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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중국작품들이 익숙하지 않다. 중국작가를 떠올리면 루쉰, 위화, 김용, 경요 정도다. 김용의 작품은 내가 유일하게 본 무협지라서가 아니라 서양에 중국의 세계관을 전파했을 정도로 굉장한 무협시리즈라서 좋아하기는 하지만 현실을 담은 일반소설이 아니고 경요는 대만작가라 중국대륙과는 거리가 멀고(게다가 경요의 처연한 로맨스소설은 일반적인 삶을 담은 작품이란 생각도 안든다) 루쉰은 1936에 사망한 작가다보니 현재의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느껴진다. 그러자니 내가 기억하는 중국 작가는 위화정도다. 위화는 허삼관매혈기로 처음 만났다. 서점에서 괴이한 제목에 이끌려 만났던 허삼관매혈기는 이후로도 내가 손꼽아 좋아하는 작품이었고 누군가 재밌는 책을 권해달라고 할때마다 빌려주곤하던 책이었다. 그러나 <형제>이후로는 위화의 소설을 읽지 않게 되었다. 중국사회와 극중 인물들보다 배설적으로 나열되는 사건들이 텁텁했다. 위화뿐 아니라 중국소설에 대한 관심도 사그라졌다. 서서히 중국작품들이 많이 소개될때도 관심만 살짝 걸친채 읽기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얼마전 우연히 들려 구경하던 서점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는 제목이 있었다. <닭털 같은 나날>이란 제목이었다. 닭털이라니... 한없이 가볍고 허무하기 이를데없는 일상을 표현하는데 이보다 더한 표현도 있을까 싶었다. 나도 모르게 절로 손이 갔다. 위화의 <허삼관매혈기>를 처음 봤을때 딱 이랬지 싶다. 책 속의 이야기는 베이징에 사는 기관 말단직원 린의 가정사가 촘촘히 그려지는 <닭털 같은 나날>, 린이 일하는 회사(기관)에서의 사람들이야기를 다루는 <기관>, 작가가 고향의 과거를 회상하는 <1942년을 돌아보다> 이렇게 세 개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매일 아침 싼 두부를 사기 위해 국영 상점앞에서 줄을 서는 일이나 집에서 부부가 집안일을 분담하는 일이 당연시되는 모습, 아내의 직장문제와 아이의 유치원문제로 로비하는 모습은 중국 특유의 사회적 배경이라 흥미롭기도 하지만 그보다 뒤탈이 두려워 아내나 어린 가정부에게 제대로 화조차 못내는 린의 모습이라던가, 린의 아내가 통근버스가 생기자 기뻐하다가 정작 통근버스가 생긴이유가 자신의 편의때문이 아니라 사장의 처제때문이었다며 크게 분노하는 모습이라던가, 속으로는 싫어하면서 겉으로는 친한척하고 자격지심으로 되려 무시하던 앞집의 도움으로 원하던 유치원에 딸을 넣고는 앞집이 도와준 이유가 앞집딸이 유치원에 적응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딸을 이용한거라며 화를 내는 모습을 보면 과시적인, 자신이 주체가 되지 못하는데 대해 참지못하는 중국민족의 특성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책을 읽거나 시를 쓰던 시절을 철없던 시절로 치부해버리고 출세와 좋은 벌이를 지향하는 모습은 오늘날 중국인들-비단 중국인들만의 모습은 아니지만-의 보편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다. 기관은 서로 동조하기도하고 경쟁하는 직장의 조직내 함께하는 인물들의 이야긴데 중국이라는 나라적인 특성을 넘어 우리의 사회모습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미드 오피스를 봐도 그렇고 사회적인 조직내의 관계란 거기서 거기인것 같다. 그렇지만 그저 그런 이야기라하기에 류전윈이 그려내는 세밀한 인물들의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다. <닭털 같은 나날>을 읽으면서 새삼 <허삼관매혈기>를 처음 읽었을때를 떠올린 이유는 생생한 인물들의 표현과 감칠맛 나는 이야기때문이다. 