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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의 구름
중세 유럽이 관상기도에 관한 책이다. 14세기 유럽의 신비주의 신학과 수도원 신학을 바탕으로 한 책인데 책을 읽기 전에 먼저 관상기도에 대해서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관상기도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는 것은 아는 목사님이 관상기도를 강조하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구나 하는 정도이다. 관상기도는 책에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영혼이 하나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활동이라고 한다. 자기 존재의중심에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깨달음이라고 본다. 이것을 경험하는 순간에 영적 전율에 놓이기도 한다. 그래서 암흑기에 더욱 하나님을 생각하고 바라보는 이 책이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무지의 구름 그것은 나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는 방해물이다. 그것은 앎이 결여된 상태다. 그 무지의 구름이 지나갈 때 영적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 무지의 구름은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는 그 무지의 구름을 날려 버릴 여러 가지 방법들을 설명해 주고 있다. 그 방법중에서 가장 근원적인 것은 하나님만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서 관상을 한다. 마치 묵상을 하는 것과 같은 방법이다. 그래서 기존의 기도와 다른 형태를 보이기 때문에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분명한 뿌리는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런 관상기도는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의지적으로 만들어 가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다. 그래서 관상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되어야 한다. 하나님 중심으로 이루어 지는 기도이다. 그래서 관상을 통해 육체와 영혼이 지혜롭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관상이 묵상형태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관상기도의 결실을 관상을 통해 얻은 것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무지의 구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앎이라는 것을 통해 무지에서 벗어난 관상가는 그 무지를 벗어남으로 얻어지는 것을 실천함으로 진정한 관상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중세의 험란한 문명과 정치적 혼돈 속에서 영적인 길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고민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었다. 험란한 길에서 영혼의 갈급함을 찾기 위한 그들의 길이 우리시대의 기독교인이 걸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반영되어야 할까 고민하게 한다. 신비주의 입장을 가지고 영적 묵상을 하는 것이 열정적인 기도의 모습을 추구하는 우리네 신앙인들의 모습과 사뭇 다른 형태를 가지기 때문에 형식적인 문제는 있겠지만 그러나 그 문제의 진실, 즉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고민들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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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집어 들었을때는 조금 거부감이 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아니 이름도 알려지지도 않은 저자의 책이 어떻게 감히 토마스 아켐피스가 쓴 '그리스도를 본받아'와 더불어 명성을 나란히 할 수가 있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모두 9개의 제목으로 분류되어 있는 내용들을 하나, 하나 읽어내려갈 때마다 '아 이런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이 그 오랜 사랑을 받게 된 것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를 굳이 설명하자면, 하나님께 집중하는 기도가 무엇인지 관심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책이기에 '그리스도를 본받아'와 명성을 함께 할 수 있는지도 궁금했고요. 이 책은 기도의 훈련을 도와주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장을 소홀히 할 수도 없었습니다. 70여개의 소주제들이 하나의 결론으로 도출시키기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실제 하나씩 적용시켜 가면 우리가 기대하는 것 이상의 기도의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책은 신앙 생활을 함에 있어서 우리가 우선순위로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또 우리의 삶 속에 제거되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내 자신을 비움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은혜와 능력을 채워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를 실천하는 것은 믿는 자들에게 매우 커다란 유익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도를 실천함에 있어서 내가 원하는 것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관상기도라고 하는 말을 처음 들어보았습니다. 어찌 보면 뜬구름 잡는 것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도만이 우리 삶의 능력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이미 깨달았음에도 정작 실천하지 못하는 내 자신의 연약함이 부끄러울 따름이었는데 하나님과 하나됨을 경험하게 되는 특별한 방법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기도를 더욱 더 능력있게 하는 유익이 있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아직 이 책의 내용을 머릿속에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저 단순히 읽고 따라가는 것이라면 충분히 소화됐지만, 실제 삶을 통해 적용시키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하기에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내가 무지의 구름을 통해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놀라운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면, 이 책의 가르침이 그 길을 인도해 주었을 거라는 기대를 해 봅니다. 