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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어리석은 선택이라 하더라도 왕자님이 하신 선택만큼 어리석은 선택은 아니지 않는가? 인자하신 왕의 보살핌 속에서 안전하고 행복한 왕궁에서 무엇 하나 불편함 없이 살던 왕자님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홀로 십자 보트를 저어 출발했던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이신 왕에 대한 충성과 에덴의 주민들을 비롯해 뿔뿔이 흩어진 모든 사람에 대한 깊은 사랑,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사명 때문이 아니었는가? 결코 어리석은 선택이 아니다! 왕자님은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하셨던 것이다! - p. 145
지은이의 내력을 보지않고 글을 읽기 시작했다. 어~ 이 책 뭐지? 지금 일본 이야기를 하는건가?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해일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 해일과 지진으로 가슴 졸이며 원자로의 붕괴로 망연자실한 사람들과 겹쳐져서 글이 읽혀졌다. 하지만, 이 책은 일본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여기, 자신의 존재이유를 알기위해 갈망하는 젊은이가 한명 있다. 그는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를 모른다. 그가 살고 있는 섬. 이름 조차 알수 없지만, 강한 해일로 사라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는 두려움을 느낀다. 사람들이 해일에 밀려간 후, 그가 살고 있는 곳에는 그 두려움을 없애기 위하여 떠내려간 사람형상의 나무를 태우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고, 죽은사람들과 이어준다는 촌장이나 주술사를 의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것이 그의 갈망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십자보트를 탄 누추한 노인을 만난다. 그리고 그에게서 나는 기억 저멀리 있던 향기에 끌리고 그의 말에 끌려 노인과 함께 십자보트를 타고 프라미스호로 떠난다.
노인과 함께 도착한 프라미스호는 그에겐 낙원이었다. 해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거대한 배, 안락한 잠자리와 맛있는 음식들, 신나게 놀고 먹을 자유가 있는곳 , 그렇게 프라미스호의 손님이 되어 당당하게 즐기다 보면 언젠가는 대륙에 돌아갈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이런 프라미스호의 구원은 아무런 대가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선물이라고, 단 한푼의 대가도 치를 필요가 없다고 노인은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노인은 왜 이 삶을 선택하지 않고 누더기나 걸치고 떠돌아 다니면서 자신을 구원해낸것일까? 그렇게 청년은 노인에게서 왕과 왕자의 이야기를 듣는다.
왕은 대륙에서 가장 크고 가장 힘이 셌다. 그러면서도 왕은 굉장히 인자해서 늘 백성의 행복만을 바라는 그런 분이셨다. 100명의 부하중 한명이 길을 읽고 헤멜때, 온 산을 뒤져서 부하를 찾아내어 데리고 오는 그런 분이셨다. 왕이 다스리는 왕국의 법무부 장관은 유능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왕권을 넘봤고 왕에 대한 거짓을 대륙에 퍼트리기 시작한다. 왕이 너무나 사랑하는 에덴의 주민들에게 타나토스의 열매를 먹도록 유혹한다. <왕은 신하들만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 백성까지도 경계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저것은 정말로 맛있는 과일입니다. 달콤하고 향기롭고 씹는 맛도 일품이지요! 이 대륙에서 가장 맛있고, 가장 몸에 좋은 과일이지요. 특히 여자는 저 과일을 먹으면 굉장히 예뻐진다고 합니다. 저것을 먹으면 기억을 잃게 된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 p.99> 그렇게 에덴의 사람들은 타나토스를 먹고 기억을 잃고 자신도 모르는 섬으로 흩어진다. 하지만, 왕은 그들을 사랑한다. 그들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예언자들을 보내기 시작한다. 예언자들은 죽음에 이르지만 왕은 끊임없이 예언자들을 흩어진 섬에 보낸다. 그리고 결국 왕은 자신이 그들을 찾아 가기로 결심한다. 그들을 대신해서 죽기로 결심한다.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죽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왕은 갈수가 없었다.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 아버지를 만류하고 그들을 찾아가버렸다. 왕의 권위와 왕의 모습을 가진 왕자는 왕을 버린 사람들이 회개하여 다시 대륙으로 오게 하기 위해 섬으로 향했다. 그리고 왕자는 섬사람들의 의해 죽음을 당한다. 십자보트에 묶인채로.. 그럼에도 대륙의 법무부는 섬사람들을 죽일수가 없었다. 왕자가 왕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죽음을 선택한것을 알았기 때문에 죽일 수가 없었다. 그대신, 왕자가 지배하는 바다로 또 다른 예언자가 오늘도 항해를 한다.
