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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크래시> 도처에서 자동차를 하나의 섹스 판타지로 사용했고 현대 사회의 삶에 대한 총체적 은유로 사용했으며, 테크놀로지를 근간으로 한 최초의 포르노그라피 소설이다. <크래시>의 궁극적 역할은, 테크놀로지가 판치는 풍토의 언저리에서 인간에게 마냥 그럴싸하게 손짓하며 잔인하고도 에로틱하고 눈부신 세상에 대한 훈계와 경고이다. 크래시(crash)는 ‘자동차 충돌’이나 ‘항공기 추락’ 등의 <사고>를 뜻한다. 새로운 스타일의 TV 과학자 1세대, 컴퓨터 전문가 로버트 본 박사, 그의 목표는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타고 있는 자동차와 충돌하는 순간 극락의 성적 쾌감을 느끼며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러나 본은, 여러 차례 충돌 사고를 자행하며 죽음을 예행 연습해왔건만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차에 꽂혀야 할 자신의 차가 여행객을 잔뜩 실은 공항버스 지붕을 뚫고 들어가면서 죽음을 맞이한다.
사람과 자동차의 이종교배(異種交配)가 빚어내는 그로테스크한 공포를 즐기는 본과 발라드. 자신의 육체를 자동차에 실어 스스로 파괴함으로써 얻어지는 성적 욕망과 에로틱한 몽상을 구현한다. 주인공 발라드는, 사고 난 자동차와 충돌하면서 빚어진, 배설물과 파열된 자동차 부품들을 머릿속에 오버랩 시켜가며 카섹스에 심취해 있다. 심지어 덜커덩 지나가는 차의 진동만으로도 오르가슴에 도달하고, 과거의 트라우마 조차 성적 흥분제가 된다. 본과 발라드는 각자 자동차 충돌에서 빚어진 사고현장을 보면서 성적 환희에 휩싸인 가운데 우연찮게 맞닥뜨린다. 본은 마치 관음증 환자와도 같이 자동차 사고 현장을 매순간 카메라 셔터에 담아낸다.
발라드의 자동차 사고로 미망인이 된 여의사 헬런과 죄책감 없는 카섹스를 나누고, 아내 캐서린에게 성적 파트너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개의치 않으며, 심지어 캐서린은 헬런을 계속 만나라고 부추기기까지 한다. 한 공간에서 잠만 잘 뿐 윤리의식이라곤 먼발치에 떠다민 이들 부부의 깨어진 성 의식이 참으로 당혹스럽다. 크래시에 등장한 인물들은 하나 같이 성도착증 환자, 변태성욕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선정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게 하는 궁극적인 이유인즉, 노골적으로 드러내놓고 섹스를 얘기하기 때문이며 감정을 밀어내고 기계적인 행동에 기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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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초현실주의 작가 제임스 발라드의 대표작 『크래시』. 인간의 에로티시즘과 욕망을 말하는 문학 시리즈 「에디션 D」의 두 번째로, 인간 내면에 숨겨진 은밀한 욕망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영화 <크래시>의 원작소설인 이 작품은 자동차로 대변되는 테크놀로지와 그것을 페티시로 느끼는 섹슈얼리티의 결합을 소재로 삼았다. 자동차와의 충돌을 통해 성욕을 느끼고, 상대방의 외도를 상상함으로써 오르가슴에 이르기도 하는 인물들. 정상적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성적 쾌감을 묘사하고 있지만, 작가는 이러한 적나라한 표현 속에 은유와 상징을 숨겨놓았다. 강렬한 문체와 비범한 상상력, 기괴한 접근이 돋보이는 문제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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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흥분과 욕구 충족만이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의 전부는 아닐 테지만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과 현대 테크놀로지의 결합이 이처럼 끔찍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니 충격이었다. 자동차 사고를 통한 충격과 상처의 아픔에서 더 큰 성적 흥분과 욕구 충족의 희열을 발견한 등장인물들의 사고방식이 문장으로는 이해가 되어도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기가 너무나 힘들고 불편해서 읽는 내내 거북하고 고통스러웠다.
이 소설은 스토리적인 재미보다는 가학적이고 피학적인 인간의 욕망이 충족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는 점이 특징인 작품이다. 사고 현장의 끔찍하게 훼손된 시신이나 남은 흔적, 파괴된 자동차 부품들의 형태를 보면서 테크놀로지가 개입된 인간의 성행위를 더 높은 단계의 쾌락의 열쇠로 여기고 심지어 그 궁극의 경지를 그런 상태에서 죽는 것으로 생각하는 모습들은 인간의 자기파괴적인 상상력의 한계가 어디까지 그 폭과 깊이를 더할 수 있는지 가늠조차 하기 힘들게 한다.