하지만 아직은 피상적인 이해에 불과할 뿐입니다. 하지만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말이 있듯이 하나님을 향해 시선을 집중시키고 관심을 집중시키게 될 때 특별한 은혜가 주어질 것을 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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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얼마나 필요한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다. 몇해 전부터 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님께서 관상기도에 관한 세미나를 열고 계신데, 사실 이 관상기도에 대한 말들이 많이 있다. 개신교적인 의미가 아니라, 카톨릭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수많은 이야기들이 떠돌고 있지만, 솔직하게 나는 어느 쪽이 맞는지를 모르겠다. 그러면서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그런 논란들에 대해서 듣고 있던 터에, 관상기도에 대한 글들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이었다. 이제 한번 읽었는데, 아직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내용들이 너무 좋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함에도 불구하고, 나 중심의 기도를 하고 있다. 나 중심의 기도를 하다가 보니까, 기도의 내용도 나요, 기도하는 주체도 나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보니까, 내 기도가 응답이 되네, 되지 않네하고 불평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내 기도를 하나님의 손에 올려 드리는 일들이 얼마나 필요한가에 대해서 한국교회가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 부분들은 시인해야 할 것 같다. 내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물과 일들을 바라보고 기도하는 훈련들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내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기도하기 시작하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기쁨을 깨닫게 될 터인데, 그렇지 못하니, 기도가 짐이 되고, 기도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나님과 내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된다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모든 일을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기도한다고 하는 것이 훨씬 더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면서 내가 과연 기도하면서 이런 자유함을 느껴보았는가 하는 부분들, 그리고 왜 내가 기도하기 시작하면, 온갖 잡 생각들이 내 머리 속에 자리잡기 시작할까 하는 문제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새롭게 정립하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죄의 문제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방법들을 알게 됨으로 인하여, 기도에 대한 새로운 생각들을 재정립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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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인 어두움이 가득한 시기에 이 책이 쓰여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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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의 구름>를 읽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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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관상기도에 관한 것이다. 개신교도로서 나는 부르짖는 기도(통성기도)와 묵상기도는 익숙하다. 그러나 관상 기도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이번에 <무지의 구름>을 읽으면서 기도에 대해 많이 생각하면서 나의 신앙을 점검해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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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의 구름 (The Cloud of Unknowing) 익명의 사제가 쓴 오래된 고전이 우리말로 출간되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놓여있는 구름을 제목으로 삼았다. 왜 제목을 무지의 구름이라고 했을까? 차라리 미지의 구름이 낫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알 수 없는 무엇이 자리잡고 있어 소통이 원할하지 못하다는 의미로 무지란 말을 쓴 것인지 옮긴이에게 묻고 싶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제목과 같이 무지의 구름은 기도로 제거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면 그 구름은 제거할 수 없는 대상으로 나온다. 그냥 얇아 지도록 노력은 해야 되지만 인간의 노력으로는 없앨 수 없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그 구름에 화살을 쏘라고도 한다. 왜 그래야 하는 것일까? 그렇게 바늘 구멍, 아니 화살구멍을 만들어서 짧은 시간에라도 하나님과 소통하라는 뜻으로 나는 이해 하였다. 이러한 화살 쏘는 동작은 기도로 가능하다. 이 책에는 관상 기도라는 표현으로 거룩한 기도를 설명한다. 관상은 올려다 본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바로보는 기도가 관상기도이다. 목을 쳐 들고 하늘을 본다고 관상기도는 아니라는 설명도 하고 있다. 그럼 어떤 기도가 관상기도일까? 