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딱 백 년 전, 내가 즐겨보던 만화는 캔디와 마징가제트였다. 대충 나는 안소니보다는 테리우스 편이었는데 장미 정원의 왕자인 안소니가 부드럽고 따뜻하기만 한 것에 비해 테리우스에게는 포근함과 매정함이, 우울과 경쾌가, 평온과 광기가 뒤죽박죽되어 그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도록 만들어버린 탓이다. 캔디를 볼 때마다 얼마나 전율했던가. 육체를 관통하며 팽창하던 슬픔과 차오르는 먹먹함을 난 또 얼마나 사랑했던가. 인도의 신 중 하나인 ‘아수라’는 아내를 희롱하던 인드라를 복수에 대한 일념 하나로 광적으로 좇게 되는데, 이 때문에 아수라는 원래의 선함과 인드라로 인해 갖게 된 악함을 동시에 지니게 된다. 이러한 인도의 신 아수라를 차용하여 만든 캐릭터가 마징가제트의 아수라백작이 아닐까. 한쪽은 여성 다른 한쪽은 남성, 두 개의 성을 한몸에 지닌 아수라백작에게서 물론 善은 찾아볼 수 없지만 말이다. 그렇게 철저한 관객의 입장으로 하나의 인물 속에서 이중적인 면모를 발견하던 것이 백 년 전이라면, 어느 때부터인가 나는 내 안에 살고 있는 둘, 또는 셋, 아니 그보다 많은 숫자의 전혀 다른 나‘들’을 발견한다. 물기 담은 애잔한 목소리로 정말 정말 행복해야 해, 읊조리다가 어느 순간 돌변하여 차라리 죽어버려, 지옥에나 가 버려!를 외치게 되는 것은 참으로 유감이지만 말이다. 아합이 사뱅에게 전도되어 탐욕과 살인과 저주가 사라진 후 고여 있는 물 같던 베스코스에 작은 파동이 감지된다. 젊은이는 모두 떠나고 느린 걸음과 일과 후의 그렇고 그런 수다들로만 채워진 작은 마을의 샹탈 프랭은, 가끔 이곳을 스치는 이방인들과 몸을 섞으며 ‘그녀가 익숙해져 있는 그 모든 결핍’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킬 누군가를 기다린다. 꿈이 많았던 만큼 악마의 제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그녀는 선과 악 사이에 놓여진 번민을 마을 주민들에게 양도하고 작은 마을이 서서히 검은 날개 밑에 잠식되는 것을 방관한다. 하지만 샹탈은 번사의 제물로 선택된, ‘사랑한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방법이 날마다 주변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뿐이라는 베르타를 외면할 수 없다. 코엘료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리기 위해 찾은 예수와 유다의 모델이 결국 동일인이었다는 일화를 삽입하며 선과 악은 한 배에서 나온 쌍생아일 뿐이라고 말한다. 내 안에 가득 찬 선과 악을 양손에 나누어 쥐고, 천국과 지옥을 나누는 실처럼 가는 다리를 걷게 되는데 어느 것의 무게가 많이 나가느냐에 따라 천국으로도 지옥으로도 떨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여기에 현대의 거대 메커니즘인 부와 권력이 개입된다. 그것의 역동성에서 누군들 자유로울 수 있을까마는, 코엘료는 그것으로 인한 선과 악의 대립에서 선이 승리를 거두게 함으로써 ‘현대의 우화’를 탄생시킨다. 그래서 난 조금 속상하다. 피의 만찬을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악으로 대변되는 이방인은 결말 부분에서 너무 무기력하고 갈등의 변주였던 프랭은 자신이 희망했던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되니 말이다. 그럭저럭 재미는 있지만 빼어나지는 않고, 하드커버의 압박은 여전히 심하다. 페이퍼백이면 왜 안 되는가 말이야, 우씨. |
| '전혀 예상치 못했던 순간에 삶은 우리를 난관에 봉착시켜 우리의 용기와 변화의 의지를 시험한다. 그럴 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하거나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핑계를 대며 슬그머니 달아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도전은 기다리지 않는다. 삶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200명 가량만이 가난하지만 정의롭게 살고 있던 시골 마을에 이방인이 찾아온다. 나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온 이방인은 샹탈이라는 도시와 부를 꿈꾸는 젊은 여인에게 금괴를 보여주며 1주일 안에 이 마을 사람들이 누군가를 죽이면 이 금괴를 모두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기한은 일주이이오. 희생자가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소. 오늘부터 칠 일 후, 생산능력이 없는 노인이든 불치병 환자든 아니면 짐만 되는 정신 박약자든 마을에 사는 누군가 죽은 채 발견된다면 이 금괴는 마을 주민들에게 돌아갈 것이고, 나는 우리 모두가 악하다는 결론을 내릴 거요. 당신이 이 금괴를 훔치고 마을사람들은 유혹에 이겨낸다면, 또는 그 반대의 경우라면, 나는 세상에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공존한다고 결론지을 거요. 이 경우에는 문제가 심각해지지. 정신적인 차원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고, 둘 중 하나가 승리를 거둘 수도 있다는 걸 뜻하니까. 신, 초자연적인 것, 천사와 악마 사이의 싸움, 이런 것을 믿소?"