 없는 우리의 한 속성이다. 하지만 자각하지 못한다면, 누군가에게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왔을 때 우리는 그를 무시할 것이다. 우리 또한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도 허탈감을 털어낼 수 없다면 또 다른 희망을 하나 제시하겠다. 우리가 방관자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키티 제노비스가 폭행을 당했던 그날, 경찰을 부른 단 한사람. 가냘프고 작은 체구의 여자 소피 패레르. 그녀는 사건 현장을 목격한 이웃 주민의 전화를 받자마자 곧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리고 아직 범인이 칼을 들고 현장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키티를 구하기 위해 서둘러 뛰쳐 내려갔다. 그녀의 도움은 너무 늦은 것이었지만 -너무 빨랐어도 그녀 또한 범인의 희생양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녀의 행동은 서른여덟 명의 목격자와는 다른 것을 말하고 잇다.
그것은 희망이다. 우리 안에 잠재한 방관자를 극복할 수 있는 희망.

f*****w 2011.05.21. 신고 공감 3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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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제노비스를 죽인 범인은 똑같은 상황에서도 애써 외면하고 마는 "우리들" 자신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제노비스를 죽인 범인은 똑같은 상황에서도 애써 외면하고 마는 "우리들" 자신인지도 모르겠다" 내용보기
지금은 완연한 봄 날씨여서 한 밤에도 한기(寒氣)를 느낄 수 없지만 두툼한 외투와 목도리, 장갑으로 중무장해도 옷깃을 파고드는 한기로 인해 살이 에일 정도인 추운 한겨울 날씨에 기차역이나 전철역, 도심 길거리에 다 헤진 옷을 입고 길거리에 누워 있는 “노숙자” 분들을 종종 보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곁을 지나가지만 누구 하나 흔들어 깨워보는 사람은 없고 마치 쓰레기를 피
"결국 제노비스를 죽인 범인은 똑같은 상황에서도 애써 외면하고 마는 "우리들" 자신인지도 모르겠다" 내용보기

지금은 완연한 봄 날씨여서 한 밤에도 한기(寒氣)를 느낄 수 없지만 두툼한 외투와 목도리, 장갑으로 중무장해도 옷깃을 파고드는 한기로 인해 살이 에일 정도인 추운 한겨울 날씨에 기차역이나 전철역, 도심 길거리에 다 헤진 옷을 입고 길거리에 누워 있는 “노숙자” 분들을 종종 보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곁을 지나가지만 누구 하나 흔들어 깨워보는 사람은 없고 마치 쓰레기를 피해가듯이 멀리 돌아가기 일수이며, 솔직히 나도 주변을 지나치는 저 많은 사람들 중 하나가 알리겠지 싶어 못 본 척 지나친 적이 대부분이다. 작년 겨울 유례없는 한파로 노숙자들의 안타까운 동사(凍死) 사고가 여러 건 있었다고 하니(아주경제, 2011-01-19 “유례없는 한파, 잇단 노숙자 동사”) 어쩌면 내가 모른 척 지나쳐 온 그분 들 중 한 분이 돌아가셨을 지도, 나는 그분의 죽음을 방관한 “살인자”였다고 생각하면 죄책감마저 들게 된다. 이처럼 주위에 사람들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게 되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방관자 효과(傍觀者效果, bystander effect)”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용어는 1964년 미국 뉴욕시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인 “제노비스 사건”에서 유래되었다고 해서 “제노비스 신드롬(Genovese syndrome)”이라고도 불리운다고 한다. 프랑스 시네아스트(cineaste. 출판사 작가소개 글에서 읽고는 무슨 뜻인가 싶어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영화예술인”을 뜻하는 프랑스어라고 한다) 겸 소설가 “디디에 트쿠엥”의 <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원제 “Est-ce ainsi que les femmes meurent?”/황금가지/2011년 4월)>은 바로 이 “제노비스 사건”을 소설로 재구성해낸 작품이다. 엉뚱하게도 경제 교양서적인 <슈퍼괴짜경제학>이라는 책에서 이미 읽어본 내용 - 이 책에서는 키티 제노비스 사건으로 경제학의 기본 전제인 개인의 “이기주의”와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이타주의”에 대해 설명한다 - 이라 그렇게 충격적이지 않겠지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다 읽고 나서도 많은 생각꺼리와 여운을 길게 남기는 “충격적인” 책이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1964년 3월 13일 금요일, 뉴욕시 퀸스에서 이탈리아계 이민자 집안 출신이었던 28살 미혼의 “키티 제노비스(Kitty Genovese) 가 새벽 3시경 카페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길에 자신의 집 근처에서 칼을 든 한 남자에게 그만 죽임을 당하고 만다. 여기까지라면 34분마다 살인이 발생한다는 미국에서 흔하디 흔한 그런 살인사건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면에는 끔찍한 진실이 숨어 있었다. 전혀 일면식이라고는 없는 낯선 남자인 ”윈스턴 모즐리“에게 칼을 두 차례 찔린 제노비스는 "도와 주세요”라고 외치고 그 소리를 들은 건물 몇 집에서 불이 켜지면서 누군가가 "야 ! 여기서 꺼져 !, "너 거기서 뭐 하는거야 ?"라고 소리를 지르자 모즐리는 재빨리 도망을 가게 된다. 제노비스는 피를 흘리며 자신의 집을 향해 힘겹게 걸음을 내딛지만 미처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복도에서 되돌아온 모즐리에게 잡혀 다시 수차례 칼을 맞게 되고, 모즐리는 죽어가는 그녀를 강간하기까지 하고 유유히 도망친다. 처음 사건 발생에서 모즐리가 다시 제노비스를 칼로 찌르고 강간까지 하고 달아나는데 걸린 시간은 35분, 제노비스의 비명을 듣거나 살인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38명에 이르는 데도 어느 누구도 내려와 보지 않는다. 심지어 사건을 목격하고 자신의 애인에게 전화를 한 남자에게 애인은 절대 나서지 말고 침대에 가서 다시 잠들라고까지 한다. 2분 거리에 순찰차가 순찰을 돌고 있던 상황이었지만 악몽의 35분 동안 그 어느 누구도 신고를 하지 않아 제노비스는 자신의 복도에서 죽어가고, 뒤늦게 누군가가 신고를 했지만 제노비스는 구급차에서 그만 과다출혈로 죽고 만다. 작가는 같은 건물에 거주했던, 낚시를 가는 바람에 사건 당시에는 집을 비웠던 두 부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끔찍했던 사건의 전말을 소설로 제구성해 우리에게 생생하게 들려준다. 재판과정을 같이 지켜본 부인은 남편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이라면 내려가 봤을까?”

