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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다. 구한말 우리의 근대사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허약함과 뒤떨어진 역사인식에 분노가 인다. 임진왜란을 당하고도 어찌 다시 일본에 먹히게 되었는지 그 아픔과 수난의 역사를 들쳐낸다는것은 정말 심기가 좋지않다. 어찌하여 우물 안 개구리 마냥 좁은 시각에 사로잡혀 밀려오는 침략적 외세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것일까? 제국주의적 열강이야 그렇더라도 이웃나라의 개혁적 변화와 영토확장의 탐욕은 충분히 인지하고 막아낼 수 있었지 않았을까? 가슴이 답답하다. 국사 시간에 배운 지식만으로는 일본의 내정과 속내를 제대로 알 수가 없다. 힘 센 놈이 시비를 걸어 다툼이 일고 얻어터졌는데 시비를 건 이유가 '그 녀석 심뽀가 그냥 고약해서' 정도 밖에 알지 못한다면 다음에 또다시 맞을 수 밖에 없다. 도대체 그 당시 우리의 주변국에는 무슨 일이 있었기에 침략국 일본은 아직도 제대로 된 반성없이 군국주의의 향수에서 우월감을 향유하는걸까? 이 책은 19세기에서 시작하여 청일전쟁 이후까지의 동아시아 역사를 다룬다. 근세는 중국과 일본이 류큐를 양속의 존재로 보고 갈등의 씨앗을 낳은, 조선이 영조와 정조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군주의 힘으로 발전을 이룩하던 시기이다. 근세 동아시아에는 공통의 질서가 존재했으며 그 질서는 대국인 중국을 중심으로 맺어진 것이었으나, 강제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서양의 출현으로 동아시아는 근세에서 벗어나 새로운 개념의 국가관과 경제관을 형성하며 근대를 향해 나아가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개항과 서양 문물의 도입 그리고 서양과의 무력충돌로 이어지는 숨가쁘게 전개된 조선, 중국, 일본의 근대 풍경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출판사 제공한 책 소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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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각 국마다 다른 시기를 뜻하겠지만 흔히 말하는 동아시아 3국, 한.중.일에게는 각자 공통적인 시대가 상당부분 들어갈 것이다. 한국으로 치면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를 흔히 근대라고 인식하며 일본의 경우에는 조금 더 이전의 시기부터 근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동아시아 3국이 공통적으로 격변의 시기를 맞았던 시기, 특히 3국의 관계가 더욱 격정적으로 변했던 근대의 시기를 각국의 주체적 입장이 아닌 3국을 아우르는 동아시아라는 무대를 통해서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책이 <다시보는 동아시아 근대사>의 의의라고 할 수 있다.
기실 동아시아 3국이 근대와 현대로 넘어오면서 일본이 열강의 위치로 올라서고 한국은 그 식민지가 되었으며, 중국은 세계 열강의 표적이 되고 힘들었던 시기를 보냈음을 감안한다면 이 세 나라의 역사관을 통합하고 하나의 지역의 역사로 통합하기는 쉽지 않은 노릇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일제시대를 통한 식민주의 사관이 고착화되어 아직도 그 뿌리가 깊이 남아있으며 또한 그 반대급부로 민족주의 사관 역시 지나치게 팽배해 있는 현실, 즉 양 극단으로 흐르는 극과 극의 역사관이 각자 살아남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부여잡고 있는 현실에서 이러한 중립적인 노력을 위한 지역사라는 관점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다. 그러나 현재 주류학계 역사관의 흐름이 포스트 모더니즘 사관, 즉 박노자씨의 거꾸로 보는 한국사 와 같은 책에서 잘 나타나는 기류로 흐르는 현실에서 언제까지나 민족주의 역사관과 식민주의 역사관 속에서 한국만이 고통받을 수는 없는 현실이며 그러한 와중에 이러한 책이 한권, 두권 계속 출간되고 한명, 두명의 독자에게 서서히 퍼질 수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인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좋은 의의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이 이해가 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수용하기란 쉽지 않다. 이것은 각국의 역사적 의미가 다르며 특히 한국의 경우 일제 강점기 악랄한 일제의 수탈을 경험한 나라, 즉 가장 적나라한 피해자의 입장에 서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이것도 하나의 큰 이유가 된다. 책은 동아시아를 입체적으로 분석한다는 논지 아래 철저한 객관화를 시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문체는 상당히 무미건조하며 한,중,일 세나라의 사정을 최대한 담아내려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 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특히 중국의 문제는 어느정도 단순,보편화 시켜놓았으며 일본의 입장에서는 더욱 긴밀한 관계를 가질 수 없는 한국의 입장, 그리고 그 한국을 상대한 일본의 입장을 상당히 자세하기 기술하였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동아시아3국의 근대사를 주도한 것이 일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아시아라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나 세계사적인 의미로 보았을 때 중국이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해본다면 일본을 위한 동아시아근대사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즉 책에서 차지하는 3국의 비중을 보자면, 물론 일본인이 일본인을 위해 썼기 때문이겠지만 동아시아의 근대를 지배한 것은 일본이라는 생각이 당연히 들게 만든다. 