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던 샹탈은 선과 악, 도덕과 욕망, 현실과 꿈의 경계에서 몸부림 치다 결국 마을 주민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마을의 유지와 이장, 신부등 권력자 6명이서 회의를 연다. 그리고 그들의 결정은... 소재를 보고 깜짝 놀랐다. 개인적인 욕망 앞에서 폐쇄적이고 정의적인 공동체가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는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였다. 선과 악의 대립과 인간의 본질. 이 소설은 우리 사회와 우리 내면의 미추를 가감없이 그려 냈다. 우리는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느냐 보다 어떤 행동을 하느냐로 선해지기도 하고 악해지기도 한다. 마지막 장면을 보며 선과 악의 경계에 대한 물음에 사로 잡혔다. 베르타를 풀어주고 금괴를 포기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가 그들의 말처럼 정말 다른 사람의 말을 믿는 것이 위험한 일이어서 일까 아니면 그들의 선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코엘료는 우리에게 이런 말을 던진다. 선과 악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선과 악이 각 인간 존재의 길과 마주치는 순간에 모든 것이 달려 있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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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엘류의 소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그 책을 읽고 선택한 두 번째 책이었다.
그 유명한 연금술사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사실 이상하게 사람들이 다 좋다고 말하면 당기지가 않는다. 나는..) 두 권의 책을 읽고 나서 생각해 볼 때 아마 그 책도 멋진 내용일 거 같다. 베로니카와 미스프랭과는 또 다른..
친구는 베로니카가 미스프랭 이야기 보다 더 재밌다고 말했지만 난 극적요소를 더 갖추고 있는 미스프랭이 더 좋았다. 스토리와 영상에 익숙해져 있는 탓일까. 난 그랬다.
사람의 마음이란. 오묘하고 복잡한. 그렇지만 선과 악이라는 두 잣대로 확연히 구분지어지는. 코엘류는 무엇을 묻고 싶었던 것일까. 난 그가 하는 질문을 읽어내지 못하겠다. 내게 메타포적 인식이 부족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보다 난 이 책이 더 많은 질문을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싶다.
단순히 미스프랭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의 문제 혹은 마을사람들의 선택이 어떠했느냐의 문제뿐만 아니라 미스프랭의 마음속 선과 악의 대립을 보여주는 작가의 의도적인 계략이나 가족의 죽음을 비극에서 벗어나 철학적인 그 무언가로 인식하고 보상받으려는 이방인의 태도에서 작가가 하는 수많은 질문들이 보여졌다. 음.. 아니. 아닐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질문을 하지 않았을지도. 내가 나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었을지도...
난 선이 완전한 선이고 악이 완전한 악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스프랭의 선택이 선이었다 혹은 악이었다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죽지 않았다고 해서 결코 선한 것은 아니니까. 또 그 노파가 죽었다고 해서 악한 것도 아니지 않을까. 그녀의 희생이 마을의 행복을 가져준다면 그건 다른 의미의 선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물론 사람들이 함께 합의해 만든 법이라는 것에는 위배되지만 이미 그 마을에는 그들만의 법이 있지 않았던가..
내가 그녀라면. 나도 그 상황에 고민했겠지만 그게 내 안의 선과 악의 싸움 때문이었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만약 선과 악의 싸움이라면 난 좀 다른 선을 택했을지도 모를 것 같다. 가족을 잃은 그 이방인의 잔인한 제안의 결과가 그 이방인에게 평화를 가져다 준다면 그를 위한 선을 택해줄지도 모를 것 같다. 나는.. 너무 위험한 얘긴가.
난 잘 모르겠다. 누구도 다 잘 모를 거 같다. 뭐가 선이고 뭐가 악인가. 선택의 문제. 그건 맞는 거 같다. 모든 일이 선택의 문제 일 뿐 이라는 거. [인상깊은구절] 성공하고자 할 때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하여 당신이 원하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도록 하십시오. 어느 누구도 눈을 감고 표적을 맞출 수는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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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의 문체를 너무 좋아해서, 올 해 목표로 파울로 코엘료의 책을 모두 구매하려고 결심했다. 두 달만에 책을 모두 구매하고 틈틈히 책을 읽기 시작했다.