청년은 노인이 말한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노인과 함께 바다로 뛰어든다. 그리고 그는 본다. 얼마나 많은 유혹이 다가오는지, 십자보트를 닮은듯 다른 이단호들과 어디로 가는지 정확한 목적지도 없이 돛을 올리는 또 다른 십자보트를.. 그들과 함께 했지만 이탈되어 나가는 젊은이들을 본다. 하지만, 노인의 눈은 원망보다는 안쓰러움이 보인다. 청년과 노인은 예정하신 섬에 갈수 있을까? 구원의 돛대를 올릴수 있을까? 그들의 항로는 우리의 삶과 닮았다.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만 주님과 하나가 될수 있는 우리의 삶과 닮았다. 자신을 부인하고 녹슨못으로 자신의 손을 찔렀을때 살아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 길지 않은 책이다. 읽는 내내, 숨은 글을 찾듯 주님의 말씀이 비슷한 이야기로 숨어있다. 그런 글들을 읽을때마다 피식하고 웃음이 나면서도 이글을 쓴 일본 목사님의 이야기, 소년 A가 될수도 있었을 그의 삶을 바꾸어 놓으신 주님을 생각하게 된다. 그가 이글을 이렇게 숨은 그림 찾기하듯 숨겨놓으면서 자신의 동족에게 얼마나 보여주고 싶어했을까를 생각해 본다. 지금의 일본을 보면서, 이 시기에 어찌어찌 나오게 된 이 글이 그들의 맘을 녹일수 있을까? 그들의 맘은 모르겠지만, 내 가슴을 흔들어놓은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언제나 지쳐있을때마다 글로, 영상으로 주님을 만날 수 있게 하시는 주님의 사랑에 감사할 뿐이다.
어디에서 왔는지? 왜 이곳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 것인지? 나는 그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왕과 왕자님, 그리고 프라미스호의 존재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게 남은 의문은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였다. 나는 이 항해에 참가하여 사명감과 목적의식을 배웠다. 그리고 그 마지막 질문마저 완벽하게 해결해 준 것이 바로 저 섬이었다. 나는 저 섬의 이름을 영원히 마음에 새겨 놓을 작정이었다.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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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의 두려움이 현실화된 일본땅에서 살아왔던 저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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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전에 일본에 아주 큰 지진으로 인해 쓰나미가 몰려왔다. 일본은 항상 대비를 하는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이번 지진은 대 재앙이라 불릴 정도로 국민들의 재산과 생명을 한순간에 앗아갔다. [위대한 항해]는 이런 쓰나미와 연관되어진 소설이며 주님의 음성과 은혜로 아주 같은 연관성을 띠고 있다. 아마도 이 책이 출간 되기 전에 저자는 미리 주님의 음성을 들었던 건 아닌지 싶다. 한 젊은이가 자신도 모르는 섬에 밀려 들어와 그 전 기억을 싸그리 잊어버리고 살다가 우연히 십자 보트의 할아버지를 만나 섬에서 탈출하게 된다. 할아버지를 따라 ‘프라미스호’ 란 배에 올라타면서 부터 그 젊은이는 쓰나미에 대한 근심과 걱정, 그리고 두려움을 모두 잊고 평온한 삶을 가지게 되지만 자신처럼 해일에 두려워 하는 백성을 구하기 위해 할아버지에게 항해법을 전수받아 십자보트 위에 다시 올라탄다. 프라미스호에 있으면 먹는것, 자는것, 등등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해결 되지만 그 젊은이는 자신이 살아가야 할 목적과 인류에 행복의 삶을 전하기 위해 기꺼이 항해를 선택한다. 항해를 하는 도중에 풍랑이 몰아닥쳤는데도 왕자님의 음성과 가르침으로 인해 다시 목숨을 건지면서 진전한 삶의 진리를 알아간다. 이야기는 조용하면서도 성격속의 주님의 음성을 말씀하시고 계신다. 왕은 하느님이시고 왕자님은 예수님이시다. 11명의 항해 도전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으며 할아버지는 메시아이시다. 섬에서 십자보트위에 못을 박아 왕자님을 바다 속으로 밀어 넣었던 장면도 성경속의 이야기와 비슷했으며 다시 부활하신 내용 또한 같았다. 그리고 왕이 에덴의 섬에 가서 지혜의 나무를 심어 먹지 말라고 했던 열매는 선악과를 말하였으며 왕의 장관은 시기와 질투로 꽁꽁 싸매어져서 왕의 자리를 넘보는 사탄과 같은 존재였다. 저자는 허구의 소설을 쓰면서도 성경의 말씀을 전파하고 있다. 기독교인이든 주님을 믿지 않는 자이든 이 책을 일기를 원한다. 그리하면 온 세상이 평화롭게 보이고 큰 고난이 닥치더라도 위대한 항해처럼 언제나 주님이 계획하심에 있고 그 고난을 이겨내는 힘도 주님의 주신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우리는 늘 하나님과 함께 있음을 믿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면 이 책의 젊은이와 같은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지는 않을까? 소설이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끌리는 이유는 성경의 말씀이 함께 하였고 그 어떤 시련 앞에서도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 시련들이 치유된다는 사실이다. 방송인 이홍렬씨는 책의 한 구절이 특히 마음에 와 닿았다고 했다. “나는 어제까지만 해도 누더기를 걸치고 나무 열매를 주워 먹으며 비가 새는 움막에 살던 몸이다. 