 

과연 그 당시 끔찍한 살인 현장을 목격하고도 방관했던 38명은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새벽녘의 숙면(熟眠)을 방해하는 이웃집의 소란 정도로 여겼던 사람,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신고를 했겠지 않고 대수롭게 여기지 않은 사람, 또는 끔찍한 장면에 겁에 질려 괜히 신고했다가는 나도 저런 일을 당할 수 있겠다 하는 마음에 애써 외면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식의 방관이, “내가 아닌 누군가가” 하는 마음이 결국 제노비스를 죽게 만든 셈이다. 이 사건이 충격적인 것은 38명의 방관자가 우리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라면 내려가 봤을까"라는 마지막 물음에 선뜻 답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도 같은 상황이라면 그들처럼 방관하고만 있을 지도 모른다는, 그리고 우리도 제노비스처럼 무관심 속에 죽을 수 도 있다는 생각에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쉽게 잊혀지지 않고 여운이 계속 남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라는 작가의 물음에 대한 답은  싸이코 패스인 “윈스턴 모즐리”가 그녀를 죽인 범인이 맞지만, 살인을 방관했던 38명 모두가  바로 살인자라고 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같은 사건들이 무수히 반복되고 있는 지금, 길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노숙자들을 애써 외면하는 우리들이야말로 제노비스의 죽음을 방관했던 38명과 다를 것이 없다고 반문하는 작가의 물음이 못내 불편하기만 하다. 그래서일까. 책 마지막 글귀, 아인슈타인이 했다는 말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 이유가

 

세상은 끔찍한 곳이다. 악을 행하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그 악행을 보고도 저지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이다. - P.229

 



a*****7 2011.05.16.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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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 역시 또 다른 방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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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비스 신드롬(Genovese syndrome), 또는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는 주위에 사람들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게 되는 현상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이다. 또는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가에 따라 판단하여 행동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대중적 무관심 또는 구경꾼 효과라고 하기도 한다(출처 : 위키피디아). 몇 주 전 일요일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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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비스 신드롬(Genovese syndrome), 또는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는 주위에 사람들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게 되는 현상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이다. 또는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가에 따라 판단하여 행동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대중적 무관심 또는 구경꾼 효과라고 하기도 한다(출처 : 위키피디아).

몇 주 전 일요일 저녁, 사람들로 북적이는 지하상가를 걷고 있었다. 지하철역을 향해 한없이 걷고 있으려니,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니, 문 닫은 가게 앞에서 한 할아버지가 쓰러져 계셨다. 무슨 일이지? 궁금하긴 하지만 선뜻 나서지 못한 채 나 역시 그저 가던 걸음을 멈춰 잠시 할아버지의 상황을 지켜보는 방관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몇 초, 아니 몇 분이 지났을까. 결국, 한 남자가 할아버지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려 했다. 할아버지께서는 겨우겨우 누워있던 몸을 일으키시더니 앞에 주저앉았다. 남자는 계속 할아버지를 부축하려 했지만, 할아버지께서는 술에 취한 듯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시며 계속 앉아계시는 거였다.

일단은 아파서 심각한 상황은 아니구나, 하고 남자는 할아버지 곁을 떠났다. 나를 포함해 멈춰 서 있던 사람들 역시, 가던 발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ㅡ.

 

<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는 몇 주 전 일어난, 그저 잊어버렸을지도 모를 사건 하나를 순식간에 떠올리게 하며 나를 굉장히 부끄럽게 만든 소설이다.

할아버지가 쓰러져 계신다. 하지만 할아버지를 지켜보는 눈은 많다. '누군가가 도와주겠지.. 나 말고.'라고 생각하며 상황을 계속 지켜본다. 사람이 많응면 많을 수록 이런 마음은 더욱 강해진다.

나는 몇 주 전, 완벽하게 제노비스 신드롬, 혹은 방관자 효과가 드러난 현장을 지켜봤고 나 역시 그 현장의 한 명이었다. 사람이 죽어가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할아버지라고 위로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똑같은 상황이다. 나는 철저하게 '방관자'로 서 있었던 것이다.

 

방관자 효과는 또 다른 심리학 용어로 제노비스 신드롬이라고 일컬어진다. 어째서 제노비스 신드롬일까?

 

경찰 보고서에 따르면 그 증인들은 서른여덟 명입니다.

서른여덟 명의 증인, 남자와 여자들이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키티 제노비스가 살해당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단 말입니다. 따뜻한 집 안에서!