우선, 연금술사를 읽고 아주 큰 감동을 받았었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당신을 도와줄 것이란 믿음. 산티아고의 여행을 통해 나도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있음을 느꼈던, 읽을 때마다 새로웠던 책이다.
좋은 책은 술술 읽히는 책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계속 막힌다면 나와는 수준이 맞지 않는 것이라 생각해서, 조금 두었다 읽곤 했는데- 역시나 파울료 코엘료의 특유의 문체는 책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 악마와 미스프랭은 악과 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악이 먼저 일까, 선이 먼저 일까. 악과 선. 어느 것이 더 강한 것일까. 살면서 누구나 몇 번씩은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그리 오래 살진 않았지만, 윤리를 배우던 고등학교 때부터 이따금씩 성선설, 성악설에 대한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결론을 내지 못하였다. 책을 다 읽고난 후에도 답을 얻지는 못하였다.
의지에 따라 악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선 때문일까. 개인의 이익을 위해 국익, 공익을 져버리는 것은 악에 굴복했기 때문일까.
알 수 없다 여전히 난. 이 문제는 아마 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가져가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악을 이겨내고 세상을 돕는 선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존재할 수 없는 악한 짓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데,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약함과 강함의 차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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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뇨의 작품. 부 앞에서 인간의 선과 악에 대한 본성을 다룬 작품이다. 같은 소재도 어찌 이리도 맛깔나게 쓰는지... 그의 글은 언제 봐도 신선하다. 소재부터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식까지 모두 다 마음에 든다. 그의 신작이 어서어서 나왔음 좋겠다.
자그마한 마을에 어느 이방인이 와 미스 프랭에게 위험한 제안을 한다. 마을 사람중 한 사람이 죽는다면 어마어마한 금 덩어리를 마을에 주겠다는 제안을... 일주일간의 기한을 두고 만약 원치 않는다면 다른 마을로 가겠다는 제안을... 터무니 없는 제안인 듯 하지만 뜻밖에도 마을 사람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리하여 마을에서 어쩌면 마녀일지도 모른다는 노파를 죽이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결국 미스프랭의 설득으로 마을 사람들은 해산한다. 결국 선이 승리한다는.....
사람들에게 가지고 싶은 3가지를 말한다면 아마 부와 관련된 항목은 빠짐없이 나올 것이다. 그만큼 부는 인간에게 있어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책에서처럼 끔찍한 살인조차도 감행할 정도로.... 개인적으로 뉴스의 끔찍한 사건, 사고들이 부에 대한 인간의 나쁜 본성이 원인인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소설을 덮고 난 후, 만약 부가 차지하는 이 어마어마한 비중이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공산주의 이런 건 절대 아님.... 헌데.. 좀처럼 상상이 되질 않았다. 그만큼 부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많았나 보다. 소설에서는 결국 선이 승리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우리 세상에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참 많은 것 같다... 슬프게도.... 파울로 코엘뇨... 이전의 작품들도 그렇지만 사랑, 죽음, 선과 악에 대한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에 대해 흥미 있는 소재로 맛깔나게 글을 쓸줄 아는 작가인 듯 하다. 앞우로의 그의 작품... 넘넘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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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질은 선한가, 악한가. 이는 끊임없이 상기되어 온 문제이고, 여전히 그 완전한 해답을 내리지 못한 명제로 남아 있다.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는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고 악하며 후천적으로 선을 습득한다고 했고,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는 인간의 본성은 원래 선하지만 물욕이나 나쁜 환경때문에 인간이 악해진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고자는 인간의 본성은 선도 악도 아닌 중립적인 상태라고 하는 성무성악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서양의 철학자인 로크는 인간의 마음은 빈방이나 백지, 또는 완벽하게 밀폐된 암실과도 같아 추후의 환경에 따라 선악이 갈라진다고 했다. 나의 경우 인간은 태어날 때는 백지상태와 같지만 커가는 환경에서 악해지거나 선해진다는 고자나 로크의 주장을 믿는 편이다. 하지만 그래도 절대적인 악과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악한 인간이라도 그저 절대적인 악에 가까운 것이고, 아무리 선한 인간이라도 절대적인 선에 가까울 뿐 그 자체는 아니라 생각한다. 그외의 사람들은 대부분 매순간 선과 악의 순간을 넘나들면서 살아 간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것은 한적한 시골마을로 주민수는 다 합쳐도 300명이 되지 않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그들은 특별이 나쁠 것도 좋을 것도 없는 평범한 나날들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이 마을에 이방인이 한 사람 찾아온다. 이방인의 출현은 작은 마을에 있어 큰 이야깃거리가 된다. 하지만 그 이방인이 어떤 존재이냐에 따라 마을에 큰 영향을 남기기도 한다. 이곳을 찾아온 이방인은 무기거래상으로 테러리스트에 아내와 두 딸을 잃어버린 남자이다. 그는 미스 프랭에게 한가지 제안을 한다. 이 마을에 금을 숨겨 놓을테니 마을 사람들이 '살인하지 말라'는 계율을 어긴다면 이 모든 금을 주겠다는 것이다. 미스 프랭은 자신의 마을 사람들은 금에 현혹되어 살인하지 않을 것이라 말하지만, 이방인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 이야기한다. 