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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스님과의 작은 인연. 진실의 의미에 잠깐 마음을 멈춘다. 말빚에 대한 생각. 마음하는 아우야. 기억하고 있는 스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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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불평등이 화두가 되어 있는 세상, 양극화란 다름아닌 인간이 가진 소유의 욕망이 불러온 현상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래서 인간의 욕망이란 양을 한 마리 가진 사람보다 아혼아홉마리 가진 사람이 더 크다고 옛 성인들은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시대에 우리에게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신 분, 무소유란 화두를 던지고 평생을 실천하다 가신 분, 법정스님이 가신지 일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는 것은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에게 사색과 성찰의 시간을 주었던 법정스님의 글들이 아직도 생명력을 가지고 우리의 마음속을 맴돌고, 많은 사람들에게 때로는 힘을 주고, 때로는 꾸짖음을 주는 것은 그 언어들이 스님의 고행과 수행 속에서 실천력을 가졌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스님의 언어들은 기고문이나 책을 통해서 만난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직접 법문을 들은 사람도 있고, 강연회에 참석하여 강연을 들은 사람도 있겠지만, 나 또한 책을 통해서 만났을 뿐이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들도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써온 글들도 모두 말 빚이므로 거두어들이라는 유언에 더 이상 볼 수 없음이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 그런 법정 스님이 출가를 결심한 1955년부터 10년 동안 사촌동생에게 보낸 편지를 엮은 책이 나왔다. 대학 3학년 1학기를 마치면서 출가를 결심하고, 그 후 10년 동안 어렸을 때 함께 자란 사촌동생에게 보낸, 손 때묻은 편지와 엽서가 바로 그것이다. 편지를 받았던 사촌동생은 막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그리고 집안형편으로 대학 진학대신 직업인으로 살면서, 군복무를 하면서 스님이 편지로 준 가르침 덕분에 방황하지 않고, 그 시기를 잘 넘길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우리는 스님의 편지에서 복합된 감정을 읽을 수 있다. 아우를 생각하는 자애로움이 행간 곳곳에 묻어 나오는가 하면, 출가는 어떤 연유에서라도 집안에 대한 배신이라며 가족을 두고서 회피하듯 출가한대 따른 미안함과 죄스러움이 그대로 묻어 나오고 있다. 이 모든 것에서 스님의 인간적인 고뇌를 읽을 수 있다. 그래서일까? 스님은 이제 중학교를 졸업한 동생에게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고 부탁한다. 어린 동생에 대한 안쓰러움과 미안함은 스님으로 하여금 동생에게 ‘마음하는 아우야’하고 부르게 만든다. 문법으로는 맞지 않지만 스님은 ‘마음’이라는 명사에 ‘하다’라는 동사를 붙여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아우야’란 뜻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동생이 손에서 책을 놓지 않기를 원한 스님은, 시간이 날 때마다 독서를 강조하고, 또 가려서 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러기에 어떤 때는 읽어 볼만한 책을 직접 추천도 해주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술 먹지 말라고 당부도 하며, 인생은 상품거래와 같은 장사일수는 없다며 그저 성실하게 살아가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행간 곳곳에 자신이 두고 온 책이 잘 있는지를 묻는 스님의 편지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만든다. 스님 역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러하듯 책에 대한 애착이 많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직업인인 수도인은 되지 않겠다고 반성하며 자신을 되잡는 모습이나, 한군데에 너무 오래 있었다며 해인사를 떠나 세상과 인연을 뒤로 하고 다시 수행에 들어간다는 스님의 글을 읽으면서는 숙연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이 책은 형제간의 안부를 묻고 걱정하는 일상적인, 그리고 지극히 사적인 글이다. 그렇지만 사적인 글이라 할지라도 출가하면서 세속을 떠나는 청년의 심정과, 산중에서도 집안을 걱정하는 아들, 그리고 형의 마음, 수행자로서의 뜻을 굳건히 다짐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스님은 자신이 평생을 거쳐 써온 주옥 같은 글들도 모두 말 빚이므로 거두어 들이라는 유언을 하였음에도 이 책이 나왔다는 점이다. 