어떤 이들은 담요로 몸을 꽁꽁 싸맨 채, 또 어떤 이들은 실내복까지 걸쳐 입으면서요.

하지만 그중 어느 누구도 가엾은 여자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죠. 그것조차도요.

-p.58

 

이탈리아계 미국인 키티 제노비스는 당차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던 여성이었다.

그런 그녀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살인마 윈스턴 모즐리의 눈에 띄어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하지만 이 사건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었으니, 그것은 키티 제노비스가 모즐리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동안 그 장면을 지켜보는 서른여덟 명의 눈이 있었다는 사실이다ㅡ.

키티를 공격하는 동안 이웃의 불이 켜지고 누군가 창밖으로 소리를 질러 모즐리는 잠시 후퇴했다. 하지만 그녀를 도와주러 달려내려오는 낌새가 보이질 않아 다시 접근해 살해했다.

 

처음엔 한 여성의 살해 사건으로 《뉴욕 타임즈》에는 단 네 줄 짜리 기사로 조그맣게 실렸지만, 담당 편집자 로젠탈은 서른여덟명의 방관을 다시 대서특필함으로써 미국 전역에 이들의 도덕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작가 디디에 드쿠앵은 <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에서 살인범 모즐리의 행방과 키티 제노비스가 살해당한 사건 그리고 그 뒤 서른여덟 명의 '증인'들이 모즐리의 재판에서 자신의 도덕성을 외면한 채 '증언'하는 장면까지 철저히 재구성했다.

 

확실히 한 여성의 죽음은 분명 한 살인마의 범죄로 인한 것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키티는 여전히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세운다는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했을 것이고 그 꿈을 이루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책임을 마냥 살인범에게만 물을 수 있을까? 누군가 소리를 쳐 모즐리는 잠시 후퇴했고, 그 뒤로 집집마다 불이 켜지는 것을 목격한 모즐리는 키티를 살해하는 것을 포기하고 도망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를 막으려는 낌새는 전혀 느끼지 못했기에 살인을 저질렀다. 서른여덟 명 중 단 한 명만이, 조금만 더 빨리 신고를 했더라면 채 2분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순찰하고 있던 경찰은 살인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책임을 이웃에게만 지울 수도 없는 일이다. 이웃들은 분명 잘못을 저질렀다. 그 이유들은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어서', '나 역시 위험에 처할까봐' 등 다양하다. 여기에 작가는 '은밀한 요소'를 더해 이웃들의 행동에 대한 이유에 대한 상상력을 더 추가했지만ㅡ이것이 사실일지 그렇지 않은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ㅡ그렇다 한들 이웃들이 그녀의 죽음에 온전히 책임을 질 수도 없는 사건인 것이다.

 

참 어렵다. 이 사건 이후 심리학자들이 행한 실험에 의하면 누군가 어려움에 처한 상황을 알면서도, 함께 모여있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 수록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나 역시 한 명의 방관자였고 끝까지 그 자리에 서 있던 모든 군중들이 그저 방관만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알 수 없었을 일이다. 어려움에 처한 이를 '누군가 도와주겠지..'라는 생각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그 중의 한 명이 되었던 당시의 심리가 아직도 생생히 되살아나는 것이다.

 

키티 제노비스의 이웃들은 무책임했다. 이들의 무관심은 잔혹했다. 그들은 분명히 잘못을 저지르긴 했다. 그들에게 키티 제노비스의 죽음은 분명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38명의 행동에 대한 도덕적 비난은 미국 전역에서 쏟아졌고, 이러한 심리학적 현상에 대해 '제노비스 신드롬'이라는 용어가 생겨나기까지 했다.

이것은 분명 살인범의 행동과 이웃의 방관이라는 무책임함이 합쳐져 벌어진 비극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답을 내리지 못하겠다. 내가 그 중 한 명이었다면 과연 어떻게 행동했을까? 이미 '방관자'가 되어본 나는 과연 '사람이 죽어가는 상황'에서는 용기있게 행동할 수 있을까? 분명 이성과 도덕은 행동해야한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1985년, 이런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노인들을 대상으로 7,500억 원을 횡령해 피해자가 만명이 넘은 일본 사상 최악의 사기 사건으로 불리는 도요타 상사 사기 사건의 주모자 도요타 상사 회장 나가노 가즈오가 1985년 6월 18일 연행되는 장면을 방송국을 통해 전국으로 생방송으로 나오고 있었다. 당시 회장의 거주지 앞에 약 30여 명의 기자들이 연행되는 장면을 찍기 위해 모여있었다. 갑자기 두 명의 사나이가 "도요타 상사 회장을 죽이러 왔습니다"라는 말을 하며 아파트의 유리창을 깨고 회장의 집 안으로 침입, 살해를 한 후 걸어나왔다. 그러나 기자들을 포함하여 30여 명의 목격자들은 범행을 지켜보기만 하였다. 당시 회장을 살해한 두 명은 8년 징역을 부여받았다(출처 : 위키피디아).

 

이 때 그 곳에 서 있었다면, 이들을 막으러 달려갔을까?

 

YES마니아 : 로얄 p********9 2011.04.2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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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 You're guilty!
"[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 You're guilty!" 내용보기
정말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 책이였다.인간이 타인의 삶에 얼마나 무관심할 수 있는가, 내가 아니여도 누군가는 할 것이라는 생각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 책이다. 제노비스가 모즐리의 습격을 받고 살해당하고 뒤이어 강간당하기까지 무려 38명이 보고 있었음에도 실제적으로 도움을 요청한 사람은 단 세명 뿐이다.처음 모즐리의 공격을 받는 제노비스를 보고 모즐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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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 책이였다.
인간이 타인의 삶에 얼마나 무관심할 수 있는가, 내가 아니여도 누군가는 할 것이라는 생각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 책이다.