마치 일기처럼 바로 전날에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일일드라마를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1942년은 꽤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작가가 중국역사의 단편을 그려내는 모습에 역사를 돌아보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도 된다. 린과 린의 아내 리의 모습은 한마디로 우아한 생활과는 거리가 멀다. 경제적인 형편도 그렇지만 정서적으로도 다분히 속물적인 소시민이다. 그런 그들의 모습은 찌질하기도 하지만 왠지 모르게 유쾌하다. 문득 영화 <우아한 세계>에서 아이들의 유학때문에 기러기아빠생활을 하는 송강호가 라면을 먹다말고 분통을 터뜨리며 라면냄비를 집어던지고선 이내 주섬주섬 라면을 주워담던 모습이 떠오른다. 지리멸렬하고 부당한 상황을 분연히 떨치고 일어날 것인가보다 싶던 기대감은 3초만에 너털웃음을 유발한다. 생각할수록 심각한 일상이지만 한걸음 떨어져보면 웃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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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책을 거의 온라인서점에서 구입한다. 리틀초이 어렸을 적에는 고사리같은 아이의 손을 잡고 동네 큰 길 건너 서점에 다니곤 했었는데. 아이손이 고사리보다 튼튼하게 여물어지면서 아이는 엄마손을 잡지 않고도 혼자 서점에 다니게 되었고, 그 시점부터 나는 동네서점에 가는 경우가 뜸해졌었다. 이 책은 모처럼 오프라인 서점에서 구입한 책이다. 지지난 주말,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에 들렀을 때, 중국소설 코너가 스르르 발길을 잡아당겼다. 중국소설코너에서만 한 시간 넘게 책구경을 했다. 《만사형통》을 읽고 난 후 중국소설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터라 넓고 깊은 물속을 유영하는 기분이었다. 류전윈의 작품 《닭털같은 나날》이 유난히 눈에 들어오길래, 실컷 책 구경한 삯도 치룰겸 구입했다. 류전윈(劉震雲liuzhenyun)이라는 작가가, 위화의 작품성향과 비슷한 신사실주의의 작품을 쓰는 동시대 작가라는 설명에도 끌렸지만. 무엇보다도 《닭털같은 나날》이라는 책제목이 마음에 와 닿았다. 새털같이 많은 날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닭털같은 나날이라는 말은 처음 봤다. 새털같이 많은 날은, 왠지 뽀송뽀송하면서 희디 흰 깃털을 날리는, 그래서 매우 가볍고 희망적인 날들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이 여겨지는 것에 반해. 닭털같은 나날은, 책의 해석처럼 닭을 잡고 난 후 피가 묻은 채 난무하는 닭털처럼 비루하고 곤궁한 현실을 떠오르게 한다.
이 책은 세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 닭털 같은 나날(一地鷄毛) - 기관(單位) // (설명을 붙이자면 單位 단웨이danwei는 중국에서 직장을 일컫는 말이다) - 1942년을 돌아보다(溫故一九四二)
<1942년을 돌아보다>는 1942년 허난성에서 실제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을 소설화한 작품으로, 가뭄으로 굶주리게 된 사람들이 주린 배를 채우기위해 어떻게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지 그리고 삼백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어떻게 죽어가는지, 그 사건을 수습할 수 있었던 최고 권력자는 왜 그 사건을 방치했는지를 블랙유머로 이야기하고 있다.