이렇듯 갑잦스럽게 몰아닥친 은혜의 폭풍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주인공 젊은이가 할아버지로 인해 구원을 받아 프라미스호에 도착하여 누렸던 은혜를 글로 표현했던 내용이다. 그러나 그 젊은이는 자신의 현재의 삶이 행복을 의미하는걸 알면서도 할아버지와 같은 항해를 하기 위해 이젠 저 바다 멀리 인류 구원을 하기 위해 떠난다. 물론 목숨을 던지는 위험한 항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젊은이는 이 위험한 항해를 통해 자신에게 살아가야 할 목적과 사명감을 배웠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위대한 항해가 되지 않았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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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은 섬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밀어닥치는 거대한 쓰나미에 자신들의 운명을 맡긴 채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섬의 한 젊은이는 거대한 쓰나미로 인한 두려움과 기억나지 않는 자신의 정체성으로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먼 바다에서 작은 십자배를 타고 섬에 나타난 노인의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젊은이는 자신이 그토록 찾고 싶었던 삶의 진리를 찾기위해 노인을 따라 먼 바다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길지 않고 흥미로운 한 편의 우화소설를 읽고 난 후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한 젊은이의 모험을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던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 다시금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하나님이 인간을 향한 인내와 기다림이 어떠한 것인지,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앞에 다시금 무릎꿇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성장하면서 점점 더 거대해지고 그 안에서 그들만의 축제가 되어버린 듯한 지금의 교회의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모든 교회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세상에서 점점 빛을 잃어가는것만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젊은이는 구원의 길을 찾지 못해 헤매이는 인류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무서운 폭풍과 파도에 맞서 항해를 하게 됩니다. 자기 안위와 안락한 삶에 연연해 하는 현대의 그리도스인에게 이 젊은이의 모험은 제자로서의 삶으로 돌이켜야 함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책의 저자가 복음의 불모지인 일본인이라는 점에 해외선교에 대해 더욱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겠고 일본을 비롯한 지구촌 곳곳을 향한 중보기도가 절실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얼마전 거대한 지진해일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희생되었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시련앞에 망연자실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03년 겨울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이 출간된 시점이 이번 지진해일을 겪고 난 뒤어서 더욱 안타깝고 더 가슴깊이 다가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하나님께서 진정 우리에게 주시는 삶의 목적과 사명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으시는 예수님을 마음처럼 우리도 복음을 듣지 못하는 많은 영혼들을 위해 중보하고 증거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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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데 장차 자신이 어떻게 될지 알고 다가올 미래를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단회뿐인 인생이 정해진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어떤 삶을 살아갈지는 신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인생은 마치 광활한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고 사람들은 말을 한다. 어떤 풍랑이 예고되어 있는지 어떤 해일이 덮쳐서 다 휩쓸릴지를 알 수 없는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붙잡는다고 했다. 언제 바닷물에 빠져서 죽을지도 모르는 두려움이 살아가는 동안 올무처럼 따라 다닐 것이다. 불안에서 탈피하기 위하여 마음에 위안을 주는 존재를 찾는 것도 일반적인 사람의 심리이다. 살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불안한 공포의 순간에 누구를 믿을 수 있을까?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면 과연 우리는 누구를 선택 할 것인가 말이다.