제노비스가 모즐리의 습격을 받고 살해당하고 뒤이어 강간당하기까지 무려 38명이 보고 있었음에도 실제적으로 도움을 요청한 사람은 단 세명 뿐이다.

처음 모즐리의 공격을 받는 제노비스를 보고 모즐리에게 소리쳐 그가 달아나게 한 남자 모제, 그녀가 자신의 아파트 계단 아래에서 다시 돌아 온 모즐리에게 재차 죽임을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제노비스의 옆집에 사는 소피에게 전화 한 남자 로스, 그리고 그 전화를 받은 후 적극적 조치로서 경찰에 신고한 뒤 그녀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해준 유일한 사람인 여자 소피.

이 사건은 그냥 신문의 한 모퉁이를 장식하고 넘어 갈 사건이였으나 관할 경찰서장 머피가 자신의 친구인 뉴욕타임즈 뉴욕 지역 편집장인 로젠탈에게 이 사건의 진짜 모습을 알려 주면서 제노비스 사건은 다시 재조명을 받게 되고, 재취재 결과 무려 38명의 사람들이 그녀의 죽음에 대해 방관자적 입장을 유지함으로서 적극적 대응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미국 전체는 충격과 공포로 빠져 들게 된다.

실제 모즐리도 처음 그녀를 길에서 칼로 찌른 후 누군가의 외침에 도망을 갔다가 분명 그 이후에 나타나야 할 경찰자가 없다는 것과 주변의 아파트 몇몇에 불이 켜져 있었지만 다른 조치가 없었다는 것을 상기하고 다시 제노비스에게 범행을 가하기 위해 돌아온다.

그들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그 사이, 제노비스는 차디찬 죽음과 끔찍한 공포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현대의 개개인의 이기주의적 성향을 볼 때 분명 다른 사람의 일에 관여하지 않으려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무려 38명의(추후 조사결과 그 이상이였다는 보고가 있음) 사람이- 단 3명을 제외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은 실로 놀랍고 어이상실이 아닐 수 없다.

제노비스 사건은 미국에 911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녀의 이름을 딴 방관자효과 [傍觀者效果, bystander effect :구경꾼효과라고도 한다. 방관자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일에 상관하지 않고 곁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사람이다. 이처럼 주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 경우, 곁에서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 현상이 방관자효과이다. 방관함으로써 생기는 여러 현상 가운데서도 특히 어려운 처지에 놓인 낯선 사람을 도와주지 않을 때 흔히 쓴다.

사람들이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 데는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이나 성격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 그러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 주위에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도와줄 확률은 낮아지고,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행동으로 옮기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더 길어진다.

지켜보는 사람이 많으니, 자신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도움을 주겠지 하는 심리적 요인 때문인데, 이렇듯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가리켜 심리학 용어로 '책임분산'이라고 한다. 그러나 방관자효과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반대로 지켜보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모든 일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들도 있는데, 보통 정치가들이 이 유형에 속한다.

의학 용어로도 쓰이는데, 이 경우에는 세포에 방사선을 쬐면 방사선에 직접 노출되지 않은 주변 세포도 방사선을 직접 쏘인 세포와 비슷한 영향을 받는 현상을 가리킨다.

출처-방관자효과 [傍觀者效果, bystander effect ] | 네이버 백과사전] 라는 범죄 학술 용어까지 생겼다.

내가 아니여도 누군가가 나서서 도와 줄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들 중 누구도 연락하지 않은 것이다.
한편으로는 생각해 본다. 이 책을 읽는, 이 사건의 밖에 서 있는 나는 과연 그때 그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 하고 말이다.

"나단, 당신이었다면 정말 내려가 봤을까?"(p.221)

제노비스의 죽음 후, 그녀의 가족들은 법원에 그녀의 묘에 대한 접근금지 신청을 했고 허가 신청을 받아냈다고 한다.
묘지관리인은 그녀의 묘에 대한 묻는 사람들에 대해 정중한 거절을 하고 있다고 한다.
진정 그녀가 관심이 필요하다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절박했던 그 순간에는 누군가에게 미루었던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 무슨 생각으로 그녀의 묘를 찾는 것일까?

과연 그녀의 살인앞에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그들은 과연 무죄일까? 유죄일까?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세상은 끔찍한 곳이다. 악을 행하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그 악행을 보고도 저지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이다."(p.229)

제노비스 살인사건(1964.3.13)


1964년 3월 13일 새벽 3시 15분 미국 뉴욕 퀸스 지역 주택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한 여성이 쓰러졌다. 키티 제노비스(Kitty Genovese). 27살의 이 여성은 술집에서 야근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이었다. 자신의 승용차를 아파트 주차장에 세우고 집으로 걸어가다 괴한의 칼에 찔렸다. 그녀의 비명소리에 이웃 집들에 불이 켜졌다. 누군가 "그 여자를 놔줘!"라고 소리치자 괴한은 달아났다.

그러나 아파트의 불이 꺼지고 어두워지자 괴한은 다시 제노비스를 덮쳤다. 다친 몸으로 집으로 향하던 제노비스는 다시 괴한의 칼에 수차례 찔려 비명을 질렀다. 다시 아파트에 불이 켜졌고, 괴한은 도망쳤다. 그리고 불이 꺼지자 괴한은 다시 돌아와 제노비스를 난자했다. 세 차례에 걸친 끔찍한 범행에 제노비스는 절명했다.