올바른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정상의 범주를 넘어서는 욕구 충족의 수단들이 인간 대 인간을 넘어 인간과 기술의 산물들과의 결합으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은 향후 인간의 건전한 욕망의 정의가 상당히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예상해볼 수 있게 한다. 예전에는 금기시되었던 많은 것들이 오늘날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처럼 말이다. 세상이 어떻게 변해갈지 정말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극단적인 일들이 계속해서 새롭게 드러나고 있으니... ‘크래시’는 오늘날 우리가 점점 인간적인 것을 잃어가고 있는지 아니면 새로운 요소들이 포함됨으로써 인간성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한 것인지를 묻고 있는 문제작임에는 틀림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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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발라드가 쓴 크래시는 현대인의 과잉된 성적욕망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책 속에 등장인물은 범인의 눈으로 보기엔 정상적인 사람이 하나도 없다. 외도를 통해 성적자극 충족시키는 발라드 캐서린 부부와 자동차 사고에 강한 에로티시즘을 느끼는 본이 주요 인물이다. 본은 유명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차를 들이받고 여배우와 오르가즘을 느끼며 죽는 게 목표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발라드는 아내 캐서린이 있지만 서로 합의하에 외도를 즐기고 있다. 어느 날 발라드는 헬렌의 차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한다. 헬렌과 다시 만난 발라드는 차안에서 격렬한 성관계를 가지게 된다. 발라드는 헬렌을 통해 본을 처음 만난다. 본은 오직 자동차와 자동차 사고를 통해서만 성적 쾌감을 얻는 인물이다. 본은 발라드를 보자마자 그의 사고흉터에 깊은 관심을 표하며 사진까지 찍는다. 본과 인연이 깊어질수록 발라드와 아내 캐서린 또한 본의 성적 충동에 동참하게 된다. 결국 발라드는 캐서린과 자동차 사고를 낸 뒤 성관계를 가지며 강한 성적쾌감을 느낀다. 등장인물의 궁극적인 목표를 성적 자극과 극한의 쾌락 추구다. 이를 지켜보는 독자는 무척 불편해지게 된다. 이들은 자동차와 자동차사고를 통해 성적욕망을 충족한다. 작가가 이들의 성관계를 기계처럼 표현한다. 이들의 성관계는 브레히트가 말한 소격 효과처럼 독자에게 전혀 공감가지 않는다. 심지어 야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노골적인 묘사와 관계의 횟수 상당함에도 오히려 읽을수록 껄끄럽고 불편하다. 그렇지만 그것이 이 작품의 새로움이자 매력이다. 소설은 독자의 일반적인 상식에서 상당히 멀리 가 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도 봤지만 제임스 발라드의 필력이 고스란히 담긴 소설이 더욱 충격적이다. 오히려 영화는 조금 자극적인 야한 영화 정도에 머문다. 글이 가지는 힘이 크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 강렬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힘들지만, 동시에 두 번 다시 읽기에는 두려운 책임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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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태양의 제국(The Empire of the Sun)>을 본 사람들이라면 원작자에 대해 호기심을 품은 적이 있을 법하다. 영국 작가 제임스 발라드(James Graham Ballard, 1930-2009)가 바로 원작자인데 그는 상해 포로수용소에 머물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반자전적 소설인 [태양의 제국]을 완성했다. 그러나 그를 뉴웨이브 공상과학의 기수로 만든 대표작은 1973년도 작품 [크래시(Crash)]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도착적 에로티시즘과 테크놀로지적 페티쉬를 그린 도발적인 초현실주의 작품으로, 1996년 캐나다 감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David Cronenberg)에 의해 영화화 된 바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이 소설을 자신의 시뮬라크라(simulacra)이론을 재현한 작품으로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저자는 2009년 4월19일 78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크래시]는 탈묵시론적 디스토피아 장르에 속하고 자동차라는 탈것을 근간으로 한 최초의 포르노그래피 소설로 평가받는다. 저자는 포르노그래피를 "인간이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이용하고 착취하는지를 다룬 가장 정치적 형태의 소설"이라고 평하는데, 그렇다면 이 책은 인간과 테크놀로지가 서로를 어떻게 이용하고 착취하는지를 다룬 가장 초현실적 형태의 포르노그래피인 셈이다. 포르노그래피의 도착적 시선은 차체(車體)의 선과 질감, 신체의 흉터, 그리고 신체와 차체의 결합에 꽂혀 있다. 등장인물들이 자동차 충돌사고를 성적 페티쉬즘으로 삼는 변태성욕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성적 쾌락과 죽음 충동간의 밀접한 관계에 주목하게 된다.