노인이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은 ‘이곳을 떠날까, 떠나지 않을까’가 아니다. ‘현명하게 살까, 어리석은 자가 될까’도 아니다. 노인이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은 ‘너는 사랑하고 있는가’이다
p. 146
이 책 위대한 항해에서는 작은 보트, 노인이 탄 십자가 배가 이르고 이어 해일이 덮친다고 한다. 작은 보트, 십자가모양의 형태 각 끝부분에는 빨갛게 녹슨 못이 박혀있는 것이 보인다. 그것이 뭐지? 노인은 나중에 알 게 된다고 말을 한다. 단지 분명한 사실은 이 배는 영원히 출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약속의 배 프라미스호, 이 배를 타는 것만이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온 힘을 다해 부르짖지만, 불신으로 가득한 사람들, 그들은 믿음을 가지고 프라미스호에 승선할 수 있을까?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 오직 십자가만이 살 길이요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방법임을 권하지만,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불신하는 경우가 더 많은 실정이다. 넓은 바다를 항해하려는데 배가 너무 볼품없이 작고 초라해서 믿음이 안 가는 것일까? 아직 남겨진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남은 까닭일까? 분명히 닥칠 재앙의 예고, 그러나 남겨진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지,,,,,,,,,
오늘 밤 저는 확실히 알았습니다. 왕께서는 저를 사랑하고 계십니다!왕께서는 이렇듯 부족한 저에게도 독생자를 보내실 만큼 사랑하고 계십니다. 저는 마침내 제 삶의 목적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대륙으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왕자님과 함께 가겠습니다! 할아버지 저는 오늘부터 ‘승객’의 지위를 포기하겠습니다. 이제는 ‘손님’을 그만두겠습니다. 선장인 왕자님이 이 배의 누구보다도 낮은 곳에 계시지 않습니까? 저도 오늘부터 ‘종’이 되겠습니다! 할아버지, 다음에 프라미스호가 섬 옆을 지나갈 때는 제가 십자 보트에 타겠습니다! 그리고 섬사람들에게 왕의 사랑과 이 영원히 침몰하지 않는 배의 존재를 알리겠습니다! p.137
주님을 따라가는 길,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의 길은 넓고 호화로운 길이 아닌 좁고 초라한 길이다. 너무 좁아서 믿음을 갖기가 어려운 길, 사람들은 이 길을 값없이 걷을 수 있다고 하는데도 이 길을 선택하지 않고 값을 치루더라도 넓고 보기에 좋은 길을 선택한다. 비록 멸망에 이르는 길인 줄 모르고 말이다. 좁은 배를 타고 가는 길은 침몰되지는 않지만 훈련이 필요한 험난한 길이다. 각종 풍파에 대비해야 하고, 어떤 안전사고가 닥칠 지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위대한 항해」 이 책에서는 노인이 길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살길을 알려주고 약속의 배, 프라미스호에 승선할 것을 권해준다. 멋진 항해의 주인공이 되는 비결도 아울러 가르쳐준다. 분명한 것은 억지로가 아닌 자신의 결단과 용기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궁원의 손길을 느꼈는가? 그렇다면 그 분에 대한 사랑이 있는가가 프라미스호의 승무원이 될 자격의 유무를 결정해 준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위대한 항해」 이 책은 기독교 구원에 대한 내용을 자세하게 노인과 젊은이의 항해로 풀어서 설명해 주는 책이다. 많은 사람이 살길을 ‘누군가’가 안내해야 한다면 바로 그는 바로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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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항해의 저자인 야마나카 토모요시는 어린시절 국수주의 사상가인 아버지의 무사도 정신교육을 받고자랐다 이후 선교사의 도움으로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고한다. 이후 미국으로 건나가 신학을 공부한후 귀국 순회 전도사로 활동하다 지금은 온누리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있다고한다. 그래서 그랬을까 위대한 항해는 고난의 예수그리스도의 삶을 새롭게 각색한 느낌이 강하다 물론 이건 나혼자만의 착각일수있다. 하지만 내가 책을읽으면서 다 읽고나서도 그 느낌을 지울수는 없었다.