범행시간 35분 동안 사건 목격자는 모두 38명이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제노비스를 도와주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목격자들의 이 같은 행태가 신문에 보도되자 도덕성 결여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내재된 본성임이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책임감이 분산돼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 걸 주저하게 되는 방관자 효과(제노비스 신드롬)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즉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도와주겠지"라는 심리가 작용한다고 한다.

제노비스 사건은 인간 본성의 숨겨진 일면을 들춰낸 사건이다. 한편으로 누군가 위험에 처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각성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제노비스를 살해한 윈스턴 모즐리는 사형을 선고 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복역 중에 있다. 그는 뒤늦게 죄를 뉘우치고 가석방 청원을 내기도 했지만 제노비스 가족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정광용 기자 kyjeong@

출처 : 부산일보| 기사입력 2009-03-09 10:21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g*****s 2011.05.20.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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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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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단이라는 제3자의 입장에서 서술된다. 어느 날, 내가 여행을 떠났을 때 우리 동네에서는 큰 일이 일어난다. 키티라는 이웃집 여자가 죽었는데, 목격자만 38명이 되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이웃사람들의 침묵과 방관으로 키티는 그냥 죽어갔다. 누군가는 키티의 구조요청을 들었지만, 그냥 상황이 해결되었나보다고 생각하고 그냥 잠자리에 들었고, 누군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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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단이라는 제3자의 입장에서 서술된다.

어느 날, 내가 여행을 떠났을 때 우리 동네에서는 큰 일이 일어난다.

키티라는 이웃집 여자가 죽었는데, 목격자만 38명이 되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이웃사람들의 침묵과 방관으로 키티는 그냥 죽어갔다.

누군가는 키티의 구조요청을 들었지만, 그냥 상황이 해결되었나보다고 생각하고 그냥 잠자리에 들었고, 누군가는 여자친구에게 전화했지만, 절대로 개입하지 말라는 여자친구의 말에 이웃집에 전화하고 그제야 그 이웃이 용감하게 나서서 키티의 옆을 지켜주었다.

그들은 왜 그랬을까?



그래서 그런 얘기가 있다.

사람 많은 도로에서 나쁜 일을 당할 때, 절대로 그냥 도와주세요가 아니라 어떤 특정한 사람을 집어서 도와달라고 해야한다고 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밤거리에서 나쁜 일을 당한다면 도와주세요가 아니라 불이야를 외쳐야하고...

참 씁쓸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범인인 모즐리는 정말 아무런 감정도 없이 그냥 사람을 죽인다.

사이코패스였을까?

단지 사람을 죽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더 나쁜 짓도 한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지만 최근의 일은 아니다.

아주 오래 전, 미국에 911이라는 제도가 생기기 전의 일이다.

이 일로 911도 생기고 했다고 한다.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정말 나라면 어땠을까?

나도 나 자신을 장담할 수 없다.



무튼 잘 모르겠다.

뭔가 많은 생각을 하게하고, 뒷끝도 좋지 않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읽어서 경각심을 일깨웠으면 좋겠다.



129쪽
하지만 키티가 죽는 것을 텔레비전 화면 보듯 지켜보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태도는 병이 아니야. 방관과 무관심은 병이 아니라고. 천 번을 죽어서 저세상에 갔다 온다한들 이 방관과 무관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할걸. 그건 바로 우리의 일부니까.

130쪽
아냐, 나단. 그 비열함은 우리 안에도 있어.

p*****r 2011.05.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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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 - 디디에 드쿠앵
"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 - 디디에 드쿠앵" 내용보기
윗층에 단란한 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상당히 가정에 충실하고 성실하신 아저씨는 늘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인사를 먼저 하시는 인상이 좋은 분이셨는데 어느날인가 새벽에 싸움을 하는 듯 했습니다.. 그렇다고 많이 늦은 새벽은 아니라서 많은 주위분들이 깨어 있는 시간이었죠.. 한참을 시끄럽게 싸우고 깨지는 소리가 나더니 조용해지더군요.. 다음날 하필이면 마주쳤습니다..
"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 - 디디에 드쿠앵" 내용보기



윗층에 단란한 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상당히 가정에 충실하고 성실하신 아저씨는 늘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인사를 먼저 하시는 인상이 좋은 분이셨는데 어느날인가 새벽에 싸움을 하는 듯 했습니다.. 그렇다고 많이 늦은 새벽은 아니라서 많은 주위분들이 깨어 있는 시간이었죠.. 한참을 시끄럽게 싸우고 깨지는 소리가 나더니 조용해지더군요.. 다음날 하필이면 마주쳤습니다.. 아주머니가 얼굴을 가리고 있더군요.. 대강 짐작이 가시죠?.. 근데 문제는 그 후로 수시로 그런 상황이 생긴것입니다.. 아래 윗층으로 3년 가까이 살았지만 거의 싸우는 소리를 못들었는데 갑자기 그렇게 되더군요..  자주 반복이 되니까 이제는 적응이 되어버려선지 그러려니 하게되는 방관자적 입장으로 바뀌더군요.. 그러던 어느날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비명소리와 아이들의 우는 소리가 들리고 온갖 물건을 현관 밖으로 쏟아내는 소리가 들려오더군요.. 상당히 위험하게 들렸습니다.. 그런 저는 경찰에 연락을 했을까요?.. 네, 물론 제가 신고는 했습니다.. 아마도 그 소리가 들린지 30분이 훨씬 지나서 경찰이 도착했으니 올바른 출동은 아니었겠다 싶더군요.. 와이프는 말렸지만(이유는 아시죠?.) 그냥 시끄럽기도 하고 짜증스럽고 위험스러운 느낌도 있어서 신고를 했죠.. 하지만 경찰은 늦장을 부리더군요... 결과적으로 그 가족은 몇달 뒤 이사를 갔습니다.. 아내되시는 분은 팔이 부러졌다고 그러더군요.. 그 상황 이후로 마주치더라도 인사도 안하더군요.. 제가 신고한 걸 알았던 모양입니다..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리고 신고한 제가 잘못한 것일까요?.. 만약 신고를 하지않고 또 난리를 치는군화라고 귀를 틀어막고 잠을 청했더라면 아무런 문제 없이 일상으로 돌아갔을까요?.. 경찰은 제게 어떤 방문과 요구도 하지 않았습니다.. 전 신고를 했지만 어떻게 마무리가 되었는지 내용도 몰랐구요.. 사건 이후로 그냥 주위분들의 이야기로 알았을 뿐인거죠..근데 또 하나, 과연 경찰에 신고는 저 하나만 했을까요?..