저자는 신약 성경의 막달라 마리아가 진정한 관상기도를 실천한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예수님께 넋을 읽고 바라보며 사랑하고 집중하는 그 모습이 관상인 것이다. 그에 비해 막달라 마리아의 언니인 마르다는 주님을 위해 음식을 하는 등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이 바쁘게 노력하는데 돕지 않는 동생을 두고 예수님께 투정도 한다. 그때 주님은 마리아의 모습이 더욱 좋다고 말씀하신다.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이 아닌가 생각했던 이야기이다. 온전히 하나님을 바라는 마음과 믿음, 기도가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높은 경지의 신앙이자 바른 모습이라고 이야기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그런 하나님께 다가가고 은혜를 받는 방법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마르다와 같이 노력하는 신앙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우리의 노력은 거만함을 유발할 수도 있고 자신의 행위에 심취하여 본질을 놓치는 경우도 있어 주의가 필요한 것 같다. 마르다와 같이 투정부리는 것이 그런 경우가 아닐까 생각된다. 책의 서문에 저자는 수도사나 신부님일 수 있다는 설명이 나온다. 오랜 세월 저자의 책이 공개되고 읽혀지면서 존재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추측한 것이다. 관상기도는 홀로 기도실에서 거룩하게 하나님을 사모하여 경배와 찬양을 하는 그런 모습과 잘 매치가 된다. 그러다보니 저자를 그렇게 추측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책은 75개의 작은 주제들로 관상기도에 필요성과 방법 등을 설명한다. 각각의 작은 주제들은 짧지만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다. 그래서 저자도 여러번 읽고 확실히 이해할 것을 권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기 원치 않는 사람들은 읽지 말라고 까지 이야기 한다. 이쯤 되면 오기로라도 읽고 싶어진다. 하지만 오기는 무의미한 것 같다. 하나님께서 뜻을 주셔서 우리 마음에 진정한 소망이 생기지 않는다면 이 책은 의미가 없어진다. 거룩한 마음으로 하나님만 바라보기에는 우리에게는 욕심도 많고 세상살이가 녹녹치 않다. 항상 기뻐해요, 쉬지 말고 기도해요, 범사에 감사해요 라는 찬송가와 성경 말씀처럼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도록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래야 거룩함으로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책이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은 영어 원문을 구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Pdf 파일로 된 원문이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다. 약 A4용지 100여 페이지 정도 된다. “하나님 사랑” 이 구호만으로 거룩함과 은혜가 넘쳐 진정한 기쁨이 가득하길 소망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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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봤을 때 '무지의 구름'이라는 큰 제목보다 그 앞에 '하나님과 하나되는 기도'라는 소제목에 더 관심이 갔다. 제목처럼 이 책은 진정으로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 무엇인지 또 그 방법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 '책머리에'에서 역자가 밝혔듯이 여러가지로 혼란했던 시기였기에 더욱 하나님을 찾고 하나됨을 갈망하는 영적인 목마름이 이 책을 탄생시킨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목마름은 꼭 그 시대에만 국한된것은 아닐것이다. 전혀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도 하나님과 진정으로 하나되고 싶은 갈급함은 다름이 없다. 그런의미에서 이 책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영혼이 하나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활동이라고 정의 하는 '관상'이라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관상기도, 관상훈련이라는 용어에 대해 처음 접해봐서 생소하기도 하고 어색하고 어렵기도 했었지만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왜 그렇게 단어에 연연했었나 싶다. 문제는 글자가 아니라 그 안에 내용인데 말이다. 궁극적으로 이책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고 그분께만 집중해야 함을 이야기 한다. 그분을 소유하면 세상에서 달리 필요한 것이 없다는 것이 이책이 전하는 교훈이다. 그리고 그러기위해 훈련의 방법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 죄의 공격을 이겨내는 방법등을 알려준다. 내 식으로 더 쉽게 생각하자면 하나님께 기도하는 법, 하나님과 진정으로 깊이 교제하는 법을 말해 주고 있는것 같았다. 현실적으로 하나님께만 집중하기 어려운 이 시대에 어떻게 유혹들을 이겨내며 그 가운데 어떻게 주님의 얼굴만을 찾을 수 있는지 어느정도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는 책이다. 혹시 이런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분이라면 한번쯤 읽어 보길 권한다. 내가 그러했듯이 성경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기본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고 마음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음이나 의지에 하나님 이외에 그 어느것도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못한 지식과 감정은 모두 무지의 구름 아래 묻으십시오." - p.1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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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교회에서 '관상기도'에 대해 아느냐는 물음을 많이 받았는데,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관상기도에 대해 읽고, 배웠다. '무명의 형제'에 의해 쓰여졌다고 알려진 <무지의 구름>은 "영국을 대표하는 기독교 산문의 걸작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4)고 한다. <무지의 구름>은 직접적으로 관상기도를 배우고 실천해볼 수 있는 교본 같은 책이다.