섬에사는 주민들은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고 어떤사람인지 지워진 기억을 갖고있다. 작은섬은 해일이 덮치고 그때마다 마을주민은 해일에 휩쓸리게된다. 어느날 남편을 잃은 부인은 슬퍼하다 통나무를 해변으로 가져가 조각을한다. 남편의 모습을 완성한 부인은 나무를 태우고 주민들은 이후 해일이 덥칠때만다 애도의 뜻흐로 해변에서 통나무를 태우던중 춤을추는 남자를보고 다음번엔 그남자의 행동을 따라한다. 그리고 그를 선생으로 섬기게된다. 다음번 해일에서 선생을 해일이 덥치고 마을사람들은 그를구하려고 한다. 나는 밧줄을메고 그를 구하기위해 목숨을 걸고 바다에 뛰어든다. 그렇게 모든걸 알고있을것 같았던 그는 살고싶다외친다. 또 그렇게 사람들은 하루를 살아간다. 십자가 배가 찾아오고 노인은 프라미스호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말하지만 사람들은 노인을 믿지못한다. 나는 결심을하고 노인과 같이 프라미스호를 찾아간다. 여기까지 내가든 생각은 이사람을은 왜 이렇게 살고있는걸까 노인은 어떤존재일까 정말 프라미스호가 있을까 남자가 잘못된 선택을 한건 아닐까 의문이 들즈음 남자의 앞에 프라미스호가 나타난다. 천국같은 배 남자는 그럼 위해한 항해는 언제하는 걸까 노인은 이들을 내려주고 또다른 섬을향에 배를띄운다.
또다른 섬을 다녀온 노인은 예전에 프라리스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대륙의 왕이야기를 말이다. 위대한 왕을 배신한 에덴의 주민과 대륙의 백성이야기 그들을 행복의 대륙에서 꾀어낸건 장관하나가 왕위를 탐을내서 현명하고 지혜로운 왕을 비방하게되면서 백성들의 귀에 왕의 험담을하지 왕은 백성을 믿지만 백성은 왕의 말을 믿지않고 타나토스의 열매를 따먹고말지 백성은 왕을 떠나고 과거를 잊게되고 해일에 고통받게되지 왕은 그런 백성을 잊지못하고 구원하려고 하지만 백성은 왕을 기억하지 못하고 특사를 의심하고 죽이지 왕은 그런 백성을 포기하지 못한다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사람들은 선한의도를 믿지못한다. 그리고 악한자의 달콤한 속삭임에는 현혹된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언제쯤이면 선악을 제대로 구분할 현명함을 갖게될지 그래도 다행인건 이런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 존재가 우릴지켜주기 때문이 아닐까.......... |
![]() '위대한 항해' 이 책은 성경의 내용을 재밌게 이야기로 만들어낸 허구다. 허나 읽으면서 거부감이 들거나 이상하다는 느낌 없이 책속에 서서히 빠져 드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 책속에 나오는 커다란 해일은 얼마전 일본에서 발생한 쓰나미를 떠올리게 하는데 십자보트 앞에 해일이 나타남은 고난이 그들앞에 일어날 것이라는 것과 해일을 견디어내고 그들이 도착한 섬에는 그들을 기다리는 어린 소년이 자신의 모습과 똑같은 모습으로 있었다 ![]() 나는 바닷가에 떠밀려 왔다. 16년이 흐린 뒤에도 자신이 어디서 왔으며 누구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데 섬 사람들 역시 자신과 같은 표류자이고 기억을 잃어버렸다. 어느날 한 남자가 나타나 섬사람들에게 바다 건너의 세상에 대해서 말하며 마음에 공포를 불어넣어 넣는다. 불의 장례와 내림굿 의식을 행하며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어 사내에게 빠져들게 하는데 그 남자가 해일에 휩쓰려 떠내려가는 것을 '나'가 구하러 가지만 남자의 마지막 모습에 의구심을 갖고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 나는 바닷가 돌밭에 앉아 수평선을 바라보는데 작은 보트 하나가 그를 발견하고 다가온다. 