 

현대를 살아가는 사회인의 구조상 타인의 삶에 관여하는게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게 어떠한 상황이건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는 방관자적 행태가 되어버릴 수 있는 상황인거지요..그런 현대인들의 심리적 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소설이 바로 이 제노비스 신드롬을 만들어낸 캐서린 키티 제노비스 살인사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누가 제노비스를 죽였을까요?.. 윈스턴 모즐리라는 사이코패스입니다. 살인을 통해 쾌감을 느끼는 잔혹한 살인마이고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연쇄살인마인거죠.. 하지만 이 사이코패스 역시 가정을 이루고 있고 두아이의 아빠이자 성실한 가장이며 사회에서 나름 인정받은 직업인인 것입니다. 그 어느누구도 모즐리의 살인행각을 알수도 눈치 챌수도 없었습니다.. 단지 자신이 살해될 것임을 아는 피해자들만 그의 미친 행위에 대해 알 뿐이죠..하지만 그들은 죽습니다.. 그리고 모즐리는 잔인하게 무차별하게 피해자가 제대로 인식도 하기 전에 살인을 저지를뿐입니다.. 너무나 무서운 일인거죠.. 단지 살인과 강간을 위해 순식간에 무차별적 행위를 일삼는 살인자이니까요.. 하지만 이 사이코패스는 사람의 눈이 없고 보이지 않는 곳을 택해 살인을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벽 넘어 거리에서 누군가가 언제나 볼 수 있는 곳에서 거리낌없이 저지른 일들입니다. 왜 그는 타인의 시선을 무서워하지 않았을까요?.. 특히나 제노비스를 살해할 시점에서는 서른여덟명의 목격자가 있었습니다.. 제노비스의 비명과 외침을 들었거나 심지어 살해장면을 본 목격자들이죠.. 어느 누군가가 외칩니다.. 모즐리는 놀라서 도망을 갑니다.. 그리고 그렇게 끝이 나야 했습니다.. 누군가는 신고를 했어야 됐고 제노비스는 고통스럽지만 살아나야했습니다..하지만 모즐리는 타인의 삶에 관여하지 않는 현대인의 심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고 다시금 돌아와서 자신의 쾌락을 위해 살인의 마무리를 하게 됩니다.. 아무도 신고를 하지 않았으니까요..그렇게 제노비스는 실날같은 삶의 희망마저 무참하게 짓밟혀버립니다.. 과연 제노비스는 직접적으로 칼을 들이대고 목숨을 앗아간 윈스턴 모즐리가 죽였을까요?..아님 누구 하나 그녀의 삶에 대한 관여를 꺼려했는 서른여덟명의 방관자에 의해 죽음을 당한것일까요?..

 

상당히 유명한 실화적 내용이며 현대사회인들의 구조적 심리를 제대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이후로 많은 것이 바뀌었더군요..특히나 미국의 경우에는 엄청난 충격을 주었는 사건이라더군요.. 이후로 긴급출동과 관련된 시스템이 다시금 구축이 되었고 또다시 제노비스같은 충격적인 죽음이 일어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윈스턴 모즐리는 재판으로 사형을 언도 받았으나 재심의 과정에서 탈옥을 감행하여 또다른 희생자를 만들게 되어 현재까지 형을 살고 있다고 하더군요(그사이 죽은거는 아니죠?..개인적으로는 능지처참의 형벌을 주고 싶을 정도로 분노하고 있습니다만).. 하여튼 그 윈스턴 모즐리와 제노비스의 대한 실화적 사건을 소설화시킨 작품인 것입니다.. 소설은 단순히 제노비스의 죽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즐리라는 사이코패스의 범죄행각과 상황을 꼼꼼하게 따라가며 그들의 무서움까지 일꺠워줍니다.. 상상속에서 만들어진 공포감이 아닌 현실속에 버젓이 등장하는 소름끼치는 공포감에 읽는동안 몸둘바를 모를 정도였습니다.. 모즐리가 뱉어내는 단어들의 감정속에는 죄책감이라는게 없습니다.. 단순히 자신의 아이들이 늦게 알기를 원했고 자신의 가족이 다치지 않는것에만 감정을 드러내더군요..나머지 자신의 범죄행위는 아무런 죄책감도 감정도 없이 살인을 저질렀던 상황을 담담하게 펼쳐내는 모습이 정말 공포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방관자로 칭해졌던 목격자들의 입장을 생각하게끔 만들어주었는데요.. 그들도 많은 피해를 입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자신의 도덕적 책임에 대한 외면으로 인해 상당히 많은 죄책감을 불러일으켰으리라 생각을 해봅니다.. 뭐 아닐 수도 있겠지만요.. 만약 착한 저라면(?) 오랫동안 힘들어했을 것 같거덩요..