역자도 이 점이 마음에 걸리는듯, 그 유언에도 불구하고 스님의 편지를 책으로 엮은 것은 스님의 내면이 이토록 다감하고, 따뜻한 면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싶어서였다고 말한다. 역자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자꾸 마음속에 걸리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스님의 무소유란 적당히 가지라는 것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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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말씀처럼 그렇게 한 평생을 사셨으니 이 시대의 큰 스승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으신게 아닌가 싶다. 그 때의 스님과의 짧은 만남이 이승에서의 마지막이 될 줄은 짐작조차 못했기에 그분이 우리 곁을 떠나신지 한 해가 지났음에도 당최 실감이 나질 않는다. 시간이 지나 지날수록 빛을 발하는 글이 고전이란 이름으로 세대를 거듭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영혼을 울리는 감동과 영감을 준다면 법정스님의 글 또한 우리에게 그러하다. 스님의 맑고 마음을 담은 소박한 언어는 그분의 살아 온 생애 만큼이나 정갈하다. 다시 그분의 글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음이 못내 아쉽고 안타까웠는데 법정스님의 친필 글을 ‘마음하는 아우야’라는 책으로 만나게 되었다. 법정스님이 출가를 결심한 1955년 초발심부터 출가 후 십여 년에 동안 사촌동생 박성직에게 보낸 편지를 엮은 책으로 엮었다. 스님이 직접 손으로 써 내려간 편지글 안에서 비록 도를 이루고저 세속을 등졌지만 동생과 어머니를 걱정하는 마음과 따뜻한 애정이 곳곳에 담겨 있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법정스님의 또 다른 인간적인 모습을 만나게 되었다. 사투리나 당시의 표현 방법이 어색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사실적이고 정감있다. 다듬지 않은 투박한 글귀에서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스님의 인간적인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청년시절 누구나 겪게되는 과정을 스님이라고 건너 뛸 수 있었겠는가. 동생을 짐심으로 걱정하는 다정 다감한 형의 모습도, 고뇌하는 수도자의 모습도, 두고 온 할머니, 어머니, 가족에 대한 죄스러움으로 속세의 인영에 못내 괴로워하는 모습도,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던 책들과 세상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과감히 벗어나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도 그님의 글 속에 그대로 묻어난다. "내 책들도 잘 있는지?"라며 두고 온 책들의 안부를 물을 정도로 책을 소중히 여기셨으며 학문에 대한 열의 또한 크셨음을 알수 있다. 독서를 하더라도 함부로 말고 지은이와 책을 가려서 읽도록 세심하게 당부하시고, 학문을 전문으로 하는 기회는 학창시절뿐이라며 공부에 전념하길 당부하신다. 법정이라는 불명을 갖게된 이야기며 종교는 모두 한가지 목표를 지향하는 단지 방향만 다를 뿐이라는 종교를 바라보는 넓은 포용력은 젊은 시절부터 지녀오신 생각임을 알 수 있었다. "날마다 되풀이되는 생활이라고 해서 조금이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더 새로워야 하고, 또 오늘보다 내일은 한 걸음 앞서야 되는 것이다." "진실 하라는 것이다. 일체의 생활에 '진실'이면 통한다. 설사 눈앞에 손해 볼 일이라 할지라도 진실이면 그만이다. 무슨 일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하여라." "울지 마라, 울지를 마라. 몇 백번 상하고 다치면서 괴롭고 절망하고 울부짖는 동안에 인간은 자란다. 울지 마라. 행복은 사금처럼 가벼이 날아가 버리지만 불행은 두고두고 네 마음속에서 인생의 문을 열어주는 귀한 열쇠가 되리라. 부디 불행에 굽히지 말고 살아라."
비록 그분의 다른 저서와는 달리 달필은 아닐지라도 법정스님의 체온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듯하다. 스님의 젊은 날 한 귀퉁이라도 느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마음하는 아우' 라고 정감있게 우리의 마음을 보듬에 주고 토닥이며 인생의 선배로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같아 마냥 듣기 좋다. 그분의 목소리가 되어 아직도 마음에 잔잔한 울림으로 남는다. 마음하는 아우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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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無所有), 그리고 '버리고 떠나기'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벌써 일년! 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유난히 나라의 어른들을 많이 잃어버린 2010년의 어둡고 길게 느껴지던 그 시간들이 아직도 선명한 기억속에 자리한다. 인생의 마지막까지 버리고 떠나기, 무소유의 삶을 보여주신 법정스님의 확고하고 단호한 한마디 한마디, 간혹 간혹 보이던 자비로운 미소와 따스한 말씀 말씀이 아직도 메아리처럼 가슴속에 자리한다.