배의 주인은 나이 든 노인으로 해일에도 안전한 커다란배로 다같이 가자고 설득하지만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나와 네명의 젊은이만이 노인의 십자노트에 탑승한다 ![]() 노인의 말을 믿고 십자노트를 타고 도착한 프라미스호는 그 모습이 너무나 웅장하고 거대한 배였다. 식사를 마치고 '천망대'를 통해서 앞을 본 세계는 성스런 세계였다. 나를 포함 같이 온 네명과 함께 자신들이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했다. 나는 배의 뒤를 바라보다 자신이 떠나온 섬의 모습을 한 무수히 많은 섬들을 보았고 그 곳에서 행해지는 각종 의식과 제물로 희생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 한 남자가 프라미스호의 존재를 알리려고 십자노트를 타고 섬에 가지만 섬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고 그를 쫒아내려 한다. 섬의 지도자로 인해서 남자는 죽음을 맞지만 죽어가는 사이에도 남자는 하늘을 향해 그들의 용서를 빈다. 이를 본 나는 남자가 선택하지 않아도 삶을 선택해서 죽음을 맞이 한것에 대해 물음과 답을 하게 된다. ![]() 노인을 통해서 프라미스호가 가는 대륙에 대해서 이야기 해준다. 대륙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왕이 통치하는 곳으로 너무나 아름다운 세계인데 왕을 섬기던 장관 하나가 왕에게 대항하여 반기를 들어 음모를 꾸며 왕이 유일하게 쉴수 있는 마을 '에덴'에 있는 지혜의 나무를 3일동안 열매를 따 먹어도 만지지도 말라고 한것을 알고 사람들을 속여서 먹게 만든다. 에덴을 떠난 사람들을 구하고자 왕은 자신의 왕자를 보내는데 사람들은 왕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려 에덴의 촌장이었던 노인은 왕자를 보고서도 믿지 않았으며 그가 바닷가의 예언자와 닮았다는 이유로 분노를 드러내며 왕자를 해한다. ![]() 사람들이 왕자을 몸을 십자 보트에 태워 못을 박아 바다로 밀어낸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기억이 왕자에 대한 기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노인은 프라미스호의 선장이 왕자님이고 지금도 살아서 바다를 다스리고 계시다고 말한다. ![]() 나는 왕이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며 그것은 왕자와 영원히 함께 하는 것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그와 같이 대륙에 대해서 말하려는 사람들과 노인은 십자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 항해사들은 프라미스호를 떠나 왕과 왕자가 전하려는 인류 구원의 계획이라는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데 그들앞에 자신들이 타고 있는 십자보트보다 커다란 배들이 나타날때마다 항해사들은 떠나간다. ![]() 결국 노인과 나만 남게 되는데 그들 앞에 거대한 파도가 나타나서 빠져 죽지 않으려고 노인과 나는 녹슨 못으로 왼쪽 손목을 십자보트에 박는다. 그 순간 나에게 일어난 신기한 일..... 나는 자신이 가졌던 모든 의문이 풀리면서 자신은 이제부터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며 사명감과 함께 목적도 생겨난다.