 

이런 일을 경험해본 기억이 있어서 그럴까요?..할 말이 많군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중 이런 경험이 없는 사람들도 아마 드물지 싶습니다.. 그 사건이 중대하든 경미하든 간에 말이죠.. 소설은 짧고 강한 임팩트를 확실하게 심어줍니다.. 실화적 구성을 중심으로 상황을 꼼꼼하게 펼쳐내는 표현력이 섬뜩하기까지 하더군요.. 피해자의 심리와 방관자들의 의도를 잘 표현해낸 것 같구요.. 무엇보다 사이코패스인 윈스턴 모즐리의 입장에서 표현해낸 살인자의 심리와 상황적 묘사는 아주 좋았습니다.. 무섭고 공포스럽고 심지어 극단적 분노까지 불러일으켜주더군요.. 단순하게 즐기는 작품이라기 보다는 재미있지만(정말 이게 실화일까?라는 생각을 안할수가 없을 정도로 극적인 내용들이거덩요) 누구나가 알아야될 그런 사회적 범죄에 대한 각성과 요구가 담겨 있는 내용이라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한 번 읽어보시면 좋을 듯 싶네요..


 



n********s 2011.05.0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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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관자 효과’의 대명사, ‘제노비스 신드롬’을 재구성한 실화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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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서 타인간의 문제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방관자 효과’를 설명 할 때면 대표적 사건사례로 예시되는 것이  ‘제노비스 신드롬’이라 할 수 있다. 당시의 신문기사들을 보면 27살 여성이 이웃들에 도와달라는 구원의 외침을 하는 32분간 살인이 진행되는 장면을 지켜본  “38명의 이웃 어느 누구도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았다!(38 Watched Murder -- And Did Nothing)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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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서 타인간의 문제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방관자 효과’를 설명 할 때면 대표적 사건사례로 예시되는 것이  ‘제노비스 신드롬’이라 할 수 있다. 당시의 신문기사들을 보면 27살 여성이 이웃들에 도와달라는 구원의 외침을 하는 32분간 살인이 진행되는 장면을 지켜본  “38명의 이웃 어느 누구도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았다!(38 Watched Murder -- And Did Nothing) ”라고 타인의 고통, 죽음을 방관한 인간들의 행동을 비난하는 듯한 신문의 헤드라인을 볼 수 있다.  아무튼 이후 이 사건은 심리학적 한 현상을 표현하는 고유명사가 되었을 정도로 우리 인간들에게 어떤 근본적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소설은 이 유명한 심리학적 과제를 던진 사건의 증언들과 정황, 이후 판결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도시 생활에 내재하는 개인의 소외와 공동체 의식의 결여를 되짚어 보게 한다.

 

1964년 3월 13일 뉴욕의 퀸즈 구역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이라는 실화를 토대로 재구성된 일종의 팩션인 이 소설은 익히 잘 알려진 내용이지만 당시 목격자인 이웃들의 증언, 아니 변명들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을 자극한다. 왜 자기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웃 처녀의 잔인한 피살상황에 수수방관을 하였는지는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성실하게 자기 인생을 가꾸어나가던 이태리계 미국인인 ‘캐서린 수잔 제노비스’가 자기 집이 있는 주택가에서 그것도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상황에서 38명의 이웃(실질적으로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이 마치 텔레비전 화면 보듯 지켜보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태도를 대체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는 우리 인간의 본성을 해석하는데 중요한 실증자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이 소설적 구성의 측면을 무시하고 사실의 나열만으로 구성된 것은 결코 아니지만, 인간의  ‘다원적 무지’라든가 ‘책임 분산 효과’와 같은 너무도 유명한 심리학적 사례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 인문학적 관심에 묻히는 것은 이 작품이 각오한 한계라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학문적 흥미와 관음증적 원시욕구를 건드리는 소재여서 흥미를 호락호락 양보할 수는 없다 하겠다.

 

살인당시의 장면을 재구성하여 보여주는가 하면, 살인자의 신원과 성향, 재판과정부터 목격자인 이웃들의 핑계이자 자기 방어를 위한 (도덕적)책임의 회피적 증언 등이 맛스럽게 배열되어 주제에 대한 의문과 다양한 인간 본성에 대한 사고의 재미를 더해준다. 나라면 그녀를 위해 뛰어나갔을까? 아 역시 자기중심적인 ‘나쁜 사마리아인’처럼, 퀸즈의 방관한 주민들처럼 행동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자문도 해보게 된다. 그리고 이 방관과 무관심을 만드는 심리적 동기는 무엇일까?  우리의 도시란 곳은 이처럼 황폐한 곳일까? 하는 의문도 떠올리게 된다.