등장인물들은 자동차 충돌사고를 통해 오르가슴을 느끼고, 자동차 사고가 남긴 신체의 흉터와 그로테스크하게 구겨진 자동차 파손을 보고 성적 쾌감을 느낀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육체와 기계체(機械體) 상호간의 파괴적인 이종 결합에 성적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남자 주인공은 TV 광고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발라드와 컴퓨터 전문가 로버트 본 박사 두 명이다. 그리고 이 둘을 둘러싸고 캐서린, 헬런, 가브리엘 등의 여성 인물들이 등장한다. 발라드가 우연한 자동차 충돌 사고로 기이한 성적 판타지에 눈을 뜨게 된 '멘티'라면, 본은 발라드에게 자동차 충돌의 에로티시즘을 구체적으로 전수하고 지도하는 '멘토'에 해당한다. 본은 남녀의 육체에 끌리지 않고 오히려 자동차의 내부구조와 파열된 외적 형태에 끌린다. 본은 인간의 몸에 자연적으로 교감하지 못하는 성적 불감증에 걸린 양성애자로 볼 수도 있다. 본의 궁극적인 성적 판타지는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탄 차와 자신이 탄 차가 서로 충돌하여 죽는 것이다. 결코 순애보라고 말할 수 없는 이런 괴이한 도착적 욕망을 구현하기 위해 본은 오래전부터 교통사고로 왜곡되고 손상된 신체와 차량을 찾아 다니면서 자기만의 '성애 교과서'를 준비하고 이에 맞추어 예행 연습을 기획한다.
"본은 자신을 소멸시키려고 상상의 자동차 사고와 기괴한 상처가 실린 처참한 연감을 만들었다. 문 손잡이에 찔린 노인의 허파, 핸들이 관통한 젊은 여인의 가슴, 삼각창의 크롬 걸쇠에 찔린 잘생긴 청년의 뺨. 그에게 이런 상처는 도착된 테크놀로지가 낳은 새로운 성욕을 열어 젖히는 열쇠였다. 그의 마음 속 갤러리에 이러한 흉터 사진이 마치 도살장 박물관에서 열린 전시회처럼 걸려 있었다."(15쪽)
"본은 끝없이 유명인의 죽음에 대해 상상했고, 그들을 위해 가공의 자동차 사고를 짜냈다. 그는 제임스 딘, 알베르 카뮈, 제인 맨스필드, 존 케네디의 죽음을 두고 정교한 판타지를 엮어왔다. 그가 펼친 상상의 세계는 영화배우, 정치인, 경제계 거물, 방송국 임원을 주인공으로 한 갤러리 같았다. 본은 카메라와 줌 렌즈를 들고 어디든 따라다니며 공항 오셔닉 터미널의 전망대에서, 호텔 2층 발코니와 스튜디오 주차장에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각각 한 사람씩 최적의 자동차 사고를 짜냈다."(19쪽)
일반적으로 자동차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지닌 성욕과 성적 환상의 오브제로 기능하고 동시에 세계의 테크놀로지화를 상징한다. 그리고 자동차 충돌사고는 성적 오르가슴을 이끌어내는 기폭제가 된다. 남성인 본과 발라드에게 자동차와 흉터는 여성성의 오브제로 기능하지만, 여성인 캐서린과 헬런에게는 자동차 자체보다는 자동차 충돌이 가져오는 파괴적 충동이 과장된 남성성과 겹치면서 원시적인 성적 쾌감을 이끌어 내는 것 같다.
참고로 이 책의 편집에 대해 약간의 조언을 첨부한다면, 일단 본문에 실린 옮긴이의 주를 다 없애기 바란다. 독자층을 넓히려면 표지 그림을 교통사고로 만신창이가 된 자동차로 바꾸면 어떨까 싶다. 이성애나 양성애가 아닌 인간과 기계와의 성적 판타지가 테마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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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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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시. 영국 작가 제임스 발라드 원작으로 이 작품이 나온후 영국에서는 호평과 혹평이 오가며 논란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1996년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우리나라에서도 소개됐었고, 논란속에 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흔히 야한 창작활동을 보고 예술이냐, 외설이냐 말들이 많은 경우를 볼수 잇는데 소설로 따지면 이 작품이야말로 외설적인 3류 소설이냐, 인간 내면의 외설성을 잘 표현한 수작이냐 분류하기가 힘들겠다.