<1942년을 돌아보다>가 역사적 사실을 단편소설화했다면, <닭털 같은 나날>과 <기관>은 너절한 일상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두 편의 글을 읽으며 사람 사는 모습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속에는 어느 정도의 비애가 깃들어있음에 씁쓸해지기까지 했다. 두 단편속 주인공의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힘없이 뽑혀져 여기저기 나뒹구는 닭털같다. 가정에서는 비루하기 짝이 없고 직장에서는 비열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살아볼 만한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이 책에는 위트가 듬뿍 담겨있다. 정글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은 닭똥속에 함께 뒹구는 닭털같이 비루하지만 시시때때로 뽀송한 새털처럼 밝고 환한 창공을 사뿐히 가로지르는 나날도 있어 살아가게 되는 것이라고 위트있게 살짝 꼬집어준다. 내용은 씁쓸했지만 작가의 위트는 읽는 이로 하여금 웃으면서 무거움을 덜어내게 한다. 그 부분에서 작가의 능력이 빛을 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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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에 따라 약간의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하루를 무사히 마친 것에 감사를 표하고 보일 듯 말듯 소박한 희망 하나 목전에 걸어놓고 내일을 바라고 살며, 작은 것에도 마음 아파하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상처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역사 속의 주체가 되면서도 그 누구 하나 기억해주지 않는 이들을 가리켜 우리는 소시민이라 부른다. 오늘도 무수히 많은 소시민들은 하루의 일상을 보내면서 일비일희하며 힘들고 고단한 삶을 영위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소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넓게 생각해보면 권력의 힘 앞에 더러 굴종된 삶을 강요받아야 하고 가진 자들에 의해 교묘히 이용당하면서도 이를 어쩌지 못해 스스로 감내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한편으로 그러한 가운데서도 현실적인 것을 부정하지 못해 때로 자신을 속이는 비굴함을 보이기도 하고, 팔이 안으로 굽는 것 마냥 이기주의 편에 당당하게 서서 속물적인 근성을 드러내고야 마는 것이 바로 이들의 삶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생각해 볼 것은 그 안에 또렷하게 보이는 이들의 모습 이 바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 주시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 누구도 자신에게 소시민으로 살아가라고 주장하거나 권유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들 중 대부분은 이 부류에 속해 있고 또한 스스로를 소시민이라 자처하며 살아가면서, 우리가 이를 객관화시켜 보려고 하는 노력조차도 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심히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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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 쑤통과 함께 전 세계에 가장 널리 알려진 중국작가 류전윈의 작품이다. 읽는 내내 주인공들의 능청스러움과 뻔뻔스러움에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하고, 살고자 아둥바둥 거리는 이들의 일상이 너무 리얼하고 억척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면서, 중국 공산사회의 일면을 들여다보는 재미까지 느낄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사회에서 사냐..싶으면서도 사회체제만 달랐지 이들의 모습이 결코 남의 나라 모습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가슴 한켠 조금 씁쓰레하기도 하다. 단편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지만 이 작품은 3가지 이야기 모두 단숨에 읽어내려갈 정도로 재밌게 읽었다. 마지막 '1942년을 돌아보다' 라는 이야기는, 마침 몇 달 전 이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 '1942'을 봤기에 이 작품 속 이야기들이 더 리얼하게 다가올 수 있었다.
중국영화를 보면서 소시민들이 치열하게 사는 모습, 왁자지껄하게 모여서 이것저것 참견하고 한바탕 싸움이라도 벌어질 듯한 분위기 그런 모습들을 고스란히 이 소설 속에서 느낄 수 있다. 모든 사회가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공산주의 사회에서 회사 내 계급과 승진, 당의 소속에 대한 이야기는 참 새롭고,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시골출신이 대도시에 사는 것 자체가 출세 내지는 성공으로 보고 고향의 친지나 어르신들이 올라올 때마다 대접을 해야 하는 상황들..중국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아주 솔솔하다. 너무 황당한 사건들이 많지만 결코 유치하거나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그만큼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는 증거일 듯.