법정 스님의 입적 후, 스님의 책을 출판하지 말라는 말씀때문에 '무소유'를 비롯한 스님의 작품들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과 무소유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불타오르는 소유욕으로 한동안 세간이 어수선 했던 것도 사실이다. 법정스님에 대한 이와 같은 인기는 1976년 출간된 '무소유'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그리고 그 관심과 인기는 '버리고 떠나기', '오두막 편지', '내가 사랑한 책들' 등에 이어지며 진실된 말씀으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감동의 메세지를 전해주었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이 쓰이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메인다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 만큼 많이 얽혀있다는 뜻이다. - 무소유 中에서 -
2010년 무소유를 남기고 떠나가신 법정스님, '무소유'라는 작품을 통해 만나게 된 1976년! 이제 우리가 아는 법정 스님의 모습, 이전의 시간속 여행을 떠나볼까 한다. 1955년 법정스님께서 불교에 귀의해 출가하시던 시기에서 '무소유' 이전의, 조금은 젊은 모습이 남아 있는 청춘의 법정을 만나보려 한다. <마음하는 아우야!> 는 법정스님의 친필 편지글을 모아 놓은 작품집이다. 법정스님의 사촌 동생인 박성직과 마음으로 주고 받은 솔직하고 정성스런 스님의 진심을 엿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작품이다.
'차도남'이라해도 어울릴, 핸섬해보이는 하지만 왠지 긴머리가 조금은 어색해보이는 한 젊은이의 모습이 있다. 1955년 출가하게 된 젊음이 가득한 법정스님의 모습이 낯설다. '내 책들도 잘 있는지 모르겠다.' 라는 편지글로 동생과의 대화는 시작된다. 자신이 두고온 책에 대한 걱정, 돈을 꾸어서라도 필요한 책을 사서 보내라는 책에 대한 열정. 이 짧은 서신 속에서도 스님과 책의 깊은 연정을 느낄 수 있을 것도 같다. 출가 이후에도 안부를 물을 정도로 아끼던 책들을 스님은 동생 학비를 위해 팔아 쓰라고 말하기도 한다. 책에 대한 연정 만큼이나 동생에 대한 따스한 사랑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날마다 되풀이되는 생활이라고 해서 조금이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더 새로워야 하고, 또 오늘보다 내일은 한 걸음 앞서야 되는 것이다.'
'미안하다, 죄스럽다.' 출가한 자신에 대해서 집안에 대한 배반이라며 자책하는 법정 스님의 목소리에선 손 끝마져 떨려온다. 열다섯 소년과 막역지우처럼 지극한 사랑과 관심을 나누는 법정스님의 편지속에선 오랜 세월의 흔적이 남아 누렇게 변해버린 시간의 흔적처럼 왠지 모를 따스함이 묻어나는듯 하다. 출가를 결심하고 여러가지 속세의 걱정과 고민들이 스님의 펜끝에서 떨리는듯 고스란히 전해진다. 1970년을 넘어서는, 출가한지 10여년이 지난 즈음에는 이미 초반에 가졌던 속세의 걱정과 고민보다는 편안하고 부드러운, 우리에게 익숙한 그 '스님'의 말투가 펜 속에 묻어나는 듯하기도 하다.
속세를 떠난 스님으로서의 삶도 그렇지만, 이 작품은 불가에 귀의해 있으면서도 속세와 인연의 끈을 부여잡은 인간 법정의 향기가 고스란히 담겨있어 느낌이 좋은 작품이다. 고뇌하고 고민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뜻을 '마음하는' 동생에게 전하는, 법정스님과 관련된 기존의 작품과는 또 차별화되는 특별한 느낌을 전해준다. 검소하고, 아니 가난하기까지 하지만 자신이 가진 신념을 지키려는 법정 스님의 고결한 인품과 생활 방식에 자연스레 고개가 숙연해지기도 하다.
'진실 하라는 것이다. 일체의 생활에 진실이면 통한다. 설사 눈앞에 손해 볼 일이라 할지라도 진실이면 그만이다. 무슨 일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하여라.' 작가가 열다섯 소년에서 서른 살 청년이 되기까지, 긴 시간동안 주고 받은 일상의 안부와 진심 어린 충고가 가득한 빛바랜 편지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아직 무르 익지는 않았을 지언정 법정스님이 지금의 젊은 세대 들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따스한 시선과 말씀을 느낄 수 있는듯하다. 수많은 고민과 걱정을 가진 젊은 시절의 법정, 출가하여 구도의 길을 접어든 법정에게선 젊은 시절에 채워야할 책과 사색이라는 특별한 가르침을 배우게 된다. '무소유'로 점철되는 그 깊이 그대로...