1996년 <크래시>가 영화로 나왔을때 난 비디오방에서 이 영화를 봤었다. 그때는 원작 소설이 있는지도 몰랐고, 또 작품성을 따져 고른 영화가 아니라 심심풀이 시간을 죽일 목적으로 대학친구놈들과 함께 대학가 비디오방을 찾았더랬다. 남자들 서넛이 모여 뭘볼까 한참 망설이다 그럴듯하게 (야~한) 표지의 이 작품을 선택하면서 기대감에 젖었었다. 하지만... 에로티시즘도 동양과 서양의 미묘한 차이가 있는걸까? 홍콩에서 만들었던 '옥보단'엔 환호하며 몰입해 빠져들던 우리들이 '크래시'를 보곤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저 주인공들을 향해 '뭐 저런넘들이 다 있나~' 했을뿐. 도무지 감정이 몰입되지도, 주인공들이 이해되지도 않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끝까지 보지못하고 다른 테잎으로 바꿔서 봤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한마디로 말해 에로티시즘을 표방했지만 적절히 야하지도, 이해되지도 않는 난해한 에로티시즘이었다.
이제 15년이 지나고서야 원작 소설로 다시 만났다. 그때 잠깐 봤던 영화와 지금 나이들어 원작을 보면서 어떤 차이가 느껴질지 내심 기대하면서 책을 읽었다. 그런데.. 내가 느낀 소감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게 없다. 이상한 성적 취향을 가진 발라드와 캐서린 부부. 그리고 이들에게 나타난 본과 헬런. 이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상적인 성생활이 아니라 '변태'적인 성생활을 적나라하게 묘사해낸다. '성욕'이란 자연스런 인간의 욕구일진대 이렇게도 변형이 되고, 변질될수도 있구나. 영화를 볼때처럼 소설을 읽기도 뭔가 불편하다. 특히 남자 주인공의 이름을 작가의 이름과 동일한 제임스 발라드라 붙여 얼핏 독자들에게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로 착각하게도 만든다. 또 모르겠다. 실제로 원작자가 소설속 주인공과 같은 성적 취향을 가졌는지도... 왠만한 성적 자극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다가 자동차 사고를 통해 오르가즘을 느끼고 이후 차사고로 생긴 상처를 볼때마다 흥분 하게 된다는 설정, 이를 느끼고 싶어 달리는 차안에서 섹스를 한다는 이야기.
하지만 내가 미처 놓치고 있는 뭔가가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이 작품이 1996년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어 칸 영화제에 출품됐을때 심사위원장이던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은 이 영화가 대상을 받지못하자 분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는 일화도 있다하니, 전문가, 예술가 들로부터는 인정을 받았다는 뜻일게다. 아마도 인간의 원초적이면서 변태적인 성욕을 극한의 상황에서 끄집어내 당시 누구도 감히 말하지 못할 외설적인 표현을 해가며 작품으로 만들었다는 데서 주는 후한 평가 아니었을까? 다만, 내가 작품을 접하면서 이같은 위대한(?) 예술성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뿐..
아마 책을 접하지 않은 독자가 이 리뷰글을 읽고나면 더 혼란스러우면서도 궁금해질것 같다. 백문이 불여일견, 한번 읽어보시라. 시작부터 끝까지 에로티시즘을 표방하고 있으면서 수도없이 변태적인 베드신이 난무하는 이 작품을~ 하지만, 이 점을 유념하시길.. 에로틱함을 너무 기대하고 봤다가는 나처럼 다소 실망할수도 있다. 문학적인 관점에서 작품을 읽어보길 권한다.
작가 제임스 발라드는 <태양의 제국>, <물에 빠진 세계>, <크리스탈 월드>, <잔혹 전시회>, <초고층 아파트>, <무한한 꿈 회사>등의 작품을 남겼지만 <크래시>가 가장 대표작이라고 할수 있을 것 같다. <태양의 제국>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성공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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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읽을때는 어리둥절 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많은 생명체들 중에서 식물과 다르게 동물은 암놈과 수놈의 교합으로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내며, 자손 번식을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남자와 여자가 합궁을 통해 이뤄진다. 꼭 자손 번식을 아니더라도 섹스란 필요한 요소라 본다. 책을 읽고 난 소감은 멍 했다는 느낌으로 표현하고 싶다.
