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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에 나의 마음을 담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멋진 글도 아니었지만, 그것을 보면서 작가의 슬픔도 느끼고 행복을 보았으며, 삶의 지혜를 느낄 수 있었다. 생각이 없이 보았을 때는 몰랐던 많은 생각이 한 폭의 그림으로 탄생한 것이다. 어쩌면 그림 속에서 복잡한 여러 마음이 들어있기도 하고, 여러 마음이 한 마음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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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술이라고 하는 장르와 거리가 멀고도 너무나 먼 사람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항상 예술 분야에 능력있는 예술가 뿐만 아니라 주위에 조그만 능력을 가지고 있는 분들만 보아도 부러움 이상의 가슴 떨림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예술이라고하면 많은 분야가 있겠지만 오늘 이야기 하고자 하는 분야는 '미술' 입니다. 이번에 만난 책은 KBS에서 특별기획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 미술>에서의 아쉬움을 보완하는 방법으로 방송에 담지 못한 부분까지 담아 책으로 출간을 한 것 입니다. 국내 최초로 '미술사' 다큐멘터리를 기획하며 나와같은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미술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결코 쉽지 않을거야라고 했던 처음 걱정보다는 한편으로 재미있고 또 한편으로는 생소한 이름과 용어들로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크게 다섯 개의 파트로 피렌체, 파리, 뉴욕, 영국, 아시아의 지역을 구분하여 주요 이슈와 빼놓을 수 없는 미술사에 대해 여러방향에서 들려주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정신을 이어받은 르네상스 시기의 미술 시장부터 아시아 현대미술까기 재미나고 유익한 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꼼꼼히 다룬 것 같은데,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책을 만나기 전에 먼저 TV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미술>을 만났다면 복습하는 마음으로 조금 더 쉽고 받아들이는게 빠르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다큐멘터리와 책에서 이야기 하고자 했던 이슈는 세가지로 첫째, '미술의 진화는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둘째, '미술은 돈이다.' 세째, '맨 얼굴의 미술, 그 진정한 의미'를 느껴보도록 구성했다는데 이 점을 생각하며 책을 읽고, 그림을 보니 무언가 내 안에 들어오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 이였던 것 같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는 초등학생들도 알고 있는 매우 유명한 그림으로 초상화의 실제 주인공이 누구인지에 대해 찾아 나가는 모습은 실제 그들을 따라 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때부터는 초상화가 왕, 귀족, 성직자들의 전유물에서 상인 계급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은 저명한 예술가에게 초상화를 의뢰할 수 있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나리자의 미소가 가지고 있는 신비스러움과 인물에 비해 흐릿한 풍경의 대기원근법을 통한 원근감 그리고 X-레이투시에서의 특수성 등에 대한 해설은 레오나르도가 가장 위대한 예술가로 꼽히는 이유임에 고개가 끄덕여 짚니다. 미소에 대해 총체적인 연구를 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 모나리자의 미소를 다시한번 쳐다보게 됩니다. 정말 웃고 있는 것일까요? 그 미소의 뜻이 무엇인지 무척이나 궁금해지는 것은 다시 보면 볼 때마다 생각이 많아지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정말 예술 아니 미술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을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깨닫게 됩니다. 아니 예술 뿐만 아니라 세상에 모르는게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관심이 없다는 말로 해명 아닌 변경을 늘어놓기에는 한참이나 부족할 것 같지만 말입니다. 특히, 두 번째 파트에서 마네의 '올랭피아'와 누드의 미술사를 만나면서 누드화에 대해 다같은 누드화가 아니였고 시대적 배경이나 신화에 대한 허식으로 쌓여 있던 시기의 누드에 대해 다소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올랭피아'로 인해 변화되어가는 사회를 꾸미지 않고 담아낸 미술의 시작이라는 생각에 동의하고 싶습니다. 물론 이것은 21세기라고 하는 시점이기에 되돌아 보며 판단하는 것이겠지만 말입니다.
세 번째 파트에서는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얼굴을 만나게 됩니다. '오렌지 마릴린'이라는 작품 속의 주인공 '마릴린 몬로'는 '앤디 워홀'의 대표작이라고 합니다. 현대미술에 있어 순수와 상업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앤디 워홀'은 대중의 스타로 자리 잡았다는데 그 대중에는 아직 저와 같은 사람은 조금 거리감을 느끼는 것은 순수와 상업의 경계마저도 다가서기 부담스러워하는 위치(?)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대중을 위한 미술에 대중이 함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대중을 위한 미술이 아니지 않은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가장 마음에 와닫는 문장을 만났습니다. 아마도 미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스스로 위안을 삼고자해서일지 모르지만 너무나 마음에 와닫는 문장입니다. 이 문장과 함께 영국의 미술에 대한 지원 프로모션에 대해 다시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국가가 운영하는 미술관의 입장료 뿐만 아니라 미술품을 살 때 돈을 빌려주는 제도와 예비 작가들에게 도움을 주는 행정은 단순히 선진국이라는 단어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드디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미술 이야기를 만나 봅니다. 아시아를 만나면서 미술과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몇 년전 미술품으로 로비를 했던 뉴스가 머리속을 맴돌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술에 있어서도 중국의 위치에 대해 대단하다는 생각보다 두려움을 먼저 느끼는 것은 왜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또하나, 세상은 돌고 돈다는 명언이 생각납니다. 돈도 미술도 그리고 세상을 이끌어 가는 힘도 돌고 도는 것 같습니다. 미술도 이끌어 가는 힘의 중심에 의해 돌고 도는 것을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 <다큐멘터리 미술>은 미술을 포함한 예술이라는 분야에 몰라도 너무나 모르는 내게 따뜻한 책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책에서 설명한 작품들을 다시 한번 누구에게 설명하라고 하면 솔직히 겉핥기 식으로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데미언 허스트'의 좋은 문장 처럼 보기좋고 가슴으로 느끼는 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것 같습니다. 좋은 것을 좋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멀어도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던 미술이 조금은 아주 조금은 가까이 다가온 것 같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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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그저 고고하고 도도한 것, 속칭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일 뿐이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 미술>을 통해 너무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고차원의 세계라는 편견이 와장창 깨져버리는 순간을 만났다. 특히, 책은 터놓고 말한다. ‘미술은 돈’이라고. 여기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소리지? 하나의 이미지만으로 함축적이고 고차원의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라는 높은 성 아니었던가? 그런데 ‘돈?’ 의문 다음엔 곧장 궁금증이 일었다. 호기심이 발동하면서 ’미술‘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탐하게 되었다.