반값 등록금 투쟁을 위해 다시금 촛불을 손에 든 우리 학생들에게 더욱 가슴아픈 것은 마음을 내어줄 사회의 어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음도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어둡고 암울한 미래, 하지만 가슴 내어줄 법정스님과 같은 인자한 미소가 그 어디에도 없음이 그들의 이 시간을 더욱 아프게 만든다. 남은 이들에게 내어준 따스하고 인자한 형님의 목소리로, 법정 스님은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법정이란 이름 이전, '제철'형님의 시선과 목소리를 들려준다. 빛바래고 낡은 그 편지지 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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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후반에 한 신문에 칼럼을 쓰다가 우연히 초발심이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초발심(初發心)은 불가에서 처음 보리심을 일으켜 불문에 들어서려는 마음이다. 고기도 먹고 싶고, 여자(혹은 남자)도 알고 싶은 이가 모든 것을 한 곳에 쏟아붓는 불문으로 들어갈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일반 대중들이 생각하기 쉽지 않은 마음일 것이다. 고로 그 초발심은 부처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더 없이 소중한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범인들이 이성에 대한 사랑을 그리 오래 간직하지 못하듯 불문에 드는 이들도 그 초발심을 오롯하게 간직하기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고로 그 마음을 되새기고 더 큰 단계로 나가는 일은 그만큼 어려운 일일 것이다. 사실 견문이 그리 넓지 않아 깊은 가르침을 주는 종교인을 만난 기억이 없다. 종교의 스승들이라도 해도 내가 직접 대면할 기회가 없었으니 그저 등 넘어서 본 것이 전부이니 딱히 좋아했다고 할 만한 이도 없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도 많이 대면하고 느낀 이들 가운데 법정스님이 있다. 스님의 글을 접한 것은 신문을 읽기 시작하던 어릴 적이었을 것이고, 그후 다양한 저서들로 스님을 볼 수 있었다. 사실 본 것이 많다지만 스님이 나에게 각인된 것은 거의 없다. 그러던 중 얼마전 ‘마음하는 아우야’(녹야원 간)라는 책이 왔다. 법정 스님의 사촌동생인 ‘박성직’님이 엮은 이 책은 스님이 출가한 이후 친동생이나 마찬가지로 지낸 박성직님에게 보낸 편지의 모음이다. 1955년 출가전 정혜원에서 머물 때부터 1970년(사실상 1964년)까지 박성직님에게 모은 편지를 모은 것이다. 친동생처럼 지내던 이라지만 사촌동생에게 보낸 편지니 스님의 마음을 다 드러낼 수 없다지만 스님의 다양한 마음을 읽을 수 있으니 스님의 초발심을 볼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또 이런 마음을 나눌 이가 없었을 듯 하니 법정스님 연구에도 중요한 저작일 것 같다. 이 기간 법정스님은 출가 후 쌍계사 등에 머물다가 대부분을 해인사에 머물고 마지막에는 새로운 구도의 길을 떠나는 기간까지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상대방인 박성직씨는 잘음 모르지만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거나 가정 여건상 대학에 가지 못하고 군인의 길을 가게 되는 여정을 보인다. 편지는 자애로운 형이자 먼저 불문에 든 이로서 다양한 아량으로 뒤따라오는 이를 걱정하고, 깨우치려는 아름다운 의도를 볼 수 있다.(물론 편지의 내용으로 보면 그 의도에 부합하는 것 같지는 않다)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법랍 첫해에 법정이라는 불명을 갖는 이야기(46p), 독서와 외국어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우는 부분(62p), 불교가 결코 외딴 곳이 아니라 사람의 마을과 가깝게 있다는 이야기(74, 90p), 기독교에 대한 포용적 시각(112p), 실행에 대한 지적(148p) 등이다. 책은 법정스님의 젊은 날 친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또 처음 출가에서부터 본격적인 구도의 길에 들기까지 고결했던 스님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기록이다. 특히 낯선 표현이지만 ‘마음하는’이라는 표현은 느낌이 강하다. 아마도 마음에 가장 많이 남아있는 뜻으로 이 표현을 쓴 것 같은데, 어찌보면 속세와의 가장 깊은 끈이라는 점에서 더 인상적이다. 그렇지만 기록이 법정스님의 간고한 부탁으로만 진행되다보니 인터액티브한 느낌은 없다. 물론 법정스님과 균형을 이루면서 이야기를 끌어갈 정도의 내공을 가진 수신자를 기대조차 하지 않지만, 어떻든 수신자의 반향이 크지 않다는 점은 이 책을 읽는데 답답한 느낌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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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家書)', 집안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말한다. 보통 가장이 자식들에게 보내거나 남편이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가 대부분이다. 내가 군복무 중이었을 때 가장 많이 보낸 편지도 바로 집으로 부치는 가서였다. 이사를 하면서 대부분 태웠지만 피붙이인 가족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무엇보다도 절실하게 드러나는 장르가 바로 가서가 아닐까 싶다. 가서 중에는 문학적인 수준이 높은 작품도 많다. 예컨대 프란츠 카프카의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나 안토니오 그람시의 《옥중서고》, 심종문(沈從文)의 《심종문가서》를 추천하고 싶다. 유럽이나 중국과 같은 경우 어느 한 작가의 풍부한 서신 기록들을 비교적 완전하게 접할 수 있지만 유독 국내 작가들의 가서는 구경하기 힘든 편이다.