이렇게 암울한 현실을 이정도로 재밌게 표현할 수 있다니..위화의 허삼관 매혈기에서 느끼는 감동까지는 아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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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작가의 책은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책이 였다. 20세기 100대 세계명작으로 선정이 되었다고 하여 읽기 되었다. 이 책은 3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 <닭 털 같은 나날>이야기는 하려고 한다. 주인공인 린은 값싼 두부를 사기 위해 새벽부터 상점 앞에 줄을 서고 물 값을 아끼려고 수도꼭지를 가늘게 틀어 놓는 정말 돈 없는 모든지 절약하는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게 우선인 서민이다. 한밤중에 능력이 없고 살아가는 방법을 모른다. 자기 자신을 학대한다. 그러면서 자고 있는 아내와 아이가 깰까 봐 걱정 돼 그것도 눈치를 보면서 살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지금의 서민층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시대와 환경이 다른데도 생활은 이전이나 현재나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힘들기는 마찬 가지인 것 같다. “인간이 살아가는 게 다 똑같지”라는 말을 어르신에게 들은 기억이 난다. 이 책에서 그 말의 의미가 더 많이 다가오게 만들었다. 류진운 또는 류전윈 이라 불리는 이 책의 작가는 위화, 쑤퉁과 함께 중국 3대 작가 중에 한명이고 신사실주의 작가라 그런지 더 사실적으로 와 닿는다. 중국 작품을 처음 읽어 보았다. 류전윈 작가의 이 작품을 먼저 읽은 것은 행운이였다. “필력”이라는 단어를 전문가가 이야기하는 전문 단어라는 생각만 했다. 이 책을 보면서 ‘이런 걸 필력이라고 부르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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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미국과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하는 중국은 동양문화의 중심이다. 주변국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바꿀 수 없는 사실이다. 오랜 기간 고유한 문화와 문명을 지켜왔다. 중세에서 미처 벗어나지 못한 채 아찔하고 고통스러운 근대를 겪기도 했다. 학창시절에 배운 중국의 역사는 기껏해야 고대사에서부터 근대까지에 국한된다. 정치적 이유도 있었겠지만 중국에 대해 더 알려고 하지 않은 이유가 더 클 것이다. 당장 내 나라 현대사에 대해서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국가에 살고 있는데 언제 중국의 현대사까지 참견할 수 있나. 그래서 중국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하는 중국 작가들의 책을 읽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처음 읽은 책은 다이 호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라는 책이었다.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읽다가 선생님이 번역한 책 이름을 발견하고 읽게 되었다. 한국의 현대사만큼 격랑을 직접 겪은 중국의 지식인, 작가들의 투쟁의 삶과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읽는 것이 신선했다. 그전까지 전혀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 다음에는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읽었다. 다이 호우잉과는 다르게 현실을 풍자하는 위화의 글이 더 마음에 와 닿고 재미도 있었다. 가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피를 팔아야 하는 허삼관의 삶이 지켜보기 민망할 정도로 곤궁하고 비참했지만 피식 피식 튀어 나오는 실소를 참을 수 없었다. 중국은 구소련이 허망하게 무너지고 나서도 정치적으로 사회주의 이념을 고수했다. 지금도 그렇다. 구소련의 실패를 거울삼아 경제적으로 개혁·개방 정책을 조심스럽지만 과감하게 펼쳤다. 지금의 중국에 내포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엄청난 빈부격차, 부정부패, 정치적 민주주의의 결여, 언론통제,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 등 수많은 문제가 있지만 실제로 중국의 근·현대사를 지나며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고 헌신한 청춘들의 삶에 대해서는 모르는 바가 많았다. 지금도 몇몇 작가들은 그런 소재로 책을 출간했다는 이유로 추방당해 있기도 하다. 이 책 <닭털 같은 나날>의 작가 류전윈도 위화와 함께 중국의 신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다. 다른 국가의 국민들은 물론 중국 국민들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조직이 가지는 생태적 특성을 특유의 블랙 유머와 자조 어린 필치로 그려 낸다. 정치적인 이념이나 국제관계 등이 배경으로 등장하거나 형이상학적인 거대 담론이나 이데올로기가 소설의 주된 전개 요소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류전윈은 현실의 자질구레한 일상을 통해 개인과 조직, 역사의 문제를 풍자한다. 풍자라고는 하지만 실제 소설 속 등장인물처럼 살고 있는 사람이 꼭 있을 것만 같다. 이 책은 총 3개의 작품이 실려 있다. <닭털 같은 나날>, <기관>, <1942년을 돌아보다> 먼저 <닭털 같은 나날>은 중국의 현대를 사는 소시민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마치 한 가족의 모습을 장시간 따라다니며 그와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은 것 같다. 어떤 개입이나 꾸밈이 없다.