책은 우리가 잘 알고 있던 성경이야기에 대한 우화소설 얘기다. 너무나 익숙해서 생각도 하지 않았던 내용을 새롭게 각색해서 소설로 읽으니 다른 재미가 있다. 나는 이 책을 내 아들에게 읽어주고 싶다. 인생을 살면서 한번쯤은 고민해 볼 수 있는 나란 존재에 대한 생각도 해보고 지금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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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항해.. -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이 책의 내용은 비록 우화 소설이지만 내가 앞으로 살아갈 날이 위대한 항해를 할 수 있을지 아니면 다른 사람과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한번 생각하게 하는 책입니다. 사람들은 거대한 쓰나미로 두려워하고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못하면서 살아가지만 주인공은 한 노인을 통해 여행을 떠나면서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을 통해 삶을 정면으로 맞서 싸웠습니다..
나도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고 생각해 봅니다. 삶의 중요한 문제를 과감하게 삶의 진리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주인공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해 봤습니다. 과연 나는 주인공처럼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자신이 찾고자 하는 것을 찾으려고 앞으로 나갈 수 있을까하고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힘들고 어려운 것들은 피하려고 합니다. 물론 저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해줬고, 그것은 바로 사명감과 목적의식입니다.
비유가 맞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땅에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사명감과 목적의식을 갖고 살아가야 합니다. 사람들은 시련이나 고난과 고통이 오면 쉽게 좌절하기가 쉽다. 하지만 주인공은 자기만의 해결책으로 삶을 살아가고 헤쳐나가야 합니다. 나도 주인공처럼 사명감과 목적의식을 갖고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나도 삶도 수수께끼와 진리를 밝히면서 삶을 살아가야 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뜻과 계획대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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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그림이 담긴 책의 표지를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노인과 바다>였다. 풍랑이 일고 일기예보에 따라 전혀 알 수 없는, 또 어떤 위험한 것을 만나게될 지 알수 없는 바다에 놓인 인간에게 있어 바다는 인간의 불굴한 의지와 용기를 나타내는 상징과 같다. 거친 물살을 헤쳐가는 작은 배와 그 배에 탄 두 명의 사람, 그림을 보고서 난 먼저 <노인과 바다> 를 떠올렸다. 물론 주인공이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과정은 맞지만 이 책은 보다 기독교에 입각한 소설이다. 선교사역에 종사하는 일본인 작가 야마나카 토모요시. 신앙을 향한 그의 믿음을 볼 수 있는 책이다. 어떻게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그같은 내용을 펼칠 지 궁금했다. 기독교 소설로 유명한 것은 <신이 된 남자>인데, 이 책은 그 책과는 다르게 성경에 입각하여 프라미스호를 탄 주인공을 통해 성경의 내용을 하나의 이야기를 통해 그 내용을 전달해주고 있었다.
정확히 이름을 나타내진 않지만 각 인물은 성경의 인물이었고 책 중간중간마다 성경구절도 인용이 되고 있다. 스토리전개는 처음부터 몰입하여 읽을 수 있도록 빠르게 전개되어 읽기에 크게 문제는 없었다. 자신의 존재이유를 몰랐던 한 남자.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그와 섬에 살고 있는 이들은 결국 인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십자가를 상징하는 십자보트와 마치 노아의 방주처럼 구원의 배를 상징하는 프라미스호. 주인공이 노인에게 듣게되는 왕과 왕자의 이야기는 결국 인간을 구원하기위했던 하나님과 예수님을 말하고 있다. 죽음의 길을 선택한 왕과 사람들을 위해 왕자를 보냈지만 결국 사람들에게 맞으며 십자가에서 죽게되는 왕자. 자신을 향한 사랑을 깨닫고 위대한 항해를 시작하는 주인공. 그 과정을 통해 인간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말하고 있다. 그들의 목적지인 섬의 이름을 결국 작가는 밝히지않는다. 독자들에게 의문을 던지며 소설은 끝나고 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게. 저 빛나는 수많은 별을 보게. 그중에 하나 특별한 별이 있지.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네. 북극성인데 신기하게도 항상 북쪽에 있지. 저 북극성만틈은 절대로 움직이지않고 우리에게 항상 정북쪽을 가르쳐 주지. 마치 왕과 왕자님 같은 별이 아닌가”
왕과 왕자의 사랑을 그리고 영원히 변치않는 진리의 말씀을 말하고있는 구절이다. 캄캄한 밤에서 별이 없으면 갈 방향을 찾을 수 없듯이 자신의 존재이유를 알고 그 방향을 전해주는 메시지를 담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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