 

“목격자가 많으면 아무도 안 도와준다? ” 여기에는 모호한 상황에 맞서면 어떻게 해야 할 지 결정할 때 우리 인간들은 타인의 인도와 도움에 의지한다는 ‘다원적 무지’의 심리가 깃들어 있으며, 결국 구경꾼들 모두 서로 타인에게 인도를 구할 경우 실제로 아무런 행동도 없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즉 아무도 행동하지 않고, 그러고 나서는 자기 위안적 판단으로 스스로의 심리를 보호하며, 적절한 핑계로 회피하는 것이 바로 본성인 것이다. 이웃인 목격자들의 증언을 보면 역시 동일한 이러한 범주 내에서 변명의 내용을 담고 있다. 사랑싸움인지 알았어요, 남녀간의 희롱이라고 판단했어요, 나서면 골치 아픈 상황에 빠질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그랬어요, 사람들이 많다보니 다른 누군가가 신고할 줄 알았아요,... 등등 과 같이 책임분산의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소설은 살인자와 그의 평범한 일상에 대해서도 조명하고 있는데,  죄의식 없는 살인행위와 사이코패스로서의 성향이 일상과 부조화를 이루지 않는 모습은 더욱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방관자의 심리에 묻혀 가려진 범죄자의 죄악, 죽음과 시체를 탐하는 살인괴물의 악마성도 하나의 축을 형성하여 실화적 사건을 더욱 입체감 있게 재구축한다. 냉담했던 목격자들, 악을 행하는 인간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악행을 보고도 저지하지 않는 우리들, 우리의 사회가 더럭 두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비극적 사건, 인간 심리의 치부를 드러낸 이 사건은 타인의 고통과 위험에 대한 우리의 행동양식 교정(矯正)이란 중요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유명한 심리학적 연구 모델로 회자되던 소재에 다각적인 관점이 입혀진 인문학적 성향을 지닌 독특한 소설이라 하겠다. 아마도 작품에 등장하는 뉴욕타임지의 편집장  "로젠탈(A.M. Rosenthal)"이 쓴“38명의 목격자들(Thirty-Eight Witness)"이란 저술의 소설 판(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흥미와 지적욕망을 아우르는 작품이다.

 

 

리뷰 총점 종이책
[9월약속/소설-10] 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
"[9월약속/소설-10] 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 내용보기
우선 미국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실화라는 데에 호기심이 극대화되었던 작품이다. 그것도 38명의 비정한 목격자들을 향해, 대중을 향해 심층적인 질문을 던진 연쇄 살인사건. 방관자 효과, 제노비스 신드롬이라는 신조 심리학적 용어까지 생길 정도로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범 모즐리의 이중생활이 더 기가 막힌다. 그는 아내와 두 아이를 둔 남편이자 아빠인 연쇄살인범이었다.
"[9월약속/소설-10] 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 내용보기

우선 미국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실화라는 데에 호기심이 극대화되었던 작품이다.

그것도 38명의 비정한 목격자들을 향해, 대중을 향해 심층적인 질문을 던진 연쇄 살인사건.

방관자 효과, 제노비스 신드롬이라는 신조 심리학적 용어까지 생길 정도로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범 모즐리의 이중생활이 더 기가 막힌다. 그는 아내와 두 아이를 둔 남편이자 아빠인 연쇄살인범이었다.

 

퇴근하는 28살의 제노비스의 등에 칼을 찌른 모즐리는 주변의 인기척에 잠시 현장을 비운다.

자신의 흰색차를 옮기고 다시 돌아온 사이 부상을 입은 제노비스는 주변에 살려달라고 호소한다.

새벽 3시를 넘은 시각이지만 몇몇의 아파트주민들은 그녀의 다급한 호소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서로 떠넘기는 식으로 묵인한다. 아파트 복도를 질질 끌다시피 이동한 제노비스에게 다시 돌아온 모즐리는 30분에 걸쳐 그녀에게 칼을 찌른 후 강간한다. 모즐리는 희미하게 아파트 문이 열린 소리를 듣지만 그 주민이 모른 척 문을 다시 닫아버렸기에 안심하고 살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곧 한 주민의 신고로 경찰이 오지만, 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린 제노비스는 응급차 안에서 죽고 만다.

 

제노비스 살인뿐만 아니라 서너 건의 살인을 저지르고도 자신의 죄상을 너무나 당당하고 떳떳하게 자백하는 모즐리. 그런 살인범이 가족과 다섯 마리의 세퍼드를 걱정하다니. 모즐리의 이중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날수록 너무나 섬뜩했다. 하지만 법정에서 정신질환으로 몰고 가려는 모즐리의 변호사도 이해가 안 되긴 마찬가지였다. 설령 죄인의 변호를 맡은 사람으로서의 당연한 임무일지라도 말이다. 어찌됐든 배심원들조차도 모즐리의 신랄한 살인 자백에 몸서리를 친다. 1급 살인으로 판정될 뻔 했던 모즐리는 정신질환으로 20년 무기징역을 선고받지만 곧 탈출한다. 그는 탈출해서도 빈 집에 무단침입해 그 집에 방문한 부부를 이틀에 걸쳐 폭행하고 남편이 보는 앞에서 아내를 수도 없이 겁탈한다.

 

제노비스 살인사건을 목격한 증인들의 무관심과 방관을 나무랄 수 없는 것이 나 자신도 그들과 같은 상황이었더라면 신고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누구나 복잡하고 불미스런 사건에 개입되고 연루되는 것을 기피할 것은 너무도 자명하지 않은가. 무엇보다 세계적으로 이슈화된 이 사건의 기저엔 연쇄 살인범의 잔혹한 행태보다는 어려움에 처한 상황이나 사람을 보고도 돕지 않게 되는 현상, 즉 방관자 효과에 있다. 그렇기에 병든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시민들 또한 심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제노비스를 잔인하게 죽인 모즐리가 더 악랄한지 아님 사건을 목격하고도 방조한 38명이

더 악랄한지 그 누가 가릴 수 있단 말인가. 하늘을 향해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자신의 양심에 한 점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죄인을 비난할 수도 죄질의 경중을 가릴 수도 없을 것이다.

a*********9 2011.09.15.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