“모두 가만있는데 당신만 정의를 부르짖겠다면, 내일이라도 다시 시내버스를 타면 돼. 아무도 당신한테 통근버스를 타라고 강요하지 않아. 당신도 직장을 옮기려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고 아첨했잖아. 뇌물을 주려다 복도에서 쫓겨나기도 했고.” (p.54) “원래는 저도 별 도리가 없었는데, 직장 동료의 아버지가 바로 그 회사의 국장이라, 그를 통해 겨우 자리를 얻은 겁니다. 요즘 우리 사회가 좀 그렇지 않습니까?” (p.62) 자본주의 경제가 깊숙이 침투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중국의 전체 경제는 정부에서 주관하고 있다. 부패와 뇌물의 온상이기도 한 국영기업이 여전히 득세하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도 국영기업이나 국가의 하위기관에 근무하고 있는 말단 사원이다. 국가 기관이라고 해봤자 특별한 것은 없다. 워낙 그런 국가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특별히 차별되지도 않는다. 다만 그의 고향 시골에서는 그래도 국가 기관에 취업해서 베이징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잔치가 벌어질 정도이지 아침 일찍 일어나 배급을 받으러 가야하고 직장에서는 그저 말단 사원일 뿐이다. 중국 사회에 만연한 뇌물 문화에 대해서도 작품에서는 당연하게 등장한다. 국가에서 운영하고 관리하는 조직이기는 하지만 전혀 법률이나 규정에 의해 인사절차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복도에서 뇌물을 주고받을 정도라면 사무실에서는 어떻고 보는 사람이 없는 은밀한 공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무리 말단 직책이라도 국가 기관이나 국영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있는 줄 없는 줄 모두 동원해서 아는 사람을 찾아내고 그 사람을 통해 뇌물을 전달해야 한다. 마치 기부금을 내고 입학을 하는 것처럼 그렇게 꽂아진다. 책에 실린 또 다른 단편 작품 <기관>의 주인공 린도 국가기관의 말단 직원이다. 어차피 오르지 못할 나무 쳐다보지도 말라고 했다는 한국의 속담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큰 욕심 없이 자리만 보전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래서 한국의 공무원들이 그러는 것처럼 출근해서 퇴근하기 까지 별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 시키지 않는 일은 당연히 하지 않고 시키는 일이라도 꾸역꾸역 대충대충 시늉만 낼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상사들인 쑨,러,장,차오,펑의 모습을 보며 린도 부패와 뇌물과 비리의 축제에 발을 들여 놓는다. 무슨 수를 쓰든 한 자리라도 기어오르지 않는다면 그의 생활은 결코 단 한 발자국도 나아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꾀를 부려 승진하고 더 많은 돈을 받고 더 큰 집으로 이사하고 더 큰 차를 전용차로 몰고 다니는 그의 상사들의 모습이 비로소 눈에 들어 왔다. 그래서 린은 시키지 않은 일도 한다. 시키는 일은 기가 막히게 해 낸다. 그래도 여전히 그는 입당조차 할 수 없다. 단지 일을 잘 하는 것만으로는 승진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내가 열심히 하면 승진도 하고 입당도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며 혼자 설레발을 치면 또 자연히 그것이 어떤 상사에게는 밉보일 구실이 될 수 있다. 재수가 없으려니 하필 린의 입당 문제를 손아귀에 쥐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상사였다. 이런 저런 수를 쓰고 온갖 줄을 대어 그의 상사들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그렇게 ‘우리 사회가 좀 그런’ 그것을 시도한다. 직장에서 전투를 치르고 집에 돌아와서도 산발적인 국지전은 도무지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수도 검침을 하는 영감에게 밉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칫 영감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가 수돗물이 끊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p.13) 수도를 검침하는 영감의 눈치도 살펴야 한다. 애지중지 하는 침대에 턱하니 걸터앉아 뻐끔뻐끔 담배를 피우고 가래를 뇌까려도 그저 마음속으로 분을 낼 뿐이다.