이것은 이 책에서 본인들이 서술한, 일본이 그간 자신들의 영토를 보존하는데에서 급급한 시기를 지나 어느정도 세계 열강의 반열에 오를 기틀을 마련하자 자신들을 과시하는데 천착했다는 것을 그대로 다시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그리고, 이 책이 수용받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한 지역사가 그 지역의 지배자를 정당화시켜줄 수 있는 논리를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비판은 책에서도 스스로 알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지역사를 입체적으로 구성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역사의 보이지 않는 흐름과 파편들을 알 수 있는데 장점이 있음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이러한 입체적인 지역사가 수반하는 위험성이 감소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사라는 것은 주고 받음의 흐름의 표시를 나타낸다고 했을 때, 그 지역의 지배자가 주고 받은 흐름 위주로 재편성될 수 밖에 없으며 이것은 지배자의 시선으로밖에 쓰여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이러한 지역사 위주의 책들이 계속 편찬된다면 결국 상대성의 논리의 무절제함에 따라서 지배자의 패악질은 그럴 수 밖에 없었던 현실상황이라는 명목아래 묻히게 될 것이다. 19세기부터 20초중반까지의 세계 열강의 모습은 비이성과 무절제함, 인간 이성을 앞세운 불합리의 극치의 장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던 시대를 입체적인 지역사라는 명목으로 합리화시키려는 노력은 그 당시 열강들의 식민지 수탈과 죄악으로 부를만한 잘못들을 합리화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밖에 존재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이 책을 볼 필요가 있다.
역사는 중요하다. 그리보 바른 역사를 아는 것은 더욱 중요하며, 특히 한국과 같이 근대화, 현대화가 급격히 진행된 나라에서는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겪었을 바로 그 근,현대사를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 근,현대사가 바로 우리의 현실을 아직도 짓누르는 경우가 한국과 같은 빠른 근대화의 부작용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오늘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보았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중,고등학교의 국사 교과서에서 근,현대사의 비중을 줄이기로 했다는 기사였다. 나의 근원적 뿌리는 어디인가가 중요한가? 아니면 역사란 무엇인지, 우리의 바로 전세대들은 어떠한 문제를 겪었고 그에 따라 우리는 어떤 문제에 아직도 직면하고 있는가가 중요한가? 그리고 그 중요한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각국의 입장을 수용해야 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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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히로세 다카시의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를 통해서 1945년 이후 전 세계에서 일어난 전쟁의 역사를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보니 동아시아지역은 적대적인 세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여전히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곳이란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지난해만 해도 천안암사건에 연평도 포격사건이 잇달아 일어났고, 북한의 핵무장이 국제적인 관심으로 떠오른 지 오래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와 같은 일련의 상황은 한반도가 남북으로 나뉘게 된 역사적인 배경이 동아시아지역이 열강이 힘을 겨루기 시작한 18세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작게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 전후처리과정에서 유럽과는 다른 행보를 거듭해온 일본에서 최근 우익인사들의 돌출발언이 잦아지면서 한국과 중국 사회의 반응이 들끓어 오르는 사례가 반복되면서도 근원적 해결점으로부터는 여전히 멀리 떨어진 곳을 헤매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 격렬해지고 있는 동아시아지역의 국경분쟁 역시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역사적 