처음엔 무척 낯선 구성에 놀랐다. 그 유명한 ‘모나리자’를 이야기하면서 최근 광고에서 많이 듣게 되는 ‘메디치가’의 예술 후원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단지 하나의 작품과 짤막한 그림 이야기에 국한하지 않고 있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와 그의 작품 세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미술의 시기별 분류가 ‘도시’라는 공간의 이동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정치, 경제, 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었던 ‘예술 수도(피렌체-파리-뉴욕-런던-베이징)’ 중심의 횡적 구성이 가미되어 미술사의 흐름이 훨씬 입체적으로 다가와 쉽게 이해되었다. 미술과 그 시대, 그 공간의 역사과 문화, 정치가 어우러져 더 풍성하고 다채롭게 다가와, 읽는 내내 흥미진진했다.
그렇게 공간과 시간이 예술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과정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돈’과 미술의 관계엔 물음표가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에 <도시의 승리>라는 책을 펼치게 되었는데, 첫 머리에 “왜 그토록 많은 예술 운동들이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도시들에서만 그렇게 빨리 일어났을까?(15쪽)하고 묻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다큐멘터리 미술>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핵심이 정확하게 느껴졌다. 그동안 예술은 고고한 것이라는 편견에 갇혀, 스스로 그 본질, 가치에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물론 아직도 그 천문학적인 거래액엔 입이 ‘떡’ 벌어지고, 여전히 난해함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깊은 감흥은 멀기만 하다. 하지만 이 책을 계기로 우리가 예술에 대해 왜 떠들고, 그 가치와 의미를 생각하는지 조금은 눈을 뜰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 미술>은 시공간 속, 예술, 미술사를 좀 더 쉽게 들려주면서, 그를 통해 자본과 권력, 그리고 시대에 대한 깊은 고뇌와 통찰, 문제 제기와 담론의 확장, 갈등의 증폭과 반발 등등 다분히 인간적인 면모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미술이라는 것이 우리는 비쳐 주는 거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듯, 훨씬 가까워진 느낌이다. 이제 우리는 미술이 솔직 담백하게 드러낸 이야기, 우리의 모습에 때론 격분하고 때론 위로받으면 되지 않을까? 미술이 불러일으키는 우리 안의 울림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우리의 삶이 훨씬 ‘괜찮게’ 다가오지 않을까? 맨 얼굴의 미술,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과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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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예술이 상업성 및 권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메디치 가문이 자신들의 이미지를 위해 예술가들을 후원했던 일화와 교황이나 기독교의 지원들이 말하고 있다. 처음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모나리자에 대해서 자세하게 쓰여 있다. 모나리자는 묘한 미소로 유명한다. 그 미소가 관객과 그림이 교감할 수 있게 만든다고 한다.
피카소는 실패를 몰랐다고 한다. 화상을 잘 만난 피카소의 작품은 갤러리를 열면 성공적이었다고 한다. 천재 소리를 들었던 피카소의 가치는 지금도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다.
예술의 주무대가 변화했다. 권력, 자본에 따라 예술가들도 이동하고 주무대도 변하는 것이다. 처음 이탈리아가 중심이었다면, 이후에 파리 그다음에는 미국 뉴욕이 되었고, 다음의 주무대는 중국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중국 화가들의 작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이러한 예술의 상업성을 꿰뚫어본 사람이 있었으니, 앤디 워홀이었다. 앤디는 예술에 상업성 입혀서 공장에서 찍어내듯 스타들의 그림을 찍어냈고 그의 작품은 허술해 보여도 비싸게 팔려나갔다. 미국 시장은 스타를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대충 물감을 뿌린 듯 그린 화가도 유명한 스타가 되었다. 그런데 예술이 너무 상업적으로 변해버린 것 같아 가치가 변한 것 같아 씁쓸하다. 앤디, 당신의 말은 현대 사회에서 맞는 말일 지라도 그건 예술이 아니라 비즈니스 라고 말해주고 싶다. 뭐, 미술 뿐 아니라 음악 또한 예술의 경계를 넘어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 무한도전 멤버 곡이 일등하고 그런 것 보면 예술성 보다는 상업성이 예술을 지배해 버린 것 같기 때문이다. 아무튼, 앤디 같은 마인드를 가진 예술가들이 미국에서는 각광을 받는다. 그들은 예술가가 맞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