“배추더미가 산처럼 쌓여 있는 모습을 보며 겨울 내내 먹어치울 생각을 하니 벌써 비위가 상했다. 하지만 아내의 기분이 좋으니 그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집 안의 분위기는 오히려 전보다 더 부드러워졌다.” (p.66) “린은 집에 돌아와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수도가 또 막혔고, 같이 사는 상대 집 여자가 방에서 성질을 부리고 있었으며, 그의 방에서는 딸아이가 앙앙 울고 있었다. 게다가 어머니는 감기에 걸렸고, 아내는 침대 옆에 앉아 눈물을 뚝뚝 떨구고 있었다. 어머니, 언제쯤 이런 생활이 끝날까요?” (p.136) <닭털 같은 나날>의 남편도 <기관>의 린도 지긋지긋한 직장 생활을 내팽개치고 싶다. 시원하게 욕이나 퍼붓고 싶다. 받아 먹을 때는 모두 다 들어줄 것처럼 하다가 받아먹고 나서는 나 몰라라 하는 저들의 탐욕을 견딜 수 없다. 하지만, 하지만 아내와 가족 앞에서 다시 한 번 마음을 추스른다. ‘올해는 절대 배급받지 말아야지’다짐하면서 동시에 배추 배급 줄에 서 있는 자신을 경멸한다. 두 손 가득 배추 단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며 아내에게 강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리라 다짐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집안 가득 쌓인 배추더미를 보며 벌서부터 비위가 상하지만 아내의 기분이 좋으니 만사 오케이다. 애처롭고 귀엽다. 메스껍게 쌓인 배추더미를 직장 상사들이라 생각하며 발길질을 하고 싶지만 그런 배추더미를 보며 만족해하는 아내의 기분이 상할까 근처에 가지도 못한다. 어쨌든 아내의 기분이 좋으면 나도 좋은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고 온몸이 부서져라 아부하고 갖다 바쳐도 승진은커녕 입당도 되지 않는 린은 그래도 기관을 그만둘 수 없다. 내 집하나 없어서 다른 부부와 함께 집을 쓰며 매일 여자들 싸움에 지쳐 있지만 그래도 기관에 붙어 있어야 입당을 타진해 보든 승진을 노려보든 할 수 있다. 오늘도 아내는 옆 방 여자와 다퉜고 그 화를 받아줘야 한다. 아픈 어머니가 마음에 걸리고 딸아이는 앙앙 울어 댄다. 그래서 이 생활을 끝낼 수 없다. 닭털 같이 흐드러지게 휘날리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나날이다. 그들에게 현실은 수용 범위를 넘어선 닭장에 가득 들어찬 닭들의 털이다. 푸드득 날갯짓에 후드득 떨어지는 털이지만 가볍게 떨쳐 내거나 쉽게 밟을 수 없다. 몸으로 기록한 하루하루다. 누군가에게는 지금, 당장의 현실일 수 있다. 누구도 닭털처럼 가볍다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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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전윈의 작품을 처음 접해본다.
몇 년 전부터 접하기 시작한 중국 작가의 작품을 몇 편 접하면서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그들의 모습 자체가 충격으로 작품을 통해 중국의 현재를 엿보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류전윈의 <닭털 같은 나날>은 가히 가장 실체적인 모습으로 중국 사회를 엿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기관 1942년을 돌아보다.
닭털 같은 나날은 중국의 일반 가정 이야기를, 기관은 직장 생활을 엿볼 수 있고, 1942년을 돌아보다는 중국의 한 지방에서 발생했던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각각의 이야기는 현재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며 갈수록 국제적인 영향력을 높이고 있는 중국의 양면적인 모습을 보습을 보는 것 같다. 메이드 인 차이나가 세계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반면 인권, 정치적인 부분에서는 아직까지 공산주의라는 체제 아래에서 지양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이 세계 문학에 이슈가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점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가장 좋은 환경에서 가장 좋은 소재를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하며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는 배경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작가의 작품은 역시나 대다수의 다른 나라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가했다. 소설 작품이지만 마치 수필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작가의 필력 때문이다. 특히 1942년을 돌아보다는 다큐 형식의 인터뷰 형식을 띄었는데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이전에는 전혀 느껴보지 못한 신선함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아로 죽고 정치적 혼란을 느꼈던 그 시기에 장제스의 판단을 유추해내거나 사람들의 인터뷰를 하는 모습에서 오히려 담담한 필체는 독자들에게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마치 눈물을 억지로 쥐어짜는 영화보다 담담하게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절제미로 표현하는 영화가 더 슬픈 것처럼. 