섹스와 테크놀로지를 은유적으로 쓴 책이라고 하였다. 책속에서 시물레이션을 통해서 자동차의 폭력적 충돌 후의 끔찍한 광경의 모습들을 섹스와 연관하여 총망라 한 이야기들들, LSD환각 상태에서의 운전상태와 혼란스런 순간들, 자동차라는 탈것을 근간으로 한 최초의 포르노그래피 소설로 에로틱한 판타지, 사실 이런 책은 처음 접해보았다. 원래부터 호기심이 많은 나였지만,
단순한 육체의 사랑이 아닌 도착증 가득한 그들의 행위는 쉽게 정상적 상태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들이었다. 주인공은 발라드는 우연히 자동차 충돌사고를 경험하면서 자신이 느껴보지 못한 성적 쾌락을 로버트 본을 만나면서 느끼게 된다. 자동차 충돌사고를 통해 오르가슴을 느끼고, 자동차 사고가 남긴 신체의 흉터와 그로테스크하게 구겨진 자동차 파손을 보고 성적 쾌감을 느낀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육체와 기계체 상호간의 파괴적인 이종 결합에 성적 쾌감을 섹스와 테크놀로지를 결합 시킨다. 일반적 논리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애기들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면서 주목 받게된 태양의 제국 의 영국작가 제임스 빌라드 지금으로부터 40년전의 작품이라 한다. 자극적이고 난잡하고 낮 뜨겁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 있다. 그래서 예술과 외설로 구분 지으려는 생각들도 할 수 있다. 미리 애기했 듯 은유적으로 쓴 책이라는 점에서 또다른 생각을 해보게 된다..
집착이라는 정신적 장애과 단절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고,
자신을 콘트롤 하지 못하는 집착의 정신적 장애를 가지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므로서 물질만능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강인한 정신적 함양과 이성적 자각을 생각해 보게 하고픈
작가의 의도가 있었던게 아닐까 하고 생각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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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선은 어디일까? 혹 인간의 내면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케오스가 산재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대중속의 일원임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만 때론 평범한 일상을 벗어나고픈 일탈을 꿈꾸기도 한다. 어쩌면 우린 사회가 만들어 놓은 정상이라는 경계선 사이에 힘겨운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끊임없는 욕망에 대한 탐닉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해선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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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영화 태양의 제국을 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었다.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감독이 내 뇌리에 들어온 것은 그때 부터이다. 아직도 태양의 제국은 내 맘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영화 중 하나로 남았다. 그렇기 때문일까? 태양의 제국의 원작자인 제임스 발라드의 작품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책을 접하게 되었다. 책의 표지부터 심상치 않은 느낌을 주는 책 '크래시'이다. 태양의 제국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기에 이 책이 제임스 발라드가 만든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보통 작가들은 작품마다 그 작가 특유의 느낌이나 분위기가 배어나오기 마련인데 이 책은 태양의 제국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제임스 발라드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책이였다.
주인공은 발라드는 우연히 자동차 충돌사고를 경험하면서 자신이 느껴보지 못한 성적 쾌락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들이박은 상대방의 부인을 쳐다보면서 성적 흥분을 느끼면서 점차 괴이한 성적 판타지를 상상하게 된다. 이 때 등장하는 것이 로버트 본이다. 본은 발라드에게 자동차 충돌과 동시에 느껴지는 성적 흥분을 전수해 주는데 이 둘의 관계는 마치 스승과 제자 같다. 유유상종이라고 해야 할까.. 내 눈에는 그저 변태적 성적흥분을 느끼는 정신이상자로 비쳐질 뿐이다. 발라드의 부인 역시 남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남자와 정사를 즐긴다. 이 책 속의 등장인물들은 도덕적 양심보다는 성적 쾌락을 더 중시하는 본능에 충실한 사람들 뿐이다. 본은 자신의 궁극적 목표인 자신의 차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탄 차와 충돌을 위해 여러 준비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그 순간이 다가오자 거침없이 엘리자베스 차에 들이박기 위해 차를 운전한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실패하게 되고 본은 죽음을 맞이한다.
크래시의 중심적 인물인 본.. 그가 목표로 했던 것을 이루지 못한 채 허무한 죽음을 맞이한 것은 어쩌면 작가가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저자는 사람과 테크놀로지라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이 자아적 성찰이나 이성적 행동보다는 짐승처럼 성적 쾌락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통해 왜곡된 현대 사회의 인간관을 비판하고 이들이 '섹스'라는 행위로써 소통을 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사랑과 애정이 메마른 현대 사회를 비꼬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은밀한 성적 쾌락을 자동차의 충돌과 연결하여 책을 이끌어 간다는 점이 여느 포르노그라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신선한 주제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신선하다는 것은 어쩌면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르겠다. 책을 계속 읽고 있노라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이 있기에 이 책은 한 번의 완독을 통해서는 작가가 무엇을 의도하고자 이 책을 썼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듯 하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내면적으로 이런 변태적 성욕을 상상 해봤을 것이라는 것이다. 마치 나 자신이 본이 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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