과연 마을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 처음에 마을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줄 것을 부탁받은 미스 프랭은 며칠동안이나 고민한다. 그녀의 마음속은 번민으로 가득찬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이방인이 미스 프랭이 마을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먼저 알린다면 그녀는 죽은 목숨일 것이요, 만약 그녀가 이방인보다 먼저 그 사실을 마을 사람에게 알렸을 때는 어떤 비극이 생겨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신의 마을 사람들을 믿어도 사람이란 존재는 유혹에 약하기 때문에 어떤 결정을 내릴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변변한 관광자원도 없고 젊은이들마저 모두 떠나버려 사양길에 접어든 마을을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그 금이 꼭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을 죽여야만 받을 수 있는 대가라니! 번민 끝에 미스 프랭은 마을 사람들에게 이방인의 제안을 알리기로 한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그 일에 대해 마을 회의를 시작한다. 그들이 내릴 결단은 어떤 것일까. 이방인은 자신의 가족이 몰살당한 일 이후,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고 믿어오고 있다. 그래서 이 작은 마을을 자신의 생각의 시험대에 올려 놓고자 했다. 마을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중요했다. 그는 당연히 마을 사람들은 누군가를 희생시킬 것이고, 그것은 자신의 생각을 증명해줄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미스 프랭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도 약간은 흔들린다. 자신이 겪은 비극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비극으로 몰아 넣는 것에 대해서. 그도 미스 프랭도 사람이었기에 그런 선과 악의 보이지 않는 대립을 마음속에서 겪고 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책의 결말부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방인이 누구 한사람을 지목해서 그런 일을 하도록 만들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마을 공동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이야기였다면? 그렇다면 다른 결론이 나올 수도 있었을까? 이방인이 마을전체를 시험대 위에 올린 것은 분명 목적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혼자서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번민하지만, 그것이 대의라고 생각할 경우 영광스러운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군중심리다. 신의 종이라는 신부마저도 '단 한 사람의 희생이 전 인류를 구원했다'고 말한다. 그가 독단적으로 이 결정을 내렸다면 파문당해야 마땅할 인간이겠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죄를 저지를 때는 그것이 방패막이가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몰고 간 계기가 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미스 프랭의 향후 행동에 대해서는 이 책과 대치되는 것 같아 마음이 좀 찝찝했다. 그녀는 마을을 위기에서 구해냈지만, 결국 자신의 욕망은 채웠다. 그것 역시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그녀는 분명 선한 행동을 한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대가를 바라고 한 것이었기에 마음이 찜찜해지는 건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결국 진정한 선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늘상 악에 유혹당하는 가련한 선이 있을 뿐. 인간은 결국 선과 악의 중간에서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리는 존재일 뿐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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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성의 이중성에서 흔들리는 인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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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자신이 읽었던 책들중에 동화같다고 기억되는 책이 있을 것 같다. <악마와 미스프랭> 은 내게 그런책이다.
삶이 지겹고 자기 스스로 삶을 개척해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자신의 삶을 꾸려가길 원하는 한 여자가 있다. 여자 앞에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 한 남자가 나타난다. 그 둘의 이야기가 이 책의 내용이다.
책 내용 자체만을 본다면 굉장히 단순하다. 하지만 그 이상, 그들이 해주는 진짜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것이 문학아닐까.
프랭은 악마와 싸우게 된다. 나는 그녀가 악마와 싸울 수 있었던 힘이 마지막으로 남은 그녀 스스로의 의지라고 생각한다.
성공할 수 없다고, 끝내 보잘것 없는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에게 마지막까지 남아있었던 삶을 향한 의지. 단순한 성공이 아니라 자기 삶 전체에서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스스로의 힘을, 그녀는 몰랐을 것이다.
모든 사건들은 끝난 후에야 대답을 던진다. 그녀에게 단순한 싸움이었던 것은, 사실 단순한 자존심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삶이 언젠가는 드러낼 당신에게 주어지는 기회.
단순히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라 그 마음을 가진 결국은 이겨내는 어느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난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단다. 삶은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지. 모든 것은 우리가 삶을 살아내는 방식에 달려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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