개인적으로 감동깊게 본 국내 작가의 가서는 다음 네 권이다.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김대중 선생의 《옥중서신》, 서준식 선생의 《옥중서한》그리고 마지막으로 법정 스님의 《마음하는 아우야》다. 요즘은 이메일과 문자메시지가 전통적인 편지글을 대신하고 있기에 국내 작가들의 서한집은 멸종단계에 이르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국내 문호들의 오래된 편지글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편집하여 많은 독자들에게 널리 읽혔으면 하는 바람을 표해 본다.
《마음하는 아우야》는 청년 법정의 인간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편지글을 엮은 책이다. 1955년 출가 전 전남대 학생 신분으로 정혜원에서 머물 때부터 출가 후 1964년까지 약 10여년간 사촌동생인 박성직에게 보낸 편지와 엽서를 모은 것이다. 편자인 박성직은 유년 시절부터 법정 스님과 한 집에서 같은 방을 쓰며 친형제처럼 자란 사이라고 한다. 피붙이인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인 만큼 대중을 향해 설하는 법문과는 다른 정취와 애정이 묻어난다. 예컨대 출가하면서 떠나야 했던 소중한 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애정이 묻어나고, 출가 초 책을 부쳐달라고 부탁하는 편지글에서는 지적 생활에 대한 열정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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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나는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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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인간적인 면모를 접하고 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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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내가 싫어하는 건, 하나의 무표정한 직업인이 된다는 것이다. 해서 나는 초연한 수도승이기보다는 하나의 자연인으로서 진리를 모색하는 철학도가 되고 싶을 뿐이다.
불교중에서도 종교적인 면은 나를 질식케 하지만 철학의 영역만은 나를 언제까지고 젊게 하고 있지... 물론 사회인에겐 살아가는데 직업이 필요할밖에.. 하지만 인간 본래의 양심이라든가 의지를 잃어버리고까지 거기에 얽매일 건 없을 줄 안다.
법정스님 법랍5세때늬 편지글 중에서...
마음하는 아우야는 법정스님께서 스님의 길을 선택해 가시면서부터 동생에게 보낸 편지들을 엮어낸 책이다. 법정스님의 성정이 그대로 나타낸 글들로 가득하다.. 저 문구는 내 마음을 크게 요동치게 만들었다. 나 또한 그렇다. 그렇게 살고 싶다..그렇게 나를 이겨내고 싶다.. 하지만 난 무엇 때문에..아니 무엇이 나를 그리 못하는 못난이로 만들었는가를 무수히 질문하고 있다.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을 내려 놓은지 일주일인데... 난 무엇을 선택해야하는지 알지 못한다. 앞이 캄캄한 미로에 박혀 있는 내게 스님은 무엇을 일깨워주고 계실까?
동생의 미래를 걱정하는 스님의 마음이..그리고 가족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글들로 넘쳐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을 아끼고 즐겨보시는 습관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 중엔 유달영의 인생노트라는 책도 있었는데..이 책은 왠지 꼭 읽어보고 싶어진다. 몇 번이고 동생에게 읽기를 강조했던 책이다. 갈팡질팡하고 있는 지금 내 삶에도 무엇인가 해답을 줄 것만 같은 이 느낌이 그냥 느낌이 아니라 현실로 만나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스님의 손글씨 편지들이 사진으로 함께 실려 있었는데 오래되어서 낡고 바랜 그 편지들이 정감가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가족을 등진 스님의 마음이 아팠던 만큼 퇴색되어져간다..
그렇게 스님은 마음의 수양을 위해 가족과도 이별하여 정진하심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모든 스님들이 그러했겠지만..이렇게 손글씨가 담긴 실편지이야기를 엮어낸 스님의 동생분의 마음도 헤아려질만큼 가족애가 든든하구나 싶기도 하다.
저 글처럼 나도 내 삶의 목표가 확실해지길 바람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