관상기도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무척 어려운데, 역자는 이렇게 정의내린다. "관상을 간단히 정의하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영혼이 하나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7). 솔직히 책을 한 번만 읽어서는 관상기도가 무엇이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하고, 또 어떻게 경험되는지 명확하게 알기가 어렵다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관상기도는 '신비'의 영역에 속한 일이기 때문이다. <무지의 구름>이 집필된 시기적 배경을 보면, "신비주의가 한창 꽃을 피우던 14세기 후반 영국에서 집필된 작품"(4-5)이라고 소개된다. <무지의 구름>, 그러니까 관상기도는 신비주의의 영향을 받은 작품(기도)이며, 또 신비주의를 이끌었던 작품(기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을 읽으며 내가 파악한 관상기도란, 하나님'만'을 사랑하기 위한 훈련이요,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을 경험하는 마음 상태인 듯하다. "관상의 핵심은 하나님을 지향하는 순수한 의도 그 자체"(100)이며, 관상은 "하나님보다 못한 모든 것을 완변하게 망각하도록 만드는"(102)데, "올바른 관상자는 자신의 고통이나 행복에 무관심하며, 오로지 자신이 사랑하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101) 바란다고 한다. "관상을 실천하는 데는 평정심, 영혼과 육체의 건강과 순수한 마음이 필요"(147)하며,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43), "간절한 사랑이라는 예리한 화살로 두터운 무지의 구름을 맞추"(44)어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개념을 정리해보려 해도 관상기도가 무엇인지 선명한 그림이 그려지지가 않는다.
신비의 영역에 속하는 일들을 사람의 언어로 설명하고 이해하는 일이 쉬울 리가 있겠는가. 솔직히 아무리 곱씹어도 감이 잘 안 왔는데, 그나마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를 통한 설명이 조금 도움이 되었다.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던 마르다와는 달리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다(눅 10:38-39). <무지의 구름>은 이를 두고, "마리아는 주님에 대한 사랑을 잠시도 멈추고 싶지 않았"(88) "예수님은 마리아가 영으로 자신의 신성을 간절히 사랑하고 있음을 알고 계셨습니다"(88-89)고 설명한다. 또한 분주했던 마르다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마리아의 '상태'에 대한 설명으로 볼 때, 관상기도는 일종의 '황홀경'의 상태 또는 '황홀경'의 경험으로 이해된다(231).
<무지의 구름>을 통해 알게된 '관상기도'에 대한 나의 결론은 한마디로 '위험하다'는 것이다. 신비주의의 영역에 속한 것이 늘 그렇듯이 '분별'의 문제가 따르고, 성숙한 신앙의 자세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신적 영역에 속한 신비적인 경험은 그 경험을 만들어내는 주체가 인간(나)이 아니기 때문에 함부로 판단할 수 없고, 또 함부로 판단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무지의 구름>에서도 계속 경고하고 있듯이 우리는 '거짓 경험'의 함정에 빠질 수 있고, 하나님이 아니라 경험 자체를 사랑하고 신봉하는 유혹에 걸려들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만으로 채워지며, 하나님과 하나됨을 맛볼 수 있다면 정말이지 그것처럼 황홀한 경험은 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지의 구름>에서도 경고하듯이, 신뢰할 만한 영적 조언자 없이 관상기도를 시도하는 것은 위험하며, 신중하고 조심하지 않으면 쉽게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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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내가 이 책을 받아보고 이 책제목 [무지의 구름]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무엇을 담아내려 하는지에 대해서 의아함을 가지기는 했지만 부제인 ’하나님과 하나되는 기도’라는 글귀는 기도에 갈급함과 기도에 소망함에 나의 마음을 쏟고 싶었고 지대한 관심으로 이 책의 글귀 하나 하나에 집중하려 했다. 특이한 것은 글이 저자가 무명의 형제라는 것이었고, 그래서 일까? 이 무명의 형제는 심사숙고하여 이 책을 오랜기간에 걸쳐 심혈을 기울였을 거라는 마음을 가지고 싶은 마음으로 신뢰하는 마음으로 기도에 대한 깊이를 가져보려 하였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가로막고 해방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과 나를 가로막는 것이 바로 무지의 구름이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갈망하면서 나의 나태함과 안일함에 자각하게 하는 것이 그리고 지금 내 평생 해야 할 것이 나의 전심과 온 마음 다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기도에 힘써야 함을 가슴 깊이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마리아의 선택 부분에서는 마리아는 관상의 생활로, 마르다는 활동의 생활로 구체적 비유를 해주었다. 마리아가 선택한 부분은 은총을 통해 선택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에게만 허락되어지는 것이고 영원히 지속된다는 부분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하나님과 하나되는 기도 그것을 이 책에서는 관상의 기도로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관상의 기도에 깊이 있게 생각하게 되었지만 통성기도와 묵상기도에 익숙한 나에게는 그리 쉽지만은 않은 영역이었고 또 한번 힘든 부분이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하나님과의 온전한 회복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가 그 갈급함과 소망함을 품어야 할 것에 결단하고 기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깊이 있게 회계하며 나의 지금 신앙의 현주소를 다시금 재정비 하는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