갈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동아시아지역의 근대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각국의 시각으로 해석한 근대사들은 나오고 있지만, 동아시아국가 즉, 한국, 중국 그리고 일본을 통해서 3국의 역사를 중립적으로 꿰뚫을 수 있는 시각을 가진 전문가들이 없는 탓에 이들 국가들이 어떻게 얽혀 동아시아지역의 역사를 써온 것인지 정리되지 못했다고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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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역사를 되새기면서 우리는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과연 공평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세계사라는 거대한 틀을 벗어나서 일국의 자국사나 그를 둘러싼 지엽적인 지역사를 다루던 간에 자국사에 대한 시각과 그를 평가하게 되는 시각은 공평할 수 없는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속된 말로 역사는 지난날 자신들의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뒤태까지 까발려야 하는 부담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랑케는 실증사학이라는 학문적 접근방법을 주장하면서 최대한 공정한 시각으로 역사를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고 근대사학의 길잡이 역활을 해왔다. 하지만 대의는 실증사학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외치지만 실상 내막은 그러지 못한 경우가 다반수이고 우리는 그러한 실례를 멀리서 찾을 필요 없이 비행기로 두시간안에 닿을수있는 일본땅에서 수도 없이 보아왔다. 매번 역사적인 문제가 대두될때마다 이해할 수 없는 그네들의 행동앞에서 랑케의 실증사학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음을 목도해 왔던 것이다.
이번 출간된 <다시보는 동아시아 근대사>는 출판사나 역자의 간략한 리뷰에서 "일본사학자들이 4년이상이라는 공을 들여 그룹학습과 토론을 거듭 통해 숙성해낸 완성도 높은 지역사로 그 당사자인 한국인들이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근대라는 이미지와와 다를수도 있지만 생각지 못한 측면을 일깨워주기도 하는 근대의 다양한 측면을 보강해 나가는 자신이다" 라고 평하고 있다. 일면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그동안 우리가 근대사를 논할때 정점은 중국(청)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던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이에 반해 러시아나 미국, 영국의 움직임에 대한 집중은 그리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 역시 사실이기도 하다. 이번 저서에서는 이렇게 생각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통찰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새삼 당시 시대상을 조명하는데 분명히 도움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인 정치사의 입장에서 과연 러시아, 미국, 영국의 움직임을 놓치고 중국측에 집중 조명했왔던 시각 자체가 틀렸다고 할 근거는 미약하다고 할 수 있다. 중국(청)과 우리(조선)의 관계는 일본(왜)이 바라보는 시각 그 이상의 의미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여기서 이러한 역학관계를 논할 필요는 없어 보이지만 일본측의 이러한 시각은 왠지 촛점을 비켜가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게 만든다.
선입관 특히 일본(왜)에 대한 선입관을 최대한으로 거두고 이 책을 바라보더라도 불편한 심기를 거두긴 만만치 않은 일이다. 저자들은 근세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그 타당성과 새로운 학문적 접근방식을 서두에 논하면서 마치 독자들(한국이나 중국 독자들에 해당될 것으로 판단된다)에게 무엇인가 새로운 동아시아사를 접하게 될 것 같은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근대개념과 당시 청, 조선, 왜의 근대화과정과 이전의 정치적인 상황을 상당히 객관적인 견해를 피력한다. 특히 일본의 막부와 다이묘의 관계 그들의 정치적 역량과 조선 통신사를 바라보았던 당시의 시각들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라 더욱더 흥미를 자극하게 되고 생각지 못한 부분에 대한 근대의 접근이 눈에 띄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마지막장에 국제 공공재라는 제하로 논한 부분에서 많은 부분들이 상당한 공감을 갖게 한다. 그동안 정치사에 휘둘린 동아시아사를 새롭게 접근해볼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시각과 접근의도로 이 책이 시작부터 끝까지 진행되었다면 정말 다시보는 동아시아라는 제하에 딱 어울릴것으로 보이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서술에서 이러한 좋은 의도가 희석되어 버린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비단 국수적이고 보수적인 한국인의 시각만일까라는 생각을 지울수 없게 한다.