작가는 그런 담담함과 절제미로 세 단편을 썼다. 그러나 독자는 세 작품을 통해 가슴 한 곳이 아파오는 절절함이나 슬픔을 느끼게 되거나 강한 충격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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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인간극장을 보는 것 같았다. 딸아이 유치원 보내는 일로 골머리를 앓고, 승진을 위해 상사 선물을 고르고, 조금 더 싼 두부를 사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는 소시민의 군상들과 그들이 살아가는 닭털 같은 세상. 한 때는 꿈과 이상으로 가득 차 있었던, 두 남녀의 몰락과, 또 끊임없이 그들에게 타협을 강요하는 세상. 어릴 적 외투를 벗어주시던 은사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처리해야할 썩은 배추더미 생각에 묻혀버릴 수 밖에 없는 세상.. 이 소설은 그렇게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마치 6MM 카메라에 찍힌 영상같이 담담하게, 때로는 능청스럽게 소설 속에 담아낸다. 그리고 그러한 담담함은 송곳이 되어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삶이 그들의 삶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은 살아가야만 한다. 총 3편의 이야기중 갑자기 전혀 다른 내용을 마지막에 실은 의도는 그런 뜻에서 이었으리라. <1942년을 돌아보며..>라는 제목의 이야기는 실제로 일어났던 하남성 대기근 사건을 다룬 내용이다. 약 2년동안 총 300만명이 굶어죽고, 3000만명이 끼니를 이을 수 없었던 상황을 여기서는 다양한 자료를 제공하며 독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앞의 두 이야기가 단순한 소설 이었다면, 이 이야기는 일종의 르뽀문학이고, 그 소설 속이야기가 단순한 악몽이라면, 1942년의 현실은 지옥이었을 것이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치에 너무 놀라, 피부에 확 와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확실한건, 지옥같은 그들의 삶에 비해 현실의 삶은 천국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확실한 것은, 3000만명의 기근을 외면했던 장제스처럼, 오늘날의 중국이 비록 그보다는 덜하나 악몽같은 삶을 살고 있는 수억의 중국인들을 외면한다면, 1942년은 결코 단순한 과거일 수 만은 없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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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털 같은 나날]은 중국 작가 류전윈의 중편소설<닭털 같은 나날><기관><1942년을 돌아보다>를 한권으로 묶은 소설집이다. 닭털 같은 나날이란 닭을 잡은 뒤에 피와 털이 난무하는 비참한 현실을 나타내기도 하고, 혼란스럽고 골치 아픈 상황이나 허접스레기 같은 일상을 나타낸다고 한다. 첫소설인 <닭털 같은 나날>도 그렇지만 두번째 소설인 <기관>도 지리멸렬한 일상의 연속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그야말로 중국 소시민의 일상이다. 이 두 작품에서는 현재 중국의 상황이 잘 표현되어있다고 느껴졌다. 중국에서는기관에서 공무를 처리하는데 하마세월이라고 한다. 작은 증명서 한통 발급받는데도 여러날이 걸리는가 하면 촌지가 난무하다는 것이다. 중국은 70년대말 문화혁명이 사실상 실패로 끝나고 모택동 사망후에 등소평이 장악한다. 죽의 장막이 걷히고 세상으로 문호를 개방하면서, 특권화 관료화가 서서히 고개를 들기시작하여 작금의 병폐를 낳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인민을 직장, 사회, 국가의 진정한 주인으로 참여시켜 인간적 평등의 계급없는 사회를 건설하자는 것이 중국 공산당의 목표일 것이다. 그런데 먹고, 자고, 싸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해결하기위해서는 진급을 해야하고, 진급을 위해서는상사에게 아부도 하고, 일을 처리해 달라고 주는 뇌물을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다. 국가적 이념이 다 뭐란 말인가. 소시민에게는 잘 먹고 잘 살게 해주면 그것이 장땡이다. 이 소설은 마치 우리나라의 소시민들의 일상을 엿보는것 같았다. 국민 소득의 차이가 있으니 물질적인 면에서는 우리나라가 조금 앞서겠지만 아이키우고 마무라와 지지고 볶고 ,직장 동료들과 사소한 일들로 갈등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닌가 싶다. 사람사는 사회는 다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책을 읽으면서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가 자꾸 생각이 났다. 가족을 위해서 힘쓰는 이 시대의 가장들의 안쓰러움이랄까.뭐 그런 느낌이 일맥상통하는 기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