전반적으로 동아시아사를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시각에 크게 변화가 없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게 한다. 페리에 의해 강제 개항된 자신들의 입장과 미국과의 조약은 불평등 그자체였다는 발상이 청과 조선을 상대로 체결한 조약는 당시 국제공법에 의해 행한 조치였다는 관념, 청일전쟁의 발단이 조선의 유유부단하고 친중국적인 성향에 의한 자업자득이었다는 시각... 굳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많은 부분에서 자국(왜/일본)편향적인 시각이 그대로 상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혹시나가 역시나라는 생각을 지울수 없게 한다. 물론 몇몇 부분에서 잘못을 시인하고 있지만 이런 부분만으로 전체 사관을 덮을 수는 없어 보인다. 또한 학문적인 접근에서 감정적인 부분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도 있지만 그 학문적 견해 저변에 깔려 있는 사관의 옳고 바름을 먼저 지적하지 않고서야 어디 제대로된 학문적 접근이 가능할 수 있을까 싶다.
이 책의 집필의도가 지엽적인 지역사를 벗어나 좀더 광의적이고 입체적으로 근대 동아시아사를 제고하자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점과 그 성과를 폄하하거나 무시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광의적이고 입체적인 사관의 정립을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실증적인 역사의 접근과 그에 대한 솔직한 반성의 전제 없이 단순 서술 나열식의 역사적 접근이 의미하는 바는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책으로 인해 다시한번 일본인들의 역사인식을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또한 우리의 입장에서 근대 동아시아사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도 다가오는 것 같다. 이런 측면에서 일본은 항상 우리에게 신선한(?) 자극을 제공해 주고 있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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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동아시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어떤 사회가 존재했고, 또 서로 어떤 역사적 관계를 맺고 있었을까? 『다시 보는 동아시아 근대사』는 그런 기본적인 물음에 답하고자 편찬한 책이다. “동아시아”란 19세기 기준으로 말하면 주로 일본, 조선, 청나라 삼국으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이 책은 삼국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거기에 러시아, 영국, 미국 등 서양 국가들의 움직임을 연관시켜 동아시아의 역사를 기술한다. 또한 동아시아 각국의 역사 연구에서 대표적인 일본 역사학자들이 4년이라는 오랜 기간에 걸쳐 그룹 학습과 토론을 거듭하며 숙성해낸 역사서술이며, 일본에서 출판된 첫 동아시아사이다. 각 장(章)의 말미에 첨부한 논평을 통해서는 하나의 해석이 아니라 다른 시각의 연구도 접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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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에게 동아시아 근대사란 어떤 의미일까. 우리가 가진 시선은 어쩔 수 없이 핍박과 수탈의 식민지 시대에 오랫동안 머무를 수 밖엔 없는 것 같다. 과거사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기보다, 과거의 우리나라를 점령하여 만행을 저질렀던 일본에 대한 악감정만이 가득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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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동아시아 근대사는 중국, 일본, 한국의 개항기를 중점으로 다룬다. 책의 취지가 일본 국민이 중국인, 한국인과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며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것이기에 보다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이 책이 다루는 범위는 개항 초기로 청일 전쟁까지의 시기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에 대한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머리말에 저자는 [20세기 편]이 출간 예정을 앞두고 있다고 밝혀, 이 책이 동아시아 삼국이 사실관계에 있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부분을 다루기 위한 기반이 되리라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